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옛날부터 그러니까 소생이 출생하기 전부터 〈조선일보〉를 보셨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엄마는 신문을 끊었다. 요즘은 종이신문을 사무실에서나 보지 집에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예전에 소생이 종이신문 조선일보를 볼 때 가장 재미있게, 혹은 기다려 가며 읽은 것은 첫째는 ‘이규태 코너’이고 다음은 ‘만물상’이었다.
이규태나 만물상을 쓰는 분들은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알고있었는지 하여튼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줬다. ‘이규태 코너’는 물론이거니와 ‘만물상’도 단행본으로 나온 것이 있다. 상, 하권인가 아니면 몇십 년씩 묶어서 몇권으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소생도 분명 두꺼운〈만물상〉한 권을 중고서점에서 구입하여 가지고 있었다. 오늘 생각나서 찾아보니 어느 구석에 쳐박혀 계시는지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오늘 저녁을 먹으러 인근 식당에 들렀다가 종이신문 조선일보를 보게 되었는데 신문을 척!! 펼치니 대번에 똭!! 하고 만물상이 보인다. (요즘 이 똭!! 이라는 글자 쓰는 재미가 솔솔하다.) 제목은 ‘표절 고백’이다. 예전 만물상에는 필자를 명시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필자를 명시하는 모양이다. 햐~ 헬렌 켈러에게 그런 일이....아니, 알렉스 헤일리도...아하!!! 감탄하며 오늘자 만물상을 읽었다. 모두 처음듣는 이야기다. 〈조선일보〉안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옮겨본다. 조선일보에도 재미있는 글들 많다. ‘조용현 살롱’이나 ‘최재천 칼럼’ 이런 것들 말이다. 요즘도 나오는 지 모르겠다.
‘일류는 세상을 지키고 삼류는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갑자기 지난 토요일 본 영화 베테랑의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아무런 맥락도 없는 이 대사가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삼류와 가오가 약간 맥이 닿는 듯도 하다. 원래 삼류가 가오를 잡는다. 아아아!!! 모르겠다. 나는 일류도 아니지만 삼류도 되기싫다. 돈도 없고 가오도 없다. 한심하다. ‘사는 게 뭐라고’의 요코 할미가 된 것 같다.
2015.9.8. 조선일보 [만물상] ‘표절 고백’
헬렌 켈러가 열한 살에 동화 '서리왕'을 썼다. 마거릿 캔비가 쓴 '서리 요정'을 베꼈다고 논란이 됐다. 어린 헬렌이 장애인 학교 교내 법정에 섰다. '서리 요정'을 읽긴 했는데 잊어버렸다고 했다. '혐의 없음' 판정을 받았다. 충격은 컸다. 헬렌은 "표절이 편집증처럼 따라다녔다"고 털어놓았다. 스물한 살에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를 내면서 "비로소 완전한 내 것"이라고 했다. 이른 자서전이 표절 꼬리를 떼주기를 바랐다.
표절 의혹을 사는 작가는 대개 '잠복 기억'을 들먹인다. 어떤 작품을 읽고 잊어버렸는데 무의식에 남아 있다 튀어나왔다고 말한다. 1970년대 앨릭스 헤일리가 흑인 노예의 조상을 추적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뿌리'를 냈다. 해럴드 쿨랜드의 '아프리카 사람'을 80군데나 베꼈다고 해서 송사가 벌어졌다. 해명이 좀 구차했다. "누군가 준 자료를 보고 썼을 뿐이다. 그게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헤일리는 쿨랜드에게 65만달러를 물어줬다.
신경숙 표절 논란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소설가 박민규가 표절을 자복(自服)하고 나섰다. 2003년 장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2007년 단편 '낮잠'이 인터넷 글과 일본 만화를 보고 쓴 것이라고 했다. 출세작인 '삼미…'는 1990년대 PC 통신 게시판에 팬이 올렸던 글과 많은 부분이 닮았다. 박민규는 "오래전 일본 만화 '황혼유성군'을 읽은 기억이 있다"고도 했다. 스스로 "명백한 도용(盜用)"이라고 깨끗하게 선언했다.
10년 전 첫 단편집 '카스테라'를 낸 박민규와 마주 앉았다. 그는 괴짜 스타일로 화제였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히피 장발을 어느 날 잘라버리고 '펑키 룩'으로 금물을 들였다. 집에서도 히피 옷과 장신구를 걸치고 글을 썼다. 스키 고글처럼 커다란 색안경을 끼고 나타나 인터뷰 내내 벗지 않았다. 고교 땐 "반 평균 점수를 떨어뜨리는 놈"이었고 중앙대 문창과는 커닝해서 들어갔다고 했다. 모두가 베껴도 그는 반역적 작가로 남을 줄 알았다.
영화감독 김상진은 "일류는 세상을 지키고 삼류는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그때 박민규는 삼류를 자처하며 세상을 바꿀 것처럼 덤볐다. "예술이란 혁명과 표절, 둘 중 하나"라고 한 고갱처럼 박민규도 "한국 문단의 근친상간 풍조가 소설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혁명'을 외쳤다. 문단을 뒤집어놓을 것 같았다. 10년 지나서는 그저 베끼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한 꼴이 됐다. 실감은 안 난다. 표절 고백이 아니라 세상을 조롱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직 불온하다.
- 김광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