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2 - 버리기 마녀의 심플라이프
유루리 마이 지음, 정은지 옮김 / 북앳북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몇 달 전 이 책이 원작인 일본드라마부터 봤다. 그 드라마를 보고 꽂혀서 3시간 꼬박 들여 책상 서랍 정리를 하고서 스스로 뿌듯해 했다. 그러고는 정리 사진을 찍어 나 못지 않게 정리 못하는, 정허술 여사-뭘 해도 헐렁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엄마- 넷째 딸인 언니에게 보내주었다. 그랬더니 언니도 다음날 수납장 정리를 했다며 내게 사진을 보냈다. 우리에게 정리정돈과 청소는 살면서 제일 귀찮고 힘드는 일이다. 정리정돈 하는 일이 익숙지 않아 늘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청소, 정리정돈 책만 집안 가득이고 몇 권이나 읽어 재꼈(?)으나 그때 뿐 집안은 다시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으로 원상회복 되곤 한다.

 

언니나 난 게으름도 한 몫 하지만, 평생 쉴 틈 없이 고생해 오신 우리엄마는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이 책을 읽으면 답이 나온다. 엄마를 닮은 나도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아까워서 물건을 버리지 못 하신다. 그래서 엄마집에 가보면 늘 어수선하다. 엄마와 반대로 빛의 속도로 버리는 언니는 왜 그럴까. 같이 해외여행 갔을 때 언니가 출입국신고서를 버려서 하마터면 입국 못 할 뻔했다. 그래, 우리도 버리기 변태에게 한 수 배워 보자구. 드라마보다 책의 재미가 더 떨어진다. 원작보다 영화나 드라마가 더 재미난 건 드문 일인데, 책은 주로 버리기 방법론에 치중한다. 책이 좋은 건 작가가 자기 집 구석구석 정리정돈 상태를 사진으로 공개해 두었다는 거다. 깔끔하고 정갈해-정말로 아무것도 없어서- 가슴이 떨릴 정도이다. 나처럼 작가네 집에 놀러가고 싶은 사람이 많을 거다. 가서 잔뜩 어질러 놓고 올테야.

 

작가의 고백(?)대로 일부러 의식하지 않았지만 늘 정리정돈하고 필요없는 물건을 없애 최소의 물건으로만 살다보니 저절로 수행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한다. 월든 호숫가에서 의자, 식탁, 침대 하나 있는 단칸방에 살던 소로우가 떠올랐다. 중국인들이 물을 아껴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던 한비야-한비야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괜찮다-의 중국견문록도 생각난다. 그곳을 떠나오면서 그동안 사 모았던 책을 몽땅 기증했다는 용기(?)가 대단해 보였다. 그 책을 읽던 십여 년 전만 해도 책 만큼은 잘 빌려주지도 못 하고 누군가에게 주는 건 엄두도 못 냈으니. 지금은 읽은 책을 친구네 책장 장식용으로 보내긴 한다 그나마 아끼는 책은 그리하지도 못 한다.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책에 대한 집착 만큼은 버리지 못 하고 책을 보기만 하면 두근두근 한다. 책을 주문하고 택배를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하고 책을 받자마자 선물 받은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책 표지를 닦아내고 이 책 저 책 들춰본다. 작가가 신발과 가방에 대한 소유욕을 어쩌지 못 하는 것처럼 내겐 책이 그렇다. 그러면서도 정리되지 않은 책장을 보면 심란하다. 찾으려는 책을 찾아 헤매기 일쑤다. 무엇이든 정성스레 쓰다듬으며 정리정돈을 해야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거겠지.

 

드라마를 보던 시기에 한번도 버릴 생각을 못 했던 초중고 졸업앨범을 버렸다. 대학앨범은 우리과 빼고는 볼 일이 없어서 처음부터 사지 않길 잘 했고. 남편은 신기하게도 한번도 졸업앨범을 안 샀다는 거다. 고등학교 때 안 산다고 했을 때 가정형편 때문이라 인정해주던 담임이,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안 산다고 해서 문제가 되어 하마터면 살뻔 했다고 한다. 그래도 기어이 사지 않았다며 쓸데없는 일로 으스댄다. 십대부터 써오던 일기는 차마(?) 버리지 못 했는데 염세와 우울과 다짐 뿐인 기록물을 용기내 버리기로 한다. 버리려고 할 때마다 들춰보는 재미(?)에 정신을 놓고 읽다가 하루를 다 보내고 다시 책장에 꽂아놓기를 반복했는데 펼쳐보지 않고 재활용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 버려야겠다.  

 

무인도에 던져(?) 놓아도 로빈슨 크루소보다 더 잘 살 것 같은 작가에게 버리기 정신. 취사선택하는 법. 삶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지 생각해보는 시간 등을 배운다. 옷은 구제로, 책은 거의 중고로 사는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인지 여러번 들었다놨다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잠깐 딴 짓 하는 동안-책 읽으면서 읽을 내용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 딴짓을 하는 버릇이 있다- 나눔의 미학에 보낼 여름 옷들을 꺼내서 차곡차곡 쟁겨뒀다. 불필요한 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흠, 나처럼 잘 버리지 못 하거나 정리정돈에 젬병인 사람에게 자극이 된다. 드라마도 찾아서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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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6 0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건은 버리더라도 일기 이런건 버리지 마세요...영원할 수는 없지만 손자대까지 정도는 읽어서 어떻게 살았구나 정도 알려주는 것이 좋을 거같아요..가끔 내 할아버니는 어떻게 그시대를 살았나.궁금할때 일기라도 있으면 볼 수 있었으며면좋겠다는 생각입니다.ㅎㅎㅎ아니면 좀더 나아가서 책을 물려주셔도 좋잖아요..

samadhi(眞我) 2016-10-16 05:54   좋아요 2 | URL
제가 기록에 대한 집착이 심했거든요. 역사를 전공하기도 했고-공부도 안 하고 아는 것도 없이 전공했다 말하기도 부끄럽지만요.
그런데 다 부질없다 여겨지더라구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주관점으로 볼 때 먼지 한 톨보다 작은 제 존재가 흔적도 없이 잊혀지길 바라요.

2016-10-16 0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6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