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3살 연년생 남자아이를 키우는 언니네에 얹혀살던 시절, 언니가 늘 하는 고민이 "오늘 저녁엔 뭘 먹지?" 였다. 그때 알았다. 주부에게 날마다 남편 저녁 챙기는 게 "일"이라는 걸. 아줌마가 되고 나서 나도 당연히 이 과정을 겪고 있다. 귀찮아서 사먹거나 시켜먹거나 대충 때울 때가 많지만 한창 이 책을 읽고 있어 그런지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는다. 식욕이 없거나(세상에, 그런 일도 있나요?) 배는 고픈데 요리하기가 싫어서 몸부림 칠 때 이 책을 읽으면 마법처럼 힘이(?), 식욕이 솟아난다.

 

 

 

산더미처럼 쌓아둔 설거지를 끝내고 부랴부랴 멸치랑 마른 새우 볶아 비린내 없애서 쌀뜨물 붓고 살짝 끓인 다음 건져 버리고(멸치를 오래 끓이면 느끼해진다) 생새우 머리 끓여서(해물파전할 때 새우 머리를 떼어내고 육수용으로 냉동보관하면 좋다. 새우 머리를 넣으면 국물이 시원하다) 마지막에 다시마 살짝 담갔다 끓여 건더기 다 건져서 육수 내고-내 요리는 육수가 힘이기에, 그런데 육수내는 과정이 번거로워 요리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할 때도 많다-채소 썰고 아질산나트륨 제거하느라 어묵 데쳐 체에 받쳐 두고 육수 넣고 떡을 끓이기 시작한다. 떡이 어느 정도 익은 뒤에 고추장 풀고 팔팔 끓이고 채소들 넣고 라면 넣고(떡볶이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라볶이는 좋다는 남편의 요청으로 넣었는데 떡볶이나, 라볶이나...) 어묵 넣고 마지막에 깻잎 찢어 넣고 파 얹으면 끝난다. 간을 할 필요도 거의 없다. 육수에서 맛있는 물이 배어 나오니까.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꿀도 넣지 않았다. 

 

 

 

 

동시에 두 가지 요리 하는 것을 좋아(?)해서 라기 보다 불면증 중증이라 아침에 남편 먹이(?)를 챙겨줄 수 없어 미리 해놓아야 했다. 굶길 때도 많지만 아직 환자님이니 잘 챙겨주려고 한다. 아킬레스건 파열되면 재활 오래가는구나. 의사가 그냥 겁주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건만. 떡볶이 아니, 라볶이 하는 도중에 새우 해동하고 엊그제 썰어두었던 채소들이랑 기름 둘러 볶는다. 밥을 넣기 전에 간을 해야 간이 잘 배어 들어 볶음밥을 할 때는 밥 넣기 전에 소금 간을 한다. 정택배여사 -손 크고 끝없이 손 크고 쉬지 않고 이것저것 해서 보내는 엄마. 몸 상하니 제발 좀 하지 마시라고 닦달하면 "이제 그만할거야" 하시면서도 "근데, 택배 상자 주워놨다" 그 말에 너털웃음 웃을 수밖에 없다-가 자식들을 머더러 6마리나 낳으셔서 그 많은 새우껍질을 일일이 까느라 피가 터지고 손이 다 모지라지셨을 거다. 우리 자매들 각자 집에서 한동안 선보였을 새우요리는 엄마의 정성 맛이다. 어머니는 새우볶음밥이 싫다고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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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6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야식엔 소주인데...^^..무척 맛나 보입니다.비주얼이 역시 ^^.

samadhi(眞我) 2016-10-16 23:44   좋아요 2 | URL
깔끔한 성격이 못 돼서 그릇 주변이며 배경이 무지 지저분한데요;; 퀵으로 보내드릴까요? ㅋㅋㅋ

yureka01 2016-10-16 2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어서 빨리 순간이동을 개발해야겠습니다 ^^.

samadhi(眞我) 2016-10-16 23:49   좋아요 2 | URL
이런 문제 때문에 텔레포트가 가능한 세상이 올 수도 있군요. ㅎㅎㅎ 저도 맛있는 거 보면 정신이 혼미해지거든요.

쿼크 2016-10-17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이 시간에... 테러 당했다... 지금 넘배고파서..ㅎㅎ 맛있겠다..ㅠ

samadhi(眞我) 2016-10-17 00:13   좋아요 0 | URL
아직 남아있는데 드리지 못 해 아쉽네요. ㅋㅋ

쿼크 2016-10-17 00:14   좋아요 0 | URL
남아있다는게 더 가슴이 쓰리네요... ㅎㅎ

samadhi(眞我) 2016-10-17 00:15   좋아요 1 | URL
육수내는 요리는 이상하게 양 조절이 안 돼서 꼭 대량으로 하게 되더라구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7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아, 맛있겠네요.. 제가 요즘 고기 위주 식단으로 거의 2주를 밥 안 먹고 고기만 먹었는데
이 식단, 도저히 못 먹겠더군요.. 제일 그리운 건 단 게 아니라 밀가루 음식입니다... 평소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던지라... 우동, 떡복이 이런 게 먹고 싶슨요..

samadhi(眞我) 2016-10-17 12:57   좋아요 0 | URL
제가 뽐뿌질 제대로 한 겁니까? 고단백저탄수 하시나본데 고거 말 많던데요. 곰발님이 알아서 알아보셨겠지만. 본능을 거슬러가며 살 필요 있나요? 원하는 것만 하고 좋은 사람만 만나기도 모자란 시간이라 생각해요, 요즘엔

samadhi(眞我) 2016-10-17 12:56   좋아요 0 | URL
게다가 밥 한 끼 드시는 분이 영양소 골고루 갖춰 드셔야죠.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2 - 버리기 마녀의 심플라이프
유루리 마이 지음, 정은지 옮김 / 북앳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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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이 책이 원작인 일본드라마부터 봤다. 그 드라마를 보고 꽂혀서 3시간 꼬박 들여 책상 서랍 정리를 하고서 스스로 뿌듯해 했다. 그러고는 정리 사진을 찍어 나 못지 않게 정리 못하는, 정허술 여사-뭘 해도 헐렁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엄마- 넷째 딸인 언니에게 보내주었다. 그랬더니 언니도 다음날 수납장 정리를 했다며 내게 사진을 보냈다. 우리에게 정리정돈과 청소는 살면서 제일 귀찮고 힘드는 일이다. 정리정돈 하는 일이 익숙지 않아 늘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청소, 정리정돈 책만 집안 가득이고 몇 권이나 읽어 재꼈(?)으나 그때 뿐 집안은 다시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으로 원상회복 되곤 한다.

 

언니나 난 게으름도 한 몫 하지만, 평생 쉴 틈 없이 고생해 오신 우리엄마는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이 책을 읽으면 답이 나온다. 엄마를 닮은 나도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아까워서 물건을 버리지 못 하신다. 그래서 엄마집에 가보면 늘 어수선하다. 엄마와 반대로 빛의 속도로 버리는 언니는 왜 그럴까. 같이 해외여행 갔을 때 언니가 출입국신고서를 버려서 하마터면 입국 못 할 뻔했다. 그래, 우리도 버리기 변태에게 한 수 배워 보자구. 드라마보다 책의 재미가 더 떨어진다. 원작보다 영화나 드라마가 더 재미난 건 드문 일인데, 책은 주로 버리기 방법론에 치중한다. 책이 좋은 건 작가가 자기 집 구석구석 정리정돈 상태를 사진으로 공개해 두었다는 거다. 깔끔하고 정갈해-정말로 아무것도 없어서- 가슴이 떨릴 정도이다. 나처럼 작가네 집에 놀러가고 싶은 사람이 많을 거다. 가서 잔뜩 어질러 놓고 올테야.

 

작가의 고백(?)대로 일부러 의식하지 않았지만 늘 정리정돈하고 필요없는 물건을 없애 최소의 물건으로만 살다보니 저절로 수행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한다. 월든 호숫가에서 의자, 식탁, 침대 하나 있는 단칸방에 살던 소로우가 떠올랐다. 중국인들이 물을 아껴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던 한비야-한비야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괜찮다-의 중국견문록도 생각난다. 그곳을 떠나오면서 그동안 사 모았던 책을 몽땅 기증했다는 용기(?)가 대단해 보였다. 그 책을 읽던 십여 년 전만 해도 책 만큼은 잘 빌려주지도 못 하고 누군가에게 주는 건 엄두도 못 냈으니. 지금은 읽은 책을 친구네 책장 장식용으로 보내긴 한다 그나마 아끼는 책은 그리하지도 못 한다.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책에 대한 집착 만큼은 버리지 못 하고 책을 보기만 하면 두근두근 한다. 책을 주문하고 택배를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하고 책을 받자마자 선물 받은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책 표지를 닦아내고 이 책 저 책 들춰본다. 작가가 신발과 가방에 대한 소유욕을 어쩌지 못 하는 것처럼 내겐 책이 그렇다. 그러면서도 정리되지 않은 책장을 보면 심란하다. 찾으려는 책을 찾아 헤매기 일쑤다. 무엇이든 정성스레 쓰다듬으며 정리정돈을 해야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거겠지.

 

드라마를 보던 시기에 한번도 버릴 생각을 못 했던 초중고 졸업앨범을 버렸다. 대학앨범은 우리과 빼고는 볼 일이 없어서 처음부터 사지 않길 잘 했고. 남편은 신기하게도 한번도 졸업앨범을 안 샀다는 거다. 고등학교 때 안 산다고 했을 때 가정형편 때문이라 인정해주던 담임이,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안 산다고 해서 문제가 되어 하마터면 살뻔 했다고 한다. 그래도 기어이 사지 않았다며 쓸데없는 일로 으스댄다. 십대부터 써오던 일기는 차마(?) 버리지 못 했는데 염세와 우울과 다짐 뿐인 기록물을 용기내 버리기로 한다. 버리려고 할 때마다 들춰보는 재미(?)에 정신을 놓고 읽다가 하루를 다 보내고 다시 책장에 꽂아놓기를 반복했는데 펼쳐보지 않고 재활용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 버려야겠다.  

 

무인도에 던져(?) 놓아도 로빈슨 크루소보다 더 잘 살 것 같은 작가에게 버리기 정신. 취사선택하는 법. 삶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지 생각해보는 시간 등을 배운다. 옷은 구제로, 책은 거의 중고로 사는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인지 여러번 들었다놨다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잠깐 딴 짓 하는 동안-책 읽으면서 읽을 내용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 딴짓을 하는 버릇이 있다- 나눔의 미학에 보낼 여름 옷들을 꺼내서 차곡차곡 쟁겨뒀다. 불필요한 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흠, 나처럼 잘 버리지 못 하거나 정리정돈에 젬병인 사람에게 자극이 된다. 드라마도 찾아서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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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6 0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건은 버리더라도 일기 이런건 버리지 마세요...영원할 수는 없지만 손자대까지 정도는 읽어서 어떻게 살았구나 정도 알려주는 것이 좋을 거같아요..가끔 내 할아버니는 어떻게 그시대를 살았나.궁금할때 일기라도 있으면 볼 수 있었으며면좋겠다는 생각입니다.ㅎㅎㅎ아니면 좀더 나아가서 책을 물려주셔도 좋잖아요..

samadhi(眞我) 2016-10-16 05:54   좋아요 2 | URL
제가 기록에 대한 집착이 심했거든요. 역사를 전공하기도 했고-공부도 안 하고 아는 것도 없이 전공했다 말하기도 부끄럽지만요.
그런데 다 부질없다 여겨지더라구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주관점으로 볼 때 먼지 한 톨보다 작은 제 존재가 흔적도 없이 잊혀지길 바라요.

2016-10-16 0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6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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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한국어를 잘못 쓰는 사례들을 하나씩 들어보이며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인지 설명한다. 한국어에 걸맞게, 가장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특히 일본식 어법, 어투, 영어투를 쓰지 않아야 한다 말한다. 그러다보니 문장 하나하나 신경써가며 다시 읽어보게 되고 저자보다 더 자연스럽게 표현을 바꾸어서 읽어보기도 한다. 나도 참 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교정을 하고 있다. 자기가 과거에 쓴 책에서 뽑은 문장의 예를 들어가며 자기 글을 스스로 고치고 반성하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저자의 성격이 긍정적-과거에는 그러지 않았다면 그렇게 변했으리라-이라 짐작된다.

 

글을 읽거나 쓰거나 사람들이 말을 할 때마다 교정하는 게 버릇인 내가 평소에 말하던 내용들이다. 내가 쓰려고 했던 글을 이 사람이 먼저 써버렸잖아. 언니에게 이 책 얘기를 하며 내가 할 말이 다 적혀있더라고 했더니 "너도 써봐." 그러길래, "국어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오랜세월 기자생활을 한 저자와 달리 내게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데 사람들이 뭘 보고 내 책을 읽어주겠어?" 하고 만다.

 

지금은 시쳇말로 '꽤 잘 나가는(?)' 웹툰을 연재하는 후배의 글을 정식 연재 전에 교정해 주었다. 후배가 언젠가 작품을 그리게 되면 교정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고 흔쾌히 그러마, 했었다. 처음엔 교정을 부탁하기가 미안했는지 아님 교정의 필요성을 못 느껴 그랬는지 7회 정도까지 연재하다가 급하게 연락이 왔다. 맞춤법이 엉망이어서 댓글로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빨리 말할 것이지 왜 혼자 애를 끓여.' 그러고는 교정을 시작했다.

 

난 교정을 할 때 그 부분이 왜 틀렸는지 일일이 주석을 달아둔다. '이건 일본식 한자어라서 쓰지 않아야 해.', '우리말은 단순 명료하게 쓰는 게 가장 자연스러워.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이 부분은 삭제할게', ' "하게" 체를 쓸 건지, "하오" 체를 쓸 건지 통일하는 게 좋다', '이건 영어 번역투니까 쓰지 마' 등등 뿐만 아니라 띄어쓰기, 문장 부호, 어순 등 그리고 문장 전체가 어색할 때는  아예 다른 문장으로 바꿔버리기도 했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땐 사전을 찾아가며 일일이 확인하고 고쳤다. 내 까탈스러움에 질리기도 했을 텐데 너무한 것 아니냐는 말 한번 하지 않은 후배가 고맙기도 하다. 

 

책도 많이 읽고 맞춤법도 꽤 잘 안다고 자신하던 후배는 평범한 한자성어 마저 틀릴 때가 많았다. 그걸 보는 궁물(국문)과 출신 남편은 "그래도 작간데! 기본이 안 돼 있으면서 그런 상태로 작품을 왜 내냐?" 비판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내가, "시도가 좋잖아, 자기 작품을 쓸 수 있다는게 대단하고 이야기도 참신하다 너 왜 그러냐?" 하고 투닥거리기도 했다.

 

가끔 만화 내용이 꼬이거나 질질 늘어진다는 댓글 비판을 받으면 내게 물어오기도 했고 악성 댓글 때문에 상처받고 울 때마다 그런 쓰레기들 신경 쓰지 말고 니 갈 길 가라 다독여주곤 했다. 시시하고 별로인 만화는 인기도 많은데 진짜 신경 많이 쓰고 진지하게 그리는 자기 작품은 왜 알아주지 않는지 한탄하기도 했다. "유치한 게 잘 통하는 더러븐(?) 세상이야. 때가 되면 니 실력을 알아줄 날이 올거야." 그러기를 1년 여, 정식연재가 됐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오며 이제는 교정에 대한 수고비를 주겠다고 한다.

 

처음부터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고 됐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주겠다고 하여 그런가보다 했는데 헉, 한 달 4회 연재한다는 데 교정비를 총 3만원 주겠단다. 10연 년 전 일산 지역신문을 교정할 때도 시간당 2만원은 받았는데-물론 교정량의 차이가 있긴 하다- 놀라서 어리둥절했지만 정식연재를 해도 얼마 못 받아서 그런가보다 했다. 남편이 그 얘길 듣고 기막혀하며 이젠 하지 말란다. 후배가 알아보니 그쪽 업계에서는 그 정도가 관례 라는 거다. 하아, 정말 할 말이 없다. 그쪽 업계고 나발이고 내가 초등생 조카도 아니고 용돈 주듯 3만원이 뭐냐. 안 받겠다는 데도 부득부득 주겠다고 해서 10만원(이것도 모호한, 웃기는 금액이지만 내 자신이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정도를 생각했는데. 남편은 "야, 지가 손해를 보더라도 50만원쯤 주겠다고 마음이라도 먹어야지. 그게 창작자가 비슷한 일을 하는-내가 교정에 꽤나 공들이는 걸 알고 있고, 남편도 교정을 해봤으니 대충 안다.- 교정자에게 할 짓이냐? 걔랑 안 되겠다. 괜찮은 후배라며?  괜찮은 애가 어쩜 그러냐?..." 차라리 안 받겠다고 했다가 그럴 순 없다는 후배와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고 결국 교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 이후로 정식 연재된 후배 작품을 보지 않는다. 인기가 꽤 많은 지 포털 싸이트 첫 화면에 뜨기도 한다. 동아리 선후배는 식구라면서, 아낀다더니 겨우 이런 일로 속좁게 구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관계를 지속할 만큼 내 마음이 자라지 못 해 어쩔 수 없다. 일러라 일러라 일름보~ 고자질한 기분이 드네. 아니, 작정하고 쓴 고발 글이네. 책 얘기하다가 심하게 옆 길로 빠졌는데 아직도 기억을 지우지 못 한 나도 어지간히 못났다. 이제 지질한 마음일랑 털어버려야지.

 

이 책을 그 후배에게, 월간지 형식으로  된 사보에 한국어로 글을 쓰시는-일본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지 30년 넘었는데 늘 일본식 어투를 고집하시는 그 분의 글을 볼 때마다 속이 뒤집어진다.-분께, 한국어 문장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 글을 제대로 쓰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권한다. 한국어로 글쓰기 설명이 쉽고 자세하다. 언젠가 나도 요런 책 써봐야지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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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타이거즈 대 엘지 트윈스 와일드카드 최종결정전. 9회 초까지 0:0 으로 팽팽한 승부였다기보다 브랫필의 1안타가 전부로 좀처럼 기아 타이거즈에게 타격이 풀리지 않는 경기다. 타격 때문에 답답한 속을 야수들이 끝내주는 수비로 풀어준다. 야수 노릇만 잘 하지 말고 타자 노릇도 좀 하지?

 

꽃범호가 날았다. 한승택이 무거운 포수장비를 몸에 달고 뒤로 뛰어가 넘어지며 공을 잡는다. 주찬이 형아(나보다 어리지만 김주찬은 그냥 형아다)가 앞으로 달려와 누워서 공을 잡는다. 야구를 열심히 하기로 소문난 노수광이 앞으로 미끄러지며 잡아낸 그 공은 소름이 돋았다. 같이 보던 남편이랑 마구 소리를 질렀다. 와, 이 녀석은 정말 잘 될 거야. 노수광이 멋진 수비를 마치고 덕아웃에서 김호령이랑 얘기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을 때 남편에게 그랬다. 호랭이한테 수비 조언을 들었나보다.

 

마지막, 엘지 김용의의 끝내기 뜬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끝내기. 바로 그 공을 뒤에서 달려가 모자가 벗겨지면서 잡아내고(남편에게, "역시 수비는 모자가 벗겨져야 제 맛이야, 주찬이 형아도 한승택도 노수광도 내 새끼도 모두 모자가 벗겨졌잖아." 그랬다.) 그걸 홈까지 던진 내 새끼 호랭이. 얼마나 뭉클하던지. 눈물이 가슴에서 마구 샘솟는거야. 내 새끼는 그랬어. 저렇게 멋진 놈이야. 이러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냐고. 야구는 타격보다 수비가 기본이라 생각하는 난 수비 못 하는 선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타격이 좀 모자라도 수비 대장 김호령이 제일 이쁘다. 졌는데 하나도 안 억울한거야. 물론 지크 투입은 썽났지만. 이렇게 멋진 경기를 해낼 줄 어떻게 알았냐고. 혼신을 다한 타이거즈 선수들 욕봤고 고마웠어요. 아, 내년 야구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사진출처: 첨부한 기사에서 끌어다 씀.

http://sports.media.daum.net/sports/column/newsview?newsId=20161012090153777&mccid=353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속 시원한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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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10-1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 !!!!!!!!

위로의 말을 전하기 위해 쓰는 말이 아니라 어제 기아는 약빤 경기였습니다.
예술이었다고 생각하고....


야구가 예술이 될 수 있는 분야는 공격보다는 수비죠. 사실 수비 때문에 경기에 이기거나 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최고임....

samadhi(眞我) 2016-10-12 11:05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본 야구경기 중 최고였어요. 야구중계할 때 우는 여성팬들 이해가 안 갔는데(청승이라 생각했거든요.) 제가 어제 눈물이 주르륵 나더라니까요.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겁니까. 오예

네. 저는 수비에 아주 집착해요.

samadhi(眞我) 2016-10-12 11:06   좋아요 0 | URL
아 ㅋㅋㅋㅋ 곰발님 대문사진. 미쳐.

시이소오 2016-10-12 11:49   좋아요 0 | URL
곰발님, 대문사진 대박 ㅋ ㅋ ㅋ ㅋ ㅋ ㅋ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요즘 최순실 해시테그 걸잖아요. 아 비리가 묻히지 않는 마음으로.. 저도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알라디너들도 함께 동참하시기를... 너무 조용함.. 이 어마어마한 비리에 언론이..

samadhi(眞我) 2016-10-12 13:14   좋아요 0 | URL
사람들 끄덕하면 그래서 순실이는? 이게 유행이긴 하더라구요. 저도 그걸로 바꿀까봐요. ㅋㅋ 페이스북 대문사진은 우리가 백남기다로 바꿔놨는데

Conan 2016-10-13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랭이 팬 이시군요~ 전 넥센입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나오는 초창기 팬 시절부터 팀이 바뀔때마다 이어지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부터 열심히 집에서 응원하면서 보려구요^^

samadhi(眞我) 2016-10-14 01:20   좋아요 0 | URL
우와 한화팬보다 더 한 분이군요. 타이거즈가 넘어질 때마다 팀을 갈아타려 할까 그럴 때 남편이, 팬심이 변하니? 그랬었죠. 아 이놈의 애증. 그러고는 김시진이 감독이던 시절부터 헝그리 정신으로 꽉 찬 넥센을 타이거즈 다음으로 좋아했지요. 응원하는 팀을 바꾼다면 넥센이야. 라고 말하곤 했어요.
부럽습니다. 다 가진 팀 팬이시라니, 그 동안 마음 고생하신 보람이 있네요.

쿼크 2016-10-17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기아팬이셨군요... 저도 기아팬이에요...반가워요..ㅋㅋ...ㅠㅠ

samadhi(眞我) 2016-10-17 00:33   좋아요 1 | URL
우와우와 동지네요. 내년엔 꼭 한국시리즈 갈 거라 믿어봅니다.

쿼크 2016-10-17 00:34   좋아요 0 | URL
네... 믿습니다... ㅎㅎ
 
물의 잠 재의 꿈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0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검은 색 표지와 무거운 제목이 책 전체에 흐르는 어두운 분위기를 말해준다. 기리노 나쓰오를 『아웃』으로 먼저 만났는데 그 소설에 반해서 작가의 다른 작품 읽기가 조금 두려웠다. 보통 한 작품이 좋으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고 전작주의가 되기 쉬운데,『아웃』은 지나치게(?) 훌륭해서 분명히 다른 작품은 그보다 괜찮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오래 망설인 끝에 고른 이 책은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그랬(?)다. 기리노 나쓰오 특유의 분위기(어두우면서 왠지 섹시한 느낌?)와 뛰어난 문장은 살아있지만 사건의 개연성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이 책도 두 가지 사건이 벌어지는데 억지로 끼워맞춘 듯하다.『아웃』은 물 샐 틈 없이 완벽했다구.

 

사회고발 의식이 투철한 작가 정신 만큼은 칭찬해 주고 싶다. 기리노 나쓰오라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에 나온 '소카지로 사건'은 1962년부터 1963년에 걸쳐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미해결 사건이라고 한다. 실제 사건을 작가가 상상해 해결해보는 과정만으로도 그 당시, 공포에 떨었을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안도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작가는 사건이 해결되지 않아 애가 타서 답답한 마음에 직접 나서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발로 뛰며 사건을 취재하러 다니는 특종꾼 기자, 무라노 젠조에게 투영한 작가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있는 것들의 향락이란 그리도 너저분하기 짝이 없는 것인지. 인류가 탄생(?)한 이후 알게 모르게 행해져 왔으리라 짐작되는 잔인한 범죄-그것을 범죄로 인지하지도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인데-를 다루고 있다. 똑같은 피가 흐르는데, 존귀한(?) 자신들은 다른 인간을 물적 존재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나보다. 이 책을 읽으며 판박이처럼 빼닮은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한국드라마, '골든크로스' 가 떠올랐다. 그런 쓰레기끼리 전세계 물질만능, 쾌락지상주의 회의라도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거야? 그런거야? 눈을 마주치면 쫄리니까 눈을 감겨야 하는 사카이데 도시히코의 도착적 욕망이 교고쿠 나쓰히코의 『무당거미의 이치』에 나오는 히라노의 관음증과 겹쳐보인다. 작가는 불안 사회(?)의 병폐를 까발린다. 암담하다. 비인간이 영영 없어지지 않을 게 뻔하단 말이지. 마침 아리스토텔레스가 적절한 말쌈을 해주었네. "최대의 범죄는 욕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배부름과 타락에 의해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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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10-12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고쿠와 더불어 기리노 나쓰오도 전작하고 싶은 작가죠.^^

저도 읽은 책 중 <아웃>이 제일 좋았고, <그로테스크>도 잊히지 않네요.

<물의 잠>은 뒤로 미뤄둬도 되겠군요. ^^

samadhi(眞我) 2016-10-12 11:59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로테스크 』를 읽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무튼 제일 잘 쓴 소설을 먼저 읽는 바람에 부작용이 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