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 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잡설
최성각 지음 / 동녘 / 2010년 8월
평점 :
가끔 글을 아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장르소설을 주로 읽기는 하지만,
내 독서취향은 잡식성에 가까워서,
가끔 잘 알려지지 않은...하지만 아주 좋은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럴때는 내가 아주 매력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서,
내 리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거품 물고 칭찬하는 책들을 좀 같이 읽고 공감해 주었으면 좋겠다.
보통 때의 나는 각양각색의 사람 수 만큼이나 취향의 독특함을 알기 때문에,
취향이 나랑 비슷하면 좋고 아니어도 존중해 줄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해선 내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 책은 '한때 나와 같은 선입견을 가졌던 사람이 어떻게 선입견에서 걸어나올 수 있었는지'부터가 시작이다.
그는 '내가 몰라도 되는 영역으로 간주하고 손사래부터 치는 게 멋인줄로 알'았다고 했는데,
내겐 '경제'말고도 인문이나 환경 따위가 그랬었다.
계기가 있어 내가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좀 해야 되겠다 싶었을 때...마땅한 책이 없었고,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물론 이 동네에도 '인문학'을 하시는,인문학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리시는 아주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그 분들의 글은 나같은 초보자가 보고 이해하기에는 어렵고도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최성각님의<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이 책은 내게 등대나 나침반 같았다.
이 책이 좋은 것은,딱 나보다 세상을 몇발자국 앞서간 선배의 조언이나 충고같이 느껴져서이다.
충고가 뾰족하지만,뾰족해서 고고하고 아름답다.
물론 이분은 사상가 일뿐만 아니라 행동가여서,
이분을 닮고 싶다고 마음 먹은 이상 내 몸이 좀 고달플 각오는 하여야 한다.
이분은 정도를 걷고 있고,
힘들다고 하여 곁길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더디더라도 그렇게 그렇게 한발자국 한발자국 밟아 나가는 법을 가르친다.
좋은 책을 만나면 두루두루 소개해서 읽게 하고 싶어하고
그게 원서이면 상업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번역하고 읽히고 싶어하였다.
그래서 출판사를 차려볼까 고민했다는 게 이 책에서만도 꽤 여러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위안이 된 건,
읽은 책이 몇권은 됐다는 거고,가지고 있는 것은 조금 더 됐다.
한가지 곤란한 것은,추천하신 것 중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은 거의 고서이거나 절판본이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내용 중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 부분이 여러곳 있었는데,
심지어 최근 어떤 출판인이 "지금 시대는 내용보다는 디자인이에요.디자인으로 승부를 내야 합니다,"어쩌구 했을 때에는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어떻게 책이라 불리는 書物이 거기 담긴 애용이 아니라 디자인으로 승부를 내야 할,단지 상품에 불과하단 말인가.(48쪽)
이 부분은 내 경험에 미루어 반쯤 이해가 되었는데,
내용이 좋으면 디자인 따위는 궁시렁거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지만,
내용이 별로이면 디자인을 가지고도 궁시렁 거리게 되고,
내용이 너무 좋으면 다른 것들을 트집잡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이분의 글솜씨야말로 매력적이어서,처음 이분을 찾아 읽기까지가 문제지 그 후는 걱정할 바가 아니다.
하나 같이 훌륭하여 다 좋았지만,가장 큰 울림을 준 건 '피터드러커'의 <방관자의 시대>관련 글이 아니었나 싶다.
'좋은 책이라면 마땅히 독자의 이마를 쪼개고,심장을 도려내고,무방비 상태의 몸과 영혼을 위축시키거나 달뜨게 만들 것인데,이 책이 바로 그랬다.'(64쪽)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피터드러커'가 소개하는 '칼 폴라니'의 일화는 너무 감동적이다.
캘빈과 카스텔리오의 상반되는 묘사 또한 인상적이었다.
캘빈과 숙명적인 대결을 했어야만 했던 카스텔리오를,
온화한 공자를 닮았고,에코의 윌리엄수사를 닮았다고 한 부분은 멋졌다.
채식은 과연 만병통치에 '아름다운 미래의 열쇠'인가 하고 묻는 글이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의외였다.
'건강한 잡식이 자연에는 더 어울리는 일'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두손 들고 순순히 이분에게 홀릭되기로 했다.
이 나이쯤 되면 생각이나 견해가 고착되어 다른 사람들이나 새로나온 견해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받아들임과 수긍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놀랐고,놀라움은 존경으로까지 이어졌다.
김용철의 <삼성을 해석한다>에 대한 이 분의 해석 또한 재미있다.
'정의로운 자들만이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부분은 경제,인문에 걸친 전반적인 내용이었다면,
중후반으로 갈수록,환경이나 생태문제,4대강에 관한 내용들이 집중 되고 있다.
기실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고 사상가이면서 실천가인 그가 그런 전철을 밟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자신의 화두가 장르소설에서 자꾸만 이쪽으로 바뀌어 가는 것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자연스러운 일인가?)
<100분 토론> 관련 감상은 격하게 공감을 표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그러므로,나는 어차피 내 신념에 바탕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듣고 공감하고,내 의견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열심히 경청이야 하지만,때로는 저항감을,때로는 분노를,때로는 욕설이 나온다.나는 공감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라도 그 말에 절박함이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면 불쾌해진다.어쩔 수 없는 편견과 선입견을 스스로 어느 정도는 통제하려고 애쓴다는 이야기다.그러나 4대강 같은 주제는 그 견해가 명백하게 대비되어서 내 이성적 통제를 요긴하게 작동시킬 필요가 없었다.163쪽)'
"이런 대규모 국책사업의 결과에 대해서는 평균치를 드러낼 게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는게 옳다고 본다."(165쪽)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완상에게 했다는 말을 주워가진 것도 횡재다.
"한박사,당신은 학자니까 자꾸 그런 말을 하는데,나는 현실 정치인임을 잊지 마세요."(188쪽)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게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담벼락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이를 어찌 거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196쪽)
하지만,뭐니뭐니 해더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깨달음은...
좋은 책은 시간과 세대에 구애받지 않고 영원하다는 거다.
그가 소개하는 책들을 보면 3,40년 된 책들도 수두룩하고.
번역본의 경우도 기획,번역 얘기부터 결과물로 나오기까지 몇 년,길게는 9,10년 정도이다.
책의 영속성이야 예전부터 많이 회자되던 거지만,이분의 무던함과 진득함도 보통은 아니다.
책이나 이 분 말고 무던함과 진득함을 얘기할 수 있는 건 자연 밖에 없다.
책을 읽으면서 터득했으니(터득하려고 노력했으니) 이제는 실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