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보같이.
비가 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울한 핑계를 완벽하게 댈 수 있으니까.
지난 주말 이 년 만에 귀국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고 전화너머 잡음도 꽤 들려왔다. 이년 전, 떠나기 전에 꼭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우리는 여의치 않았고 그냥 서로 약속만 덩그러니 버리고 말았다. 만나지 못했어도 그때 헤어지기 직전의 그리움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영영 못 볼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자주 만나온 것도 아닌데 그땐 그 헤어짐이 많이도 안타까왔다. 아마도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우린 그때 어떻게 되어있지 하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슬픔이었던 것일까.
나는 지난 이 년 동안 모든 게 좋지 않았고 그 친구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그 이년 동안 나는 그 전에 내가 쌓아 놓은 것들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그 친구는 같은 기간에 나와 반대인 것 같았다. 그건 그냥 아주 오래된 친구끼리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는 서로간의 기대치, 그것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별 볼일 없어졌으므로 괜한 자격지심인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전화를 걸겠다는 친구의 목소리를 정말 다시 듣게 될까봐 나는 두려웠다.
혹시나 비가 그치면 그 친구가 내게 연락을 할지도 몰라 나는 쇼핑을 했다.
여름 샌들을 사고 원피스를 사고 목걸이를 샀다. 친구가 근처로 온다하면 나는 늘 그렇게 입고 다녔던 것처럼 새로 산 옷을 입고 나갈 것이고 친구는 아마 여전하구나, 이렇게 웃어줄지도 모르니까. 그러면서 제발 전화를 하지 말기를, 아니 한번은 전화해주기를, 번갈아가며 선택했다. 바보같이. 트윗에선 모르는 한분이 이런 내 심정을 위로해주었고 나는 특별히 고맙다 답하지 않았다.
#2. 부질없이
오늘같이 감정을 많이 소모한 날엔 내 자신을 미워한다. 이곳이 좋아지려 하는 것에 대체 무엇이 좋은 건지,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거울아, 거울아. 너는 무엇이 좋아. 여기가 왜 좋아. 부질없이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운 걸까.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는 것이 고마운 것일까.
누군가 내 글에 답을 해주는 것이 기쁜 것일까.
남들이 메기는 나의 가치는 그 사람들의 가치인 것이지 내 자신의 가치가 아니라는 좀 진부하면서도 논리에 안맞아 보이는 메일을 한통 받았고 이곳에서 판매하는 티셔츠를 사려고 했으나 자세히 보니 사서 입을 것 같지는 않길래 마음을 접은 내 자신에게 한껏 욕을 해주었다. 자신을 자학하면서 그것으로 윤리성을 회복하려는 위선에 총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모두 비 때문이라고, 비가 많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슬픔이 아니라 우기면서 나는 아직 남은 저녁을 계획한다.
#3. 진부하게
답이 좀 뻔 하다 생각되는 에세이집을 붙들고 이런 위로야 말로 늘 가던 떡볶이집처럼 정겨운 것이다 생각했다. 새로운 위로란 무엇인가. 누구든 뻔한 그 대답을 듣고 싶어 위로를 바라는 것 아닌가. 속담처럼 격언처럼 나는 진부한 위로를 기다리고 그것을 사랑한다. 세상의 모든 일상은 진부했고 거의 모든 사람 또한 그 일상을 못 넘었다. 간혹 넘은 사람도 진부함을 지나왔다.
꿈도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을 품고, 생각하면 즐거워야 한다. -15p
결국은 그 어떤 것에 시간을 얼마나 바치느냐에 달려 있고,
시간을 바치는 그 시간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다. -17p
나는 주도면밀한 잔머리를 잡아 낼 수 있다. 상투적인 위선을 재빨리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누구보다 내가 그렇게 해보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 세계에서 어울려 살아가려면 적당한 잔머리와 위선은 어쩌면 훌륭한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그럭저럭 유지되는 게 아닐까 싶다. 옛날에 나 좋다고 나 알고 싶다고 러브콜 보내던 처자가 예전에 내가 했던 잔머리와 위선을 똑같이 복제하여 사랑을 받으려 한다. 아니 사랑받았다. 좋을 것이다. 나는 그것의 끄트머리도 대충 짐작이 가는데, 그래서 아팠고 슬펐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4. 정면에서
나가수의 약발이 떨어질지 알았고 1박 2일과의 정면도전에서 패배할 줄 알았다. 잔머리였다. 정면승부는 잔머리의 승부와는 달라야 한다. 나 역시 잔머리의 승부는 하고 싶지 않다. 좀 알아준다고 조금 알려졌다고 누군가 관심을 가져줬다고 순간의 성취에 들뜨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누군가 어떤 이유로든 나를 공격하거나 돌려서 비난하거나 외면한다고 하더라도 상처 받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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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든 안쓰든 나는 위선자다. 나는 그걸 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위선자다.
그러나 글을 씀으로써 그 위선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떤 글도 쓰지 않을 것이다.
-고종석 일일 연재, <해피패밀리> 6회 中 http://cafe.naver.com/mhdn/27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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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나를 울린 문장. 그러나 나는,
어짜피 위선자인거 크게 되는 위선자로 살고 싶다.
위선도 커지고 커지면 예술이 되는 거 아닐까. 창조의 환희로 거듭나는 거 아닐까.
그리고,
다시
당신도 오웰처럼 주제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제나 메시지가 처음부터 명확하게 포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주제나 메시지는 작품을 본격적으로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며, 작품에 대한 고민을 거듭할수록 더욱 명확해진다. 주제는 구조의 결함을 발견하고 고칠 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독자를 감동시키는 원동력 또한 주제에서 나온다. 비록 많은 단어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주제가 반복되어 점점 쌓여나갈 때 생기는 효과는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288p
글 안 쓰는 위선자보다 글 쓰는 위선자로 살 것이다.
그래야 내 위선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실하게, 진부하지 않게, 진지하게, 진심으로, 잔머리 쓰지 않고.
나만을 위해.
이제 좀 친구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