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적 글의 저자는 그 자학으로서 자신을 미화한다.
자기혐오를 제 윤리성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 고종석 일일연재, <해피패밀리> 제 2회 中에서

http://cafe.naver.com/mhdn/27456

 
   


솔직히 말하면 저 위의 문장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들은 어줍짢은 시인들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은 소설가, 다음은 평론가, 다음은 출판 관계자...

즉, 가장 순수해야할 성정 순으로 저 법칙은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글을 잘쓰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만약 내가 글을 잘쓰는 사람의 범위안에 속한다면 나 역시 열외일순 없을 것이다. 글은 오로지 글로써만 신뢰하고 글로써만 감동받는다. 글을 그것을 작성한 사람의 삶이나 인격, 혹은 지식과 동일시 하지 않는다.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을 이차 가공한 것이지 절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 글은 글쓰는 사람이 글쓰는 순간에 자신을 정화한 것이지 그 이전과 이후의 자신을 바꾼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정화가 아니라 반성, 감동, 공감, 분노, 환희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감동스런 글, 교양있는 글을 쓴 사람은 어쩐지 인격의 수준도 높고 감수성도 예민할 것이라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글이 곧 사람이라는 오래된 관습적 편견에 의해 글을 그 사람의 됨됨이로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꼭 착하라는 법이 없으므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꼭 인간성 좋으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교회는 다분히 행동적이고 글은 사고적이다. 사고는 행동에 우선한다. 깊은 사유를 풀어놓고 그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글은 그 사람의 사고과정이므로 곧 훌륭한 인격을 수행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까지 생각했으니 분명 어느 정도 괜찮은 사람일 것이라는 무언의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사회의 상식이나, 뻔한 윤리, 표어같은 도덕성 쯤이야 기본이겠지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공동의 고민이나 善, 혹은 인권문제까지도 정의의 편에 설것 같고 자신 및 타자를 평가하는 잣대 역시 엄격하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또 대부분은 글 잘쓰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할 터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럴려고 노력하고 그런 줄 믿고 싶은 것이지, 글은 여전히 위선과 폭력을 은폐하는 가장 손쉬운 도구이자 시스템, 소프트, 혹은 이 모든 걸 포함한 사회 및 개인의 재능에 불과한 것이다.

글 너머 그 사람의 실상은 글 안의 허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여지껏 살면서 글좀 써보려고 애써온 슬픈, 내 결론이다.

외려 글을 쓸수록, 글을 잘 쓰게 될수록 순수성과 독창성은 반비례해 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난 여전히,

글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 그 글을 쓴 사람도 아름다울 것이라 믿는 내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은 고집이 있다. 미련이라고 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내가 꼭 그렇게 되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생각까지 한다.

적어도 아름답고 고통스런 글을 쏟아내는 그 순간에 그 사람이 누구보다 진실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 후에 설령 그가 다시 위선으로 자신을 기만했다고 해도 다시 글을 쓰며 그렇게 살지 않으려 했다고 믿고 싶다. 책좀 읽고 글 좀 쓰다보면 위선보단 진선을 향하는 순간이 많아지리라 믿고 싶다. 평일 내내 다른 사람을 욕하고 거짓을 일삼아도 주일에 기도하며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를 존중한다. 그 사람은 주일마저 마찬가지 인 사람보다는 아름다울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왜 책을 읽고 책이 좋다고 떠들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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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7-0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제일 먼저 생각난 문장이 있어요, "순간을 믿어요~!"


한사람 2011-07-06 12:2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굿바이님도 오늘은 맑은 하루 되시길요^^

2011-07-06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6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7-0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맞아요.
글은 참 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면 쓸수록 날카로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하죠.
이 날카로움으로 누군가를 찌를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요.
하지만 칼은 그 자체보다 가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것처럼
글도 글 자체보다 쓰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리라고 봐요.
물론 글 잘 쓰는 사람이 다 고매한 인격을 가진 건 아니겠지만,
엊그제 읽었던 글에, 목사는 위선적으로라도 선해야 한다고 했던가 그러더군요.
그렇게 되다보면 정말 선해진다고.
글도 그런 것 같아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위선적으로라도 잘 쓰다 보면
언젠간 좋은 인격을 갖게 되겠지요.
문제는 제가 그 글을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남의 서재에 들어와 댓글을 지나칠만큼 길게 쓴다는 것이고.ㅠ

한사람 2011-07-06 12: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걸요 ㅋ
길게 뿐인가요, 주렁주렁 참견에 부연에 .. 떠들어 대는 걸요

고종석 작가의 연재소설을 읽다보니
(그분 참, 찔리는 문장을 많이 풀어 놓으셔서 ㅋ)
글과 책, 그리고 작가...그리고...나..
그리고 이곳..
이렇게 생각이 연쇄적으로 이동하더라구요..

혹시나 나는 글로써 남의 눈물을 쏙 뺀적이 없을까..

그런 자책도 들구요..

달사르 2011-07-06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어느 작가분이 저에게, 너는 왜 글을 쓰니? 라고 물어봤어요. 물론, 일기같은 글이었지만!
그래서 "제가 마음수양하려구요. 글을 쓰다보면, 내 속의 마음을 들여다볼수 있거든요." 하고 대답했는데요.
한사람님 표현처럼 글 쓸 때는 마음이 많이 정화되는 듯해요. 그리고 실지 현실과 차이나는 지점도 발견하구요. 순결하다거나, 노력한다거나, 멋있다거나..하는 등의 글 속의 나 자신과 현실의 나 자신이 다르다는 걸 어느 순간에 자각하고나면 무~~척 부끄러워지더라구요. 그러면서, 아..내가 글 속에서 나를 속이기도 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더랬어요. 그렇게 계속 일기든 뭐든 글을 써나가면 나도 몰랐던 스스로에 대한 속임도 발견하게 되고, 또 아주 조금이나마 좋은 쪽으로 변화가 있겠지, 하는 기대가 생기더라구요. 글을 쓰면서 드러운 내 성격을 조금이나마 고치고 싶다, 뭐 이런 거도 있구요. 헤

고종석 일일연재, 보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한사람님의 포스팅 보는 것도 좋은데요? ^^

한사람 2011-07-06 16:20   좋아요 0 | URL

저는 울면서 쓴 글은 울지 않을 때 보면
아주 가관이라는 생각을 해요 ㅋㅋ
나를 할수 있는 만큼 자학해놓고 스스로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며
연민에 빠지는 작태를 미칠만큼 경멸해요..

그래서 저런 문장은 꼭 저 들으라 하는 말만 같아서
이런 포스팅은, 실은 제 스스로에게 부치는 편지 같은 글인게죠..

cyrus 2011-07-0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블로그에 글을 남기면서 글 속 내용에 담겨진 감정과 실제 감정이 정반대라는 것을 느꼈던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 앞에서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도 독서모임을 하면서 알게 되었구요,,
그렇다보니 글 한 번 쓰면 길게 써지게되구요,, 가끔씩 그 부분에 대해서 저 스스로 아쉬울 때가 많아요.

한사람 2011-07-07 11:02   좋아요 0 | URL

저도 독서모임을 나가볼까 생각하는데..
말로 전하는 것과 글로 적는 것은 그 본질이 차원적으로 다른 결과를 낳는 다는 생각이어요
저 역시 제대로 설명을 다 못한다는 느낌때문에 서평이 길어지는 쪽이라 시루스님 말 통감합니다^^

또 말이나 글이 원래 생각과 다르게 나가는 경우도 많구요.
특히 글은 그 다음을 엮어야 하니까 원래 생각이 많이 가공되어 나타나게 되죠..

서평은 완전 사기가 아닐까, 어떨땐 그런 생각도 해요 ㅋ

마녀고양이 2011-07-0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공감되는 페이퍼입니다.
글을 쓴다는 자체가, 자신을 가장하고 방어하게 되더라구요.
제 자신이 되고 싶은 측면, 보여주고픈 모습, 그리고 뒤늦은 후회일 경우도 많구요.

알라딘 서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때부터 글자라는걸 끄적거리게 되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실수하고 배우고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활자화도 중독인듯해요, 빠져나오기 힘들걸 보니 말이죠.
(사실 글쓰기가 좋은지 아니면 친한 알라디너의 호응이 좋은지 구분하라면, 음......... 자신이 없네요, ㅎㅎ)

한사람 2011-07-07 11: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글로써 자기논리를 만들다보면
그것이 자신을 변호하게 되고 자연스레 타자에게 상처 혹은 공격이 되는 글이 되게 마련이죠..
원래 그러한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글을 쓰다보면 그런 자신을 알아달라는 식의 내용이 되버리잖아요..참..

저는 알라딘 서재에 맘을 붙였더니
글쓰는 일이 좀 활력적이 된거 같아요
예전엔 독백이었는데 이제는 대화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것에 중독될까봐 겁이 나네요

달사르 2011-07-07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 오늘 저기 링크를 따라가서 고종석님 글을 읽어봤네요. 음..글을 무척 정돈된 스타일로 쓰시는 분이신거 같앴어요. 한사람님 덕분에 연재소설 하나 읽겠어요. ^^

한사람 2011-07-08 00:36   좋아요 0 | URL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자신의 사유를 풀어 놓는 스타일이라..
이야기 보단 사고하는 재미가 있는거 같아요 ㅋ
오늘까지 읽어보았는데..언제까지 갈지 몰라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