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3살 연년생 남자아이를 키우는 언니네에 얹혀살던 시절, 언니가 늘 하는 고민이 "오늘 저녁엔 뭘 먹지?" 였다. 그때 알았다. 주부에게 날마다 남편 저녁 챙기는 게 "일"이라는 걸. 아줌마가 되고 나서 나도 당연히 이 과정을 겪고 있다. 귀찮아서 사먹거나 시켜먹거나 대충 때울 때가 많지만 한창 이 책을 읽고 있어 그런지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는다. 식욕이 없거나(세상에, 그런 일도 있나요?) 배는 고픈데 요리하기가 싫어서 몸부림 칠 때 이 책을 읽으면 마법처럼 힘이(?), 식욕이 솟아난다.

 

 

 

산더미처럼 쌓아둔 설거지를 끝내고 부랴부랴 멸치랑 마른 새우 볶아 비린내 없애서 쌀뜨물 붓고 살짝 끓인 다음 건져 버리고(멸치를 오래 끓이면 느끼해진다) 생새우 머리 끓여서(해물파전할 때 새우 머리를 떼어내고 육수용으로 냉동보관하면 좋다. 새우 머리를 넣으면 국물이 시원하다) 마지막에 다시마 살짝 담갔다 끓여 건더기 다 건져서 육수 내고-내 요리는 육수가 힘이기에, 그런데 육수내는 과정이 번거로워 요리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할 때도 많다-채소 썰고 아질산나트륨 제거하느라 어묵 데쳐 체에 받쳐 두고 육수 넣고 떡을 끓이기 시작한다. 떡이 어느 정도 익은 뒤에 고추장 풀고 팔팔 끓이고 채소들 넣고 라면 넣고(떡볶이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라볶이는 좋다는 남편의 요청으로 넣었는데 떡볶이나, 라볶이나...) 어묵 넣고 마지막에 깻잎 찢어 넣고 파 얹으면 끝난다. 간을 할 필요도 거의 없다. 육수에서 맛있는 물이 배어 나오니까.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꿀도 넣지 않았다. 

 

 

 

 

동시에 두 가지 요리 하는 것을 좋아(?)해서 라기 보다 불면증 중증이라 아침에 남편 먹이(?)를 챙겨줄 수 없어 미리 해놓아야 했다. 굶길 때도 많지만 아직 환자님이니 잘 챙겨주려고 한다. 아킬레스건 파열되면 재활 오래가는구나. 의사가 그냥 겁주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건만. 떡볶이 아니, 라볶이 하는 도중에 새우 해동하고 엊그제 썰어두었던 채소들이랑 기름 둘러 볶는다. 밥을 넣기 전에 간을 해야 간이 잘 배어 들어 볶음밥을 할 때는 밥 넣기 전에 소금 간을 한다. 정택배여사 -손 크고 끝없이 손 크고 쉬지 않고 이것저것 해서 보내는 엄마. 몸 상하니 제발 좀 하지 마시라고 닦달하면 "이제 그만할거야" 하시면서도 "근데, 택배 상자 주워놨다" 그 말에 너털웃음 웃을 수밖에 없다-가 자식들을 머더러 6마리나 낳으셔서 그 많은 새우껍질을 일일이 까느라 피가 터지고 손이 다 모지라지셨을 거다. 우리 자매들 각자 집에서 한동안 선보였을 새우요리는 엄마의 정성 맛이다. 어머니는 새우볶음밥이 싫다고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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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6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야식엔 소주인데...^^..무척 맛나 보입니다.비주얼이 역시 ^^.

samadhi(眞我) 2016-10-16 23:44   좋아요 2 | URL
깔끔한 성격이 못 돼서 그릇 주변이며 배경이 무지 지저분한데요;; 퀵으로 보내드릴까요? ㅋㅋㅋ

yureka01 2016-10-16 2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어서 빨리 순간이동을 개발해야겠습니다 ^^.

samadhi(眞我) 2016-10-16 23:49   좋아요 2 | URL
이런 문제 때문에 텔레포트가 가능한 세상이 올 수도 있군요. ㅎㅎㅎ 저도 맛있는 거 보면 정신이 혼미해지거든요.

쿼크 2016-10-17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이 시간에... 테러 당했다... 지금 넘배고파서..ㅎㅎ 맛있겠다..ㅠ

samadhi(眞我) 2016-10-17 00:13   좋아요 0 | URL
아직 남아있는데 드리지 못 해 아쉽네요. ㅋㅋ

쿼크 2016-10-17 00:14   좋아요 0 | URL
남아있다는게 더 가슴이 쓰리네요... ㅎㅎ

samadhi(眞我) 2016-10-17 00:15   좋아요 1 | URL
육수내는 요리는 이상하게 양 조절이 안 돼서 꼭 대량으로 하게 되더라구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10-17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아, 맛있겠네요.. 제가 요즘 고기 위주 식단으로 거의 2주를 밥 안 먹고 고기만 먹었는데
이 식단, 도저히 못 먹겠더군요.. 제일 그리운 건 단 게 아니라 밀가루 음식입니다... 평소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던지라... 우동, 떡복이 이런 게 먹고 싶슨요..

samadhi(眞我) 2016-10-17 12:57   좋아요 0 | URL
제가 뽐뿌질 제대로 한 겁니까? 고단백저탄수 하시나본데 고거 말 많던데요. 곰발님이 알아서 알아보셨겠지만. 본능을 거슬러가며 살 필요 있나요? 원하는 것만 하고 좋은 사람만 만나기도 모자란 시간이라 생각해요, 요즘엔

samadhi(眞我) 2016-10-17 12:56   좋아요 0 | URL
게다가 밥 한 끼 드시는 분이 영양소 골고루 갖춰 드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