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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의 최소한의 경제 토픽 - 달라진 세계를 이해하는 21세기 경제사 수업
홍춘욱 지음 / 리더스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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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최소한의 경제토픽인 만큼 현재 세계 경제의 주요 흐름만 잘 짚어준다. 쉽고 막판 요약정리도 훌륭하다. 쉽다고 하긴 했지만 그렇다기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바쁜 사람들을 위해 여러모로 잘 정리한 책이다. 

 중국은 세계 경제의 일원이었다. 미국을 포함한 많은 선진국들이 그들이 어느 순간 자본주의와 민주주주의에 편승할 것이라 보았지만 그들의 속내는 전혀 달랐다. 도광양회로 속내를 숨기다 본색을 드러낸 것은 2008 베이징 올림픽이다. 1위를 했고, 성장한 국력을 과시했다. 특히 2008 경제 위기에 미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더욱 자신감을 얻은 듯 하다. 중국은 이후 10년간 미국과의 대결을 위해 일대일로에 무려 2400억 달러 이상을 퍼부었다.

 육로와 해로의 일부를 개척하긴 했지만 문제도 있었다. 우선 공급과잉이다. 지속적인 투자로 생산능력을 올리다보니 중국내 만성적 디플레이션이 형성되었다. 미중갈등 이전엔 세계 다른 나라로 물량을 밀어낼 수 있었지만 이젠 그것도 어려우며 관세장벽에 부딪혔고 반감도 크게 사고 있다. 둘째는 정부의 효울성의 감소다. 경제개발 초창기 개발하는 곳곳 성공했지만 경제가 성숙해지며 옥석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일당독재 국가에서 이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중국은 2020년 이후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이 무너졌는데 이 영역은 GDP의 20% 고용의 30%를 담당했다. 그렇다보니 청년의 실업률이 21.3%에 달했다. 중국은 노동자가 학력이 낮다는 문제가 있다. 학구열이 강한 나라지만 그것은 지금의 이야기이며 1950-60년대의 대약진운동이 실패하며 당시 4500만이 아사했다. 이후 출생률이 반등해 1962-1975년까지 4억명의 베이비붐세대가 탄생했고 이들이 중국 경제성장의 주역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려운 시기에 출생하여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중국의 고졸 노동자가 겨우 28.8%에 불과한 이유다. 이들은 지금의 정보혁명에 적응이 어렵다.

 또 다른 문제는 양극화다. 중국은 호구제로 인해 농민공이 생겨났다. 농민들이 호구가 농촌임에도 도시 지역의 일자리를 위해 도시에 몰래 사는 것이 농민공인데 그렇다보니 자신들과 그 자식들이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 의료, 교육, 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여기에 도시민들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며 해안가의 주택가들을 넘겼는데 이를 통해 거액의 부를 챙길 수 있었다. 현재 농촌과 도시 지역의 소득차는 2.3배정도다. 

 중국의 또 다른 문제는 저출산이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2800달러 수준이지만 벌써 출산율이 1.1명까지 떨어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 경제는 고유가로 인해 21세기 초반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크름반도 침공으로 경제제재를 당하며 경제고 곧두박질 쳤는데 그럼에도 푸틴은 전쟁을 택했다. 결과는 참당하다. 20만의 젊은이가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20만은 카자흐로, 7만은 조지아로 6만 6천은 유럽연합으로 징집을 피해 떠났다. 러시아는 인구가 점차 감소중인데 이번의 전쟁으로 인해 젊은 층이 대거 감소하여 그 여파가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러시아는 미국처럼 제조업이 붕괴했다. 소련 시절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었는데 70년대 1차 석유파동으로 고유가의 단맛을 보며 에너지에 의존하는 경제체제로 전화되기 시작했다. 원유를 팔다보니 달러가 유입되어 환율이 상승해 제조업 부분의 수출경쟁력은 더욱 악화했다. 

 저자는 푸틴의 이번 전쟁이 마지막 발악이라고 보고 있다. 제조업의 붕괴로 더 이상 첨단 무기를 만들기 어렵고,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보이기에 군사적 확장을 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독일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잘 나가다 몰락했다. 독일은 메르켈 때 원전을 없애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택했다. 그리고 과도기로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했다. 에너지 가격이 저렴해 수출에 도움이 크게 되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공급이 끊겨 에너지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독일은 중국 의존도가 크다. 독일의 실물 및 금융 수출의 10%가 중국이다. 하지만 2015년 디젤게이트로 전기차로의 전환이 늦어졌고, 코로나 19로 중국의 내수가 침체하며 타격을 입었다. 

 독일은 최근 정치상황이 심각하다. 극우정당인 AfD가 득세하고 있다. 이들은 남유럽 구제금융에 반대하며 생겨났고 최근 동독 지역의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으며 세력이 커졌다. 반면 기존 사민당은 지지율이 하락했는데 이민정책에 관대하여 기존의 지지세력은 노동조합의 이탈이 뼈아프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파운드와 가치가 30%나 하락했다. 영국은 지난 20년간 총요소생산성이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영구은 금융과 석유, 바이오가 강세인데 석유는 떨어지는 해이고, 바이오는 비만 치료제 부분에서 약점이 있어 미래가 어둡다. 파운드화의 약세로 인플레이션이 심한데 브렉시트로 인하여 6%의 경제성장 손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다 죽어가던 경제가 아베노믹스로 크게 살아났다. 아베노믹스는 양적오나화, 대규모 재정정책, 민간중심 경제성장이다. 양적완화의 이점은 컸다. 우선 엔저 현상이 발생해 수출경쟁력이 생겼고 앤캐리 트레이드가 세계적으로 발생했다. 둘째는 금융기관의 경영수지 개선이다. 일본은행이 자금을 확보해 이를 일본 국채와 증시에 투자했다. 그 결과 일본 닛케이 지수가 4배나 상승했다. 마지막은 금리하락이다. 이로 인해 주택 구매 부담이 낮아져 주택 구매 수요가 늘었고, 채권 보유자는 가격 상승으로 차익을 거두었고 일본 국채를 보유한 국내 금융기관들의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미래는 어둡다. 이 나라는 48년 건국 이후 계속 전쟁 중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교를 신봉하나 크게 4집단으로 나뉜다. 근본주의자인 하레디는 종교적 가치를 우선시하여 고대 경전 토라를 공부하고, 직장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다티는 하레디와 세속주의 유대인의 중간 성격이나 우파적 성향이 강하다. 마소드티는 다티보다 조금 더 개방적이다. 세큘라는 세속주의 유대인으로 이들은 유대교를 믿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사실상 이스라엘을 이끌어가는 집단이다. 문제는 하레디의 출산율이 무려 6.6명인데 비해 세큘라는 2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사실상 무임승차 집단임에도 하레디의 정치적 발언권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남자는 30개월 여자는 24개월 의무 군복무를 한다. 그런데 임신 및 출산하거나 육아중이면 면제가 되고, 종교학교 예시바에서 토라를 공부하는 학생도 면제가 된다.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하레디가 면제가 된다. 2012년 이스라엘 대법원이 하레디의 병역 특례를 위헌 결정하였지만 하레디는 인구 12%임에도 종교정당에 지지를 몰빵하고 분열된 정국에서 줄타기를 잘 하여 아직까지 병역을 유예받고 있다. 

 하레디는 군복무는 하지 않으면서도 주변 아랍민족들에게 대해 매우 강경하다. 미국의 유대인은 대부분 중부유럽 출신의 아슈게나트인데 하레디는 중동과 남부 유럽출신이다.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감정과 정책이 예전 같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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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 시대 - 글로벌 대격변이 시작된다
박종훈 지음 / 글로퍼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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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저저번 대통령이었기에 매우 신기한 일이다. 보통 미국은 현직 대통령이 웬만하면 재선에 성공한다. 레이건-부시-클린턴-아들부시-오바마-트럼프 로 이어지는 30여년의 기간 동안 재선에 실패한 건 트럼프 이전 아버지 부시가 유일했다. 그렇기에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했다면 그건 상당한 실정을 저질렀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트럼프는 막강한 인기를 등에 없었음에도 공약을 거의 실천하지 못했고 코로나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 그리고 역사가 보여주듯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사실 상 책임지고 정계 은퇴 수순을 밟는다. 여기에 트럼프는 사법리스크도 장난이 아니었다. 현직은 처벌하기 어렵다쳐도 정계 은퇴 수순을 밟아야 할 공화당 내 지분도 그리 크지 않은 자는 돌아오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더 강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법리스크는 해결된 것이나 다름이 없고 공화당내 반대자도 거의 제거되고 트럼프 일색으로 채워졌다. 예산을 좌지우지 하는 하원도 공화당으로 채우졌다. 여기에 그는 재선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에 그야말로 막나가도 괜찮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1. 트럼프의 당선 이유

 트럼프의 당선 이유는 8년 전과 똑같다. 일자리를 잃고 버림받은 플라이 오버 스테이트 지역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은 해리스가 우세한 언론만을 받아썼다. 하지만 저자를 비롯해 많은 미국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을 예측했다. 일본의 경우 이미 그의 당선을 점치고 작년 4월부터 아소다로 같은 고급 관리를 파견에 트럼프와 접촉했다고 한다. 

 미국은 신자유주의의 선두 주자로 그로 인해 커다란 이득을 보고 성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부유층 뿐이다. 미국은 80년대 고금리의 여파로 레이건 때 제조업을 크게 정리했다. 이 때부터 아시아 등지로 미국의 생산기지가 이전한다. 결정타는 클린턴 때의 중국의 WTO가입이다. 이로써 미제조업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었고 경력을 이어가도 소득이 정체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행위에 대해 미 민주당의 골수지지층이었던 러스트벨트 지역 노동자들은 상당한 배신감을 갖게 된다. 

 여기에 민주당은 합법이민지외에도 불법이민자에도 관대했다. 민주당 강세지역인 캘리포니아 지역은 2024년부터 모든 불법 이민자에게도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물론 공화당도 이민자에 관대했다. 친기업성향인 그들로써도 이민자는 저렴하게 고용할 수 있는 인력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이후 공화당은 반이민으로 돌아선다. 텍사스주는 주 경계선에 장벽을 설치했고 병원에서 환자 치료전 이민 상태를 확인하는 법안마저 통과시켰다. 


2. NATO의 미래

 트럼프는 나토 탈퇴가 공약이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나토와 미국의 우방국들이 미국에 기대어 저렴한 국방비로 자신들의 안보를 보장받으면서 호의호식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트럼프는 gdp대비 국방비가 2%이하인 나라를 공격한다. 실제 나토국가들의 국방비는 매우 적다. 2%가 넘는 것은 폴란드, 그리스 정도다. 이들은 러시아와 튀르키예와 인접해 국방비가 높다. 하지만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은 모두 낮다. 미국은 2023년 방위비로 8600억 달러를 지출했는데 나토의 나머지 국가의 방위비가 4040억 달러에 불과하다. 나토의 유지에 미국이 2/3의 예산을 쓰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기에 트럼프의 말이 빈말을 수 만은 없다. 물론 나토의 조성과 유지는 2차대전 이후 모두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유럽이 저렴한 국방비로 안보를 보장받고 사회보장비로 안온하게 살아간다고 공격하며 자신들은 피해자라 생각한다. 

 이런 트럼프의 공격은 나토의 존립을 위협한다. 미국은 그동안 쓴 돈 만큼 나토의 중재자였다. 하지만 그런 역할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며, 이로 인해 나토의 국가들은 서로의 이익을 내세우며 충돌할 가능성이 높고 이 틈을 러시아나 중국이 파고들 우려도 있다.

 

3. 미 제조업의 부활

 바이든 때 부터 미국은 제조업 부활을 시도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도 미국의 협박에 못이겨 많은 공장과 시설투자를 미국에 시작했다. 트럼프는 대미 무역 흑자국을 압박할 예정이다. 한국의 대미 흑자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대중 무역이 악화하며 대미 흑자가 상당히 커진 상황이다. 특히, 미국에 대한 투자로 인해 우리나라의 중간 설비가 많이 가게 되었는데 이것마저 흑자로 잡혀 과대평가된 상황이다. 

 지금은 미국의 제조업이 붕괴한 상황이지만 원래 미국은 1979년까지 세계 최고의 제조 국가였다. 1980년대의 경기 침체로 인해 서비스, 금융업으로 나라를 재편하고, 생산기지를 타국으로 이전하였으며 2000년대 중국의 WTO가입으로 제조업이 붕괴한다. 그래서 미국은 자동차와 정밀기계, 군수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제조업이 없다. 

 때문에 그 부활이 쉽지 않다. 바이든 때부터 여러 나라를 압박해 생산 기지를 강제로 짓게 했지만 이를 잘 운영할 만한 숙련공이 부족한 것이다. 여기에 미국은 노조가 강해 근로시간도 최소화하고 당장 필요한 외국 필수인력도 못들어오게 하는 형국이다. 그들은 고임금도 요구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미국의 생산단가가 올라가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가능성도 있다. 


4. 트럼프의 저물가 저금리 정책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위해 저물가 저금리를 실천하려 한다. 그는 에너지 관련 규제를 대거 철폐하여 생산 비용을 절감해 저물가를 실현하려고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미국은 이미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바이든 때 셰일 오일에 대한 규제를 거의 철폐해 최대생산량에 도달했다. 더 할 수 있는게 없는 셈이다. 

 더구나 이란도 문제다. 오바마는 이란과 핵협정을 맺어 그들을 국제사회에 복귀시켰으나 트럼프가 바로 이를 부정했다. 그 결과 이란은 트럼프를 매우 싫어한다. 이란은 해리스의 당선을 바라며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에 다소 소극적이었는데 트럼프가 되어 버린 이상 막나갈 판이다. 중동의 불안정은 저물가에 찬물이나 다름 없다. 

 저금리도 사실상 어렵다. 미국은 지속되는 인플레이션 우려로 과거처럼 양적완화를 마구잡이로 도입할 수 없다. 여기에 트럼프는 상대국에 대한 고 관세정책을 실현하려 하는데 그러면 물가가 잡히지 않기에 저금리 정책을 하기 어렵다. 여기에 이민자 유입을 막는 정책은 미국내 노동력 부족을 불러와 고임금이 실현되 물가상승을 더욱 압박할 수 있다. 

 트럼프는 향후 10년간 대대적 감세정책을 예고했다. 감세도 시중에 돈을 풀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또한 감세는 정부의 세수 부족을 야기하는데 이 경우 연방정부는 국채를 발행하는 수 밖에 없다. 많은 국채 발행은 가격을 떨어뜨리고 채권 가격의 하락은 금리의 상승을 가져 온다. 즉, 트럼프의 정책은 여러모로 인플레이션을 유발 할만 한게 많아 사실상 저금리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은 단기국채가 많아 안정적 장기국채가 필요하다. 미국은 부채가 너무 많다. 그래서 장기 국채로의 전환이 필수적인데 이것도 어렵다. 장기국채로 전환을 하면 안정적인 수익을 항상 쫒는 많은 민간 금융세력들이 여기에 투자한다. 그러면 시중 자금이 국채에 흡수되게 되는데 이는 자금 부족으로 금리 인상을 부추긴다. 금리가 인상하면 채권의 가격은 하락한다. 이 경우 미국의 은행이 문제가 된다. 미국은 우리 나라와는 다르게 중소은행이 시중 자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의 자산 중 국채가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데 금리 인상으로 국채가격이 하락하면 이들의 재정안정성이 떨어진다. 이는 잠재적 손실이기에 평소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뱅크런이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은행은 예금 인출을 위해 자산을 정리해야 하고 채권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이 실제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상업 부동산도 매우 부진하다. 미국의 은행들은 상업 부동산을 담보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금리로 만약 대출 상환이 어려워지면 대규모 매물이 쏟아져 나와 가격 붕괴가 예상된다. 


5. 중국의 대만 공격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을 상당히 압박할 것이며 이는 중국의 대만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한국에 큰 타격이 된다. 한국의 물류 상당수가 대만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중국의 대만 점령은 매우 어렵다. 대만의 서해안은 산지다. 그래서 상륙 가능지점이 겨우 13곳이며 이들은 당연히 모두 요새화되어 있다. 중국은 단기간에 대만을 점령해야 하는데 이는 장기전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바다가 한쪽 부분 뿐이고 그나마도 모두 포위되어 있다. 

 중국은 식량자급률이 67% 수준이고 석유자급률도 29%에 불과하다. 중앙아시아에서 오는 석유도 2%정도에 불과하다. 러시아가 있기는 하나 완전히 믿기 어렵고 과거 갈등의 역사도 있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보급로가 막혀 결국 승리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중국에게 가장 안전한 보급로는 이란-파키스탄-신장-히말라야 라인이다. 하지만 건설 비용이 비싸고 위협 세력이 많아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 중국은 에너지를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중국에는 무력 없는 대만 점령 시나리오도 있다. 우선 대만 내 혼란을 야기한 후, 미국 대만간 갈등을 일으키고, 군사적 위협을 고조시킨 후, 대만 내 협력 세력을 집권시켜 사실상 통제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중국은 빠르게 해상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현재 전투함 수에서 219 대 234 대로 약간 우위에 있다. 물론 미국의 전투함이 더 크기가 있으나 현대해상전에서는 크기보다는 숫자가 더 중요하기도 하다. 그리고 중국은 세계 1위의 선박 제조국이다. 중국의 선박은 대부분 2010년대 이후로 건조한 것이고 미국의 것은 2010년 이후 건조가 겨우 25% 수준이다. 중국의 군함이 더 최신기종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막강한 11개의 항모전단이 있다. 하지만 이 들도 노쇠화하여 정상가동이 가능한 것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해상력에서 중국은 가까운 시일내에 미국을 압도하게 된다. 미국이 압서는 것은 핵잠수함이다. 현재 미국은 핵잠이 64척으로 15척의 중국을 답도한다. 하지만 중국은 핵잠도 2035년까지 80척을 더 진수할 예정이다. 

 미국은 오래도록 조선업이 붕괴상태다. 때문에 지금 노력하더라도 중의 생산능력을 따라 잡을 수 없다. 동맹에 기대는 수 밖에 없는데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 괜찮은 기회가 올 수 있다.


6. 중국의 문제

 2024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5%다. 현재 중국은 내수가 크게 위축되었고 미중 갈등으로 수출도 쉽지 않다. 내수의 위축은 경제적 불확실성과 부동산 가격 하락 때문이다. 그 동안 중국은 정부가 부동산을 인위적으로 부양했다. 40년간 부동산 불패가 되자 사람들은 부동산에 기회만 되면 투자했는데 한채는 84% 두 채인 경우 75%까지 대출이 되다보니 부동산 가격이 조금만 하락해도 원금을 모두 날리는 사람이 생겼다. 

 중국은 순자산의 60%가 부동산에 몰려있는데 미국와 일본의 30-40%수준과 비교하면 상당하다. 물론 한국은 87%로 훨씬 더 심각하다. 중국은 경제성장을 인위적으로 하고 있다. 우선 과잉생산이다. 중국은 고용유지를 위해 재고가 넘쳐도 생산을 한다. 이것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가능한데 중국 정부는 이 넘쳐나는 재고를 말도 안되는 헐값으로 해외에 밀어내기 수출을 하다. 그래서 인접국들의 제조기반을 붕괴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국 수입품이 과도하게 싼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설비에도 과잉투자를 한다. 중국은 친환경차를 연간 3600만대 생산하는데 이중 국내용이 1700만대고 수출은 경쟁력 부족으로 겨우 170만대를 한다. 나머지는 헐값으로 밀어낸다. 그래서 중국 전기차가 가성비가 좋은 것이다. 


7. 한국의 문제

 중국은 2023년 3중 전회에서 신질 생산력을 제창했다. 이는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인공지능과 IT, 바이오, 항공우주, 신에너지, 신재료, 바이오 등에서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글로벌 생산 기반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주력산업과 그대로 겹친다. 이 부분에서 중국은 아직 한국에 의존하지만 그것에 탈피해 경쟁상대가 되면 상당한 위기가 올 것이다.

 중국은 현재 남은 여력을 여기에 투입하고 있지만 한국은 남은 여력을 부동산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87%라는 말도 안되는 수치와 코로나 이후 미국의 금리 인상때 현정부가 금리를 인위적으로 내리면서 부동산의 거품과 자금을 뺄 기회를 스스로 날리고 각종 부동산 부양책을 남발했다. 한국은 신산업 분야에 에너지와 인력 모두가 부족할 형국이다. 반도체는 3만, 바이오는 10만 8천, 클라우드 빅데이터 분야에 4만, 조선에 13만 5천이 더 필요하다. 에너지 역시 경쟁을 위해 꼭 필요한데 한국의 발전소는 모두 동남권에 위치한다. 그래서 전력이 남아돔에도 송전을 못해 쓰지 못한다. 한국의 첨단산업기지는 수도권에 위치하고 향후 조성도 수도권에 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초토화시켰고 원전을 살리려 하는데 이 원전조차 부지 조성조차 못하고 있어 에너지 부족은 시간문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인공지능 분야는 특히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 일반 검색엔진보다 인공지능 기반 검색엔진은 10배의 에너지를필요로 한다. 인공지능은 개발과 운용에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셈인데 한국은 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또한 한국은 국가채무도 많다. 과거 양호했지만 코로나로 증대했고, 공공기관에 사실상 부채를 떠넘기는 구조여서 실제보다 채무가 더 많다. 더군다나 앞서 금리를 제대로 올리지 못해 이미 낮은 금리로 불황을 맞아 불황 때 금리를 내리기도 어렵다. 미국과의 금리차 때문이다. 

여기에 세수펑크도 문제다 현 정부는 감세로 상당한 세수 펑크를 불러왔다. 이를 차기 정부가 국채로 막아야 하는데 고금리 환경이 다가와 국채를 고금리로 발행해야해 문제가 될 소지가 높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까지 겹쳤고 생산기지를 미국 등지로 이전해 젊은 층의 고용도 어렵다. 어려모로 진퇴양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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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전쟁 - 세계경제를 뒤흔든 달러의 설계자들과 미국의 시나리오
살레하 모신 지음, 서정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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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터 미국은 자신의 적대 세력이나 국가에 경제 제재란걸 하기 시작했다. 지금 세계는 이것을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지만 미국의 경제제재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에는 미국 달러가 있다.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이며, 세계 모든 국가와 기업, 개인들이 거래를 위해 이 통화를 사용하기에 반드시 어디서나 필요하다. 때문에 이 달러 거래에서 배제되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의 부를 강탈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이는 마치 중세유럽에서 교황에게 파문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충격으로 다가오게 된다. 책 달러 전쟁은 미국이 달러를 무기로 만들게 된 과정, 그리고 달러가 불러온 지금의 미국 정치상황에 대해 말한다. 

 지금이야 그린 백이라는 불리는 종이돈인 달러가 그 자체로 가치 있어보이지만 이러한 믿음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 미국의 달러는 1862년 남북전쟁때 생겨났다. 당시만 해도 경제학의 주류 신조는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인간에게 재화와 신용교환의 가치로 금과 은을 내려주었다였다. 즉, 금과 은만이 믿을만한 교환수단이자 가치저장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 전쟁의 장기화로 미국은 금과 은이 고갈되었다. 북의 연방정부는 200만 연방군을 지탱하기 위해 지폐가 간절했다. 이자 지급이 없고 금이나 은으로 교환할 수 있는 증서는 당시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나 대안이 없었다. 그렇게 달러는 탄생한다. 

 당시 다행히도 이 그린백은 어디서나 수용되었다. 심지어 남부정부가 발권한 지폐보다 우월하여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이기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 재무부 장관인 체이스는 이에 고무되어 매일 무려 200만 달러를 발권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달러가 세계를 제패한 상징적 사건은 전후 복구를 위한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에서였다. 여기서 세계 각국은 달러를 금과 연동한 기축통화로 삼기로 한다. 그리고 IMF같은 다자간 기구도 이때 설립되고 국제통화제도도 생겨난다. 당시의 미국은 국토의 면적, 생산성, 부에서 이미 세계최고였다. 세계경제규모1위였고, 금매장량도 세계 2/3을 차지했다. 

 전후에도 미국의 강세는 계속된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인구는 무려 60%나 증가한다. 그리고 총생산량도 같이 증대에 어느 덧 세계 경제의 25%가 미국의 차지가 된다. 이렇다보니 점차 금보다 달러가 중요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위기가 찾아온다. 베트남전쟁으로 미국은 금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자 닉슨은 금본위제를 포기한다. 닉슨의 결정으로 수많은 나라가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지속한 고정환율제를 포기한다. 미국은 1980년대 70년대에 생긴 거품을 빼기 위해 고금리를 지속한다. 고금리는 강달러를 불러와 1985년까지 달러는 다른 4대 통화 대비 가치가 무려 50%나 상승한다. 이로 인해 미국의 제조업과 농업 부문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된다. 이런 문제로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4개국 중앙은행과 공모하여 달러의 가치를 상당히 떨어뜨린다.  

 이처럼 흔들리던 달러의 가치는 90년대 클린턴 시대에 들어 공고해진다. 클린턴의 경제정책은 루비노믹스였는데 당시 재무부장관 루빈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연방정부의 균형예산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했다. 그에 따라 장기금리가 억제되고 연방정부의 지출은 채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세금 수입으로 조달되어야 한다는게 당시의 논리였다. 이로 인해 달러 우위의 정책이 계속되었고 강달러가 유지되었다. 

 이 때 시작된 강달러는 트럼프 때 까지 유지되며 세계화 시대에 공헌한다. 미국도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에 짙은 그림자를 낳게 되는데 소위 러스트벨트와 플라이오버 스테이트의 탄생이다. 이 지역들은 과거 미 제조업의 번성지였다. 하지만 강달러 정책으로 수출가격경쟁력이 사라지고 제조업이 세계화 논리로 아시아로 이전하며 수백만의 일자리와 소득이 사라져 버린 지역이다. 

 그러다가 9.11테러가 터진다. 미국은 처음으로 달러를 무기화한다. 부시는 2001년 9월 24일 테러리스트 개인과 단체, 관련자들의 미국내 자산을 동결하고 거래를 차단한다. 그리고 해외 테러리스트의 자산추적센터도 신설한다. 그리고 국제은행간통신협회 소위 swift가 있다. 이는 세계 200여개 나라의 금융회사 1만 곳에 메시지를 안전하게 전송하여 국제 거래를 하게 하는 것이다. 미는 여기도 통제하기 시작한다.

 오랜 기간 강달러로 미국은 트럼프의 집권을 허용하게 된다. 수십년간 일자리를 잃고 소득정체로 고통받으며 이민자와 아시아의 국가들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플라이오버스테이트와 러스트벨트의 지지로 인해서였다. 트럼프는 지난 수십년간 유지한 강달러 정책을 버리고 달러 약세를 유도한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기에 유럽을 비롯한 여러 우방의 우려를 낳았다. 달러 약세는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트럼프 시대에 달러는 약세였고, 재집권한 트럼프 역시 강달러로 돌아선 흐름을 다시 바꾸려 할 것이다. 

 미국의 달러 무기화는 현재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정점에 달해있다.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자 미국은 신속히 러시아 푸틴과 주요 기업, 전쟁관련자들의 자산을 빠르게 동결시켰다. 이는 쉬운일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강하진 않지만 11위의 경제규모 국가였고 자원이 많아 다른 나라들과의 교역도 많았다. 특히 유럽연합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지만 미국은 이를 자행한다.

 달러는 무기화나 기축통화는 미국의 힘에 기반한다. 달러는 여러 차례 위기와 도전을 맞았으나 모두 이를 넘어섰다. 이는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인도나 중국, 러시아 등이 달러이외의 다른 것으로 거래를 하려하였으나 이는 상당한 제한과 화폐에 대한 불신으로 도루묵이 되었다. 

미국의 경제력도 여전하나. 인구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상당한 4차산업혁명 부분의 기술우위를 보인다. 미국 자신에게도 달러는 중요하다. 기축통화이기에 미국은 자신들의 세입이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사용할 수 있다.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천문학적인 국방예산도 여기에 기반한다. 

 재집권한 트럼프는 우방의 우려와 걱정에도 미국만은 우선시하고 달러를 약세 전환하며 기업을 미국으로 유치하고 고관세를 먹이려들며 국제기구에서 탈퇴를 감행할 것이다.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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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습 - 금리는 어떻게 부의 질서를 뒤흔드는가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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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들어 금리는 철저히 외면 받았다. 저금리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가 상승률이나 경제 성장률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금리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일본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이론상 도무지 불가능해보이는 마이너스 금리마저 있었을 정도였다. 사람들에겐 나날이 폭등하고 자산을 불려주는 주식, 코인, 금, 부동산, 펀드 같은 것들이 훨씬 주 관심사였다. 도무지 어디 어디가 금리를 얼마나 더 주니 하는 이야기는 부모님 세대의 일인 것만 같았다. 돈도 마구잡이로 빌렸다. 금리가 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부채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상 최대 수준이다.  

 그러다 조금 반전이 일어났다. 코로나 19 이후, 미중 경제 전쟁과 러-우 전쟁 등으로 공급망에 차질을 빚자 세계적인 물가 상승이 있었던 것이다. 물가가 심상치 않자 미국은 매우 오래 간 만에 금리를 크게 인상했다. 물론 그 올린 금리라 봤자 종국에는 5%정도 였다. 하지만 그 정도 수치는 다른 여타 자산들의 가치를 깎아 내렸기에 모처럼 금리는 다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책 '금리의 역사'는 금리의 개념과 탄생, 역사적 역할을 살펴보고 지금의 경제를 꼬집는 내용이다. 


1. 금리란 대체 무엇일까?

 지금은 금리를 당연시 여기며 그 수치 정도가 문제지만 오래 전에 금리는 동아시아나 서아시아에서 하나의 금기였다. 이는 경제적인 측면보다 도덕적 잣대를 우선시 한 것으로 하나의 죄악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돈을 빌려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선 빌려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그런 측면에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 대한 대가인 금리는 실질적 필요성에 의해 점차 받아 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금리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다. 우선 절제에 대한 보상이란 생각이다. 그리고 레버리지의 비용이자 리스크의 대가로 보기도 한다. 또한 자연성장의 관점에서 금리를 보기도 한다. 자연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시간이 지나면 열매가 더 생겨나고 동물도 새끼를 낳는다. 즉, 지금의 토끼 두 마리가 가까운 미래에 새끼를 쳐서 서너마리가 될 수 있는 것인데 금리는 그런 미래에 대한 대가다. 실제로 고대세계에서 금리는 출산이나 동물의 새끼를 어원으로 갖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금리는 대부자에 대한 혜택의 나눔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대출한 사람이 그 돈으로 이익을 얻었다면 마땅히 그 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빌려준 사람과 나눠야 한다는 자연스런 생각에서다. 

 현대의 금리는 이런 개념들을 어느 정도 모두 포괄하고 있다. 현대의 통화정책 입안자들은 금리를 주로 소비자 물가를 조절하는 수단 정도로 파악한다. 이런 관점이기에 디플레를 막기 위한 마이너스 금리나 제로금리도 시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금리는 외환에서 나라 간 오가는 자본 흐름의 균형을 맞춰주기도 하며 책의 주장에 의하면 소득과 부의 분배에 큰 영향을 미친다.


2. 고대의 금리

 금리의 역사는 화폐보다 오래되었다. 화폐보다 물물교환이 먼저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뭔가를 서로 빌리는 일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빌려주는 것에 대한 대가는 자연스럽게 생겼을 것이다. 태초의 이자다. 

 고대메소포타미아에서는 채권, 채무자, 대출금, 상환기한, 이자 내역을 적은 점토판이 다량 존재했다. 계약의 이행과 동시에 채무의 증거인 점토판은 파괴되었기에 오늘날 남아 있는 것들은 채무 이행이 되지 않은 것들이라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용대출은 매우 많았고 이유도 다양했다. 그 지역은 부족한 원자재가 많아서 삼나무, 대리석, 구리, 석고 등을 수입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출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자를 계산하려면 시간과 가치가 표준화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자 계산이 되기 때문이다. 수메르 달력은 한 달 30일, 1년 12개월이었다. 그래서 시간, 거리, 무게, 돈과 이자는 모두 60을 기준으로 측정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복리도 개발했다. 복리로 인해 채무자는 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는 당시 지역의 사회 문제였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새로운 정부들이 들어서면서 부채를 탕감해주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 

 기원전 1750년 함무라비는 관례적인 이자율을 역사상 최초로 법문화한다. 은대출의 경우 최고 이자율을 20%, 보리는 33.33%로 정한 것이다. 다만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기에 일부 대부업자들은 짧은 기간에 최고 이자율을 적용하는 편법을 부릴 수 있었다. 

 고대 세계의 금리는 지금처럼 변화무쌍하지 않았다. 오랜 기간 고정이었다. 경제요인보다는 측정기준에 얽매였기 때문이다. 60진법을 쓰는 바빌로니아는 매달 60분의 1, 10진법인 그리스는 연10%, 12진법의 로마는 12분의 1인 8.33%를 이자율로 정했다. 

 실제 국제결제은행은 지난 100년 간의 금리는 저축이나 투자 같은 경제적 요인보다는 금본위제, 금환본위제, 브레턴우즈체제 같은 통화체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했다.금리는 고대 세계 건, 그 이후 이건 경제성장과 상관관계가 별로 없었다. 기원 후 1000년 간 세계 경제는 연간 0.01%성장했다. 하지만 그 기간 금리는 무려 6-12%에 달했다. 그리고 금리는 인구와도 상관이 없다. 인구가 증가하면 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금리가 증가할 것 같지만 역사적 연구는 인구증가와 금리는 오히려 반대방향이었음을 보여준다. 

 고대 세계의 금리는 정치와 관련이 깊었다. 금리는 대개 문명의 진로를 따라 U자형이었다. 문명이 막 시작한 후 번창할 때는 하락했다가 쇠락하여 멸망하게 되면 급상승하는 형국이다.


3. 중세의 금리, 시간과 이자의 결합

  이자는 필요와 탐욕의 결합이었다. 이자는 문명초기부터 있었는데 이는 자본이 항상 부족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들은 대출이자는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분배했다. 자본이 산업이나 무역, 생산에 묶여 있을 때 이자는 생산에 사용된 시간과 관련이 깊었다.    

 중세가 되어 시계가 개발되자 시간의 세속화가 시작디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시간의 상업적 중요성이 부각된다. 효율적인 화폐공급에 새로운 금융관행이 더해지면서 중세부터 금리가 하락한다. 1200년대 이탈리아 북부의 금리는 20%였으나 르네상스 때가 되자 제노바는 7%, 베니치아는 5%까지 하락한다. 

 시간에 가치가 부여되고 개인의 소유물이라는 관념이 확산하며 고리대금을 도덕적으로 금지하는 성직자들의 제재는 거의 유명무실해진다. 상인이 대출로 이득을 얻는다면 대출자가 그 이익의일부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즉, 이자에는 대부자를 손해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기게 되었다. 

 이처럼 이자와 시간이 관련되자 이자란 시간에 따른 화폐 가치의 차이로 현재 소비가 미래소비로 교환되는 비율이란 생각이 생겨났다. 이자가 돈의 시간적 가치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실제 이자율은 사람의 시간 선호도를 반영한다. 노인은 소득이 더 이상 늘지 않기에 시간선호도가 낮고 대출도 잘 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령화 국가에서는 대출수요가 적이 금리가 낮다. 미래의 만족은 언제나 현재의 만족과 비교해 값이 할인된다. 이자는 특정 양의 가치를 특정 시간 동안 사용한 가격이 된다. 이로 인해 돈의 시간 가치인 이자는 가치 평가의 핵심이 된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투자는 수익률이 투자자들의 시간선호와 최소한 같을 때 이뤄질 수 있게 된다.  


4. 금리의 영향

 이상적인 금리는 다음과 같다. 상품처럼 시장에서 자유롭게 빌려주고 빌리는 개인이 정하는 이자율이다. 지나치게 많이 빌리거나 적게 저축하지 않은 자본을 반드시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이자율이다. 토지와 자산의 가치를 정확히 부여하는 이자율이고, 저축자들에게 공정한 수익을 제공하고 은행가와 금융계에는 보조금을 줄 정도로 낮지 않으며 차입자에게 지나친 고통을 주지 않는 이자율이다. 

 지나치게 높은 금리는 기업의 투자를 줄인다. 채권자는 채무자를 희생시켜 부당이득을 얻는다. 자본가치가 떨어지고 노동자는 실직하며 경기가 침체한다. 채권수익률이 국민소득을 웃돌면 기존 부채가 부담스러워지고 파산이 시작된다.

 반면 지나치게 낮은 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자산가격에 거품이 생기고, 대출이 급증하며, 금융이 노력을 밀어내고 저축이 붕괴한다. 은행에 돈이 쌓여 유통속도를 늦추어 오히려 디플레를 유발하기도 한다. 초저금리는 생산성 증가를 낮추고, 자산가격을 부풀리며, 부채 수준을 높이고 저축률을 하락시키고 저축에 불충분한 수익을 주어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금융취약성을 높인다. 


5. 저금리로 인한 금융 붕괴의 역사

 로는 프랑스에서 미시시피 주식회사의 주식을 액면가 500리브르로 발행한다. 그리고 처음 몇 년간 회사의 주가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로는 발행가능한 돈의 양에 대한 제한을 철폐하다. 그러자 1719년 1년 간 주가는 20배가 상승한다. 풀린 돈은 광란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는데 물가지수가 2배 상승하고, 지폐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자 돈이 해외로 유출되어 버린다. 로는 여기서 돈을 더 찍어내어 문제를 해결하느냐 아니면 회수하느냐의 갈림길에서 돈의 회수를 선택한다. 주가는 결국 붕괴되고 90%를 폭락 후에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1826년에도 심각한 금융위기가 있었다. 남미 신생 독립국들은 금광을 비롯한 여러 투기 산업을 위해 발행한 채권투기 열풍이 일었다. 그 배경에는 금리하락이 있었다. 1825년 이전 런던으로 막대한 금이 유입되었다. 재무장관 윌리엄 로빈슨은 수익률 하락을 이용하여 미지급 정부부채를 더 낮은 수익률의 새로운 채권으로 전환한다. 금리의 감소로 고객들은 예금을 인출해 합자회사투자나 형편없는 담보로 건설업자에 직접 대츨한다. 전국에 은행이 증가했고 낮은 금리로 안전한 투자처를 빼앗긴 사람들이 해외 증권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러다 1825년 12월 런던에 맹목적 공포가 일어나 신용이 고갈하게 된다. 

 

6. 새로운 경제 질서의 탄생

 19-20세기 초반의 금본위제에서는 금은 이자율 조정 역할에 충실했다. 경제 과열로 총지출과 투자가 소득과 저축을 초과하면 금이 국외로 유출되었다. 그러면 금보유고 확보를 위해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여 사태를 되돌렸다. 반면 금보유고가 충분하고 경기가 부진하면 저금리를 유지했다. 그래서 금본위제에서는 유통되는 신용의 규제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하지만 1914년 1차대전으로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대부분 금지급을 중지한다. 결국 1922년 금본위제를 수정하여 중앙은행이 보유한 정부증권이 금과 더불어 준비금으로 수용된다. 이것이 금환본위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금리는 국제적인 금의 흐름과 무관하게 되었다. 

 금환본위제로 인해 각국의 중앙은행 총재들은 처음으로 적극적인 통화정책의 구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금리설정이 정치화한 것이다. 새로운 금융질서는 금의 절약과 소비자 물가의 하락 예방이 목표였다. 디플레이션의 회피가 주 목적인 것이다. 

 1920년대 미통화정책의 목표 중 하나는 농업 사이클로 인한 계절적 금리 변동의 억제였다. 특정 시기에 대출 수요가 몰려 돈이 고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개입은 이자율을 낮춰 투자붐을 낳아 광란의 20년대 거품으로 이어진다. 1920년대 미국의 경제는 연 8% 성장했지만 금리는 과도하게 낮아 경제성장률의 절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행히 경제성장으로 대출공급이 늘어나 생산성 향상으로 인플레이션은 억제되었다. 하지만 투기가 과잉되어 초고층건물과 폰지사기가 성행한다. 주식시장에도 돈이 쏟아져 들어와 주가도 폭등했다. 

 미국의 상대적으로 나은 이자율로 인해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었다. 그리고 외국인의 미수출상품 소비로 미국의 거품을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러다 연준은 1928년 할인율을 3.5%에서 5%로 인상한다. 이 긴축이 국제 자본 흐름을 돌려 미투자자들이 유럽에서 대출을 하게 되었다. 유럽의 미국산 상품 수입이 감소하고 신용공급이 감소하여 미경제가 위축해 붕괴가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월가의 투기 광풍에 겁이 난 연준의 긴축통화정책이 급격한 경기침체를 유도한 것이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까지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통제되고 있었다. 경제는 탄탄대로로 제 2의 경제 대국이었다. 일본 GDP는 1980년대까지 매년 5%성장했다. 1987년 협정으로 달러 약세를 위해 할인율을 전후 최저치인 2.5%까지 내렸다. 그리고 1987년 글로벌 증시 폭락으로 일본은 내수 진작과 세계경제성장을 목표로 신용조건을 크게 완화한다. 금리가 실제 성장률보다 낮게 유지되자 통화공급과 대출, 기업투자가 급증한다. 그리고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물가상승이 일어난다. 1989년 일본 중앙은행 총재인 미에노 야스시는 거품을 끄기로 결정한다. 그는 그해 3차례 할인율을 인상한다. 그러자 경기가 급격히 둔화한다. 그는 6%까지 올렸던 할인율을 1995년 다시 0.5%로 내리나 경제의 활력은 사라진 후였다. 

 1995년 이후 일본 경제는 부동산 가치하락, 부실대출을 한 허약한 은행, 자본 수익 감소, 과도한 레버리지 차이으로 기업의 부채 부담을 줄이려던 지속적 디플레이션에 짓눌리게 된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실책은 공통점이 있다. 양국 모두 처음엔 낮은 물가상승률에 경제가 탄탄했다. 물가안정에만 관심을 두고 강력한 신용성장과 투기에 무관심했다. 자국의 인플레를 통제한 상황에서 국제협력을 위해 국내통화정책을 조정했다가 호황 말기 거품이 지나치게 심해졌고 이를 통제하려고 금리인상을 단행한다. 그리고 거품 경제 붕괴 후 디플레이션을 방치한다. 

 

7. 미연준의 정책 전환

 미국은 1970년대 후반까지 인플레이션의 통제가 어려웠다. 경제성장 둔화로 사회가 불안정했고 스태그 플레이션에 빠져있었다. 1979년 말 카터는 폴볼커를 연준의장으로 임명하고 그는 통화공급량을 줄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했다. 그의 체제하에서 연방기금금리는 10%에서 19%까지 상승했다. 장기국채는 15%수익률이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경제는 살아날 수 있었다.

 1987년 주식시장의 붕괴 이후 볼커의 뒤를 이은 그린스펀은 연방기금금리를 인하하며 유동성 홍수로 위기에 대응한다. 그리고 이후 연준은 은행 차입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서 방향을 전환해 금리 자체를 목표로 삼기 시작한다. 통화정책은 이제 눈앞의 인플레이션만 통제 수단으로 다루었다.그린스펀 풋이란 용어가 있는데 이는 주식 시장이 하락할 때마다 연준이 개입한다는 월가의 불문율이다.

 그린스펀의 뒤를 이어 2002년 버냉키가 취임한다. 그는 디플레이션에 대해 선제적 공격을 주장한다. 2003년 봄 연준의 지급금리가 1%로 인하되었고 이지머니의 시대를 알리게 되었다.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통제되었다. 선진국 전역이 2000년대 초반 낮은 물가상승과 완만한 경기침체를 겪었는데 이를 대안정기라 부른다. 

 하지만 위기는 누적되고 있었는데 2006년 BIS의 수석 경제학자 윌리엄 화이트는 '물가안정만으로 충분한가'라는 논문에서 물가 안정만으로는 거시적인 경제 혼란을 회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이테크처럼 생산성 향상에서 발생하는 좋은 디플레이션과 신용 붕괴에 의한 나쁜 디플레이션을 구분하였다. 

 결국 이런 경고가 무시되어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미국에서 발생한다. 미국에서 발행한 부실한 모기지 증권을 유럽이 대량으로 사고 이것이 부실화하면서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1990년대 부터 세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목표를 정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근거 없이 2000년대 들어 그것은 2%로 정해지고 이 수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딱히 근거가 없는 이런 기계적 설정은 단기주의, 관료주의로의 자원 전환, 리스크 회피, 정당하지 못한 보상, 창의성과 혁신을 억압한다. 2%타케팅은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극도로 낮추고, 투기적인 차입과 리스크를 감수하게 하였다. 수입가격이 하락하면 중앙은행 총재들은 일반 물가 수준이 하락하지 않도록 의료, 교육, 건설 같은 비무역 상품의 가격을 부풀려야 했다. 

 결국 2008-2009년의 대침체 이후 5년이 지난 2014년에도 미국의 생산성 성장률은 역사상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게 되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를 세속적 정체라 부르기 시작했다. 세속적 정체는 미국와 유럽의 인구 증가세가 둔화하여 노동력이 고령화하고 신기술이 기존 기술보다 투자를  덜 요구하여 기존 기술보다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세계가 글로벌 과잉저축으로 인해 금리가 내려간다는 것에서 정체의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실질경제를 살피면 세속적 정체이론은 힘을 잃는다. 오히려 세속적 정체 내러티브는 경제학자들이 저축, 인구, 투자의 실질 요인에서 경제의 원인을 찾고 통화와 금융요인은 간과하게 만든다. 


8. 부채사이클과 창조적 파괴

 2013년부터 BIS 통화경제부장을 역임한 보리스는 금융시스템이 자원배분에 그치지 않고 구매력까지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보리스는 이자율이 실질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흄의 주장을 입증하고자 역사적 자료를 찾았지만 연구결과 금리와 저축, 투자, 이익, 인구와의 관련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BIS는 금리는 통화체제의 영향을 받는다고 결론내렸다. 

 BIS는 이자를 레버리지 가격으로 정의 내렸다. 그리고 부채 수퍼사이클을 제시했다. 금리가 내리면 부채가 급증한다. 그리고 더 많은 부채는 상환의 어려움 혹은 자산 가격등의 폭등으로 더 낮은 금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부채는 더욱 많아지게 된다. 이렇게 경제가 일단 부채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금리 인상이 사회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에 금리 인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초 저금리 정착의 원인이고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계의 현실이다. 

 저금리에는 자산가격이 폭등하고 그 중 하나인 부동산이 폭등해 건설로 자금이 몰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건설업은 생산성 향상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실좀비기업이 급증한다. 좀비기업은 낮은 신용으로 연명하는 기업으로 생산성 향상에 거의 기여하지 않으며 자원을 차지해 경제의 효율적 자원 배분도 막는다.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주장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가 낡고 비효율적인 것을 대체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자가 가장 유능한 고용주와 가장 좋은 과정을 채택하고 덜 유능한 고용주와 나쁜 과정의 제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자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서 효율성을 추진하는 힘이고 투자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공황도 창조적 파괴를 촉진한다. 미국의 대공황은 산업수준을 고통이었으나 산업수준 전반을 향상시킨 사건으로 이후 미국의 생산성은 크게 향상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저금리로 생산성 성장이 붕괴한다. 미국의 연간 생산성 증가율은 0.5%로 20년 전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그 이면에는 좀비기업이 자리한다. 이들은 경제전반에 생산과잉과 낮은 수익률을 퍼뜨린다. 그래서 새로운 기업의 진입이 줄어든다. 또한 신기술의 혜택이 그로 인해 감소하기까지 한다. 

 또한 사모펀드도 문제다. 이자는 금융비용의 대분을 차지한다. 저금리는 이지머니를 낳고 기업합병과 레버리지 매수가 성행한다. 그 결과 2018년 사모펀드는 1조달러에 달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들은 금융붕괴의 화약고이기도 하면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사모펀드는 수익을 빠르게 얻기 위해 단기적 안목에 집착해 회사를 사자마자 쥐어짠다. 장기적 기업 운영이나 사업전략은 그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저금리는 기업자체의 화력도 떨어뜨린다. 21세기 미국의 부채비용은 자본비용보다 낮게 유지되었다. 이러한 펀딩갭은 자사주 매입을 부추겼다. 기업이 자금을 기업발전에 투자하지 않고 자사주 매입에 쓰게 되면 주가가 상승하게 된다. 그러면 경영진과 회사는 단기적으로 큰 이득을 취한다. 하지만 그 기업자체는 실질적으로 어떤 이익의 향상이나 비전, 기술개발, 연구개발도 없게 된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6년간 미국의 가장 큰 상장 기업을은 총이익의 절반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다. 

 이런 초저금리로 금융은 결과적으로 실물 경제를 몰아내고 있다. 대출 대부분이 부동산이나 좀비기업, 자사주매입에 사용되고 기업의 효율성 개선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제조업과 연구개발이 필요한 사업은 오히려 당장의 수익성이 낮아 대출에 굶주리게 된다. 

 

9. 금융억압과 불평등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단기금리의 유지를 금융억압이라 한다. 미국은 저축률이 낮은 국가로 금융억압으로 인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저금리는 자산가격을 상승시키는데 문제는 이것이 실제로 나라를 부유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주가가 하락하면 시총 수십조가 증발했다 표현하는데 이는 가상의 심리적 돈에 가깝다. 일부 상승기에 자산을 판매하는 자산가가 거액의 자본이득을 얻을 뿐이다. 투자자 전체가 이런 거액의 자본이득을 얻는건 불가능하다. 모두 거액에 파려는 순간 자산가치는 폭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돈은 이익이 낮은 투자수익을 보이게 된다. 

 연금업계는 정부채권과 기타우량채권에 투자한다. 금융위기 이후 채권의 수익률이 크게 하락해 연금소득도 동반 하락했다. 2016년 미공공기관의 연금적자는 3조 달러였다. 연금적자의 팽창원인은 금리하락이다. 연금적자는 큰 구름이 되어 수조 달러의 지방채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모든 확정 급여연금은 더 이상 신규가입자를 받지 않는다. 모든 연금 상품은 혜택이 적은 상품으로 대체중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릴 수도 없다. 연금적자가 커서 금리 상승은 연금업계에 상당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늘어나 연금은 진퇴양난이다. 

 이지머니 시대는 불평등의 시대다. 1987-2013 전세계 억만 장자는 10배 증가했고, 이들의 전 세계 자산 점유율은 4배 늘었다. 2015년 세계 총재산의 절반을 고작 62명이 차지했다. 2018년 미국의 실업률은 반 세기만에 하락했다. 하지만 내용이 좋지 못하다. 저임금 일자리가 고임금 일자리보다 두 배 넘게 상승하며 달성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반면 의료비를 포함한 기타 생활비가 물가상승으로 빠르게 오르고 있다. 

 자산가격과 저금리로 젋은 세대는 주택구매를 못하고 있다. 2018년 미국 주택 구매자의 평균 연령은 무려 46세였다. 역사상 최고령이다. 주택은 선진국에서 빠르게 전문직의 전유물화하고 있다. 그리고 주택 가격상승으로 새로운 일을 위해 이사하는 노동자의 수가 줄어 들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사업 비용이 오르고 내부 이주가 줄면서 수도권은 밀폐형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출산하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학자금, 미미한 소득 증가, 과도한 부동산 가격으로 가정꾸리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의 출산율은 부동산 가격고 반비례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10. 새로운 불평등 공식

 토마 피케티는 불평등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입장을 거부하고 근본적 법칙을 제시했다. 그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큰 경우 불평등이 심화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책은 이를 반박한다. 불평등의 철칙은 반대로 자본수익률(금리, 이익, 임대, 배당 등)이 경제성장률보다 작을 때 일어난다. 그리고 이는 금융억압과 같다. 

 중국은 금융억압을 실시했다. 자본을 국내에 묶어 저금을 통제했고, 가계는 몇몇 대형 은행에 예금을 예치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금리가 경제성장률보다 작아 은행은 막대한 이익을 보장받고, 정부가 통제하는 기업이 저금리로 혜택을 얻었다. 가정이 피해자가 된다. 중국은 수출을 위해 위안화의 절상을 막고자 위안화를 팔고 달러를 매입했다. 이런 미증권의 대량 매입은 미국의 장기금리의 하방압력이 되었다.

 금융억압으로 중국의 은행과 기업은 연간 GDP의 3-8%의 부를 차지한다. 그리고 금융억압이 신용성장을 자극한다. 2008년 위기에 4조위안을 은행에서 조달하여 대규모 부양정책을 펼친다. 2009년 신용은 GDP의 30%에 달한다. 이 막대한 자금으로 거대 국영기업들은 과잉생산을하여 대규모 미분양 유령도시를 건설한다. 

 중국의 부동산 가치는 2016년 43조 달러라 GDP의 4배다. 중국은 도시외에도 인프라도 과도하게 건설했으며 각종 산업에도 과도한 투자를 실행했다. 그 결과 좀비기업이 크게 늘어 2016년 국제통화기금은 중국 11개 성에서 3500개의 좀비기업을 확인했다. 중국의 경제는 부채로 가득하여 은행시스템의 부채는 경제규모의 3배에 달한다. 2012년 이후 총부채상환비용이 경제성장을 넘어섰다. 즉, 성장으로 부채탕감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부실채권은 탕감되지 않는다. 국유자산 관리회사에서 이 부채를 액면가로 판매한다. 그리고 이 회사들은 국영은행에서 인수한 10년물 채권을 발행하여 대금을 지급한다. 사실상 지급 불가능한 단기채권을 장기부채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채로 인해 항상 저금리가 필요해진다. 

 서구에서도 금융억압은 자행되었다. 서구는 전후 인플레가 두 자리수임에도 국채수익률을 낮게 유지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며 부채가 탕감되는데 서구 국가들은 이런 식으로 전쟁의 빚은 제거했다. 오랜 양적완화로 정부와 각 지방의 부채가 많아지자 금리가 조금만 상승해도 큰 문제가 되었다. 때문에 금융억압은 정치의 필수조건이 되어 버렸다. 

 신용은 놀랍게도 민간이 아닌 정부가 창출하고 조정한다. 신자유주의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지금의 머니 마켓은 국채로 가득한 정부한정 펀드로 가득하다. 중앙은행은 단기 이자를 설정하여 장기금리를 조정하고 경제전망의 신용 배당에도 관여하고, 국가 신용의 최후의 중재자다. 그리고 유럽의 중앙은행은 원내의 특정 국가를 지원할지 말지도 결정한다. 사실상 권력이 선출직에서 비선출직 경제전문관료로 넘어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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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12-03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이너스 금리는 이론상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론상 명목금리가 아무리 높아도 인플레이션율이 높으면 충분히 가능하지요.

북다이제스터 2024-12-03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금리가 있는 사회가 이상한 사회고 금리가 전혀 없는 사회가 진정 바람직한 사회라고 하던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 미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망가뜨렸나
크리스토퍼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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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준비제도는 사실 중앙은행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곳은 반은 민간은행이며 반은 정부기관이다. 이는 미국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미국은 유럽의 왕정에 반발하여 생겨난 국가로 태생자체가 중앙집권을 싫어한다. 그렇기에 미국은 역사상 중앙은행을 두 번 만든 적이 있지만 단기간이었고 조건을 제한하고 기간이 지나자 바로 없앴다. 그래서 지금의 연준은 하나가 아니라 지역 연방준비은행의 네트워크다. 그래서 각 지역엔 지역 연방준비은행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전체적으로 워싱턴의 지휘를 받는다. 물론 이 연방준비은행은 전체를 아우를 필요가 강해지면서 워싱턴의 입김이 강해져왔다. 워싱턴의 연준 이사회에는 7명의 이사가 있다. 이들은 대통령이 지명하며 의회의 인준을 받는 공직자다. 이들은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기에 사실상 안건설정을 한다. 

 연준은 틍화공급과 관련한 전권을 갖는다. 하지만 이 과정을 민간은행을 거쳐서 한다. 그리고 선출기구가 아니기에 유권자의 영향을 받진 않지만 자신들의 통화 정책에 대해서 정치인들에게 설명할 의무를 갖는다. 

 연준은 단 한 가지 방법으로 돈을 창출한다. 뉴욕 연방은행의 트레이더들은 프라이머리 딜러라고 불리는 약 24곳의 금융기관들과 늘 금융거래를 한다. 프라이머리 딜러 등 은행들은 연준에 계좌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지급준비금 계좌라고 한다. 연준은 이 프라이머리 딜러들이 갖고 있는 채권을 구매하거나 이들에게 채권을 파는 형식으로 이들의 지급준비금 계좌의 통화량을 조절한다. 이 방식으로 통화량이 결정되고 금리가 결정되는 형식이다. 

 1970년대는 미국은 자산과 물가가 모두 오르는 대인플레이션 시대였다. 당시는 연준이 은행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시대였다. 은행들은 대출을 해주고 담보를 잡는데. 이 담보가 자산이 된다. 담보 가치가 높으면 은행은 더 높은 대출이 가능했다. 연준은 이를 감시하는 과정에서 담보가치가 은행이 생각하는 것보다 낮다고 생각하면 은행은 반드시 그 차이 만큼 위험을 보충하기 위해 대손충당금을 준비해야만 했다. 

 70년대 미국은 자산이 인플레되면서 은행이 잡고 있던 담보가치도 자연히 커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은행은 더욱 공격적으로 대출을 하게 되었는데 연준은 그럼에도 낮은 금리를 유지하여 사태를 키워나갔다. 금리가 낮으니 가계와 기업을 저축도 하지 않았다. 당시 연준이 이런 인플레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낮춘것은 실업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비재와 자산의 가격을 계속 끌어올렸다. 

 70년대 펜스웨이 은행은 저금리 시대에 지나치게 위험한 사업을 벌였다. 대출을 증권화하였고, 페이퍼 컴퍼니등을 동원해 갖은 금융수법으로 자기 자본금 이상의 대출을 벌였다. 결국 금리가 인상되자 도산의 위험에 처했다 연준은 펜스웨이를 망하게 두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지루하고 안전한 은행으로 생각한 콘티넨탈은행이었다. 여기는 미국에서 가장 큰 상업, 산업대출은행이었다. 콘티넨탈은 은행과도 거래가 많았는데 무려 2300곳이었다. 콘티넨탈은 펜스웨이와 거래가 많았다. 그래서 같이 위험에 처한 것이다. 콘티넨탈의 예금 중 절반 이상이 예금자보호제도의 보호대상이었다. 때문에 펜스웨이 사태로 예금자보호제도는 유례없는 압박을 겪게 되었다. 콘티넨탈마저 버릴 수 없었던 연준은 역사상 처음으로 콘티넨탈에 15억 달러를 구제금융패키지로 제공한다. 이러한 콘티넨탈 구제금융은 어떤 은행이 충분히 크고 다른 은행과 연루되어 위험을 많이 퍼뜨릴수록 연준에 의해 구제될 것이라는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된다.

 80년대 폴볼커의 고금리 시대를 지나자 어느 정도 회복된 월가는 80년대 중후반 막대한 대출과 펑펑쓰는 소비가 특징인 골드러시 시대를 경험한다. 이 시기는 기업사냥꾼의 시기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리처드 기어가 바로 이 기업사냥꾼으로 나왔다. 이들은 싼 비용으로 회사를 사들인 뒤 다른 회사와 합병 분할 후 되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미국의 90년대는 더 좋아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에도 고용이 증가하지 않았다. 이는 70년대 부터 이어진 타격으로 80년대의 고금리로 인해 그 때의 빚을 가계와 기업이 아직도 상환중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연준 의장인 그린스펀은 경제가 성장함에도 금리를 낮추어 돈을 쉽게 쓸 수 있는 이지머니 시대의 시작을 열게 된다. 90년대의 연준은 과거와 달리 인플레에서 자산을 제거하고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만 산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전과 달리 소비자 물가만 오르지 않는다면 연준은 얼마든지 통화 공급을 늘리고 금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90년대 말 그린스펀은 소비자 물가 상승없이도 경제성장을 촉진하여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90년대 내내 이뤄진 낮은 금리로 자산가격이 상당히 올랐다. 99년 S&P 지수가 19.5%상승하였고 나스닥은 무려 80%나 올랐다. 그 결과 2000년의 주식시장 붕괴가 일어난다. 3-11월 사이 280개 인터넷 주식 1조 7600억 달러 가치가 증발한다. 그린스펀은 그간 자산 인플레는 무시해왔고 막상 자산 가격이 붕괴하자 개입해서 시스템을 구제한다.

 이런 버블위기 국면 타개를 위해 연준은 지속적으로 금리를 더 인하하였고 이는 2000년대 미국주택가격상승으로 이어진다. 2003-2007년까지 미국의 주택시장은 무려 38%나 상승한다. 주식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금리를 6년 간 낮게 유지하자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다시 값싼 돈이 풍부히 흐르는 환경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작은 파장이 일어나는데 2007년 8월 프랑스의 거대은행인 BNP파비라바 주택대출에 기반한 몇몇 파생 상품의 정확한 가격에 대해 의문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은행 건정성의 기저인 자산 가치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파장이 흘러 1년 사이 미국 주택가격의 10%가 빠졌고 2009년엔 20%가 하락한다. 그 2년 사이 주택가격 하락으로 미국인은 10조 달러의 부를 상실하게 된다.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연준은 1조 달러를 찍어보낸다. 하지만 이 돈은 대부분 주택가격으로 고생하는 서민이 아니라 도산위험에 처한 은행으로 흘러들어간다. 결국 주택담보부실로 인해 미국에서 무리하게 집을 구매한 수백만 가구가 퇴거당하게 되고 이 고통은 무려 10년 간 이어진다. 2009-2016년까지 미국에서 무려 800만건의 주택 압류가 이뤄진 것이다. 

 이런 일련의 경제 혼란이 수십년 간 이어짐에도 미 정치권과 여론은 연준에 무관심했다. 사실 미국의 대공황을 극복한 것은 연준의 힘이 아니라 미국 정치권이었다. 하지만 연준이 점차 경제의 전권을 시행하면서 선출된 재정당국은 무언가를 할 유인이 작아지게 되었다. 중앙은행은 또한 잘못된 행위에 대해 정치적 책무를 지는 다른 정부기관과는 다르게 소수 경제 엘리트로 구성되었으면서도 전문성 뒤에 숨어 책임은 지지 않는 전능한 기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양적완화라는 시대에도 2007-2011년 미국에서 나온 30만건의 기사 중 오바마는 8%였던데 반해 당시 연준 의장인 버냉키는 고작 0.13%밖에 관련하지 않았다. 심대한 의사결정을 내림에도 여론의 영향을 지나치게 덜 받는 셈이었다.

 2008 금융위기 국면에서 연준은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양적완화라는 정책을 최초로 도입한다. 이는 과거의 저금리와는 차원이 다른 정책이다. 양적완화의 방법은 이렇다. 연준의 트레이더들은 프라이머리 딜러들의 채권을 매입한다. 과거 이렇게 통화량을 공급해 금리를 낮추었는데 채권의 양이 물리적 한계가 있었기에 더 나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프라이머리 딜러를 활용해 그 한계를 한참 뛰어 넘는다. 먼저 헤지펀드 회사가 미국채를 매입한다. 그리고 프라이머리 딜러로 하여금 그 국채를 연준에 팔게한다. 그리고 헤지펀드는 프라이머리 딜러가 연준에 국채를 판 대금을 다시 빌려 이걸로 또 국채를 산다.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사실상 제한없는 통화공급, 즉 양적완화가 가능해진다. 

 양적완화로 인해 금융계의 규칙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간 연준은 미국채를 매입할 때 단기국채를 주로 매입했었다, 히자만 양적완화로 인해 모든 채권, 즉 10년 만기 장기국채도 매입하게 되었다. 연준이 장기국채를 대량으로 모두 매입하자 장기국채가 희소해져 가격이 상승했고 그로 인해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이는 모든 금융주체들에게 안전하게 어느 정도 수익성을 보장하던 상품이 사라진 것을 의미해다. 금리도 제로 금리이다보니 모든 경제주체들은 수익률을 찾아 헤메게 되었고 이것이 회사채, 주식, 부동산, 미술품, 암호화폐등으로 향하게 되었다.  

 자산 가격은 그 어느 때보다 실물경제와 유리되었고 각종 위험한 금융거래가 생성되었다. 기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부채를 갖는다. 하나는 회사채로 금리와 만기가 정해져있다. 대출과의 차이점은 일반 대출은 이자와 원금을 같이 조금씩 상환해나가는 반면 회사채는 만기일전까지 이자만 지급하다 만기일에 원금을 모두 갚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회사들은 회사채 만기일이 도래하면 원금을 모두 갚기 보다는 다른 회사채를 만들어 원금을 갚고 새로 갈아타는 행위를 주로 한다. 다른 하나는 레버리지 론으로 은행이 해당기업에 맞게 직접적으로 발행한다. 그렇다보니 회사채와는 다르게 표준화가 어렵다. 

 CLO가 바로 이 레버리지 론과 관련한다. MBS는 2008금융위기 당시 주택담보부실과 같이 무너져 내렸지만 CLO는 살아남았다. 그런 잔상때문인지 이 상품은 조금 더 안정적으로 보였다. CLO는 여러 레버리지 론을 합쳐서 증권으로 표준화한 것이다. 하나의 CLO 꾸러미에는 세 등급이 있는데 가장 안전한 트리플 에이, 메자인, 에퀴티 순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위험도가 커져서 이자율은 큰 반면 원금 손실시 상환에 위험이 따른다. 

 제로금리로 수익률 추구에 떠몰린 투자자들이 이 CLO로 몰렸다. 하지만 레버리지 론은 변동금리가 적용되기에 금리 상승시에 차입자가 위험을 떠 맡는다. 하여튼 CLO는 이런 위험에도 2010년 3천억달러에서 2018년 6170억 달러로 규모가 커진다. 좋은 투자처가 씨가 마르면서 레버리지 론을 제공하는 사모펀드 같은 것들이 소위 갑이 위치를 갖게 된다. 이들은 투자자를 보호하는 약정인 코버넌트를 매우 약화시키고 차입자에거 더 큰 유연성을 주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이걸 코버-라이트라고 하는데 이것이 일반화하여 2019년엔 무려 85%까지 상승한다. 

 양적완화시대에는 소위 말하는 자사주 매입도 유행한다. 지금은 안하면 이상할 지경인데 역사상 이걸 하는 편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자사주 매입이 합법화한 것은 1982년의 일이다. 자사주 매입은 주식 수를 줄이므로 기업의 경영실적과는 무관하게 주당 순이익을 높인다. 대신 회사 여유자금을 사용하기에 회사의 부채를 늘린다. 그래서 기업의 잠재적 성장력과 재무건정성을 약화시킨다. 자사주 매입엔 대규모 자금일 필요한데 양적완화시대의 싼 돈에서는 웬만한 기업이 이를 쉽게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헤지펀드들은 어느 덧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은행 역할을 하는 그림자 은행으로 취급되기 까지 한다. 헤지펀드는 위험한 거래인 베이시스 거래를 행한다. 이는 미국채 현물과 선물 사이의 가격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채 현물을 매수 후 선물과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이득을 챙긴다. 하지만 그 차이가 미미하여 수익이 적은데 이를 횟수로 만회한다 현물로 매수한 미국채를 미국 레포시장에 담보로 내놓아 거액을 대출하여 다시 투자한 것이다. 이는 미국 레포시장을 흔드는 행위로 매우 위험했다.

 미 레포시장은 금융기관의 자금 정리를 위한 현금융통시장이다. 매일 거래를 정산하며 은행은 남는 금액을 빼고 모자란 금액을 일시적으로 채워야 했는데 그것을 위함이다. 그래서 이들은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국채를 담보로 돈을 빌렸다. 리스크가 낮은 담보이기에 레포시장의 금리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헤지펀드들의 위험한 거래로 인해 미 레포시장의 금리가 크게 뛰어오르는 일이 있었고 연준은 이를 막기 위해 레포시장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여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헤지펀드들은 큰 이득을 보게 된다.

 책을 정리하면 연준은 1980년대 후반 또는 1990년대부터 자산 가격을 인플레 요인에서 제거하고 저금리 기조를 유지한다. 이는 자산가격을 부풀렸고 자산가격은 관리를 하지 않다보니 2000년 주식 버블, 2008 금융위기, 2019코로나 위기를 맞게 된다. 이 때마다 연준 일부에서는 금리를 올릴 것을 주문했지만 반대세력이 주류였으며 이런 중요한 의사결정에 미국 정치권이나 여론은 무관심했다. 그 결과 고통스러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돈을 공급하는 미봉책을 쓰게 된다. 이는 갈수록 그 규모를 크게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다보니 유례없는 통화량을 전세계에 뿌려지게 되었다. 이는 매우 큰 불평등을 야기했고, 상당한 위험을 미래로 전가하게 되었다. 

 이런 거대한 풍선은 아직도 유지 중이다. 미 주식시장 및 코인 등 자산 가격은 유례 없이 최고치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실물경제는 이렇다하게 좋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언젠간 터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 때 저런 결정을 내린 연준의 관계자들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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