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이 오면 십년도 더 된 카딜러에게 운전 조심하라는 문자가 옵니다.
이번엔 용띠라고 용을 그렸어요.
돈 빌린 걸 다 알고 있는 은행에선 신규 적금을 들라고 해요.
결혼기념일 일주일 전부터 홈쇼핑에서 쿠폰이 도착하죠.
스마트폰도 신상으로 바꾸라고 전화가 옵니다.
집 앞에 새로 생긴 마트에선 귤 한 상자에 만원이라고
그 옆 아울렛에선 아이들 겨울 의류 대폭할인이라고
문자 받은 고객에게만... 혜택 준다고 하네요...
오늘은 동네 치킨집도 휴일인지 할인문자 안 오네요.
카톡에 프로필 메시지를 바꿨습니다.
운좋게 손으로 쓴 연하장을 받았거든요.
떡국을 끓여 먹으려고 양지머리 만원어치 샀습니다.
왕만두도 덤으로요. 아... 이렇게 나이를 먹는 것이죠.
#2.
사실 언제부턴가 나이 먹는 것이 그리 슬프지도 또 특별히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서른 살까지 숫자를 세어보았던가 서른 다섯 이후부터 안 세어 보기로 다짐 했던가 마흔부터는 숫자를 지워 버렸던가...그랬나 봅니다. 가끔 너무 오래 살았다는 생각도 합니다. 인간이 유독 욕심이 많아 개, 돼지, 닭, 쥐...들의 생명을 몇 년씩 빌어와 살고 있다고 신경숙의 소설에 나와 있잖아요. 가끔 죽는 것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오래 사는 건 더 무섭습니다.
그런데 한 해가 간 것이 신기하긴 합니다.
그전까지 그러려니 했는데 어제 11시59분 55초부터 약 십 초간 그런 마음이 불현듯 들었어요. 프랑스 어느 마을에선 그해의 마지막 날 다들 모여 축제를 벌이다 새해가 되는 순간 서로 껴안고 키스도 하고 기뻐서 죽겠다는 듯 그렇게 브라보를 외친다고 하던데요. 이번엔 이상하게도 잠시, 눈물이 핑 돌더군요. 아... 잘 견뎠구나... 지겹게도 살아 있구나... 빈혈처럼 어지럽고 아스라했어요. 피...철분...나는 삶의 어떤 영양소가 실조되었는가...
그렇다고 절망으로 새해를 맞이했다는 건 아니구요. 처음으로 새해보다 지나간 해에 내가 견뎌온 시간에 경의를 표해 봤다는 것. 무사히 한 해를 걸어 나왔다는 것이 기특하더라는 것이죠. 몇 년간 나는 나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으니까요.
할 수 없이
아버지가 생각나요.
나를 만들어준 어머니가 보입니다.
사연 하나 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헤어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만나지도 못하는 한 남자도 많이 생각나요.
#3.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
이제... 독고진은 좀 지겨웠어요. 눈물은 김병만만 인정해 줄 거예요. 유재석이 아내에게 고백하는데 왜 내가 떨리는 것이죠. 모두 턱시도인데 혼자서 비예복 차림 한석규는 어쩐지 고독해 보였어요. 시상식 불참이야 어제 오늘일이 아닌데... 수애 불참은 속까지 상하더군요... 호동씨 다시 보고 싶어요(운동선수가 원래 고집이 세니까...이해는 해줄 거예요) 핑크 드레스 고현정은 사과라...그래도 무례는 해보였어요.(하지만 그래야 견딜수 있다는거..알아요) 글쎄, 아이유도 피곤하니까 음이탈은 하더라구요, 하하. 그런데...당신은 잘 있지요? 나는 아직 여기 그대로 있어요. 괜찮다고는 못해줘요...
어쩌면 원대한 꿈이 사라졌어요. 정확히는 나도 모르는 내 미래를 생각하기 싫어졌어요. 아무것도 되지 않음을 같이 참아낸 당신이 오늘은 그립군요. 아무것도 이기지 않아도 되니 그냥 올해도 계속 살아만 있어주길.(이것이 의외로 쉬운 일 아닌 거 나이 들고서 깨우칩니다만)
그런데 여러분은
헤어진 남자와의 반지를 어떻게 하셨나요. 새해 아침인데 떡국 먹다가 생각이 나서요.
(올해도 계속 끼고 계실건지...물어 보는 겁니다 ㅋ)
#4.
올해부터라도 한달에 며칠 시 읽는 날을 정해놓을까...또 신년계획의 유혹에 빠지고 싶어 죽겠어요. 많은 거장들이 글이 안써진다고 문장 고민하지 말고 그럴때 시나 읽어라 충고를 하지만 네네 그래놓고 다시 소설만 읽었어요. 공부한답시고 철학, 사회과학에만 눈독 들였어요...
그런데 정확히는 외우지 못하지만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이 시가 아침부터 생각이 났었는데....하하하, 최영미 시집에서 드디어 찾았어요.
최영미는 천상병 시인의 새를 읽고 두어번이나 울었다고 해요..글쎄.. 그 마음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데 어쩌죠...이벤트 같은 거 수줍어서 못해요. 그러니 이웃님들에게 시로 마음 대신합니다...
산다는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같이 생각할수 있다는 거 정말 고마운 일이거든요.
새
천상병(1930-1993)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가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 최영미, <내가 사랑하는 시> 中에서
덧붙임)
혹시 이런 아르바이트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ㅋ 저는 같이 울어 드리는 거 정말 자신있어요.
남의 이야기 듣고 슬픈 부분이 아니어도 엉뚱한 부분에서 잘 울거든요. 다 이야기 하면 별 여자를 다봤네 하실걸요 ㅋㅋㅋ
올해는 산다는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같이 느끼게 될 모든 분들..
더 많이 듣고 그래서 마치 내 일 같이 마음으로 울어 드릴께요...
(물론 몰래 혼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