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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잠 재의 꿈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0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검은 색 표지와 무거운 제목이 책 전체에 흐르는 어두운 분위기를 말해준다. 기리노 나쓰오를 『아웃』으로 먼저 만났는데 그 소설에 반해서 작가의 다른 작품 읽기가 조금 두려웠다. 보통 한 작품이 좋으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고 전작주의가 되기 쉬운데,『아웃』은 지나치게(?) 훌륭해서 분명히 다른 작품은 그보다 괜찮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오래 망설인 끝에 고른 이 책은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그랬(?)다. 기리노 나쓰오 특유의 분위기(어두우면서 왠지 섹시한 느낌?)와 뛰어난 문장은 살아있지만 사건의 개연성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이 책도 두 가지 사건이 벌어지는데 억지로 끼워맞춘 듯하다.『아웃』은 물 샐 틈 없이 완벽했다구.
사회고발 의식이 투철한 작가 정신 만큼은 칭찬해 주고 싶다. 기리노 나쓰오라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에 나온 '소카지로 사건'은 1962년부터 1963년에 걸쳐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미해결 사건이라고 한다. 실제 사건을 작가가 상상해 해결해보는 과정만으로도 그 당시, 공포에 떨었을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안도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작가는 사건이 해결되지 않아 애가 타서 답답한 마음에 직접 나서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발로 뛰며 사건을 취재하러 다니는 특종꾼 기자, 무라노 젠조에게 투영한 작가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있는 것들의 향락이란 그리도 너저분하기 짝이 없는 것인지. 인류가 탄생(?)한 이후 알게 모르게 행해져 왔으리라 짐작되는 잔인한 범죄-그것을 범죄로 인지하지도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인데-를 다루고 있다. 똑같은 피가 흐르는데, 존귀한(?) 자신들은 다른 인간을 물적 존재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나보다. 이 책을 읽으며 판박이처럼 빼닮은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한국드라마, '골든크로스' 가 떠올랐다. 그런 쓰레기끼리 전세계 물질만능, 쾌락지상주의 회의라도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거야? 그런거야? 눈을 마주치면 쫄리니까 눈을 감겨야 하는 사카이데 도시히코의 도착적 욕망이 교고쿠 나쓰히코의 『무당거미의 이치』에 나오는 히라노의 관음증과 겹쳐보인다. 작가는 불안 사회(?)의 병폐를 까발린다. 암담하다. 비인간이 영영 없어지지 않을 게 뻔하단 말이지. 마침 아리스토텔레스가 적절한 말쌈을 해주었네. "최대의 범죄는 욕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배부름과 타락에 의해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