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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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주!! 많은 사람들을 철학으로 입문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사람!! 오랜만에 그의 책을 펼쳐들었다.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어쪄나? 하는 두려움과 떨림을 안고 책장을 넘겼다. 강신주가 제시한 48개의 만만치 않은 주제들을 강신주만의 필법으로 재미있으면서도 쉽게 풀어냈다. 철학을 설명하면서 철학적 용어에 얽매이지 않고, 뇌과학을 비롯해서 인지 생물학 등 다양한 인접 학문의 언어를 활용해서 철학의 문에 쉽게 들어설 수 있도록 안내했다. 금새 두려움은 즐거움으로 떨림은 환희로 바뀌었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밀려왔다. 각 장을 읽고, 잠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며 다음 장을 읽어 내려갔다. 강신주만의 매력에 빠져드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강신주만의 매력! 그곳에 빠져보자!

 

1. 사랑을 철학하다!

  누구에게는 사랑이 쉬운 일이겠지만, 나에게 '사랑'이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용기도 부족했고, 사랑의 방법도 기술도 서툴렀다. 미국의 MIT 같은 명문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의외로 연애에 어려움을 느껴 이를 코칭해주는 학원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랑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현대사회에는 생겨났다. 연애 전문 칼럼리스트까지 생겨나며 그의 책을 사서 읽던 추억까지 생각난다. 사랑! 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몰랐고, 그랫기에 너무도 실수가 많았다.

 

  "나의 사랑이 타자의 사랑을 강제하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를 사랑할때, 상대방도 나를 강제할 수 없다. 이것은 그가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자유와 사랑의 이율배반-

 

  서로 상대방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기에, 나의 자유로운 선택을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없고, 상대방의 자유로운 선택을 나도 존중해야한다. 그럴수록 사랑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아진다. 불안도 따라서 높아진다. 서로를 존중하며 진정한 인격체로 대하며 상대방의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때로는 사랑이 집착으로, 스토커로 변하기 까지한다. 너무도 어려운 사랑! 연애! 이기에 내가 결혼에 성공한 것은 어쩌면 경이로운 기적일수도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 쌕스 로봇이 출현했다. 로봇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대, 어는 설문조사에서는 로봇과 사랑을 나눌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18세~34세의 사람들 27%가 "로봇과 사랑할 수 있다."라는 응답을 했다. 로봇은 나를 거부할 수 없기에, 거부당할 걱정을 하지 않으며 로봇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자유와 사랑의 이율배반'!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상대방과 나를 서로 이해하고 따스하게 보듬어 주어야하는 의무감이 '어려운 인간'을 사랑하기 보다, '편리한 로봇'과 사랑하려는 유혹을 느끼게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사랑은 숙명적인 것이고, 로봇과는 숙명적 만남을 할 수 없다.'  사랑은 우연적 만남에 의해서 이뤄지는가? 숙명적 만남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일까?

 

  "2000여 년 서양 철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 주류 철학자들은 전자의 입장을 표방했다. 플라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 등은 의미란 미리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현대 철학자들 대부분에게 있어 의미란 우발적인 마주침을 통해서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발성의 존재론을 위하여-

 

  운명적 사랑을 믿는 순수한 여성들이 많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운명적 만남이 이뤄질 것이며, 운명의 상대가 자신에게 나타나 주기만을 기대하며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한다. 이러한 믿음을 받아들인다면, 숙명적 만남이 아직 이뤄지지 않아 아직도 혼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그 혹은 그녀의 인생에는 '운명적 만남'이 태생부터 운명지어지지 안았던 것일까? "사랑은 우연인가, 아니면 숙명인가?"라는 강신주의 질문에 "사랑은 만드는 것이다."라고 답하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 받고 싶다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나서야한다. 사랑은 우연히 주어지지도 않으며, 숙명적으로 던져지지도 않는다. 사랑은 용기있는자가 만드는 것이다. 때로는 우연을 가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숙명'이라는 단어를 빌려 사랑을 만든다. '운명적 만남'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혼 정보회사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 인간은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 사랑은 어떠한 방법이뤄 만들어가야할까? 강신주는 '장자' 지락편의 '바닷새 이야기'를 소개한다. 바닷새를 사랑한 노나라 임금이 바다에게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해주고, 맛있는 고기와 술을 주지만, 바닷새는 슬퍼하다가 결국 죽어버린다. 자신만의 사랑을 상대방에게 강요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하소연한다. 그녀는 매몰차게 이를 뿌리친다. 그녀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사랑을 강요할때, 그 사랑은 집착이되고, 그 사람은 스토커가 된다. 결국은 사랑하는 그녀를 떠나 보내야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그녀가 나를 떠나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녀를 놓아주어야할까? 그리고 그녀의 행복을 빌어야할까?

  20대의 풋풋한 젊음이 느껴지던 시절! 사랑하는 그녀가 나를 떠나 더 행복해질 수있다면, 그녀를 떠나보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너무도 가진것이 없고, 너무도 못난 나 자신을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깨달았다.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녀가 내 곁에 있을때, 행복하게 하자고... 이 세상에서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내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그녀를 행복하게해줄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을 따를 것인가? 나의 사랑을 그녀에게 강요할 것인가? 라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그녀의 사랑과 나의 사랑을 하나로 녹여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서로 다름이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받아들일때 진정한 사랑은 완성된다. 진정한 사랑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녀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너무도 늦게 알았다.

  진정한 사랑의 느낌은 무엇일까? "쇄락(灑落)"과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고 말하고 싶다. "쇄락'과 "광풍제월"이란 무슨 뜻일까?

 

  "(쇄락) 이는 한여름 무더위에 텁텁하기만 한 마당에 물을 뿌렸을 때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상쾌함과 시원함을 의미한다." 

  "깊은 밤 오랫동안 내리던 비가 멈추고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매만질 때, 맑게 빛나는 달을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광풍제월'이다."-쇄락의 경지-

 

  "'쇄락'은 딱딱하게 막혀 정체된 '고체'의 상태와 대립되는 마음 상태를 묘사하는 개념"이기도하다.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싸움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방식으로 그녀가, 그가 사랑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사랑을 강요한다.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시원한 소나기의 상쾌함을 느끼려면,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매만지고 맑게 빛나는 달을 바라보려면, 고체상태가 되어버린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한 부드러움으로 바꾸어야한다. 나를 그녀의 틀에 맞추거나 그녀를 나의 틀에 맞추도록 강요하기보다 그녀와 내가 만나 새로운 하나가 되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딱딱한 고체에서 말랑말랑한 액체로 바꾸어야한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기 보다는 사랑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그녀가 내곁에 있을때, 최선을 다해야한다. 그때, 깊은 밤 오랫동안 내리지 않던 비가 마침내 내려 상쾌함을 선물할 것이다.

 

2. 삶을 철학하다.

  대학시절, 나를 유난히 쫒아다니며, 교회에 나올 것을 부탁하는 여자후배가 있었다. 토론과 논쟁을 좋아했던 나는 그 여자 후배와 여러차례 종교에 대해서 논쟁했다. 그 논쟁 중에서 인상에 남는 말이 있다.

  "하느님은 무엇이든지 용서해주시기에 지금 잘못해도 주일에 교회에 가서 회계하면 되요."

과연 그럴까?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하면, 어짜피 용서해주실 것이기에 지금 잘못을 해도 된다. 평일에 죄를 짓고 주일에 용서를 빌면 된다. 라는 논리도 성립하지 않을까? 그리고 인간에게 지은 죄를 인간에게 용서받지 않고, 신에게만 용서를 받는다면, 그 용서는 유효할까? 여자 후배의 말은 나에게 많은 의문만을 안겨주었다.

 

  "서양의 스피노자, 그리고 우리의 동학이 중요한 이유는 두 사유 전통이 공통적으로 인간이 직면하는 난제를 초월자에게 호소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인문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신이란 바로 나의 생명력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수많은 난제들, 고통들이 있다. 이 고통을 이겨내려 많은 사람들은 특정종교에 의지한다. 그중에는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가 되기도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여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나약한 생각은 광신도라는 위험한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강신주는 "스스로의 힘으로 히결하는" 정신을 "인문정신"이라 말한다. 그래, 나의 삶에 주인으로 살자! 나의 한계를 직시하고, 나의 힘으로 나의 인생을 살아가려할때, 나는 인문주의자가 될 수 있다.

 

  "수인사 대천명(修人事 待天命)"(제갈공명)

  "진인사 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남송의 유학자 호인) -마음을 다한 후에 천명을 생각하다.-

 

  신을 믿으며 노력하지 않는자보다는 자신의 일을 힘써한 후에, 하늘의 결과를 기다리자.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謀事在人 成事在天) 동양철학의 합리주의는 괴력난신에게 의존해서 헛된 욕망을 표출하지 않는다. 이것이 서양철학보다 동양철학에 끌리는 이유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가지 집고 넘어갈 것이 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루고자하는 목표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느냐?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는 일이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주체는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만 한다.(라캉)"-나의 욕망은 나의 것인가-

 

  수많은 학생들이 부모의 욕망을 욕망한다. 인간은 약 20여년 동안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한다.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는 자신의 욕망보다 부모라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부모의 욕망을 거부하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극단적인 방법은 커다란 파란을 일으킨다. 판사가 되어 부모의 욕망을 대신 채워달라는 요구를 거절하다가, 집을 나오거나, 학교를 자퇴하기도한다. 어쩌면 너무도 자신의 욕구를 잘 알기에 벌어지는 비극이기도하다. 현명한 자녀는 자신이 스스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만,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어리석은 자녀는 부모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다가 부모의 노예로 살아가며 일생을 마친다. 진정 자신의 소망이 자신이 원하는 소망인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태어나는 고통을 겪어야한다. 주체로 산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알에서 깨어나가 위해서 독수리는 몸부림쳐야한다. 그 몸부림은 현명한 몸부림이어야한다.

 

3. 관계를 철학하다.
  결혼식 청첩장이 오면, 나의 결혼식에 온사람의 청첩장인지를 먼저 확인한다. 결혼과 같은 커다란 행사를 거치고 나면, 인간관계가 한바탕 정리된다. 결혼식에 온 친구와 오지 않은 친구로 나누고, 오지 않은 친구는 축의금을 전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로 나눈다. 그중에서 축의금 조차도 전하지 않은 친구는 나의 주소록에서 삭제한다. 특히, 바쁜 일정을 쪼개서 친구의 결혼식에 찾아가 행복을 빌어주었는데도, 오지않은 친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생각했다. 일종의 강한 배신감이 불어닥쳤다. 

  "선물을 받고 나면 항상 그 선물의 액면가와 유사한 대응 선물을 고르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관례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고 받는 대부분의 선물이 명목상으로만 선물일 뿐, 그 이면에는 뇌물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선물의 가능성-

  우리가 주고 받았던 대부분의 선물이 사실은 뇌물이었다. 축의금도 어느새 뇌물이 되어버렸다. 줄때부터 되돌려 받을 것을 생각하는 뇌물이었다. 받는 이에게는 갚아야할 빚이되었다. 선물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버렸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부터는 축의금의 액수도 상한선이 생겼다. 정말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지난날 사회 초년병 이었던 나에게 따뜻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셨던 정년퇴임하신 선생님에게 약소한 축의금이라도 넉넉히 드리고 싶었다. 그때는 봉투에 축의금을 더 넣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때 축의금은 선물이 되었다.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선물을 뇌물에서 선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본래 의미가 퇴색해버린 것은, 비단 선물만이 아니다. 예절도 또하나의 뇌물이 되어버렸다. 

  "공자의 눈에는 동방예의지국에는 맹목적인 예절과 제도만이 있을 뿐,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섬세한 감수성과 애정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타인에 대한 배려-

  타인에 대한 섬세한 배려! 그것이 예의 출발이다. 강자가 약자 위에 굴림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강자의 섬세함이 진정한 예이다. 전방부대에서 근무하다가 말라리아에 걸렸던 적이 있다. 말라리아는 잠복기가 약 1년쯤된다. 그것도 모르고 열이나고 오한이 생기니, 감기약만 먹었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몸이, 갑자기 오한에 고열이 생겼고, 병원에서 닝겔도 여러번 맞았다. 그런데, 버스에서 오한에 고열이 났다. 나의 앞에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할머니에게 나의 상태를 설명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할머니에게는 아픈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찌하겠는가? 나의 상태를 설명할 것인가? 아픈 몸을 이끌고 자리를 양복할 것인가? 

  뇌물이 되어버린 선물을 구제하고, 맹복적인 껍데기만 남아있는 예절을 되살릴 방법은 없을까? 나에게 솔직하자! 당당하게 나의 삶에 주인이 되자! 축의금도 선물도 내가 상대방에게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 만큼만 표현하자. 그리고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말자! 나는 그를 축복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니까....

  상대방이 존경할만하며,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감사의 예의를 표하자! 그러나 그가 권위로 굴림하려하며, 나를 아랫것들로 본다면, 그에게는 최소한의 예만 표하자! 돼지에게 예의를 표해보았자, 돼지는 그것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를 모른다. 내가 아프더라도 상대방이 좋은 대접을 인격을 갖춘자라면 최선의 예의를 표하자, 그러나 노력으로 얻지 않은 '나이'를 무기로 나에게 예절을 강요한다면, 깔끔히 무시하자! 그것이 그를 배려하는 예절이니까...

 

4.  세계를 철학하다.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어느 관료가 "민중은 개, 돼지 인다."라는 말을 했다. 그 사람은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먹고 죽은 아이를 어떻게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할 수 있냐며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 타인을 개, 돼지로 보는 사람! 그런사람이 이 나라 교육정책을 세우는 교육부에 있었다.

 

  "내부로부터 요동치는 마음은 극복의 대상이었지만, 외부로 인해 요동치는 마음은 긍정의 대상이었다."-누구도 사랑하지 않아서 누구도 사랑할 수 있다는 역설-

 

  우리는 외부의 파동에 동요하지 않는 자를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철학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관념을 뒤집어 엎는다. 나의 내면을 고요히 잠재우고, 외부의 세계에 열려있어야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면서 어찌 참다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는가?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사람은 '불인'한 사람이다. 어질지 못한 사람이다. 구의역 아이를 보면서 나의 자식처럼 아파하지 못한다면, 그는 '불인'한 사람이다. 한의학에서는 손과 발의 감각이 없는 상태가 되면, '불인'하다고 표현한다. 온 세계는 하나의 우주이다. 나의 몸이 하나의 작은 우주이듯이, 세계도 하나의 커다란 우주이다.

 

  "성인에게 있어 자신과 모든 타자는 하나의 몸으로 묶일 수 있다. 고통을 느끼는 범위만큼이 나의 것이니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정호가 '만물일체'라고 묘사했던 경지이다. 이것은 '모든 만물을 하나의 몸으로 본다.'는 뜻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다리는 죽은 다리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타인이 고통스러울 때도 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타인은 죽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살아있는 모든것에 대한 감수성-

 

  '논어'에 맹무백이 공자에게 "자로는 인한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인한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자로가 어떠한 사람인지 다시 물었더니, 공자는 "천승을 낼 수 있는 제후의 나라를 유로 하여금 그 군대를 다스리게 할 수 있으나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염유와 공서적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공자는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자들의 탁월한 능력은 알아보았지만, 그가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여기는지, 더 나아가 세상 만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지를 스승인 자신도 모르겠다고 솔직히 고백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인한가? 인한가? 우리는 너무도 불인한 사회를 살아왔다. 눈물이 안나와서 오랫 동안 눈을 깜박이지 않으면서 억지로 눈물을 흘리는 못난 리더를 모시고 살았다. 인한 사람을 알아보기가 그리도 힘들었던 것이다. 인한 사람을 리더로 뽑고 나서야, '인한 삶'을 선택하나냐, '불인한 삶'을 선택하느냐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5. 나를 철학하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뒤집어 쓰고 살아간다. 학생들 앞에서는 당당한 교사의 '페르소나'를, 딸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의 '페르소나'를, 아내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의 '페르소나'를 쓰고 산다.

 

  "페르소나에 집착하다가 맨얼굴을 망각하거나, 혹은 맨얼굴에 신경 쓰다가 페르소나를 경시하는 것, 이 두 가지 극단에서 벗어나야 한다."-페르소나와 맨얼굴-

 

  그런데, 한국인은 유독 페르소나에 집착한다. 때로는 맨얼굴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바라보기도한다. 자신의 페르소나를 벗을 용기가 없어 언제나 페르소나에 갖혀산다. 이제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자신의 맨얼굴이라 생각하기도한다. 이럴때, 강신주를 만나며, 김어준을 만나며 자신이 벗어 던지지지 못한 페르소나를 과감히 벗어던진 그들에게 열광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동경하고, 때로는 그들을 흉내내기도 했다. 대중 강연에서 강신주는 가면을 벗어던지라 말했다. 페르소나에 집착하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처방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듯,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를 쓰고, 때로는 모든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타인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다 때로는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며,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그렇다면,  페르소나를 벗어던진 모습은 무엇일까? 이지의 말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무릇 동심이란 진실한 마음이다. 만약 동심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진실한 마음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략)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고, 동심은 사람의 처음 마음이다."(이지) -개처럼 살아가지 않는 방법-

 

  사회의 갖은 압력과 폭력에 상처받지 않고, 세상의 때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페르소나를 벗어던진 모습이었다. 현대 사회의 각종 정신병리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자신과 직면해야한다. 자신과 직면하는 이 길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나는 나의 이상보다 못난 나이기 때문이다. 그 상처받은 내면의 어린아이를 보듬어 줄때, 나의 어린아이는 치유될 것이다. 그리고 페르소나에 갖혀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6. 운명을 철학하다.

  운명을 바꾸고 싶으면, 습관을 바꾸어라! 라는 말이있다. 조그만 습관이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만들어진 습관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있다. 변화가 지나가버린 것이라면, 습관은 그것을 낳은 변화를 넘어서 존속하는 것이다."-습관의 집요함.-

 

  자기계발서에서 소개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비결 중에 하나는 "성스런 종교적 의식과 같은 습관을 갖아라!!"라는 것이다. 매일 운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매일 아침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성스러운 종교적 의식 처럼행한다. 일단 밖으로 나가면 나는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고 있게된다. 매일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면, 자연스럽게 1만시간의 법칙이 작동하게 된다. 방학에는 하루에 한문장씩, 평일에는 일주일에 한문장씩 '논어'를 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논어'를 완독했다. 쉽게 읽기 힘든 책을 '습관'을 이용해서 읽었다. 진정 무서운 힘은 꾸준함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 꾸준함은 어떻게 얻어낼 수 있을까? 니체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후회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접했을때, 인생은! 역사는 진보해야한다는 믿음이 산산히 부서졌다. 니체는 망치의 철학자였다. 오늘 내가 이러한 삶을 살아간다면, 일만년 후에도 나는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나의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오늘을 바꾸어야한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통해서 오늘 우리가 변화하도록 종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프레임'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비슷하다.  내가 이미 망쳐버린 인생을 다시 살고 있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하면 인생을 다시 망쳐버리지 않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라! 이러한 생각은 나태한 나를 채찍질한다. 오늘을 진실되게 살지 않은 사람이 어찌 내일을 진실되게 살겠는가? 내일은 오늘이 되기에 오늘을 진실되게 산다면 나의 인생은 진실한 삶으로 만들어져간다. 정상에선 석학들은 서로 통한다고 한다. 니체의 말이 '프레임'을 쓴 최인철 교수의 말과 일맥 상통하고 있다.

 

 

  "논리적 사유란 독특한 주장을 할 수 있고 동시에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를 대는 사유"-논리적 사유의 비밀-라고 한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  재레드 다이야몬드의 '총, 균, 쇄'와 '문명의 붕괴'와 같은 대작들이 타인이 넘볼 수 없는 독특한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탁월한 논리전개가 돋보이는 책이다. 하나의 굵직한 주제를 긴 호흡으로 서술한 것이 이들 책이라면,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철학자들의 짧은 말을 실마리로, 인생을 생각하게하는 짧은 호흡의 글이다. 48명의 철학자들의 독특한 주장을 실마리로,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알기 쉽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짧은 48편의 글들의 모음이지만, 그 짧은 하나하나의 글에는 인생의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다. 인생을 생각하며, 세계를 끌어 안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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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바이칼호! 알타이산맥! 이라는 단어를 들은 당신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의 머릿 속에는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고향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의 잃어버린 고향 알타이! 아득히 머나먼 고향 바이탈호, 우리의 사랑이 묻어 있는 곳 유라시아! 이러한 나의 생각은 명확한 근거가 있기에 생성된 것은 아니다. 명확한 근거가 있지도 않으면서 나는 왜? 이러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을까? 그래서 '유라시아 역사 기행'이라는 책을 꺼내들었다. 유라시아는, 바이칼호는, 알타이 산맥은 우리의 잃어버린 아득한 고향일까?

 

1. 유라시아의 관점에서 한국문화를 보자!

  학부시절, 동양사를 전공하신 교수님들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 있다. '한국사를 전공한 사람들의 견해는 시야가 너무 좁다!' 한예로, 몽골이 강화도를 건너지 못해서 강화도를 점령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너무도 이해되지 않는 주장이란다. 몽골에 입장에서 남송 정벌이 우선이었고 고려는 남송과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서 비주력부대를 보냈을 뿐이다. 고려 본토를 공격해서 강화도 정권이 스스로 항복하기를 유도했을 뿐이다. 동양사 전공 교수님의 견해는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야를 한반도에서 동아시아로, 다시 세계로 확대해야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는 동양과 서양으로 확대될뿐이었다. 우리 민족이 많은 교류를 해왔던 북방의 초원으로 시야를 확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은 한국사를 이야기하다가 단편적으로 유라시아를 언급하는 수준을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한반도에서 시베리아와 알타이 산맥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의 역사를 알시 쉬운 문체와 다양한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도를 곁들였다면 이해하기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한국사를 이해하는 시야를 확실히 넓혀주었다. 특히 한국의 세형동검을 이해하기 위해서 북방유목민족의 모습을 살피는 부분을 읽을 때는 전율을 느끼기 까지 했다.

  요즘, 세계화 시대, 지구촌 이라는 말이 일상화되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시대는 이미 아득히 먼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다. 파지릭 지역의 무덤과 신라의 적석목곽분은 너무도 형태가 유사하다. 수천킬로미터의 공간적 시간적 차이를 건너 뛰어서 문화를 공유하는 모습에서 한반도가 세계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국의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순방 외교를 펼치듯이, 한반도의 적석목곽분와 세형동검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유라시아 유목민들의 문화를 살펴봐야한다. 세계화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 말타기의 비극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를 아는가? 하늘을 날며 악당을 물리치는 그가 말에서 떨어져 전신마비라는 비극적 상황에 처했다. 물론, 그는 불굴의 신념으로 전신마비와 싸웠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말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커다란 불행을 선물하기도 한다. 안장없이 말을 타는 스키타이 인들 중에, 성불구자가 많다는 사실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말에 재갈을 물리고, 말을 전투에 이용하면서 말은 인간에게 가공할 힘을 전쟁터에서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그 달콤한 유혹은 성적 불구라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다.  인간의 쾌락중에서 성적쾌락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함에도 이를 느낄 수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물론, 성적 욕망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면 고통스럽지도 않을 수 있겠지만.... 

  자손을 낳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인데, 이들은 어떻게 이를 충족시켰을까? 그들은 출산과 양육을 분리했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기를 많이 낳고 아기가 없는 사람들이 이를 입양해서 양육했다. 파지릭 고분에서 다양한 인종들, 심지어는 백인들의 유골이 발견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말이 인간에게 선사한 두얼굴의 선물을 인간은 거부할 수 없었다.

 

3. '부여계 기마 민족설'의 진실은?

  흔히들 우리민족의 뿌리는 북방의 기마민족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자랑스러워한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하고 한다. 그런데 이책의 저자는 '인더스문명에서 처럼 드라마틱한 정복 근거가 나오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며, 신라와 가야의 성장 동력은 새로운 문화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이할 수 있었던 사회 자체 역량에 있다고 강변한다. 역사적 사료의 강력한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고학적 유사성을 근거로 북방 기마민족이 남하하여 지배층을 교체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가 어려운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신화를 살펴보면 그 가능성을 전면 부인할수도 없다. 단군신화의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더던지, 주목이 남하하여 고구려를 세우고, 온조가 남하하여 백제를 세우고, 하늘에서 내려온 상자 속 알에서 김수로가 나왔다는 신화는 북방의 기마민족이 남하하여 지배층을 이루었을 가능성을 암시해준다. 저자 강인욱의 주장이 많은 설득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마 민족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4. 중국의 동북공정의 그림자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어디일까? 대학시절 서교수는 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시기에 다시 쌓은 것이고, 원래는 평양까지 이어졌다고 동양사시간에 학부생에게 강의했다. 박근혜정부시기 국정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한 서교수의 주장을 이책의 저자 강인욱은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 반박한다. 제스산 일대 발굴, 갈석공 유적 발굴을 통해서 산해관이 만리장성의 끝이라는 사실이 발혀진 것이다. 중국측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만리장성을 연장해서 이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중국정부의 역사창조작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금, 철저한 사료비판과 고고학 자료를 통한 엄정한 역사연구가 절실함이 밀려온다.

  그런데, 강인욱은 '중국인이 멸시하던 이민족을 자신의 조상과 연결'시키는 모습을 '오랑캐의 문화를 잘 이용하는자가 결국 중원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 단정한다. 이에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한다. 중국은 동북3성 지역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삼는 동북공정 이외에도, 베트남 북부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삼는 남방공정, 베트남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삼는 서남공정, 몽골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를 만드는 북방공정을 하고 있다. 현재 중국땅에서 일어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이뤄지는 이들 공정(프로잭트)들은 중국의 역사 만들기 프로잭트이다. 그래서 예전에서는 오랑캐로 멸시하던 이민족들을 이제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자신들의 조상과 연결시키고 있다. 강인욱은 이를 유념해야할 것이다.

 

5. 보석보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보낸 부인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아 편지와 함께 관에 넣어둔 사실을 아는가? 바로 이응태 묘에 얽힌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야기이다. 남편에 대한 절절한 사랑 편지가 이응태묘에서 발견되었고, 이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특히 이응태 부인의 편지는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나또한 수업시간에 이응태 부인의 편지를 활용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만 유명한 편지로 알고 있었던 이응태 부인의 편지가 고고학 잡지 <앤티퀴티>에 표지 장식으로 실렸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금은 보석이 사랑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돈에 눈이 어두워서 사랑을 버리고 떠나는 남자 혹은 여자에 대한 복수를 그린 드라마와 영화가 한때 인끼를 얻었던 적이 있다. 물질만능의 시대에 부부사이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매우 쉽다. 물질 만능의 시대이기에 진정한 사랑 이야기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연못속의 진흙탕 속에서 핀 연꽃이 더욱 아름다워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혼에 조건을 따지고, 사랑보다는 직업과 재산을 먼저 따지는 요즘 세태가 심화될 수록, 이응태 부인의 편지는 우리에게 더 많은 울림을 줄 것이다.이응태 부인의 편지가 더 많은 울림을 주지 않을 정도로 우리사회가 물질만능의 세태에서 벗어나길 바래본다.

 

  작고 가벼운 책이다. 누구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한반도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길을 따라서 문화교류의 광활한 역사를 알려주는 의미 있는 책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광활한 교류의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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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권력 인간 - 인류의 고전과 문제작, 전 세계를 뒤흔든 극적인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정승민 지음 / 눌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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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팟캐스트 '일당백'의 애청자이다. 청소를 하거나 운전을 하면서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다. 특히 저자 정승민이 출연한 팟캐스트는 거의 빼놓치 않고 듣고 있다. 특유의 깊이있는 설명에 빠져들 수밖에 없기에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 '매불쑈' 등도 같이 들었다. 그가 '역사, 권력, 인간'이라는 책을 썼다기에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교수님이 조근조근 강의해주시는 듯한 내용이 맘에 드는 책이다. 책 속의 내용도 대부분 그가 참여했던 팟캐스트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정승민은 이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1. 영웅에 대한 정승민의 생각?

  "영웅은 결국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누군가에게 넘기려는 집단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아닐까요"-정승민-

  위기의 시대는 영웅을 필요로한다. 일제에 의해서 국권을 강탈당하던 시기, 신채호와 박은식 선생은 영운전기를 썼다. 영웅 전기를 읽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영웅이 되어서,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원해달라는 염워에서 영웅전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한명의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개인이 있어야한다. 그 영웅을 뒷받침 해줄수 있는 수많은 민중이 있어야, 한명의 영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있기 위해서는 그를 믿고 따랐던 다수의 백성들이 있어야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가장 건전한 사회는 한명의 영웅에 의지하는 사회가 아닌, 다수의 현명한 개개인이 집단의 일을 현명하게 연대하며 해결할때 만들어 진다. 이명박근혜시기에 영웅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촛불혁명은 한명의 영웅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다. 다수의 깨어있는 시민들의 합작품이다. 영웅의 출현을 기원하기 보다는 우리 개개인 모두가 사회에 주인의식을 갖는 깨어있는 주인이 되어야할 때이다.

 

2. 정승민님! 동의하지 않습니다!!

  작가 정승민은 권력이라는 프리즘으로 11개의 주제를 살펴보고 있다. 작가가 북콘써트에서 밝혔듯이, 원래 쓰던 책이 잘 쓰여지지 않아, 주제를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역사, 권력, 인간'이라는 책의 전채를 관통하는 주제와 작가가 하려는 말이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책들 곳곳에서 열설가의 웅변조의 말들이 많아 정승민의 주장을 한번은 의심하면서 읽게된다. 그중에서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정승민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설명하면서 "여론의 지지를 업은 정책은 잘못하더라도 바로 수정" 가능하다며, 여론의 지지를 얻는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영삼 정권시기의 대북정책이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며, 정승민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김영삼은 여론의 눈치를 많이 살핀 대통령이다. 특히 대북정책을 펼때는 지나치게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특히 조,중,동이라는 보수신문의 논조에 귀를 기울였다. 대북정책은 여론의 동향에 따라서 갈지자 행보를 했고,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은 좌초했다. 여론을 중시한다는 말은 일면 옳은 면도 있으나, 여론을 절대시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더 옳다. 여론은 때에 따라서 변한다. 북한에 대한 동포의식과 6.25시기 적으로 싸웠다는 의식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여론이 갈지자 행보를 하는 것은 어쪄면 당연한 일이다. 이때,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중심을 잡고, 원대한 마스터플랜을 머릿속에 그리며, 대북정책을 했어야했다. 더욱이, 그 여론이 몇몇 보수 언론이 주장하는 여론이라면 조심했어야했다.

  둘째, 정승민은 러시아가 중국의 부상으로 영토 양쪽 끝에서 압박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나의 상식과 상반된다. 트럼프 정권의 성립 이후만 보더라도 미국의 패권에 대해서 러시아와 중국이 가까워지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 중국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미국대 중국, 러시아의 대립구도로 보는 것이 지금의 국제정세를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셋째, 정승민은 닉슨을 인간성부터 나쁜 폭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전에 원자탄을 쓸려했다."라는 서술은 믿을 수없었다. 닉슨은 "닉슨 독트린"을 통해서 데탕트시대를 열어 졌힌 사람이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서도 발을 빼려 노력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며, 정승민의 주장은 믿을 수없다. 물론, 닉슨의 부하들의 전횡은 잘못된 것이며, 그것까지 미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세상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다. 어쩌면 절대악과 차악의 싸움일 수도 있다. 닉슨을 낙마시킨 세력에 FBI 2인자인 마크펠트 부국장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FBI를 개혁하려다가 오히려, FBI에 되치기를 당했으며, 그 뒤에는 군산복합체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노암 촘스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절대악과 차악의 싸움에서 차악이 실패한 사건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넷째, 트럼프와 레이건은 닮은꼴이다.?? 정승민은 트럼프와 레이건이 공통점이 너무도 많다며 다양한 사례를 든다. 그러나 나의 생각을 다르다. 트럼프는 레이건보다는 닉슨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본다. 트럼프와 닉슨은 군산복합체 세력에 대항해서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쟁에서 발을 빼고 있다. 닉슨이 닉슨 독트린을 통해서 데탕트 시대를 열과 핑퐁외교를 통해서 중국과 수교하는 엄청난 일을 했다. 그에 반해서 트럼프는 서아시아에서 미군을 빼고 서아시아 자체가 스스로 방위를 하라고 한다. 또한 북한의 핵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해서 주한미군의 철수까지 노리고 있다. 닉슨과 트럼프의 외교정책에 핵심 브레인은 키신져이다. 트럼프의 외교고문으로 닉슨 대통령 시기 핑퐁외교를 주도했던 그가 다시한번 트럼프의 브레인이 되어 군산복합체 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닉슨이 군산복합체 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겼다. 트럼프는 과연 군산복합체 세력의 반격을 이겨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3. 정승민씨, 옥의 티가 보여요.

  팟캐스트에서 정승민의 모습은 만물 박사이다. 특월한 식견과 다방면에 많은 지식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책에는 옥의 티가 많이 보인다. 그중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번째, "백마를 타고 눈덮인 (알프스)산을 넘는 나폴레옹"은 거짓이다. 정승민은 나폴레옹을 설명하면서 백마를 타고 알프스산을 넘는 다비드의 그림이 사실은 거짓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가장 앞장서서 알프스산을 넘지 않았다. 병사들이 먼저하고 자신은 나귀를 타고 그 뒤를 따랐다. 혁명화가 다비드는 영웅을 만들어 냈다. 백마를 타고 가장 먼저 알프스산을 넘는 영웅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프랑스인이 원하는 영웅을 만들었다. 정승민이 다비드 그림의 허와 실을 지적했다면 더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알자스 로렌 지역 사람들은 독일인에 가깝다. 정승민은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수업'을 예로 들며,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설명한다. 그런데,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의 민족주의를 고취하기 위해서 씌여진책이며, 알자스-로렌 지역은 사용하는 말은 독일어에 가깝고, 인종도 독일인에 가깝다는 사실을 정승민은 지적하지 않았다. 이 부분까지 지적했다면,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보다 심도있게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셋째, "순자는 유가에 뿌리를 두지만 성악설을 주장한 일종의 마이너"가 아닙니다. 정승민은 순자를 유가에서 마이너라고 말한다. 그러나 순자는 제나라의 직하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하버드대학 총장이다. 유학의 정통성은 맹자가 아니라, 순자에게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리학이 절대화되면서 순자를 마이너 취급하지만, 중국의 경우 양명학을 많이 연구하고 있다. 조선의 교조적 성리학 사상에 근거해서 순자를 '유가의 마이너'라고 말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이러한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가 낮아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탁월한 강의 실력과 박식함을 알기 때문에....

 

4. 풀리지 않는 의문! JFK를 암살한 세력은 누구인가?

  존 F 케네디! 그의 죽음을 파헤친 영화 <<JFK>>를 고등학생 시기에 보았다. 그때 영화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도 원인이겠지만, 미국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이며, 민주주의의 모범적인 국가라는 고정관념이 영화의 이해를 어렵게 한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계사에 대한 지식을 쌓고 미국을 움직이는 군산복합체 세력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영화 <<JFK>>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그가 보여준 침착함. 전쟁을 하자는 강경파를 억누르며, 소련과 대화를 통해서 평화를 지키려했던 케네디! 베트남 전쟁에서도 발을 빼려는 모습이 보이자, 군산복합체 세력은 마피아 세력과 손을 잡고 케네디를 암살한다. 와스퍼라는 주류에 들지 못하는 비주류 대통령으로 겪어야하는 고통을 생각하니, 불현듯 고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둘다  비주류 대통령으로 남다른 업적을 남겼지만, 비운에 목숨을 잃어야했다.

  권선징악! 선은 반드시 이기고 악은 반드시 징벌을 받는다는 진리는 만화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악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이 반드시 패배하는 것도 아니다. 노자는 天地不仁(천지불인)이라하지 않았던가! 하늘과 땅은 어질지 못하다. 태풍이 인간의 사정을 봐가면서 진로를 정하지 않는다. 선과 악 중에서 어느 것이라도 승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선이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부단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라는 값진 결실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촛불을 들었듯이, 선이 이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존 F 케네디의 죽음은 우리에게 선이 이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만한 댓가를 치뤄야함을 말하고 있다.

 

 

  많은 팟캐스트에서 작가 정승민의 열혈팬으로 자처했다. 책을 읽으면서, 정약용 선생이 말한 글쓰기 방법이 떠올랏다. 역사나 전기류를 쓸때는 적당한 예화와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곁들여 써야만이 이해가 쉽고 재미있다는 다산의 글쓰기 방법을 정승민은 채득하지 못한 것 같다. 열설조, 강의조의 글들과 작가의 원론적인 설명은 이책의 흡입력을 떨어뜨렸다. 첫술에 배부르랴! 정승민이 대중에게 단독으로 내놓은 첫번째 작품이라 부족한 면이 있을 수도 있다. 앞으로 정승민의 더 숙성된 책들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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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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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발 하라리! 그가 우리에게 21가지 제언을 했다. 그의 제언들은 대부분 정확한 정답을 던져주기 보다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었다. 마치 현명한 교사와 부모가 학생과 자녀의 질문에 정답을 가르쳐주기 보다 스스로 더 많은 탐구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질문으로 되받아치는 듯했다. 그의 책은 쉬우면서도 한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발 하라리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직업이 사라진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전에서 이세돌이 무참히 패배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시대가 다가왔음을 충격적으로 느꼈다. 터미네이터를 떠올리며,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지구를 멸망시킬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커다란 혼란이 우리들 머릿속에 불어닥쳤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멸종시킨다는 설정이 다소 과장된 상상이라면, 인공지능 시대가 나의 직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추정은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직업이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유발하라는 기본소득을 하나의 대안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육아와 같은 새로운 일자리를 발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의 이 주장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자를 중심에둔, 인간중심의 정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노동에 인간이 종속된 사회가 아니라, 어쩌면 인류가 그토록 원했던 '노동으로 부터의 해방'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겪어보지 못한 '노동 없는 시대'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노동으로 부터의 버림받음'으로 느끼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패러다임에 우리가 두려움만 먼저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노동 없음은 축복일 수도 있다. 하라리가 예로 들고 있는 초정통파 유대교 남성의 약 50%는 일을 하지 않으며, 성경공부와 종교의식 수행을 하면서 살고 있다. 공부하면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백수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말했던가? 노동이 사라지고, 노동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하는 시대가 사라지고, 진정한 '백수의 시대'가 도래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백수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백수로서의 창조성'을 우리는 지니고 있는가? 고미숙이 말하듯이, 연암과 그의 친구들이 펼쳤던 백수의 향연! 그 백수의 향연은 새로운 창조성의 발현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듯이 우리의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100년후, 어떠한 삶이 펼쳐질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맞이하면서 두려워하기 보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며 새로운 창조성으로 전지구적 관점으로 새시대를 준비해보자.

 

2. 지구적관점에서 생각하라!

  우리 세계는 '문명의 충돌'을 겪고 있는가? 아니면 '문명의 교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유행하면서 이슬람 문명과 크리스트교 문명을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해왔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문명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교류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는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단일 문명 내 형제들끼리의 투쟁"이라고 단언한다. 우리 지구문명은 서로 다른 것 보다는 같은 것이 많다. 형제가 서로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많듯이, 우리 지구문명안에 이슬람문명을 비롯한 기독교 문명, 불교 문명 등의 다양한 문명이 있고, 이들은 형제라 주장한다. 갈등이냐 교류냐는 패러다임을 뛰어 넘어 '지구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라는 하라리의 주장은 탁월한 생각이다. 그가 말하고 있는 '민족', '국가'의 패러다임으로는 환경문제, 핵문제와 같은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실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이, '민족'이라는 상상의 관념은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지구라는 행성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종교'는 어떠한가? 유발 하라리는 '종교는 민족주의의 시녀'라고 단언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사랑과 자비, 평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종교가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자국의 영광을 위해서 타국을 무참히도 도륙하는데 봉사한다. 유발 하라리는 극우 기독교인의 가짜뉴스 또한 과감히 비판한다.

  지구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은 아직도 '민족'과 '종교'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이 너무도 멀어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민족'과 '종교'의 좁은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유발 하라리는 "당신의 종교, 이데올로기, 세계관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나요? 무엇을 잘못했지요?" 라고 물으라고 한다. 이 물음에 심각한 잘못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하라리는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말한다. 극우 기독교인들이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하나라고 주장하는 현실은 '종교가 민족주의의 시녀'라는 하라리의 주장이 가슴이 와닿게 한다. 극우 종교인들이 나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한다면, 나는 유발 하라리의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당신의 종교는 인류에게 저지른 해악을 말할 수 있는지를....

 

3. 모든 것에는 댓가를 지불해야한다.

  호주를 여행하던 일본인이 GPS를 믿고 가다가 바다에 빠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본인은 GPS가 시키는데로 운전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알고리즘에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이다. 알고리즘의 주인이 되지 못한 인간의 비참함을 미리본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모습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패하지 않는 결정을 위해서 알고리즘을 이용할 것이고, 실패를 두려워할 수록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갈 것이다. 교육의 관점에서 본다면, 실패는 학습의 한과정이다. 불필요해보이는 실패가 사실은 학습을 위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장자가 말한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모 없음의 쓰임을 인간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미래교육이 알고리즘의 노예에서 벗어나, 알고리즘의 주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실패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아야한다. 물론, 실패의 경험이 자산이 될 수 있으려면,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로 우리사회가 변모해야한다.

  모든 것에는 댓가가 필요하다. '디지털 독재', '커지는 불평등' 속에서 컴퓨터는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된다. 반면 인간은 다운그래드되고 있다.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실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컴퓨터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어령 교수는 말과 경쟁하려하지 말고, 말에 올라타라 강조한다. AI와 경쟁하려하지 말고 AI에 올라타라한다. 알고리즘과 컴퓨터에 올라탈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면, 미래사회는 축복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재앙일 것이다.

  미래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갖추어야할 또다른 조건에는 무엇이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믿을 만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만큼의 돈을 지불해야한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있다. 이에 못지 않게 가짜 정보도 범람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믿을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한다.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한다. 중요한 이슈라면 그것에 관한 과학적 문헌들을 찾아 읽는 노력도 필요하다. 공짜 무가지에 현혹되어 수구신문을 구독했던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수구 신문은 아직도 살아남아 한국사회를 뒷걸음질치게했다. 진실한 언론에 돈을 지불하고 구독하고,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덧 이 사회의 꼰데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공짜 이메일 서비스와 동영상의 댓가로 '개인정보'를 내주는 것을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 비유하고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화려한 구슬과 싸구려 담요를 댓가로 주고 온나라를 넘겨 받은 일화이다. 어쩌면 우리는 어느 아프리카 원주민들 처럼 화려한 구슬에 현혹되어 우리의 가장 소중한 정보를 팔아 넘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메일 써비스를 사용하기 위해서, 각종 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서 나의 개인정보를 제공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대사회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않는 자연인으로 살라는 말인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4. 종교의 허구성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일침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이 있다. 사피엔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창조론을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는 유대교를 믿고 있는가? 자신의 지식과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의 종교가 불일치할때, 유발 하라리는 어떠한 사고를 할까? 이 책에 비친 유발 하라리는 종교를 사실로 믿지 않는다. 하나의 믿음일 뿐이다. 심지어 시온주의자들이 "땅없는 사람의 사람 없는 땅으로의 귀환"을 비판하기 까지 한다. 유대인인 그가,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그가, 이스라엘 탄생의 원천인 시온주의를 비판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한국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뿌리를 부정하는 말을 한다면, 대중으로 부터 몰매를 맞을 것이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다고 그가 유대교의 효용성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부인권 사상'이 진실이 아니지만, 천부인권에 대한 믿임이 인류를 행복하게 했다는 사실을 그는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경전 내용이 진실이라 믿지는 않지만, 경전을 믿음으로써 유대인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실에는 유발 하라리는 동의할 것이다.

  유대교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태도는 종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데까지 나아간다. 단지 합리화하는 도구라 말한다. '종교는 개인의 온순함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뻔뻔한 집단적 오만함을 뒤섞는다.' 아울러 '언제나 자신을 극도로 낮춘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신의 이름을 활용해서 신도들 위에 군림한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결혼이 금지되어 있는 종교에서 결혼 사실이 문제가 되고, 교회를 세습하고, 잦은 성추문으로 몸살을 알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유발하라리의 지적은 참으로 날카롭다.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조심하자. 종교의 탈을 쓰고 신도 위에 군림하며 신도의 고혈을 빨아 먹으며 종교에 기생한는 자들을 조심하자.아울러,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신'이라면 섬길 수 있으나, '분노를 유발하는 신'이라면 우리는 그 신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맹목적으로 특정 종교를 믿는 신도들에게 유발 하라리는 깊이 있는 경고를 하고 있다.

 

5. 유발 하라리! 그의 창조성의 원천은?

  유발 하라리! 그의 창조성의 원천은 무엇일까? 한국에 번역된 그의 책들을 모두 읽으면서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화두였다. 내가 생각하는 혹은 하라리가 밝히 창조성의 근원을 탐구해보자.

  유발 하라리와 미셸 푸코의 공통점을 아는가?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둘은 동성애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두사람을 고통스럽게 했지만, 남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었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등의 엄청난 저작들은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금기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의 저작들은 철학을 넘어 역사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창조의 영감을 주었다. 유발 하라리도 20대에 방황을 했다고 한다. 타인과 다른 자신을 보면서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이다. 결국 타인과 다른 자신을 긍정하면서 남들이 긍정하는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보게되었다. 그의 명저 '사피엔스'는 이러한 고통의 산물이었다. 전병근 번역자는 유발 하라리가 '동성애'에 대해서 하나의 주제로 다루지 않은 점이 놀랍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자신이 동성애자이기에 겪었던 방황을 끝마친 것으로 보인다. 끝나버린 방황 때문에 하나의 장을 할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리라. 방황을 마치고 유발 하라리에게는 나와 다른 남을 긍정하고, 남과 다른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 창조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윤활류였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 자신이 말하는 창조성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는 '비파사나'라는 명상법을 창조성의 원천으로 제시한다. 진리를 알고 싶다는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있을때,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비파사나'라는 명상법은 집중력의 비결이라 말한다. 아울러, 명상을 통한 자기 관찰의 필요성을 그는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미래 기술 사회의 도래를 논하면서 전통적인 불교 명상의 효용성을 강조한점이 무척 흥미롭다. 문화재지킴이 혜문 스님이 책을 읽으면 모두 기억하는 비결을 참선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고용히 자신의 내명을 들여다보는 명상이 인간의 뇌를 집중시킨다는 사실이 놀랍다. 유발 하라리는 하루에 2시간씩 비파사나를 하며, 일년에 한두달 정도는 비파사나를 하기 위해서 수련에 들어간다고 한다. 나도 이제부터 명상을 통한 정신탐구, 자기애해를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겠다.

 

6. 사피엔스를 위한 제언

  사피엔스가 침팬치보다 나은 점이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도덕성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라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침팬치 사회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 침팬치를 우두머리 침팬치가 거두는 모습이 관찰된다. 승자독식의 시대, 노블레스 오빌리쥐가 지켜지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비추어 본다면, 침팬치는 보다 도덕적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사피엔스가 특별한 이유는 첫째,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 믿기 때문이다. 종교, 민족, 이데올로기가 그러한 것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어떠한 믿음을 공유하는가가 우리사회를 바꿀수 있다는 말이된다. 과연 21세기를 준비하는 한국사회는 어떠한 믿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승자독식의 신회를 믿으며, 약자를 짓밟는 자들을 위한 믿음을 공유할 것인가? 분단을 고착화시켜, 전쟁의 위험속에 살도록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를 고수할 것인가? 평화와 사랑을 위한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21세기를 위한 한국사회의 준비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대규모로 함께 사고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이다. 뉴턴이 자신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올려다 보았을 뿐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사피엔스의 문명은 어느 특출한 사피엔스 개인의 결과물이 아니다.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다.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공유해야할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깨어있는 개개인이 함께 우리사회를 깨어있게하는 담론을 만들어가야한다. 특정 보수 언론이, 특정 보수 세력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한다.

  이러한 사피엔스의 능력은 그들을 지구별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허구를 진실로 믿고, 집단으로 사고하는 무시무시한 사피엔스의 질주를 막을 수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우주와 삶의 의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그리고는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관찰'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민족', '국가', '정의'가 인간을 고통스럽게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것을 막는 방법은 '고통'을 직면하는 것이다. 좌와 우라는 도그마에 갖힌, '일베'들이 세월호 피해자들이 단식투쟁하는 현장에서 '폭식 투쟁'을 한적이 있다. 그들은 자식잃은 고통으로 시름하고 있는 이웃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기 보다는 이웃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자. 그것이 허구적 이야기의 노예가 되어 폭주하는 우리에게 냉정한 진실을 보게할 수 있다.

 

 

이제 유발 하라리 중독자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의 책이 나오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얇지 않은 두께의 책을 미친듯이 읽으면서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려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길 기대한다. 이번 책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혁명적인 지식은 권력의 중심에서 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라는 말은 고 신영복 교수의 '변방에서'를 떠오르게했고, 세계 권력의 중심부에 있지 않은 한국이 새로운 창조성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했다. 또한 새로운 종이 출현할 수도 있는 현실에서 하라리는 나노기술 등의 조작으로 자신을 업그래이드하는 일에 섣불리 도전하지 않겠다고 한다. 새로운 종이 실패할 수도 있다. 지름길이 황천길일수도 있는 법이다. 새로운 21세기!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새로운 사회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으며, 새로운 기술의 주인이 되기 위한 능력을 길러 놓아야한다. 그러나 섣불리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다가 불행한 결과를 자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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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0-14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영복 교수의 변방에서, 하라리의 탈중심주의 공감합니다.
정희진의 탈식민주의도 떠오르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강나루 2018-10-14 19: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석학들의 공통된 의견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붕붕툐툐 2018-10-14 2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죄송해요~ 너무 읽고 싶은 책이라 스포 당하고 싶지 않아서 글을 읽지 못했어요~ ㅋㅋ
책 읽고 와서 이 글 읽을게요:)

강나루 2018-10-14 21:34   좋아요 0 | URL
^&^
하라리의 매력에 빠지셨군요
천천히 읽으세요~~
 
제프스터디 영어명언 100강 - 나를 위한 하루 10분 영어 선물 제프스터디 시리즈
Jeff 지음 / 길벗이지톡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서양의 '논어'를 읽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영어 명언 읽기'가 이제 두번째 권을 마치게됐다. 다양한 서적중에서 원어민의 목소리와 제프강사의 강의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영어명언100강'을 선택했다. 하루에 한문장씩 읽고,6번씩 쓰면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아울러 영어 공부도 덤으로 해보았다. 'when you have faults, do not fear to abandon them.-Confucius-'이 명언이 공자의 어떠한 말을 옮겨 놓은지 알겠는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이다. 허물이 있다면, 고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을 영어로는 이렇게 옮길 수 있다는 재미도 주는 책이다.

 

1. The greater danger for most of us lies not in setting our aim too high and falling short; but in setting our aim too low and achieving ou mark.(michelangelo,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목표를 높게 정하고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너무 낮게 잡고 그것에 안주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를 높게 잡아라, 대통령을 목표로 삼으면 하다못해 군수라도 하지 않겠니?'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씀이다. 그때는 그말이 설득력있게 들렸다. 미켈란젤로도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씀과 비슷한 말을 한다. 그러나, 과연 거대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나에게 의미있을까? 실패도 학습된다. 너무 높은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를 학습하게 되고, 결국은 좌절하게된다. 교육학에서는 '성공경험'을 중시여긴다. 학생에게 알맞은 적당한 난이도, 즉, 그학생의 능력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문제를 학생 스스로 해결하도록해서, 성공의경험을 높이도록 해야한다. 목표를 거대하게 잡으라는 위대한 미켈란젤로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러한 능력이 충분히 있는 미켈란젤로에게 알맞은 말이다. 위인의 말이라할지라도 나에게 맞는 명언인지 생각해보게한다.

 

2. The best way to change the world is to change yourself -Anonymous-(세상을 바꾸는 최고의 방법은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한다. 혁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조차도, 자신의 삶을 혁명하는 사람은 드물다. 혁명은 우리 주변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자신도 혁명하지 못하면서 어찌 세상을 혁명하겠는가? 안희정 전지사를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많이든다. 차기 대권후보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었던 그가, 스스로를 혁명하지 못했기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려서부터 혁명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혁명하지 목하고 다시 일어설수 없는 길로 가고 말았다. 스스로를 혁명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으며,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일화이다.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의 '문명의 붕괴'라는 책이 생각난다. 문명이 붕괴하는 요인 6가지를 제시하고 지구상의 다양한 문명이 붕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재레드 다이야몬드 교수의 탁월성은 그러한 사례와 원인 제시에서 그치지않고, 문명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 문명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바꾸어야하고, 기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개인이라 말한다. 깨어있는 개개인이 모여서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깨어있는 개개인이 스스로를 혁명해야 사회는 변화한다.

 

3. The future depends on what we do in the present. -Mahatma Gandhi-(바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곧 우리의 미래이다.)

  미래를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라! 간디가 외치고 있는 듯이 나의 귓가를 쟁쟁하게 울리는 명언이다. 나는 우리반 사물함과 책상에 이 명언을 적어서 붙여 놓았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학생들에게 오늘을 뜻 깊게 살라는 의미를 전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 명언은 의역보다는 직역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의역은 '바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곧 우리의 미래이다.'이지만, 직역은 '미래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이다. '현재란 과거의 연장이요, 미래란 현재가 쌓여서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직역이 더 절실하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과거, 현재, 미래! 이러한 분절적 사고를 극복하고, 과거는 오래된 오늘이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현재라는 사실을 하는 연속적 사고의 중요성이 느껴지는 명언이다.

 

4. Success is never permanent, and failure is never final. -Mike Ditka-(성공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황금기를 살고 있는 자와 인생의 바닥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명언이다. 인생의 황금기에 겸손하며, 주변에 인덕을 배풀어 덕을 쌓고, 인생의 바닥에서도 아직 게임을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게해준다. 그러나, 이 명언이 한국사회에서 유효하려면, '승자독식의 사회',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라는 오명부터 씻어야한다. 한번 승리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지며, 한번 패배한자가 재기할 수 없는 사회라면 성공의 오만과 실패의 좌절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성공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언이 한국사회에서 유효한 명언이되길 바래본다.

 

5. Sometimes by losing a battle you find a new way to win the war. -Donald Trump-(어떤 때는 전투에 패배하게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당신은 아는가? 그를 어떠한 사람으로 생각하는가? '무식쟁이?', '미치광이?', '평화의 사도?', '단순한 사업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를 '곰의 탈을 쓴 영리한 여우'라고 본다. '어떤 대는 전투에 패배하게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라는 명언을 할 정도로 그는 현명하다. 그는 사업가로도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스스로를 탁월한 협상가라고 말한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 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트럼프가 전쟁을 일으킬지 몰라요. 전쟁이 일어나면 선생님은 무엇을 하실거에요?" 학생의 질문에 어이가 없었다.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 않아"라고 말하자, "트럼프는 달라요."라고 말하는 학생이 얼굴은 어두웠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고객의 마음을 읽고 주무르는 방법을 깨달은 사람이다. '블럼핑'을 잘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블럼핑'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은과 대화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국, 겉으로는 전쟁을 말하면서 뒤로는 한국을 통해서 북한과 접촉했다. 그의 평화 프로세스는 지금도 유효하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싸우면서 한국의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그는 세계에서 미군의 발을 빼고 놓고 있다. 물론 군산복합체 세력의 만만치 않은 견제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이를 슬기롭게 헤처나갈 것이다. 그는 '어떤 때는 전투에 패배하게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새로운 방법'을 아는 현명한 여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었던 길면서도 짧았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깨닫게해준 시간이었다. 물론, 친절한 제프 강사덕문에 영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덤으로 얻었다. 몰론, 몽골제국의 징기즈칸을 '원나라 황제'라고 설명한다던지, 'Our greatest glory is not in never falling but in rising every time we fall(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절대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것에 있다.)'라는 명언의 원문을 제시해주지 않은 아쉬움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아직도 깊은 감동과 삶의 의미를 주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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