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젋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마지막 권을 이번주에 끝냈다. 마지막 2권은 너무 숙제처럼, 대충 읽었다는 것이 문제.2013년 작품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정용준 작가의 당신의 피가 가장 와닿았다.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가 이십사년만에 아들에게 연락하고, 아들이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병원 신장투석실에 치료를 받으러 불쑥 찾아온다. 알고보니, 그는 교도소에서는 치료할 수 없는 신부전증을 앓았던 것.일주일에 3번씩, 한번에 5시간 동안 기계를 통해 피를 여과시켜 다시 몸속으로 집어넣은 혈액투석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래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2~3년 동안 혈액투석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혈액투석하실 때 병원에 한번 갔던 기억이 난다. 자주 못뵙다가 오랫만에 뵈었는데, 그때의 충격이란, 늘 불호령을 내리는 무섭던 할아버지가 목소리에 힘이 없으시고 몸도 작아지셨고 기계에 의지하여 피를 거르는 일은 일주일에 3번씩 해야 살 수 있다니. 그때의 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작품 속 아들은 그 사건과 아버지라는 존재가 이미 자신의 기억 속에 없으며,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아버지라는 존재가 주기적으로 자기 앞에 나타나자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감정이 다름을 알고 혼란스러워 한다. 아무런 존재도 아니라고 되뇌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리는 그 마음, 이해가 갈 것 같다.신장투석을 통해 더러운 “피”를 여과하여 몸속에 새로운 깨끗한 “피”를 집어넣는 것과 아버지와 같은 “피”라는 혈연관계를 부인하고자 하는 작중 화자의 심리상태가 잘 어우러진 단편이다.
이 포스터 보니 바로 박막례 할머니 책 표지 떠오른다. 이 포스터 패러디했나 보다!!
절망감까지 가지 않고 아쉬움을 느끼는 데 그쳤던 것은 앞선 경험들 덕분이다. 이전에 방문했던 병원에서 "원인을 못 찾으면그냥 아픈 대로 사는 법을 익히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P75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은 환생을 믿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유난히 용감한 수컷 사자는 인간 남성의 모습으로 환생할 수 있는 반면, 용감하지 못한 남성은 여성의 몸으로 환생할수 있다. 즉,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은 부족한 남성성에 대한 벌이라 여겼다. 심지어 아버지의 정액이 충분히 강하면 남자아이를 낳지만, 약하면 여자아이를 낳는다고 믿었다. 여성의 평등한 정치 참여 가능성을 이야기한 플라톤조차 여성을 남성의 결핍이자 잔여, 나약함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 P93
19세기에 에테르 마취제가 개발되면서 드디어 무통분만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일부 의사들이 반대했다.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것" (창세기)이라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무통분만이 신의 뜻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신이 여성에게 내린 원죄에 대한 처벌을 의학이 감면해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 P103
의료에서 여성의 통증 호소가 좀 더 쉽게 심인성으로 취급되는 것은, 여성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의 반영이다. 여성의 경험과 말은 사소하고 이성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문화가 아직도 팽배해 있다는 뜻이다. 여성은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라는 규정도 여전히 견고하다. 여성이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그야말로 ‘히스테리’(이 단어는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 ‘히스테리아hystera‘에서 유래했다)라고 비하해온 그 뿌리 깊은 규정이 여전히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 P106
아픈 사람을 차별하는 표현. 나도 모르게, 농담이라고, 걱정한다고, 자주 쓰게 되는 것 같다. 특히, 건강 중심성 표현들..
가족과 지인들은 갑상선암 수술을 독촉했지만, 결정하기 어려웠다. 의사들은 숫자와 데이터로만 내 몸을 읽는 듯했다. 여러 검사에도 불구하고 증세와 통증은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원인이 없다는 이유로 내 증세와 통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갑상선센터 의사는 내 몸에서 갑상선만을, 내과 의사는 내 몸에서 현기증만을 보는 듯했다. 의사들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어서겠지만, 총체적으로 연결된 내 몸을 보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의료 전문인은 의사지만, 결국 내 몸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며 고민하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고 두려웠다. - P26
식이요법을 지도해준 분은 "질병은 몸에 찾아온 손님"이라며, 극진히 대접해서 떠날 수 있게 해주라고 했다. 질병은 죽음으로 쉽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몸을 쉴 수 있게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고 덧붙였다. 엄격히 생활을 관리하며 사는 게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몸을 이토록 극진히 돌봐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을 떠올리며,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려 했다. - P28
우리는 죽음을 떠올려봄으로써 삶을 다시 묻고 이해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사색이 확산되면서 중환자실이 아니라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려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죽음의 질을 고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질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질병을 질문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혜안을 얻을 수 있는지 이야기해볼 때다. 동일한 질병도 사회적 준비와 개인의 지혜에 따라 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사소하고 평범한 질병 이야기를 꺼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P32
따라서 건강만을 중심에 두는 것은 아픈 몸이 평등하게 함께 사는 과정을 방해한다. 아픈 몸이 동정과 시혜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의 주체로 온전히 살아가려면 건강한 몸이 중심이고, 아픈몸이 주변이어서는 안 된다. 건강을 선으로 규정하고, 질병을 절망과 악으로 규정해서도 안 된다. 건강한 몸과 아픈 몸 사이에 발생하는 위계가 해체될 때, 아픈 몸도 차별과 배제 없는 삶을 누릴수 있다. - P69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거슬렸고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태도는 그와 맺고 있는 혈연을 인정하지 않고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 거다. 무정하고 어떻게 보면 잔인한 처사일 수도 있지만 이런 태도는 미움도 복수도 아닌 자연스럽고 당연한 마음이다. 그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왜 나는 그를 이렇게 불편해하는 걸까. 이런 복잡한 감정과 고민이 마음을 지배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규정하고 있는 그에 대한 내 입장을 부정하는 격이 아닌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려는 순간에도 그에 대한 반감은 왕성하게 자라나는 덩굴처럼 갈수록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내게는 그를 만나고 난 후의 모든 일들이 충격의 연속이었다. 한꺼번에 흡수되는 정체불명의 감정들과 너무도 많은 힘들이 나를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기습적으로 찾아온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편두통이 생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어둡고 위험한 충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얼굴을 대하면 대할수록 점점 비참해지는 자신을 발견했고 마음이 상했으며 이상하게 억울했으며 기이한 수치심을 느꼈다. - P234
멈추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도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확인하고 싶지만 동시에 절대로 알고 싶지 않은 어떤 장면 앞에서 나는 정신병자처럼 초조해하며 또렷해지려는 생각들을 메스로 하나씩 찢는다. 이 순간 나를 정말 역겹게 한 것은 이제는 나 스스로가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에게 연연하고 있는 나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는 나의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강제된 생각들. 나는 하얗게 질려 있는 팔뚝을 내려봤다. 그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아니냐, 는 그의 말에 아니라고 대답할 수없다. 나는 허벅지 위에 놓여 있는 팔을 바라봤다. 내 것이 아닌것 같았고 딱딱한 사물처럼 이질스럽게 느껴졌다. 피부 밑에 희미하게 숨어 있는 푸른 정맥이 보인다. 그 속에 바늘을 집어넣고나도 투석기 옆에 누웠으면 좋겠다. 몸속에 남아 있는 피를 투석기에 모두 돌리면 나는 그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으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투석의 무의미함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창밖은 어둡고 바깥은 깊은 새벽이다. 출근할 시간이다. - P241
잡지 발간 초기 《녹색평론》은 외국의 ‘녹색사상‘을 전파하는 데 주력하였다. 생태주의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던 당시 사회풍토에서 외국의 대안적인 삶과 사유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전망을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탈학교 사회》의 저자 이반 일리치, 진보적 미술평론가로 말년에 알프스에서 농사와 글쓰기를 병행한 존 버거, 체코의 시인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문명비평가이자 시인인 웬델 베리, 인류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 기계문명 비평가 루이스 멈퍼드, 공생공빈의 삶을 주창한 쓰치다 다카시 등의 글을 번역, 소개했다. - P85
그즈음 《녹색평론》의 관심은 환경생태주의에서 정치민주주의로 향했다. 계속된 발언과 투쟁 속에서 생태·환경 등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은 민주주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기본소득 도입과 은행의 공공화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시민 참여가 보장되는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넓혀갔다. 이후 잡지 지면에는 기본소득, 숙의제, 추첨민주주의와 같은 서양의 새로운 생각, 개념, 제도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민주주의, 기본소득’, ‘민주주의와 시민의회‘, ‘시민주권시대를 향하여‘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사례를 소개하는 특집이 자주 실리기도 했다. - P87
처음 《녹색평론》이 생태주의를 내걸고, 크고 작은 의제들을 제시하자모두들 ‘무모한 실험‘, ‘근본주의적 발상‘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광야에서 외치던 《녹색평론》의 예언은 터무니없는 꿈이 아니었다. 불소화는 중단됐고, 기본소득과 지역통화는 실험 중이다. 《녹색평론》이 끊임없이 주장했던 탈성장·반개발의 담론은 기후위기 속에서 점점 호소력을 높여가·고 있다. 30년을 돌아보니, 《녹색평론》이 옳았다.그럼에도 개발과 성장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들은 지속적으로 지구환경, 자연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성장의 덫에 걸린 그들은 ‘녹색성장‘, ‘녹색뉴딜‘, ‘지속가능한 성장‘ 등 희한한 구호를 내걸며 생태주의에 물타기를 하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전지구적 명제에 딴죽을 거는 재계, 기업인, 정치인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 P89
《녹색평론》은 이전의 환경보호운동, 오염 방지·제거 운동 등이 주력한 ‘온전한 근대산업문명의 본래 모습‘의 회복 또는 보호라는 틀을 뒤엎어버렸다. 기존 환경보호운동의 전제가 되는 근대산업문명 자체를 부정해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녹색평론》의 ‘래디컬‘한 속성이다. 이것은 창간 뒤 30년이 지나도 초지일관 변하지 않았다. - P96
"지난 2~3세기 동안 이른바 문명세계가 산업문명을 통해서 이룩했다고 하는 높은 생활수준은 실은 인간사회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끊임없이 찢고 할퀴는 난폭한 짓을 되풀이함으로써 얻어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인 산업경제와 그것에 의존해온 근대적 문명은, 그것이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을 대량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인 한,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종말의 파국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한계를 그 출발점에서부터 내포하고 있다" (책머리에〉,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녹색평론사, 2019). - P96
"유한한 지구상에서 직선적인 성장·진보를 끝없이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모순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이상, 지금 가장 긴급한 것은 순환적 삶의 패턴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곳). - P96
그러나 《녹색평론》은 이른바 ‘발전‘ 혹은 ‘진보‘의 이름 밑에서 인간생존의 사회적·자연적 토대를 끊임없이 훼손하는 일체의 움직임, 논리, 사고, 제도, 관행을 비판하는 데 있어서는 늘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했고, 동시에 어떻게 하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왜 우리가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대지의 상상력). - P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