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승의 날. 아이는 어제 밤늦게 까지 예쁘게 꽃을 만들어 학교를 가더군요. 좋아하는 학원 선생님도 드려야 한다면서 옷도 신경 써서 입었습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학부모들의 선물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많아 선생님 선물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어졌어요. 그래서 일까요...

 

 

아이가 아닌 나의 선생님이 생각나더군요. 학교 때 그분들이 생각나 홈피를 기웃거려보니 세상에 아직도 교편을 잡고 계시더군요. 저 다닐 때 선생님이 지금 교장, 교감 선생님이 되셨고 국, 영, 수, 생물, 음악, 한문 등 당시 선생님들이 아직도 계시다는걸 알았습니다. 벌써 고인이 되신 분도 계셔서 마음이 이상해지는 것이었습니다. 25년 전에 지금의 저보다 젊었던 선생님들이 이제 초로의 신사가 되셨고 그 사이 나는 이렇게 나이들었구나 싶어 새삼 울컥했습니다.

 

 

같은 반이었던 동창생중 한 명(같은 중고등학교,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친구입니다)이 얼마 전에 하필 저 읽는 신문에 커다랗게 사진까지 함께 기사화 되었죠. 엄청난 성공과 부를 거머진 비결에 대해 특집으로 다룬 기사였는데 그날은 서재에 사과글을 올리던 날이었습니다. 내가 잘 알던 친구의 성공을 기뻐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추락해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해 울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그날 TV를 틀었더니 뉴스에서 같은 반이었던 친구, 같은 과 였던 동기들이 작정을 하고 시리즈로 기자가 되어, CEO가 되어, 무슨 단체 임원이 되어 근사하게 인터뷰를 하더군요. 뭐 이런 날이 다 있나 싶었죠. 얘들이 오늘 날을 잡아서 나를 약올리려고 약속을 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가도 왜 내가 잘 아는 친구가 언론에 소개되면 나는 무언가, 그동안 나는 뭐하고 살았나 그런 생각 들 때 있잖아요. 물론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어디 소개 되는 게 인생 전체의 행복과 성공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머리로 잘 알면서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들과 나를 자꾸 비교해가며 그들보다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현재 내 자신이 소름끼치게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예, 저는 사실 현재의 제 자신이 몹시도 못마땅하고 원망스럽고 보기 싫은 경우입니다. 친구들처럼 잘나가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스스로 내면을 투시해보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엊그제 만난 강상구 기자가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의 일생에서 한번쯤은 스스로 잘나간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구요. 그런데 그 시기엔 자신이 잘나서, 혹은 마땅한 노력을 해서 보상을 받는 것이라 믿기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커다란 행운이라 여기진 않는다고 해요. 그런 시간이 행운이었다고 여기는 순간은 그 잘나가던 시기가 지나간 뒤 뜻하지 않은 실패나 좌절을 맛본 후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만약 지금 잘나가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행운이니 잘난 척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이 말도 결국은 잘나가 보았다가 다시 못나가 보았지만 지금 잘나가고 있으니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싶었어요.

 

 

저는 그 행운의 시기를 지나 불운의 시간을 몇 년 보내었더니 이것도 적응이 되어 그런지 앞으로의 행운을 바라기 보다는 그저 더 이상 불운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 더 커지더라는 것입니다. 희망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되면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런데 근 한 달간 우울한 심경으로 뚜렷한 대책 없이 책만 대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이름 석자와 주름진 사진을 뵈니 무언가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중 한분은 저에게 헤르만 헤세 같은 작가가 되거라, 이런 말씀도 해주셨어요. 꿈의 리스트에 작가를 올려놓지 않았던 저는 그 말씀을 흘려 들었고 <데미안>을 읽고는 이런 지루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죠. (중학생때이니 그 책을 제대로 이해나 했겠어요?) 그 중 한분은 정치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제게 '선동'의 에너지와  '설득'의 정신이 공존한다, 뭐 그런 어려운(당시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해주신 분도 있었어요. 물론 그 말씀도 아주 훗날 생각이 난 것이지만요. 제가 아주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은 제가 국문학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당시 저는 시나 시조, 산문쓰기 같은 학교 백일장 대회에서 미리 여러 작품을 생각나는 대로 써 놓고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대충 같은 계절에 시행되기 때문에 주제도 거기서 거기니까요. 또 벗어나더라도 상관없었으니까요, 하하) 빨리 제출하고 남은 시간 최대한 놀았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셨죠. 하지만 돌아보면 직업적으로 늘 펜대를 굴려야 했고 시나리오니, 큐시트니, 기획서니 하는 문서상의 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작위든, 효율이든, 감동이든, 어떻든 제가 쓴 글에 세상은 반응을 보였고 글과 관련된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더군요. 스스로도 싫어했고 매력있다 여기지 않았지만 저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게 제 현실이고 현재의 저를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그러나...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그다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일치시키는 과정이 제게는 불운의 시기였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글과 불운을 분리하고 어떠한 인과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문제는 이 불운의 시기가 끝이 안 보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욕망 사이의 불일치는 연속적이라는 것. 이것이 현재 제가 가진 딜레마이고 모순이며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이죠. 추측컨대 불운이 지속된다면 계속하여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이런 씁쓸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들이 해주신 말씀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창피하지만 1년 동안 강의를 한 적이 있어서 아직까지 스승의 날이 되면 메일로 감사의 인사를 보내는 제자가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떠한 답장도 쓰지 못 하겠더라구요.(벌써 삼년 째 씹었네요 ㅠ) 살면서 도덕에 어긋나거나 법을 위반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아온 것 같진 않은데 누군가에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은 요즘입니다. 방황이 생각보다 길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쉽게 잊고 오늘의 친구는 내일이 적이 되기도 합니다. 계절은 번뇌를 기다려주지 않고 노화는 예외를 두지 않습니다.

 

 

한때 스승을 꿈꾸었거나 스승이었던 적이 있었던 분들을 그립니다. 잊지 못할 스승으로부터 잊지 못할 한마디를 기억하는 모든 분들을 떠올립니다. 지금 누군가의 스승인 분들도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스승이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요. 일 년이 가도 여간해선 스승 생각같은 건 하지 않고 살았기에 오늘 하루만의 감사가 어색하고 인위적이기 짝이 없는 꼴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이곳에다 아쉬움만 남겨놓습니다. 오랜만에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조용히 뱉어 봅니다. 여지없이 목에 걸립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보고 싶네요...

내년엔 좀 더 떳떳해질 수 있겠지요... 그래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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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6 0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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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6 1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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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5 17: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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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6 13: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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