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따위는 빠다(버터) 발린 말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결혼 후 열다섯 번 맞이하는 동안 시어머니는 열네번 내게 생일 떡을 해서 보내주셨다.
쑥을 아주 많이 넣은 절편을 한말 뽑아 보내주신다.
어머니는 내가 쑥절편을 아주 좋아하는 줄 알고 해마다 보내주셨지만,
실은 난 떡을 안 좋아한다.
어머니가 내가 쑥절편을 좋아하는 줄 오해하신 사건이 있기는 하였다.
서울 토박이 였던 내가 시댁이라고 내려가면 음식이 입에 맞질 않았었다.
어떤 때는 마을 어귀까지 비린내가 먼저 날 마중하는 것도 같았다.
하루 이틀은 대충 이것저것을 주워 먹는다 치지만 임신한 여자가 사흘정도 되면,
뱃 속에서 때 아닌 구라파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하늘이 노랗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 내가 제일 먹기 좋은 시댁음식이 떡이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 떡을 좋아하는 줄 알고 계실텐데,올해는 기별이 없는 거다.
겸사겸사 전화를 드렸는데,내 생일인지도 기억 못하신다.
섭섭하다기 보다는 마음이 쓰라렸다.
"어머니 저 취향이 바뀌었나 봐요.
이제 쑥 절편은 먹기 싫어요.
올해부터는 호박고구마로 바꿔주세요."
"호박고구마는 여물려면 좀 더 있어야 한다."
고백컨데 어머니의 지난한 삶이 맘에 들지 않아 몇번이나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끼니마다 밥을 넉넉하게 하시면서도 남은 찬밥은 꼭 당신이 드시는 거다.
처음 몇번은 내가 뺏어도 먹어봤지만,어느날 이건 아니다 싶어 찬밥을 새로한 밥에 섞어 버렸다.
"어머니,우리 다같이 조금씩 나눠 먹어요."
그때 황당해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몇번의 큰 병환을 겪어내면서 어머니는 얼굴의 주름도 깊어지셨고,
생각을 깜박 깜박 놓치기도 하신다.
그렇더라도 난 어머니가 오래만 사셨으면 좋겠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는 말의 뜻을 깨달았다.
오래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최성각이 함석헌옹을 만났을 때의 일화.
"자네는 왜 그렇게 허리가 굽은가?...저 학생처럼 허리가 굽으면 마음도 굽고,마음이 굽으면 정신도 굽지,그러면 바른 생각,바른 삶을 살 수 없지.학생은 자세를 고쳐야 해."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수도자는 앉는 자세가 일반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늘 허리를 바짝 펴야 한다.허리를 바짝 펴면 정신이 가장 맑아진다.허리가 삐딱하면 정신이 죽어 있는 것이다.남의 흉을 많이 보는 사람은 허리가 삐딱해진다는 말이 있다.허리를 바짝 펴면 남 흉볼 여력이 없다.허리를 바짝 펴면 눈이 저절로 자기 코끝으로 온다.자기 허물만 살피는 것이지 남의허물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디에도 기대서는 안 된다.오로지 자신의 등뼈에 으지해야 한다.자기 자신에,진리에 의지해야 한다.자신의 등뼈 외에는 어느 것에도 기대지 않는 안정된 마음이야말로 본래의 자기이다.(1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