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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의 미래 - 인문학자가 직접 탐사한 대한민국 임장 보고서
김시덕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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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김시덕님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처음에 본 것은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였다. 그래서 일본에 저명한 학자라 생각했다. 책 내용이 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인 이야기 시리즈가 나오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서울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스스로 발로 뛰며 서울의 이모저모와 발전상, 과거의 남아있음과 단절, 경기도와의 관련성을 다룬 '서울 선언' 이었다. 그리고 '갈등 도시',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에 이어 '한국 도시의 미래'가 나왔다.

 전국 방방곳곳을 누비며 느낀 통찰력을 담은 책들이 나오다보니 이게 자연스레 부동산투자와 연결된 듯 하다. 그래서 저자 자신은 그럼 낌새가 없음에도 투자 관련 유튜브에서 스타가 된 느낌이다. 저자의 책이 많이 팔릴 것이고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에 다행이단 느낌이다. 

 책은 핵심부터 제시한다. 13가지 인데 다음과 같다.

1. 인구감소, 지역소멸은 최근의 일이 아닌 역사적 되풀이 현상으로 인위적 공공기관 및 기업의 배치, 지방 정부로의 권한 이행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2. 인구감소는 반드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생활이 쾌적해질 수 있고 인구 감소는 그 수혜를 보는 정치가와 행정가에게 문제가 된다. 주로 이들이 인구감소의 문제를 과장하고 이를 막기 위해 지역 이기주의를 조장한다.

3.기존 방식의 외곽 신도시 개발 대신 기존 도심을 압축개발해야 한다.

4.지역별 도, 시, 군단위 대신 메가 시티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5.도시민과 농산어촌 주민은 이해관계가 다르다. 그래서 도농연합 메가시티는 불가능하며 행정구역의 통합도 어렵다.

6. 한국의 인구는 3개의 메가시티와 소권역에 집중할 것이다.

7. 여러 지자체는 자기 지역이 지역소멸의 최대피해자이며 자기 지역의 혜택을 주는 것이 지역소멸의 해결책이라 주장한다.

8. 현대 한국의 문제는 시민 복지가 아니라 북한에 맞서 국가가 생존하는 것이다.

9.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역설적으로 한강 이북지역의 개발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사이익을 얻어온 동남권 콤비나트는 축소 가능성이 있다.

10. 미중대립, 러시아 우크라니아 전쟁은 신 냉전의 시대를 의미한다.

11. 신냉전으로 남북 통일과 화해는 단기, 중기적으로 어려워졌다.

12. 마구잡이 개발보다 압축 개발을 해야한다. 뚜렷한 전망없는 SOC사업은 수십년내 각 지자체에 큰 재정부담을 지울 것이다.

13. 행정과 정치의 난맥상만 줄여도 한국 도시의 미래는 밝아진다. 


 저자는 현재의 정세가 신냉전시대라고 파악한다. 신냉전은 동구권 붕괴이후 미국 중심의 질서 속에서 안미경중 입장을 취하던 한국에 중국 특수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남북간 평화체제도 상당기간 어려우며 서해안 시대 역시 중장기적으로 낙관하기 어려워졌다. 

 한국은 대만과 더불어 21세기의 석유인 반도체를 서방에 공급하는 기지다. 하지만 권위주의 진영과의 최전방에 있다. 삼성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존재는 서방이 현재 한국을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조건을 만든다. 그래서 대만과 한국은 실리콘 방패를 가진 셈이 된다. 한국은 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경기 수원, 용인, 이천, 화성, 평택, 충남 아산과 천안에 이를 정도로 구축하고 있다. 이는 대서울권의 확장이자, 강남의 확장이다.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을 일본의 대외 정책 수단이 아닌 자국의 군사력의 확장 차원에서 바라본다. 한국은 일본에 대한 과거 식민지 경험으로 이를 군국주의의 발로로 우려하나 미국이 이런 차원을 허용하지 않는다. 

 저자가 생각하는 미래 한국의 3대 메가시티와 소권역은 다음과 같다. 

 -3대 메가시티

1. 서울시를 중심으로 강원도와 충남일부 도시부, 공업지를 포괄하는 대서울권

2. 북한의 공격에서 안전한 콤비나트로 구상된 포항, 울산, 부산, 창원, 거제, 사천, 진주, 하동, 여수, 순천, 광양에 이르는 동남권

3. 북의 재래식 공격에서 안전하고 남한 중심에 자리한 대전, 세종, 청주, 계룡, 논산에 국가기관을 집중한 중부권

 -소권역

1. 독립적 산업벨트를 구성한 구미, 대구, 김천 소권

2. 철도로 이어진 중부내륙 소권

3. 전주, 군산, 익산 등을 아우르며 중부권과 일부 겹치는 전북서부 소권

4. 광주, 목포를 아우르며 동남권과 일부 겹치는 전남서부 소권

5. 고성, 포항을 아우르며 동남권과 일부 겹치는 동해안 소권

6. 제주 소권


 대서울권 메가시티는 강남과 사대문 안팎, 영등포에서 뻗어나간 교통망이다. 여기에 인천, 시흥, 안산, 화성, 평택, 아산, 서산, 당진이 포함된다. 1970년대 강남에서 아파트와 바둑판식 도로, 외부와 구분된 단지, 단지내 공공편의시설, 대형 쇼핑센터라는 삶의 양식이 탄생한다. 이것이 서울 원도심과 영등포, 압구정, 반포로 확장되었다. 송파구의 잠실주공 아파트와 석촌호수, 백화점의 겷바이 결정적이었는데 이 양식이 이후 전국으로 뻗어나간다. 호수가 없다면 일산처럼 호수를 조성하기도 하며, 송도신도시나 한강신도시도 수로를 확보한다.강남에서 시작한 새로운 삶의 양식은 1기 신도시에 이어 2시 신도시로 확장한다. 

 동남권 메가시티는 포항에서 순천 광양까지이다. 북에서 가장 먹고, 미국 일본과 인접한다. 이런 지리적 특성으로 안보, 교통의 독립성이 있어 방위산업과 한국의 기간 산업에 형성된다. 

 중부권 메가시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대전과 세종의 행정, 논산과 계룡의 군사, 청주는 경제가 특화한다. 하지만 서로 협력보다는 경쟁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중부권 메가시티의 실현을 위해서는 지역 감정과 경쟁의식을 넘어야 한다. 중부권은 인구는 다른 메가시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지만 국가라는 산업을 가진 곳이다. 여기가 성공해야 한국의 지역균형발전과 인구감소를 지연할 수 있다. 

 인구감소의 원인은 여러 가지고 성장시대에도 있어 왔다. 우선 전쟁이다. 분단으로 휴전선 인근 도시들은 철저히 파괴되어 인구가 소멸했다. 다음은 국가정책이다. 국가는 댐건설이나 화전민등의 이주로 지역을 소멸시킨다. 그리고 광산촌 소멸, 행정구역 개편이 있다. 실제 이리와 익산이 통합하고 순천과 승주가 통합되며 익산과 승주가 행정중심지가 사라지며 쇠락했다. 마지막은 군부대의 해체다. 강원 양구나 인제, 화천, 양양 등은 군부대에 경제와 인구를 크게 의지하고 있으며 50명짜리 관사의 위치를 갖고 아웅다웅할 정도로 중시한다. 

 이런 전국적 인구 감소 속에서 각 지자체는 속속 신도시를 건설 중이다. 과거 신도시는 인구를 성장시켜 새로운 중심지를 형성하는 순작용도 있었지만 지금은 도시 외곽에 건설하는 경우 도심과 주변의 농어촌 인구만 흡수하며 구도심과의 연담화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대개의 신도시는 인프라가 열악하다. 지역 행정가들은 인구감소가 구도심의 쇠락 원인이라 하나 사실 진정한 원인은 그들이 건설한 신도시에 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인구를 늘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것, 여성이 살기 좋게 하는 것, 비건과 할랄 등 외국인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 이민 사회로의 전환이다. 실제 한국은 이미 250만 외국인이 체류해 인구의 5%이상이 외국인인 다문화국가다. 이민자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한국 시민이 되어 한국 사회에 문화적 다양성과 충격을 주어 한국이 보다 복합적이고 다층적 성격의 국가로 발전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다시 메가시티와 소권역으로 돌아간다.

 대서울권의 중심지인 강남의 중요사업을 서울국제교류복합지구,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서울리니어파크다. 서울국제교류복합지구 사업은 강남구의 코엑스에서 송파구의 잠실 종합 운동장에 이르는 지역을 마이스 산업 중심으로 재개발하는 것이다. 강남과 송파를 하나로 묶어서 개발 구상 중이다. 영동대로 복합개발 사업은 지하 5층가지의 통합철도역사와 버스환승장의 구축이다. GTX-A와 C가 교차하고 완성되면 교통중심지가 기존 강남역에서 봉은사, 삼성역으로 이동할 전망이다. 서울 리니어 파크는 경부고속도로 강남구간을 지하화한 후 그 위에 구축하는 것이 계획이다. 

 동남권 메가시티는 남해안을 따라 서진 중이다. 고흥에 나로 우주센터가 있고 창원-사천-진주-순천-고흥으로 이어지는 우주산업벨트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동남권은 안보문제로 형성되었으나 한국의 대표적 연약지반으로 지반 침하 문제가 있다. 그리고 대기오염도 심각하다. 포항은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석유가 들어오는 군사거점이었다. 포스코의 탄생지지만 시설이 노후화해 포항시는 포스코의 거점이 서울이나 광양으로 이전할까 우려한다. 광양은 아산을 제치고 제철소가 되었다. 여기엔 아산이 북과 가깝다는 안보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광양만은 부산처럼 기능하기 위해 만든 제 2항이며 그래서 미군은 군사작전에서 두 항을 모두 사용한다. 포스코는 2차전지에 관심이 많고 광양만 여수공항의 인프로라 인해 광양항에 이차전지, 수소전지 기업들이 관심이 많다. 창원은 방위산업도시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키프코전자항공, 일신하이테크, 엘케이텍들의 방위산업체가 있다. 동남권에는 김해진영, 양산불금, 울산을 잇는 동남권 순환 광역 철도가 구상중이다. 이들이 완성되면 인근의 교통 개선이 예상된다. 김해는 부산에서 빠져나간 시민과 산업체가 많아 매일 김해-부산 교통체증이 심하다. 

 중부권 메가시티는 방해요인이 많다. 서울과의 교통이 개선되어 서울의 최전방으로 성격이 변질되었고, 세종남부 시내동과 북부의 조치원권이 융합해야하는데 세종 내부의 도농격차가 매우 크다. 또한 중부권 도시간 경쟁으로 사이가 좋지 못하다. 대전은 서남부 스포츠타운 예정지인 유성구 학하동주변에 나노반도체 국가산단이 확정되었다. 세종은 향후 대통령 제2집무실과 국회세종의사당의 건설이 중요 관건이다. 청주는 시내 북부에서 청주 테크노폴리스가 개발되었다. 율량, 사천동 지역에서 신흥 주거가 생겼고 현재 인구 85만으로 100만 돌파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청주는 도심 지하철을 추진중이다. 

 소권중에는 새만금이 관심이 간다. 새만금은 그 기원이 일제시대 아베후사지로가 주도한 김제군 광활면 간척이다. 그러다 1960년대 계화도 간척을 이어받아 확장하여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새만금은 공단으로의 추진이 좌절된 역사다. 새만금은 매우 광활해 서울의 2/3크기인 4만 100헥타르에 이른다. 새만금의 북에는 군산공단이 있어 북으로 확장하는 추세였지만 최근 남으로 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2023년 7월 정부는 새만금 산단을 이차전지 국가첨단전략산업특화단지로 지정했다. 하지만 새만금은 개발 속도와 인프라 확충을 위한 잼버리가 처절한 실패로 끝났고 신냉전의 중심에 서있다. 

 제주는 철도 부설이 중요한 문제다. 제주 철도 역시 기원은 식민지시대로 올라간다. 그러다 1977년 수인선을 없애면서 그 남은 재료로 철도를 놓으려는 시도가 있었고 1980년 서울올림픽과 맞춰 관광지로 모노레일을 부설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제주는 섬전체 순환 철도를 계획하고 있다. 버스 교통이 좋지 못해 인구가 많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가, 택시, 렌터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교통체증, 사고, 대기오염 문제가 있다. 

 제주는 인구감소보다 증가를 걱정하는 지역이다. 다만 인구에 비해 인프라가 부족하다. 기본적인 상수공급, 하수처리, 쓰레기의 처리가 필요하다. 제주는 현무암 섬이기에 기본적으로 물이 부족해 논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수리사업으로 지금처럼 발달한다. 최근 도시화로 물이 부족해지며 지하수 고갈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제주는 일자리 부족, 인프라 부족, 물가와 집값의 상승으로 청년층의 이탈이 심해지고 있다. 제주는 북과 남의 격차와 격리가 심한데 이는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완공에도 불구하고 상존한다. 제주는 제2공항을 남부 서귀포 지역에 추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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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아야 보인다 - 지도를 펼치지 않고는 지금의 세상을, 다가올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에밀리 오브리 외 지음, 이수진 옮김 / 사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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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천연 원색의 지도가 가득한 책이다. 이런 지도를 바탕으로 각 대륙 주요 국가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짚어낸 책이다. 지금 세계가 돌아가는 꼴을 보고 싶다면 적합한 책이란 생각이다. 


1. 유럽

 가. 러시아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 후 2천년대 부터 다시 공격적 대외정책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방은 정치적 다원주의의 부재, 야권에 대한 압박용 입막음, 경제적 빈곤을 가리기 위함이라 비판한다. 하지만 러시아 자체의 시각에선 이는 자위적 측면이 크다. 그들은 오랜 침공의 피해 의식이 있으며 이로 인해 적어도 동유럽의 구 공산권 국가들까지를 자신들의 불가침한 세력권으로 여긴다. 하지만 구 소련 붕괴 후 서유럽과 미국 나토가 동진함에 따라 이런 러시아에 안보위협을 가져왔다.

 2004년 조지아의 장미혁명으로 친 서구 사카유빌리가 지부건하자 친러 세력이 남 오셰티야를 침공하자 러시아는 즉각 반발하여 수도 트빌리시까지 진군한다. 그리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신들의 발상지이자 완충지대로 여긴다. 2004년 친러 성향의 후보가 승리하자 우크라아나 국민들은 부정선거로 생각하여 오렌지 혁명을 일으킨다. 이에 러시아는 가스회사 가즈프롬을 이용하여 우크라이나에 가스공급을 중단한다. 그리고 2014년 친러성향의 대통령이 탄핵되자 크름반도를 점렴해 버린다. 

 러시아는 지구 온난화로 북극항로의 이용이 가시화하자 야말반도의 가스를 운반하기 위해 과거 폐쇄했던 북극기지들을 다시 개장하고 강화한다. 북극해에는 원유 매장량의 15% 가스의 30%가 매장되어 있다. 러시아는 이를 다른 나라와 공유해야하나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하고 있다. 


 나. 독일

 독일은 통일 후 임금 비용의 감소로 수출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감소했다. 경제력이 막강해졌고 유럽연합내 영향력도 커졌다. 수출의 59%, 수입의 66%가 EU를 향한 것이다. 독일은 EU GDP의 20%를 차지한다. 하지만 여전히 동유럽 지역의 실업률은 높고 임금은 낮으며 그곳엔 대기업이 없다. 그래서 통일 후 무려 520만의 청년, 여성, 고학력자가 동독에서 서독으로 향했다. 

 독일은 천연가스의 40%, 석유의 30%를 러시아에서 수입했으나 크름반도 사건 후 이를 절반으로 줄였다. 계속된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해 이 단절은 가속화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엔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긴장도 고조하고 있다. 독일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으로 인해 군의 현대화를 위해 1억 유로를 투입하기로 했다. 


 다. 폴란드

 폴란드는 18세기 말에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가 분할 통치했다. 1918년 재건되었는데 볼셰비즘의 완충 역할을 하는 국가였다. 그러다 1939년 9월 동부는 소련이, 나머진 나치가 점령한다. 2차 대전 후 3국엔 큰 영토변화가 생겨났는데 독일의 동부지역은 폴란드가 차지했고 기존 폴란드의 동쪽지역은 소련이 차지했다. 즉, 폴란드의 영토가 전체적으로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런 큰 변화로 인해 2차 대전 후 3국에서 대규모로 인구이동이 있었다. 

 폴란드는 공산권 붕괴 이후 러시아를 믿지 못해 1999년 나토에 가입한다. 그리고 2004년 EU에 가입한다. 폴란드의 서부, 즉 과거 독일 지배 지역은 도시화, 인프라, 발전도가 높다. 반면 소련 점령지역이었던 동부는 그 반대다. 그렇다보니 정치적 성향도 서부는 자유주의를 선호하는 반면 동부는 보수적이다. 

 폴란드는 1개 대도시가 전국에 고루 분포한다. 발트해에 거대 항구들이 있고, 서유럽쪽에 산업지구가 있으며 거대 광산도 있고 인건비가 저렴하고 노동력은 우수하여 발전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전히 1인당 소득이 EU평균의 75% 수준이고 EU의 근본가치를 준수하지 않는 면이 있다. 


2. 아메리카

 가. 미국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은 미국의 제2의 전성기나 다름이 없다. 1992-2000년 미국은 연간 4%의 고도 성장을 한다. 실업률은 매우 낮았고 세계최고의 경제규모를 자랑했다. 1991년 이라크, 1992-93 소말리아 내전 1994-95 아이티 1995 보스니아 1999 코소보 등 90년대의 주요한 국제적 분쟁을 비교적 잘 해결하며 국력에 걸맞는 세계의 경찰 역할도 잘 해냈다.

 하지만 9.11사태 이후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서의 실패로 인해 2차대전에서부터의 적극적 개입주의에서 과거의 전통적 고립주의로 점차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 브라질

 브라질은 인구 2억 1500만에 면적 5위의 대국이다. 인구는 해안가에 밀집하고 있으며 포르탈레자, 살바도르, 헤시피,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 등이 주요 해안도시다. 브라질은 막대한 자원이 있으며 석유가 해저에 위치한다. 2006년부터 이를 개발해 원유를 자급자족하고 전기 생산을 위한 수자원도 풍부하다. 여기에 엄청난 규모의 농지에서 오렌지, 사탕수수, 커피가 생산되며 대두도 생산량이 세계 2위다. 

 하지만 브라질은 가장 부유한 10%가 국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이들의 70%가 백인이다. 룰라대통령의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은 조건부 학자금과 굶주림 제로 정채긍로 빈곤 타계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이 되며 긴급 금융 지원을 종결하여 빈곤이 심해졌다. 브라질은 남부와 동남부가 발전했고 북동부는 해안 지역만 활기가 있으며 가뭄이 심하다. 반면 아마존과 중서부는 인구가 거의 살지 않는다. 

 브라질은 26개주에 1개 연방 특구가 있고 소규모 정당 30개가 난립하고 상하원의 분열되어 연정이 매우 어렵다. 룰라는 2002년 하원 513개 의석 중 91석 상원 81개중 14개석, 26개 주 중에서 겨우 3개 주에서만 승리하고 집권했다. 이 정도로 강한 리더십을 갖기가 어렵다.

 보우소나르는 beef, bible, bullet의 소위 3B 정책으로 집권한다. 그는 친미정책을 펼치고 중국과는 거리를 두려 했으나 무역의존도가 심해 용이하지 않았다 브라질은 미약한 국력과 군사력에도 국제무대에서 활약이 많은 편이며 특히 남반구 상호간의 협력을 강조한다. 최근 보우소나르가 물러나고 룰라가 돌아와 대통령이 되어 최초의 3선 대통령이 되었다.


다. 멕시코

 멕시코는 면적이 프랑스의 4배이며 인구가 1역 2700만에 달한다. 하지만 국가 결속력이 약하고 원주민에 대한 차별이 심하며, 마약 카르텔의 폭력이 심각하다. 멕시코는 세계 15위의 경제 대국이며 에너지 자원, 관광 유산, 미국과의 인접성이 강점이다. 

 멕시코 남부 캄페체만 해저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으며 미국과의 국경지대를 따라 쌍둥이 도시가 발달했다. 값싼 세금과 저렴한 노동력으로 북미의 하청업체 역할을 주로 한다. 미국의 자동차, 섬유, 전자기기 본사가 있고 멕시코엔 생산기지가 위치하는 식이다. 그래서 멕시코 수출의 80%가 미국을 향하며 미국인은 관광으로 멕시코는 자주 찾는다. 관광업이 매년 200억 달러 이상으로 멕시코의 제3의 수입원이다. 

 멕시코의 최대 수입원은 이민자들의 송금액이다. 3600만 미국 거주 멕시코 인들이 매년 300억 달러를 본국으로 송금한다. 그런 반면 불평등이 매우 심해 무려 5300만 인구가 빈곤층이다.

 마약카르텔은 과거 정부가 버리고 고립시킨 산악지대에서 뿌리내렸다. 멕시코는 매년 대마초 7천-1만톤을 생산한다.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코카인을 수입해 미국에 판매하는 중개역할을 한다. 마약수입은 엄청나서 연간 200억 달러 이상으로 관광수입에 육박한다. 이렇다보니 마약카르텔은 경찰, 군대, 법조계, 공무원, 주지사, 시장에 이르기까지 멕시코 정계를 장악해 철저히 부패시켰다 멕시코 마피아와 민간인의 다툼으로 12년 간 20만이 사망했고 3만이 실종되었다. 


3. 아시아

 가. 중국

 중국은 14억 인구에 22개성 4개 직할시, 5개 자치구, 2개 특별행정구가 있다. 지형은 고원, 분지, 사막의 서부와 강과 평야의 동부로 구분하며 동부에 인구의 94%가 집중해있다. 소득 불평등으로 베이징 주민은 간쑤성 주민에 비해 6배의 소득을 갖는다. 내륙 개발을 위해 고속철도를 건설하여 해당지역에 한족이 증가했다. 티베트의 라싸 인구는 20%가 한족이며 여기엔 리튬과 구리, 금이 풍부하다. 신장의 우루무치에는 75%가 한족으로 석탄, 가스, 유전이 풍부하다 중국은 위구르를 탄압하여 무려 백만명이 수용소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집착한다. 스프래틀리 군도에 180개 섬이 있는데 중국은 고작 10개정도를 갖고 있지만 이 해역의 전체 영유권을 주장한다. 국제법상 간조노출의 섬은 영유권 주장의 근거를 갖지 못하나 중국은 이 지역에 활주로와 군사시설을 설치해 영유권을 주장한다. 


 나. 북한

 분단 후 북한에서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백만 명이 남한으로 이탈한다. 전쟁 중 미국은 제공권을 장악해 북한 지역에 무려 63만 톤의 폭탄을 투하한다. 이중 3만 3천개가 네이팜탄이었다. 북한은 전후 이것에 대한 공포증이 있었고 북 정권은 이를 이용하여 안보정책을 고수하고 자신들의 독재를 강화하였다. 

 경제활동 인구의 40%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부실하여 1994년 대기근으로 무려 80만에서 1백만이 아사하였다. 9.11테러 이후 이라크, 리비아 같은 독재국가들이 미국에 의해 붕괴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북한은 자국책으로 핵무장을 선택하게 된다. 

 김정은은 경제적 측면에서 자유시장과 쇼핑센터를 개방한다. 휴대전화 통신망을 설치하고 개인용 차량을 판매하고 관광업도 장려하고 있다. 외화획득을 위해 12만의 노동자를 러시아, 중국 등의 해외로 파견하고 있다. 곡물자급을 위해서는 연간 800만 톤의 곡물이 필요하나 실제 생산량은 570만 톤 정도에 불과해 만성적 식량부족에 시달린다. 

 정치적 탄압은 극심하여 12만 명이 수용소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1998년 이후 3만명 정도가 탈북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 호주

 호주는 방대한 영토에도 불구하고 황폐하여 인구가 2530만에 불과하다. 호주는 미국에 안보는 의존하면서 중과 경제교역하는 체제였다. 2015년 중국과 FTA를 체결하였고 그 후 교역량이 25%가 늘어났으며 광물, 농산물, 육류를 수출하고 있다. 중국은 호주의 광산, 부동산, 농업, 다윈항에 집중투자하였다. 그리고 2016년 호주에 거주하는 중국출신은 무려 5%나 증가하였다. 하지만 중국이 호주의 앞마당인 남태평양 국가에 영향력을 미치며 호주와 경쟁하게 되었다. 

 호주는 이 지역의 자금지원을 늘리고 2018년 미국과 파푸아뉴기니의 마누스섬에 환동해군기지건설을 발표하였다. 호주는 중국의 5G 통신만 자국 설치를 금지하였고 시드니-솔로몬 섬 간의 해저 케이블망 참여도 금지시킨다. 호주는 안보 문제로 중국 대신 인도, 일본과 접근하고 있으며 최근 인도인 3만 3천이 호주로 이주하였다. 일본과는 군사협력을 강화중이다. 


4. 아프리카

 가. 에티오피아

 이 나라는 아프리카 나라 중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2세기 악숨왕국이 있었고 시바여왕과 이스라엘 솔로몬 왕의 만남으로 솔로몬 왕조가 기원전 1세기 창건되고 초대 왕인 메넬리크 1세가 있었다. 4세기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고 19세기 식민시기 내내 이런 종교적 이점으로 유럽 국가들과 특권 관계를 맺고 무기를 얻고 전략적 이점으로 식민지배를 당하지 않았다. 

 1930년대 마지막 황제인 셀라이시 1세가 이나라의 근대화에 앞장섰다. 그는 최초의 고동학교, 대학교, 항공사, 라디오, 텔레비전, 근대식 군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독재를 하였고 1973년 대기근으로 20만이 사망했고 이듬해 퇴위한다. 

 인구는 무려 1억 1천만으로 60%가 기독교도 이며 이중 다수는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믿으며 무슬림은 33%정도다. 1963년 아디스아바바에 본부를 둔 아프리카 통일기구를 창설했고 한국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하고 아프리카의 난민을 73만이나 수용하는 등 국제적 역할에 충실하다. 

 셀라이시 퇴위 후 맹기투스가 집권하나 사회주의를 주창했고 탄압과 빈곤으로 수만이 희생되어 1991년 퇴출된다. 2010-2018년 경제성장률이 9.7%나 되었고 이는 외국 자본의 영향이었다. 하지만 일인당 소득은 1787달러로 빈곤하다. 그랜드에디오피아 댐을 나일강에 건설 중인데 이로 인해 인근 국가와 마찰 중이다. 

 

 나. 말리

 말리는 사헬지역에 위치한다. 사헬은 해안이라는 뜻이다. 인구가 1900만이지만 60개부족이고 거의 무슬림이다. 7세기부터 팀북투, 가오, 젠네 같은 도시들은 북아프리카와 대륙의 나머지 경로를 이어주는 카라반 경로를 장악해 부유했다. 노예, 금, 소금 무역으로 번영하였고 13-15세기 말리제국은 사하라 남부에서 대서양 해안까지 뻗어나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사헬-사하라 지역은 투아레그족과 차드의 다양한 반군조직의 주요활동무대가 된다.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도 포함된다. 이들은 내전 후 쫓겨난 알제리의 이슬람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밀매업과 높은 실업률로 인해 젊은 청년을 쉽게 흡수한다. 그리고 가다피의 몰락과 리비아의 붕괴로 말리 북부로 리비아의 무기가 흘러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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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닝 - 꽃게잡이 선원에서 돼지농장 똥꾼까지, 잊힐게 뻔한 사소한 삶들의 기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1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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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한승태의 노동 에세이 첫 작품이다. 이번에 다시 만들어져 새로 나왔다. 시기는 작가가 아직 혈기 넘치는 20대였으며 한국의 최저 시급이 3000원 후반 대에서 4000원 초반 정도 하던 2007-2011년의 시기다. 당시는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아직 2만 달러 시절이고, 최저 임금도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으며, 능력주의는 더 판을 쳤으며, 젊은이들이 어려워 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해주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라 젊은이들에게 노동 현장은 더 처참하고 어려우며 대가는 적었다.

 작가가 체험한 직장은 꽃게 잡이 어선, 편의점과 주유소, 돼지 농장, 오이 농장, 자동차 부품 공장이다. 모두 상당히 다른 직역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 같이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편의, 인권, 복지는 뒷전이며 거의 쉼없는 짜내기 노동이 강요되고, 급여는 매우 낮으며 다치기 쉬운 위험천만한 것들이란 점이다. 물론 다치면 책임은 오로지 본인 몫이 된다.

 저자는 꽃게잡이 배에 오르며 소개소에서 여러 말을 듣는다. 잘하면 돈 버는 것 순식간이라고. 지금도 이런 배잡이 신화는 어디선가 근거 없이 나돈다. 그게 몇달 간 못오기도 하고 힘들고, 위험해서 그렇지 돈 하나는 확실히 벌게 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저자가 탄 꽃게 잡이 배는 전혀 아니다. 꽃게잡이 배는 통발로 낚시를 한다. 작업은 하나같이 힘들다. 통발을 물속에서 끌어올려 속에 있던 꽃게와 그외 물고기들을 분류하고, 통발에 다시 먹잇감을 채워넣고, 배위에 잘 쌓아놓는 것이다. 그리고 멋잇감을 채운 통발을 다시 물속에 넣어야 한다. 꽃게잡이 배에는 이런 통발이 군데군데 십 수개가 있는데 통발 한 번을 다 돌리면 쉼 없이 한 시간을 넘게 일하게 된다.   

 꽃게잡이 배의 일꾼은 서열이 있다. 최상위는 선주다. 그는 배의 주인이자 나머지들의 고용주다. 다음은 갑판장으로 기계를 다룰 줄 안다. 그 다음부터는 일하기 시작한 경력순이나 나이 순이다. 꽃게 잡이배에서는 작업수역으로 가는 수시간 동안 배 위에서 쉴 수 있는데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선실에서는 선주와 갑판장만 쉴 수 있으며 나머진 바닷바람을 맞으면 자고 쉰다. 

 어획량이 좋지 못하기라도 하면 통발을 수십차례 걷게 되는데 그러면 배위에서 자게 되는 일이 생긴다. 선실은 말도 못하게 좁다. 엔진 바로 옆이라 시끄럽고, 모두가 발로 어깨도 제대로 못펴며 부대끼며 자야한다. 그런데서도 극심한 피로로 인해 놀랍게도 잠이 들게 된다. 

 직업소개소와 알선과 달리 꽃게잡이 배의 급여는 매우 적었다. 도망가다시피 나오며 저자가 받은 급여는 겨우 40만원이었다. 선주는 강압적으로 일을 중간에 그만두고 도망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기본급 같은 것은 사실상 없다. 당시 어획량은 매우 적어서 하루 종일 고생해도 기름값 정도만 건지는 상황이었다. 선주는 그러다보니 통발을 계속 걷어 노동력을 짜내지만 기본급은 보장해 주지 않는다. 현대판 노예가 따로 없다.

 저자의 다음 직업은 편의점과 주유소였다. 그리고 이 시기 고시원에 거주한다. 점주는 최저시급은 온데간데 없고, 일이 쉽다는 이유로 더 적은 급여를 준다. 편의점에서 가장 힘든 일은 진상 손님을 대하는 일이다. ATM기계의 엉뚱한 곳에 본인이 카드를 끼워넣고 난리치는 자, 반말을 함부로 하는 자, 먹은 것을 치우지 않는자 등 다양하다. 당시만 해도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엔데 저자는 이 감정의 소모가 꽃게잡이 못한 힘듬이었다고 토로한다.

 주유소는 무척 바쁜 곳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바쁜 곳중 하나 였는데 그 이유는 이 주유소가 내건 사은품 때문이었다. 자체 포인트를 운영하다보니 포인트 정산하고 주유를 하느라 무척 정신이 없다. 너무 바쁜 나머지 손님의 요구와 다르게 기름을 실수로 더 넣거나, 혼유하거나, 기름을 과도하게 흘리는 건 모두 알바의 책임이었다. 여기도 이상한 손님들이 많았는데 직업의 실수긴 하지만 3만원 주문을 6만원을 넣어주자 추가 요금을 전혀 내지 않는 손님, 주유소 길바닥에 대량의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버리는 손님등 온갖 진상이 다 나온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양돈장이다. 돼지를 키우는 곳이다. 저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돼지를 보고 놀란다. 생각보다 무척 커서 겁이 날 정도였다. 돈사는 매우 더러웠다. 그 냄새는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였다. 양돈업자가 직원을 조금만 쓰기에 돈사의 배설물은 절대로 다 치워질 수가 없었다. 가장 심한 곳은 자돈들이 출하를 위해 살을 찌우는 비육사였는데 돼지들의 배설물 량이 만은 만큼 그것을 절대 다 치우지 못하고 굳어져 여러 층의 지층을 이룰 절도였다.

 배설물엔 똥도 똥이지만 돼지가 새끼를 낳고 나오는 여러 부산물들이 뒤엉켜 지옥같은 냄새와 빛깔을 보이기도 한다. 돈사에서는 비쩍 마른 새끼나 가망이 없어보이는 녀석들을 바로 솎아 냈는데 방법은 간단하다. 아직 어린 새끼의 경우는 들어올려 땅에다 강하게 내동댕이 치는 것이었고 들기 조금 큰 녀석은 망치로 머리를 내리 치는 것이었다. 저자도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는데 생명을 질 긴지라 돼지들은 여러 차례의 내동댕이에도 쉽게 죽지 않았다. 그런 녀석들은 마치 배설물처럼 배수구에 버려져 오물을 뒤집어 쓴 체 서서히 죽어갔다. 

 오이 농장은 다른 의미로 힘든 곳이었다. 어디나 매우 비좁은 숙소를 제공했는데 여기는 컸다. 다만 난방과 냉방이 전혀 안되고, 물을 받아서 데워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우스 안은 무척 더웠고 먼지로 가득했다. 그리고 오이를 재배하면서 새로 나눈 순을 따서 오이를 크게 만들어야 했는데 저자는 이 구분이 어려웠고 하루 종일 앉아야 하는 것에 부담이 컸다. 여기도 급여는 매우 적었다. 저자가 한 일은 모두 힘들고 더럽고 어려우며, 위험이 컸는데 하나 같이 급여는 사회에서 가장 작았다. 채용절차도 그랬다. 이렇다할 학력이나 능력은 전혀 보지 않았고 그저 사지 멀쩡하고 말을 할 수 있으면 바로 채용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이 요구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일 자체가 쉬운 것은 전혀 아니었다. 마치 사회는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런 사람들은 최저의 급여와 조건으로 부리며 얼마든지 소모되어 며칠만 일하고 그러면 그 나마의 급여도 주지 않고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나가는 형국이었다. 

 저자는 제조업체에서도 일하는데 그런 곳도 이해가 안가는 곳이었다. 아무리 봐도 공장의 제품 품질이 좋으려면 숙련공이 필요함에도 그들은 계속 알바수준의 인력만을 부렸고, 적은 급여와 좋지 못한 조건으로 사람들의 꾸준한 이탈을 일으켰다. 아마도 고품질 숙련공에 대한 비용을 치르느니 그저 사람을 싸게 부리는 것이 이득이라 생각하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런 끔찍한 사회를 경험하며 부당한 현실에 겁을 먹고 수용하기도 하고, 아직 젊었던 만큼 몇 차례 객기를 부리며 싸우기도 한다. 저자는 가장 힘들일을 하는 것에 대해 보상이 적은 사회의 현실에 분노하기도 하고, 이를 자신이 경험한 날 것으로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강하게 고발한다. 한국에서 노동에세이란 분야를 처음 개척한 것 같으며 자신이 직접 경험했기에 아무리 현장성이 강하더라도 인터뷰와 취재로 이뤄지는 다른 책들에 비해 날것의 느낌이 훨씬 생생하다. 저자의 3권의 노동에세이 모두가 읽을만 하며 강하게 추천한다. 책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 오래 되었는데 3권의 책만 냈다는게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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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가지 키워드로 읽는 오늘의 베트남
안경환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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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베트남은 오늘날 상당히 밀접하다. 무역규모상 한국의 제3교역국이 바로 베트남이다. 이는 중국과 미국에 이은 순위이며, 일본과의 교역을 상회한다는 뜻이다. 흑자규모도 엄청나다. 한국이 2022년 베트남과의 무역에서 얻은 흑자는 무려 342억 달러다. 또한 한국과 베트남의 국제결혼 규모는 8만쌍에 이른다. 또한 한국은 베트남 투자 1위 국가이며, 베트남의 삼성전자 공장은 베트남 수출의 17.5%를 차지한다. 이렇다 보니 베트남은 2021년 한국어를 제1외국어에 편입시키기까지 했으며 베트남 최고의 대학 호치만 대학의 어문계열 입학점수에서 한국어과의 점수가 가장 높기까지 하다.

 이런 베트남은 우리와 유사점도 상당하다. 우선 분단의 경험이 같다. 그들은 통일에 성공했고, 우리는 실패했다는 점이 차이다. 또한 같은 유교문화권이다. 동남아시아는 대개 이슬람교와 불교의 영향력이 강한데 베트남은 중국과의 인접성으로 인해 유교문화권이고 예의를 중시한다. 그리고 중국과의 항쟁의 역사다. 베트남은 한국처럼 중국의 끊임없는 침공에 시달렸으며 1000년 간의 점령기간이 있었지만 끝끝내 투쟁으로 자주적으로 독립하였기에 자주성이 매우 높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1650km로 길게 뻗어있으며 남북 간 지역 감정이 있다. 북부 출신은 2차례 남부로 이동하였는데 1954년 공산정권을 피해서였고, 1975년 통일 후 남쪽을 통치하기 위해서다. 이 두부류 는 같이 이동했으나 서로 매우 달라 싫어한다. 북부출신은 국영기업과 고위직에 포진해있어 남부사람들이 시기한다. 그리고 북부는 남부가 자본주의의 때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개혁개방으로 이런 의식이 많이 희석되었다. 북부출신은 대개 근면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남부출신은 개방적으로 낙천적인 편이며 서구에 쉽게 호응한다.  

 베트남은 모계사회의 유풍이 남아 있어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하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회, 내각, 지방당위원장에도 여성이 상당수 포진한다. 호치민시 전체근로자의 51.4%가 여성이다. 중국은 기원전 2세기부터 성과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중국의 지배를 길게 거치면서 그들의 성을 따라쓰기 시작했다. 그외 기타 소수민족은 동식물의 이름을 가진 마을에서 이름을 유래한다. 베트남에는 769개 성씨가 있는데 같이 성이 많다보니 부를때는 성이 아닌 이름을 부른다. 이름 중간에 '티'가 있으며 반드시 여성이고, '반'이 있으며자다. 베트남의 신분증에는 출신 민족이 표기된다. 이는 차별이라기 보다는 민족별 국가 지원을 다르게 하기 위함이다. 베트남은 응우옌씨가 35%, 쩐씨가 12%, 렌씨가 9%로 모두 왕족의 성씨다. 이 중 쩐씨는 응우옌왕조의 보복이 두려워 대개 응우옌씨로 성을 변경한다. 우리 고려왕조의 왕씨가 조선이 들어선 후 한자를 조금씩 바꾸어 전이나 옥씨 등으로 바꾼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베트남은 구정이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집안의 번성을 위해 황금열매가 잔뜩 달린 금귤나무, 복숭아 나무, 매화 나무 등으로 내부를 장식한다. 섣달 그믐 자정과 새해의 첫 시간이 교차하는 시기에 복이 온다하여 귀한 손님을 모심다. 이를 쏭덧이라 하는데 가장과 띠가 맞고 건강하고 덕망이 높은 남성을 초대한다. 

 모든 베트남 사람들은 집에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제대상인 반터를 갖고 있다. 반터 위에 부모의 사진, 향로와 차병, 고인이 생전 즐기던 과일, 과자, 술등을 놓는다. 여기에 집안의 대소사를 보고하고 복을 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들은 별로도 사당을 짓기도 한다. 그리고 반터에는 조상신 외에도 숭배하고 싶은 신을 모시기도 한다. 

 베트남의 건국신화는 기원전 3천년 전으로 고조선보다 길다. 베트남 최초의 왕은 농경의 신의 4대 후손은 록뚝이다. 그리고 최초의 국가는 식꾸이국을 다스린 낀즈엉브엉이다. 씩구이국은 북으로는 중국의 장강, 남으로는 베트남 중부, 서로는 쓰촨성, 동으로는 해안에 닿은 광대한 국가였다. 낀즈엉브엉은 동해 용왕의 딸 턴롱을 부인을 삼아 숭람을 낳았다. 숭람은 2대왕 락롱꿘은 낳았다. 그는 지방을 순시하다 락쓰엉동굴에 이르러 산신의 딸 어우꺼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녀는 무려 3년 3월을 임신하고 100개의 알을 낳는다. 3일 후 알이 부화하여 아들 100명이 나왔는데 하루만에 장성한다. 그는 아들에게 각 지역을 맡긴다. 다만 서열과 이름이 문제였는데 하늘에 기도하니 하늘이 이를 정해주었다. 락롱꿘은 50명의 아들과 강과 바다로 향했고 나머지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산과 숲은 방어했다. 3대왕은 홍구엉 브엉으로 그는 국호를 반랑이라 하고 18대까지 왕위가 이어진다. 18명의 왕을 모두 홍브엉이라 한다.

 베트남은 오랜 침략을 자주적으로 막아낸 역사로 인해 한국과는 다르게 사대의 역사가 전혀 없고 중국의 대등한 견제의식을 지닌다. 그래서 중국의 상품과 기술에 대해 품질이 낮다고 폄하하기도 하고 중국 관광객의 불손한 태도에 잘 분개한다. 베트남은 황제를 칭했기에 6조가 아닌 6부제이며 북거 남진 제를 택했다. 이는 북으로 중국에 항거하고 남으로는 진출한다는 뜻이다. 베트남은 송나라 2회, 몽골3회, 명1회, 청1회의 침공을 받았고 한나라에 멸망하여 1049년간 지배를 받았다. 

 몽골은 남송을 정벌 한 후에 베트남에 6사를 요구한다. 이는 입조, 납질, 납공, 역참설치, 호구조사, 조군이다. 당시 베트남의 쩐왕조는 이중 일부는 들어주고 대개 거부한다. 이에 몽골은 침입한다. 하지만 남송 망명자의 협력과 기병대에 불리한 열대 숲으로 인해 패퇴한다. 3차 침략 때는 쿠빌라이가 탕롱을 함락하나 무더위와 보급로의 차단으로 퇴각하고 쿠빌라이가 죽어서야 침략이 끝난다. 쿠빌라이는 베트남 침략의지가 매우 강하여 이를 일본 원정보다 우선할 정도였다. 

 베트남어를 보면 영어와 비슷해보인다. 이는 그들이 라틴 문자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천주교 사제들이 전도를 목적으로 베트남어를 배우고 자신들의 문자로 이를 기록하였는데 1651년 알렉산드르 드 오르 주교가 베트남-포르투갈-라틴어 사전을 출간한다. 이 사전은 단어, 성조, 품사분류까지 한 최초의 베트남 문법 책으로 현재 베트남문자의 기원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식미책으로 모든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라틴문자 베트남어 사용만을 강요한다. 그렇다보니 기존에 사용하던 한자와 한자를 변형하여 만든 쯔놈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현재 베트남 문 모음 12 자음 17자로 총 29자다. 

 베트남어는 단음절로 음절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다. 시제에 따른 동사변화는 없으며 앞에 붙은 조동사가 시제를 결정한다. 6개의 성조가 있다.

 베트남은 교육열이 강하다. 문맹률이 프랑스의 우민 정책으로 90%에 달했으나 지금은 97%의 국민이 문자를 해독한다. 예절교육을 중시하며, 학부모의 교육열과 학생의 향학렬이 높고, 교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매우 높다. 그래서 교사들은 급여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긍지가 높다. 학생도 교사를 많이 희망하며 11월 20일을 스승의 날로 지정해 기념한다. 

 학제는 5-4-3-4 제이며 대학은 4년제, 전문대 3년제, 사범대 5년제, 의대가 6년제이다. 9월에 신학기를 시작하며 초등 입학 때 입학시험을 치뤄 10점만점에 7점에상이며 A등급반에 편성된다. 반이 한번 정해지면 변경이 불가하기에 사교육이 판을 친다. 베트남은 이처럼 초중고가 모두 우열반 편성을 한다. 그리고 졸업시험이 있어 초등은 5점이상이야 졸업을 한다. 대입경쟁률도 치열하여 5:1수준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으며 국공립대학교들이 예산부족으로 시설이 낙후하였고, 학비도 비싼 편이다. 

 베트남은 남중국해를 비엔동이라 부른다. 여기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중국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고 미국도 합류하고 있다. 이곳은 세계 원유의 1/3, 천연가스의 1/2가 지나간다. 군도가 있는데 호앙사 군도와 쯔엉사 군도다. 중국은 이를 시사군도, 난사군도라 한다. 여기엔 300억톤의 원유와 450억톤의 천영가스, 풍부한 어족자원과 구아닌이 풍부하다. 2013년 필리핀이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유엔 상설중재재판소에 제소하였고 2016년 승소한다. 하지만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곳은 베트남에 역사적 증거가 많다. 1904년 청나라가 제작한 황조직성지여전도에서는 양 군도가 청영토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당시 베트남 응우옌 왕조는 영유권 수호를 위해 이 지역에 5-6개월 마다 정기적으로 함대를 파견했다. 그리고 식민지배 프랑스도 이를 이어받았다. 양군도를 통치했고, 일본에게 패퇴했다 돌아온 후 두 군도를 점령한 중화민국 군대에 철수를 요구하고 이를 관철한다. 그리고 1951년 일본과의 평화조약에 참가한 베트남 총리는 두 군도의 권리를 주장했으며 당시 국제사회엔 이에 대한 반발이 없었다. 두 군도에 대해서는 베트남과 필리핀은 적극적이지만 나머지인 브루나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소극적이다. 

 베트남은 5년마다 전국 선거를 한다. 4대 선거원칙을 준수하지 않기에 대리 투표도 가능해 투표율이 무려 98%이상이다. 국회의원은 500명이고 베트남 조국전선이 후보자를 추천한다. 베트남은 5무 선거를 자랑한다. 현수막이 없고, 선거운동원이 없으며, 벽보도 없고, 선거로 인한 국고낭비도 없다. 마지막으로 재보궐선거도 없다. 차점자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아무나 입후보하지 못한다. 조국전선이 철저히 검증한다. 기준은 헌법수호를 위한 애국심과 충성심, 도덕적 품성, 임무수행능력이다. 그리고 범법자, 이중국정저, 채납자, 파렴치범, 마약사범, 식민지 시기 본인 혹은 가족이 부역 행위를 조금이라도 한 경우 모두 제외한다. 이는 상당히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일당 독재의 정치체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베트남의 대표음식은 퍼다. 소위 쌀국수다. 다섯 가지 맛인 쓴맛, 짠맛, 신맛, 단맛, 매운맛이 모두 난다고 한다. 소고기를 넣은 것이 퍼버, 닭고기를 넣은 것이 퍼가로 가장 유명하다. 여기에 어묵, 생선이 들어간 쌀국수를 소스와 같이 먹는 분짜까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편이다. 

 소고기 퍼버는 혁명이전까지 북부 하노이의 음식이었다. 그러다 점차 전국 확산한다. 다만 소는 농경의 중요수단이기에 도축이 어려워, 닭고기 퍼가 생겨나고 확산한다. 북부 퍼는 조금 짠맛이 나고 면발이 얇고 넓다. 남부 사이공의 퍼는 달고 기름지며 생야채가 있고 사리가 북부보다 가늘다. 

 바인미 깹은 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다. 프랑스의 바게트 빵속에 돼지고기, 새우, 채소와 칠리소스나 느억맘을 넣는다. 베트남 바게트는 프랑스의 것과 다르게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고 구수하다. 이 샌드위치는 세계적으로 무척 유명하다. 

 베트남의 문화는 선물을 서로 주고 받는 문화, 평등주의와 공동체 정신, 존경의 표시로 서로의 가정집은 방문하는 문화, 좋은 일을 나누는 풍습, 외제를 선호한다. 이는 수력을 다뤄야 하는 농경문화의 공통적 특징이기도 하다. 다만 개혁 개방 이후, 각종 기업의 설립이나 승인 과정에서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문화가 부정부패로 변질되어 악영향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국산품에 대한 기술적 신뢰가 낮아 외제를 선호해 국내 기업이 좀처럼 크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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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3
최성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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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하면 떠오르는 것은 일제 시대의 수탈, 그리고 목포는 항구, 목포의 눈물 같은 노래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흔적이고 요즘은 관광으로 더 유명한 느낌이다. 최근 목포는 관광 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데 연예인 박나래의 고향이고 쫀드기로 주목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2019년 개통한 해상케이블카가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동생이 목포 인근 무안에 살고 있어 이 해상케이블 카를 여러 번 타보았는데 목포를 갈 때마다 반드시 타게 된다. 우선 가성비가 좋다. 가격은 보통 케이블카와 비슷하면서도 길이가 엄청 길어 왕복 40분을 타게 된다. 한 번은 케이블카에서 존 적도 있다. 말이 되는가? 케이블카에서 존다는 게, 끝내주는 풍경도 좋다. 목포에서 유달산 정상을 거쳐 고하도를 향하는데 목포 전체 시내의 풍경과 산의 경치, 해상의 경치를 모두 볼 수 있다. 고하도에서 내리면 바다의 데크와 고하도를 돌 수 있는데 이 것도 제법 괜찮다. 그래서 여길 다 돌고 오면 돌아오는 케이블카에서는 졸 수도 있는 것이다.

 목포는 최근 도시 같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영산강 물길과 전남 내륙의 통로이고, 해상교통의 요지이다 보니 고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다. 호남과 경상 남부로 통하는 조운로이다보니 왜구의 침입이 끝이지 않아 조선시대에는 수군진이 설치되기도 했다. 이순신은 명량에서 승전한 후 고하도에 진을 친다. 여기서 106일가까이 머무르며 수군을 재건한다. 이순신은 여기에 머무르며 고하도에 성을 쌓기도 했으며 이후 그의 5세손이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봉상이 이충무공비를 고하도에 건립한다. 이 기념비는 일제가 훼손했다가 1947년 복원된다. 

 목포는 예항이라 불릴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인이 많이 배출되었다. 미술의 허건과 문학의 박화성과 차범석, 무용의 최정자, 문학가 김우진, 최하림, 황현산, 김지하, 김현, 가수 이난영과 남진이다. 그래서인지 인구 24만에도 불구하고 시립예술단체가 6개나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 김대중이 있다. 그의 고향은 신안군 하의도이지만 정치적 고향이 목포다. 그래서 목포 삼학도에는 그의 노벨평화상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목포는 쌀과 면화를 일본으로 옮기는 곳이다보니 경제 특수를 누린다. 일본인이 밀집한 선창가는 각종상업시설, 회사, 공장이 밀집했고, 은행과 백화점, 극장등이 일찍이 생겨난다. 해방후에도 전남 1도시를 유지했는데 보해양조, 남양어망, 행남자기, 조선내화, 호남제분등의 향토기업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고 1990년대 후반 신도심의 개발로 경제축이 목포역에서 하당권으로 이동하며 경제가 빠르게 쇠퇴했다. 최근 해상케이블카의 조성과 신안군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천사대교의 개통, 국토부의 뉴딜사업, 목포의 근대역사문화공간사업으로 인해 다시 부흥하고 있다. 

 목포의 김우진은 문학가로 유명하지만 가수 윤심덕과의 투신자살로 더욱 유명하다. 그는 18세 일본 구마모토 농업학교에 입학한다. 당시 그의 졸업논문을 영친왕이 하사금을 줄 정도로 유망했으나 본인은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와세다 대학 예과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한다. 그는 최초의 근대극작가이자 최초의 신극운동가였다. 가수 윤심덕은 평양출신으로 동경음악학교를 졸업한 한국 최초의 성악가이자 소프라노 가수다. 김우진은 이미 결혼한 몸으로 아내와 자녀가 있었으며 문학을 하고 싶었으나 사업을 이어받길 원하는 아버지와 갈등하고 있었다. 윤심덕은 신여성이었지만 전통적 여성상을 강요하는 사회분위기에 갈등하고 있었다. 둘의 사랑은 이런 갈등을 감당하지 못한 이유로 보인다. 

 목포는 축제가 많다. 유달산 꽃 축제, 세계마당페스티벌, 목포항구축제 등이다. 목포항구축제의 모티브는 파시다. 파시는 말 그대로 해상에서 물고기를 거래하는 것으로 과거 흑산도의 조기 파시, 임자도 민어 파시, 하의도 봉도 꽃게 파시가 유명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목포 항구축제는 파시 길놀이, 선상파시 경매, 전통한선체험, 노젓기 대회 등이 있다. 

 목포는 민어와 삼합, 세박낙지, 꽃게무침, 갈치조림, 우렁간국, 병어회, 아구탕, 준치무침이 유명하다. 민어는 백성민으로 그 만큼 흔했단 뜻이지만 지금은 귀하고 비싸다. 영문명이 croaker인 만큼 민어는 물속에서 부욱부욱하는 소리를 내기에 과거 속이 빈 나무를 물에 넣고 소리를 들어 잡았다. 민어느 성질이 급해 육지에서 금방 죽기에 활어회보다는 선어 상태로 먹는다. 민어의 뱃살과 부레는 백미이고 7-8월 산란을 위해 북상해 임자도 인근에서 많이 잡힌다. 

 홍어의 홍을 넓은 홍자다. 바다 깊이 서식해 잡기가 어려우며 흑산 홍어가 으뜸이다. 하지만 최근 국산이 적어 대부분 수입산이 거래된다. 흑산도에서는 원산지로 홍어를 싱싱한 회로 먹는다. 그러나 육지로 이송하며 4-7일이 소요된다. 그 사이 홍어가 발효되는데 이게 삭힌 홍어의 유래로 보인다. 홍어와 막걸리는 궁합이 좋아 둘을 같이 즐기는 것을 홍탁이라 한다. 홍어는 물컹거리며 식감이 좋은 홍어코와 아가미가 일품이다. 

 세발낙지는 발이 가늘어서 세발낙지다. 좀 더 크게 갯벌에서 집히는 것이 뻘낙지로 주낙으로 잡은 것보다 인기가 좋다. 낙지는 작은 것을 나무 젓가락에 돌돌 말아 먹으나 큰 것은 산채로 잘라 탕탕이라 한다. 최근 소고기 육회와 낙지 탕탕이를 합친 것을 육회탕탕이라 하며 인기가 좋다. 

 목포 먹갈치는 품종이 다른 것이 아니다. 갈치는 은색이지만 그물에서 서로 부딪히면 상처를 입어 다친 부분이 회색빛으로 변한다. 그래서 다소 까맣게 되어 먹갈치라 하는 것이다..

 목포의 시내에도 먹거리가 있다. 중깐이라는 것이 있는데 목포의 중화루 간짜장을 준말이다. 곱게 다진 야채와 돼지고기를 춘장에 강한 화력으로 볶은 다음 가늘게 뽑은 면으로 만든다. 쏙굴레는 쏙을 빚어 만든 찹쌀떡 경단에 콩고물을 묻히고 묽은 조청에 굴려 먹는 간식이다. 코롬방 제과점은 목포 역 인근의 제과점으로 전국 5대 빵집이다. 

  목포 앞바다에는 삼학도가 있다. 전설이 있는데 유달산에서 수련을 하던 한 청년을 세 처녀가 사모하게 된다. 청년은 수련을 이유로 처녀들을 돌려보내는데 그들이 배를 타고 떠나가자 청년은 자신도 그녀들을 사모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맘을 전하고자 배로 활을 날렸는데 그만 배에 구멍이 뚫려 세 처녀가 죽고 만다. 그녀들은 학으로 변하여 솟아올랐고 지금의 삼학도 자리에 내려앉자 섬으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삼학도는 개항 이후 불법적으로 일본인이 팔리게 된다. 그리고 해방 후 매립되어 섬으로의 기능을 잃는다. 여러 산업시설이 조성되었고 심지어 사창가도 생겨난다. 최근엔 섬사이로 물길을 조성하여 어느 정도 섬의 풍광을 되찾았다. 

  목포의 고하도에는 감화원이 있었다. 일제는 1923년 조선감화령을 내리는데 8-18세 미만으로 불량행위를 하거나 할 우려가 있는 자이면서 친권이 없는 자를 수용대상으로 했다. 우려가 있는자에 친권이 없는자이나 마구잡이로 들여보내기 딱 좋았다. 총독부가 1938년 감화원을 고하도 용머리 해안가에 신축했다. 일제는 친권이 없는 저능아를 수용했다. 환경은 혹독했다. 강제노역과 굶주림을 참지 못해 2년간 도망가다 10명이 익사했다. 도망치다  잡히면 잔혹한 폭행이 이어졌다. 이런 감화원은 광복 후에도 이어져 1954년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140명 지적장애아동을 수용했고 정신감정결과 이들 중 60명이 정상이었다고 한다. 마구잡이로 넣었다는 이야기다. 이 감화원은 대도 조세형이 여기 출신이기도 하며 1967년에야 문을 닫는 흑역사를 가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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