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철학하다 -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이진경 지음 / 휴(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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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제언에서 유발하라리가 말한 것처럼 종교는 인간 공동체가 만들어낸 강력한 하나의 허구로써 인간의 적응도를 높이는데 큰 공헌을 해왔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수 있게 해주었고,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그리고 삶의 목표를 제시하며 도덕적 인간공동체를 만들어주었고, 신에 대한 공동의 믿음으로 강한 결속력을 부여했다. 종교는 필요로써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와 우주를 설명해주기도 하였는데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재에 이르러선 이런 종교의 설명은 불합리한 측면이 많아졌고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부분도 사실이다. 때문에 몇몇 종교는 애써 현대과학의 성과에 대응하는 변명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나 그런 논란에서 비켜나있는 종교도 있다.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중 현대과학의 설명과 많은 부분에서 합치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불교다. 책은 그런 불교의 현대성과 미래성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처와 과학기계장치가 결합된 파격적 모습을 표지로 선정했다. 그리고 책의 저자역시 불교의 여러 철학을 설명하며 현대 과학과 이를 결부시키기도 한다.

 불교에서 시작은 공이다. 우주와 세계는 공이다. 텅비었다는 뜻인데 사실 그렇지가 않다. 양자역학에 의해 입자는 언제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어 완벽한 진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공에서 말하는 무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 무언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수많은 규정가능성을 갖는 무규정성이 된다. 때문에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모든 가변성의 바탕이고 근거가 된다.

 이런 공에서 연기가 시작된다. 무언가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관련하여 생겨난다. 따라서 연기는 연하여 일어난단 뜻으로 어떤 조건에 의하여 일어나고 어떤 조건에 기대에 존재함을 말한다. 즉, 인간이든 사물이든 절대불변의 본성 같은 것은 없으며 특정한 관계에 따라 다른 본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입자는 관찰자의 영향을 받으며 이로 인해 입자의 위치와 속도 두가지를 완벽하게 측정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또한 사람이나 사물간에는 상성이 있고, 서로 영향을 받는다. 즉, 연기적 존재인 것이다.

 다음은 무상과 무아다. 고정 불변의 진리와 존재는 없기에 모든 것은 항상 빠르게 변화한다. 같은 사람만 하더라도 세포단위에서 무수한 교류와 변화가 있으며 1년여의 시간이지나면 사람에게서 이전의 세포는 남아 있지 않다. 또한 늙어가며 다른 것과 연기해 꾸준히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한다. 때문에 무상이나 무아는 본래의 자아나 불변의 자아는 없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나나 사물은 특정한 연기 조건에서 만들어진 잠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이나 무아는 이런 내가 죽고 다른 내가 계속해서 생성되는 것이며 이것을 우주와 함께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상과 무아속에서도 열역한 제2법칙을 무시하고 생겨난 생명은 본래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다. 세계에 던져진 생명은 이런 의지로 인해 살고자 하나 세계는 무명이다. 무명이란 무상과 무아의 세계로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포착할수 없는 세계다. 하지만 생명은 살아남아야하기에 억지로 무명의 세계의 속도를 늦추고 멈추고 관찰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식이라고 한다.식은 환경과 개체의 만남이고, 반복되는 만남에 대한 지각과 포착이며 그럼으로써 발생하고 발전한 지각능력과 포착능력들이다. 인간과 다른 생명이 환경에 대해 유전자에 새긴 것들이나 지능, 그리고 사람과 생명이 만들어낸 모든 지식과 밈등은 모두 이 식으로 인한 것들이다. 이 식은 생명체의 생존과 번식에 유용한 것이기에 무지이나 반드시 필요한 무지다.

 우주의 모든 것은 연기적 존재로 서로 연결되었으며 불성을 갖는 평등한 것들이지만 식으로 인해 생명체는 경계를 만들어낸다. 이 경계는 생존을 위해 피아를 구분하는 것으로 그 경계는 사실 매우 모호하다. 숨을 내쉬며 외부가 금방 나의 내부가 되고 내부의 공기가 외부의 것이 된다. 먹이의 섭취는 다른 것을 내몸으로 만드는 것이고 배설은 나의 것을 외부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경계는 필요하고 생명체가 만들어낸 대표적 경계는 면역계다.

 하여튼 식은 호오나 미추처럼 선호를 나타내는 이차적 관념인 분별로 이어진다. 이는 이차적 관점으로 생득적인 것도 아니고 재인식이며 선별이다. 하지만 이 이차적 관념은 곧 일단 생명체에 정착되면 오히려 생각이전에 일어나고 감각보다 앞서 감지되며 이성보다 강하게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감정적인 것이어서 너무 단순하여 정확한 지각을 막고, 분별은 너무 빨라서 생각하기 전에 판단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분별은 다른 것들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든다. 이런 분별은 개인적 차원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집합적으로도 이루어진다. 분별의 척도라는 것이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분별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해진다. 연기적 존재가 본성을 거부하고 타자성을 인정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분별을 넘어서기 위해선 낯선 것과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분별하기 어려운 것과의 만남으로 분별이 정지되고 비로서 제대로된 생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을 위해 다양한 책을 읽고, 여러 사람과 세계, 견해를 접하는게 중요하다. 이처럼 분별심을 내려놓는 다는 것은 타자성의 영역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분별을 떠났을 때 비로서 어떤 조건에서 어떤게 더 나은지 제대로 분별할수 있다.

 불교는 상당히 평등한 종교인데 이런 점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성을 가진 존재로 파악하는 점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중생은 모든 인간에서 사물, 생명체와 작은 것들도 의미한다. 불성은 연기적 조건이 달라짐에 따라 다른 존재자와 현행활 도리 수 있는 잠재력인데 이게 가능한 것이 부처다. 즉, 부처는 연기법의 작용을 통찰하여 그에 응하되 내부화된 성향에 머물지 않고 그 때마다 적적한 대응의 양상을 찾아내는 능력에 보여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부처를 대하는 것이 자비이며 자비를 부처가 아닌 자에게도 행하는 이유는 모두가 잠재적 부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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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된 짠돌이 - 2년 만에 10억 자산가
이대표.김형일.하상원 지음 / 성안당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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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의 기원을 보고 스트레스 받아 본 가벼운 투자책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가벼워서 기대에 못미쳤다. 부동산에 막 관심을 갖고 좀 어린 층이 본다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좀 특이한데 짠돌이인 만큼 투자보다는 자신이 먹고 입고 쓰는걸 최대한 아껴 돈을 모으는 사람이었다. 그럼 사람이 나름 떠서 짠돌이 사이트도 만들고 온라인 강의도 하며 수익을 내는 사람이었다. 연 수입이 1억 가까이 되자(이걸로도 사실 충분한데......) 한계를 느끼고 부동산 투자를 시작하게 된다.

 계기가 된게 나눔부자란 사람이고 이 나눔부자는 경상도 일대를 투자하고, 짠돌이님이 부천일대에 투자를 시작한다. 대개 부동산 투자책이 서울이나 성남, 용인 등 버블세븐지역에 치중하고 있어 지방사례가 좀 특이하긴 한데 정작 지방투자가 상세히는 나오지 않아 지방민으로서 아쉬웠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 투자지역을 광고하는 느낌도 좀 받게되고, 하여튼 그랬다.

 책보다는 요즘 드는 생각이 과연 이 부동산이 언제까지 투자수단으로 유용한 것이란 점이다. 십년전 대세하락론을 믿었다 낭패를 본 입장에선 다시 대세하락론을 믿고 따르기 어렵다. 정의롭고 평등하며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점에선 응원하고 싶지만 말이다.

 대세하락을 하려면 인구수가 줄어들고, 경제가 하락세에 접어들어야 하며, 일본과 비슷한 길을 걸어야한다.(외부유입인구도 없고, 부동산 거품이 과도했어야한다) 그런데 그러기엔 저금리로 유동성이 너무 풍부하고, 인구는 줄지만 세대수의 증가가 이를 커버하고 있으며, 일본 이상으로 인구와 산업이 수도권이 집중하고 있고, 경제는 일본의 1인당 gdp에 육박했으나 아직 2-3%의 성장이 가능하며 통일이라는 부동산 호황을 불러올 강력한 변수도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사람들의 심리가 현 정부의 강력한 억제책에도 서울지역 부동산에 대한 강한 유인책으로 다가오고 있다. 마치 어떤 긍정적 교육정책을 쏟아부어도 입시위주로만 반응하는 교육계와 비슷해졌다할까. 특단의 외부적 충격이라도 있지 않으면 이는 돌아서기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확신은 못하겠다. 너무 많은 돈이 들고, 기회는 제한적이며 정보도 그렇다.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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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론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도덕의 발생이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최우선으로 하는 생물개체에게서 이타심이라는 것이 좀처럼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자연계는 무한경쟁으로만 채워져 있진 않다. 서로간에 가진것이 다르고 약하기에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혈연관계의 협력과 희생은 물론 같은 종간의 집단적 협력, 심지어 이종간에도 공생도 그래서 존재한다. 이들은 심지어 공진화도 한다. 물론 인간의 도덕은 공생같은 단순한 협력 그 이상의 것이다.

 진화론은 보통 호혜성이론으로 이타성의 발달을 설명하곤 한다. 물론 죄수의 딜레마게임처럼 이기심과 상대방에 대한 신뢰의 부족은 언제든지 배신과 속임수를 갖고온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협력적인 성향을 가진 개체가 장기적으로 적응도가 높음을 보여줌으로써 이타심이 보다 성공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밈이라는 개념을 고안해서 완전하진 않지만 호혜적 성향에서 지금의 도덕으로의 길을 어느정도는 연결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도킨스는 진화는 철저히 개체수준에서만 이루어지며 집단 선택이나 다수준선택은 완전히 부정한다.

 하지만 책 도덕의 기원에서는 이 집단선택을 긍정한다. 호혜성은 여전히 장기적으론 이득이지만 단기적 이득을 취하려는 배신자 문제를 덮기 어렵다. 또한 상호협력적인 성향을 가진 개체가 장기적으론 적응도가 높을 것임을 입증했다하더라도 왜 초기에 이런 개체가 협력성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도 어렵다. 거기에 진화론은 개체수준의 진화만을 이야기하지만 개체는 진화과정에서 특히, 인간처럼 복잡한 생물일수록 수많은 다른 개체의 영향과 사회문화적 상황에 놓인다. 이런 상태에서 개체만을 놓고 진화가 가능하냐는 점이다. 전부터 느낀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단순함에서 어떻게 지금의 높은 도덕수준으로 점프했는지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도덕의 기원은 이런 부분의 공백을 어느 정도 채워주는 책이다. 우선 책은 도덕을 핵심적인 근접기제로 본다. 용어가 어려운데 근접기제란 어떤 개체가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부여되는 부수적 기제다. 성공적인 번식을 위해 강한 성욕이 부여된다면 그것이 근접기제가 되는 셈인데 책은 도덕을 협력을 통해 적응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근접기제로 파악한다.

 이런 진화의 시작은 늘 그렇듯 자연의 압박이다. 책은 우선 인류와 대형유인원의 공통조상의 도덕적 초기 특성을 살피기 위해 대형유인원의 수준을 먼저 살핀다.

 

1. 대형유인원의 수준

 대형유인원에게는 협력의 황금삼각형(털손질, 먹이공유, 협동전쟁과 사냥)이 존재한다. 그래도 이들 수준이라면 철저히 계산적 호혜성 수준에서 협력이 작동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들도 막상 그렇지가 않다. 많은 연구에서는 침팬지는 자신에게 비용이 발생하고 이득이 없음에도 곤경에 처한 다른 개체를 도와주는 현상을 보였다. 거기에 털고르기 같은 협력적 작용을 하면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생물학적 체계를 갖추기까지 했다.  

 대형유인원들은 그래서 비용이 크지 않고 경쟁상황이 아니라면 서로간에 돕는다. 물론 이들의 협력의 토대는 되갚음에 기반한다. 협력성향이 있는 개체가 결국 살아남으려면 되갚음이란 강화는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협력과 공정에 대한 감각의 발생은 많은 한계를 갖는다. 우선 협력이 주로 이루어지는 사냥의 경우 조직적이지 못하다. 팀을 짜서 역할분담을 해서 사냥을 하기보다는 먼저 사냥을 시작한 개체에 따라붙은 형국이다. 즉 진정한 수준의 협력이라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보상에 대한 공정감각도 마찬가지다. 공동사냥후 먹이를 나누지만 공정성에 입각한 분배에 관심이 없다. 유인원들은 실험에서 내게 주어진 먹이의 질이 떨어질 경우에 분노하지 상대방의 먹이와 비교해 분노하진 않는다. 후진 것이라도 비슷한 것을 얻어야 분노하지 않는 인간과는 참 다르다. 인간은 부당한 대우를 당한다면 좋은 먹이라도 포기하며, 공정하다면 기꺼이 후진 먹이라도 택한다. 거기에 이들은 육식 이외에도 대부분의 열량을 개별적으로 식물로부터 취득가능하기에 협력이 의존적일 수 도 없다.

 또한 이들 사회가 철저히 서열사회란 점도 협력을 저해하는 이유다. 힘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를 당하니 도덕이 생겨날 수 없으며 협력을 요구하는 사냥이 먹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으니 강자는 더욱 다른 사람 눈치를 볼 것이 없다.

 

2. 2인칭 도덕의 시작

대충 40만년전 인류조상 주변의 환경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시기는 아마도 숲이 줄어 인간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왔어야 하는 시기와 같을 것이다. 갑작스레 적으로부터 노출되기 시작했고, 숲과 나무가 줄어 다른 대형유인원처럼 채식만으론 생활이 어려워졌다. 따라서 사냥이 필수적이었고, 상호간에 매우 의존적으로 환경이 바뀌었다.

 그래서 친족에서 시작하여, 대형유인원의 다른 개체에게 까지 적용되었던 공감의 감정이 상대방에 대한 적극적 관심으로 전환되었다. 환경변화에 의한 상호의존도의 증가때문이다. 개체들은 상대방에 대한 단순 공감에서 복지로의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상대의 복지가 나의 안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고방식도 변한다. 나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인지능력이 당연히 생겨나 파트너 간의 등가성이 대한 인식이 확립되었다. 나와 네가 입장이 같을 수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지사지의 시작이다. 또한 공동사냥과 협력을 해야했기에 공동의 목표에 종사하는 것을 인식하는 공동지향성도 생겨났다.

 이런 서로 의존적 상황과 공동목표 및 상호등가성과 인식이 생겨나자 자신과 상대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모두가 협력적이고 실력있는 파트너가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상대방이 협업에서 엉망인 경우 나는 대형유인원들 처럼 직접적 위해를 가하기보다는 강한 항의를 하게 된다. 이 항의는 상대방을 다시 파트너로 선정하지 않는 배제행위나 먹이에 대한 요구등이다. 이에 각 개체들은 자신이 배신자가 아닌 협력적 파트너임을 알릴 필요성이 생겨났고, 더욱 협력적 태도와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배신자는 생겨날 수 있기에 자기규제 인식이 생겨난다. 이는 공동헌신으로  배신행위를 할 경우 상대방이 자기를 응징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아닌 나의 비협력적 행위가 공동목표를 방해한 것에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이다. 이런 공동헌신의 경우 명백한 공통기반 기준에 따라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제재를 할 권한을 상대방에게 내준다. 우리가 잘못을 하는 경우 마땅히 상대방의 비난과 욕설을 감수하거나 국가에 의해 형사처벌 당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의 시작이다.

 

3. 객관적 도덕

약 15만년전 쯤. 그러니까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질 무렵 인간 집단은 급성장한다. 집단은 서로 성장하여 맞닿게 되었고 경쟁하게 되었다. 인간의 생존은 이제 협력적 파트너가 아니라 집단에 의존하게 되었다. 외부엔 경쟁집단이 도사렸고, 내부적으론 지식과 도구가 많아지고 분업화되었다. 개인이 집단에 철저히 의존하게 된 것이다.

 개인은 이제 내집단원들에 의존하게 되었다. 문제는 인간의 인식 능력 한계로 150-200명에 대한 인식이 고작인 인간으로썬 내집단 전체성원의 인식이 어려웠다. 이런 구분을 가능하는 것이 집단의 문화다. 이 문화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생겨나 거리가 떨어진 집단마다 다른 양태를 띄었다. 창을 만들고 던지는 법, 식사하는 법, 결혼하는 법, 인사하는 법등 이런 다른 문화양태로 개인은 내집단원을 인식하고 외집단원을 구분했다.

 이런 문화에 대한 인식과 적응은 매우 생존에 중요했기에 객관화된다. 개인이 사회에 들어가 협상하고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객관으로서 받아들여야하는 것으로 주어진다는 뜻이다. 때문에 교육은 지향성교육이 되며 주입식으로 바뀐다. 문화적 규칙은 그래야만 하는 것이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왜인지는 가르치지 않으며 왜를 물으면 화를 낸다. 인류는 이런 주어진 사회규범은 순응한다.

 그리고 평판이 중요해진다. 과거 언어가 발달하지 않아 자신의 배신행위를 다소 숨길수 있었다면 언어의 폭발로 이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나의 배신행위와 비협력을 직접 보지 않은 자까지도 나를 징벌하고 판단할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도덕적 자기관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개인은 자신의 도덕적 판단에 대해 남에게 욕을 먹기전 스스로를 검열하는 단계에 이르른다. 행동하기전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 스스로 성찰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도덕 규범에 대한 개인의 헌신을 한층더 합리화 하고 객관화한다.

 하지만 이는 완전치 않다. 개인의 도덕발달이 나 자신에서 공감을 갖는 당신, 그리고 2인칭 도덕의 대상으로서의 나와 당신인 우리, 그리고 집단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자 여러 사안에서 충돌하며 개인은 이 상황마다 도덕적 판단을 하고 행동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이를 합리화하는데 이를 톧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도덕적 정체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개인의 창의적해석에만 의존하지는 않으며 언제나 사회적 정당화에 의해서만 지지된다.

 

4. 법과 종교의 세계

이는 새로운 단계라기 보다는 집단적 도덕이 더욱 커지고 강화된 수단을 얻은 단계다. 사회집단이 문화가 필요해지고 사회규범이 생겨나면서 초기에 자연스레 세워지고 변화한 이것들을 더욱 정당화할 필요성이 생겨난다. 지향성 교육과 개인의 수용보다 더 강한 것이 필요해진 것이다. 또한 집단간 통합이 되며 다양한 문화가 섞이게 되니 더욱 커진 잡단을 내집단으로 통합할 더큰 무엇인가가 필요해진다.

 그것이 법과 종교다. 대개 내집단의 사회규범 교육에서 문화와 규범은 오래전부터 이어진 것이고 결국 이는 조상으로 수렴한다. 많은 내집단들이 조상숭배의식을 갖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조상을 더 나아가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으로 연결시킨다면 집단의 규범은 더욱 정당화된다.

 이것이 법과 종교의 시작인 것이다. 더욱이 종교는 다른 사회제도들이 처벌위협과 보상으로 강화하는 반면 내세를 통한 협력과 도덕을 강조하는 면에서 한 차원 위다. 또한 종교적 이유로 도덕적인 개인인 의무감각보다는 그 이상인 원대한 신의 목표에 귀속되어 도덕적 행위를 추구한다.

 이렇게 시작한 법과 종교의 도덕이 아직 완전치는 않지만 내집단을 넘어 인류전체 그리고 다른 생물로까지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 현재의 인간 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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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행복교육 - 학생을 살리고 시민을 깨우는 교육의 힘
정석원 지음 / 뜨인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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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북유럽을 부러워한다.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특히, 덴마크와 핀란드다. 이들은 척박한 환경과 적은 인구, 강한 적이 지척에 있는 상태에서도 높은 소득과 복지수준, 무엇보다도 행복지수가 높다. 이런게 가능한 것은 사회를 강하게 평준화하는 복지제도와 안정성,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이다.

 이 책은 이들 북유럽 4개국중 덴마크를 다룬다. 덴마크는 한때 그린란드를 포함 지금의 유틀란드 반도와 북부독일의 광활한 땅, 그리고 노르웨이를 갖고 있었다. 영국을 정발해서 노르만 왕조를 세운 것도 이들이니 한때 막강했다 할수 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나폴레옹 전쟁 중 프랑스 쪽으로 줄을 잘못서 노르웨이를 상실했고, 강해진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해 유틀란드 반도 남부의 그나마 농사잘되는 기름진 땅을 영구히 빼앗겼다.

 이런 일어나기 힘든 상황에서 덴마크 국부인 그룬트비는 다함께 행복한 사회를 건설한다. 그리고 그 기반은 교육이었다. 덴마크에는 3개의 독특한 학교가 있다. 폴케호이스콜레, 애프터스콜레, 프리스콜레다. 우리말로 하면 평민대학과 자유학교, 대안학교 쯤이 될듯 하다. 

 먼저 애프터스콜레다. 덴마크는 우리의 초중학교에 해당하는 8년의 학업후 학생들이 기술학교나 인문계 학교인 김나지움등으로 진학하기에 앞서 애프터스콜레로 진학할수 있다. 이 학교는 기숙학교로 학생들이 일이년간 공부하며 함께 생활하며 사립임에도 정부지원이 50%에 달한다. 덴마크 공립학교 학생들이 애프터스콜레로 진학하는 비율은 무려 40%에 달하며 이 마저도 점차늘고 있다. 학생들은 애프터스콜레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요리와 운동, 예능등 다양한 특기적성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진로와 자기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입장에서 보면 고교 진학전에 일이년을 쉬어가는 셈인데, 한시도 쉴수 없는 말처럼 질주하는 우리의 시각에선 매우 독특한 과정이다.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자유학기제와 자유학년제가 중학교에 도입되어 시행중이다. 아직 과정의 깊이나 일반 시민들의 반응수준이 낮지만 좋은 변화라 생각된다.

 다음은 폴케호이스콜레다. 평민학교인데 그룬트비는 이를 중시해 평민대학이라 이름 붙였다. 학업을 마친후 대학진학전이나 취업전 학생들이 많이 진학하며 주로 시골에 위치하여 지역사회에 밀착해있다. 연간 4만명이 진학하는데 이들의 인구가 600만이 조금 못미치는걸 감안하면 큰 숫자다. 단순히 적용해 한국으로 따지면 40만정도가 진학하는 셈이니 말이다. 이 학교 진학은 간단하다. 의지만 있으면 된다. 나이조건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엔 학위도 시험도 없으며 졸업장도 없다. 사회 여러계층이 모여 각 분야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는데 놀랍게도 국가정책에도 강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오일쇼크시기 원전도입 문제에서 반대 의견이 제시되었고 덴마크가 지금처럼 재생에너지 강국이 된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성인세계에 입문하기전 다시 한번 자신의 진로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는 학교이기도 하다.

 마지만은 프리스콜레다. 한국의 대안학교와 비슷한데 훨씬 진보적이다. 프리스콜레는 교육과정수립에 있어 국가 교육과정이나 다른 지역교육과정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일반시민들이 모여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에 따라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는 이를 제약하기는 커녕 지원하는데 운영 설립 첫해 학생수가 12명만 넘으며 학교운영비의 무려 75%를 지원한다고 한다. 이는 매우 활성화되어 있어 학령기 학생의 무려 15-20%가 이학교를 다닌다고 하니 그져 놀라울 뿐이다. 한국의 대안학교는 대개 학력인정이 안되고 되는 학교의 경우 국가의 교육과정 구성을 많이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다르다.

 덴마크가 행복한데는 이와 같은 교육조건 이외에도 사회의 여러조건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큰 실업급여를 받아 사회안정성이 높고 때문에 다양한 도전과 이직이 가능하다. 또한 남편의 육아참여와 육아휴가 기간이 길다. 아이들에게는 많은 놀이시간이 주어지며 수업은 대개 프로젝트 학습으로 매우 학생주도적이다. 교육의 양과 수준 또한 적정하여 깊이 있는 학습과 생활과 관련한 학습이 가능하다. 담임교사가 3년 연속으로 학생을 지도하게 되어 있어 매우 깊은 신뢰관계와 학생이해가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자신의 성인이 되기 까지 충분히 고민할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는 국가의 강한 재정지원으로 가능하다. 거의 모든 학비가 무료이며 준비기간에도 경제적 지원이 이루어진다.

 이런 사회적 요건이 받춰주니 이런 교육적 변화도 가능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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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
갈로아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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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로 배우는 곤충이후 두번째 작품이다. 전작도 놀라웠지만 이번에도 참 재밌고, 지식으로 알찬 얕보지 못할 만화였다. 누구나 동물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데 아이들은 대개 초등 3-4학년 쯤 동물과 곤충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한다. 그 시점에 압도적 스케일을 가진 공룡이란 그야말로 판타지적 존재인데 문제는 그 이후로 관심이 대부분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그렇다면 전세계 생물학 및 고생물학은 엄청 발전할텐데 말이다.(모두가 파브르는 아니다) 그래도 공룡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공룡이다.

 이 책을 통해서 이번에도 공룡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공룡의 화석은 워낙 뼈밖에 없고 생물은 연조직이 있기에 공룡의 외양을 재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기술이 발전해 털의 존재 유무나 동작이나 움직임, 소리, 심지어 색까지 최근엔 많은 재현이 가능해졌다. 티렉스는 어려선 털이 있었고, 크면서 없어졌을 거로 추정된다. 영화를 보면 공룡은 항상 압도적 사운드를 자랑하는데 최근 연구결과론 녀석들은 성대가 없어 그르릉 거리기만 했을 거란다. 티렉스는 수명이 30-40년정도인데 짧은 수명에도 유년기가 20년정도로 길다. 티렉스는 청소년기엔 성체완 다르게 랩터처럼 호리호리하고 빨라 북미대륙에서 중간포식자 역할을 했을 거로 판단한다. 자연계에 성체와 성장기에 생태적 위치가 다른 생물이 여럿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공룡은 트라이아스기와 페름기 대멸종이후 다른 생물의 멸종에서 살아남아 적응방산해 폭발적으로 진화했다. 공룡이 물도 지배한걸로 아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수룡들은 사실 공룡이 아니다. 공룡은 내온성 동물이 아니기에 물에사는 것은 불가능했던 걸로 보이며 우리가 수룡으로 알고 있는 것들은 공룡과 거리가 먼 다른 파충류다.

 공룡은 진화상 두 가지 이점이 있었는데 다른 파충류들에 비해 다리가 길고 곧게 펴져 이동시 배를 끌지 않았고 폐활량도 커서 활동에 유리했다는 점이다. 당대의 기후가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고 산소농도가 적었으며 기온도 지금보다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이점이었다. 거기에 부족한 산소보충을 위해 몸속에 폐와 연결된 여러 공기탱크인 주머니를 만들어넣었다. 오늘날 새들도 갖는 기능으로 공룡이 새의 직계조상임을 말하는 증거중 하나다.

 공룡은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당시 식물은 이산화탄소는 많아 커졌지만 질소함량이 적어 부피만 큰 저열량 다이어트 식품이었다. 공룡은 생존을 위해 풀을 대량으로 먹어야 했고 그러도 보니 자연히 크고 긴 장이 필요해 덩치가 커졌다. 거기에 몸집이 매우 크니 에너지 소모를 적게 하기 위해 목만 움직여 먹이를 섭취하려고 목이 길어졌고,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연히 꼬리도 길어졌다. 몸의 공기주머니는 중력의 부담을 덜게해 몸은 더욱 커졌다. 공룡이 커진 이유다.

 공룡은 이처럼 덩치가 컸지만 반면 알은 커지는데 한계가 있었다. 알이 커지면 자연히 알껍질도 두꺼워지는데 보기완 달리 알껍질은 세균의 침입은 막는 반면 공기는 통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두꺼워지면 통기가 안되니 알은 너무 커질 수 없었던 것이다.

 공룡은 온혈동물로 판단되는데 몇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다리가 아래로 뻗은 활동적인 구조는 온혈동물의 특징이다. 냉혈동물은 활동적이지 않다. 또한 덩치가 크고 몸이 길어 강한 심장이 필요한데 강한 심장은 온혈동물의 특징이다. 또한 공룡은 추운 극지방에서도 생존했으며 그러게 크게 성장하려면 빠른 물질대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건 온혈일때만 가능하다. 또한 냉혈동물은 많이 움직이지 않아 에너지가 적게 필요해 육식동물이 사냥을 적게 한다. 일주일이나 한달에 한번이면 충분해 육식과 초식의 비율이 1:1이다. 하지만 온혈인 경우 식사가 자주 필요해 육식과 초식의 비율이 1:30이다. 공룡은 후자다

 그런데 아니란 근거도 있다. 일단 공룡은 온혈동물로 체온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거기에 몸집이 너무 커서 과대한 내부 발열을 식히기 어렵단 점이다. 이 때문에 공룡은 적극적으로 발열하는 동물은 아닌 거대한 몸집으로 열을 몸안에 가두는 중간적 거대항온동물로 추정된다.

 우리는 공룡의 시대는 6500만년전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소혹성으로 끝난 걸로 생각한다. 하지만 조류가 공룡의 진화형태임을 감안하면 공룡의 시대는 아직도다 생물종 수로도 조류는 무려 10만종으로 포유류의 두배다. 거기에 한국에서만 매년 잡아먹는 닭이 수가 무려 10억마리다. 우린 아직 공룡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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