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지
조세핀 하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녹색광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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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루이 말 감독이 연출을 맡고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슈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 <데미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조세핀 하트의 원작 소설로 <데미지>를 만나게 됐다. 작가는 파멸의 에로티시즘과 채워지지 않은 갈망에 대한 서사의 파편들로 독자들에게 '데미지'를 선사한다.

 

소설 <데미지>의 줄거리는 정말 소설스럽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중산층 가장이자 의사, 국회의원인 스티븐 플레밍의 삶에 어느 날 재앙의 기운이 내뻗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아들 마틴의 약혼녀 안나 바턴.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삶을 살아온 스티븐에게 안나는 파멸의 안내자였다. 이미 영화를 통해 알고 있던 이야기였지만, 조세핀 하트가 들려주는 소설의 플롯은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이었다. 더 큰 문제는 스티븐이 안나와의 관계가 플레밍 집안에 돌이킬 수 없는 화근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안나에게 빨려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재난에 가까운 결말이 예견된 그리스 비극의 재현이라고 해야 할까.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은 도덕의 굴레에서만 가능한 걸까?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와 관계를 갖는단 말인가. 도대체 이 스티븐이란 작자는 양심과 도덕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인가. 스티븐만큼이나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이 바로 안나였다. 물론 어려서 사랑하는 오빠 애스턴의 비극적 죽음과 그에 따른 부모의 이혼 등 그녀가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가 남달랐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한 집안의 근간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버리는 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스티븐과 안나는 만나는 순간부터 위선이라는 가면을 써야 했다. 사랑하는 아내 잉그리드, 전도유망한 청년 저널리스트 마틴, 역시 빼어난 재능의 샐리 등 삶의 오점 하나 보이지 않는 중산층 가정에 외도와 파격적 불륜의 그림자가 엄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종착역에는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관계의 파탄이 대기 중이다. 조세핀 하트는 여성 특유의 세심한 감성으로 일그러져 가는 부부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잡아낸다.

 

스티븐은 위선자다. 철저하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로 위장한 스티븐은 아들의 연인을 탐하는 사악한 욕망에 사로잡혀 영원에 존재한 단 한 번의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에게 안나는 자기 욕망의 대상이고, 노예일 뿐이다. 일반적 상식의 사랑을 파괴하다 못해 일탈의 극치를 보여주는 소설 <데미지>를 읽으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사랑을 연민의 시선으로 보기엔 솔직히 말해서 역부족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기분이 얼떨떨하다. 조세핀 하트는 <데미지>로 충격적인 데뷔를 했다고 한다. 스티븐과 안나의 파멸적 사랑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작품 자체에 대해서도 평가를 유보해야 하는 게 아닌지 얼얼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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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bell 2026-06-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에는 화자의 이름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책 읽으신게 맞나요?

레삭매냐 2026-06-01 12:31   좋아요 0 | URL
무명의 화자라는 표현을 쓰기가
그래서 그냥 동명의 영화 주인공
의 이름을 빌어 사용했습니다.
 
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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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신의 작가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를 읽었다. 보통 빠른 호흡으로 책을 읽곤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며칠 동안 <브로덱의 보고서>를 들고 있으면서 예전과는 다른 느린 호흡의 독서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책에 담긴 내용이 무거우면서도 워낙에 진중한 탓이라고나 할까? 전쟁과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브로덱에게도 세상살이란 역시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브로덱의 보고서>는 분명히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어쩐 이유에서인지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아마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시대적 배경과 함께 독일의 변방이나 혹은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이 배경이 아닐까 하는 추론 정도를 할 따름이다. 가끔 등장하는 지명으로는 도저히 구체적인 공간을 도출해낼 수가 없었다.

 

소설은 처음에 주인공 브로덱이 그 일과는 무관하다는 말로 시작한다. 도대체 그 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브로덱이 사는 마을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안더러를 살해한 일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을 소설을 읽으면서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제목에도 나와 있는 보고서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질문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어느 날 저녁, 마을의 슐로스 여인숙에서 벌어진 모두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사건을 브로덱은 에라이그니스”(방금 일어난 일)이라는 요상하기 짝이 없이 말로 에둘러 표현한다. 마을의 지원을 받아 대학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브로덱은 관청 소속으로 동식물에 대한 상태, 강의 수위, 강수량과 강설량 등 오만가지 것을 기록하는 일로 먹고산다. 에라이그니스가 일어나고 나서, 시장인 오어슈비어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이제는 존재가 사라진 안더러에 대한 보고서를 쓰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무조건 그들의 말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브로덱은 그들이 원하는 기록이 담긴 보고서뿐만이 아니라 진짜 자신이 보고 들은 안더러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브로덱의 보고서>는 현재 진행 중인 에라이그니스의 정황과 더불어 브로덱 과거의 플래시백으로 뒤섞이면서 독자를 흡입한다. 부모를 잃은 브로덱은 페도린과 함께 오래전에 마을에 흘러 들어와 정착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브로덱의 입에서 어느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수용소 시절의 끔찍한 기억은 필연적으로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수용소 간수들의 비인간적인 폭력과 부당한 대우를 참을 수 없었던 인간은 모두 죽었다. 사실 그러지 않고서도 마치 러시안 룰렛을 하는 것처럼 삶과 죽음이 종잇조각 같이 나부끼는 순간에도, 브로덱은 고향에 남겨 두고 온 사랑하는 에멜리아를 생각하며 죽음의 공포에서 살아남아 귀향한다. ‘똥개브로덱은 그렇게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수모를 견뎌냈다. 서사가 계속되면서 외부인(alien)에 의해 그가 어떻게 해서 수용소에 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공포의 연장선에 서 있다. 죽은 디오뎀의 글을 통해 알게 되는 진실은 고통 그 자체다.

 

주변인들의 날카롭고 삼엄한 감시를 뚫고, 브로덱은 자신만의 기록을 계속한다. 브로덱보다도 더 철저하게 이방인이었던 안더러는 놀랍게도 마을 사람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치부와 비밀을 그린 초상화와 풍경화 전시회를 기도한다. 마을의 모든 남자가 모인 가운데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림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전시회에 초대된 이들은 경악해 마지않는다. 정말 누구나 다 잊고 싶어 하던 추악한 과거의 진실이 이방인 안더러의 손끝을 통해 재현된 것이다. 그들이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 ‘안더러의 운명은 바로 결정지어졌다.

 

필립 클로델은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면서 연명을 해야 했던 수용소 생활의 비참했던 과거를 고향으로 돌아온 브로덱의 삶과 동일 선상에 올려놓는다. 더 이상 죽음이라는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지만,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마을 사람들의 협잡은 혐오스럽기 그지없다. 전쟁 당시 마을에 주둔했던 침략군 분대장 불러가 들려준 나비 렉스 플라메이야기는 나치가 주장하던 인종주의 이론의 변종이다. 마을 사람들은 정화하라는 침략군의 요구에 브로덱과 프리프만을 프렘더로 몰아 그들에게 넘겨준다. 이런 인간적 배신은, 훗날 안더러에게 근원을 알 수 없는 증오와 분노를 폭발시킨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 소설에서 소개된 정화의 밤”(크리스탈나흐트)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시대적 배경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해준다. 필립 클로델은 마치 독자가 직접 그 끔찍했던 밤의 사건을 목격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준다. 나치에 의해 선동된 보통 사람들의 프렘더에 대한 증오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훗날 상상을 초월하는 대량학살의 단초가 되었는지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를 통해 한나 아렌트가 일찍이 자신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역설했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어떻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구현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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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을유세계문학전집 149
마이클 온다치 지음, 김영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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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시사회로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만났었다. 이 영화의 원작이 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사실 너무 오래 전에 본 영화라 주인공 알마시 백작 역의 랄프 파인즈가 화상을 입고 붕대 감은 모습만이 기억났다. 좀 더 기억을 되살려 보니 북 아프리카 사막에서 죽어가는 연인 캐서린을 안고 동굴로 가던 장면도 떠올랐다. 물론 원작 소설을 읽어 보니, 영화하고는 많이 달랐다.

 

스리랑카 출신 캐나다 시인 마이클 온다치가 1992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로 맨부커상에 빛나는 작품이다. 영화는 4년 뒤에 고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되었고, 아카데미상을 무려 9개나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소설은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로 지독한 화상을 입고 거의 빈사의 상태에서 베두인 족에게 발견된 영국인 환자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마이클 온다치는 실재했던 헝가리 탐험가 알마시라는 인물에게서 주인공 캐릭터의 모티프를 따왔다고 한다.

 

확실히 영화와 소설을 비교하면서 보니 영화보다 소설이 담아낸 이야기들이 더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영화는 소설에서 다룰 수 없는 비주얼적인 측면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헝가리 출신으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삶의 나침반으로 삼아 사막을 누비는 자유인 라디슬라우 드 알마시, 사랑하는 이들을 전쟁에서 잃은 트라우마를 가진 간호병 해나, 도둑이자 스파이로 엄지손가락을 잃고 모르핀 중독에 빠진 도둑 데이비드 카라바지오 그리고 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공병 출신 폭탄 처리전문가 시크교도 키르팔 싱이 북쪽으로 퇴각하는 독일군과의 전투가 한창인 이탈리아의 파괴된 빌라 산 지롤라모 수도원에 모이면서 시공을 오가는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보다 극적으로 해나의 처지를 설명하기 위해 전장의 동료 잔 그리고 연인을 전쟁에서 잃은 것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상실한 스무살 내기 해나는 역시 과거의 기억과 이름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영국인 환자의 치료에 모든 것을 건다. 어쩌면 빌라 산 지롤라모 수도원은 상실의 시대를 직면한 이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영국인 환자 알마시의 지혜의 숲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거의 모든 문학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 영화에서는 음악에 대해서도 깊은 조예가 있다는 것을 카라바지오와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베니 굿맨이 연주한 <왱 왱 블루스>를 맞추는 것을 보고 카라바지오는 감탄한다.

 

두 손가락을 잃은 카라바지오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보다 영화에서 더 극적으로 등장한다. “무스라는 암호명으로 암약하던 영국 스파이였던 카라바지오는 치열한 격전 끝에 영국군의 키레아니카 지역 중요기지였던 토브룩을 함락한 롬멜 아프리카 군단의 포로가 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두 엄지손가락을 잃는 장면이 나온다. 카라바지오 역할의 윌렘 데포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소설과 달리 알마시가 연인 캐서린을 살리기 위해 독일의 아프리카군단에게 넘긴 지도에 대한 정보 때문에 자신이 엄지를 잃게 되었다는 설정이 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서 책의 독자와는 다른 타겟 오디언스를 상대로 한 각색에 공감할 수가 있었다.

 

다른 주인공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맡은 킵에 대해서 영화에서는 아쉽게도 잘 다루어주지 않은 느낌이다. 소설에서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 싱은 펀잡 출신으로 독일과의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전쟁에 왜 그는 목숨을 걸게 된 걸까. 게다가 그에게 아버지 같았던 스승 서퍽 경도 폭발물 처리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목숨을 잃지 않았던가.

 

나치 독일과 싸우기 위해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식민제국 영국인들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피지배계급과의 동화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킵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연합군에게 밀리면서 북쪽으로 계속해서 퇴각 중인 독일군은 창의력 넘치는 부비트랩과 각종 지뢰로 북진하는 연합군의 진격을 효과적으로 늦추는데 성공했다. 사실 처칠이 구상한 유럽의 부드러운 아랫배를 공략해서 서진하는 스탈린의 공산주의 위성국가 건설을 최대한 막아 보겠다는 전략은 독일의 이탈리아 전선 사령관 알베르트 케셀링이 구축한 삼중 방어선으로 막아낸, 특히 고딕라인 앞의 지연전술로 무산되어 버렸다.

 

, 이제 알마시와 캐서린의 본격적인 로맨스에 대해 이야기해 볼 차례인가. 영화에서는 둘 사이의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 보이지 않는데 자그마치 15살 차이나 되는 남녀가 그야말로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런 장면은 역시 아무래도 소설보다는 영화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소설에서 보다 플라토닉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앤소니 밍겔라 감독은 처음의 냉랭한 사이였지만 점점 열정으로 바뀌어가는 알마시와 캐서린에 대한 관계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짚어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였던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사막의 캐러밴에서 탐험가들이 시구 대결을 하고,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유명한 연애 이야기를 낭송하면서 불쑥불쑥 등장하는 연애의 감정 표현은 정말 대단했다. 소설과 영화의 장면들을 대조해 보는 재미는 정말 대단했다. 캐서린의 남편 제프리 클리버튼 역을 30대의 콜린 퍼스가 맡았었다는 점도 미처 몰랐었다. 중년 넘어서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배우의 청년 시절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사막의 모래 폭풍처럼 알마시, 해나, 카라바지오와 킵이 휘말린 전쟁 역시 그들의 삶을 앗아가 버렸다. 폐허가 되어 버린 성과 속의 교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원에서 그들은 치유의 시간을 맞는다. 킵이 해나의 스무 번째 생일을 맞아 준비한 45개의 달팽이집에서 타오르는 불빛에 대한 묘사는 정말 아름다웠다.


* 이건 그냥 여담으로 나의 추측인데, 아마

책의 판권 개정이 8년마다 되는 게 아닌가 싶다.


1997년에 한 번, 그리고 13년 뒤인 2010년에

그리고 2018년에 그리고 다시 다시 8년이 지

난 올해 재개정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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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루이 스카의 탈출기 이야기
장 루이 스카 지음, 이인섭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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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의지에서 잇달아 신학과 성경에 대한 책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장 루이 스카 사제의 <구약성서 입문>에 이어 <출애굽기>에 해당하는 같은 저자의 <탈출기 이야기>를 다 읽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출애굽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성서 전문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차원이 달랐다.

 

저자 장 루이 스카 사제는 말미에 문학, 음악 그리고 영화로 변용된 <엑소더스>의 확장판들을 알려 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의 관심을 끈 작품은 바로 2014년에 발표된 리들리 스콧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었다. 영화 <엑소더스>는 화끈한 전투씬으로 시작해서 말미에 갈대 바다 대탈출로 마무리를 짓는다. 정말 스펙터클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탈출기 이야기>에서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의 근간이자 정체성을 이루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에 초점을 맞춘다. 70명 정도로 구성된 야곱 일가의 이집트 거주 이래, 400년이 지난 시점에서 히브리 사람들은 이집트 파라오의 종살이 신세가 됐다. 요셉이 총리로 이집트를 구원하기도 했지만, 그건 이마 정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의 파라오는 노동에 동원될 수 있는 장정만 60만에 달하는 히브리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거대한 토목사업들을 진행했다.

 

여호와는 바로 이런 상태에 놓인 히브리 사람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인도할 중심인물이 하나 필요했다. 한편, 파라오는 기하급수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히브리인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남자 아이들을 중심으로 영아살해를 계획했다. 이런 위기 가운데, 위대한 예언자이자 히브리인들의 민족 해방을 이끌 지도자로 레위 지파 출신의 모세가 등장한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신이 계획한 대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히브리 민족의 대탈출을 인도하게 된다. 저자는 바로 이 출생의 과정에서, 행위 중심으로 전개된 서사에 주목한다. 마치 해당 사건들을 바로 옆에서 관조하는 것처럼 서술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세는 이집트 공주의 양자로 변신한다.

 

우연한 기회에 같은 동포인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정처 없는 방랑길에 오른다. 영화에서는 새로 파라오가 된 의형제 람세스에게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고, 수도멤피스에서 추방되는 설정이 등장한다. 그렇게 미디안 땅으로 간 모세는 그곳에서 미디안 여자 십보라와 결혼하게 된다.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여호와의 금기를 모세는 스스로 어겼다. 나중에 결국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되는데, 이런 문제 때문이 아닌가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불타는 떨기나무 사건으로 여호와를 직접 만난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구하라는 사명을 받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응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회피하지만, 신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영화에서는 아이의 모습으로 현현한 신이 호렙산에서 모세를 설득한다. 모세는 형 아론과 함께 완고한 파라오를 설득해서 히브리 민족 구원에 나선다.

 

한편, 권력의 정점에 선 파라오가 순순히 히브리 백성들을 풀어달라는 모세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영화에서는 파라오 휘하의 참모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현재 노예 노동에 동원된 히브리 사람들을 풀어준다면 어디서 대체 인력을 얻을 것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거야말로 정말 현실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결국 모세와 하나님은 완고한 파라오와 이집트인들에게 나일강이 피로 물드는 첫 번째 재앙부터 시작해서 모든 이집트의 인간과 동물들의 맏배가 죽는 마지막 재앙을 내린다. 이런 일련의 재앙들은 400년 동안 축적된 이집트인들과 히브리인들의 좋고 나쁜 관계들을 일거에 끊는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파라오는 결국 히브리인들의 이주를 허용하게 된다. 한편, 히브리인들은 문설주에 희생양의 피를 발라 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는데, 훗날에 이를 유월절(파스카)로 기념하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쉽게 탈출이 끝난다면 스펙터클한 이야기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이집트와의 관계 단절에 결정타 한 가지가 더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 바로 갈대 바다 사건이었다. 히브리 사람들을 풀어 주고 난 다음, 파라오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그리고 무장한 병력들을 동원해서 히브리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는 4천의 병력과 1천의 전차로 장정만 60만 정도 되는 기존의 종들을 모두 죽이겠다며 광기에 사로잡혀 추적에 나섰다. 영화에서는 가히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들의 백성들을 간악한 파라오의 손에서 건져 내시기 위해 갈대 바다를 가르고 히브리 사람들이 모두 건너간 다음, 다시 바다의 운행을 되돌려서 이집트 군대를 휩쓸어 버렸다. 장 루이 스카 사제는 이 과정을 삼단계로 구분하면서 서사의 스펙터클한 시퀀스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갈대 바다를 건넌 히브리 백성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40년간 광야에서 도대체 뭘 먹고 지낼 수 있었을까.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만나와 메추라기로 약속의 백성들에게 걱정을 덜어 주셨다. 그 다음 시나이산의 신적 현현을 통해서는 비로소 영원히 이어질 이른바 계약법전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 저자는 사제계 저자가 <탈출기>를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며, 필요 이상의 의식과 규례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들어있다는 점을 꼬집는다.

 

나중에 구약성서를 통해 드러나게 되겠지만, 왕정이 무너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인 성전이 파괴되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이른바 모세오경(토라)에 근거한 율법을 근거로 자신들만의 고유한 민족성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물론 모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불만에 가득한 일부 백성들의 성화 때문에 금송아지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여기서는 이후 계속되는 히브리인들의 지속적인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기원을 엿볼 수 있다.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끔찍했던 이집트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되었고, 자신들을 구원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민족해방을 영도한 모세에 대해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게 됐다.

 

그 외에도 장 루이 스카 사제는 탈출기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이 받아들이는 방식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예술 장르의 소재로 변용되고 재생산된 사례들을 보여준다. 물론 그 중에서 나의 픽은 아무래도 접근성이 가장 쉬운 편인 영화 <엑소더스>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역시 성서전문가답게 단선적인 차원의 <탈출기> 접근을 시도하지 않는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 이집트 탈출이라는 일대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고수한다. 모세오경(토라)에 등장하는 613가지 율법의 준수는 선택이 아닌, 그들을 억압과 착취해서 해방시킨 신과의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종의 계약이다. 그런 점에서 구원과 자유를 향한 사제적 백성들의 여정은, 신약시대에도 이어질 하나님에 대한 섬김이라는 사명으로 귀결된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다 읽는데 성공해서 뿌듯하다. 다음에는 좀 더 어려운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마르코 복음>을 읽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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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4-21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톨릭 교도이지만 사실 구약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성경 공부도 꾸준히 했지만 깊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어요.
저는 신약성서가 훨씬 더 와 닿았습니다.
저도 이런 성경 해설책을 읽으며 다시 성경 공부 하고 싶습니다.

레삭매냐 2026-04-22 08:24   좋아요 1 | URL
저도 오래 전부터 구약을 읽어 왔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최근 성경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왜 히브리어-헬라어 원어가 중요하다
고 했는지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조심스레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마르코 복음>과 <알렉산드리아의
사자>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구약성서 입문
장 루이 스카 지음, 박요한 영식 옮김 / 성서와함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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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루이 스카 신부님의 이 책 <구약성서 입문>의 표지는 자못 도발적이다. “조금 알거나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나는 조금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인가. 양심상 전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조금 안다고 말하기보다 거의 알지 못한다고 고백해야할 것 같다.

 

장 루이 스카는 이 책에서 다루는 구약성서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이라고 명명한다. 그에 따르면 모세오경으로 알려진 토라는 현대 이스라엘을 모든 것을 주관하는 모체가 아닐까 싶다. 중세 마이모니데스가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 토라에 등장하는 총 613(해라 명령 248, 금지 명령 365)의 율법들을 지키면 그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1365일 매일 한 개씩 있는 셈이란 말인가.

 

구약성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보니, 깊이에 치중하기 보다는 문자 그대로 입문서적인 성격을 띠고 있고 더 알고 싶다면 당연히 추가적인 독서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결말 부분에 적은 대로 모든 책은 하나의 세계이고, 그 세계로 떠나는 탐험의 초대장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른바 이스라엘 민족 믿음의 조상이라는 족장 아브라함의 일대기에 앞으로 유대 민족이 겪게 될 영광과 고난의 역사들이 응축되어 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갈대아 우르(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한 아브라함의 100년에 걸친 여정은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정착한 뒤, 다시 75명의 일족들과 함께 파라오가 지배하는 이집트까지 가게 된다.

 

그후 400년간에 걸친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마치고, 모세에 이어 유대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끈 전투 지휘관이라기보다 오히려 율법학사에 가까운 여호수아의 인도로 마침내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된다. 그 과정 가운데, 시나이산에서의 신적 현현을 통한 계약 법전이야말로 토라의 핵심이다. 여호와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면, 계약 법전에 따라 영원무궁한 축복을 받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불순종하고 여호와의 뜻에 거스르는 범죄를 하게 된다면 결국에 가서는 망하게 된다는 간단한 진리다.

 

판관기(사사기) 시절을 거쳐 사울과 다윗 그리고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120년 정도의 통일왕국 시기를 거쳐 유대 왕국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역대 왕들의 계속되는 우상숭배와 다양한 방식의 범죄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각각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물론 여호와는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이사야와 호세아 같은 선지자들을 남북의 왕들에게 파견해서 무수한 경고를 보냈지만, 왕정의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유대 민족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던 성전 역시 파괴되고 말았다. 저자는 바로 그런 지점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유대 민족을 지지해주던 버팀목이었던 왕정 국가와 성전이 파괴되고, 바빌론으로 끌려가 무려 70년이나 포로생활을 하던 그들을 지탱해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율법이었다고 말이다.

 

그런 점을 볼 때, 지금도 중동에서 사방의 적대국들로 포위된 국가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을 유지시켜 주는 정신적 모체야말로 구약성서, 보다 협의적으로 표현하자면 토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율법에 근거한 굳건한 민족적 정체성이야말로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을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마카베오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시작된 헬레니즘 문화의 확산은 유대인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위기였다. 헬라어가 고대 중근동의 공용어가 되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왕들이 강압적으로 헬레니즘 문화의 이식을 진행시키자 마카베오 트리오가 등장해서 무장항쟁을 개시했다. 고대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면서, 마카베오들은 하스몬 왕조를 개창하기에 이르렀다. 저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도 저항적인 성격의 문서들이 상당 부분 배제되었다고 한다. 구전 전승에 기반한 기록은 편집과 첨삭의 과정을 피할 수가 없다는 점도 수긍이 갔다.

 

바빌론의 포로가 끌려간 다니엘이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다니엘서에 대한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다니엘서는 바빌론 포로 생활을 하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수난사 정로만 알고 있었는데 후반부에 등장하는 다수의 예언들로 예언서로 분류된다고 했던가. 신약성서로 연결되는 마지막 파트라는 점도 기억할 만한 포인트였다.

 

새로운 지경을 탐험하기 위한 초대장으로 장 루이 스카 신부의 <구약성서 입문>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책을 통한 지적 탐구의 여정은 설레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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