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평점 :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흡족해 하며 배 두들기는 걸 좋아하는 나는...
맛집탐방기,그 맛집의 대표음식을 먹는 법에 관한 책을 사서 읽고 실망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서울의 유명하다는 설렁탕 집의 경우,
반 정도는 그냥 국물과 고기 맛을 음미해 가면서 먹고,
반쯤 먹은 연후에 깍두기 국물을 넣어 간을 맞춰 먹으라...뭐,그런 지침이었다.
블로그에서 읽었을 때는 입맛을 다시게 했었는데,
책을 읽고 실제 내가 그의 방식대로 따라해보니,
나의 취향이나 입맛과는 한참 어긋나 있었다.
추석 연휴기간 동안 읽으려던 일곱권의 책 대신 내가 이 책을 택한 것은,지인의 강요 때문이었다.
"나,이 사람 책 너무 어려워요.알라딘 서재에서 공짜로 볼 수 있던 것들도 머리에 쥐나려고 해서 마다했는데 책으로요?"
"그렇고 그런 인문학 책이 아니고 문학,고전,미술,역사,철학,학술,글쓰기,심지어 다른 사람의 서평도 비판해 놓았는데도...?"
'내 흥에 겨워 장르소설 나부랭이나 번역하고 살고 싶다는데 심오한 인문학이 왜 필요하냔 말이쥐~ㅠ.ㅠ'
툴툴거리면서 책을 사들고는 내가 봐야한다는 번역 관련 글들만을 발췌하여 읽고 말려고 하였다.
그런데,웬걸...책을 읽다보니 알라딘 서재 페이퍼에서 읽을 때와는 달리 재밌는거다.
그의 오지랖은 웬만한 아즘들의 그것보다 훨씬 넓은데(문학,고전,미술,역사,철학,학술,글쓰기...심지어 다른 사람의 서평 비판까지)...그렇다고 억지스럽지도 않다.
덕분에 지인에게 백만번 쯤의 땡큐를 날려줄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책이라고는 못하겠다.
왜냐하면 자연이건 사람이건 10년이라는 세월이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듯이,
10년이 넘는 동안 써온 그의 글들은 삶의 또 다른 반영이어서 호락호락한 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인문학자의 고뇌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으나 그의 고뇌가 눈물겹다.)
인문이 교양인가 하는 내 나름대로의 고민은 차치해두고,
그는 여느 인문학자들이 인문과학에만 촛점을 맞추느라 등한시 하는 자연교양에도 눈을 돌리고,
환경문제나 사회 공헌 따위도 언급하고 들어간다.
여기에 '행동'이나 '실생활에 접목'따위의 말들을 첨언하고 싶다.
우리가 종국에 얘기하야 할 것은 어쩜 자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아직까지는 관심이 인간에게로,거기서 자연에게로 옮겨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정도이다.
그래도'아니면 말고'식의 공자의 유세관이나,'목숨걸고'식의 한비자의 유세관만을 언급하고 지나갔다면(86쪽) 살짝 아쉬웠을텐데...
토정 이지함을 실천적 지식인(87쪽)으로 언급하여 균형을 유지한다.
개인적으론,
'숙취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날 아침에는 잔소리 대신 절인 오이 안주에 보드카 한 잔 따라주는 아내였다.(92쪽)'
라는 인용이 너무 맘에 든다.
나도 이런 아내가 되고 싶다.
<숄로호프 단편선>의<인간의 운명>도,그 책에서 이런 인용을 끄집어 낼 수 있었던 그의 시선도,서평도...다 맘에 든다.
대증요법:병의 원인을 찾아 없애기 곤란한 상황에서, 겉으로 나타난 병의 증상에 대응하여 처치를 하는 치료법. 열이 높을 때에 얼음주머니를 대거나 해열제를 써서 열을 내리게 하는...(네이버 국어사전)
127쪽의 대증요법은,291쪽의 '슈퍼노멀'의 경우와 더불어 내게 훅 와닿지 않는다.
단지 '입장바꿔 생각해봐'가 대증요법으로 뭉뚱그려 질 수는 없는 것이고,
형광펜은 돌출을 위해 일부러 사용하는 것이니 엄격히 따지자면 '슈퍼노멀'은 아닐 듯~^^
156쪽,157쪽에 오용이나 남용의 경계에 대해서 얘기하며,
'지나친 겸손은 책임에 대한 방기이다'라고 하는 부분은,
내 삶이랑 관련하여 찬찬히 되짚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아무래도 가장 주의깊게 읽은 건 '번역' 관련 부분인데,
'번역이란 외국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한국어를 바로 세우는 작업(146쪽)'이라는 구절은 내 삶의 경구로 삼고 싶을 정도이다.
593쪽을 보면,
'번역작업이 홀대받는 환경에서 고생한 역자들에게 지나치게 냉혹하다고 나무라는 분들도 있다'
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그동안 저자가 독서가들을 향하여 기울인 노력은,역자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겠고,그렇다면 같이 나아가자는 채찍임을 모르지 않겠다.
밑줄,형광펜 사용,작은 따옴표 등은 강조와 돌출을 위한 그만의 제스츄어로 노력의 산물이다.
반어법과,문장의 도치,부사어구의 '살짝' 위치 탈선,감정이 2% 빠진듯한 비유 등도 그만이 구사할 수 있다.
300쪽의,'역자만이 알것이다.',이런 문장은 소름이 돋는다.
그의 노력의 산물들을 빼고,아름답고 맘 따뜻해 지는 부분을 꼽으라면 김훈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걸까?
소개하는 책 중에는 읽은 책도 있고 소장하고는 있으나 읽지 않은 책들도 있고,장바구니에 들어있는 책도 있다.
이 책도 슬픔의 소지는 지니고 있다.
소개하는 책 중 내게 없는건,절판이거나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툴툴거린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어쩜 동년배인지도 모를) 사람이 쓴 책 한권에서 인생을 배운다는 건 좀 웃기니까,닮고 싶다 정도로 바꿔야 되겠다.
나도 무색,무취,무미의 사람이 되고 싶고,그런 글을 쓰고 싶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개입시키지 않고 쓰는 글이라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제대로 된 서평이라고 할 수 있는게 아닐까?
내겐 피카소,조남준이 그렇고,시인 중에는 김사인 정도를 꼽겠다.
이들의 그림이나 글을 보고 있으면...지극히 절제됐다는 차원을 넘어서 소박한 느낌마저 든다.
근데 이건 다다르지 못함이 아니라,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덜어냄이고 비워냄이다.
나도 그런 절제됨을 구사하고 싶지만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기에 갈길이 멀다.
그렇게 그렇게 책을 덮게 되지만,
나는 다시 한번 일독하는 대신 내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보겠다.
그것이 이 책을 읽은 수확이라면 수확이고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여느 서펑집처럼,
반쯤 읽은 후 다소 지루해지니,어떤 책을 끼워넣어 교차읽기를 시도해라...
뭐,이딴 충고를 했다면 난 청개구리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입맛이나 취향을 강요 당하는 일은 좀 불쾌하니까.
(아닌가?아님 말고...나는 그렇다!)
그도 이제 책을 읽어야 할 의무에서 걸어나와 책을 읽을 자유를 흠뻑 누리고 살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