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중국해, 힘과 힘이 맞서다 - 교역의 중심, 동·남중국해를 둘러싼 패권 전쟁 메디치 WEA 총서 10
마이클 타이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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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뉴스에서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반감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졌는데 20대의 반감이 큰 이유로는 중국의 갖가지 역사 및 문화에 대한 자국중심주의적 해석(김치에 한복까지 기가 막히다.), 홍콩에 대한 반민주적 태도 그리고 이와 관련해 중국인 유학생이 국내에 많은 터라 이 문제와 관련해 직접 대학가에서 그들과 부딪힌 경험때문이다. 반면 중국의 경제개발로 인해 짭짤함을 같이 맛보며 성장한 중장년층은 그래도 반감이 좀 덜했다. 

 중국이 강짜를 놓는 곳은 한국 뿐만이 아닌데 남중국해가 그렇다. 바다 이름이 남중국해라고 해서 그 바다의 모든 것이 중국 것은 아닐진데 중국은 이 바다에 떠 있는 모든 섬들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지도를 보면 문제가 되는 파라셀 군도나 스프래틀리는, 파라셀은 베트남의, 스프래틀리는 필리핀의 코앞에 있는 군도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며 저자 이름도 마이클 타이인지라 동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무리수와 억지를 조목조목 비판하거나 현대적 상황에서의 갈등 및 미국과의 패권에 대해 동남중국해의 의미를 부여하는 책인줄 알았다. 하지만 책은 동남중국해의 역사책에 가까웠고, 중국의 입장을 많이 대변해주는 책에 가까웠다. 물론 설득력은 상당히 있었다. 

 책에서 역사를 다룬 이유는 동남중국해에 과거 어떤 세력이 있었고 그걸 알아야만 동남중국해의 영유권에 대한 당위성을 어디에 부여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남중국해에 산재해 있는 여러 나라들과 중국과의 과거 역사관계를 통해 동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대해 각 나라가 택할만한 입장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1. 류쿠

우선 류쿠다. 류쿠는 지금의 일본 오키나와다. 류쿠는 1609년까지 독립왕국이었고 중국에 조공하는 나라였다. 저자는 류쿠가 중국에 조공하던 시기가 가장 평화로웠다 말한다.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침략을 위해 류쿠에 식량을 요구한다. 워낙 요구량이 억지스러워 류쿠는 최선을 다했지만 요구액의 절반만 달성할 수 있었고 히데요시는 1609년 3천의 조총부대를 보내 류쿠를 점령하고 왕과 왕족들을 압송하여 굴욕적 항복문서를 받는다. 

 이후 류쿠는 일본 남부의 사쓰마번의 시미즈 가문이 통치하게 된다. 일본은 류쿠를 일본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시기가 좋지 못했다. 임진왜란으로 명나라의 눈밖에 나 교역이 여러워지자 도쿠가와 쇼군은 류쿠를 통해 중국과 교역할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류쿠의 일본화를 잠시 피하고 류쿠가 일본의 세력하에 있음을 감춘다. 

 하지만 시기가 흘러 메이지 시대가 되자 상황이 돌변한다. 1871년 류쿠의 배가 타이완에 좌초되어 30명의 선원이 현지인에 의해 참수되자 이를 핑계로 일본 막부는 청에 강하게 항의한다. 어려웠던 청은 어리석게도 타이완이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까지 하고 류쿠에 대한 영향력도 포기한다. 일은 이 사건을 통해 청에게 큰 배상금을 부여받고 류쿠에 대한 주권도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게 된다. 류쿠가 오키나와가 되는 순간이다. 

 일본은 류쿠를 오키나와로 만들었지만 그들을 극심히 차별한다. 메이지시대부터 2차대전가지 무려 60년간 많은 류쿠인들이 일본으로 일자리를 찾아 흘러들었다. 하지만 낮은 임금, 잦은 폭력, 극악한 노동조건이 뒤따랐다. 1921년 사탕수수가격이 폭락하자 류쿠인은 해외이주가 많아졌는데 1924년의 미국 이민법 재정으로 이민 길이 막히자 주로 중남미로 흘러들었다. 거기서도 일본 본토인에 의한 차별은 계속되었다.

 2차대전 당시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에 대한 최후 방어선이었다. 미군은 무려 54만을 투입했고 11만일본군이 강한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했다. 엄청난 폭격과 함정, 자살 폭격등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오키나와인 1/4가 사망한다. 전후에도 오키나와는 산업 및 생활시설이 모두 파괴되어 주민들은 2년간 미군의 캠프에 수용된다. 오키나와는 전후에도 1971년까지 미군의 점령지였으며 주둔군 지위협정으로 미군의 범죄에 시달린다. 오키나와 인들은 전후 미국이 설계한 지역에 따라 배치되었는데 농사나 고기잡이, 공동체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터전을 잃은 일부는 오키나와 외곽섬이나 일본으로 이주하게 된다.


2. 베트남.

베트남인들은 오래전 자신들을 락족이라 했고 중국은 이들을 월이라 불렀다. 베트남은 훗날 비엣이라 자신들을 부르게 되고 이게국명이 된다. 베트남은 기원전2879-258년간 지속된 첫 왕조가 있었다. 왕은 반랑이었는데 이웃군벌에 점령된다. 이 군벌은 어우락이란 나라를 세우는데 어우락이 중국 자오루이에 합병되어 버리고 기원전 111년 한무제에 나라 전체가 점령당해 무려 1천년간 중국의 지방이 된다. 

 하지만 중국화 정책에도 중국화가 되지 않았고 당의 멸망후 응오꾸옌이 중국함대를 궤멸시킨 939년 독립을 쟁취한다. 이후 4개 왕조가 들어서며 번영을 구가하지만 1057년엔 송과 4년전쟁을 하게 되고 지금의 캄보디아인 베트남 남쪽의 참파가 100여년에 걸쳐 5차례나 침공한다. 몽골의 침입도 받는데 풍토병에 힘입어 방어에 성공하나 1406년 명의 영락제에 의해 다시 나라가 망한다. 중국은 다시금 강력한 동화책을 실시하나 1408년 레러이가 10년간의 봉기끝에 다시 독립을 쟁취한다. 베트남은 자신들을 괴롭히던 참파를 정벌해 남쪽까지 국경을 확장한다. 참파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도 자행하여 베트남내 참파인은 현재 16만에 불과하다. 

 1620년 북부의 쩐과 남부의 응우옌간의 전쟁이 일어나 50년이나 지속된다. 1772년 떠이선 형제가 반란을 일으켜 남부지배체제를 뒤엎는데 성공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평등을 설파하고 식량과 돈을 재분배하는등 반향이 컸다. 1780년 떠이선은 레왕조를 무너뜨리지만 프랑스의 도움을 받은 응우옌 아인이 남부지역을 탈환하고 하노이까지 점령후 1802년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유교질서의 베트남은 프랑스 기독교를 기본적으로 위협세력으로 느꼈고 프랑스는 19세가 카톨릭 개종자를 30만으로 늘리며 세력을 확장하자 양국관계가 본격 악화한다. 1847년 다낭에 구금된 선교사 석방을 위해 파견한 프랑스 전함 두척이 배트남 공격을 받자 이를 구실로 14척의 함선을 동우너해 프랑스가 다낭을 점령한다. 25년간 양국간 전쟁이 이어지고 마침내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화한다. 

 프랑스 덕에 오랜 중국과 베트남의 원한관계가 개선된다. 프랑스 식민치하에서 1925년 베트남혁명청년협회가 결성되고 호찌민이 중베트남간 형제적 연대를 맺는다. 1940년 프랑스의 허락하에 일본군 6천이 인도차이나에 주둔하자 호찌민은 베트남 독립동맹(월맹)을 결성한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베트민이 봉기하여 독립을 선언하고 수도를 하노이로 삼지만 프랑스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기에 인도차이나의 공산화를 염려한 미국이 프랑스의 전비80%를 감당하나 프랑스는 패퇴한다. 베트남은 분단되고 호찌민은 통일을 원했지만 한국전의 경험으로 미국의 개입이 두려운 중국은 이를 저지하며 선거를 통한 통일을 주문한다.

 하지만 남쪽 정부의 응오딘지엠이 선거를 거부했고 분단이 고착화한다. 베트남전이 발발하고 소련은 미국과 중국을 고갈시키고자 베트남 지원에 적극적이었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했다. 1965년 이후 베트남 지도자들은 소련에 기울기 시작했고 이는 호치민 타계이후 더욱 본격화한다. 캄보디아에 폴포트가 집권하자 양국관계는 더욱 악화했는데 양자는 기본적으로 캄보디아의 중립을 원하면서도 베트남은 참파였던 캄보디아에 대한 우위를 원한 반면 중국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한편 파리 평화회의에서의 평화적 분위기에 베트남은 중국의 진심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닉슨의 중국방문은 결정타가 된다. 1975년 사이공 정부가 무너지자 하노이는 사회주의의 이름하에 화교소유의 대형 기업을 흡수하고 1978년에는 화교를 추방한다. 그들은 베트남 국적 취득 또는 일자리의 상실을 요구받았다. 난민은 무려 14만에 이르렀다. 

 베트남은 중국과의 해양국경 확정을 위해 중국-프랑스 조약을 이용하려 했으나 이에 따르면 통킹만의 2/3을 잃게 되는 중국이 이를 거부한다. 베트남은 폴포트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캄보디아에 침공하나 타이로 피신한 크메르루즈는 대량학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다. 아세안 역시 이 침공을 비난하고, 중국의 덩샤오핑은 징벌적 작전도 구사한다. 베트남은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소련만이 믿을 길이었지만 아프간 전쟁후 소련의 지원도 줄어들자 1989년 캄보디아에서 철수하고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해나간다. 


3.필리핀

필리핀은 무려 7천개가 넘는 섬이 있다. 스페인 이전 통합된 정치체제가 없었으므로 오래전 필리핀과 중국과의 교역은 국가간 교역이 아니었다. 9세기 부터 중국인은 중국내 입국이 금지된 아랍상인과의 교역을 위해 필리핀에 간다. 

 1571년 스페인은 마닐라를 만들고 멕시코와의 교역을 위해 중국과 교역한다. 현지인의 인구가 희박하고 문화 및 기술수준이 크게 부족해 이주한 중국인은 스페인사람들이 필리핀을 경영하는데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중국인의 수가 늘자 스페인은 이들을 진압하거나 학살한다. 

 18세기 중반까지 중국인과 필리핀 혼혈인 메스티소가 인구의 5%를 차지하고 이들은 필리핀 중산층과 민족 형성에 중추가 된다. 메스티소들은 중국인이 개종문제로 필리핀에서 쫓겨나자 이들의 자리를 차지하며 더욱 성장했고 더 독립적이고 덜 순응적으로 변해가며 필리피노로서의 정체가 생겨난다. 

 1896년 스페인에 대한 독립전쟁이 촉발되지만 장비가 크게 부족했고 두개의 파벌리 나뉘어 계속 패배한다. 이들은 스페인과 망명에 대한 대가로 보상금과 평화조약을 맺미나 미국이 쳐들어와 마닐라를 점령한다. 미국은 필리핀 저항세력에 대한 대중의 지원을 끊기 위해 민간인을 강제수용하는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여기서 30만 수용자중 1만가까운 수가 사망한다. 

 2차대전과 함께 일본은 진주만 공습후 필리핀 루손섬에 상륙한다. 일본점령군은 고의적으로 생멸을 경시해 수천명을 구금 처형하였고, 성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이 자행되고 식량과 의약품 부족으로 일본 점령기간 중 50-100만명 가량이 사망한다. 전후 미군이 돌아오지만 서방에 대한 필리핀의 시선은 좋지 못하다. 그리고 두테르테가 집권하며 이들의 친중성향은 더욱 강화된다. 


3.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최초의 국가는 푸난이다. 하지만 푸난이 몰락후 말라카 해협 주변 해양 교역이 일어나며 당연히 주변 해안 배후 지역이 강해진다. 항구 배후의 스리비자야가 수마트라 남쪽 팔렘방을 중심으로 말레이 반도를 대부분 차지하는 최초의 왕국이 된다. 스리비자야는 불교국가였지만 자바에서 발흥한 싱가사리와 마자파힛 왕국의 등장으로 쇠락하고 13세기 멸망한다. 

 이후 말레이는 시암이 차지하고 이슬람의 영향을 받는다. 스리비자야 왕국의 말레이 계승자로 말라카 술탄국이 등장한다. 말라카에는 파라메스와자라는 국왕이 등장한다. 시암의 속국으로 힘이 필요했던 그는 직접 명에 방문에 보호를 요청한다. 영락제는 이들을 환대하고 정화가 이후 방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락제 사후 해금정책을 시행하며 중국과 관계가 멀어지지만 이즈음 술탄국은 충분한 힘을 얻는다. 

 1511년 아폰수드 알부케르크가 대선단을 이끌고 인도 고아에서 말라카로 항해해 적은 병력으로 이곳으 점령한다. 말레이 술탄은 상업손실로 권력과 속국유지에 큰 타격을 받는다. 1641년 말라카의 주인은 네덜란드로 바뀐다. 네덜란드는 말라카보다는 자바섬의 바타비아가 중심이었으므로 말라카를 오히려 쇠퇴시킨다. 1786년 영국은 페낭을 점령하고 영국의 스템퍼드 래플스가 싱가폴을 세운다. 싱가폴은 번영하여 말라카와 페낭보다 번성하게 되고 인구는 8만이상이고 교역 규모도 페낭의 3배에 이르게 된다. 

 1874년에 이르러도 말랴야 연방의 인구는 30만에 불과했다. 영국이 법과 질서를 이지역에 확립하자 많은 중국인이 이주해온다. 중국인 남자 수가 현지인 수보다 금새 많아지게 되었고 인도와 실론섬에서도 노동자가 이주한다. 초기 경찰은 이 지역에서 온 시크교도가 맡았는데 그래서 말레이시아의 경찰 복장이 시크교도의 복잡ㅇ인 수염을 기른 카키색 반바지 차림이 된다. 

 19세기 말라야의 중요인물은 중국인 얌아르로 그는 친구 류임광의 뒤를 이어 콸라룸푸르에서 두번째 중국인 지도자가 된다. 그는 말레이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광산을 복구하고 불탄 경작지를 다시 세웠으며 최초의 학교를 만들고, 법을 개정하고, 6개 경찰대로 치안을 안정시키고, 도로망을 개선하고, 벽돌로 튼튼한 시설을 건축한다. 

 전후 영국은 종교적 권한을 제외한 나머지를 술탄에게서 빼앗으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이는 비말레이인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주는 것으로 말레이인에게 강한 저항을 불러온다. 온자파르가 1946년 통일 말레이 국민 조직을 결성하고1957년 말라야는 독립한다. 헌법에 말레이 인들의 특권을 명기하고 각종 법으로 말레이인은 인구대비 많은 특권을 누리게 된다. 1969년 선거에서 비말레이인 야당이 선전하자 말레이인들에 의항 봉기가 일어나 중국인 재산 약탈이 시작되었으며 한달후에는 인도인을 겨냥한 폭동이 일어난다. 이에 정부는 신경제정책을 도입한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경제적 권한을 인종적으로 배분해 말레이인들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기업가가 성장하지 못하고 족벌정치에 부패, 제도적 비효율이 발생한다. 

 1981년 총리가 된 마하티르는 중국과의 교역관계를 증진하면서 그들과 함께 남중국해 석유공동탐사에 나선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도 찬성하고 수많은 인프라 구축에 도움을 받는다. 그는 자동차 제조, 남북 고속도로 건설, 새국제공항, 쌍둥이 빌딩, 푸트리자이드 행정수도 건설에 착수한다. 외환위기시 IMF의 요구를 거절해 재정파탄을 막은 것도 그의 치적이다. 다만 그는 언론 자유를 제약하고, 사법부를 약화시키고, 술탄의 권한을 축소하고 서방에 비판적이다. 중국과 말레이는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4.남중국해 갈등의 역사

남중국해에는 파라셀, 스프래틀리, 플라타스라는 3개의 군도가 있다. 중국은 기원후 1세기부터 파라셀군도와 접촉한다. 이 군도에 대한 언급은 삼국시대 남주이물지에 나온다. 10세기에서 15세중반까지 중국은 500년간 해상활동을 활발히 하는데 남중국해는 중국의 교역을 위해 사실상 호수 역할을 하게 된다. 남송과 원이 교역에 적극적이었지만 원대에 이르러 해금하게 되어 청대까지 남중국해는 중국역사에서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외세의 침입이 남중국해로부터 시작되자 중국인은 남중국해를 교역을 방해하는 섬이 많은 지역에서 자신들의 본토를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인식을 전환하게 된다. 

 중국은 1884-1885 중국 프랑스 전쟁에서 처음으로 남중국해 섬들에 대한 주권을 주장한다. 1932년엔 프랑스가 파라셀, 스프래틀리군도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했고 1938년엔 일본이 이를 점령하고 타이핑 섬에 잠수함 기지를 건설한다. 1941년 일본은 이지역을 타이완의 일부라고 주장했고 1945년 카이로 포츠담선언에서 중국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 파라셀 스프래틀리 군도에 주둔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낸다. 1950년 국민당 정부가 내전에서 패하자 국민당은 파라셀과 스프리틀리에서 철수하고 1954년 프랑스가 디엔비인비전투에서 패배하고 베트남에서 철수하며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 주장을 완전 철회한다. 1956년 하노이는 파라셀 스프래틀리를 중국 영토로 인정하나 사이공 정부는 파라셀 스프래틀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수비대를 배치한다. 1974년 사이공은 스프리틀리에 정착민을 입식하지만 중국군이 베트남 군을 물리치고 파라셀 전체를 장악한다. 1979년 통일로 입장이 하나가 된 베트남은 초기 입장을 바꾸어 남중국해 모든 섬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한다. 한편 필리핀은 1974년 스프래틀리 5개섬을 점령하고 타이핑섬을 제외한 모든 섬이 무주지이므로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모든 섬이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중국은 스프래틀리 영유전쟁에 가장 늦게 뛰어든다. 스프래틀리의 44개 섬은 모두 인간이 점령했는데 베트남이 25개, 필리핀이 8개, 중국이 7개 ,말레이시아가 3개, 타이완이 1개다. 

 댜오위다오는 9개의 무인도 열도다. 과거 중국 명의 문헌에 댜오위다오가 등장하며 중국인은 교역을 통해 오래전부터 섬의 존재를 인식한 반면 일본이 주장하는 센카쿠라는 명칭은 과거 어느 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19세기 들어서야 오키나와 총독이 댜오위다오에 대한 국가 표지건설을 주문한 수준이다. 일본은 댜오위다오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19세기 이전까지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타이완을 포기했지만 센카쿠는 명문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땅이라 주장한다. 거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논리와 같은 수준이다. 


5. 중국의 입장은

책은 중국의 입장을 대변한다. 중국은 전성기인 청왕조 시절이후 무려 180만km2의 영토를 상실했다. 중국은 1949년 이전 까지 1천개가 넘는 조약과 협정강요에 시달렸고 이를 통해 영토를 잃었다. 책은 중국이 한치의 땅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무리하게 영토협정에서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의 권익을 많이 포기하면서도 타협을 선호했음을 보여준다. 실제 중국은 여러 역학이 작용하긴 했겠지만 과거 서구에 빼앗긴 본토인 마카오와 홍콩도 시간이 지나서 자연히 돌아올때까지 기다리는 우직하고도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다. 

 책은 그리고 중국은 영유권 주장에 겁먹고 비방하는 서구세력을 오히려 비판한다.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러시아, 미국은 상당히 넓은 배타적 경제수역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인구가 6억에 불과하지만 경제수역이 5400만km2에 이르며 중국은 고작 90만km2에 불과하다. 중국의 것은 모두 앞마당에 불과한데 비해 이들의 것들은 3/4가 모두 본토와 멀리 떨어진 지역이다. 즉, 식민지 시절 발견에 의해 영유를 주장하고 그 이익을 자신들만 누리는 형태라는 것이다. 그럼녀서도 자신들의 행위는 보지 못하고 중국의 행위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온당치 않게 여긴다. 책은 더 나아가 배타적 경제수역 개념을 없애고 모든 나라가 바다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책을 보면서 동남아시아 지역의 어렵고도 모른는 역사와 중국의 무리해보이는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었다. 남중국해는 해외 보급에 의존하는 중국에 반드시 필요한 경로이면서도 과거 식민침탈로 상실한 경험이 있어 더욱 강하고 뼈아프게 다가오는 지역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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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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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폰스 무하의 그림을 처음 본것은 책 '시대를 훔친 미술'에서였다. 20세기 초반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상의 변화로 다양한 미술 실험이 일어날 때인데 시대에 맞지 않는 정말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을 멋진 일러스트레이트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 알폰스 무하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주요 광고와 포스터에 일러트스레이트를 그려넣었다.

 무하는 체코 사람이다. 태어날 당시엔 체코가 없었고 아마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그는 어릴적 바로크 양식의 교회에서 음악 활동을 했는데 이 경력은 그의 활동과 예술에 영향을 꾸준히 미쳤다. 

 무하는 모라비아의 시골에서 벗어나 빈으로 향한다. 빈에서 무하는 두 가지를 얻었는데 우선 극장과의 만남이다. 공방의 일로 극장을 드나들면서 무하는 새로운 영감과 원천을 얻어 극적 표현방법에 눈뜬다. 다음은 한스 마카르트와의 만남이다. 당시 빈을 주름잡던 그에게 무하는 신화화와 역사화에 깊은 관심을 얻게 된다. 하지만 빈에서의 생활은 잠시 극장의 화재로 무하는 일감을 상실한다. 풀리지 않는 인생에 무하는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미쿨로브라는 곳에 머물며 우연히 마을 사람들의 초상을 그리며 연명한다. 곧 지역의 대지주 쿠엔벨라 백작의 눈에 띄어 후원을 받게 되고 뮌헨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후 파리로 향하게 된다. 

 파리에서 무하는 민족주의자들과 계속 교류하며 체코의 민속 미술에 대해 사회적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나비파 화가들과의 교류에서는 신비주의적이고 비의적인 관심을 고조하게 되며 초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관심도 커지게 된다. 한편 무하는 백작의 후원에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자 백작은 무하에 대한 매달 200프랑의 지원을 끊는다. 생계가 어려워진 무하는 아카데미를 그만두고 일을 시작한다.

 일감을 조금씩 얻어 일러스트레이터로 명성을 얻어가던 무하에게 당대 최고 배우 사라 베르나라의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 의뢰가 들어온다. 무하는 이를 성공적으로 그려내고 큰 성공과 명성을 얻는다. 1896년 사라 베르나르가 인쇄업자를 샹프누와로 옮기자 그들과 함께 장식 패널, 달력, 엽서등을 선보이며 소위 무하양식은 완성하게 된다. 

 무하는 특유의 양식과 더불어 광고주와 소비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잘 파악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성공요인이었다. 실제 이당시 무하의 광고 포스터나 그림들은 지금의 현대적 광고 모델들이 취하는 포즈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무하의 작품엔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당시는 세기말로 팜므파탈이 유행했는데 무하의 여성들은 그와 달리 고운 살결에 풍성한 머리칼, 몸체를 이루는 풍만한 곡선에 우아한 의상, 잘 꾸며진 실내와 화려한 악세사리가 어우러져 예의단정하면서도 우아한 고품격의 매력을 풍긴다. 

 무하는 독일 역사의 여러장면과 일화 작업을 통해 역사 삽화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무하는 슬라브민족으로 게르만의 작업을 할것인지에 대해 고민했으나 게르만의 호전성이나 공격성을 드러내는 대신 그들의 지적, 정신적 공적에 주목하고 체코인들이 그들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과 사건을 부각시키며 작업을 수락한다. 그의 역사 삽화는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했는데 이는 의상, 소품의 사실적 묘사와 극장 경험에서 우러나온 극적 연출때문이었다. 

 삽화가로서 무하는 글과 그림의 조화를 중시했다. 1894년 루티와 함께한 연속된 끈의 꼬임처럼 상징적이고 양식화된 표제양식은 무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52부 한정판의 일세에서는 132개에 달하는 무하의 삽화와 장식적 표지가 있었다. 무하의 이런 삽화는 중세의 필사본을 연상시키면서도 매우 현대적인 면이 있었다. 

 무하는 프랑스를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지만 고국 체코로 돌아간다. 그는 그의 대표적 슬라브 서사시를 시작한다. 무려 20년 작업으로 슬라브 민족의 역사중 20개의 장면을 선정했다. 5개는 알레고리적 테마로 5개는 전쟁 5개는 종교 5개는 슬라브 문화였다. 그리고 이들 중 10개를 체코의 역사에서 그리고 나머지 10개를 다른 국가의 슬라브 역사에서 채택했다. 무하는 작업을 위해 서보헤미아의 즈비로흐성을 빌렸고, 캔버스를 팽팽히 하기 위해 거대 금속틀을 제작했으며 유화의 어려움을 경험해 템페라로 작업한다. 작업기간은 1차 대전중으로 재료 수급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무하는 1926년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하고 후원자 크레인과 전시회후 이를 체코정부에 기증한다. 

 무하는 서사시 완성후 길고 폭이 넓은 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흰두건을 한 여성을 많이 그려낸다. 삶의 경과에 대한 상징으로 보인다. 세월히 흘러 나치독일에 프라하가 점령되며 슬라브를 중시하는 무하는 나치 당국의 경계대상으로 체포되어 심문당한다. 심문의 여파인지 그는 1939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는 체코가 공산화하며 민족성과 애국주의에 대한 경계로 오래도록 묻혀지내가 무하의 아들 딸의 노력으로 점차 빛을 발하게 된다. 1998년 무하의 상설전시관이 건립되고 작품도 항상 전시되게 된다. 무하의 파리에서의 양식은 아르누보 양식으로 미술과 삶이 결합해 주변 환경에 총제적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의 예술이 보기 쉽고 아름다우며 상업적인 부분과도 결합할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나와도 성공할 일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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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6-16 1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셩격도 좋고 후배들에게도 잘하고 마음은 따뜻했고 실력은 천재였고. 자신의 노하우를 모두에게 공개하고. 예술계의 사기캐 아닙니까 ㅎㅎ *^^*

닷슈 2021-06-16 20:37   좋아요 2 | URL
책에도 나오긴 하는데 후배들 챙기고 매일 파티하느라 그렇게 성공하고도 돈을 못 모았더군요. 말년에 나치에 당한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레이스 2021-06-16 1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았던 책입니다

닷슈 2021-06-16 20:37   좋아요 2 | URL
무하 단독 책은 처음 보았는데 좋았습니다.
 
학습자 주도성, 미래교육의 거대한 착각 - 교사 없는 학습은 가능한가?
경기도교육연구원 기획, 남미자 외 지음 / 학이시습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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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의 흐름은 과거 존 듀이 시절의 개별화에서 산업화 및 대중화 시대의 보편화, 그리고 4차산업혁명시대를 목전에 두고 다시 개별화의 방향 가고 있다. 이는 개별화가 교육 본연의 목적 달성에 합당하고 AI 및 빅데이트등의 과학기술발달로 학생의 자율과 선택에 기반한 개별화 교육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학생의 자율과 선택은 필연적으로 학습자 주도성의 개념과 맞닿는데 과연 이 방향이 맞는지에 대한 딴지를 건게 이 책이다. 사실 딴지를 걸었다기 보다는 제대로된 학습자 주도성을 위한 방향설정과 철학을 갖춰야 한다는게 책의 골자다. 

 책은 먼저 한국 공교육을 꼬집는다. 한국의 공교육은 능력주의를 최우선으로 한다. 때문에 개별학생의 자율과 선택을 보장하되 그 결과 역시 개인의 문제로 귀책하게 된다. 때문에 능력주의는 정의로운 것이 되며 교육은 계층 이동의 수단이자 도구, 신화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공교육은 필연적으로 공적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지배권력 강화수단의 도구가 되며 개인에게 모든 것이 귀책되는 고도의 불안속에서 오히려 개인의 사적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된다. 

 한국 교육이 이렇게 방향타를 잘못 잡게 된데는 우선 5.31교육 대책이 있다. 5.31교육 대책은 김영삼 정부 시절 이루어진 것으로 한국 교육과정은 크게 바꾼 7차교육과정을 낳은 대책이다. 당시 이 대책은 학습자 중심으로의 전환을 대대적으로 명시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강조했던 자율은 그간 정부에 의한 획일 및 타율로 강조되던 교육의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는듯 했으며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의 전환도 이때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5.31 교육대책은 당시 김영상 정부의 신자유주의 기조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자율은 사실 교육적 자율이나 학습자 중심으로의 전환보다는 규제완화에 가까웠으며 경제적 개념인 수요자 중심 교육, 교육 소비자등의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어 교육현장을 어지럽히는 개념들이 이 당시 도입되었다. 즉, 학습자 중심으로의 최초 방향전환의 기저에 경제적 논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어진 OECD의 영향도 마찬가지다. OECD는 경제협력모임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새 전 세계 교육현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교육정책들을 개발해내고 있다. 우리 언론이 매년 떠드는 PISA도 이들의 작품이다. OECD는 경제기구에기에 필연적으로 그들의 교육정책은 경제적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즉, 인간을 인적자원으로 이해하고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교육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전세계에 도입된 역량중심교육도 그러한 기저에서 탄생했다. 1997-20089데세코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역량중심교육은 향후 새로운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성장과 자본축적을 담보할 새로운 인간자본형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등장한 개념이다. 게다가 OECD는 언급한  PISA의 개발로 여러국가의 교육을 비교할 단일기존을 개발함으로써 더욱 깊이 여러 나라의 교육에 관여할수 있게 되었다. 교육의 시장화가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맥락하에서 학습자 중심의 원리는 수요자 중심의 원리로 대체되게 된다. 학교는 시장화되고 학교별로 공개되는 성적 등의 지표가 수요자인 고객이 학교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이런 맥락하에서는 개인 학습자에게 학습의 권한을 이양하는 자율은 학교와 개인이 자신의 운명에 책임을 져야하는 채무성의 개념으로 다가오게 된다. 학교와 개인은 무한 경쟁사회에서 스스로에게 생긴 문제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관리, 자기 경영 능력을 갖춰야하며 교육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할 책임 또한 단위학교와 개인에게 전가된다. 학교의 교사에게도 교사 책무성이 이러한 방향으로 강화되며 이로써 교사는 고립되고 단절된 교직문화에 빠지게 된다. 교육에 대한 회의감과 교사 정체성에 대한 불안이 야기된다. 이런 상황에서의 학생 선태권은 자신의 삶을 위한 유의미한 선택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오히려 선택을 위한 부모배경과 정보력이 무척 중요해지며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결과적으로 교육의 시장적 기제는 계급 양극화 된 사회를 고착화하고 불평등 구조를 심화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학습자 주도성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책은 주도성은 개인이 자신의 세운 삶의 방향성에 따라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역량 또는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주도성은 자유의 개념이 내포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의 응답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자 소중이 여길만한 삶을 영위하는 역량이 된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실질적 자유의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사러 다른 고유성을 지닌 개인들이 고유한 차이 속에서 함께-서로-존재 함을 의미한다. 즉, 실질적 자유는 제약이 없는 자유와 달리 가치와 윤리를 전제로 한다.  

 때문에 공교육은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전제하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개별성과 독특성을 발현하면서도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 것이된다. 또한 개별학습자가 자신의 고유성을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발현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가는 사회적 존재로써 총체적 잘 살기를 하도록 실천하는 책임성 있는 시민이 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육을 담아내는 교육과정은 현재 학습자의 수준과 능력에 맞게 구성되어야 하되 낯선 세계와의 만남에서 오는 어려움 또는 지루함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교육이 교사, 또래, 중요한 경험과의 관계 맺기이므로 이를 중시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디지털 기술 위주의 학습자 주도성을 강조한 개별화 교육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디지털 기기에 의한 개별화 교육은 배움과 학습자간에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또한 디지털 플랫폼에 의한 학습은 성공적인 경우엔 괜찮지만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이 학생에게 있는지 아니면 이를 활용해 지도한 교사에게 있는지 애매하게 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개별화 교육은 다른 문제점도 내포한다. 우선 학습자의 개별 특성을 양적 지표로 세분화하여 학습자의 특성을 파악할 있다는게 교육의 전제인데 이 경우 질적 특성과 정보가 배제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알고리즘에 의한 학습의 진정성도 부족해진다. 알고리즘 자체의 문제도 또 있다. 알고리즘은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설계과정에서 얼마든지 객관성은 사라지고 설계자의 주관이 강하게 반영되며 이로 인해 특정 집단 차별의 가능성도 생겨난다. 또한 개별교육으로 사회적 관계 맺기가 어려우며 책임의식의 양성이 어렵다는 점도 거론된다. 

 이런 점 때문에 책은 학습자 주도성을 올바르게 정의하고 고찰하며 최근의 흐름인 디지털 플랫폼, 인공지능, 빅데이터에 의한 개별화 교육을 맹신하지 말것을 당부한다. 또한 학습자 주도성이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발현되기 어려운 만큼 교육 전문가인 교사에 의한 올바른 접근및 지도가 이루어질때 자신의 배움을 개쳑할 용기가 생겨나고 비로서 교육적 환경과 다양한 선택에 의한 학습자 주도성이 가능해진다. 

 책은 학습자 주도성에 대한 여러 교육집단의 생각도 드러내었는데 재밌었다. 학습자 주도성발현 촉진 요인으로 초등학생은 사고의 촉진상황, 분명한 목표, 권위 있고 신뢰할만한 교사, 다른 생각에 대한 여지를, 중고생은 분명한 목표, 정서적 지지, 평등, 소통과 존중의 환경을 초등교사는 단위학교의 자율성 보장, 정책적 경인, 혁신교육의 보편화, 교사 학생간 관계의 교차성을 중등교사는 교사별 교육과정 구성과 절대평가, 교육과정 유연화,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 풍토, 교사저문성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연구자집단은 교사의 학습동기 설계, 학습 계열의 개방성, 교사권위와 신뢰감, 학생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꼽았다. 

 반대로 학습자 주도성의 저해 요인으로는 초등학생은 정답이 정해진 수업, 강압적이거나 지나치게 친구같은 교사, 피곤함 배고픔등 신체요인, 산만한 분위기를 중고생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수업, 너무 높은 목표, 소통의 부재, 노력의 배신을 초등교사는 주도성에 대한 오개념, 교사의 고정 관념, 정책의 획일성과 폭력성, 사회불안과 불평등을 중등교사는 경쟁적인 교육문화, 주도성에 대한 오개념, 입시와 직결된 평가, 교사의 재량권 부족을 연구자들은 기능을 상실한 평가, 경쟁적인 대학입시제도, 분절적 교육과정, 교사의 전문성 부족을 꼽았다. 

 책은 잘못오해되는 것처럼 학습자 주도성과 교사는 서로 반대개념이 아니며 학습자 주도성의 달성을 위해 교사의 적절한 교육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경제적 개념에 오염된 교육계의 개별적 선택 위주의 방향도 꼬집었으며 디지털 플랫폼에 의한 개별화 교육의 문제점도 잘 드러내었다. 실제 조사결과 학교 급을 막론하고 학생들은 교사변인을 학습자의 주도성을 발현하고 촉진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결국 미래시대의 학습자 주도성에느 교사의 학습자 주도성에 대한 올바른 철학과 인식을 토대로 한 교육과정 설계 및 개입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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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6-11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기주도 학습’이 어느날 뚝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큰 역사적 배경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OECD가 교육정책까지도 개발하여 강요하는군요... 무서운 놈들... ㅠㅠ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왜 점점 산으로 가는지 조금 이해될 것도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닷슈 2021-06-14 14:12   좋아요 1 | URL
OECD는 무서운 놈들이긴 합니다만 어느 정도 맞는 교육정책을 만들긴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혁신교육도 이걸 받아들이긴 한 거죠. 하지만 말씀 하신 것처럼 그들 본연의 목적을 항상 알고 교육이 수단화 되지 않도록 경계하긴 해야 합니다.

붕붕툐툐 2021-06-11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사에게는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고, 저에겐 뜨끔한 부분도 있네요~ 궁금했는데 넘 잘 요약해 주셔서 한 권 다 읽은 기분이네요~ 감사합니다!

닷슈 2021-06-14 14:13   좋아요 1 | URL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등이신지 초등이신지 궁금하군요.

붕붕툐툐 2021-06-15 00:50   좋아요 1 | URL
전 중등이에용~ 고등학교에 있습니다. 닷슈님은용?

닷슈 2021-06-15 07:23   좋아요 1 | URL
전 초등입니다

붕붕툐툐 2021-06-16 00:26   좋아요 1 | URL
훌륭하십니다~👍👍
 
노화의 종말 - 하버드 의대 수명 혁명 프로젝트
데이비드 A. 싱클레어.매슈 D. 러플랜트 지음, 이한음 옮김 / 부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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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죽는다. 너무나 오랬동안 그래왔기에 이는 매우 당연한 진리처럼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간혹 죽음을 초연히 여기거나 마땅히 받아들여야하는 순리처럼 여기기도 한다. 한 때 미래과학기술의 발전과 관련한 독서토론을 하면서 사람이 꼭 죽어야 하는가? 영원히 살게 되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생보다 죽음을 선호했다. 다들 건강하게 남들 정도 만큼은 오래살고 싶어하진 했지만 영생은 마치 하면 안될 것 같은, 그리고 무척이나 끔찍한 것이며 인생을 의미없게 한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었다. 죽음에 대한 이런 반응은 어느 집단에서나 마찬가지 일 것 같다. 

 이쯤 되고 보면 인간과 다른 생물들은 죽음을 육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받아들이게끔 설계된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곤 한다. 죽음을 극도로 거부하는 진화한 생존기제들을 강하게 갖고 타고났지만 막상 죽을 때가 되면 이를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정신적 기제도 같이 진화한건 아닌지 한다. 

 사람은 왜 죽어야할까? 아마도 앞선 개체들이 죽는 것이 진화에 필수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앞선 개체가 죽지 않는다면 아마도 번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죽지 않으니 영원한 DNA 보관 그릇이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 번식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번식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든다. 생식기관을 만들고 보존하고 운영해야 하며, 유성생식인 경우 성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개체가 영생하는 상태에서 번식하면 그 종은 가까운 시일내에 강한 환경압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부모세대가 죽으며 자연히 자녀세대가 그 서식지의 자원과 짝짓기 대상을 차지하게 되는 것인데 부모세대가 영생하며 남아있다면 자라난 자녀세대와 치열한 경쟁관계에 놓이게 될 것이다. 부모세대가 영생한다면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그런 경쟁 대상인 후손을 낳을리 만무하다.  

 때문에 영생을 하는 개체는 번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데 문제는 번식하지 않으면 진화도 없다는 것이다. 이미 완성된 개체는 유전자가 변형하지 않아 변이하지 않는다. 변이는 번식에 의해서만 생기는데 번식하지 않으면 돌연변이도 없을 것이고, 그 돌연변이중 우연히 주변 환경에 맞아 적합도를 높이는 진화한 새로운 형질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즉, 영생은 진화자체를 막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생물은 당연히 진화, 즉, DNA의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전달을 위해 다소의 변이를 각오하면서도 앞세대의 죽음을 전제로한 번식과 진화를 택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영원히 업그레이드 하지 않는 프로그램보다는 꾸준히 업그레이드 하는 프로그램이 당연히 훨씬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소 어이없게도 진화는 죽음을 전제로 하면서도 정작 생물의 유전인자에는 생물을 죽으으로 이끄는 유전자가 없다. 일정시간 생존하고 나면 반드시 발현해 생물을 죽이는 그런 유전자가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생물의 죽음은 시한폭탄이 터지는 느낌보다는 시스템 전체가 조금씩 붕괴해 어느 한 부분이 임계점에 달해 다른 부분마져도 억지로 기능이 멈추어져 전체가 죽게되는 것에 가깝다. 심장이 멈췄다고 다른 부분이 죽는 것은 아니며 심장의 멈춤으로 인해 다른 부분에 혈액이 공급이 되어 죽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책 '노화의 종말'에서는 이런 인간의 죽음을 어떻게 하면 현 시점에서 가장 늦출 수 있는지, 그리고 언젠간 노화가 질병으로 규정되고, 미래의 과학기술로 인해 인간이 죽음에서 완전히 탈피할수 있을 미래를 그린다. 


1. 생존회로

40억년전 열수분출구 옆에 물웅덩이가 있다. 행성 표면은 운석이나 혜성에서 온 유기분자가 표면을 뒤덮고 있었고 이 물웅덩이엔 이 유기분자들이 있었다. 일반 표면이었다면 그냥 분자상태였겠지만 이것들은 열수분출구 옆의 웅덩이에 있는지라 열로 인해 녹았다고 가장 자리에 말라 붙곤 하며 특수한 화학과정이 진행되었다. 

 이것이 핵산의 형성이다. 그리고 핵산이 농축되면서 중합체를 형성하였고, 이 중합체가 RNA로 DNA의 선구물질이다. 이 핵산가닥은 유전물질이 되었고, 이 유전물질이 지방산에 감싸지며 일종의 미세한 비누방울처럼 되었는데 이 비누방울이 최초의 세포막이 된다. 이 세포들은 주위 물질이 당연히 충분히 않았으므로 경쟁이 시작된다. 당연히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생존매커니즘이 진화하였는데 이것이 유전적 생물매커니즘의 탄생이다.

 이 매커니즘에서는 유전자 A가 탄생한다. A는 환경이 안 좋을 때 번식을 멈추는 관리자다. 그리고 유전자 B가 탄생한다. B의 역할은 침묵단백질을 형성하는 것이다. B는 상황이 안좋을 때 유전자 A에 달라 붙어 유전자를 끈다. 즉 상황이 않좋으니 A를 꺼서 번식을 멈추고 생존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B에는 이후 하나의 기능이 추가되는데 DNA를 수선하는 기능이다. DNA가 손상되면 B는 A떠나게 되고 DNA를 수선하는 동안 생식과 번식활동을 중지한다. 저자는 이 생존회로가 바로 노화의 원인이라고 본다. 


2. 노화이론

노화이론은 꾸준히 발달해왔다. 1930-60년대에는 돌연변이의 축적에서 원인을 찾았고, 1963년 이후에는 오류 파국 가설로 유전자 복제과정에서의 오류축적을 노화의 원인으로 보았다. 1970-1980년대에는 짝이 없는 자유라디칼이 산화를 일으켜 유전자를 손상시키고 이 자유라디칼이 많은 미토콘드리아가 주로 손상되어 노화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지금도 인기가 좋은 항산화물질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하지만 책에서는 노화의 원인은 바로 정보의 상실이라고 본다. 생물은 두 종류의 정보를 갖고 있으며 양자는 부호화 방식이 다르다. 우선 DNA인데 여기에는 디지털 정보가 사용된다. ATCG 4진수의 디지털 코드가 이것이다. 다음은 아날로그 정보로 후성유전체에 이용된다. 후성유전체는 수정 후 발생하면서 주변 환경에 따라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체로 이 부분이 아날로그 정보를 이용하는 것은 유연하게 환경에 적응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정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손상이 잘 일어나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노화의 원인이 된다. 

 생물에겐 앞서 언급한 생존메커니즘 유전자 B에 해당하는 것으로 서투인이 있다. 서투인은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번식 대신에 개체의 생존에 치중한다. 당장 에너지를 아껴 허리띠를 조이고 당뇨, 심장병, 알츠하이머, 골다공증, 암 등의 주요 질병으로부터 몸을 지키라 명령한다. 만성적 과잉염증을 억제하고 세포 죽음을 예방하며 미토콘드리아까지 활성화한다. 실험에서 생쥐에게 서투인을 활성화시키자 DNA수선이 활성화하고, 기억력과 운동지구력이 올라갔으며 많이 먹었음에도 비만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투인에겐 또 다른 역할이 있었으니 후성유전체로써 다른 유전자가 발현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역할이다. 서투인은 일인 이역을 하는 셈인데 여기서 노화로 이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개체가 오래살면서 주변의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DNA 손상이 잦아지면서 서투인도 바빠지게 되는데 서투인이 수선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후성유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몸의 여러부분의 세포가 정체성을 잃고 혼란에 빠져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이것이 노화라는 것이다. 즉, 정보의 상실이 노화이자 죽음이라는 거인데 이것이 노화를 설명하는 정보이론이다. 

 포유류는 7개의 서투인 유전자를 갖는데 SIRT1, SIRT6, SIRT7은 DNA를 수선하고, SIRT3, SIRT4 SIRT5 는 미토콘드리아와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며 SIRT2는 세포질을 돌아다니며 세포분열과 건강한 난자생산조절을 돕는다. 


3. 어떻게 노화를 막고 건강해지는가

 정보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노화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적절하게 서투인을 비롯한 생존유전자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과도한 손상이나 파괴는 죽음이나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불러오며 언급한것처럼 서투인 유전자가 유전자 손상에 치중하느라 건강을 유지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때문에 적절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생존유전자를 작동시키는 비법이 된다. 그리고 이것을 호르메시스라고 한다.

 적절한 호르메시스로는 우선 적절한 열량제한이 있다. 영양실조 없는 열량의 적절한 제한은 장수로 이어진다. 포도당을 덜 먹인 효모는 더 오래살고 유달리 DNA가 압축되어 있었다. 불가피한 ERC의 축적과 , 인폭발, 불임이 상당히 지연되었다. 인간에게도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1992년 바이오스피어2의 사람들은 자급자족적 실험조건 때문에 불가피하게 열량제한에 시달렸다. 그들은 실험 이전과 이후 철저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체중이 15-20%줄고, 혈압이 25%이상 저하했으며 혈당도 21%저하하고 콜레스트롤도 30%이상 저하했다. 열량을 적절히 제한하는 방법에는 간헐적 단식이 있는데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늦게 먹는 16시간 공복, 8시간 먹기 방법이 있다. 또한 일주일에 이틀은 열량을 75%정도로 줄인 5:2식단과 분기마다 일주일 정도를 굶는 방법도 있다. 이처럼 간헐적 단식을 포함하는 열량제한은 무엇을 먹는지보다는 어떻게 먹는지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먹는지도 중요하다. 몸에 공급되는 아미노산이 적으면 몸이 스트레스를 받아 생존회로가 활성화한다. mTOR효소가 억제되면 세포가 분열할 때 쓰는 에너지가 줄고 자가포식과정에 에너지가 많이 사용된다. 그 결과 손상되거나 비정상적인 구조를 지닌 단백질이 분해되어 재활용된다. 필수아미노산중 메티오닌은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달걀에 많다.메티오닌 농도가 체내 적어지면 몸의 방어체계가 향상된다. 스트레스 때문이다. 조건부 아미노산인 아르기닌, 아이소류신, 발린의 낮은 농도도 비슷한 작용을 한다. 때문에 아미노산을 줄이고 이를 식물성에서 얻으라는게 책의 충고다. 

 운동 역시 몸에 스트레스를 주는 활동이다. 운동은 NAD농도를 증가시키고 이는 생존회로를 활성화해 장수조절인자인 AMPK, mTOR, 서투인이 새혈관을 형성하고 심장과 폐를 더욱 건강히 하며 텔로미어의 길이도 늘린다. 운동은 일주일에 6-8km를 뛰는 정도가 좋으며 강도가 중요하다.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좋다. 

 몸에 스트레스를 주는 또 다른 활동은 체온의 조절이다. 실험에서 생쥐의 체온을 0.5도 정도 낮추자 수명이 암컷은 무려 20%, 수컷은 12%증가했다. 낮은 체온은 등과 허벅지의 갈색지방을 활성화하는데 좀 춥게 지냄으로써 이 갈색지방이 활성화 해 안에 들은 미토콘드리아가 활성화한다. 

 이처럼 열량제한, 아미노산의 조절, 운동, 추위는 생존회로를 자극해 장수를 도모한다. 이는 언급한 것처럼 호르메시스다. 그리고 호르메시스처럼 작용하는 이종호르메시스가 있다. 인간은 직접 주변 환경을 체험하며 스트레스를 겪고 이에 대비하였지만 이는 다소 어리석은 방법이다. 직접 겪지 않고 주변 환경에 경고를 통해 대비하는 것이 선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주변 생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만든 물질을 섭취할 경우 주변 환경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여 생존회로를 작동시킨다. 이것이 이종호르메시스다.  

 이종호르메시스로 우선 메트포로민이 있다. 메트포로민은 당뇨약이다. 그런데 메트로포몬을 설치류에 투여하자 수명이 6%나 늘고 LDL콜레스트롤도 내려가고 신체능력이 강화되었다. 메트로포민은 TOR억제 대신 미토콘드리아의 대사반응을 제한하여 우리의 세포발전소가 다량 영양소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을 늦춘다. 메트로포민은 암세포의 대사도 억제하고 잘못접힌 단백질도 제거했다. 인간에 대한 결과도 있는데 당뇨치료를 위해 메트로포민은 투여받은 61-80세의 노인 4만1천명에 대한 조사결과 치매는 4%, 심혈관질환은 19%, 암은 4%노화는 24%우울증은 무려 16%나 낮춘 것으로 드러났다. 

 이종호르메시스로는 이외에도 라파마이신, 레스바라트롤, NAD 증진제등이 있다. 이중 NAD는 7가지의 서투인을 모두 활성화한다. NAD는 20세기초 알코올 발효 증진제로 발견되었으며 비타민 나이아신의 산물로 500가지 넘는 효소에 쓰인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뇌, 혈액, 근육, 면역세포, 췌장, 피부, 모세혈관등에서 NAD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2004년 비타민 B3의 한 형태인 NR이 NAD를 늘리고 NR은 몸에서 NMN 으로 전환되고 이것이 다시 NAD로 전환됨이 밝혀졌다. 동물실험결과 NR이나 NMN이 섞인 음료를 먹이면 2시간 이내 NAD농도가 25%증가했다. 그래서인지 이미 시중엔 NR, NMN 관련 약품이 많다.


4. 의학의 미래

저자는 앞으로 인간의 수명이 150세까지 늘어날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의 의학은 문제가 많은데 우선 무차별적 처치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각 유전체가 다른데 이를 파악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같은 약물이나 처치를 한다는 것이다. 개별 유전체가 모두 밝혀지고 이에 따라 처방이 이루어질 미래에 이같은 과거는 무척이나 야만적인 행위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의학은 대기시간이 무척 길다. 환자는 오래도록 기다려 매우 짧은 시간의 만남으로 진단 및 처치를 받으며 이로 인해 오진도 무척이나 많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미래에 동영상 가정 방문 진료능력 기술이 개발되고 간단한 시료를 껌처럼 씹어 의사가 원하는 환자의 대사산물과 유전체가 한꺼번에 파악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 의학의 또 다른 문제는 선제성이 없다는 점이다. 많은 환자가 증상이 나타나도 자연 치유에 기대하며 대부분 시기를 놓친 강한 통증사태에서 병원을 방문해 시기를 놓치곤 한다. 하지만 항상 신체를 체크하는 이식 칩이나 센서등의 도입으로 환자의 상태가 항상 체크되고 위기 상황 시 이를 의사는 물론 주변 사람에게도 알리는 선제적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저자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같은 의학적 처치와 우리의 생존프로그램을 잘 자극하는 관리가 이루어지면 인간은 영생의 길로 들어설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에 대한 언급도 재밌다. 의외로 밝지 않다. 우선 환경오염이다. 미국인은 생존에 필요한 것보다 식품은 3배이상 물은 250배를 사용하며 하루 쓰레기를 2kg이나 배출한다. 이런 인간의 수가 영생으로 이어져 많아진다면 지구의 환경허용량을 가까운 시일내에 초과할 것이다.(이미 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미래가 밝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다른 밝지 않은 미래는 정치적 문제다. 나이든 사람들은 범죄를 일으키거나 충동성은 적지만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다. 사람은 정치적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진보는 기존의 사람들이 바뀌기보다는 새로운 생각을 가진 젊은 사람들에 의해 바뀌었다. 하지만 이런 젊은 이들이 적어지고 생각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 나이 많은 사람들만 많아지만다면 사회의 진보는 쉽사리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영생으로 가는길에 장점도 있다. 생산성의 증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정년에 도달할때쯤 경험과 지식이 최고조에 달한다. 그의 능력을 젊은이에 비할바가 아니지만 법과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야 한다. 그런것이 없어진다면 어떨까. 사회는 최고의 생산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않을까? 경지에 도달한 장인이 계속해서 경지를 향해 나아가게 되는 셈인데 모르겠다. 생산력은 높겠지만 혁신적인 마음은 역시나 부족하지 않을런지.

 하여튼 이런 논의를 여러번 던지며 책은 끝난다. 노화와 건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다소 아쉽긴 하지만 노화가 상당히 미뤄진 미래 세계에 대한 고민도 재밌었다. 개인적으로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겠단 생각도 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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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거인을 깨워라 - 학교혁신을 위한 교사리더십
메릴린 캐천마이어 외 지음, 양성관 외 옮김 / 에듀니티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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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놀랍게도 학교엔 리더가 없는 편이다. 물론 어느 학교나 법적으로 보장된 공식 리더가 있긴 하다. 교장이다. 하지만 학교 교직원 대부분은 학교장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따르지만 그가 학교의 리더라고 까진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장들이 그만한 교육철학이나 비전, 리더십, 인성, 교육이론과 실천에 정통한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거의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장이 아니라면 학교를 혁신으로 이끌어가야할 리더는 누구일까? 이 책은 그것을 교사리더라고 말한다. 그래서 책은 교사리더 역할은 누가 맡아야 하고, 또 그런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을 발굴하고 지원할수 있을까에 대해서 서술한다. 

 오늘날 교육현장의 리더를 교사중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데는 그간의 교육실패가 있었다. 1970-80년대에는 교육과정에서 아예 실천가인 교사를 배제했었다. 외부전문가인 교사나 고위 교육행정직들이 강제적 개혁을 요구했고, 교사는 대부분 이를 무시했다. 교육현장에 대해 이렇다할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배울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리더십은 부장교사정도가 갖고 있었으며 교과목이나 학년 운영같은 형식적인 차원의 리더십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야 미국 정도에서 공유된 의사결정이나 집단적 교사리더십 개념이 등장했고 지금 우리나라의 혁신교육에서 많이 도입된 개념인 전문적 학습공동체 개념이 대두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학교현장기반교수리더십으로 책무성과 더불어 탁월한 능력을 갖춘 개별교사에 의한 교사리더십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가 영향력이 미쳐 학교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무성에 대한 정책효과 연구에 따르면 학생의 성과 향상을 가져오는 현명한 투자는 더 많은 평가가 아닌 교사와 교사의 학습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리고 해결이 쉽지 않은 교육문제에 대한 해답도 지금처럼 교사와 관리자를 구분해서 관리하는 관료적 교육시스템이 아닌 교사의 재능을 활용하는 학교공동체의 구성에 달려있다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교사리더십은 크게 4가지다. 하나는 학급 안팎에서의 리더십 수행이다. 교사리더는 대개 담당학급에서 탁월한 교수능력을 보이며 이를 바깥으로도 전수해 리더십을 갖게 된다. 다음은 전문적 학습 공동체의 기여다. 세 번째는 교수 능력의 향상을 위한 영향력 행사다. 교사리더는 성실, 혁신, 다양한 능력으로 학생의 동기를 고취하고 언제나 다른 교사에 도움을 준다. 마지막은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다. 교사리더는 다양한 시도와 혁신을 수행하며 이것을 성공시키기 위한 강한 책무성을 갖는다. 

 교사리더십은 최근 무척 요구되는 상황인데 우선 교사 리더십은 조직의 역량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교사들은 자신만의 자율성을 무척 중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마땅히 변화가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교사리더는 개별교사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학생 학습에 대한 통일적 접근과 모든 교사를 위한 양질의 전문적 학습이 강조되는 학교문화를 구축한다. 그리고 민주적 공동체 모델이다. 교수활동은 복잡하며 학교의 독특한 환경엔 민주적 공동체가 가장 잘 적합함이 입증되었다. 이런 상황에 수직적 리더십보다는 교사리더같은 수평적 리더십이 어울린다. 다음은 교사의 권한 강화와 전문성 향상이다. 이 역시 교사리더로 인해 강화된다. 

 이 같인 교사리더십은 다음과 같은 이점을 갖는다. 우선 전문가로서의 효능감증대, 그리고 우수 교사의 장기근속(공무원으로 정년이 보장된 한국과 다르게 미국교사는 적은 급여와 대우로 이탈이 매우 잦다) 변화에 대한 저항 극복, 경력 개발, 교수전문성 개발, 동료교사에 대한 영향, 결과 책무성, 지속적 발전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능력의 차이가 매우 많으며 이로 인해 발전과 변화를 거부하는 교사도 제법이다. 처음엔 열심이였지만 구조적인 문제에 가로막혀 교육현장에 환멸을 느낀 교사, 현실에 안주하는 교사, 참여를 거부하는 교사, 외부 탓으로 돌리는 평범한 교사, 무능한 교사가 이들이다. 때문에 교사리더는 이런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ADS인데 서로 간의 차이점을 확인하고 자신의 가치와 관점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단계다. 

 이를 통해 다른 교사들과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형성되면 교사리더는 학교변혁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자신의 입장을 명활학게 확인하고 진술하며 그 입장을 지지할 데이터를 사용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탐색하며 이를 통해 다른 서로에게 중요한 현안을 파악하게 된다. 특정상황, 문제 해결을 위한 옵션을 마련하게 되고 마지막으로는 사안에 대해 합의하게 된다.  

 이처럼 교내의 탁월한 교사를 통한 학교의 변혁은 최근의 화두다. 그를 통해 단순한 개인적 탁월함의 추구에서 벗어나 학교의 교사들은 협업을 통해 교육력을 극대화나가게 된다. 책은 교사리더뿐만 아니라 그를 구조적으로 방해하고 또는 도울 수도 있는 학교장과 교육청의 역할도 중시한다. 이들의 주 역할을 권한을 위임하고 이런 사람을 발견하고 양성하는 것이다. 대학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대학의 역할을 예비교사시절부터 교사리더와 리더십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교사리더를 양성하고 발견하는 과정에 학문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혁신교육감들이 많이 당선되면서 현장의 훌륭한 경험이 담긴 교육도서와 교육연수들인 무척 많아졌음을 느낀다. 2000년대 혹은 2010년초반만 하더라도 교육관련책은 사실 볼것이 많지 않았다. 그만큼 교사리더가 많아 진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역시 갈길이 먼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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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6-03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어려운 문제인거 같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를 따르려 하지만, 리더가 진짜 존재하는 조직이 있는지 궁금해 집니다.
만약 어느 조직이나 참 리더가 없다면, 상투적으로 각 개인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건 또 개념상 리더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복잡한 상황에서도 조직은 방향을 갖고 굴러가는 걸 보면, 결국 조직에 리더나 각 개인이 중요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건 뭘까라고 잠시 생각해 보면, 소견으로 시스템이나 구조 아닐까 생각듭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과 구조를 지배하는 건 다수의 이데올로기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학교를 잘 모르지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닷슈 2021-06-04 13:15   좋아요 1 | URL
저는 한국엔 리더가 참 있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오래전 형성된 나이나 직위에 따른 위계질서에 따른 리더 형성, 그리고 실제 역량보다는 공정성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둔 상위직 시험등으로 리더가 다른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역량을 충족시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자도생인 경우가 많고 형식적 리더가 도움이 되기 보다는 안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최근뉴스를 보니 한국의 구글이나 애플을 자처하던 네이버같은 곳도 그렇구요.
그래서 한국에 진정한 리더가 들어서려먼 말씀하신 그 시스템과 구조를 지배하는 위계질서와 역량을 배제한 시험등이 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거기에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겠죠. 진정한 리더를 원하면서도 가짜 리더에 저항하지 않거나 봉사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희망찬샘 2021-06-04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에 무척 공감하며 이 책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별점을 낮게 주셨어요. 읽을만하지 않다는 뜻일까요?

닷슈 2021-06-05 14:19   좋아요 0 | URL
책은 학교내 교사리더십에 관하여 읽을만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분야를 다룬 교육학 책은 드물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별점이 좀 낮았던건 미국책이라는 특징 때문입니다. 미국 책들은 핵심내용을 꾸준히 순차적으로 전개하기보다는 좀 쓸데없는 중언부언으로 분량을 늘려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책도 다소 그랬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기에 미국상황에서 서술한 이 책에서 좀 한계가 느껴졌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읽을많다는 평가입니다. 제가 좀 교육학 책에 별점이 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