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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의 도시, 난징 지성인들의 도시 아카이브 1
신경란 지음 / 보고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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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오랫동안 하나였던 것 같지만 홍콩과 대만의 분리문제에서 드러내는 단일화 콤플렉스처럼 수차례 분열되었고, 열국이었고, 다른 민족에 침략 지배당한 역사가 제법 길다. 그래서 중국엔 무려 200개 도시가, 지금은 중국사에 편입된 여러 나라의 도읍지였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서울, 경주, 평양처럼 주요 국가의 도읍지였던 곳은 지금의 서안, 뤄양, 북경, 남경 4개의 도시를 꼽는다. 예전부터 왜 북경은 북경이고 남경은 남경인지 궁금했는데(서안이나 뤄양의 북과 남이라 그런줄 알았다.) 주원장이 명을 세우며 남경을 응천이라 했지만 넷째 아들 영락제가 북경을 순천이라 명하면서 서로 어느 곳도 중심이 되지 못한채 북경과 남경이 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송의 조광윤은 개봉을 수도로 하며 그곳을 중경이라 하고 싶었겠지만 뤄양과 서안이 중심이기에 개봉을 동경성이라 명했고, 일본의 에도막부도 에도인 동경을 일본 천황이 있는 교토를 무시할수 없기에 에도가 그 동쪽에 있어 동경이라 칭했다. 그래서 이곳은 오늘날도 도쿄다.

 이 책은 도시 아카이브 시리즈로 지난 번 읽은 베이징의 전편이다.(저자도 같다.) 거꾸로 간 셈인데 이 책 역시 전작처럼 남경이라 불리는 난징의 역사, 문화, 인물, 전쟁, 지리적 요소가 꽉 차 있다. 중국 역사상 강남인 이 곳 난징을 최초로 수도로 삼은 자는 삼국지의 유명인사 오나라의 손권이다. 그 전에 전국시대의 오와 월도 이곳을 중요하게 다루었지만 최초로 도읍지로까지 삼은 것 손권이 최초다. 진시황은 통일 후 전국을 순시하며 금릉이라 불리던 난징을 지나며 왕기가 있다는 소문에 난징의 산맥을 끊고 물길을 내는 등의 행위를 했고 이름도 말릉이라 바꾼다. 이후 버려진 곳이던 이곳을 손권이 위와 매우 인접했음에도 과감하게 도읍으로 정하고 이름도 건업으로 바꾼다. 그럴만했던게 난징은 양자강이 도시의 서쪽과 북쪽을 막아주고 남으로만 뚫려있어 방어에 매우 유리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도 많이 내리고 토양도 좋아 인구부양력도 충분했다.

 손권 이후 송, 제, 양, 진이 남경을 차례로 수도로 삼으며 이곳은 계속 발전한다. 남조왕조들이 위치상 어쩔 수 없기도 하였지만 한족문화권에서 변방인 이곳을 계속 수도로 삼은 것은 아무래도 남쪽 지역의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강수량, 질좋은 토양으로 인한 높은 농업 생산력과 동남아 등으로 이어지는 해로를 통한 교역에서 나오는 경제력과 지역 자체의 풍부한 물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나라의 통일전쟁으로 남경이 파괴되며 쇠퇴기에 이른다. 송, 제, 양, 진의 남조 시절 남경엔 고구려와 백제의 사신이 자주 왕래했다. 고구려 사신의 객관은 현인관, 백제 사신의 객관은 집아관이라 하는데 아무래도 고구려는 북조국가와 인접하니 국방상의 이유로 남조와의 협력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는 남조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와 경쟁하는 백제도 남조를 온전히 고구려에 넘기긴 좀 그랬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문화 수입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남경과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당나라 시절로도 연결된다. 신라 최치원은 어린 나이에 당에 유학과 외국인 국가고시인 빈공과에 합격한다. 이 수제는 남경으로 발령나 율수구와 고순구의 율수 현위가 된다. 최치원은 이곳에 무려 4년간 재직한 후 신라로 향하며 이후 그의 불행한 행보는 우리가 모두 아는 바이다. 

 이어 원나라때도 우리와의 인연이 이어진다. 이번엔 고려말 명장 최영이 주인공이다. 원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 순제 때(기황후 남편이다.)는 승상이 톡토였다. 권력이 막강했던 톡토는 장사성이 농민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자 원 각지에서 군대를 일으키고 힘이 모자랐는지 속국에도 군대를 요청한다. 당시 고려의 친원파 채하중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혼란한 고려의 상황은 고려치 않고 충분히 군대를 동원할 수 있음을 주장하여 고려는 없는 살림에 최영등의 장수와 수천의 군사를 머나먼 원으로 파견한다. 파병 중 북경 등지에서 군사가 크게 불어 군은 2만 3천의 대군이 되고 웬일인지 원의 진압군 80만의 선봉까지 하게 된다. 진압군은 장사성을 거의 물리치지만 기황후에 의해 톡토가 실각하고, 후임 지휘관의 무능까지 더해져 수차례 창에 찔리는 최영의 분전에도 패퇴하고 만다.

 명대에 이르러 주원장이 금릉을 남경이라 칭하고 수도로 삼는다. 그간 남경은 도성의 주축선이 양자강의 흐름에 맞추어 남서-동북방향으로 기울어져 지어졌는데 주원장은 이를 강의 흐름과 상관없이 남북방향으로 주축선을 수정한다. 거기에 남경을 요새화하는데 궁성, 황성, 도성, 외곽성의 4중구조로 성을 쌓았고, 20년 대공사에 규모도 크다보니 무려 3억 5천만개의 벽돌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유명한 자금성도 축조한다. 남경의 자금성은 사실 북경 자금성의 원조격인데 훗날 영락제가 북경으로 도읍을 옮기고 남경 자금성의 설계를 그대로 본따 북경에 자금성을 지었기 때문이다. 영락제는 아버지보다 궁을 크게 짓기 좀 그랬는지 남경 자금성보다 좀 작게 북경에 자금성을 지었다.

 남경엔 그 유명한 정화의 조선소가 있었다. 남경은 바다와 무려 300km나 떨어져있지만 양자강이 바다로 이어지기에 사실상 항구 역할을 한다. 정화는 1405년에서 1432년까지 일곱차례 인도양을 향했으며 선단의 규모도 유럽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정화는 회족으로 주원장이 운남성을 정복한 후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거세해 환관으로 삼은 아이들 중의 하나다. 본래 이름은 무함마드의 이름을 음차해 마삼보였지만 이후 영락제의 눈에 들고 정초패에서 큰 공을 세워 황제로부터 정씨성을 하사받아 정화가 되었다.

 이후 남경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들어서는 것은 청나라 말 아편전쟁으로 인한 난징조약 때다.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패해 19세기 말 3차례 조약을 강요받는데 1차는 홍콩섬 2차는 구룡반도의 영국으로의 영구 할양 3차는 신계를 99년간 임대하는 것이었다. 사실 중국은 이름 그대로 천하의 중심국가로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나머진 모두 동등한 대상이 아닌 속국이자 조공국이었다. 영토도 크고 천하의 중심은 중국은 물산도 풍부하여 교역의 필요성도 딱히 느끼지 못했다. 그런 중국에게 다른 나라와의 대등한 조약이나 무역은 전혀 없는 개념이었다. 특히, 지금과 다르게 당시 홍콩은 쓸모없는 무인도에 가까웠고, 개항이 요구된 상해 역시 요충지이긴 하나 황무지였다. 영국의 관세문제도 청 자체게 무역으로 인한 조세수입이 거의 의미가 없어 조약의 주요조건으로서 무의미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나중에 절실하게 느끼게 되며 중국에서는 천하의 중심국가에서 만국공법의 세계 일부로 강제 편입된 이 사건을 중국의 근현대사의 시작으로 파악하다. 우리에게 강화도 조약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후 남경엔 태평천국군이 들어선다. 이들은 이곳을 수도로 삼는데 수많은 전란과 혼란으로 청대에 백만에 달하던 남경의 인구는 이시기 15만까지 축소된다. 청은 태평천국군을 북경의 팔기군으로 제압하고자 하지만 실패한다. 결국 수가 적은 만주족은 항상 수가 많은 한족 중심의 지방군을 반란의 위험으로 인해 그 사용을 기피하였는데 어쩔수 없이 태평천국군의 진압을 위해 이 지방군에까지 의존하는 상황에 이른다. 증국번 주도의 호남성 상군은 20여년간의 사투끝에 태평천국군을 진압하게 되고 이는 결국 청의 병권이 한족 중심으로 넘어가는 결과를 낳고 만다. 태평천국군은 무려 1-3만이 해외로 도피하는데 그 지역이 칠레다. 이들은 초석탄광 계약자로 노예처럼 일하다 이후 초석전쟁에서 칠레군으로 참여해 승전한다. 그래서 현재 칠레 북부 이키케 지역엔 이들의 후예가 무려 10만이나 있다.

 청이 망하고 남경은 중화민국의 수도가 된다. 손문과의 약속과 달리 북양군 출신의 원세개가 황제에 오르며 긴 투쟁이 시작되고, 이후 손문의 후계자인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군과 만주국의 세운 일제의 침략군, 그리고 마오쩌둥의 공산군이 뒤섞이며 중국은 혼란의 20세기 초반을 보내게 된다. 망국 이후 임시정부를 세운 김구와 김원봉이 주로 활약한 곳이 바로 남경이다. 장개석은 황포군관학교의 교장으로 있었고 그 시절 졸업생을 우대했는데 김원봉이 바로 그 학교 졸업생이었다. 또한 김구 역시 윤봉길의 상해 훙커우 공원 의거로 장개석에 인정받고 크게 지원받는다. 김원봉은 조선혁명간부 훈련반을 개교했는데 재밌게도 시인으로 알려진 이육사가 이 학교 제 1기 졸업생이었다.

 1937년 일제는 남경을 침략하고 함락시킨다. 이는 천인공노할 난징대학살로 이어지는데 희생자는 적어도 30만 이상으로 추정된다. 중국군은 끝까지 싸우도 적절한 퇴각시기를 놓치는데 이로 인해 질서정연한 후퇴에 실패해 상당수의 패잔병이 도시 전역으로 숨어들게 된다. 일본군은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을 시작한다. 상해, 약탈, 강간이 무자비하게 이뤄졌다. 이때 난징판 쉰들러 리스트가 있었는데 바로 욘 라베다. 나치당원인 그는 일제의 남경침략후 자국민 보호를 위한 각국의 소개명령에도 20여명과 남아 남경안전구역 국제위원회를 설립한다. 민간기구였음에도 이 기구는 힘이 있어 약 4만제곱 킬로미터의 면적에 25개 수용소를 만들고 약 30만을 보호한다. 라베는 이후 일본의 압력으로 독일에 귀국해 존 메기가 목숨걸고 촬영한 남경대학살 필름을 독일 각지에서 상영하고 라베일기도 출간한다. 하지만 일본과 독일이 함께 전쟁하던 시기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져가다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에 의해 재조명된다. 일제는 난징대학살 외에도 1644부대라는 남경판 731부대를 만들어 무려 1천명의 중국인을 생체실험으로 희생시킨다.

 이처럼 난징은 중국 역대 왕조의 수도로 자리매김하면서도 현대사의 아픔을 갖는 중국의 도시지만 문화측면에서도 매력적인 도시다. 본래 강남은 쌀이 주식이고, 민물고기를 주로 먹었는데 북조의 인사들이 남조로 내려오고 교류가 이뤄지면서 오리고기와 잡곡을 이용한 요리도 시작되었다. 강남의 경제력을 바탕에 남조의 귀족문화가 합쳐져 여러 요리법과 조리도구가 경쟁적으로 발전하여 요리문화가 발전하였다. 여기에 해안으로부터 들어오는 요리에 원나라 때 회족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의 입맛이 합쳐지며 매우 다양한 요리문화를 갖게 되었다. 남경은 특히 딤섬이 유명한대 본래 딤섬은 배고플 때 요기하는 떡이나 부침개 정도를 의미했다. 하지만 차를 마시는 문화가 들어오면서 딤섬은 차를 마실 때 곁들이는 간단한 요리로 변화하고 이게 영국에도 영향을 미쳐 차에 곁들이는 애프터눈 티 과자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책엔 여기서 정리한 내용 이외에도 남경의 거의 모든 것이라할 만큼 자세한 내용은 잔뜩 실려있다. 난징을 한 번 가고픈 마음이 드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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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grr 2021-01-05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좋은 날이 와서 선생님의 난징 방문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2021-01-05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1-05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시 하나를 중심으로 역사를 풀어가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닷슈님 덕분에 좋은 책 하나를 또 얻어갑니다. ^^

닷슈 2021-01-05 08:59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이렇게 도시 하나를 두고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도시아카이브 시리즈1권입니다. 2권 나가사키, 3권 베이징 이렇게 나왔더군요. 저는 난징과 베이징을 읽었습니다. 작가분이 중국에서 오래 공부하셔서 그런지 중국의 도시에 대해서 정말 아는게 많으십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그 도시의 모든 것이 재밌고 밀도있게 담겨 있습니다.
 
오래된 미래도시, 베이징 지성인들의 도시 아카이브 3
신경란 지음 / 보고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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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중국 수도 베이징을 역사상 처음 도읍으로 삼은 왕조는 고려를 침입한 금나라였다. 그들은 베이징의 이름을 중도라 했고 이후 베이징은 금을 멸한 원, 그리고 그 원을 멸한 명, 또 명을 멸한 청, 그 청을 멸한 지금의 중화민국까지 무려 천 년간 중국의 수도로 자리잡아 왔다. 이러면 마치 베이징이 오랫동안 중국의 중심지였던 것 같지만 사실 중국의 중심지 중원은 황하 중상류지역이다. 지금은 고도로 크게 발달하지 못한 뤄양이나 시안이 그곳이다. 

 중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에게 베이징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힘이 뻗치지 못하는 변경지역이었다. 베이징은 과거엔 연경이라 불렸는데 이 지역은 오래전엔 지금과는 해안선이 달라 북쪽으로 지역이 열려있어 유목민들이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때문에 연경에는 유목민인 산융문화유적이 지금도 다수 남아있다. 추후 농경민들의 힘이 이 지역까지 도달하며 산융은 밀려나는데 이들으 흉노문화에 흡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한족, 즉, 농경문화의 힘이 베이징을 본격 흡수한 것은 주나라 때의 일로 처음으로 베이징에 제후국을 설치한다. 연과 계나라다. 연경이란 이름도 연나라에서 비롯되 것이다. 계가 백여년이 지나 연에 흡수되고 연은 인구가 150만 정도에 달할 정도로 강성해진다. 하지만 진이 통일한 후 끝까지 정항하던 연과 조, 제나라의 수만 가구가 조선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조선과 가장 인접한 연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조선으로 넘어와 훗날 왕위까지 찬탈하는게 위만이다. 

 베이징은 수당대에 이르러서는 유주의 중심지역으로 수와 당군이 고구려를 침략할때 군사집결지로 활약하게 된다. 당 말기엔 베이징을 근거지로 큰 난리를 피운 안록산이 등장한다. 삼국지의 동탁과의 혼동때문인지 난 이전엔 안록산도 동탁처럼 서북면의 군웅으로 착각했었다. 하여튼 안록산의 난으로 큰 고생을 치룬여파인지 훗날 상당기간 연경지역은 배반자의 땅으로 낙인을 찍혀 조정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된다. 

 세월이 흘러 거란이 등장한다. 거란은 세력을 뻗쳐 발해를 멸하고 연경 지역까지 확장한다. 중국 역사에서는 한족의 입장에서 거란에게 송이 연운 16주를 할양한 것을 굴욕으로 여긴다. 연운 16주란 만리장성과 상건하를 따라 동서 600km 남북200km에 달하는 지역으로 한반도의 절반가까이 되는 광활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베이징이 그런 것처럼 농경문화와 수렵문화의 접점이다. 농경에엔 북방 최후의 보루, 수렵민에겐 물산이 풍부한 남으로 진출하는 지역이다. 저자에 의하면 송의 연운 16주 할양은 사실 이미 2주를 빼앗긴 상태에서 14주를 넘긴 것이고 이미 14주 역시 송이 아닌 다른 세력에 빼앗긴 상태에서 그가 거란과 협력하에 거란의 힘을 통해 차지한 14주를 넘긴 것이기에 할양은 과도한 한족 중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거란은 송과 계속 대치하다 999년 거란의 남하에 송이 반격하여 무려 10년의 대치끝에 절연의 맹이란 강화를 맺고 100년의 평화기간을 맞이한다. 송은 평화를 대가로 거액의 물품을 매년 거란에 상납했고, 거란과의 무역을 통한 이문으로 바친 물품 이상의 혜택을 누리는 양자가 성공하는 거래였다. 평화 후 거란은 발해의 5경제도를 본따 베이징에 남경을 설치한다. 남경이 발전하는데는 여성인 소작의 힘이 컸다. 거란은 황제는 야율씨 그리고 황후는 소씨에서 배출하는 나라였는데 소작은 어려서 남경에서 자라 국제적 감각을 키우고 농경문화를 잘 이해하여 곡물생산량을 늘리고 과거제를 실시한다. 

 여진의 금이 등장하자 평화는 깨진다. 여진의 금은 125년 역사동안 115년을 송과 전쟁한다. 송은 처음에 숙적 거란을 멸하는데 금과 협조하기로 맹약한다. 대가는 오래전 잃은 베이징 지역인 연운 16주의 획득과 평화였고, 금이 얻는 것은 요의 나머지 영토와 매년 대량을 물품상납이었다. 하지만 당시 대지주의 토지겸병과 이에 따란 농민 반란으로 송은 군대 동원에 어려움을 겪는다. 간신히 협력하여 금과 송에 의해 요가 망한다. 금의 완안아골타는 연운 14주를 넘겨주지만 완안아골타의 뒤를 이은 금 태종이 송의 허약함을 목도하고 공격한다. 송은 형편없는 전쟁실력으로 황제 휘종과 그 아들 흠종이 금에 사로잡힌다. 수도 개봉 역시 함락되고 지금의 항주로 수도를 이전하며 새황제가 등장하는데 이름이 남송으로 바뀌는 계기다. 하여튼 연운 14주와 송의 북부를 차지한 금은 베이징을 중도라 개명하고 수도로 삼는다. 

 세월이 다시 지나 1234년 몽골에 의해 금도 멸망한다. 전쟁은 무려 20년간 지속되었는데 송은 원수같은 금을 멸망시키는데 역시 몽골에 협조한다. 하지만 몽골 역시 송의 허약함을 알고 경제력이 풍부한 강남을 차지하기 위해 송과의 45년 전쟁에 돌입한다. 이 전쟁은 처절했는데 최후까지 항전한 송나라 사람이 무려 20만이었고 최후의 황제는 자살한다. 중국전토를 차지한 몽골은 국호를 대원으로 고친다. 원은 중국 역경의 첫 괘이자 하늘을 상징한다. 몽골 민족 역시 텡그리 신앙으로 하늘의 뜻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원이란 글자는 농경문화와 유목문화 모두를 만족시키는 명칭으로 양자에세 손쉽게 채택되었다. 

 원은 베이징을 대도라 명명하고 대대적 수도 건설에 임한다. 금의 중도와는 비교가 안되는 규모였다. 커다란 외성을 사막의 느낌으로 흰색으로 채우며 자금성을 완성한다. 그리고 물이 부족한 베이징 내로 수로를 내기 위해 베이징 동서북의 계곡물을 모두 뒤지고 찾아내고 수로를 연결해 옹산박이란 거대한 호수를 조성하고 여기에 물길을 내어 베이징 시내로 끌어내었다. 이 물길은 방향과 형태가 조금씩 바뀌지만 명청대를 이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원은 사막민족의 나라이므로 물이 귀해 궁의 한가운데 호수를 조성한다.

 원이 망하고 명은 대도를 손쉽게 차지한다. 원의 순제가 생각보다 손쉽게 대도방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명은 처음엔 북방왕조의 수도였던 베이징을 수도로 삼지 않는다. 이민족인 북방왕조의 수도이기도 했고 아직 강성한 몽골세력과 워낙 근접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원장은 아들중 가장 전투력이 막강한 넷째 주체를 연왕으로 삼아 연경에 배치한다. 연경을 세력권으로 둔 주체는 훗날 조선의 이방원과 매우 비슷하게 왕위를 찬탈하며 수도 역시 다시 베이징으로 옮긴다. 물론 원대의 거대한 자금성은 크기가 줄어든다. 자금성의 중심이었던 호수는 바깥으로 밀려나고 좀더 조밀해져 생활 및 활용이 더욱 편리해지게 된다. 자금성의 역사는 사실 화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명 230년동안만 무려 화재가 47번으로 평균 5년에 한번이었다. 자금성 자체가 워낙 거대하고 매 화재마다 명황제들은 중건을 반복하지만 국운의 쇠퇴와 재정난으로 원하는 수준의 중건은 이루지 못한다. 

 또 세월이 지나 마지막 왕조 청이 등장한다. 금이 중도를 건설하고 수백년이 흘러 다시 여진이 베이징을 차지한 것이다. 물론 금을 세운 여진과 만주여진은 매우 다르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청은 강력한 군사국가인만큼 전 왕조들과는 다르게 베이징을 병영도시 개념으로 세운다. 청의 막강한 군사력은 팔기에서 나왔는데 이 팔기가 베이징에 주둔하도록 도시 전체를 8로 나누어 팔기를 주둔시킨 것이다. 팔기는 1기가 무려 7500명의 병력으로 상비군으로 유사시 무려 5-6만의 친위군 동원이 가능한 셈이었다. 팔기는 황제 직속의 2기와 황족과 귀족이 이끌며 경쟁하는 6기로 서로간의 경쟁으로 전투력이 막강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신흥귀족인 팔기는 평생 급여가 보장되고 평화가 지속됨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유명무실화한다. 훗날 외세의 침략에 대포 소리 한번 듣고 가장 먼저 도망간게 팔기들이라고 한다. 청대엔 자금성 내에 원명원이 생겨난다. 원명원은 중국의 원림과 서양식의 다양한 궁전들이 총망라한 대규모의 정원이다. 하지만 아편전쟁때 불타고, 의화단 전쟁때 완전히 망가져 지금까지도 복원이 되고 있지 않다. 

 베이징은 유목과 수렵문화가 만나는 지역이고 국제적 도시여서 매우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베이징에서 제1의 종교는 불교지만 제3의 종교는 이슬람교다. 이슬람 신자는 카타르인, 위구르 인 이외에도 회족이란 이름으로 중국 각지에 분포하며 베이징에만 무려 20만이 산다. 중국 왕조, 특히 개방적이었던 북방왕조들은 이슬람을 인정해주었는데 지금도 중국 각지에 기와를 얹은 독특한 중국식 모스크가 각지에 존재한다. 원대에 널리 퍼진 무슬림은 고려에도 꽤 많았던 듯 하다. 고려말은 물론 조선 세종때까지만 해도 이슬람의 대표적 송축 의례가 있었다고 한다. 세종9년에야 중지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책은 300쪽 정도로 짧지만 베이징엔 대한 역사, 지리, 인물, 왕조의 흥망이 자세히 수록되었다. 베이징에 대한 정보와 지식으로 꽉 찬 셈이다. 도시 아카이브 세 번째 시리즈인듯 한데 나머지 책도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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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4 0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닷슈님 베이징에 제1종교가 불교였어요 !유사시에 상비군을 오천 육천명도 아닌 만단위로 ㅋㅋ베이징이라고 하면 자금성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아직도 중국에대해 역사에 대해 모르는게 너무 많네요 닷슈님 포스팅 덕분에 새로운 사실들 많이 알게 되네요닷슈님 크리스,메리 메리
ᒄ₍⁽ˆ⁰ˆ⁾₎ᒃ♪♬

닷슈 2020-12-24 16:37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을 보고 중국과 베이징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가깝고 중요한데 아직 많이 모른단 생각입니다. 스콧님도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이전 호빵글은 참 좋았습니다.

shingrr 2020-12-24 1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쓴 신경란입니다. 책을 읽어 주시고 이렇게 소개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닷슈 2020-12-24 16:38   좋아요 0 | URL
헉, 저자님이 왕림해주시다니. 놀랍습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저야말로 많이 배웠습니다. 차기작 기대해봅니다.

shingrr 2020-12-24 17:5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선생님께 알라딘 편지 보내는 기능을 이용해서 편지를 드렸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같은 시리즈 난징 책도 제가 썼습니다. 한 권 부쳐 드리려고 합니다. shingrr@163.com으로 주소 보내주시면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 -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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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새 책이 나왔다. 단숨에 구입해서 읽었는데 이전 문명 3부작 시리즈와는 좀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다소 두껍다는건 비슷하지만. 이번에 소재로 삼은 것은 개인이 살면서 맞는 위기와 그 대응단계를 국가가 맞는 위기와 대응단계로 맞대응해서 틀을 짜 책을 썼다는 점이다. 과거 위기를 맞고 대응 및 극복한 국가로는 핀란드, 메이지 시대 일본, 독일, 칠레,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례를 들었다. 모두 저자가 직접 체류한 적이 있는 국가들이다. 다음으로는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들고 마지막으로는 전세계적인 위기와 그 대응 방안을 서술했다. 세계가 위기를 맞고 있고 이를 극복하려는 방안을 찾는다는 그의 큰 사고 틀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읽고나서 개인적 위기 대응단계와 국가의 위기 대응단계라는 공식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억지로 꿰어맞춘정도는 아니지만 이론화하여 대입할 정도는 아니랄까. 하지만 워낙 재밌게 어려운 내용을 서술하는 저자라 각 국의 역사전 변화와 이야기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만족스럽고 재밌었다. 솔직히 핀란드, 칠레, 인도네시아 정도의 국가에 대해서 우린 많이 알지 못한다. 일본, 독일, 오스트레일리아도 마찬가지겠지만. 다 정리하긴 좀 길어 재밌는 국가만 정리해보았다.

 

1. 핀란드

 우선 핀란드. 핀란드하면 휘바와 자일리톨, 망한 노키아, 높은 국민소득과 복지, pisa에서 1위를 좀처럼 놓치진 않는 강력한 공교육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나라가 마땅히 서유럽의 일익을 담당하면서도 NATO 가입국이 아니란건 좀 의외다. 그 이유는 이들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찾을 수 있다. 핀란드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나라꼴이 엉망인 상태에서도 세계 최강국 미국을 상대로 감히 한국전쟁에 큰 손실을 감수하고 뛰어든 이유가 북한을 순망치한으로 여긴 것처럼 러시아에게도 국경을 맞댄 핀란드는 그런 곳이었다. 차지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위협적인 존재는 확실히 아니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핀란드는 나토가입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구 소련을 비방하는 언론통제까지 한다. 생각외의 장면이 아닐수 없다.

 물론 그들이 첨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핀란드는 헝가리처럼 유럽에서 독특하게 유럽인도어족이 아니다. 아마도 천여년전에 유럽을 침공한 아시아계 북방민족이 정착하여 만든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정체성은 매우 독특하며 오래도록 강국인 스웨덴과 러시아의 속방이면서도 자주성을 잃지 않았다. 그들을 오래지배한 러시아도 그래서인지 자치를 허용했다.

 1차대전 이후 유럽의 국경이 변하면서 이들은 독립한다. 하지만 소비에트로 변한 러시아의 위협이 여전했고, 이에 발트 3국은 러시아에 굴복하여 합병된다. 반면 핀란드는 저항을 택한다. 인구는 러시아의 20분의 1, 국토나 무기수준역시 비교가 안되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긴전쟁으로 핀란드는 큰 손실을 입는다. 10만명이 전사하는데 인구가 많은 동아시아의 전쟁규모에선 별거 아닌 수준이지만 당시 인구가 200만 정도에 불과한 핀란드에선 대형참사였다. 그럼에도 오래 저항했기에 2차대전을 준비해야 하는 소련의 상황상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은 핀란드 지도자들에게 대소비에트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한다. 2차대전 이후 핀란드는 잠시 되찾은 과거의 영토를 다시 소련에 선뜻 돌려주었고 아프지만 영구히 포기한다. 정책 역시 친소련정책으로 나토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소련의 대서방창구역할마져 수행한다. 이에 소련은 안심하고 전쟁 배상금을 줄이고 연기까지 해주었으며 소련과 국경을 인접한 국가로는 유일하게 공산정권을 세우지 않는다. 서구와 단절되면서도 그들의 발전상이 궁금하면 감시해야 할 소련으로선 오히려 핀란드가 우방이면서 서구를 접할 창구가 되는게 오히려 좋게 되어버렸다.

 핀란드 사람들은 친소련정책으로 언론통제는 물론, 일정 액수 이상의 소련 제품을 구매해야만 했는데 이를 원유로 대체하여 오히려 서방국가에서는 유일하게 오일쇼크나 중동의 불안정한 정세에서 자유로울수 있었다. 이 같은 핀란드의 지정학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미국의 우방이지만 이로인해 중국에 위협이 된다. 미국은 멀고 경제적 영향력도 점차 예전만 같지 않지만 여전히 중요하며 강하다. 하지만 중국은 바로 우리의 지척이며 국경을 맞대고 바다마저 가까워 보호막이 되지 못하며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인접한 강국에 만만치 않은 국방력을 갖춰 무시하지 못하면서도 적이아니어서 근심을 덜어주는 것은 우리가 맞이해야할 지정학일런지도 모른다.

 

2. 오스트레일리아

지구상에서 가장 최근 생긴 국가중 하나다. 아직도 국가수반이 영국여왕이며 지폐인 그의 얼굴이 새겨진다. 200여년 전에 죄수의 급증으로 골치아픈 영국인 수인선단은 보내 정착한 후, 나라가 생겨났다. 이들은 처음부터 한나라는 아니었으며 지리적 격리로 인해 6개의 식민지로 성장해간다.

 호주는 미국과는 달리 영연방에 강한 소속감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아무상관도 없어보이는 1-2차대전에 참전한다. 영국이 영연방 국가들에게 외교적 자치권을 허락했을때 남아공과 캐나다등이 발빠르게 외교관을 파견한 반면 호주는 그렇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쇠락해가는 영국은 호주를 지켜주지 못한다. 적지 않은 인원을 파견해 피를 흘렸음에도 영국은 일본의 침공을 맞아 수적 우세에도 싱가포르 기지를 지켜내지 못한다. 심지어 항복이었다. 이는 호주에 영국에 대한 큰 배신감으로 다가온다. 일본의 위협을 느꼈던 호주는 2차대전 당시 파견 군대를 본국으로 돌려보낼 것을 처칠에 요구했으나 그는 싱가폴 기지가 있고 영국이 수호할 것을 천명했었다. 물론 이는 영국이 각국에 날린 무수한 무책임한 빈말중 하나였다.

 오판의 결과 호주는 일본에 다윈이라는 도시를 폭격당하고, 적이 지척까지 진군해오는 것을 목격한다. 호주는 큰대륙이었지만 당시 인구가 고작 400만 정도에 불과했던데 반해 일본은 무려 1억이었다. 거기에 중국은 무려 10억 정말 가까운 인도네이사 마져 2억의 인구를 자랑했다. 텅빈 땅이 가득한 호주는 전쟁중에도 전후에도 이들의 러시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농경이 기본인 이 민족들은 사막이 전부인 호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호주는 그래서인지 미국에 조금 모자라는 영토를 갖고도 현재도 인구가 2천만 정도에 불과하다.

 영국의 배신은 전후에도 계속된다. 당시 유럽은 유럽경제공동체를 설립했는데 잠시 망설이던 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여기에 가입한다. 유럽경제공동체는 공동체 국가끼리는 비관세를 하면서도 다른 국가에는 관세벽을 세워야 했는데 이로인해 호주는 그동안 관세없이 수출하던 영국에 관세를 지불하게 되었다. 호주의 농축산물이 덴마트나 독일 등의 제품으로 대체된단 이야기다. 영국의 경제적 중요성은 날로 멀어져갔고 가까운 아시아의 위상과 경제력은 날로 커져갔다.

 여기에 모자란 인구를 보충하고자 동류럽 및 다른 유럽인들은 대거 받아들인 결과 영국 직계로만 구성되던 인구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래저래 영국과는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백호주의를 포기하고 많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받아들였으며 축구마져 AFC에 가입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국가수반은 영국여왕이며 영연반의 국기를 사용한다. 호주는 아직 정신을 못차린 것일까.

 

3. 칠레

칠레는 긴나라다. 안데스의 서쪽을 차지해 동쪽은 자연방어가 되며 북쪽은 한류로 인해 아타카마 사막이 자리한다. 그리고 태평양 방면으로는 이렇다할 나라가 없다. 지정한적으로 완벽히 안전한 것이다.

 칠레는 북은 사막이고 동은 상당히 높으며 남은 추운 관계로 영토가 제법 큼에도 인구의 대다수가 중부인 수도 산티아고 인근에 몰려있다. 이런 지리적 집중성과 인구의 대다수가 메스티소인 동질성은 칠레의 정체성 확립과 통합성에 기여했다. 칠레인들은 스스로를 남미인이라기 보다는 유럽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아메리카 원주민에 더 가까워 보이는 그들의 외모와 대서양과 동떨어진 그들의 위치를 생각하면 다소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하여튼 칠레는 소수의 대규모 농장주들이 권력을 지배한 남미국가임에도 민주적 통치가 자리잡았다. 칠레의 독특한 점은 그럼에도 독재가 생겨나 성행했다는 것이다. 여기엔 사회주의 아옌데 정권이 적잖은 이유를 제공한다. 당시 칠레는 사회주의 세력과 소수의 중도파, 우익이 서로 비등하게 자리잡아 아웅다웅 다투는 형국이었다. 어느쪽도 주도적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는데 이로 인해 아옌데 역시 40%가 되지 못하는 지지를 얻고 간신히 대통령이 된다. 지지기반이 확고하지 못했던 것.

 그럼에도 아옌데는 사회주의 정책을 실행한다. 복지를 늘리고 지출을 늘렸지만 경제적으로 고립되고 화폐를 남발해 실업률이 급증하고, 적자와 인플레이션이 성행한다. 우리나라가 그렇듯 이런 흔들리는 나라에선 군부가 역사의 시계추를 뒤흔든다. 칠레의 군부역시 쪼개져서 사회주의에 경도된 장교와 우익 장교, 중도장교가 있었다. 우익은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를 몰아내고 그는 자살한다. 우익은 아옌데와 정반대의 정책을 실행해 사회주의 정권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던 미국을 안심시키고 그들의 경제원조를 얻어낸다. 경제역시 나쁘지만 호전된다.

 불안한 아옌데 정권에 실망하던 지식인들과 경제인들도 쿠데타를 환영했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치 못한 것은 우리나라의 박정희 처럼 그들이 지도자로 삼은 피노체트가 권력욕이 강하고 무척 잔인했다는 점이다. 피노체트는 무척 조용하고 온건한 사람으로 여겨졌으며 그래서 군부로부터 선택받았지만 비밀경찰대를 만들고 반대파를 척살하고 고문살해하며 자신의 정권을 지켜나갔다. 피노체트는 막판 선거에서의 실패로 종신집권엔 실패하였지만 그럼에도 종신상원의원직을 얻었으며 지지세력도 40%를 상회했다.

 이로인해 다시 민주정권을 되찾은 칠레에서도 과거의 비밀경찰 조직과 피노체트에 대한 단죄는 언급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4.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 중 하나다. 역사와 전통이 없다는 것 국가정체성과 민족성이 부재하단 이야기이고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지고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존재하는 이 나라의 현실은 이를 더욱 어렵게 한다.

 이런 인도네시아에 국가적 정체성을 심은 이가 수카르노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이후 이뤄진 선거에서 칠레마냥 네개의 정당이 비슷한 지지를 얻는 형편없는 결과를 얻는다. 투표율이 높았음에도 말이다. 이를 타개하고자 정권을 잡은 수카르노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인도네시아는 국가의 관리가 필요한 교도적 민주주의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신규 국가엔 산적한 문제가 많았음에도 수카르노는 의외로 바깥으로 화살을 돌린다. 내부의 혼란을 외부에 사건과 적을 만들어 단결을 시도한 것일까? 그는 유명한 반둥회의를 통해 제3세계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반식민정책을 내세운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제1세계마냥 약한 나라를 침공하여 식민화한다. 뉴기니와 티모르가 그들의 타겟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역사와 전통을 가진 말레이시아 마져 공격한다. 보르네오 섬을 통째로 먹을 요량이었던 것.

 그러던 중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들의 쿠데타는 우리나라 갑신정변 마냥 소란스럽기만 하고 영양가가 없었는데 이를 빌미로 우익은 쿠데타를 바로 진압하고 좌익 사냥에 나선다. 이 중심에 선게 수하르토다. 둘은 이름도 비슷하다. 우익의 반격이 너무나도 거세고 신속하며 계획적이어서 다이아몬드는 지금의 터키 쿠데타처럼 이 쿠데타는 일종의 숙청을 위한 기회 및 함정이었을 거라 본다.

 정권을 차지한 수하르토는 내치에 집중했는데 인도네시아의 산적한 문제는 많이 해결했지만 군부로 인해 정권을 차지한 만큼 군부에 지나친 특혜를 제공한다. 이로 인해 군부는 많은 예산을 착복하였고 인도네시아는 나라의 발전이나 복지에 써야할 동력을 잃어간다. 나라 전체는 부패가 가득했고 빈부격차는 커져간다. 잘나가던 수하르토는 아시아 경제위기로 인해 갑작스레 실각하는데 많은 가족의 비리에도 불구하고 지지세가 여전히 만만치 않다.

 

5. 현재의 위기

다이아몬드는 현재의 위기를 정리하며 일본의 경우는 과도한 국가부채와 고령화 및 저출산, 이민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많은 인구로 인한 자원부족과 과거 전쟁범죄에 대한 미인정으로 인접지역에 우방을 만들지 못한 것을 든다.

 미국의 경우는 적이 없음에도 자신들의 정치적 양극화, 불평등의 고착을 위기의 요인으로 든다. 최강자의 적은 자기 자신이었는지 의외로 중국의 위협은 미국국내이 위협보다 적은 위기 요인으로 생각한듯 싶다.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는데 이로 인해 주요 행정업무의 진척이 없고, 우리가 목도한 것처럼 예산조차 수립하지 못해 정부가 셧다운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선거도 무한 경쟁이고 사실상 법적인 선거기한이 없어 정치인은 당선되자마자 바로 선거운동에 돌입하며 실제로 그들의 정치활동의 80%가 선거운동이라하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거기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거구 조정이 매 선거마다 가능하다는게 놀라웠다. 가장 발전한 민주국가의 정치적 수준이 의외로 많이 낮았던 것.

 현재 세계의 전체적 위기로는 온난화와 핵무기, 불평등, 자원문제들을 예로 든다. 역시 환경에 민감한편인데 전세계 모든 사람이 미국같은 제1세계의 소비수준에 도달한 다면 우리는 지금 기준으로 800억 인구를 부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지구가 감당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거기에 온난화로 인한 환경변화와 강을 공유하는 국가들은 물부족 문제로 분쟁에 휩싸이기 쉽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고원에서 발원하는 수계에서 시작한 강에 의존하는데 이 강은 동남아 여러 국가를 관통한다. 온난화로 빙하가 모두 녹거나 수자원 문제로 한 나라가 강에대한 통제를 시작하면 분쟁은 피할 길이 없다. 온난화나 환경변화와 관련하여 의외로 핵발전소를 조심스레 옹호하는데 최근 미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을 목도한 나로선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책은 유명한 저자의 글인 만큼 재밌고 빨리 일을 수 있다. 각국의 역사적 위기와 대응을 잘 정리한 그의 노력도 대단하다. 덕분에 공부가 많이 되었다. 하지만 이론적 틀 부분에서 좀 부족함이 들고 이번 책역시 훌륭하지만 과거의 전작만큼의 임팩트가 없는 것도 사실이어서 다소 아쉽긴 하다. 어느덧 80이 넘은 그이기에 이 책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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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6-25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의 노력이 대단하지만 ‘과거 전작만큼 임팩트가 없단’ 말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 저자가 사기꾼이라는 심정에 한 표 겁니다. ^^

gajjaegas 2019-08-04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다이제스터 님께 묻습니다. 해당 저자가 왜 사기꾼인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책을 구매하는 데에 참고하려고 합니다.
 
지정학 - 지금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최린 옮김 / 가디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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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지정학의 관점에서 현재의 세계의 공통문제점들과 세계 각 지역별 구체적 사건들 그리고 향후 미래 인간문명이 겪을 장애물에 대해 짤막하게 다룬 책이다. 각 장들의 제목은 무척 맘에 들었는데 길이 자체가 길지 않은 책이라 논의가 그리 깊지 못하다. 지리와 세계적 사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크게 얻을 게 없는 책이다.

 그래도 몇가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얻기는 했다. 그점만 정리했다.

 

1. 늘어나는 국가수들

지금 생각하기엔 좀 상상이 안되지만 불과 1950년대만 하더라도 지구상의 국가사는 50여개에 불과했다.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이며 큰 나라에 여러 민족이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에서는 무려 200개가 넘을 정도로 국가수는 지난 50여년간 크게 증가했다.

 국가가 충분히 늘어났음에도 아직도 세계 각지에선 분리에 대한 움직임이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런 분리를 민족이나 종교, 문화, 인종적 요소로 많이 생각하지만 책은 근저에는 사실 경제적 이유가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대개 분리를 원하는 지역들은 한국가내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정체성을 달리하기도 하지만 부가 유난히 집중되어 있거나 천연자원이 몰린 지역인데, 석유가 몰린 남수단이나 남부 나이리지라, 부유한 캐나다의 퀘벡과 스페인의 카탈루냐, 그리고 브렉시트로 경제적 손해를 보게된 스코틀랜드 지역이 그러하다. 

 때문에 분리주의는 자신들의 경제적 부를 한 나라로 억지로 묶여 다른 지역과 나누고 싶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이로 인해 그러한 시도는 대부분 분쟁을 낳으며 내전으로 이어진다. 또한 선진민주국가는 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분리시도는 중앙정부에 의해 힘으로 눌려진다(스페인만 봐도 그랬다.)

 

2. 천연자원의 저주

오래도록 천연자원이 많은 지역이 가난한 것이 풀기힘든 난제였다. 반면 한국과 일본처럼 천연자원 하나 없는 나라가 세계의 부국이 된것도 역시 난제였다. 20세기 초반까지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세계적 강국이자 부자국가였다. 하지만 20세기 중후반들어 이 같은 상황은 변화한다.

 우선 원료가 풍부한 나라는 그 원료로 인해 얻는 수입을 두고 관리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 부를 그 지역 사람만 누리느냐, 아니면 전체가 누리느냐의 문제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이로 인해 분리주의도 나타나며 내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는 부패와 사기가 자주 발생하며 네덜란드 증후군도 생겨난다. 네덜란드 증후군은 자원의 수출실적으로 많은 흑자를 벌어 자국의 통화 가치가 상승하는 바람에 다른 분야의 국제경쟁력이 상실되는 것을 말한다. 거기에 자원에의 의존으로 기술개발이 소홀할 경우 그나라의 국제경쟁력은 더욱 추락할 것이다.

 때문에 천연자원을 가진 부국은 나라전체가 그 자원으로 먹고 살수 있을 만큼 자원이 많지 않아 기술개발에 힘써야 하고, 더불어 그 자원을 잘 관리하고 분배할 만한 선진정치체계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나라로는 미국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3. 군의 민영화

군사력은 과거 국가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안전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세계의 국방비는 뻥튀기한 통화량만큼 커졌지만 그 효과는 예전만 못하다. 핵무기로 인해 비대칭 균형이 발생했으며 한 나라의 민족을 완전히 말살하거나 복속시키는게 거의 불가능해진 만큼 한 국가를 점령하여 통치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테러집단의 공격은 막강한 군사력을 무색케 한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세계 각국은 자신의 국가안보에 직접적 위협은 되지 않으나 간접적 위협이 되는 테러같은 세력을 응징하고 자국민의 사망자숫자에 민감한 자국언론을 달래기 위해 군을 아웃소싱한다. 즉, 군의 민영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민영화된 군사업체는 이런 국가의 군대의 여러문제로부터 자유로우나 세계 평화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도 충반하다. 우선 이들이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기에 자신들의 매출 증대를 위해 평화적으로 해결될수 있는 갈등의 해결을 지연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은 민간 기업이기에 여러 인도주의적 규칙의 적용을 받는 전쟁규칙에서도 제외가 된다.

 이런 민영화된 군사업체는 이런 면에서 세계 평화를 저해할 수 있으며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군이 기계화되는 시대에 더욱 맹위를 떨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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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지리 - 지리로 포착한 세계경제 40장면, 2019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미야지 슈사쿠 지음, 오세웅 옮김 / 7분의언덕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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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책은 적어서 늘 소중하다. 저자는 일본인 학원강사인데 일본에서는 지리 교과를 많은 고교에서 아예 개설하지 않을 정도이며 지리를 가르칠 교사도 매우 부족해 다른 교과의 선생이 가르치고 있는 일이 허다하고 한다. 지리가 역사이상으로 중요함에도 지리 대중서나 인재가 부족한 것은 아무래도 역사나 다른 비슷한 분야에 비해서 대중적 인기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다. 어디서 역사 좋아한다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지리 좋아한다는 사람은 사실 드물다. 

 이 책은 다섯가지 주제로 책을 풀어내는데 입지, 자원, 무역, 인구, 문화다. 벌써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모음 글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고 위 다섯가지를 일관되게 풀어내는 하나의 큰 흐름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냥 따로따로인 글을 읽는 느낌이었으며 자원 부분을 보다가도 내가 자원부분을 보고 있다는게 잘 의식이 안될 정도였다. 기대가 너무커서 실망도 컸는데 그렇다고 책의 가치가 아주 낮지는 않았다. 소소한 지식들을 얻는 재미가 있었다.

 일단 거리 개념이다. 책에서는 거리를 시간적 거리와 경제적 거리, 심리적 거리로 범주화했다. 시간적 거리는 특정 장소에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며 경제적 거리를 그 장소에 가는데 드는 비용, 심리적 거리는 내가 주관적으로 그 장소를 얼마나 친근하게 느끼느냐다. 가령 한국에서 미국을 간다면 비행기를 타면 시간적 거리는 줄어드나 경제적 거리는 늘어나며 미국은 비교적 친근하기에 상당히 물리적으로 멈에도 이웃처럼 느끼는 것이다. 

 포장수력 개념도 재미있다. 포장수력은 약간 일본식 한자 같은데 국내에 존재하는 수자원 중에서 기술적 경제적으로 이용가능한 수력에너지의 양을 말한다. 아무래도 강수량이 많고 국토 면적이 넓은 나라일수록 포장수력이 크다. 한국의 수력활용은 낮아 수력에 좀처럼 주목하지 않으나 수력에 의존하는 나라도 제법 있었다. 

 대표적인 나라가 노르웨이다. EU지도를 보면 노르웨이와 스위스가 포함되지 않는데 노르웨이는 험준한 스칸디나비아 산맥에 많은 강수량으로 전체전력의 무려 95%를 수력이 담당한다. 노르웨이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조경수역에 해안이 뱅크이어서 농사가 불리해도 수산업이 우수하고, 강한 전력과 거기에 원유와 천연가스까지 있어 유럽연합에 기대지 않을 수 있었다. 

 의외의 사실들도 좀 있었다. 개인적으로 좀 우습게 보았던 스페인이 의외로 유럽의 자동차 강국이었다는 점이다. 유럽자동차하면 프랑스의 르노나 이탈리아의 피아트 독일의 벤츠 등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페인은 유럽 2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다. 스페인이 이리 된건 저임금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형성되며 공장의 이전이 크게 자유로워졌는데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에 비해 스페인의 임금 수준은 매우 저렴했다. 그래서 유럽연합 초기 스페인에 다수의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유럽 연합이 동유럽으로 확대되며 스페인은 임금경쟁력을 상실한다. 하지만 그간의 노하우가 있어 소규모 생산 고급자동차나 다목적 차량등으로 업종전환을 하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와 관련해서는 세개의 국가를 비교한다. 인도와 태국, 멕시코다. 인도는 초기 자동차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무려 12억의 인구를 바탕으로 큰 내수시장을 통해 자동차 산업을 양성중이다. 이들의 목표는 내수시장을 통한 성장이며 이를 위해 외국 기업들에게 많은 인센티브를 주며 합작회사를 만들고 있다. 

 반면 태국은 인도에 비해 인구가 적고 국내에서 완성차를 생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하지만 자동차 관련 수입이 지나쳐 적자 폭이 커지자 적어도 자동차 관련 부품을 국산화하려 노력하였으며 이에 성공한다. 태국은 부품을 자체 생산하고 해외 기업이 태국내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외국에 수출하며 자동차 산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멕시코는 초기 부유한 미국인을 대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거점 기지가 되었다. 이게 가능했던 점인 멕시코의 임금이 매우 낮았기 때문인데 믿기 어렵게도 거의 25년간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멕시코는 정세가 불안하지만 상당히 지리적 강점이 있는 나라다. 세계최대 경제국인 미국과 인접하고 그들과 FTA를 체결하고 있다. 또한 미국처럼 동서과 양 대양에 접한다. 즉, 아시아 시장과 유럽시장으로의 진출이 용이한 것이다. (우리만 봐도 유럽과 거리가 멀어 한국의 무역은 대개 미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에 집중된다.) 거기에 인구가 많아 노동력이 풍부하며 초기부터 FTA 강국으로 무려 45개국과 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눈에 띈 부분은 트럼프의 미국이 TPP, 즉 환태평양 무역협정을 탈퇴한 이유다. 트럼프는 미국 우파인 공화당으로 이들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과, 친기업정책, 세금감소, 작은 정부를 주장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른건 다 따르면서도 작은 정부를 반대하고 큰 정부정책을 우선시한다. 여러 종류의 자유무역 협정은 우파의 입맛에 맞는 것이지만 자유로운 공장 이전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트럼프의 지지기반인 가난한 백인 노동자를 힘들게 한다. 이에 트럼프는 TPP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아쉬움도 많았지만 오래전 교과서의 여러 챕터를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큰 깨달음은 없지만 소소한 지식은 얻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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