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홍대에서 가깝지만, 홍대는 내 '플레이 그라운드'가 아니다.
똥개도 자기 구역에서는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을 믿는지라,
누굴 만나더라도 집 가까이에서 만나는 게 좋아서 이기도 하지만...
홍대의 그 젊음이 이제 내겐 안맞는 옷처럼 불편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난 주에 볼일이 있어서 홍대에 갔다가 '두리반'을 지나치게 되었다.
나는 거기서 또 다른 용산을 보았고, 용산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쩜 두리반을 용산이랑 엮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 이 땅 어딘가에선 또다른 잠재된 용산이 진행중이다. 

<용산개, 방실이>를 보았다.
실화여서 감동을 더한다는 얘기는 바꾸어 말하면 그래서 감정이 도드라진다는 얘기지만,
그래서 누군가는 그렇게 피흘리고 스러지기도 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추천사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작업에 천착하여 시간과 질기게 싸워 왔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결실을 이루어 낸 두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인물들의 캐릭터가 명료했으면 독자들에게 더 친절했을 터이나, 마음으로 만날 이야기라서 굳이 기교나 꼴이 빼어날 까닭은 없다.
 
   

그리하여 나도 마음으로 이야기를 만났다. 
 

 

 

 

 

 

 

그리고 또 한권.
용산참사 때, 달팽이집이란 시를 쓰셨던 김환영님이 <깜장꽃>이란 동시집을 내셨다.
 

숟가락 

숟가락이 
숫가락이나
숯가락이 아니라
숟가락이 된 까닭은,
'ㄷ'이 떡하니
아가리를 벌리고 있기 때문이야

먹어도,
열린 입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야. 

 

들리지 않는 말
 

풀섶 두꺼비가 
엉금엉금 비 소식을 알려 온다
 
비 젖은 달팽이가
한 입 한 입 잎사귀를 오르며 길을 낸다 

흙 속에서 지렁이가
음물음물 진흙 똥을 토해 낸다

작고  
느리고
힘없는 것들이

크고
빠르고 드센 것들 틈에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바닥 숨을 쉬고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해를 삼킨 아이들>을 그리신 일러스트레이터 답게 동시집의 그림도 죽음~이다.

언땅이 풀리면,
누군가는 밭을 갈고, 또 누군가는 씨를 뿌린다.
하지만 누군가 밟아 단단해진 땅이나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나는 꽃도 있다. 

어딘가에선 건물이 부숴지고, 어디에선가 부숴진 건물에 묻혀버리는 꿈도 있다.
땅을 빼앗겨 꿈을 빼앗기기도 하고, 꿈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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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3-31 04:58   좋아요 0 | URL
신새벽에 깨어나 조용히 추천만...

양철나무꾼 2011-04-01 00:02   좋아요 0 | URL
4시 58분이면...제겐 한밤중이예요.
추천...감사합니다~^^

마녀고양이 2011-03-31 09:27   좋아요 0 | URL
홍대는 내 고등학교 모교이기도 하고, 내가 십수년간 살았던 곳이기도 해요.
고등학교부터 35살까지, 나는 홍대 근처를 맴돌았지요.
얼마나 변했나 몰라요, 그동안. 그런데, 7년 전 일산으로 이사한 이후 가끔 지나치면
고층화가 엄청나게 이루어졌더군요. 원래는 대학 앞이라 5층 이상의 건물을 못 짓게 했었거든요.
쓸쓸해요......... 생각하면.

양철나무꾼 2011-04-01 00:08   좋아요 0 | URL
가끔 홍대를 나가면 요지경이란게 이럴때 쓰는 말이구나 싶어요.
난 대학때는 카페나 커피숍 거의 못갔거든요.
고작 KFC 정도~
요즘도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아주 가끔이거든요.

아웅, 물 위에 동동 뜨는 기름 같아요~ㅠ.ㅠ

느린산책 2011-03-31 10:06   좋아요 0 | URL
저에게 이곳은 알라딘 마을의 휴게소~ 잠깐 쉬어가며 모든 알라디너들을 만날 수 있는..
역시 종가집 종부답게 모든 이들을 아우르시는 그 넓은 폭의 소유자 양꾼님을 흠모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4-01 00:12   좋아요 0 | URL
ㅎ,ㅎ...알라딘 마을의 휴게소라...것도 좋은데요.
요즘은 제가 좀 바빠 댓글에 덧글 달고, 마실 다니고 하는게...한 템포 늦습니다.
늦더라도 꾸준히는 할 거예요.
님도 꾸준히 들러 주실거죠?^^

cyrus 2011-03-31 10:43   좋아요 0 | URL
마지막 구절이 요즘 세상을 정확히 표현해주고 있네요. 힘이 있는 자들 때문에 힘 없는 사람들의
꿈이 너무 쉽게 빼앗기는거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용산 참사가 일어난지 2년이 지났네요,

양철나무꾼 2011-04-01 00: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결론난 게 없죠~ㅠ.ㅠ

며칠전 손석희를 들으니, 이상한 법률안이 거론되고 있더라구요.

마노아 2011-03-31 10:51   좋아요 0 | URL
용산이란 두 글자가 주는 무게감은 언제나 묵직해요. 조심스럽고 아프죠. 봄조차 빼앗겨서는 안 되는 일인데...ㅜ.ㅜ

양철나무꾼 2011-04-01 00:17   좋아요 0 | URL
옛날엔 남편이랑 함께 음향기기 보러 가끔 다녔었거든요.
이동네 아이맥스 영화관을 이용할때도 있었고, 찜질방을 이용할 때도 있었고...
이젠 '용산' 조심스럽고 아픈 동네에요~ㅠ.ㅠ

책가방 2011-03-31 17:12   좋아요 0 | URL
(달팽이 집)은 다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하네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도 생각나고...

양철나무꾼 2011-04-01 00:19   좋아요 0 | URL
님이랑 저랑 '따로 또 같이' 담벼락의 '달팽이집'을 읽었고,
님이랑 저랑 '따로 또 같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배웠나 보네요.
이 시, 고등학교때 힘주어 배웠던 기억이 나요~^^

잘잘라 2011-03-31 18:53   좋아요 0 | URL
흙 속에서 지렁이가 음물음물.... '음물음물' 처음 보는 말이예요.
우와아~~~ 의태어인듯 의성어인듯, 절묘하네요!!!
음물음물 움물움물 으믈으믈^ ^

양철나무꾼 2011-04-01 00:29   좋아요 0 | URL
역쉬, 님은 의성어, 의태어를 적절히 사용하여 글을 풍성하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으신거 같아요.
저도 처음보는 단어인데...참 절묘하고 멋드러지죠?^^

루쉰P 2011-04-01 11:01   좋아요 0 | URL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치고 가네요. 용산에 대해 방관만 할 뿐 그 무엇하나 어쩔 수 없다는 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많이 있어요. 양철댁님의 리뷰 너무 잘 읽고 가요. ^^ 요즘 리뷰를 많이 쓰시는 것 같아요. 겨울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봄처럼 나긋나긋한 리뷰 읽는 맛에 즐겁게 근무하고 있어요.

양철나무꾼 2011-04-07 00:55   좋아요 0 | URL
이젠 지천으로 봄이예요.
더 이상 뒤로 미룰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낼은 봄비가 내린다네요.
봄비는 참 반가웠는데...방사능 봄비라 반가워만 할 수는 없네요~ㅠ.ㅠ

꿈꾸는섬 2011-04-01 23:14   좋아요 0 | URL
요즘 '종결자'라는 말이 유행이잖아요.
글을 읽어내려오면서 참 좋다..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일러스트가 정말 끝내주내요.
언땅이 풀리면, 누군가에게 짓밟힐지라도 또 씨를 뿌리고 싹이 나오고 꽃을 피울테니 말이에요.^^

양철나무꾼 2011-04-07 00:56   좋아요 0 | URL
이 분 그림 참 좋죠?^^
시만 좋은 것이 아니고, 그림만 좋은 것이 아니고...만능 엔터테이너라고 불러드려야 할 것 같아요~^^

첫눈 2011-04-06 18:08   좋아요 0 | URL
윽..홍대~저는 서울구경가면 꼭 가보고 싶은곳이 홍대에요 ^^
마당을 나온 암탉은 우리애가 아끼는 책이기도 했었는데, 눈길도 주지않은 책이건만...왠지 흥미가 가는걸요 ㅎㅎ
잘 읽고 갑니다 ^^

양철나무꾼 2011-04-07 01:00   좋아요 0 | URL
엉?...결혼에 아이까지요?
글은 한참 영거하셨는데 말이죠.
지방에 사시나 보죠.
님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그 홍대가 , 제게는 불편하기만 하고...
제가 길치여서 좋은 안내자 노릇은 어려울 듯 하지만,
언제 서울 구경 오시면 홍대 앞은 안내해 드리죠~^^

냐냐냐 2012-05-04 18:40   좋아요 0 | URL
오늘첨왔는데 처음부터 쭈욱읽는데 너무 잼있습니다...앞으로 자주와야할듯..
숟가락의 표현이 참 멋지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