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블랙펜 클럽 44
켄 폴릿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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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내가 옛날에 쓴 글들을 돌이켜보았다.

이곳 서재에서 활동을 한게 2010년 5월11일부터이니까 햇수론 9년, 꽉찬 8년이다.

그때 쓴 글들을 읽다보니 뭐랄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만 그럴 것 같진 않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느낌일 것 같다.

 

이 책을 켄폴릿이 썼을 때가 지금부터 40년 전인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때였다고 한다.

어떻게 나이 스물일곱 살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출간 40주년 기념 서문'에서 그는 폴 매카트니를 인용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폴 매카트니가 비틀스의 초기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곡들에 귀기울이면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영리한 녀석."(9쪽)

 

비틀스는 차치하고라도,

내가 보기엔 켄 폴릿도 천재인것 같다.

하지만 천재이기만 했다면 난 켄폴릿을 가지고 설레발을 치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쓰는 경험은 꼭 비탈길을 달려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 기억한다. 이제 소설 한 편을 쓰려면 삼 년이 걸린다. '바늘구멍'은 삼 주 만에 거의 모든 것을 썼다.(11쪽)

4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쓴다는 것,

그 당시 삼 주만에 소설 한편을 썼었는데,

이젠 삼 년이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쓴다는게 내가 설레발을 치는 첫번째 요인이고,

또 하나는 (그의 소설을 꾸준히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그가 계속 노력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는게 또 하나의 요인이다.

 

나 자신이나 내 주변을 봐도 그렇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들을 봐도 그렇고,

충전 없이 소진만 하는 것 같다.

천재로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계발이나 노력으로 천재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영민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신의 건강, 심신의 균형잡힌 건강이 아닐까 싶다.

 

켄폴릿은 '대지의 기둥' 때도 그랬고, '20세기 3부작'때도 그랬고,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고 여성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남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등장인물 개개인의 캐릭터를 잘 그려내고 생명과 온기를 불어넣는 힘이 뛰어난 것 같다.

배경이 중세도 있었고, 20세기도 있었고, 먼 나라 영국의 일이고 하니,

나같은 독자는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 법도한데 흠뻑 빠져들었다.

 

이 책에선 여성 영웅을 등장시키면서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문학적인 이유에서라고 하지만,

영국에만 적용되는 이야기일테고,

우리같은 입장에선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애기 아닐까 싶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을 내세워서 정치색을 흐려지게 하려는 고도의 트릭으로도 읽혔다, 내겐.

 

나는 켄폴릿이 다 좋지만,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아주 맘에 든다.

페이버 씨는 과묵한 남자였다-그것이 곤란한 점이었다. 그는 악행이라곤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술냄새를 풍긴 적도 없고, 매일 저녁 자기 방에만 머무르며 라디오로 클래식을 들었다. 그는 신문을 많이 읽었고 산책을 오래 했다. 직업은 변변치 않지만, 그녀는 그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리라 짐작했다. 식사할 때 나누는 대화 내용을 들어봐도 그는 늘 다른 사람들보다 생각이 깊었다. 노력하면 틀림없이 더 나은 직업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마땅히 누릴 만한데도 그는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았다.(25쪽)

 

고들리먼의 속마음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 게임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 역시 그를 침울하게 했다. 거기에는 그가 좋아하는 요소도 있었다. 사소한 것의 중요성, 영리함 자체의 가치, 세심함, 추측. 그러나 협박, 속임수, 필사적인 노력, 언제나 적의 등을 찌르는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41쪽)

 

블로그스의 이런 속마음도 완전 맘에 든다.

"그럼 상실이 사람에게 증오를 안긴다는 걸 알겠군요."

"네." 블로그스가 말했다. "상실은 증오를 안기지요." 그는 계단을 내려갔다. 뒤쪽에서 문이 닫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ㆍㆍㆍㆍㆍㆍ

두려움 없는 사람. 그녀는 그렇게 불렸다. 그렇지만 블로그스는 알고 있었다. 그녀도 두렵지만 애써 감춘다는 것을. 그가 일어나고 그녀가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아침이면, 그녀의 방어막이 걷히고 다만 몇 시간이라도 쉴 수 있을 때면 그는 그녀의 눈빛에서 마음을 읽었다. 그것이 두려움 없음이 아니라 용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134~135쪽)

 

스포일러가 될까봐 다른 애기는 조심하겠지만,

루시에게 엄마가 하는 이런 말은 옮겨도 좋을 것 같다.

"내 나이쯤 되면 인생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떠들어선 안돼. 하지만 내 인생은 견뎌내느냐 마느냐였고. 내가 아는 많은 여자가 그렇게 살았다. 변함없이 자리('자리'가 중복된것 같다.) 자리를 지키는 것은 희생처럼 취급되기 일쑤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란다. 어쨌든 난 너한테 조언을 하진 않겠다. 받아들이지도 않겠지만, 설사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가 생기면 내 탓으로 돌릴 테니까."

현명한 엄마 밑에 현명한 딸이 있다.

 

켄더베리대성당에 대한 깊이있는 언급은 훗날 '대지의 기둥'이 탄생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익숙해지고 적응하는 것을 고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것도 좋았다.

 

천천히 아껴 읽으려고 했는데, 내처 읽었다.

파격적이고 야한 내용이 한 번씩 등장하는 것도 켄폴릿 소설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랄 수 있겠다.

적재적소에 우리말을 잘 살려쓰시는, 깔끔하고 맛깔나는 번역도 한몫하는 것 같다.

역자가 김이선 님이다.

기억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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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8-06-30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한 문구들도 맘에 들고
그걸 발견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시는 양철나무꾼님 해설도 부럽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6-30 12:16   좋아요 1 | URL
‘해설‘이라고 표현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헤에~^^
켄폴릿은 제가 완전 좋아하는 작가라서 어느 부분을 들이대도 설레발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크아이즈 님의 소설 또한 그럴 자신이 있습니다.
그냥 접대용 멘트가 아니라,
전 님의 소설들이 ‘완죤‘히 좋지 말입니다.

페크(pek0501) 2018-06-30 1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안 읽을 수 없게 만드시는군요. 리뷰를 맛있게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6-30 12:42   좋아요 1 | URL
맛있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이 책 뿐 아니고 켄폴릿의 책은 다 강추합니다.
좀 길다는게 단점이 될수도 있지만,
완전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감정 이입하며 읽기 좋습니다~^^

2018-06-30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30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6-30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오래 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나온 한 권에 네 권의 소설인가가 축약
되서 실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바로 켄
폴릿의 <바늘구멍>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

정말 오래 전이었는데...
이제 제 모습으로 다시 나왔나 보네요.

도널드 서덜랜드가 주연한 영화도 있다고
하던데 보고 싶네요.

양철나무꾼 2018-07-02 09:03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을 님의 100자평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땡스 투를 누르고 싶었지만,
비구매자 100자평엔 땡스투를 못하게 되어있더라구요~--;

역시 켄폴릿이지 싶었습니다.
저도 영화는 아직입니다.
영화에선 소설에서 공들여 묘사한 캐릭터들이 또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합니다.
다시 한번 좋은 책소개 감사드립니다, 꾸벅~(__)

cyrus 2018-07-01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2010년 5월 8일에 블로그에 첫 번째 글을 등록했어요. 옛날에 쓴 글을 읽는 것은 어린 시절 모습의 사진을 보는 것과 같아요. ^^

양철나무꾼 2018-07-02 09:08   좋아요 0 | URL
님과 저는 학교로 따지면 동기동창이네요.
그래서 그런가 전 이상하게 님이 가깝고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구요~^^
모든 단체나 모둠이 그렇지만, 그때 활동하셨던 분들 중 몇몇 분들은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생성과 소멸을 이곳에서도 맛보게 될 줄이야.
요즘은 야무 님이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