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발간 초기 《녹색평론》은 외국의 ‘녹색사상‘을 전파하는 데 주력하였다. 생태주의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던 당시 사회풍토에서 외국의 대안적인 삶과 사유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전망을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탈학교 사회》의 저자 이반 일리치, 진보적 미술평론가로 말년에 알프스에서 농사와 글쓰기를 병행한 존 버거, 체코의 시인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문명비평가이자 시인인 웬델 베리, 인류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 기계문명 비평가 루이스 멈퍼드, 공생공빈의 삶을 주창한 쓰치다 다카시 등의 글을 번역, 소개했다. - P85

그즈음 《녹색평론》의 관심은 환경생태주의에서 정치민주주의로 향했다. 계속된 발언과 투쟁 속에서 생태·환경 등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은 민주주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기본소득 도입과 은행의 공공화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시민 참여가 보장되는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넓혀갔다. 이후 잡지 지면에는 기본소득, 숙의제, 추첨민주주의와 같은 서양의 새로운 생각, 개념, 제도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민주주의, 기본소득’, ‘민주주의와 시민의회‘, ‘시민주권시대를 향하여‘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사례를 소개하는 특집이 자주 실리기도 했다. - P87

처음 《녹색평론》이 생태주의를 내걸고, 크고 작은 의제들을 제시하자모두들 ‘무모한 실험‘, ‘근본주의적 발상‘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광야에서 외치던 《녹색평론》의 예언은 터무니없는 꿈이 아니었다. 불소화는 중단됐고, 기본소득과 지역통화는 실험 중이다. 《녹색평론》이 끊임없이 주장했던 탈성장·반개발의 담론은 기후위기 속에서 점점 호소력을 높여가·고 있다. 30년을 돌아보니, 《녹색평론》이 옳았다.
그럼에도 개발과 성장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들은 지속적으로 지구환경, 자연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성장의 덫에 걸린 그들은 ‘녹색성장‘, ‘녹색뉴딜‘, ‘지속가능한 성장‘ 등 희한한 구호를 내걸며 생태주의에 물타기를 하고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전지구적 명제에 딴죽을 거는 재계, 기업인, 정치인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 P89

《녹색평론》은 이전의 환경보호운동, 오염 방지·제거 운동 등이 주력한 ‘온전한 근대산업문명의 본래 모습‘의 회복 또는 보호라는 틀을 뒤엎어버렸다. 기존 환경보호운동의 전제가 되는 근대산업문명 자체를 부정해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녹색평론》의 ‘래디컬‘한 속성이다. 이것은 창간 뒤 30년이 지나도 초지일관 변하지 않았다. - P96

"지난 2~3세기 동안 이른바 문명세계가 산업문명을 통해서 이룩했다고 하는 높은 생활수준은 실은 인간사회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끊임없이 찢고 할퀴는 난폭한 짓을 되풀이함으로써 얻어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인 산업경제와 그것에 의존해온 근대적 문명은, 그것이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을 대량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인 한,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종말의 파국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한계를 그 출발점에서부터 내포하고 있다" (책머리에〉,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녹색평론사, 2019). - P96

"유한한 지구상에서 직선적인 성장·진보를 끝없이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모순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이상, 지금 가장 긴급한 것은 순환적 삶의 패턴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곳). - P96

그러나 《녹색평론》은 이른바 ‘발전‘ 혹은 ‘진보‘의 이름 밑에서 인간생존의 사회적·자연적 토대를 끊임없이 훼손하는 일체의 움직임, 논리, 사고, 제도, 관행을 비판하는 데 있어서는 늘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했고, 동시에 어떻게 하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왜 우리가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대지의 상상력). - P1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