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는 OB파니 양은이파니 이런 건 몰라도 청록파라고 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쳤다...는 아니고 다 알았다. 아시다시피 청록파의 삼거두는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이다. 올해가 박목월 탄생 백주년이라고 한다. 박목월의 아들은 서울대교수 박동규다. 검색을 해보니 조지훈의 아들은 조태열이라는 분으로 현재 외교부 제2차관이다. 박두진의 아들은 검색되지 않는다.
오늘자 조선일보 정민의 <세설신어>의 제목은 이백과포(易帛裹布)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올해 탄신 100주년을 맞은 박목월 선생의 수필집을 정리하다 ‘명주안감’이란 글을 읽었다. 아들은 아침저녁 10리씩 걸어서 학교에 갔다. 혹독한 겨울 날씨에 내의를 안 입은 채 광목옷이 빳빳이 얼면 사타구니가 따가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헌 명주옷을 뜯어 아들의 바지저고리에 안을 받쳐 주었다. 살결에 닿는 감각이 간지러울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우연히 손자의 옷 안자락을 보게 된 할아버지가 불벼락을 안겼다. “당장 벗어라” 그러고는 어린 것을 저리 키워 뭐에 써먹느냐고 펄펄 뛰었다. (중략)
김언종 교수가 번역해 실학박물관에서 새로 펴낸 다산의 잡록 ‘혼돈록(餛飩錄)’을 보니 ‘이백과포’의 항목이 보인다. 우리나라 조복(朝服)이 여름엔 모시를 쓰는데 비단으로 안감을 대서 겹옷으로 만들었다. 정조가 이를 금지시켜 겉의 천이 모시이면 안감 또한 모시를 두게 했다. 정조의 이 같은 조처는 ‘예기(禮記)’ ‘옥조(玉藻)’편에서 “베옷에 비단으로 안감을 두는 것(易帛裹布)은 예가 아니다”라고 한 데서 나왔다. (후략)“
훗날 선생(박목월)은 그 때의 소동에서 한 그루 교목처럼 실팍하고 굳세게 자녀를 기르시려는 할아버지의 준엄한 마음을 읽었고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기억했다고 정민은 쓰고 있지만 불초한 소생은 조신들의 조복에 대한 정조의 조처는 아주 적절하지만 어린 손자를 대하는 할아버지의 행동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광목옷 안에 비단을 댄 것도 아니고, 못쓰는 아버지의 명주 헌옷을 재활용하여 불편한 점을 고쳐쓴 것이니 오히려 잘한 일이라 할것이다. 목월의 할아버지는 그 자신에게도 그리 엄격했는지 묻고 싶다.
추신 : 소생 서재 당호 <사의재>의 유래
다산 이야기기가 나와서 참고로 알려드린다. 소생 서재의 당호가 가당찮게도 “사의재(四宜齋)”이다. 처음 알라딘에 서재를 꾸릴 때 그때 아마 다산 정약용 관련 책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별 생각없이 서재이름을 사의재라고 정했다. 사의재란 “네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으로 다산이 강진에 귀양 가 살 때 거처하던 곳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나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해야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나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나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나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방에 그 이름을 붙여 사의재라고 한다. 고 사의재기에는 나와있다. 그런데 어째 말이 조금 이상한 부분도 있다. 외모가 장엄한 것은 어떤 것인지(너훈아쯤 되어야 장엄한 건가?)......빨리 더디게 하는 것은 또 무슨 말인지.....(내용이 맞는 지 원문을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뭐 원문을 본들 잘 알것 같지도 않지만서두..)
그건 그렇고 불초한 소생이 감당키 어려운 당호를 쓰고 있으니 무거운 짐을 짊어 진 듯 어깨가 무겁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 거동이 불편하다. 언제 시간날 때 당호를 바꾸어야 겠다. 이건 어떤가? “딸딸이를 신고 일렁일렁” 딸딸이는 어감이 좀 거시기하니 “슬리퍼를 신고 일렁일렁”. 사실 나가이 가후의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이 나왔을 때 이 생각이 들었다.
소생은 초등학교 때 일없이 동네 시장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길 좋아했는데, 옆 골목에 사는 친구 홍길이 엄마가 홍길이에게 자주 말씀하셨다고 한다. “홍길아, **이 오늘도 딸딸이 신고 시장에서 일렁일렁 거리고 있더라.” 홍길이는 이름 때문에 별명이 홍길동이었는데 별명만 그렇지 뭐 번쩍번쩍 신출귀몰한 재주는 없었다. 그래도 공부는 곧잘했는데 요즘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 한번 외쳐본다. 오갱끼데스까?~ 정말 이야기가 두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