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데, 내가 좋아하는 남경태가 나왔다.
내가 남경태에게 처음 반하게 된 건 '개념어사전'이지만, '종횡무진 시리즈'를 읽으며 그에 대한 애정을 키워왔다.
그는 '개념어사전' 책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한 개인이 '사전'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면 둘 중 하나다.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팔려 할 만큼 무모하거나,아니면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팔 수 있을 만큼 뻥이 세거나. 하지만 이 책의 제목 앞에 생략된 문구를 밝히면 면죄를 바들 수 있지 않을까? '내 멋대로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쓴 개념어사저.' 이것이 이 책의 원제목이다.
'개념어사전'에서 나름 기억해 두고 싶었던 구절을 하나만 옮겨보자면,'제로섬'이다.
우리 사회가 유신독재에 신음할 때 어느 시인은 반정부 시위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대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의 심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 하면/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애비는 입을 다물었다마는......" 편히 살고자 하면 도둑놈, 정직하게 살고자 하면 가난뱅이. 편함과 정직함이 공존할 수 없는 사회,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잘 살 수 없는 사회, 당시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에서 제로섬 사회였다.(344쪽)
일요일 아침에<타박타박 세계사>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건 알았지만, 일주일에 하루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각은 이 프로그램의 끝나는 시간을 훌쩍 넘긴다.
배철수와의 대화는 만담수준으로 아주 재밌고 유쾌했지만,
내겐 웃고 흘려버릴 내용이 아니라 한번쯤 집고 되새길 내용들이었다.
두어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박사나 석사가 아닌 학사 출신이고 게다가 사회학과 출신이 번역을 하고 역사서를 집필하고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것에 관해서였다.
(물론 기본적으로 실력과 노력을 갖춘 사람이니까 그런 질문에 자유로울 수 있었겠지만~)
그는 바둑을 두는 것에 비유하는데, 바둑으로 치면 실력이 있는 기전용 기사가 있고,실력이 떨어지는 보급형 기사가 있는데...
학자들이 생산해놓은 이론을 가지고 보급하는 보급형기사가 필요하다.
따라서 학자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正誤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자기주장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과 관련해 주류에서 벗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t felt good to be out of the rain.
또 번역료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왈칵 눈물이 나려하였다.
- 번역료를 많이 받으시나요?
많이 받기도 하고 많이 받는다고 얘기도 한다는데, 그가 얘기한 액수는 원고지 장당 6천원이었다.
하루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10시간 정도 되는데, 그중 5시간 정도는 번역을 한단다.
다시말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걸 견딜 수 있어야 번역가가 될 수 있다는 얘기겠지.
이 분도 번역가의 자질로 외국어 실력, 국어 실력, 번역하는 책에 관련된 지식...이렇게 셋을 꼽았다.
그럼 우리말로 되어있는걸 외국말로 번역하는 건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따로 공부를 하거나 공부를 해도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하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명함과 이력서를 가져본 적이 없는, 나름 자유로운 영혼이라는데...
만약 명함을 갖게 된다면 '기타마니아 남경태' 이렇게 박아넣고 싶단다.
기타는 80년대 4만원을 주고 사서, 13년동안 연습하는 한곡이 있는데, 바흐의 샤콘느를 기타버젼으로 편곡한 곡이란다.
들어보고 싶었는데, 왕 겸손하시더구만~ㅠ.ㅠ
누가 개념어 사전을 일곱번 읽었다고 하자,
배철수가 "일곱번 읽을 정도로 명저입니까?"하고 물었다.
남경태 왈 "너무 야만적이시네요."하고 되받는다.
어눌하고 겸손하지만, 그가 담담하게 들려주는 얘기는 이런 거였다.
가급적 재밌게 살아라.
재미를 놓치면 삶 자체를 놓칠 수 있다.
공부가 재미있으면 공부를 하면 되고, 공부가 재미없으면 공부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동안 비를 맞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나는 태양도, 비도, 어느것도 즐기지 않고 살았나 보다.
아참참~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흐르는 강물처럼'이 나왔다.
주말에 나는 이 책을 끼고 뒹굴러야 되겠다.
송기역 지음, 이상엽 사진 /
레디앙 / 2011년 3월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멋있었던 건, 아메리카의 이 곡을 얘기하면서
한옥타브 안에서 미,솔,라,도 네가지
음을 가지고 이렇게 멋진 음악을 만들어 낸다는 찬사를 꿈꾸듯 읊조릴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