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에셀의 참여하라 - 청년 시민운동가와의 대담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이루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작은 천재(?) 김수철이 부른 "젊은 그대". 노랫말 참 좋구나, 좋아. 스테판 에셀이 이 책에서 하는 얘기도 김수철의 노래가사와 닿아있다. 다른 책을 사고 덤으로 받은 책 제목이 정직(?)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는데 읽어보니, 스테판 아저씨 멋있구나!!

 

동아리 생활할 때 선배들에게 밥 먹듯 들었던 말, 분기탱천(憤氣撑天). 이 말만 들으면 잠자고 있던 분노가 불끈불끈 일어나는 듯했다. 우리끼리 이 말을 외치며 으쌰으쌰 했다. 아무것도하지 않는데도 뭔가 중대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까닭 모를(?) 자신감, 자부심 같은 것들이 솟아났다. 동아리를 떠나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젊은이여! 저항하라! 참여하라!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고 약자들이 고꾸라지고 죽어나가도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고 정부를 향해 욕만 해대고 행동화에 나서는 것을 망설이고 강 건너 불구경하고 사는 가짜 청년들아! 제발, 일어나라고.

 

조금만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발언을 해도 빨간 색을 칠해서 종북, 빨갱이로 몰아가는 이 나라의 갑갑한 현실과 달리,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왼쪽 날개를 퍼덕이는 사람들(좌익:左翼)이 주체가 되고 그런 사람들의 무리가 정부여당이 되어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이 책을 쓸 당시 95세라는 고령(이 나라에서는 까스통 할배가 되기 일쑤인 나이)에 청년의 정신을 일깨우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이런 사람이 사는 세상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여겨진다.

 

미래를 부정하고 암울하게만 보고 지구멸망이 코 앞에 다가올 것으로 속단하는 나는 밝은 미래를 긍정하는 이 사람의 낙관주의에 충격을 받았다. 이런저런 이유 중에서도 환경오염, 식량란, 방사능 위험 등등 세상이 곧 망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핑계를 대며 육아를 포기해 온 내게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행동주의자의 말 몇 마디가 새롭게 다가온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어떠한 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에 용기와 위로를 얻었다.

 

생태주의, 환경주의가 단순히 환경문제에 대한 것만이 아님을 일깨운다. 결국 모든 저항과 참여는 차별을 깨부수고 동등한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것임을,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서로 같은 자리에 서기 위해 싸우는 것임을 새삼스레 인식해본다. 나도 모르게 나누고 갈랐던 것들이 부끄러워졌다. "혓바닥만 돌리고 머리통만 빠개는 빌어먹을 술을, 술을 끊겠다.~" 노래 한 가락 불러본다. 머리만 굴리고 속으로만 혀를 차는 짓거리를 그만둘 수 있을지 여전히 자신없지만, 지혜로운 어른의 말은 가슴에 담아두련다. 우주를 향해서 하얗게 재로 남아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릴 인간존재의 근원에 대한 생각에 이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송곳 1~6 세트 - 전6권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라고 하였던 신영복 선생 글귀가 떠오른다.

『나무야, 나무야』에서 바보 온달에 빗대어 얘기했던 그 글귀를 자기소개서에 오래도록 인용하곤 했다. 선생이 얘기한 우직함을 지닌 어리석은 자가 이 만화의 송곳같은 인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 동아리 밴드에 선배가 올려둔 웹툰, "송곳" 1화에 "우와!" 하고 놀랐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잊고 있던 웹툰이 생각나 책을 사서 읽었다. 동네에서 유명한 똥이라는 주인공 말에 내 얘기 하나 싶었다. 우리식구들 사이에서 비슷하게 여겨지는 나라서. 엄마가 늘 '자식들 다 키워봐도 너같은 애 없다' 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한다. 독립운동을 했던 것도 아니고 공장에 위장취업해서 노동운동을 한 것도 아닌 시시한 인생을 살면서 똥칠만 해대고 있다.

 

까르푸 파업이 한창일 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관심도 가지지 않고 치열한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그 사람들을 그저 먼 데서 바라보기만 했다. 시민들 관심과 참여가 절실했을 터인데. 취업, 백수, 재취업 다시 백수, 마음수련... 이런 시기였다. 내 밥벌이와 고민 말고는 아무것에도 눈 돌릴 여유가 없었지. 내가 현실에 눈을 감아도 누군가는 싸우고 피 흘리며 눈물을 철철 쏟고 있구나.

 

작가는 삶이 그대를 속이면 슬퍼하고 화를 내라고 말한다. 갑의 횡포에 발목 잡혀 동료를 팔고 제 몸 하나 살려보겠다고 발버둥치지만 시기만 조금 늦을 뿐, 결국 다 같이 구렁텅이에 빠지고 마는 을의 현실에 분노하라고. 외국기업의 철저한 자본주의 발상은 제국주의와 참 많이도 닮았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갑이 하는 짓은 어찌 그리 한결같은지 갑질교육이라는 걸 따로 받나보다.

 

갑이야 그런다 치고 정작 하나같아야 할 을들이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나가는지. 무엇으로 자기 권리를 찾아나가는지가 햄릿이 했던 고민만큼이나 중차대한 문제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지. 바닥까지 내몰렸을 때 바닥이 되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열 사람이 내딛는 한 걸음이 열 걸음, 백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올까. 한 발이라도 내딛을 수나 있는가. 꿈꾸는 것조차 두려운, 지금처럼 절망적인 시기에 좌절하지 않고 오롯이 오롯이 나와 다른 당신과 손잡고 함께 걸을 용기가 있는가.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5-11-1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는 소리입니다만. 요즘 박근혜는 대한민국이 온통 비정상인가 봅니다.

samadhi(眞我) 2015-11-12 12:46   좋아요 0 | URL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놓고 여태 갈아엎지도 못한 것을 보면 이 나라가 정상은 아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12-10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추카...~~~~~~~~~~~

samadhi(眞我) 2015-12-10 20:44   좋아요 0 | URL
ㅋㅋ 고맙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올 줄이야. 11월에 리뷰 쓴 사람들이 적었나봐요. ㅎㅎ 곰발님은 여러 번 당첨되신거죠?

yureka01 2015-12-1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축하드리구요..앞으로도 리뷰 자주 만나고 싶어요..
역시 책의 역량 있으신 분이었네요..

samadhi(眞我) 2015-12-10 21:2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게을러서 삐둥삐둥하고 있어요. 읽고 싶은 책만 잔뜩 침 흘리고 읽지는 않고 있으니...

2015-12-11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5-12-11 21:38   좋아요 0 | URL
으흐흐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술술 읽힐걸요

지나 2016-07-0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송곳.. 견뎌내야하는게 삶이니..^^;;
일체유심조~*

samadhi(眞我) 2016-07-05 10:16   좋아요 0 | URL
드라마도 좋다. 드라마 잘 만들었어. 꼭 봐.
 
이상호 기자 X파일 -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이상호 지음 / 동아시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이상호 기자 하면 자꾸 세월호가 떠오르며 자동으로 눈물부터 난다. 세월호 사건 이전엔 이 기자를 잘 몰랐고, 팽목항에서 날마다 눈시울을 붉히며 이상호 기자의 고발뉴스와 팩트피비 합동 방송을 지켜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너무 괴로워 방송을 볼 수 없을 것 같아도 그 소식을 듣지 않으면 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이기자의 방송만 기다리곤 했다.

 

삼성X파일 보도가 한창일 때는 취업 시험 준비하느라 세상 일에 도무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그저 세월만 죽이고 있었다. 그 중대한 사건을 모른 채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삼성을 노조도 없는 비양심 기업 정도로만 인식하다가,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잇따라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그때에서야 비로소 실상을 알아가며 재벌들의 행태를 조금씩 이해하고 이제는 삼성의 파랑색 기업 로고만 봐도 입맛이 떨어질 지경이 되었다. 그 흔한 삼성 전자기기 하나 없고 카드마저 해지했다. 어차피 구매력 약한 내가 삼성 물품을 사주지 않는다 해서 타격을 입지도 않겠지만 그저 내 작은 의지(?)의 표현이다. 대다수 삼성 소속 회사원들이야 아무 죄(?)도 없지만.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헛소리를 마치 진리마냥 떠들어대는 삼성가(?)의 야비한(?) 행태가 가소롭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으면 삼성이라는 족벌기업의 본질이 역력히 드러난다. 그런 거대기업과 맞짱 뜬 이상호 기자가 존경스럽다. 혼자 그 외로운 싸움을 하느라 얼마나 힘겨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자본세상에서 자본에 먹히지 않을 이 누가 있을까? 이상호 기자가 나처럼 눈물 많은 수도꼭지라서 더 정이 간다. 남자는 평생 3번만 울어야 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이 땅의 보통 남자와 달리 남의 아픔에 진심으로 울 줄 아는 그 사람이 멋있다.

 

이 땅의 민주화는 언제 찾아올 수 있을지. 아직도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정치, 경제, 언론인들의 행태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세력이 주류이고 이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사실이 아무 영향력 없는 서민을 무력하게 한다. 이상호같은 기자가 목숨 걸고 보도하지 않았다면 끔찍한 정재계의 결탁, 삼성의 머슴(?)같은 떡검의 존재, 재벌독재도 알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묻히고 말았을 일이다. 여전히 보통 사람들은 삼성을 대단한 기업,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이땅의 경제화는 없었을 것이라 믿듯이 삼성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자랑스러운 기업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겠지. 그리고 끄떡하면 이런 기업이 대다수의 국민을 먹여살린다는 말을 사실인양 받아들이고. 어쩌면 집단 세뇌에 빠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세뇌 상태를 깨어나게 해주는 이 책을 아직 의식을 갖추지 못한 잠재적(?) 시민들이 읽어야 하겠다. 굳이 잠재적 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시민"은 단순히 군중이 아니라 민주화를 지향하는 의식 또는 의지를 갖춘 민중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아주 극단적으로 삼성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고까지 말하고 싶다. 삼성이 망해 없어진다고 이 나라가 없어지는지 한번 보자고. 그네들이 우기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윤리를 기본으로 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가짜 기업이 사라지고 노동자가 조직의 근간인 극히 정상적인 기업문화가 자리잡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객관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할 언론마저 자본에게 잡아먹힌 가운데 꿋꿋이 싸워온 몸도 튼튼(지병이 있는 사람이지만), 마음도 튼튼(광장공포증마저 있지만), 팔팔히 살아있는 이상호 기자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MBC에 복직돼 구내식당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밥을 먹던 이상호 기자의 사진을 보며 같이 울었는데 20여일 만에 다시 중징계를 받았다는 소식에 분노했다. 끄떡하면 고소고발당해 법정을 집처럼 드나들고 발로 뛰는 진짜기자가 드문 세상에 고발기자 이상호, 누나기자(?) 주진우 같은 진짜 기자들이 속속 생겨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삼성X파일을 취재하고 고발한 이상호 기자에게 감사를 보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2-01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5-12-01 11:51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이상호기자랑 주진우 기자를 쪼~아 하지요. 이분들처럼 사명감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들을 욕먹이는 대다수 주류언론인들이 문제지요.
 
아홉살 인생 - 개정판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임용시험 공부는 그렇게 안 하더니만, 학원에서 중학생들 가르치면서 열심히 공부한 남편이 교과서 지문으로 나온 이 책이 재미있다고 꼭 사라고 오래 전부터 노래를 불렀다. 도서정가제 이후로 소설책은 거의 중고로 사고 있어서 중고 나오기만 손꼽아 기다리지만 그 이전에 꽤 많았던 중고가 이 악의적인(?) 제도 시행 이후 귀해져서 중고책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인터넷 서점 직배송 책을 사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안 그래도 책 안 읽는 사람들을 얼마나 더 바보로 만들려고 하는지. 우민화정책(?) 대 성공이다. 그래, 대단한 정부 만만세다. 마침 알라딘 직배송 중고가 나와서 사게 됐다. 집에 있는 책을 중고로 팔려고 해도 책 속에 메모를 많이 해 놔서 그리 할 수도 없고. 책 읽을 때 모르는 낱말 뜻을 책 위 아래 빈 곳에 적어두는 버릇이 있어서 깨끗한 책이 별로 없다.다들 나처럼 책에 메모하는 버릇이 있어 중고로 책을 팔지 않는 건가.

 

중학교 때 언니가 공부하라고 사준 위기철,『논리야 놀자』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처박아 둔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가 위기철이라니. 전에 영화가 나왔을 때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옆에서 재밌다고 해서 읽게 됐는데 과연 좋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쉬임없이 웃게 되지는 않지만 갑자기 풉! 하고 웃게 된다. 꼬마가 주인공인 소설들은 기본적으로 재미있게 마련인데-가끔 그걸 노리고 쓰는 어설픈 소설들이 있는데 작위적이어서 오히려 반감이 생긴다.- 이 책 또한 재미나다.

 

남편이 재미있다고 했던 일화는 21종이나 되는 중학교 교과서 지문에 나온 일부일테지만 기종이가 골방철학자의 비밀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나 하고 주인공 여민이는 그다지 알고 싶어하지 않아했던 부분이다. 꼭 누군가가 떠올라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풍뎅이영감 부분에 나온 아이들의 잔인성은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봄] 이라는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아이들의 잔인함을 접할 땐 어김없이 그 영화가 떠오른다. 골방철학자는 도무지 남 얘기 같지 않아서 괜스레 불편해진다. 어디에나 이해받지 못하는 인생이 있구나. 이 서평의 제목으로 쓴 꿈을 따는 아이라는 말 때문에 배꼽 잡았다. 갑자기 받아쓰기에서 "주었습니다."를 틀려서 틀린 거 10번 써오랬더니 "었습니"만 10번 써 간 꼴통 조카녀석 생각이 났다. 이 책의 부제로 "꿈을 따는 아이"를 넣어도 좋을 것 같다.  

 

작가가 오랜 세월 문장을 갈고 다듬은 티가 난다. 이 소설을 쓰면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늘 문장에 신경 쓰며 살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문장이 정확하고 간결해 읽기 좋다. 특히, 작가의 작명솜씨가 뛰어나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름과 별명을 보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가난한 시절 얘기는 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한다. 가난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궁금해진다. 내가 잘 모르는 지역의 사투리처럼 다른 세상(책에 나오는 기종이의 표현에 따르면) 일이라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조영웅전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남편이 고등학교 때 빠져있었다던 김용의 [신조협려]를 읽기 위해 전편과 다름없는 이 책을 읽었다. 차마(?) 무협지를 사서 읽기는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읽었더니 역시나 책 속 여러군데 음식 흘린 자국들이 너저분하게 묻어 있다. 깔끔한 성격이 아닌데 유난히 책에는 가탈을 부리는 건 왜 일꼬?

 

추석 연휴 전에 빌려서 신나게 읽다가 추석 대목에 급하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바람에 읽고 싶어도 읽을 새가 없었다. 그랬더니 이놈저놈이 휙휙 날아가는 꿈을 꾸고 일을 하는데 자꾸 소설 생각이 났다. 그 얘기를 하니 남편이 이제 곧 한달 내내 꿈 꿀거야. 그런다.

 

중국 사람들이 신필(神筆)이라 부른다는 김용, 이 작가의 이야기 보따리 속에 아직도 못 다 꺼낸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소망은 굴뚝 같은데 떠오르는 이야기는 없다. 떠올라도 단편적으로 대강의 줄거리만 이렇게 저렇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 뿐 구체적으로 인물들을 설정하고 극적인 사건은 무엇이며 시대적 배경-이것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그렇게도 싫어하는 공부를 빡세게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니까.-에 철저함을 부여해야 하고 구성은 어떻게 할 것이며... 끝도 없는 작업을 쉽게(?) 해내는 걸 보면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겠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얘기들을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신기하고 부럽다.

 

무협소설이다보니 문학성은 많이 떨어진다. 소설에서 환상성의 가치를 높게 보는 내게는 꽤나 쏠쏠한 재미를 주는 장르이긴 하지만 개연성도 약해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에 당황하게 된다. 이 맛으로 무협지를 즐겨읽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무엇보다 재미 없으면 안 읽는 나같은 사람들이 빠르게 집중해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말이 참 좋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이런면 저런면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자연스럽게 풀어 공감이 간다.

 

강호는 의리에 살고 죽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틀이 깨졌다. 단순히 누가누가 무공이 더 강한가를 가지고 싸우는 걸 보면 참 유치하다 싶기도 하고 어차피 인생살이라는게 단순하게 따지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기대한 수행자의 태도는 거의 엿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몽고와 금나라에 치어서 정통성은 물론이고 국가의 흥망 조차 장담하기 힘든 격동의 시대, 송을 지키려는 협객들과 금에 협조해 송을 치려는 세력 간 갈등을 그려낸다. 실존인물과 허구 인물을 같이 등장시켜서 실화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저 선하기만 한 인물이 없다보니 인물의 입체성이 부각되어 더 재미있다.

 

읽는 내내 답답하게 느껴진 것은 넓디 넓은 중국대륙에서 무선전화, 인터넷은 고사하고 유선전화도 없던 시절이다보니 가까운 사이도 소통이 되지 않아 끄떡하면 오해를 하게 된다. 그 오해 때문에 싸우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속고 속이고...조금 더 이른 나이에 읽었더라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신조협려』를 요양원에 봉사차원으로 장기대출을 해주는 바람에 도서관 사서와 실랑이를 벌였다. 『신조협려』는 사조영웅문 다음 이야기인데 그 책을 장기대출 해주면 어떡하느냐고. 도서관에서 그 책이 돌아왔다는 연락을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