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역사 기행 - 한반도에서 시베리아까지, 5천 년 초원 문명을 걷다
강인욱 지음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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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바이칼호! 알타이산맥! 이라는 단어를 들은 당신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의 머릿 속에는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고향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의 잃어버린 고향 알타이! 아득히 머나먼 고향 바이탈호, 우리의 사랑이 묻어 있는 곳 유라시아! 이러한 나의 생각은 명확한 근거가 있기에 생성된 것은 아니다. 명확한 근거가 있지도 않으면서 나는 왜? 이러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을까? 그래서 '유라시아 역사 기행'이라는 책을 꺼내들었다. 유라시아는, 바이칼호는, 알타이 산맥은 우리의 잃어버린 아득한 고향일까?

 

1. 유라시아의 관점에서 한국문화를 보자!

  학부시절, 동양사를 전공하신 교수님들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 있다. '한국사를 전공한 사람들의 견해는 시야가 너무 좁다!' 한예로, 몽골이 강화도를 건너지 못해서 강화도를 점령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너무도 이해되지 않는 주장이란다. 몽골에 입장에서 남송 정벌이 우선이었고 고려는 남송과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서 비주력부대를 보냈을 뿐이다. 고려 본토를 공격해서 강화도 정권이 스스로 항복하기를 유도했을 뿐이다. 동양사 전공 교수님의 견해는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야를 한반도에서 동아시아로, 다시 세계로 확대해야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는 동양과 서양으로 확대될뿐이었다. 우리 민족이 많은 교류를 해왔던 북방의 초원으로 시야를 확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은 한국사를 이야기하다가 단편적으로 유라시아를 언급하는 수준을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한반도에서 시베리아와 알타이 산맥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의 역사를 알시 쉬운 문체와 다양한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도를 곁들였다면 이해하기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한국사를 이해하는 시야를 확실히 넓혀주었다. 특히 한국의 세형동검을 이해하기 위해서 북방유목민족의 모습을 살피는 부분을 읽을 때는 전율을 느끼기 까지 했다.

  요즘, 세계화 시대, 지구촌 이라는 말이 일상화되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시대는 이미 아득히 먼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다. 파지릭 지역의 무덤과 신라의 적석목곽분은 너무도 형태가 유사하다. 수천킬로미터의 공간적 시간적 차이를 건너 뛰어서 문화를 공유하는 모습에서 한반도가 세계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국의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순방 외교를 펼치듯이, 한반도의 적석목곽분와 세형동검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유라시아 유목민들의 문화를 살펴봐야한다. 세계화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 말타기의 비극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를 아는가? 하늘을 날며 악당을 물리치는 그가 말에서 떨어져 전신마비라는 비극적 상황에 처했다. 물론, 그는 불굴의 신념으로 전신마비와 싸웠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말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커다란 불행을 선물하기도 한다. 안장없이 말을 타는 스키타이 인들 중에, 성불구자가 많다는 사실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말에 재갈을 물리고, 말을 전투에 이용하면서 말은 인간에게 가공할 힘을 전쟁터에서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그 달콤한 유혹은 성적 불구라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다.  인간의 쾌락중에서 성적쾌락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함에도 이를 느낄 수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물론, 성적 욕망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면 고통스럽지도 않을 수 있겠지만.... 

  자손을 낳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인데, 이들은 어떻게 이를 충족시켰을까? 그들은 출산과 양육을 분리했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기를 많이 낳고 아기가 없는 사람들이 이를 입양해서 양육했다. 파지릭 고분에서 다양한 인종들, 심지어는 백인들의 유골이 발견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말이 인간에게 선사한 두얼굴의 선물을 인간은 거부할 수 없었다.

 

3. '부여계 기마 민족설'의 진실은?

  흔히들 우리민족의 뿌리는 북방의 기마민족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자랑스러워한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하고 한다. 그런데 이책의 저자는 '인더스문명에서 처럼 드라마틱한 정복 근거가 나오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며, 신라와 가야의 성장 동력은 새로운 문화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이할 수 있었던 사회 자체 역량에 있다고 강변한다. 역사적 사료의 강력한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고학적 유사성을 근거로 북방 기마민족이 남하하여 지배층을 교체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가 어려운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신화를 살펴보면 그 가능성을 전면 부인할수도 없다. 단군신화의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더던지, 주목이 남하하여 고구려를 세우고, 온조가 남하하여 백제를 세우고, 하늘에서 내려온 상자 속 알에서 김수로가 나왔다는 신화는 북방의 기마민족이 남하하여 지배층을 이루었을 가능성을 암시해준다. 저자 강인욱의 주장이 많은 설득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마 민족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4. 중국의 동북공정의 그림자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어디일까? 대학시절 서교수는 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시기에 다시 쌓은 것이고, 원래는 평양까지 이어졌다고 동양사시간에 학부생에게 강의했다. 박근혜정부시기 국정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한 서교수의 주장을 이책의 저자 강인욱은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 반박한다. 제스산 일대 발굴, 갈석공 유적 발굴을 통해서 산해관이 만리장성의 끝이라는 사실이 발혀진 것이다. 중국측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만리장성을 연장해서 이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중국정부의 역사창조작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금, 철저한 사료비판과 고고학 자료를 통한 엄정한 역사연구가 절실함이 밀려온다.

  그런데, 강인욱은 '중국인이 멸시하던 이민족을 자신의 조상과 연결'시키는 모습을 '오랑캐의 문화를 잘 이용하는자가 결국 중원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 단정한다. 이에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한다. 중국은 동북3성 지역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삼는 동북공정 이외에도, 베트남 북부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삼는 남방공정, 베트남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삼는 서남공정, 몽골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를 만드는 북방공정을 하고 있다. 현재 중국땅에서 일어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이뤄지는 이들 공정(프로잭트)들은 중국의 역사 만들기 프로잭트이다. 그래서 예전에서는 오랑캐로 멸시하던 이민족들을 이제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자신들의 조상과 연결시키고 있다. 강인욱은 이를 유념해야할 것이다.

 

5. 보석보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보낸 부인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미투리를 삼아 편지와 함께 관에 넣어둔 사실을 아는가? 바로 이응태 묘에 얽힌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야기이다. 남편에 대한 절절한 사랑 편지가 이응태묘에서 발견되었고, 이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특히 이응태 부인의 편지는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나또한 수업시간에 이응태 부인의 편지를 활용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만 유명한 편지로 알고 있었던 이응태 부인의 편지가 고고학 잡지 <앤티퀴티>에 표지 장식으로 실렸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금은 보석이 사랑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돈에 눈이 어두워서 사랑을 버리고 떠나는 남자 혹은 여자에 대한 복수를 그린 드라마와 영화가 한때 인끼를 얻었던 적이 있다. 물질만능의 시대에 부부사이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매우 쉽다. 물질 만능의 시대이기에 진정한 사랑 이야기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연못속의 진흙탕 속에서 핀 연꽃이 더욱 아름다워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혼에 조건을 따지고, 사랑보다는 직업과 재산을 먼저 따지는 요즘 세태가 심화될 수록, 이응태 부인의 편지는 우리에게 더 많은 울림을 줄 것이다.이응태 부인의 편지가 더 많은 울림을 주지 않을 정도로 우리사회가 물질만능의 세태에서 벗어나길 바래본다.

 

  작고 가벼운 책이다. 누구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한반도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길을 따라서 문화교류의 광활한 역사를 알려주는 의미 있는 책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광활한 교류의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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