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법사가 되고 싶어요
아이는 과학자가 꿈이다. 어쩌면 저렇게 나와 틀릴까, 나는 아이를 보며 매번 놀라곤 한다. 유치원 시절 과학관련 전시관에 많이 데리고 다니긴 했다. 일학년 때 어느 과학관에서 행사하던 과학 잡지를 6학년인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다. 알라딘에서 검색하는 유일한 책은 ‘내일은 실험왕’이다. 기타 추리소설에 열광하고 영어도 특히 사이언스 과목 선생님들과 친분이 깊다.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시작된 의학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최근 ‘싸인’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주말 예능 할 시간에 EBS에서 하는 건강, 생로병사, 암, 한국인의 밥상 같은 다큐멘타리를 스스로 챙겨본다. 책상에 다른 여자아이들과 달리 드라이버, 펜치, 망치, 기타 알 수 없는 종류의 공구들이 박스로 가득하다. 여섯 살 때 잠긴 안방 문을 옷핀으로 열었다. 그래서 손에 맨날 상처투성이다. 욕실에서 뭘 하는지 궁금해 슬그머니 열어보면 샴푸와 린스를 비율에 맞춰 실험용기에 자기 스타일대로 섞고 있다. 향수도 섞고 화장품도 섞고 음식도 섞고 도대체 왜 섞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섞어 본다. 요즘도 재활용쓰레기를 제발 버리지 말라고 다 쓸 때가 있다고 해서 매주 월요일이 되면 실갱이가 벌어진다. 스티로폴이나 페트병은 망치기 좋은 실험재료이기 때문이다.
<현실, 그 가슴뛰는 마법>은 과학적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아이와 추상적, 은유적 대화를 선호하는 엄마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 나는 과학을 제일 싫어했다. 생물과 화학은 거의 암기과목이어서 그런대로 잘했지만 물리와 지구과학은 정말 싫었다. 달과 별과 해가 왜 뜨고 지는지 나는 그런 게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계절이 왜 바뀌고 무지개는 왜 뜨고 지진은 왜 일어나는지 세상에 일어나는 자연현상에 참으로 무심했다. (달을보며 아이는 저 달이 상현달이지? 묻지만 나는 그저 반달일 뿐이다.) 그렇게 공부고 일이고 과학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무슨 악연인지 사회에 나와서는 과학관 사업만 계속 맡게 되었다. 하필 전공이 과학교육을 어떻게 하면 더 창의적인 인재를 기를 수 있나, 그런 공부를 했기 때문에 우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무지개의 원리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가르치면 사람들이 더 빨리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까, 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방식으론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만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과학 선진국에 나가보면 우리처럼 어렵고 재미없게 과학을 가르치는 나라도 드물다.
과학 공부를 한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면 도대체 왜 자신들이 이해하는 현상을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할까 궁금해 한다. 그래서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면 그건 그냥 당연한 일이라 말한다.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설명을 안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겐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 천재에 가까울수록 설명은 바보 수준이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분명 잘 가르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러나 잘 가르치는 재능을 타고 났다 해서 그 사람이 꼭 많이 아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 얄궂은 운명인가 보다. 나는 많이 알면서도 아주 쉽고 재미나게 가르치는 사람을 찾아 다녔다. 일단은 내가 정확하게 알아야 가르치는 방법도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드물지만 사회에서 가끔 그런 분을 만나면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는데 과학관 일을 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최재천 교수였다.(나는 최재천 교수야 말로 마법사라 생각하는데 아이가 닮았으면 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욕심이 너무 큰 것일까) 당시 최교수는 서울대에 재직중이었고 지금처럼 유명하진 않았다. 문과냐 이과냐 하는 이분법에 익숙했던 나로선 문학적 수사가 가득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분이 과학자인가 작가인가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왜 산에 나무가 있어야 하는지를 하나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스토리텔링기법을 구사하셨다. ‘지속가능한 생태계’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결론이 구체적인 영상으로 표현되려면 과학적 지식 외에 특별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상상력은 과학만 잘해서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다른 무엇을 보았고 들었고 읽었고 해보았기 때문에 떠올려지는 2차적인 사고의 영역이다. 그때 나는 설명을 들으면서 이분은 무언가를 엄청나게 많이 보고 읽은 분이라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놀라운 분이 자신의 책에서 다른 책을 이야기 할 때 꼭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인물이 바로 리처드 도킨스 이다. 최재천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때문에 가치관과 인생관,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우리에게 삶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최재천 교수 덕분에 그 책이 유전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재해석하는 책이라는 사실만 여러 번 확인한 독자가 되었다.
#2. 과학이 가슴뛰는, 마법이야
그런데 나는 정작 필독서를 들지 못하고 신간을 펼쳐들었다. 각 분야에서 읽어야 할 책은 너무나 많고 그들을 모두 거슬러 올라가기엔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땐 지금 출간된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다음에 또 이 책을 보아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과학을 떠올릴 때 누구나 쉽게 하게 되는 아주 오래된 질문에 대한 ‘과학적인 대답’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생을 고민할 때 인간은 왜 죽어야 하나,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떠올리게 되듯. 이 책에 가장 끌렸던 이유도 바로 목차 때문이다.
저자는 현실이란 무엇이며, 인간은 언제부터 생겨났으며, 태양이란 무엇이며, 세상은 언제 시작되었으며, 왜 나쁜 일은 일어나며, 기적이란 가능 한 것인지 같은 아주 원초적인 질문들로 이 책을 구성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각 장마다 화려한 일러스트와 함께 이야기 초두에 신화나 전설을 알려준 다음 그것이 왜 틀렸는지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신화적 상상력도 의미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바로 과학적 증거들로 가득한 우리 사는 현실이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짜 마법은 허구가 아닌 진실이며 진짜 기적은 종교가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저자는 과학이 가진 고유의 마법, 즉 현실의 마법이라 칭하고 있다. 종교나 신화보다 더 경이로운 세계인 현실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마법인가 하고 말이다.
이 경이로운 현실이라는 마법의 세계를 강조하기 위해 데이브 매킨의 일러스트는 무척 효과적이다. 사실 일러스트는 비과학적인 예술의 영역이고 이 책에서는 특히 시공을 초월한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아이러니 하게도 이 책은 현실에 대한 소중함 보다는 현실 너머, 혹은 말도 안되는 환타지의 세계로 우리의 영감을 이동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책은 글과 그림의 효과가 3:7로 보인다. 내용은 고교 수준인데 그림은 유치원수준도 많으므로 아이들에게 이해가 안 되면 그림만 보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판본과 그림 때문에 가격이 좀 비싼 것이 흠인데 이 부분은 서점에서 그림을 넘겨보고 결정해도 좋을 것 같다. 기타 과학교육에 곤란을 느끼는 학부모 외에 이차원적인 내용을 3차원적으로 연출하거나 공간화가 필요한 분들도 유용할 듯 하다.
인상 깊었던 그림을 하나만 소개하면 진화와 약간 비슷한 개념의 생명창조 신화를 표현한 그림이다. 가장 가운데 곤충의 세계인 붉은 세상이 있고, 이 곤충들이 기어 올라와 푸른 세계의 새가 되고, 새와 곤충들이 다음 노란 세계로 올라와 보니 그곳에 다른 포유류가 살고 있다. 모든 동물이 마지막 네 번째 세계로 올라오니 그곳에 낮과 밤이 있는 흑백의 세계가 있더라, 하는 생물의 다양성을 말해주는 그림이다. 생물의 다양성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그림을 본 적이 없다. (대부분 나뭇가지 계통도가 아니던가) 이 평면적인 그림을 입체화, 영상화한다고 생각하면 대단한 공간연출이 떠올려지지 않는가.
- 북아메리카의 원주민 '생명창조' 신화 (56p) -
이 책의 결론을 말하기 위해 마지막 장은 ‘기적이란 무엇일까’ 를 질문한다. 저자는 기적을 옹호하지 않기 위해 18세기 스코틀랜드 사상가 데이비드 흄의 문장을 인용했다.
어떤 기적에 대한 증언이 그것이 확증하려고 하는 사실보다 그것의 반증이 더 기적적인 종류가 아닌 이상, 어떤 증언도 기적을 확증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 254 p
예를 들어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이명박이 전 재산을 기부한 것을 보았다는 기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친구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 그 기적적인 일을 믿을까 말까 한다고 치자.
“나는 친구를 맹세코 신뢰해. 친구는 거짓말을 할 리가 없어. 친구가 거짓말을 한번이라도 한다면 그건 기적이지.” 라고 말했다면 흄은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것.
“친구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아무리 낮은들, 친구가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기적일 가능성보다 더 낮을까?”
친구가 거짓말을 하는 일이 이명박이 전 재산을 기부하는 일보다 덜 기적적이라면 우리는 친구가 거짓말을 한다는 설명을 선호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흄은 기적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진 않았다.(그러니까 이명박이 전 재산을 기부할 수도 있다 ㅋ) 대신 기적을 개연성 낮은 사건으로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기적이라고 주장되는 사건의 개연성을 모종의 잣대에 올려 놓을 수 있다면 환각이나 거짓말 같은 터무니 없는 일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여 ‘초자연적인 사건’이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불성실한 자세라 말한다. ‘초자연적’이라 치부해버리면 자연적인 설명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되 버리고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엔 컴퓨터나 휴대전화 같은 기술이 초자연적인 마법의 현상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다. 그러니 과학적인 사고방식이라 함은 우리는 아직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창 고민하는 중이고 앞으로 더 관찰하고 연구하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해야 한다는 것. 쉽게 말해 평생가도 겪지 못할 확률의 기적에 기대고 현실을 무위화 시키는 환상에 의지하지 말고 과학이 해석하는 실재의 현실을 더 믿고 그 안에서 진실을 찾으라는 충고인 것이다.
#3. 종교가 가슴 뛰게 하는, 마법이지
하지만 기적은 비현실적이고 환상은 무용하니 과학적으로만 사고하자, 내 아이에게 그렇게만 주지하고 싶지는 않다. 어찌 보면 과학과 대척점에 있는 종교적 해답이지만 나는 차동엽 신부의 <잊혀진 질문>도 상반되는 대답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꼭 리처드 도킨스라는 과학자의 질문을 종교적인 버전으로 변환한 내용 같다. 리처드 도킨스의 질문과 겹쳐지는 질문이 꽤 있다.(언제부터 세상이 생겼는가,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 기적은 가능한 것인가 등) 하지만 답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살다보면 처음엔 과학문명의 분명한 혜택에 놀라다가도 곧 그것의 냉정함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다음의 기술을 좇아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꼭 마지막 해답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신화의 터무니 없는 환타지나 미신의 비과학적인 논리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어쩐지 현실 너머에 초현실적인 마법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한번은 죽게 되는데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죽고 나면 모든 것은 끝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건 없건 신이 존재하건 하지 않건 그런 생각과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과학자의 질문이나 종교인의 질문이나 모두 궁극의 리스트에 가까운데 우리는 그들의 영역을 피해갈만큼 대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동엽 신부는 종교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의 존재와 사후 세계에 대해 과학자와는 반대되는 시각을 가지고 있을 터이다.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과학과 종교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는 학부모로서 다음의 대답을 기억해 놓으려 한다.
확실한 것은 진화론은 인간이 어떤 과정을 통해 생성되었는지는 설명할 수 있어도 태초에 창조주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화론이 반드시 창조론에 배치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 246
차동엽 신부는 신앙에 바탕을 준 종교와 합리성에 바탕을 둔 과학이 서로 보완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 언젠가부터 우주 대폭발, 빅뱅이론이 끼어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우주가 먼 과거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존재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저자는 창조주의 치밀한 설계 없이 단지 우연히 빅뱅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었기에 이처럼 질서정연한 우주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니까 우주 밖에 있는, 아마도 자연계를 초월하는 어떤 존재가 우주를 존재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 분이 신이라는 설명이다. ‘저절로’ 생겨났다는 우주에 대한 해답을 필연적으로 생기게 했다는 창조주 하느님으로 바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리처드 도킨스가 맞고 차동엽 신부가 틀리고(혹은 그 반대이고) 하는 정답 가리기가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신의 분야를 말할 때 그것이 가슴 뛰는 마법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종교인이라면 종교는 마법이요, 문학인이라면 문학이 마법이다. 과학도 마법이고 예술도 마법이고 음악, 미술, 철학, 건축, 역사, 모두모두 가장 진실한 마법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것을 평생 즐기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되었을 것인가. 마법이 되는 논리는 그 분야 전문가라면 전문가의 수 만큼 다양할 것이다. 중요한 건 세상에 저자만큼 다양한 마법 중에 어떠한 마법을 우리 현실의 답으로 택할 것인가 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마법을 가장 근접한 삶의 해답으로 제시해줄 것인가 이다. 한가지 마법만 가르쳐 준다면 마법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고 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법의 종류가 많다면 아이들도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다.
과학적 증명이 가능한 현상과 그로 이루어진 충분한 현실도 마법의 세계이고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기적 같은 우연으로 생명을 건진 신앙의 힘도 마법의 세계이다. 무엇에 이끌렸는지 배운 사람들이 더 무당굿을 찾아 엄청난 돈을 쓰는 것도 마법의 세상이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마술사의 속임수도 그 순간엔 마법의 무대이다. 신화나 전설 같은 이야기도 강력한 마법의 상상력을 불러온다. 세상은 한 가지 방법의 마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저마다 마법이라 믿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다 구경하고 그 중에서 자신만의 마법을 찾는 일은 어쩌면 모든 마법을 거부하고 곧 자신이 마법이 되는 일은 아닐까 싶다. 어떤 분야이건 그 분야의 마법사가 되는 아이들을 기다린다. 그러니 이렇게 훌륭한 마법을 찾아라가 아닌 네가 마법이 되어라, 바로 네 자신이 마법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라, 우린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을지.
물론 우리 자신은 그렇게 되지 못했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