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16 - 제2부 승자와 패자 16 동쪽으로 단결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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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32권의 16, 딱 절반을 읽었다. 누군가는 이 책을인간 처세술의 비법이 담긴 책으로 읽을 것이며, 나 같은 사람은 일종의 무협지 같은 성격의 역사 소설로 접할 것이다. 이 세상에 꼭 읽어야 하는 그런 책은 없는 법이다. 나에게 맞는 책이라면 그저 그것으로 만족할 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2만 대군을 동원한 유람 같은 큐슈 정벌까지 마치고 나서 전국의 모든 다이묘들에게 상경할 것을 명령한다. 가장 껄끄러운 상대였던 미카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마저 고집을 꺾고 상경한 마당에 또 누가 명실상부한 천하인 칸파쿠의 명령을 거부하겠는가 싶었지만 아직도 그런 선수가 하나 남았으니. 칸토 지역에서 백여년 오대를 이어온 호죠 가문이었다.

 

호죠 가문 처리 전에, 요즘 들어 부쩍 다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칸파쿠는 키타노 다회를 열어 천하를 놀라게 한다. 칸파쿠라는 인간은 무력과 재력 그리고 자신이 가진 지략을 이용해 전대미문의 일들을 만들어 내길 즐기는 것 같다. 오다 노부나가와는 또 다른 성격의 천하인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그것은 오다나 마츠다이라 같이 명문가 출신으로 대대로 충성을 받친 후다이 가신들의 부재에서 오는 신흥 재벌 특유의 허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키타노 다회에 갑자기 등장한 천주교 다이묘 타카야마 우콘과 오긴의 만남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히고의 영주로 전봉된 삿사 나리마사의 학정으로 천주교도들의 폭동이 발생했다고 한다. 역전의 무장 타카야마 우콘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처해서 떠돌이무사가 되었다. 센노 리큐의 양녀 오긴을 노리는 칸파쿠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천하통일이라는 일생의 목표를 달성하자, 자꾸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던가.

 

장삼봉 조사 앞에서 태극권을 시전하는 장무기도 아닌 나는 왜 어제 읽은 책의 내용이 벌써 헷갈리는 것인가. 가라시아 부인이 호죠 가의 멸문 그리고 다이나곤의 영지 교체 등을 아마 예언하지 않았나 싶다.

 

다이나곤의 후계자가 되는 삼남 히데타다를 낳은 사이고 부인과 아사히히메가 차례로 죽는다. 도쿠가와 집안의 내전이 그나마 잘 운영되는 편이라고 한다면, 도요토미 집안에는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 아사이 나가사마와 어머니 오이치 부인의 원수 칸파쿠의 소실이 된 챠챠히메는 칸파쿠의 정실 키타노만도코로 네네가 바로 잡고자했던 내전의 질서를 거부하고, 임신설로 칸파쿠의 정신을 뒤흔든다.

 

자식문제는 비록 천하는 평정했지만 든든한 적통 후계자를 가지지 못했던 히데요시의 가장 강력한 약점이었다. 천하의 칸파쿠를 그런 식으로 챠챠히메는 농락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내전의 무질서는 칸파쿠의 최고 참모 이시다 사키치 미츠나리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은밀한 문제였다. 그는 도요토마 가문의 결속을 위해 일체의 파벌 조성을 용서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런 그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였다. 융통성 없는 그의 태도가 훗날 무단파와 문치파의 대결로 궁극적으로 도요토미 가문의 붕괴를 가져 왔으니 말이다.

 

소설의 후반부는 칸토에 웅거한 호죠 가문 평정에 관한 이야기다. 믿는 빽도 없이 무슨 깡다구로 호죠 가문은 도대체 칸파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단 말인가. 호죠 가의 당주 우지나오는 강화파였고, 여전한 실세였던 우지나오의 아버지 우지마사는 다이나곤의 선무공작에 말려 주전파의 거두였다. 급할 게 없었던 칸파쿠 히데요시는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동원령을 내리고, 다이나곤 이에야스를 선봉에 세워 오다와라 평정에 나선다.

 

물론 오다와라에서는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군으로 판단했던 다이나곤 이에야스가 칸파쿠의 편에 서고, 철통같은 농성전을 치르려고 준비했던 것들이 모두 무위로 끝나면서 항복 외에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게 되었다. 끓는 물 속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모양새로 그렇게 호죠 가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

 

그 이전에 다이나곤 이에야스 측에서는 히데요시가 호죠 가가 지배하던 칸토 8개 주로 자신들을 전봉하려는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늘어난 가신들에게 나누어질 토지가 칸파쿠에게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일본식 봉건주의의 밑바탕에는 바로 토지라는 경제적 요소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피와 살이 튀고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전장에서 가신들과 무사들의 충성을 유도하는 것은 바로 경제적 보상이었고, 당대 경제적 보상의 실체는 바로 토지였다.

 

누대에 걸쳐 미카와, 토토우미, 스루가 그리고 카이와 시나노에 둥지를 튼 도쿠가와 이에야스 집단을 격정의 반도 무사들이 날뛰는 칸토로 보내는 수는 그야말로 칸파쿠 히데요시에게는 희대의 묘수였다. 일단 기존의 영지를 가지고 있던 미카와 고집쟁이들의 반발은 어떻게 무마할 것인가? 당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한판 붙자고 대들 게 아닌가? 호죠 가의 잔당들은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지만 너구리 기회주의자 다이나곤 이에야스는 이 또한 자신에 대한 히데요시의 테스트라는 걸 정확하게 파악했다.

 

이미 이전에 오다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이런 식으로 했다가 혼노사의 변이라는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던가. 기존의 영지들을 거두고, 아직 정복하지도 않은 지역을 주겠다고 했다가 천하포무의 꿈이 사그라졌다. 천재 전략가 히데요시는 똑같은 이에야스에게 강요했다. 그래 너라면 어떻게 할 건데라는 식으로 말이다.

 

바로 이때 등장해서 도쿠가와 가문의 당주 이에야스를 적극 지원한 자가 바로 그 유명한 혼다 사쿠자에몬 시게츠구였다. 이미 자신의 주군에게 위해가 벌어지면, 칸파쿠의 생모 오만도코로를 불태워 죽이겠다고 오카자키에서 미카와 고집쟁이의 기백을 보여준 바 있는 그런 똘기 충만한 무사였다. 이번에도 악역을 자처해서, 배드 캅 역을 자진해서 맡았다. 일단 주군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잠정 은퇴를 감행한 다음 오다와라 정벌에 나선 칸파쿠 히데요시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태클 거는 장면에서는 사이다를 사발째 들이키는 그런 시원함이 느껴졌다.

 

미카와 무사들의 가풍이라는 핑계를 대며, 거의 무례에 가까운 막말까지 천하인 히데요시에게 퍼붓는 기개는 정말 대단했다. 사쿠자에몬 역시 히데요시의 영지 교체 강권이 피할 수 없는 가문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주군처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악역을 자처해서 이번 위기가 도쿠가와 가문의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요약하자면, 자신 같은 고인 물들은 빠지고 돈도 명예도 그리고 목숨까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개인의 영달과 가문의 보존 그리고 부귀영화를 바라는 게 당연한 삶의 귀결이 아니었던가. 기회주의자 다이나곤 이에야스는 말끝마다 세계평화 타령을 하지만 결국 타자에 의한 평화가 아닌 자신이 만들어낸 평화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미카와 가신단을 주군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똘마니 집단으로 묘사된느데 과연 그럴까 싶기도 하다. 그런 점이 소설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재미를 더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말이다.

 

칸파쿠에 의해 칸토로 전봉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오늘날의 도쿄)를 중심으로 새출발에 나선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가 자기 삶의 정점에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처럼, 마침내 일본을 통일하는데 성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몰락의 단초가 되는 조선 침략 더 나아가 명나라와 천축 정복이라는 망상을 가동한다.

 

이미 이익의 귀재들인 사카이 상인 집단에서는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이 계륵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투자에 비해 얻을 게 없다는 것이었다. 먹기 쉬워 보이는 떡보다 차라리 남만 정벌로 눈길을 돌렸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야마오카 소하치의 남만 정벌 타령은 현대 일제의 대동아공영권과 교묘하게 맥을 같이 한다. 아니 어쩌면 신관에서 상인으로 변신한 나야 쇼안(쿠마 도령) 같은 이들이 자신들의 총지배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부추겨 파멸로 인도한 게 아니었을까. 전대미문의 국제전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상업적 이익을 남기면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어느 누군가에는 돈벌이의 기회가 되니 말이다.

 

430년 전, 맹목적으로 조직에 충성한 가신의 모습이 최고의 가치인양 미화한 설정이 좀 거슬렸다. 확실히 구시대적 사고를 가진 작가의 글이라는 게 절실하게 느껴졌다. 요도도노나 츠키야마 부인처럼 자주적 사고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산 여성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그 대신, 오다이나 사이고 부인처럼 패전 후 경제 부흥이라는 조국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경제전쟁에 나선 남편들을 대신해서 가정을 지키고 아이를 키우는 역할이 일본의 전통적 여성의 귀감이라는 식의 설교도 걸러서 들어야 한다.

 

다시 한 번, 글쓰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균형 잡힌 독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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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29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32권의 16권을 읽으신 것, 축하드립니다. 보통 일이 아니죠.
제가 예전에 삼국지 열 권짜리가 길어서 6권짜리로 된 걸로 골라 완독했었죠.
저자가 정비석이었던 것 같아요. 완독하고 나니 뿌듯하더군요.

레삭매냐 2020-09-05 10:17   좋아요 0 | URL
시리즈를 잡고 나니 다른 책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겠더라구요.

3부 22권을 읽고 있습니다.

일단 목표는 이번 추석 전까지
모두 읽는 것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10 - 제2부 승자와 패자 10 키요스 회의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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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 카이사르가 죽었을 때도 그랬다. 인간은 모름지기 질서를 좋아하는 법이다. 혼란은 예측불허하기 때문일까. 무질서가 계속되면 그 속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세력이 등장해서 무질서를 끝내려고 경쟁하기 마련이다. 무질서라는 센코쿠 시대, 무력으로 천하통일을 앞두고 있던 효웅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그가 유지하고 있던 질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오다 노부나가의 초청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즈치 성을 방문하고, 일본에서 세계로 향한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사카이 지방을 주유하고 있었다. 당시 사카이 지역에서 연간 생산되던 3,000정의 총포는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무력의 기반이었다.

 

1부의 초반, 중요한 역할을 하던 쿠마 도령 타케노우치 나미타로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서 궁금해 하던 차에 이번 도쿠가와의 순행길에 다시 나야 쇼안이라는 이름의 거상으로 다시 등장한다. , 그렇지 한 번 그렇게 비중 있게 등장한 인물이 버려지지는 않겠지. 그리고 미츠히데가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할 수도 있다는 요설을 흘리는 쿠마도령.

 

우리는 이미 교토의 노부나가가 혼노 사에서 분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쿄토로부터 비보가 잇달아 전해진다. 자신의 동맹이자 사돈이었던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쿄토로 가서 할복하겠다는 말로 가신들을 눙치고, 본국 미카와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국을 거머쥐고 있던 거인의 죽음은 곧바로 예상하지 못했던 혼돈을 초래한다. 산적이며 폭도들로 변한 백성들이 약탈과 방화에 나선다. 이런 상황에서 화려하게 꾸민 다이묘의 행차는 곧바로 그들의 목표가 될 게 분명했다.

 

말이 꽃이 지는 도시 쿄토에서의 할복이지 본국으로 돌아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우다이진의 복수에 나서겠다는 것이 이에야스의 본심이었다. 마츠다이라 가문에게는 치명적이었던 미카타가하라의 패전만큼이나 중차대한 위기를 넘기고, 이에야스는 자신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백성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환하는데 성공한다.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다.

 

한편, 2부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하시바 히데요시는 주군 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아 6년 째 추코쿠 정벌에 나서 모리 가를 상대로 빗츄의 타카마츠 성을 공략 중에 있었다. 아무리 신출귀몰하는 지략의 히데요시라고 해도, 죽음을 각오하고 농성에 나선 성장 시미즈 무네하루를 상대하기란 역부족이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히데요시 진영에도 전해진 오다 노부나가의 사망 소식, 자 이제 문제는 사투를 벌이던 모리 가와 화친을 맺어야 했다. 그리고 속히 쿄토로 돌아가 역신 미츠히데를 토벌하는 복수전을 치러야 노부나가의 유산을 상속할 수 있다는 치밀한 계산을 히데요시는 마쳤다. 생각과 실천을 동시에 이루는 능력은 이제 저승길에 오른 노부나가를 능가하는 게 바로 히데요시였다.

 

치밀한 전략가인 히데요시는 자신의 라이벌들이 각지에서 적을 상대하느라 주군을 시해한 역신 아케치 미츠히데를 토벌할 겨를이 없다는 점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자신도 빗츄의 타카마츠 성을 공략하느라 애를 먹고 있지 않았던가. 교활한 히데요시는 주군 시해 소식을 듣자마자, 화친을 청하던 모리 가의 사자를 설득해서 오다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화친을 맺은 뒤, 아케치 미츠히데 토벌의 깃발을 올린다. 그야말로 선빵을 날린 것이다. 노부나가 사후, 무주공산 상태의 혼란을 제압하고 주군의 유산을 통째로 삼키겠다는 배포가 아닐 수 없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전임자가 무자비한 폭력적 방식으로 상대를 제압했다면, 후임자는 당근과 채찍이라는 고전적 방식으로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는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무력을 하지만 언제라도 자신과 화친/굴종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면 바로 휘하에 합류시켰다. 그러니 미츠히데의 사위들인 호소카와 타다오키나 츠츠이 쥰케이가 장인을 배신하고 적군과 합류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한편, 차야 시로시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비밀정보원으로 사카이 지역의 상인으로 신분을 위장해서 활동 중이었다. 당시 센코쿠 시대에 각처에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채, 정보를 수집하여 본국에 전달하는 수많은 세작들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무력에 능한 가신단 뿐 아니라 협상과 외교 그리고 정보전의 필요성도 깨달았던 모양이다. 우직하고 주군에 대한 충성이라는 점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미카와 무사들이었지만, 노부야스 사태에서도 보듯이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훗날 가라시아 부인으로 알려지게 되는 미츠히데의 차녀 키쿄(호소카와 타다오키의 부인)에 대한 에피소드도 흥미로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천재 전략가답게 히데요시는 무력에만 능한 게 아니었다. 치밀한 정보전으로 자신의 군세를 부풀리고 민심은 이미 주군의 복수전에 나선 히데요시 편에 돌아섰다는 심리전도 구사했다. 군의 보급에도 용의주도한 모습을 보여 사카이 상인들의 지지로 다수의 군량을 확보하고, 훗날 임진왜란 선봉에 서게 되는 코니시 야쿠로 유키나가를 보급대로 삼아 미츠히데와의 결전을 준비했다.

 

이런 상태에서 야마자키에서 맞붙은 양군은 이미 본격적인 대결을 하기도 전에 이미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홧김에 큰 별인 오다 노부나가를 처치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다음의 대비는 전무했던 게 아케치 미츠히데의 치명적 실수였다. 근교원공의 전략을 구사해야했지만, 쓸모도 없는 원거리에 있는 동맹들만 바라보다가 일패도지해서 결국 오구르스의 노부시들에게 아케치 미츠히데는 살해당하고 만다.

 

야마자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주군의 원수를 갚은 히데요시는 오다의 가신들 중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치쿠젠이 지닌 승부사로서의 기질은 이후 오다 가의 향방을 결정한 키요스 회의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일단 치쿠젠노카미는 장성한 오다의 아들들인 노부타카나 노부오를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없다는 점을 파악했다. 그래서 혼노 사의 변으로 죽은 장남 노부타다의 유아(3) 산보시를 적자라는 이유로 옹립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다 히데요시의 말장난이고, 꼬맹이를 앞세워 자신이 다 해 먹으려는 속셈이었다. 다음 권에서 대결하게 되는 시바타 카츠이에의 저항을 가볍게 물리치고, 오다 가의 영지와 죽은 미츠히데의 영지까지 야마자키 전투에서 자신을 도운 가신들에게 나눠 주는 논공행상까지 일사천리로 마무리짓는 히데요시. 일본을 통일하면 모든 게 자신의 것이 되는데, 쩨쩨하게 푼돈이나 코딱지만 한 영지 따위에는 관심 없다는 투의 시크함이 돋보였다.

 

하시바 히데요시가 킨키에서 천하를 집어 삼키는 포석을 까는 동안, 간난신고 끝에 본국으로 귀국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서쪽의 대란에 참전해서 천하를 다투는 대신 내실을 다지기 시작한다. 이미 미카와, 토토우미 그리고 스루가의 태수였던 이에야스의 다음 목표는 카이와 시나노였다. 타케다 가문이 멸망하고 난 뒤, 점령군으로 들어온 오다 가의 대리 성주 카와지리 히데타카는 카이 무사들의 씨를 말리는 정책으로 민심을 일었다. 노부나가의 사망으로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을 때, 연이은 오판으로 대국을 그르쳐 버렸다. 결국 카이 겐지의 영지는 모두 이에야스가 접수하는 것으로 끝났다. 앞서 죽은 타케다 신겐은 미카타가하라에서 자신에게 대패한 이에야스가 미래에 자신의 영지를 접수하리라고 꿈이나 꾸었을까 싶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지도자가 불시에 죽어 버리자, 정국은 다시 혼돈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아마 오다 노부나가가 살아 있었다면, 천하인의 꿈도 꾸지 못했을 오와리 나카무라 출신 코자루키노시타 토키치로가 유력한 다이묘로 부상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인내의 캐릭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국의 소용돌이에서 조금 빗겨난 동부에서 자신의 기반과 실력을 기르면서 대망을 꿈꾸고 있었다. 한 박자 쉬고, 다시 하시바 히데요시와 시바타 카츠이에가 자웅을 겨룰 다음 편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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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20-08-20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잼난 책, 읽어보고 싶은 책 읽으셔서 너무 부럽다는...레삭 매냐님 잘 지내셨죠? 오랜만입니다 늘 건강 유의하소서!!!

레삭매냐 2020-08-20 16:53   좋아요 1 | URL
원체 긴 대하소설이라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네요.

오늘까지 12권 읽었습니다.
앞으로 20권 남았네요 ㅋㅋㅋ

수상한 팬데믹 시절, 건강 조심
하세요.

카알벨루치 2020-08-20 16:59   좋아요 1 | URL
32권입니까? 우아...대단한 도전!!!

단발머리 2020-09-05 0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진짜 읽고 계시니 정말 대단합니다.
저의 최고 기록은 토지 21권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평생의 자랑입니다. 레삭매냐님 화이팅입니다!!!!!

레삭매냐 2020-09-05 10:18   좋아요 1 | URL
이번 주에 대망의 7할 능선을
넘어섰습니다.

단발머리의 기록인 21권과 일단
은 타이네요.

제가 지금 3부 22권을 읽고 있거
든요. 선선하이 책 읽기 좋은 계절
이네요.
 
도쿠가와 이에야스 7 - 제1부 대망 7 불타는 흙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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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가문의 운명을 걸고 무모하게 나섰던 카이의 호랑이 타케다 신겐과의 대결은 이에야스군의 참패로 끝났다. 타케다가 작정하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시한 교토 상경작전에 걸림돌이 되는 도쿠가와 부대를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거둔 대승의 승기를 몰아 하마마츠를 공격했다면 천하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야스가 누구던가. 13년이라는 기나긴 인질 생활을 하면서도 천하를 품겠다는 야망의 발톱을 감추고 때를 노리던 기회주의자가 아니던가. 그는 전장에서 수많은 가신들이 주군을 대신해서 목숨을 잃는 동안, 타케다군에게 패주해서 쫓기던 와중에 마상에서 똥을 싸고서도 볶은 된장이라며 퉁을 치던 노련한 인물이었다.

 

사방의 적으로 둘러싸인 오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를 도울 여력이 없었던 모양이다. 당장 자신이 살기도 바쁜 마당에 누굴 돌아본단 말인가. 그러던 차에 타케다 신겐의 병사(소설에서는 적군의 총포 암살로 묘사된다)는 도쿠가와 가문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카게무샤를 동원해서 주군의 죽음을 교묘하게 감춘 타케다 군은 대승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전장에서 자신들의 영지인 카이/시나노로 철수한다.

 

패배의 상처를 보듬고, 신겐의 가독을 승계한 카츠요리의 진격에 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이에야스는 이번에는 내부로부터의 적과 싸워야 했다. 주범은 다름 아닌 자신의 정실로 후계자 노부야스의 생모였던 츠키야마(세나히메)였다. 오다의 부인 노히메나 히로타다의 오다이와는 달리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했던(어쩌면 시대를 앞서 나간 여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츠키야마 부인은 이에야스의 가신 오가 야시로는 물론이고 카이에서 파견한 스파이 의사 겐케이와 연달아 통정하면서 마츠다이라 가문의 뿌리를 뒤흔든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츠키야마는 당대 여자들과 달리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장부가 아니었을까. 일본의 센코쿠 시대의 봉건적 질서는 여자들에게 무한한 희생을 요구했다. 성주의 정책에 따라 원하지도 않는 적과 결혼을 해야 했으며, 자신 배신을 방지하기 위한 자체가 인질이었다. 치열한 농성전에서 패하면 원하지도 않는 자결을 강요당했다. 그런 시절에 남편의 부하와 바람을 피우고, 더 나아가 자신을 배신한 남편의 파멸을 획책하는 그런 센코쿠 팜므 파탈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그녀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럴 거면 이에야스가 와이프에게 잘했어야지.

 

주군의 부인과 간통한 남자 오가 야시로는 이제는 아예 대놓고 카이와 내통해서 마츠다이라 가문의 거성인 오카자키를 타케다 카츠요리에게 넘기겠다는 음모를 세운다. 아버지의 역량에 못미치는 노부야스의 결정으로 카이의 스파이 겐케이는 제거하는데 성공했지만, 카이와의 대결을 앞두고 철석같은 단결을 중시하는 오카자키에 이런 이질적인 요소가 등장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절약을 강조하면 주군부터 호의호식하지 않고 내정에 치중하고, 전장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우던 이에야스였지만, 마누라 복은 없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후계자인 노부야스 그리고 카메히메를 낳은 츠키야마가 자신을 멸망으로 인도할 함정을 파고 있을 줄이야.

 

이야기의 다음 무대는 아사이 가문이 다스리는 오이의 오다니 성 전투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오다 노부나가의 누이인 오이치를 부인으로 삼은 아사이 나가마사는 오다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아버지 히사마사 때문에 천하의 대세를 그르치고 그놈의 의리 때문에 가문을 멸망으로 몰아넣을 그런 결정을 내린다. 오다와의 대결. 오이치의 오빠인 노부나가는 당연히 여동생과 세 명의 조카들을 구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이미 죽음을 각오한 아사이 부자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미 정벌의 대업을 맡은 키노시타 히데요시에게 혈육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주군 오다를 위해 언제나 사지를 마다하지 않고 뛰어든 히데요시는 어느새 5만 석의 당당한 다이묘가 되었다. 그는 절세미인이라는 오이치를 사모하는 마음에서였을까, 기교를 발휘해서 무모한 결사항전을 외치는 나가마사를 설득해서 오이치 모녀들을 사지에서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결국 에치젠의 아사쿠라에 이어 오미의 아사이도 제압한 오다 노부나가는 명실상부한 패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어진 논공행상에서 오다는 일개 아시가루의 아들인 히데요시를 오미의 영지를 그대로 계승하게 해서 자그마치 18만 석 성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동생인 오이치도 부탁하지만,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그의 출세를 시기하던 오다 일족의 견제와 질시를 받게 될 것이라며 정중하게 사양한다.

 

어쩌면 오다의 뒤를 이어 센코쿠 시대를 마감하고 관백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히데요시는 이미 그 때부터 큰 꿈을 꾸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동안 오다와 도쿠가와 양웅으로 전개되던 줄거리에 히데요시라는 효웅이 추가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한편, 카이의 카츠요리는 도쿠가와를 상대로 지속적인 전쟁을 도발한다. 나가시노의 오쿠다이라 가문은 타케다 군을 안심시키기 위해 성주의 막내아들 센마루와 작은 성주의 가짜 부인 오후까지 보낸 뒤, 도쿠가와에게 귀순한다. 죽은 아버지의 압박에 시달리던 카츠요리는 사람을 살리는 전쟁이 아닌 인질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죽음의 전쟁 전략을 구사한다. 이에야스가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카츠요리의 아버지 신겐에게 대패를 당하고, 전쟁의 실질을 배웠다면 역설적으로 대승을 거둔 타케다 가문의 카츠요리는 예전에 준비도 갖추지 않은 채 운명을 시험해 보겠다고 미숙한 상태로 전투에 나선 이에야스의 길을 걷는다.

 

기세 좋게 15천의 군세를 몰아 하마마츠 공략에 나선 카츠요리 부대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 도쿠가와 군의 농성전을 상대하게 된다.

 

타케다 신겐의 뒤를 이은 후계자 카츠요리의 한계는 분명했다. 훌륭한 리더는 자신의 자존심만 앞세울 게 아니라, 쓰디쓴 가신의 고언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방을 적으로 만든 신겐의 정책은 전국을 제패할 수 있는 무력이 뒷받침되고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때만 가능했다. 뛰어난 리더였던 신겐이 사망하자, 사방의 적들이 카이 타도를 외치면서 승냥이떼처럼 달려들었다. 이런 위기 상황을 젊은 군주가 타개할 수가 있었을까. 카이 24무장 중의 한 명인 야마가타 사부로베에 마사카게가 젊은 주군에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의 후퇴는 전혀 수치가 아니라고 하면서 카츠요리를 설득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아버지 신겐처럼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때를 기다릴 줄 몰랐던 것이 카츠요리의 결정적 패착이었다.

 

이번 편에서도 역시나 야마오카 소하치 작가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비로소 수십 년간의 전쟁 상태를 외부의 힘으로 강제로 끝내게 된 일본 사회에 도래한 평화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그런데 그 전쟁을 시작한 당사자가 누구였더라? 일본의 중세나 현대에 벌어진 전쟁 모두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권력자들 혹은 당대 실력자들이 벌인 끝없는 전쟁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사이 가문의 영주들인 히사마사나 나가마사도 명분도 없는 이미 멸문한 아사쿠라와의 의리 타령을 하다가 백성들과 가족들을 전화 속에 끌어넣지 않았던가. 영주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지킨답시고 배를 가르면 그만이었지만, 나머지 백성들은 성을 탈취한 적군의 약탈과 살인 방화를 그대로 감당해내야 하지 않았던가.

 

작가의 평화를 향한 염원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그전에 전쟁에 책임이 있는 이들의 사죄 대신 부처님의 신벌 타령이나 전쟁의 업화라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문제의 핵심을 호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으면서 현상에 대한 일상적 관찰보다는 원인과 이유를 도출하고 비판하는 능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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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6 - 제1부 대망 6 미카타가하라 전투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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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하자마 전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긋지긋한 인질생활을 끝내고 비로소 독립하게 되는 극적인 전환의 계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츠다이라 가문이 굳건한 기반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가장 유력한 패자였던 이마가와 집안이 몰락했을 뿐, 동맹관계이긴 하지만 여전히 이에야스에게는 형님 같은 이웃 오와리의 오다 가문이 있었고, 곧 대결구로도 접어들게 될 카이의 타케다 신겐이 그야말로 호랑이 같이 버티고 서 있었다.

 

천하포무라는 구호로 교토 상경에 나선 오다 노부나가는 구습을 인정하지 않는 파격적인 행보로 센코쿠 시대의 패자로 등장하게 된다. 유랑신세였던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무로마치 바쿠후의 15대 쇼군으로 세우면서 대의명분까지 얻게 된 킷포시. 하지만 다혈질의 난폭한 성정의 킷포시는 필연적으로 사방에 적을 만들게 된다. 영웅이라면 당연히 이런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일까. 쇼군 요시아키는 자신을 꼭두각시로 세우고 전국을 좌지우지하는 오다의 부상에 위협을 느낀 전국 다이묘들에게 오다 토벌령을 내린다.

 

한편, 오카자키에서는 또다른 격랑이 일고 있었다. 남편 이에야스에게 격렬한 반감을 품은 츠키야마 마님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만 것이다. 항상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발생하는가 보다. 과연 수신제가에 실패한 이에야스가 이 난세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천하에 의리의 싸나이라는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에 반기를 들고 대항에 나선 아사쿠라와 아사이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 오미로 향한다. 주공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오다와 도쿠가와 사이의 열전이 오가고, 미카와와 토토우미의 고작 60만 석 영주가 240만 석 영주인 오다의 긴키 정벌을 위해 싸우겠다는 주장을 냉철한 오다는 결국 받아들인다. 다른 건 몰라도, 이에야스의 배포 하나는 천하의 오다도 인정한 모양새다. 마츠다이라 가신단의 뛰어난 활약으로 아사쿠라 본진 기습에 성공한 도쿠가와-오다 연합군은 대승을 거둔다.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참전한 전투 가운데 가장 처참한 패전으로 기록된 타케다 신겐과의 미카타가하라 전투의 전모다. 센코쿠 시대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용장으로 카이와 시나노의 지배자 타케다 신겐이라는 효웅이 있었다. 전투에서는 신출귀몰하는 전략을 장기로 하고, 내정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카이의 성주 신겐. 이웃한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켄신과 대결하는 바람에 중앙 진출의 시기가 늦어졌다.

 

16세에 첫 출전해서 30여 년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카이의 호랑이에게는 센코쿠 시대 전국 최강이라는 기마대와 24무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용장들이 있었다. 풍림화산(風林火山)이라는 대장기를 앞세운 신겐의 부대는 패배를 모르고 전장을 누볐다. 50대의 노련한 장수가 된 신겐은 자신의 시간이 무르익길 기다리고 있었다. 신겐에게 이에야스는 이제 전장터에 출전한 애송이 같은 존재였다. 사가미의 호죠 가문과 동맹을 맺고, 카가와 엣츄의 잇코 종도를 종용해서 후방의 우에스기 켄신을 견제하는데 성공한 신겐은 마침내 용의주도하게 준비해온 상경 작전을 개시한다.

 

신겐이 앞길을 가로 막는 적들을 그대로 때려 부수고 달려 나가는 그런 스타일이라면, 그의 후계자 카츠요리는 전장에서의 우직한 승부보다는 적의 약점을 파악하고 내부자멸을 꾀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고나 할까. 이에야스의 약점이 오카자키에 있는 츠키야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카츠요리는 스파이 의사 겐케이와 아야메를 파견해서 오카자키 내전의 자멸을 유도한다. 노히메나 오다이에게는 먹히지 않을 엉성한 계획이 이마가와 가문에서 공주처럼 자란 츠키야마에게는 유효했던 모양이다.

 

마침내 서방으로의 진격을 개시한 타케다 3만 대군의 첫 번째 장애물은 바로 하마마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그는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하고 싶었겠지만, 그보다 한 수 위였던 기후의 오다는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처한 동맹군에게 보낼 원군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자신 역시 사방의 적으로 에워싸여 고작 3,000명 정도의 응원군 밖에 지원할 수가 없었다. 도쿠가와 역시 본성이 오카자키를 비롯해서 하마마츠 사이의 요시다 성까지 지켜야 했기에 타케다 군을 저지할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8,000명 정도의 병력으로 타케다의 기마군단을 저지할 방법은 전무했다.

 

그렇다고 천하의 이에야스가 자신이 웅거한 하마마츠 성을 공략하지 않고 조용히 서방으로 진격하는 타케다 신겐을 그냥 보내기에는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신들은 하나 같이 하마마츠 성에서 농성할 것을 주장했으나, 이제 삼십대가 된 이에야스는 가신들의 충성 어린 조언을 뒤로 하고 타케다 군과 싸울 것을 결정한다. 농성을 예상했던 도쿠가와 군이 출병했다는 말을 들은 타케다는 이에야스가 죽을 생각으로 전투에 나선다는 점을 간파했다. 역시 고수다운 안목이 아닐 수 없다.

 

절대열세의 병력으로 적군을 포위해서 섬멸하는 학익진으로 타케다의 강병들을 상대했다. 반대로 타케다 군은 촘촘하게 짜인 어린진으로 도쿠가와 군의 엉성한 포위망을 타격하고, 일격에 도쿠가와 군을 박살내 버렸다. 어리석은 주군 이에야스는 전장에서 전사할 각오로 적군에게 달려들었지만, 충성스러운 미카와의 가신들이 그야말로 몸빵으로 자신들의 주군을 지켜냈다. 한 순간의 판단착오로 수많은 충성스러운 가신들이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말을 타고 하마마츠 성으로 도주하던 이에야스는 얼마나 다급했으면 마상에서 똥까지 쌌을까.

 

이후의 경과는 승기를 탄 타케다 군이 그대로 밀어 붙이면 함락시킬 수 있었던 하마마츠 성을 이에야스와 가신들은 계교로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가문이 박살날 누란의 위기에서도 역시나 특유의 침착함을 발휘해서 패전의 상처를 보듬고 오카자키 성을 수리하며 후일을 도모하는 이에야스. 도쿠가와를 패주시키고, 이제 본격적으로 오다 노부나가를 상대하겐 된 타케다 신겐은 대승으로 방심했는지 방심한 틈에 그만 적의 총포에 저격당해 죽는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아무래도 작가의 소설적 상상력의 소산물이나 혹은 전승이 아닐까 싶다. 신겐은 출전에 앞서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역사에 알려진 대로 지병으로 병사한 게 아닐까 싶다. 용의주도했던 신겐은 카게무샤(그림자 무사)를 이용해서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대신, 주도면밀하게 다시 코후성으로 퇴각한다. 적들은 그의 죽음을 3년 동안이나 몰랐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자신의 후계자 카츠요리가 자신만큼의 그릇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지도 모르겠다.

 

카이에서 파견한 스파이들이 오카자키 성에 잠입해서 츠키야마의 내전을 휘젓는 것으로 나머지가 장식된다. 아버지 이에야스와는 달리 귀공자로 자란 노부야스는 전쟁터의 무서움도 모른 채, 그저 출전해서 공을 세울 것만을 기대한다. 가신들의 충언을 듣는 데서도 아버지와의 차이점을 명징하게 드러내며 조급증을 가진 애송이로 그려진다. 아마 카이의 세작들이 활동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이 바로 오카자키의 그것이었다. 츠키야마와 불륜을 저지른 오가 야시로는 보다 큰 꿈을 꾸며 오카자키를 카이의 카츠요리에게 팔아먹을 궁리를 하는데...

 

다시 한 번 야마오카 소하치는 삶의 덧없음에 대해 명멸해 가는 가문들과 개인들의 운명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깨닫게 된 가신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배신을 도모하는 장면도 그렇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도 무사의 자존심을 세우겠다고 무모하게 타케다의 기마군단에 돌격하는 이에야스의 모습도, 질투에 눈이 멀어 일족을 멸문으로 이끌지도 모를 그런 위험천만한 도박에 나서는 츠키야마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버무려지니 어찌 재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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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8-10 1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이에야스지만, 당시 도망쳐간 성 안에서 자신의 처참한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면서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였기에, 이후에는 큰 패배없이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한편, ‘제가 齊家‘를 하지 못해 가정에서 점점 더 커지는 불화의 씨는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이에야스의 모습을 통해 전후 일본에서 ‘가정에는 소홀해도 직장에 충성하는 아버지‘ 상이 확립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선뜻 두 번 손이 가질 않는 작품이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예를 들면, 츠키야마 부인 또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관점으로 읽으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레삭매냐 2020-08-10 22:06   좋아요 1 | URL
저녁에 뼈해장국을 뜯다가 문득...
그 생각이 들었었는데 겨호님이 예리하게
짚어 주셨네요.

야마오카 작가가 일부러 츠키야마 마님을
부정적으로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어쩌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현대여성의 전형
같아 보이는데, 전후 일본에서는 환영받지
못한 여성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산업역군으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
편을 대신해서 가정을 지키는 현모양처
의 이미지.

오다를 잡은 아케치 미쓰히데까지는 도달
하지 못했지만, 전통적 시선에서 탈피해서
색다른 시선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제임스 볼드윈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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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흑인 청년이 순진한 푸에르토리코 여자를 성폭행했다. 소설의 화자는 18세 소녀 티시(클레멘타인). 티시의 미래 남편감인 포니(알론조 헌트)는 위의 죄목으로 툼스(맨해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이야기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에 벌어진 일들을 역추적하고, 티시와 그녀의 가족들이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 그리고 아직 미혼인 티시는 포니의 아이를 가졌다. 뉴욕의 가난한 가정 출신들인 티시와 포니는 십 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랑의 계보를 자랑한다. 포니의 엄마는 독실한 신자로 포니의 두 누나들과는 다른 결을 가진 외아들이 처한 문제의 원흉으로 티시를 지목한다.

 

교도소에 가서 자신의 임신 소식을 알리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린 티시. 티시의 부모는 사돈에게도 그 소식을 알려야 한다며 그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 뒤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은 21세기 어느 나라의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그런 막장을 연출한다. 마음씨 착한 티시와는 다른 언니 어네스틴은 동생에게 막말을 퍼붓는 유사 시집 식구들에게 대거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도 아주 쎈 방식으로.

 

포니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엔지니어 남편을 따라 본토로 이주한 빅토리아 로저스를 성폭행했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있다. 모든 정황이 그가 무죄라는 점을 가리키고 있지만, 그를 체포한 인종차별주의자 벨 경관과 로저스 여사의 확실하지 않아 보이는 범인 지목으로 포니는 꼼짝 없이 유죄 판결을 받고 교도소 생활을 할 상황이다. 어네스틴의 주선으로 포니의 무죄방면을 위해 선임된 헤이워드 변호사에 대해서도 티시는 못미더워한다. 2020년에도 억울하게 흑인들이 백주대낮에 억울하게 죽어가는 마당에 50년 전에는 오죽했을까.

 

툼스에 갇힌 포니 일병 구하기는 두 가지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포니와 같이 교도소에 갇힌 대니얼이 증언 번복을 하지 않게 하는 것과 푸에르토리코의 로저스 여사 찾기다. 전자도 쉽지 않은 미션이지만, 후자는 더더욱 어렵다. 이런 불가능한 미션 수행에 나선 사람은 바로 티시의 엄마 샤론이다. 역시 어려울 때는 누구보다 가족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의 법칙이라는 걸 1974년작 <빌 스트리트>를 통해 깨닫게 된다.

 

포니와 티시가 아파트를 구하던 와중에 토마토를 사러 간 티시가 어느 백인 건달에게 성추행 당한다. 그리고 자신의 여자를 지키기 위해 주먹질을 한 포니를 폭행죄로 체포하려 한 게 바로 벨 경관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온 주인 아줌마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지만, 대중 앞에서 유색인종(person of color)에게 개망신당했다고 생각한 벨 경관은 복수를 다짐한다. 결국 포니가 툼스에 갇히게 된 건 바로 그런 악연에서 유래된 것이다.

 

주인공 티시는 이제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새 생명을 세상에 내보내야 하는 고귀한 사명과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이 사랑하는 포니를 툼스에서 구해내야 하는 이중 임무를 지니게 되었다. 여성이야말로 세상의 구원자일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생각을 나는 여기서 읽는다. 그리고 남성 작가가 향수 가게에서 일하는 임산부 티시가 초보엄마로 경험하게 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이렇게 디테일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경제적 부담 역시나 주목해야 하는 지점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아이 아빠인 포니는 지금 교도소에 갇혀 있다. 자신도 포니의 면회와 출산 준비를 위해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 추가적으로 포니의 변호 비용 그리고 엄마 샤론의 푸에르토리코행 모두 돈이 들어가는 일들뿐이다. 그래서 헌트 집안의 프랭크와 티시의 아빠 조지프는 추가근무도 그리고 사소한 물건들의 위치이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두가 포니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다. 헌트 부인과 포니의 누나들인 에이드리엔과 실라를 빼놓고 말이다. 신앙심에 도취된 헌트 부인은 포니와 티시의 사랑을 음행이라고 부른다. 더 이상의 막장으로 치닫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흑인 청년은 교도소에 마침내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적응을 시작한다.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슬을 절대로 줄 수 없다는 선언도 뼈를 때린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인종주의 문제는 미국 사회가 품은 아킬레스 건으로 그리고 언제 발화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이 작동하고 있다. 인종주의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극적인 전환이 필요한 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 나는 회의적이다.

 

내가 읽을 볼드윈 선생의 다음 작품은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일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작년에 나온 <조반니의 방>도 만나보고 싶다.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 그것은 언제나 즐거움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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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10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진진하군요.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엔 당연한 것은 없는 건데, 그것에 길들여지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되죠. 인종주의도 그렇죠. 백인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건데요...

레삭매냐 2020-08-10 11:48   좋아요 1 | URL
2018년에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해서 배리 젠킨스라는 감독이 영화
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만나 보고
싶네요.

오랜 세월 구축되어온 인종주의
를 부수는 건 난망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