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저 위의 문장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들은 어줍짢은 시인들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은 소설가, 다음은 평론가, 다음은 출판 관계자...
즉, 가장 순수해야할 성정 순으로 저 법칙은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글을 잘쓰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만약 내가 글을 잘쓰는 사람의 범위안에 속한다면 나 역시 열외일순 없을 것이다. 글은 오로지 글로써만 신뢰하고 글로써만 감동받는다. 글을 그것을 작성한 사람의 삶이나 인격, 혹은 지식과 동일시 하지 않는다.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을 이차 가공한 것이지 절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 글은 글쓰는 사람이 글쓰는 순간에 자신을 정화한 것이지 그 이전과 이후의 자신을 바꾼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정화가 아니라 반성, 감동, 공감, 분노, 환희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감동스런 글, 교양있는 글을 쓴 사람은 어쩐지 인격의 수준도 높고 감수성도 예민할 것이라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글이 곧 사람이라는 오래된 관습적 편견에 의해 글을 그 사람의 됨됨이로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꼭 착하라는 법이 없으므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꼭 인간성 좋으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교회는 다분히 행동적이고 글은 사고적이다. 사고는 행동에 우선한다. 깊은 사유를 풀어놓고 그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글은 그 사람의 사고과정이므로 곧 훌륭한 인격을 수행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까지 생각했으니 분명 어느 정도 괜찮은 사람일 것이라는 무언의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사회의 상식이나, 뻔한 윤리, 표어같은 도덕성 쯤이야 기본이겠지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공동의 고민이나 善, 혹은 인권문제까지도 정의의 편에 설것 같고 자신 및 타자를 평가하는 잣대 역시 엄격하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또 대부분은 글 잘쓰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할 터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럴려고 노력하고 그런 줄 믿고 싶은 것이지, 글은 여전히 위선과 폭력을 은폐하는 가장 손쉬운 도구이자 시스템, 소프트, 혹은 이 모든 걸 포함한 사회 및 개인의 재능에 불과한 것이다.
글 너머 그 사람의 실상은 글 안의 허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여지껏 살면서 글좀 써보려고 애써온 슬픈, 내 결론이다.
외려 글을 쓸수록, 글을 잘 쓰게 될수록 순수성과 독창성은 반비례해 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난 여전히,
글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 그 글을 쓴 사람도 아름다울 것이라 믿는 내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은 고집이 있다. 미련이라고 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내가 꼭 그렇게 되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생각까지 한다.
적어도 아름답고 고통스런 글을 쏟아내는 그 순간에 그 사람이 누구보다 진실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 후에 설령 그가 다시 위선으로 자신을 기만했다고 해도 다시 글을 쓰며 그렇게 살지 않으려 했다고 믿고 싶다. 책좀 읽고 글 좀 쓰다보면 위선보단 진선을 향하는 순간이 많아지리라 믿고 싶다. 평일 내내 다른 사람을 욕하고 거짓을 일삼아도 주일에 기도하며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를 존중한다. 그 사람은 주일마저 마찬가지 인 사람보다는 아름다울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왜 책을 읽고 책이 좋다고 떠들어야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