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카프 궁전의 처음 출입문인 황제의 문에서 담장을 따라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귈하네 공원 입구다. 세계 5대 고고학박물관 중 하나라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유명한 카데쉬 조약 점토판 등 히타이트와 바빌로니아의 유물을 전시한 고대동방박물관과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 등 그리스와 비잔틴 시대의 조각상들을 모아놓은 고고학 박물관, 그리고 타일 장식품과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된 타일 키오스크 박물관의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 동방 박물관에서는 우선 고대 바빌로니아의 느부카드네자르 2세의 궁전에서 가져왔다는 화려한 색채의 타일 부조가 볼만하다. 사자, 유니콘 등이 타일로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 느부카드네자르가 누군가 하면,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고 수십만의 유대민족을 노예로 삼아 바빌론으로 끌고간 바로 그 사람이다. 성경에는 느브갓네살로 등장하는데 말하자면 유대민족의 원수다. 노예로 끌려온 유대인들의 삶은 참담했을 것이다. 역사는 이를 '바빌론 유수'라고 한다. 보니엠이 노래 불렀다. 연식 좀 되신 분들은 알쥬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는 디스코 풍의 흥겨운 노래지만 가사는 애절하다. (노예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바빌론 강가에 앉아 떠나온 고향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내용이다. 이게 또 코메디 프로에서는 다들 이불 개고 밥먹어로 개사되어 사람들을 웃겼다. 한 민족의 한 맺힌 역사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씁쓸한 일이기는 하나 뭐 어쩌겠나 너무 깊이 들어가면 모두가 피곤하다

 

 

 

 

 

 

 

 

 

  

 

이 박물관에서는 하이라이트는 역시 카데시 조약 점토판이다. 세계 최초의 성문 국제조약이라고 한다. 물론 발견된 것 중의 최초이리라.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에 깨알같이 작은 문자들이 새겨져 있다. 점토판의 크기는 가로 13.8센티미터 세로 17.6센티미터 정도다. 당시의 국제어인 아카드어로 적혀있다고 하는데 소생이 보기에는 무슨 작은 칼자국 같은 걸 빽빽하게 새겨놓은 것만 같다. 이런 걸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저 글자같지도 않은 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을 해내었는지 소생같은 아둔한 인사는 몇 번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모를 일이다. 그저 놀랍고 생각하면 감탄스러울 뿐이다.

 

BC 1286, 한창 뻗어나가던 이집트 왕국의 람세스 2세는 정예부대를 이끌고 장장 1600킬로의 대원정을 감행하여 지금의 시리아 남부에 위치한 카데쉬에서 소아시아지역의 강자인 히타이트 왕국의 무와틸리 2세와 한판 붙었다. 이른바 카데쉬 전투다. 진짜 전투는 오론테스강 서안의 평원에서 벌어졌다. 히타이트의 함정에 빠진 람세스 2세의 이집트군는 거의 몰살당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궤멸 직전에 원군이 도착해서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전투로 이집트는 많은 손실을 입었고 히타이트는 사실상 승리를 하긴 했지만 더 이상의 확전을 바라지 않아 전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무와탈리 2세가 죽고 그 아들 무르실리 3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무와탈리 2세의 동생인 하투실리 3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를 차지했다. 하투실리 3세는 외교에 능했다. BC 1269년 람세스 2세와 하투실리 3세가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것이 카데쉬 조약인데 내용이 현대의 평화협정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조약 체결 뒤 두 나라는 60여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BC 1245년에는 하투실리 3세의 딸이 람세스2세에게 시집을 오고 하투실리 3세의 아들 투달리야 4세는 람세스 2세의 누이와 결혼하기도 했다

 

카데쉬 조약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이집트 땅의 대왕 람세스와 히타이트 영토의 대왕 하투실리 사이의 영원한 평화와 우정을 위하여 조약을 맺는다.”로 시작되는 이 조약문은 전쟁의 중단, 요청 시 상호 군사 원조 약속, 상호 약탈 금지, 도망 병사는 본국으로 송환하나 송환된 병사는 사면해야 하며 그 병사와 관련하여 연좌제 등 처벌하진 않는다, 하투실리 자손들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람세스2가 도와준다. 카데쉬와 아무르는 히타이트 지배하에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도망 병사 사면 및 연좌제 처벌 금지 조항은 인도적 배려가 돋보이기는 하나 내정 간섭적인 면도 없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조항이 들어갔는지 궁금하고 놀랍다. 카데쉬가 히타이트의 지배하에 있다는 조항은 결국 전쟁에서 히타이트가 이겼다는 뜻일 것이다. 람세스는 카데쉬에서 이집트가 이겼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여러 신전과 무덤에도 그렇게 기록했다. 역사 왜곡은 요즘도 횡횡하고 있으니 고대라고 다를 리가 없다.

 

히타이트는 BC 18세기에서 BC12세기까지 지금의 터키 지역인 아나톨리아의 하튜사를 중심으로 번성한 왕국이다. 최전성기인 BC 14세기에는 아나톨리아 대부분과 시리아, 레바논, 메소포타미아 일부 지역까지 장악한 제국을 형성했다. 이집트가 아직 청동기 무기로 싸울 때 벌써 철제 무기를 사용했으며, 전차 다루는 기술이 아주 뛰어났다. 위용을 떨치던 제국은 동쪽의 아시리아의 압박과 그리스계 해상민족의 침입으로 BC 1180년경 허망하고도 갑작스럽게 종말을 맞이했다. 그리고.... 3,000여년간 아무도 그 제국을 기억하지 못했다. 제국은 완전히 잊혀졌다. 컴컴한 망각의 늪 속에 침몰해 있던 제국을 인양해 세상에 알린 사람은 바로 독일의 고고학자 빙클러였다.

  

19세기 중엽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터키의 보가즈쾨이에서 고대 도시의 흔적을 처음 찾아냈고 19세기 말엽에 프랑스 고고학자가 비로소 보가즈쾨이를 발굴하고 처음으로 쐐기문자가 적힌 점토판을 발견했다. 1906년 독일과 터키의 합동조사로 보가즈쾨이에서 발굴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독일 학자 휴고 빙클러와 테오도르 마크리다는 카데쉬 조약 점토판을 손에 넣었다. 점토판은 당시의 국제어였던 아카드어로 새겨져 있었다. 빙클러의 발굴 작업은 무지막지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미 수메르어와 아카드어의 쐐기문자를 해독했던 그는 자신의 관심대상인 쐐기문자 점토판만 집중적으로 발굴하게 하고는 다른 것들은 망가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이 점토판으로 빙클러는 자신이 사라진 히타이트 제국의 왕실문서보관소를 발굴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보가즈쾨이가 바로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였던 것이다.

 

빙클러는 이 곳에서 히타이트어로 된 쐐기문자 점토판도 엄청나게 발굴했다. 히타이트어 쐐기문자는 당시에는 미지의 언어였다. 언어학자들이 풀어야 할 수수께기였는데, 이 중대한 일은 오스트리아 군대에 중위로 근무하고 있던 체코인 베드리히 흐로즈니에게 맡겨쪗다 . 26세에 빈의 아시리아 학과 교수가 된 이 언어학의 천재는 이미 수메르어와 아카드어를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여러 고대 언어에 정통해 있었다. 피땀의 노력에 행운 역시 거들어서 흐로즈니는 히타이트어 쐐기문자를 해독해냈다. 남은 것은 발굴된 엄청난 양의 점토판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일이었다. 그 일은 하투샤 발굴을 주도한 독일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렇게 해서 밝혀진 히타이트의 역사는 엄청난 것이었다. 말그대로 점토판이 살려낸 역사였다.

 

 

 

 

 

 

 

 

 

 

 

 

원래 카데쉬 조약의 원본은 은판에 새겨졌다고 하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어데갔는지 찾을 수 없고 빙클러는 복사본 점토판 3개를 발굴했다. 하나는 베를린 박물관에, 둘은 여기 터키의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빙클러가 발굴한 점토판과 똑 같은 내용이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에도 새겨져 있다. 육로로 2000킬로나 떨어진 두 장소에서 3000년이나 지난 동일한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오늘날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 건물 입구에 카데쉬 조약문의 확대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의 표시겠지만 복사판 하나 가져다 놓는다고 뭐 변하는 건 없다. 말하자면 가오잡는 것이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미지를 찾을 수 없다. 뉴욕에 직접 한번 가봐야겠다. 갈 수 있다면 말이죠... ㅋㅋㅋ

 

 

 

 

 

 

 

 

 

 

 

 

터키 고고학 박물관 입구

 

 

 

3000살 먹은 돌사자 앞에서 재롱부리는 8살 혜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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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10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점토판이 풍화 작용을 견딘 게 참으로 신기해요. 전시된 점토판이 거의 부서지기 직전인데 고대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걸 처음에 발견했다면 하찮은 돌무더기로 봤을 겁니다. ^^

붉은돼지 2015-09-17 12:50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게 정말 신기합니다. 대리석도 아니고 돌도 아닌 점토판이 말이죠....
빙클러는 보가즈쾨이에서 엄청난 양의 점토판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히타이트 제국의 왕실 문서고였던 것이죠...
 

 

아버지는 옛날부터 그러니까 소생이 출생하기 전부터 〈조선일보〉를 보셨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엄마는 신문을 끊었다. 요즘은 종이신문을 사무실에서나 보지 집에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예전에 소생이 종이신문 조선일보를 볼 때 가장 재미있게, 혹은 기다려 가며 읽은 것은 첫째는 ‘이규태 코너’이고 다음은 ‘만물상’이었다.

 

 

이규태나 만물상을 쓰는 분들은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알고있었는지 하여튼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줬다. ‘이규태 코너’는 물론이거니와 ‘만물상’도 단행본으로 나온 것이 있다. 상, 하권인가 아니면 몇십 년씩 묶어서 몇권으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소생도 분명 두꺼운〈만물상〉한 권을 중고서점에서 구입하여 가지고 있었다. 오늘 생각나서 찾아보니 어느 구석에 쳐박혀 계시는지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오늘 저녁을 먹으러 인근 식당에 들렀다가 종이신문 조선일보를 보게 되었는데 신문을 척!! 펼치니 대번에 똭!! 하고 만물상이 보인다. (요즘 이 똭!! 이라는 글자 쓰는 재미가 솔솔하다.) 제목은 ‘표절 고백’이다. 예전 만물상에는 필자를 명시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필자를 명시하는 모양이다. 햐~ 헬렌 켈러에게 그런 일이....아니, 알렉스 헤일리도...아하!!! 감탄하며 오늘자 만물상을 읽었다. 모두 처음듣는 이야기다. 〈조선일보〉안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옮겨본다. 조선일보에도 재미있는 글들 많다. ‘조용현 살롱’이나 ‘최재천 칼럼’ 이런 것들 말이다. 요즘도 나오는 지 모르겠다.

 

 

 

 

 

 

 

 

 

 

 

‘일류는 세상을 지키고 삼류는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갑자기 지난 토요일 본 영화 베테랑의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아무런 맥락도 없는 이 대사가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삼류와 가오가 약간 맥이 닿는 듯도 하다. 원래 삼류가 가오를 잡는다. 아아아!!! 모르겠다. 나는 일류도 아니지만 삼류도 되기싫다. 돈도 없고 가오도 없다. 한심하다. ‘사는 게 뭐라고’의 요코 할미가 된 것 같다.

 

 

2015.9.8. 조선일보 [만물상] ‘표절 고백’

 

헬렌 켈러가 열한 살에 동화 '서리왕'을 썼다. 마거릿 캔비가 쓴 '서리 요정'을 베꼈다고 논란이 됐다. 어린 헬렌이 장애인 학교 교내 법정에 섰다. '서리 요정'을 읽긴 했는데 잊어버렸다고 했다. '혐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 충격은 컸다. 헬렌은 "표절이 편집증처럼 따라다녔다"고 털어놓았다. 스물한 살에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를 내면서 "비로소 완전한 내 것"이라고 했다. 이른 자서전이 표절 꼬리를 떼주기를 바랐다.

 

표절 의혹을 사는 작가는 대개 '잠복 기억'을 들먹인다. 어떤 작품을 읽고 잊어버렸는데 무의식에 남아 있다 튀어나왔다고 말한다. 1970년대 앨릭스 헤일리가 흑인 노예의 조상을 추적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뿌리'를 냈다. 해럴드 쿨랜드의 '아프리카 사람'을 80군데나 베꼈다고 해서 송사가 벌어졌다. 해명이 좀 구차했다. "누군가 준 자료를 보고 썼을 뿐이다. 그게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헤일리는 쿨랜드에게 65만달러를 물어줬다.

 

신경숙 표절 논란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소설가 박민규가 표절을 자복(自服)하고 나섰다. 2003년 장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2007년 단편 '낮잠'이 인터넷 글과 일본 만화를 보고 쓴 것이라고 했다. 출세작인 '삼미…'는 1990년대 PC 통신 게시판에 팬이 올렸던 글과 많은 부분이 닮았다. 박민규는 "오래전 일본 만화 '황혼유성군'을 읽은 기억이 있다"고도 했다. 스스로 "명백한 도용(盜用)"이라고 깨끗하게 선언했다.

 

10년 전 첫 단편집 '카스테라'를 낸 박민규와 마주 앉았다. 그는 괴짜 스타일로 화제였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히피 장발을 어느 날 잘라버리고 '펑키 룩'으로 금물을 들였다. 집에서도 히피 옷과 장신구를 걸치고 글을 썼다. 스키 고글처럼 커다란 색안경을 끼고 나타나 인터뷰 내내 벗지 않았다. 고교 땐 "반 평균 점수를 떨어뜨리는 놈"이었고 중앙대 문창과는 커닝해서 들어갔다고 했다. 모두가 베껴도 그는 반역적 작가로 남을 줄 알았다.

 

영화감독 김상진은 "일류는 세상을 지키고 삼류는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그때 박민규는 삼류를 자처하며 세상을 바꿀 것처럼 덤볐다. "예술이란 혁명과 표절, 둘 중 하나"라고 한 고갱처럼 박민규도 "한국 문단의 근친상간 풍조가 소설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혁명'을 외쳤다. 문단을 뒤집어놓을 것 같았다. 10년 지나서는 그저 베끼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한 꼴이 됐다. 실감은 안 난다. 표절 고백이 아니라 세상을 조롱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직 불온하다.

-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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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5-09-08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 우리 아버지가 늘 보시던 신문으로, 저도 이규태 코너를 즐겨 읽었어요. 아무리 술에 취해도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썼다는 전설도 내려오는 이규태 아저씨!
저흰 아직도 종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어요. 이름하여 <한겨레신문>. 생전의 저희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신 신문이지요. 아버지는 `일류`, 저와 오빠는 `삼류`ㅎㅎㅎ
그런데 신문 기사를 이렇게 그대로 옮겨도 알라딘에서 뭐라 연락이 안 오나요? 지난번 한겨레신문에 실린 탄저균 미군기지 기사를 그대로 옮겼더니 메일이 왔더군요. 그러면 안 된다나...뭐, 일류의 조선일보는 봐주고 삼류의 한겨레신문은 안 된다는 건지...

붉은돼지 2015-09-09 11:56   좋아요 0 | URL
어멋!! 신문기사를 그대로 옮기면 안되는지 몰랐어요...보통 링크도 걸고 하던데....어쨋든 저한테 메일 온 거는 없는 것 같아요^^ 역시 일류 신문이어서 봐주는 지도 모르죠 ㅎㅎㅎㅎ 아니면 붉은돼지야 뭐 별 시답잖은 소리만 하니 모니터링에서 빠졌을 수도 ㅎㅎㅎㅎ

moonnight 2015-09-09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에 같은 기사를 앗! 하며 재미있게 읽었어요. ^^ 집에 조선일보와 지역신문 이렇게 두 가지 종이신문을 구독하고 있어요. 조용헌살롱은 얼마전에 책으로도 나왔지요? 아마 종이신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눈이 보이는 한-_-; 종이신문을 구독할 것 같아요.^^
참, 김광일 논설위원님은 예전에 책소개해주실 때부터 팬이었어요.^^(뜬금없는 팬심고백-_-;)

붉은돼지 2015-09-09 11:59   좋아요 0 | URL
와우~ 신문을 두 종류나 보시는 군요,,,,일요일 오전 같이 한가한 날 거실에서 신문을 양 옆으로 넓게 활짝 펼쳐놓고 하나한나 꼼꼼히 혹은 대충 쭉~ 훑어보며 무슨 숨은 그림 찾기하는 듯한 재미가 쏠쏠했는데요....요즘은 뭐 다 인터넷으로 보니 그런 재미는 없는 것 같아요 ^^

transient-guest 2015-09-09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규태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 부모님 댁에 어디엔가에 있습니다. 저도 자주 읽은 기억이 있구요. 박민규 스타일의 글쓰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고, 소재의 참신함일까, 세태풍자랄까 이런 것들이 맘에 들어서 그의 작품을 읽긴 했습니다. 겉멋이 많이 들었다는 생각을 했지만, 특별히 혁명이나 전위적이라는 생각은 못 했구요, 그저 자기 마켓팅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말장안 같은 그런게 맘에 들지 않았기에 표절이라고 해도 딱히 실망되지는 않네요.ㅎ

붉은돼지 2015-09-09 12:01   좋아요 0 | URL
저는 뭐 박민규 작품 많이 읽은 것은 없지만 삼미~ 는 무척 재미있게 봐서 햐~ 정말 대단한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요즘은 전체적으로 소설을 잘 보지 않는 편이라 표절 고백에도 뭐 별 감흥은 없는 것 같아요.,.^^

비연 2015-09-0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작가 중 박민규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게 과거형이 될려나 싶네요. 표절 고백을 한 건 용감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지언정 그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을테고 독자의 입장에서도 이제 나올 그의 책들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규태 칼럼에 대한 기억은 새롭네요. 재미있었고 늘 신기했죠. 방 가득 포스트잍 등이 가득 붙은 책과 자료들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었구요. 요즘은 이런 글을 쓰는 분을 찾기가 좀 힘들어요. 흉내는 낼 지언정.

붉은돼지 2015-09-09 12:33   좋아요 0 | URL
저는 박민규 책은 좋아하는데 왠지 인간 박민규는 좀 낯선 느낌이랄까 와 닿지 않더라구요....물론 제가 뭐 박민규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 말이죠. ^^;;;;;;;
이규태는 정말 대단했던 것 같아요 월급의 반을 책 사는데 썼다고 하더라구요^^
사모님이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을 듯 ㅎㅎㅎㅎㅎㅎ

stella.K 2015-09-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도 제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조선일보를 구독해 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2004, 5년무렵에 구독을 끊었던 것 같아요.
신문은 어른이나 보는 거란 인식이 자리잡아서 그런지 그 유명한 이규태 코너나 만물상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봤을 뿐었죠. 그때 야로씨였나? 한 단짜리 만화 만평있찌 않았습니까?ㅋ
저는 주로 방송 프로그램하고 북섹션, 주말 매거진 같은 그런 것만 좋아했었죠.
조선일보 욕을 많이 하지만 그런 건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 같습니다.
구독을 끊고도 한동안 기회만 있으면 주말판을 편의점이나 가판대에서 샀던 기억이 납니다.
김광일 논설위원이 아직도 건재한가 봅니다. 은퇴한 줄 알았는데...ㅎ

붉은돼지 2015-09-09 12:37   좋아요 0 | URL
저는 만평하면 경향신문 김상택 화백 만평이 최고였던 것 같아요^^
물론 박재동 화백 만평도 무척 재미있게 봤지만서두요..
김상택 화백 만평은 한컷 짜리인데 특이하게도 신문을 펼치면
1면에 똭!!하고 나오죠....아마 그런 사례는 없었던 걸로 알아요
또 그림은 선이 굉장히 많아서 좀 복잡하게 보이지만 그림체도 저는 재미있었어요....
돌아가신 지 한 참 된 것 같습니다. ㅜㅜ
 

귈하네 공원은 원래 톱카프 궁전의 일부였다. 지금은 궁전 담장 밖으로 밀려나 독립된 공원이 되어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공원이다. 터키어로 장미의 집이란 뜻이다. 튤립 축제가 열리는 4월에는 활짝핀 장미와 튤립이 볼만하다고 한다. 뭐 지금은 장미도 튤립도 없다. 공원에 들어서면 큰 길 양옆으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있다.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분수대가 있다. 분수대 뒤쪽에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슬람 과학기술사 박물관이다. 당시에는 몰랐다. 지금 정리하면서 알았다. 뭐 당시에 알았다고 해도 둘러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기도 했지만 아내는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더 이상 박물관은 안돼!!!

 

공원을 가로지르는 큰 길을 따라 위 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바다 쪽에 거의 다와서 그야말로 그림같은 카페가 똭!!하고 있다. 일명하여 삼각지 까페. 뭐 짐작하셨겠지만 이건 소생이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무슨 소린가 하면 돌아가는 삼각지도 아니고 버뮤다 삼각지도 아닌데,,,,까페에서 바라다보이는 바다는 금각만과 보스포러스 해협과 그리고 마르마라 해, 이 세 곳의 바닷물이 서로 만나는 그런 절묘한 지점의 바다인 것이다. 아시다시피 저 바다를 건너면 아시아다. 여기는 유럽의 끝이고. 유럽의 끝에 위치한 있는 까페 삼각지~~ !! 무슨 노래가 나올 것만 같다. ~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마도 아시는 분 별로 없을 것이다. 요절한 천재가수,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이 부분에서 풉!! 식사 중 밥알 폭탄을 터뜨린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쨌든 배호는 그리 간단한 가수는 아니다

 

 

 

 

 

 

 

 

 

  

각설하고 까페는 바다가 보이는 방향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까페의 의자는 투박한 목재의자인데  우리나라 옛날 중고등학교 걸상과 거의 비슷하다. 혹시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여튼 전망이 정말 굿이다. 베리베리굿이다. 한여름인데도 모두들 흐뭇한 표정으로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뜨거운 차이를 마시고 있다. 차이는 터키식 전총 차다. 홍차 잎을 스트레이트로 진하게 내려서 뜨거운 물을 더 붓고 설탕을 넣어서 마시는 차다. 아이스 차이는 없는 모양이다. 물론 콜라나 주스를 마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왠지 차이를 마셔줘야 할 것만 같다. 차이 2인분과 혜림씨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2층으로 된 주전자, 찻잔 2, 각설탕, 무슨 뜰개같은 것이 나온다. 아래층 주전자에는 그냥 뜨거운 물이 들어있고 윗층 주전자에는 홍찻잎을 넣어 끓인 뜨거운 찻물이 들어있다. 찻잔에 반쯤은 윗층 주전자의 진한 홍찻물을 붓고 나머지 반쯤은 아래층 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붓는다. 주전자가 뜨겁기 때문에 수건을 사용한다. 그리고 각설탕을 퐁당!!! 탄닌성분 때문에 떫은 맛이 강해 설탕을 넣는다고 하는데 설탕을 넣어도 역시 떫다. 일인당 서너잔은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이상하게 나는 두잔 정도 마시니 머리가 띵하고 약간 어질하다. 아내는 멀쩡하다. 역시 아내는 강하다. 소생은 뭐 배만 나왔지 천생이 약골이라 차이 섯 잔에 두통이 다 생긴다.

 

 

 

 

 

 

 

차이 주전자 뒤로 아이스크림 껍질을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우리 혜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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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9-07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 배호닷!
사실 배호는 저의 엄마 아버지 세대가 좋아하셨죠.
안개낀 장충단 공원 생각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배호 같이 부르는 사람도 없어요.
착 가라앉은 저음에 노래는 왜 그리도 멜랑꼴리한지...
평전이 있었군요. 근데 절판이라니... 우울하군요.ㅠ

붉은돼지 2015-09-08 12:32   좋아요 0 | URL
예 사실 배호는 저보다는 제 부모님 세대에서 좋아하시는 분이죠
배호하면 삼각지보다는 역시 장충단 공원이죠 ㅎㅎㅎㅎ
평전이 있는 줄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검색하다 보니 나오더라구요..그런데 절판 ㅜㅜ

2015-09-07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8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후즈음 2015-09-0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간혹 차이 한잔만 시키면 각설탕을 두개씩 주더라구요. 처음에는 한알만 넣어서 먹었는데 나중에 아무 생각없이 두알 넣어 먹었더니 .....왜 각설탕 두알을 주는지 알겠더라구요. 각설탕 한알과 두알의 차이가 어마어마 하더만요....

붉은돼지 2015-09-08 12:37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부터 두개 넣고 마셨어요 그래도 떫더라구요...
한창 더울 때 여행을 다녀서 차이는 많이 안마셨어요,,,,더워죽겠는데 뜨뜻한 거 마실려니....ㅜㅜ
그래도 터키사람들은 열심히들 마시더라구요 ㅎㅎㅎㅎ

해피북 2015-09-0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책을 읽다보면(나는걷는다) 사람들이 차이를 권하는 장면이 많아서 어떤 차를 권하나 궁금했는데 홍차였군요! 가는 길목마다 차이를 권했다고 했는데 ㅎㅎ 베르나르 올리비에도 좀 힘들었을성 싶네요 ㅋㅂㅋ

붉은돼지 2015-09-0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키사람들 정말 차이를 많이 마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 더운 날씨에도 마시는 걸 보고 놀랐어요^^
날씨가 좀 선선할 때 갔으면 저도 아마 차이를 많이 마셔서 조금 적응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여행기간 동안 딱 두번 마셨는데 마실 때 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라구요....이상하게 아내는 안그런데 저만....
역시,,,제가 아마 약골이라서 그런지...ㅎㅎㅎㅎ

보슬비 2015-09-1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키 음식점에서 저렇게 차를 내놓을때 손잡이 없이 뜨겁게 마셔야해서 힘들었어요.^^
전 각설탕 한개정도가 제 입맛에 딱 맞았답니다. 홍차 카페인도 만만치 않아서 어질어질한건 카페인 부작용인것 같아요.ㅎㅎ

붉은돼지 2015-09-21 12:44   좋아요 0 | URL
터키 사람들 한 여름인데도 뜨거운 차이를 잘들 마시더라구요 ~
보슬비님 말씀대로 아마 홍차 카페인 때문인 것 같아요....저는 이스탄불 여행동안 딱 두번 차이를 마셨는데 두번 다 머리가 아프더라구요 ㅜㅜ
 

 

 

 

 

 

 

 

 

 

 

 

사노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을 읽고 있다. 유쾌하지만 어딘가 쓸쓸하다. 으아아아아!!!! 늙고 싶지 않다...는 참으로 한심한 생각을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사는 게 뭐라고”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말인데,,,하이트 맥주 광고 문구 아닌가?? 맞쥬? 현빈이 나와서 ‘사는 게 뭐라고’ 하면서 친구들과 맥주잔을 격렬하게 부딪히면 허연 개거품이 멋들어지게 튀어 오르고....‘사는 게 뭐라고’ (맥주나 한 잔 하지....말이죠 ㅋㅋ) 코러스가 깔리고. 소생은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생각했는데 ‘사는 게 뭐라고’란 멘트와 현빈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소생이 볼 때 이 광고는 실패다.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현빈같은 비주얼의 남자는 ‘사는 게 뭐라고’ 이런 멘트를 절대로 날리지 않을 것만 같다. 저런 멘트는 정말 사노 요코쯤은 되어야 어울릴 듯도 하고, 어쨌든 사는 것에 대한 쓴맛을 좀 본 사람이 해줘야 어울린다. 티끌하나 없는 깨끗한 대리석 조각같은 얼굴로 사는 게 뭐라고라고라.....에이씨...

 

 

이런 구절이 있다. “일본으로 돌아오던 해에 네 살짜리 남동생이 죽었고, 그 다음 해에는 오빠가 죽었다. 영양실조였을 것이다. 오빠가 죽은 이듬해 여름, 아버지는 엄마에게 또다시 자식을 낳게 했다. 아, 생명이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네 살짜리 남동생은 죽을 때까지 쌀밥이라는 걸 먹어보지 못했다.”(P56)

 

 

터키 해변에서 엎드려 잠자는 듯한 주검으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 꼬마는 세 살이라고 했다. 오늘 인터넷을 보니 이집트의 한 억만장자가 지중해의 섬 하나를 통째로 사서 난민들의 정착지로 제공하겠다고 한다. 시리아의 정부군이나 반군이나 IS나 모두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전체인구 2300만 가운데 400만명이 조국을 떠나 난민이 되었다고 한다. 세상은 알 수 없는 곳이다. 답이 없다. 진짜.

 

 

이런 구절도 있다. “나는 노인이 된 이래 적어도 자세만은 똑바르게 걸으려고 언제나 신경 썼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딱 마주친 지인이 말했다. “뭘 그리 거만하게 으스대며 걷는 거야” 세간(世間)은 어렵다."(P59)   맞는 말이다. 세상은 어려운 곳이다.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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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9-06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의사에게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고는 항암치료도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시도도 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대목이 와닿았어요. 오래 고통받으며 심지어 죽지도 못하는 상태가 될까봐 걱정이에요ㅠㅠ 미리 걱정해봤자 소용도 없지만요.-_-;;
아일란 쿠르디 아기는..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ㅠㅠ. 맞아요. 도대체 이 세상이 어찌된 건지, 사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ㅠㅠ;;;

붉은돼지 2015-09-06 21:40   좋아요 0 | URL
아직 거기까진 못읽었어요
한국 드라마이야기도 재미있더라구요 ㅎㅎㅎ

자유도비 2015-09-0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2쪽, 문어 요리하면서 선정적인 풍속화 떠올리는 장면은 읽으셨어요? 호쿠사이의 <문어와 해녀>를 말하는 거여서, 그 대목 읽다가 뿜었어요.

붉은돼지 2015-09-07 09:20   좋아요 0 | URL
오오오!! 놀랍군요. ㅎㅎㅎㅎ 이런 거시기한 작품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오늘날의 일본의 거시기한 것들이 역시 그냥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군요....그것이 무엇이든간에 만발하기 위해선 거름이나 토양이 필요한 법이죠 ㅎㅎㅎㅎㅎ

아무개 2015-09-07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늙는것에 대해 거의 공포수준의 감정을 느껴요.
왜 그래야 하는건지 ...
당연한 일에 대해 이렇게 공포를 느껴야 한다는게 참....


붉은돼지 2015-09-07 09:23   좋아요 0 | URL
저는 오락가락하고 있어요
어떨 때는 몹시 두렵다가도 또 어떨 때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가.....
하지만 역시 두려움이 맞겠죠..ㅜㅜ

뭐 지금도 젊은 건 아니지만 늙는다는 건 슬픈 일인 것 같아요,....흑흑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늙으면 늙은대로 잘 적응해 살겠죠....뭐 도리 없잖아요??? ㅎㅎ

Mephistopheles 2015-09-07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원한 맥주 한잔에 응어리가 풀리면서 ˝사는게 뭐냐고˝ 외치는 인생은 글쎄요....그냥 너무 단순해보이네요..
그래서 저 역시 저 하XX 맥주 광고는 볼때마다 별로네..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붉은돼지 2015-09-07 17:10   좋아요 0 | URL
저 같이 뭐 늙지도 젊지도 않는 그냥 그런 직장에 다니는 중년의 남자들.....끼리모여 소주 서너 잔에 꽐라되어서 `인생 뭐 있나?` 이러고 주접떠는 건 뭐랄까.....약간은 심금을 울리는 게 있는 것도 같아요 ^^
저 하**맥주 광고는 그런 이미지를 조금 젊고 세련되게 만들려다 실패한 듯한 그런 느낌이에요 ㅎㅎㅎ
 

 

 

 

 

 

 

 

 

 

 

 

 

이건 소생이 옛날부터 궁금해 했던 것이어서 언젠가는 한번 이야기해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던 것인데......그렇다고 뭐 심심하게 심각한 것은 아니고. 소생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게 또 본질과는 좀 동떨어진 옆길로 새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여서 어딘선가 누군가 “쯔쯔즈...별 이상한 생각도 다 하고 있네....책에서 그렇다면 그런줄 알면되지......아이참, 붉은돼지님은 좀 이상한 성격인가봐.” 이런 소리를 할까봐 걱정도 된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어제 〈로마의 일인자〉 3권을 읽다가 그 생각이 또 떠오른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나 〈로마제국 쇠망사〉(아아아! 이건 아직도 5권 3백페이지인가 4백 페이진가 그 어띠쯤에 진을 친지 아마 2~3개월은 된 듯하다...), 이런 것들을 보면 로마의 총사령관이 결전을 앞둔 로마군단 앞에서 연설을 하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로마의 일인자에도 보니 결전 전 총사령관의 연설은 로마군의 관행이라고 한다.) 연설의 내용이야 어떤 식으로든 기록으로 남아있으니 전해졌을 것인데.....소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고 총사령관의 연설에 반응하는 병사들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 다 이렇다. 총사령관의 연설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거나 완전 고무되어 열렬히 호응하는 대충 그런 이야기가 많다. 어떤 연설들은 제법 길다. 로마의 일인자 314~315페이지에도 마리우스가 전체 군단병 앞에서 마치 대화하듯이 연설하는 대목이 나온다. 역시 마리우스의 연설에 병사들은 자부심으로 한껏 고무되어 눈물을 흘렸다.

 

 

로마군의 규모는 보통 수만 명에 이른다. 확성기도 없던 시절에 수만명 앞에서 총사령관이 모습을 나타내서 연설을 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겠지만 의미의 전달은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전장에서 군대의 후퇴나 전진 등의 명령을 내릴 때는 깃발이나 나팔을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적당한 비유가 아니겠지만 학교에서 수백 명이 조회를 해도 서서 조는놈, 짝다리 집고 엉뚱한 짓거리 하는 놈, 옆 친구와 소곤소곤 이바구하는 놈놈놈,,, 별 놈들이 다 있어 교장선생님의 훌륭하신 훈화는 안타깝게도 학생들의 귀까지 거의 전달되지 못하고 공중에서 산화한다. 로마군 총사령관의 목소리가 아무리 천둥같거나 아니면 화통을 삶아 먹었다고 해도 의미가 이해가능한 육성이 전달되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다. 앞 줄에 가까이 있는 수십 명이나 수백 명 정도 사령관의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소생이 뭐 시비를 따지자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동안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을 한 번 적어봤을 뿐이다. 병사들이 총사령관의 연설에 감동받거나 고무되었다기 보다는 어쨌든 그때의 분위기가 그랬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도 하다. 그렇거나 말거나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이런 장편은 시작한 김에 끝을 봐야 하는데...후속 편이 언제 나올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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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9-0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속 대대와 장교들만 앞에 데리고 연설했을까요? 뒤에서는 그냥 앞에서 와! 하면 같이 와!!! ㅋㅋ / 저도 어제 3권을 다 읽었습니다. 전에 7이 끝이라고 어디서 들었는데 갑자기 이번 3˝권˝이 마지막이라고 해서 어리둥절했습니다. 알아보니 시리즈는 7까지 진행되고 1이 로마의 일인자, 2는 풀잎관....이렇게 나가나 봐요. 그렇다면 시리즈 전체는 약 21권쯤 되는 것인가요? 헉.....

붉은돼지 2015-09-06 21: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로마의 일인자가 말하자면 일부죠 총칠부고요
어쩌면 21권이 넘을지도 ....

앞에서 와~하면 같이 와~
이러면 파도타기되는데 ㅋㅋ

moonnight 2015-09-06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그러네요. 붉은돼지님이 상상하신 장면을 저도 떠올려보며 맞아맞아했어요.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 않아서 책사는 걸 자제하려는데..재미있다 하시면..ㅠㅠ;;;

붉은돼지 2015-09-06 21:46   좋아요 0 | URL
사실 뭐 중요한 건 아니죠
이런 대하소설은 역시 몰아서 읽어야한다는 생각이에요^^

CREBBP 2015-09-07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생각했어요. 어떻게 의미 전달이 됐을까 하고요. 거대 원형경기장인가 고대 연극이 행해졌던 장소에서는 설계상의 고려로 소리가 연극배우들의 소리가 멀리있는 관객석에서도 잘 들린다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신기해요

붉은돼지 2015-09-07 13:13   좋아요 0 | URL
전에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는 러셀 크로우가 말을 타고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연설을 했던 것 같아요....
뭐 중요한 건 아니니.....그건 그렇고 로마 원형극장에서는 정말 배우들의 소리가 저 뒷좌석까지 잘 들린다고 하더군요...무슨 공학적으로다가 그렇게 설계가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