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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장의 귀촌 일기
조연환 지음 / 뜨란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신준환 님의 '다시, 나무를 보다'를 보면서 느낀 게 있다.
문장이 아무리 화려하고 수려하고,
온 우주나 생명, 삶 자체를 담고 있다고 하여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그릇이 못 미치면 버거울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 때문인지, 이런 책을 만나면 좀 망설이게 된다.
신준환 님을 떠올린 이유는,
두 분 다 산림청장 출신이다.(지금은 국립수목원.)
조연환 님이 먼저 2004년 7월부터 2006년 1월까지 25대 산림청 청장을 한 것으로 되어 있고,
신준환님은 국립수목원 원장직에서 2014년 물러난 것으로 되어있다.
신준환 님의 그것이 좀 학술적인 것도 같고 철학적인 것도 같고 그랬다면,
조연환 님의 이 책은 제목처럼 '일기'에 가깝다.
그래서 가볍게 접근하고 다가갈 수 있겠다.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유용할 여러가지 정보들도 제공하고,
저자 자신이 산촌에 살고 있으니 그 즐거움에 대해서 수더분하게 적어내려가고 있다.
4장의 '행복한 귀촌 설계'는 귀촌을 결심한 이들이라면 반드시 따지고 볼 것들을 모아두어 따로 읽어볼만하다.
이 책을 찬찬히 읽다가 이 분의 귀촌은 아내 분의 내조와 바람으로 성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귀촌까지는 아니고 전원생활을 꿈꾸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 지는 모르겠다.
시골 종갓집 장손인 남편이,
그래서 문중 땅을 다량 가지고 있는 남편이,
고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귀촌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삶이 팍팍할때면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여러 개 나열해 놓고 혼자 저울질을 해볼 뿐이다.
이 책의 저자 조연환 님은,
산림청장 출신이 시골에 집을 짓고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건축 디자인부터 정원 설계까지 치밀하게 계획하여 멋지고 화려하게 꾸며놓았을 거라고 상상하지만,
당신은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왔다. 사실 귀촌을 하는 데 거창한 계획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내서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면 된다.(6쪽)
고 하신다.
그런데 현실이 되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시인일기'를 쓰신 박용하 님의 경우 시골 텃세가 심해 이사까지 불사하시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텃세라는건 시골에서뿐만이 아니라 똥개들의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것이니,
어느 정도 감수하고,
자신이 먼저 맞춰가도록 노력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구절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참깨농사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참깨를 벨 때 아내는 참깨 대궁을 짧게 베라고 이른다. 나는 길게 벤다. 참깨는 아내 몫이지만 대궁은 내 차지이기 때문이다. 눈 오는 날 모닥불을 피워놓고 참깨대궁을 태워보라. "참깨 참깨'하며 타오르는 불꽃, 온 사방에 번지는 고소한 냄새, 화려하게 퍼지는 장관, 화끈하게 타는 그 정열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올해도 나는 참깨 대궁을 길게 자른다.(72쪽)
이런 소박하고 슴슴한 문장이 좋다.
이런 구절도 좋았다.
참나무는 쓸모가 없다면서 잡목으로 치부한다. 아까시나무는 일본 사람이 우리 땅을 망치려고 심은 건데, 그것도 모르고 아직까지 아까시나무가 온 산을 다 덮고 있는데도 뽑아버리지 않는다고 성화를 부린다. 낙엽송은 예전에 전봇대로 썼는데 요즘은 콘크리트 전봇대를 쓰니까 쓸모가 없다고도 한다. 틀린 말이다. 쓸모없는 나무는 없다. 나무마다 쓰임새가 다를 뿐이다.(109쪽)
조연환 님은 이쁜 꽃들도 좋아하시나 보다.
동백이나 노각나무도 그렇고, 작약이랑 목련도 자주 언급된다.
어쩌면 몸을 움직이기 위해 산촌에 사는 건지도 모른다. 특히 머리를 싸매가며 일하는 정신노동자들에게는 몸을 움직이는 노동 자체가 힐링이 될 수 있다.
국장, 차장, 청장 재직 시절에 때때로 숨쉬기조차 힘들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업무 때문에 지쳐 있다가 금산에 오면 우선 가슴이 확 트였다. 공기 맛이 그리 달콤할 수 없다. 보이는 게 모두 아름답다. 삽과 괭이를 들고 밭으로 간다. 굳은 땅을 삽으로 파고 괭이로 고르고 유기질 비료를 주고 비닐을 씌우면 한나절이 쉬이 지나간다. 온몸에 땀이 흐른다. 정신은 맑고 상쾌해진다. 몸안에 쌓인 스트레스가 땀으로 다 배출되는 것만 같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밭에 나가 괭이질을 할 일이다. 몸을 움직여야 머리가 맑아진다. 몸을 움직이기 싫다면 산촌에 내려올 필요가 없다.(158쪽)
나는 하는 일이 몸을 좀 움직여야 해서 내가 정신노동자인지 육체노동자인지를 놓고 고민할때가 있다.
몸을 움직이니 육체노동자이지만,
환자를 상대해야 되니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내가 육체와 정신, 어느 쪽을 쉬면서 힐링을 하는지를 생각해 보니,
몸을 움직여도 머리를 쉴때이다.
그렇다고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좀 게으른 편이다.
책을 읽을때 가장 편안하고 치유되는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읽는다는 행위는 육체와 정신, 양쪽을 아우르는 만병 통치약인가 보다.
산에 나무를 심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애기하고 있다.
산에 나무를 심으면 심은 사람에게는 돈이 되지 않지만 그 나무가 자라면서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혜택을 베풀어준다, 그러기에 산에 나무를 심는 사람이야말로 애국자라 할 수 있는데, 정부도 국민들도 나무 심는 이들의 공덕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가슴 아팠다.(195쪽)
옛날에, 나 어릴적 학교에선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이라고 배웠는데, 이 책에선 64퍼센트(228쪽)라고 한다.
산을 논이나 밭으로 개간해서 그런 것일까?
산에 나무를 심고 키우는 것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과 닮았다.
하루 아침에 성과를 볼 수 있는게 아니라, 꾸준히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 당장 귀촌하여 나무를 심을 순 없겠지만,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베어넘겨지는 나무에게 경의를 표할 수는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