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라이, 줄라이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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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년 만에 팀 오브라이언 작가의 <줄라이, 줄라이>를 다시 펼쳤다. 140쪽 정도 읽었었나. 나머지는 단 이틀 만에 다 읽었다. 나의 책읽기는 그런 것이다. 사실 앞 부분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뭐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3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서 완독에 성공했다. 뿌듯하다. 그리고 팀 오브라이언의 <카차토를 찾아서>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참고로 그 책은 5년 전에 산 책이더라.

 

서른 번째 다턴 홀 대학동창회(1969년 동창들)를 기념해서 만난 친구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68혁명세대이자, 베이비부머 세대인 미국의 청년들에게 1960년대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동시에 지구 저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베트남 전쟁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문득 오래 전에, 보스턴에서 만났던 베트남전 참전 베테랑 노숙자 아저씨의 말이 기억이 났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징집되어 베트남에 파병되었는데, 소싯적 친구들 모두 죽고 자신만 살아서 복귀하게 되었노라고. 그리고 그의 삶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고. 전쟁은 그런 것이다.

 

빌리 맥맨은 196971일인가 징집을 피해 캐나다 위니펙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면서 캐나다 시민이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아가씨와 결혼해서 살았다. 그가 행복했을까? 아니다. 빌리는 미국 고향에 자신의 애인 도러시 스타이너가 있었다. 도러시는 빌리를 따라 위니펙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고향에 남아 론과 결혼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유방암에 걸려 자신의 한쪽 가슴을 절제하기 전까지는. 과연 도러시는 빌리에게 어떤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빌리의 아내는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나중에 자신의 아내를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당사자가 자신의 회사에 취직해서 그 사실을 고백한다. 그녀와 썸을 타기도 하지만, 둘의 관계는 잘 이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상처를 가해자에게서 속죄하듯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설사 둘이 다시 연애 혹은 결혼 관계에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목사님 폴렛 하슬로는 유부남을 사랑했다. 나중에 사랑하는 남자가 죽은 뒤, 자신이 그에게 보냈던 편지를 되찾으러 남의 집에 불법으로 침입했다가 일자리와 명성 모두 잃게 된다. 그것도 과연 그럴 만했던 행동이었을까? 그런 불법적인 행동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다가 오기 마련이다. 고인의 미망인에게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을까. 그냥 도덕적으로 그러면 안될 텐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닐까. 사랑했지만 선을 넘지 않았으니 그냥 인정해 주어야 하나.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정말 무 자르듯 그렇게 딱 떨어지는 관계는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죽은 친구 둘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은 살해되었고, 또다른 치과의는 불륜 상대와 몰래 여행을 떠났다가 익사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가정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엘리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결국 나중에 엘리는 자신의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 놓는다. 그렇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 놓으면서 속죄를 하고, 고뇌로부터 벗어나는데 성공하지만 남편의 용서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캐런 번스는 살해당했다고 하던데, 내가 3년 전에 읽은 부분에 나오던가. 조금 궁금해져서 다시 찾아보고 싶긴 한데 또 귀찮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데리고 멕시코 여행에 나섰다가 알고 보니 버스 드라이버가 무언가 석연찮은 밀수업에 종사한다는 걸 알게 되었던가. 치매기 있는 어르신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죽일 거라고 계속해서 떠들어 대고 말이지. 아니 진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갔었나.

 

문득 팀 오브라이언들이 들려주는 베트남전쟁이라는 일대 사건을 정통으로 관통한 미국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중년에 접어들어 겪는 위기들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아니 어쩌면 젊어서 읽었다면 그네들의 감정선에 도달하지 못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그런 걸 보면 책과의 만남도 어느 정도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줄라이, 줄라이>도 무려 3년을 묵혔다가 그렇게 다시 만나지 않았던가.

 

데이비드 토드는 전쟁에서 다리를 잃고 귀향했다. 그런 그와 결혼한 말라 뎀프시. 그 둘이 과연 행복했을까? 경제적 곤궁을 데이비드의 가구 사업을 돌파하는데 성공했지만, 데이비와 말라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데이비는 자신의 다리와 죽은 친구들을 베트남 정글에 두고 왔다고 해야 할까. 당사자가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데이비를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빗자루와 대걸레 사업을 하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이혼남 마브 버텔은 새로 사귀게 된 여자친구에게 하필이면 자신이 소설가라는 허풍을 떨었던가. 한 번 시작한 거짓말은 모름지기 되돌리기가 어렵다. 완벽하게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거짓말에 거짓말을 보태야 한다. 뚱보에서 다이어트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마텔은 완벽한 거짓말의 노예가 되어 살이 걷잡을 수 없이 그렇게 빠진다. 적당한 무명작가를 팔 것이지, 말도 안되게 자신을 유명 작가로 포장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그야말로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더 매혹적이란 말이지.

 

팀 오브라이언의 <줄라이, 줄라이>를 다 읽고 나서 역시 나는 산 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 다 읽는다는 나만의 원칙을 고수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뿌듯했다. 왠지 언제 여유가 된다면, 언제고 다시 한 번 읽어야 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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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2
페터 플람 지음, 이창남 옮김 / 민음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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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제 <타임 쉘터>를 빌리러 도서관에 들렀는데, 사서분이 내일까지 반납해야 하는 책이 있다고 하신다. 누군가 예약 도서를 걸어서 연장이 안된다고. 그렇지 오늘까지 반드시 읽어야 한다. 페터 플람의 <?> 이야기다. 이렇게 읽지 않고 반납한 책은 다시 빌리지 않게 되더라. 그러니 어떻게든 오늘 중으로 다 읽어야지.

 

결국 책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마저 남은 부분들을 모두 읽었다. 비가 줄줄 내리는데 정말 집에서 나가기 싫었지만.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다 읽고 나서는 뭐랄까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점에서 뿌듯했다고나 할까.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1926년 그러니까 99년 전에 발표된 페터 플람의 데뷔 소설이라고 한다. 항스 슈테른이라는 군의관 출신 의사가 전장에서 베를린으로 복귀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참 초반에 재판장에게 운운하는 걸로 봐서는 그 사이에 재판정에 설 만한 무슨 일이 발생했다는 걸을 암시한다.

 

4년간의 치열한 전쟁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복귀한 한스 슈테른에게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가 전장에서 전사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스 슈테른의 진짜 정체는 누구란 말인가. 그는 바로 제빵사 빌헬름 베투흐(침대보). 그 둘이 바뀐 경위는 중요하지 않다. 프랑스 베르됭의 두오몽 요새에서 벌어진 미친 전쟁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고지 하나를 빼앗기 위해 수십만 명의 청년들의 목숨이 전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쨌든 그런 미친 전쟁이 끝난 뒤, 베를린은 혁명의 도시였다. 기나긴 절망을 끝내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희망의 상징이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한스 슈테른의 아내 그레테를 비롯한 이들이 의사의 귀환을 반긴다. 하나 궁금한 점은 겉모습은 한스일지 모르지만, 당장 의사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베투흐가 과연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돌파할 것인가였다. 사실 그 부분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멀쩡해 보이는 한스 슈테른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하나둘씩 튀어 나온다. 부쉬 산도르 여사와의 스캔들부터 시작해서 친구이자 검찰인 스벤 보르게스가 자신의 아내에게 추파를 보낸 점 등 숱한 이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가장 큰 문제는 살인 사건과 관련된 증거에 대한 감식이었는데, 알고 보니 피의자 에마 베투흐가 자신의 여동생이 아니었던가.

 

전장터에 나갔다가 실종된 오빠를 대신해서 가정을 이끌게 된 에마는 농장주의 하녀로 취업했다가 농장주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 그리고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농장주 살해자로 몰리게 됐다. 한스 슈테른 아니 빌헬름 베투흐는 명백한 증거를 무시하고 에마에게 유리한 증언을 법정에서 전개한다. 그의 결정적 증언으로 에마는 무죄로 방면된다. 어쩌면 이런 일련의 서사적 배치는 엔딩에 예비된 비극을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에서 가장 희극적인 장면은 부쉬 산도르 여사와 약속된 만남에 자신의 개(세인트버나드) 네로를 끌고 갔다가 네로가 벌이는 한바탕 소동극이었다. 어쩌면 파국은 이 때부터 이미 예고되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곳곳에서 베이커리 전문가로 빌헬름 베투흐가 보여주는 놀라운 식견도 주인공이 부르주아 계급의 한스 슈테른보다 프롤레타리아 제빵사에 더 가깝다는 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도플갱어 논란에서 전자보다 후자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베를린에서는 한스 슈테른이었을지 모르지만, 불현 듯 기차를 잡아타고 도착한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다시 빌헬름 베투흐로 변신한다. 자신이 일하던 베이커리에 찾아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전문 지식을 뽐내는 베투흐. 그 다음에는 죽어가는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본다. 그 때 잠시 의사로 변신했던가. 에마에게도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지금 모습으로는 아마 동생을 이해시킬 수 없었으리라.

 

아마 그 다음의 전개가 작가가 진짜 하고 싶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자신이 싸우던 프랑스 전선, 구체적으로 베르됭 플뢰리의 두오몽 요새를 찾는 베투흐/슈테른. 아무런 의미 없던 포탄과 총알이 난무하던 고지전에서 자신이 느꼈던 전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처참함 그리고 죽음의 이미지들이 그대로 투영된다. 그렇게 전쟁에서 가까스로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잉태된 비극에서 탈출하지 못한 도플갱어 주인공은 결국 스스로 그렇게 무너져 버린다.

 

책을 읽다가 문득 전쟁터에서 영혼이 부서진 사람이 과연 어둠에서 벗어나 빛 속으로, 그러니까 다시금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영화나 많은 문학 작품들에서 전쟁과 관련된 PTSD들을 봐왔지만, 정작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그들의 깊은 내면세계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그런 느낌이다. 페터 플람은 전쟁이 끝난 뒤 가까운 시절에 이 작품을 쓰면서 백년 후보다 더 많은 그런 경험들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독자와 당대의 독자가 느끼는 간극이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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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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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에 읽은 <상류 아이>와 너무 다른 결의 작품이라 좀 충격을 받았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라고 해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 즐거움을 추구하는 편인데, 우샤오러의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에서는 즐거움 대신 고통과 구원이라는 주제를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내가 실종된 사건으로 소설은 출발한다. 타이베이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 판옌중의 아내 우신핑이 사라져 버렸다. 문제는 결혼 전에 부모가 돌아가시고, 오빠와는 소원하다는 이야기들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판옌중이 사라진 아내의 뒤를 추격하다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성추문의 휩싸인 대학동창 국회의원 보좌간 친구인 추궈성의 아들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어느 변호사가 그랬던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쉽다고. 문제는 그 돈이 없다는 거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신핑의 과거에 판옌중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되면서,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원래 판옌중은 부잣집 출신 아내 옌아이써와 결혼해서 외동딸 쑹뤼를 낳았다. 하지만 옌아이써는 판옌중이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아내가 아니었다. 결국 그 둘의 결혼은 파국으로 끝났고, 가정폭력 이슈까지 겹치면서 판옌중의 명성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런 판옌중이 다시 우신핑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학원강사 우신핑이 판옌중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하지만 우신핑은 판옌중에게 돈과 아이 그 무엇도 바라는 게 없었다. 아이도 낳지 않겠다고 했으며, 재산에도 관심이 딱히 없었다. 판옌중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는 그런 배필이었다.

 

그랬던 아내 우신핑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당연히 판옌중은 사라져 버린 아내를 찾으러 나섰다. 그리고 그 와중에 죽었다고 알려진 아내의 어머니 황칭롄이 고향에 멀쩡히 살아 계시고 오빠 우치위안과도 소원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장모 황칭롄이 뻔뻔하게 사위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우신핑의 친구라고 자칭하는 오드리가 등장해서, 판옌중의 과거를 들먹거리면서 우신핑의 소재를 묻는다. 우샤오러 작가는 전지적 시점에서 개입해서 주인공들의 마음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문득 낯선 목소리가 등장할 때가 있는데, 나는 그 목소리가 우신핑의 것이라고 착각했다.

 

우신핑 과거의 추적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기다리고 있는 큰 비밀까지 도달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모두 비밀을 가지고 사는 법이다. 그 비밀들은 절대 누구에게도 나누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밀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비밀을 품은 이들은 필연적으로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비밀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본원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소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의 비극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신핑의 전 룸메이트들이었던 오드리와 즈싱 역시 불행한 과거의 희생자들이다.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우정은 공고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고나 할까. 문제는 완벽해 보이는 이 삼각편대의 균열이 생겼을 때다. 우신핑이 약혼자를 데려왔을 때, 그녀가 자신의 곁을 떠날 거라고 판단한 즈싱이 자해극을 벌인다. 위로가 되는 울타리인 줄 알았던 관계가 알고 보니 굴레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관계의 붕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싶다. 희망은 절망의 친구라고, 희망이 없어진다면 절망 역시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라고 작가는 책에서 말한다.

 

이 비극의 연대기에서 작가가 준비한 결말은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분노가 춤추는 서사를 추동하는 힘은 언제나 그렇듯 복수심이었다. 그 복수의 방식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동의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냥 더 이상의 추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그런데 끝까지 방심하지 마라. 세상에 맨 마지막 장까지 우샤오러 작가가 비장의 무기를 준비해 두었을 줄이야.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이 비밀을 품고 있고, 그 비밀이 노출되었을 때 감당할 수 없다는 간단한 진실이 참 서글프게 다가왔다.

 

결국 구원은 타인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일까. 나의 선의가 온전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기가 난망하고 또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관계가 얼마나 허약한지 우신핑과 오드리 그리고 즈싱의 삼각편대가 보여주는 결말이 안타깝기도 했다. 우신핑이 판옌중에게 물었던 질문의 진실이 밝혀지는 장면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쩌면 비밀은 내 입에서 떠나는 순간, 더 이상 비밀일 수 없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쉽지 않은 독서였다. 그래도 우샤오러의 팬이 될 것 같은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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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 아이 묘보설림 15
우샤오러 지음, 심지연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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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책소개는 잘 뽑아야 한다. 타이완의 <스카이 캐슬>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타이완 작가 우샤오러는 소녀시대 주축 멤버와 나이가 같은 1989년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에 해당하는 국립타이완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는 대신, 작가의 길을 선택한 것 같다. 오랜 세월 과외교사로 일한 자신의 체험을 살려 <상류 아이>를 발표했다고 한다.

 

<상류 아이>는 연대기적 배치가 아닌 과거와 현재 또 다시 과거를 오가는 다소 복잡한 시간 구성을 취하고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시간의 배열과 재구성이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다만, 현재의 사건을 다루는데 있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설정이다. 하긴 과거가 모아져서 현재가 되는 거니까.

 

모든 것은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천위셴과 양딩궈의 아들 양페이천(제임스)이 사장 테드네 아들 차이하오첸(크리스)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면서 시작된다. 참고도 양딩궈는 사장 테드네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5년 째 이런저런 낙하산에 밀려 승진을 못하고 있다. 한 때 잘사는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 양이잔이 투자사기에 걸려 신이취라는 부자동네에 있던 아파트를 날려 먹으면서 시골 출신 천위셴이 꿈꾸던 강남 아파트, 아니 타이베이 부촌 지역 아파트에 입주하겠다는 소박한 꿈(?)은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아니 왜 이렇게 우리나라의 그것과 상황이 비슷한 거지. 결국 25평 정도의 작은 아파트에 살게 된 천위셴네 가족. 너무 서둘러서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친구 양이자의 오빠 딩궈와 결혼해서 아들 페이천을 낳은 국숫집 딸 천위셴은 가계대출을 갚고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회사에서는 까칠한 상사 예더이에게 호되게 갈굼을 당하고, 자신에게 안락한 삶을 보장해 줄 것처럼 보였던 신이취 아파트는 임신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그것만 바라보고 혈액암에 걸린 시모의 병간호까지 마다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그리고 이제 곧 페이천이 초등학교에 진학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공립초등학교는 맞벌이 부부에게 바람직한 선택지로 보이지 않는다.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아이 픽업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이런 와중에 테드 사장과 량자치 부부의 아들 하오첸의 생일파티에 갔다가 페이천이 하오첸과 잘 어울리게 되면서 천위셴 부부에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타이베이의 유명한 사립초등학교에 하오첸과 같이 진학하면 어떨까라는 그야말로 너무나 유혹적인 제안이었다. 물론 천위셴 부부에게는 막대한 학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언감생심이었지만, 량자치 부부는 페이천의 학비까지 자신들이 지원하고 입학 문제도 해결해 주겠다고 말한다. 세상에나, 이럴 수가! 이제 천위셴 부부에게 드디어 대운이 틔우기 시작하는 것인가. 그전에 좀 찜찜한 점들이 있긴 했지만 이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그런 제안이었다.

 

마냥 천위셴 부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전개되었을까? 그렇다면 세상이 너무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까. 독자들이 예상하는 대로 이야기는 흘러가기 마련이다. 소설의 초반부 어디선가 그 뉴스가 터지고 천위셴의 친정엄마가 전화로 왜 방송에 자신의 딸과 손주가 나오는지 묻는 장면이 나오지 않던가 말이다. 흥미로운 전개로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기는 순간에, 작가는 이렇게 단서를 심어 두었다.

 

쑹런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연필도 제대로 쥐지 못하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벌써부터 그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는 장면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참 천위셴은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던데, 혹시 그 중에 <스카이 캐슬>도 있지 않았을까. 작가는 한국 드라마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살짝 가미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가 세상에서 인기를 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천위셴은 하나 뿐인 아들 양페이천의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어렵게 들어간 직장까지 때려 치우고 전력을 다한다. 그리고 제임스가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또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자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이룬 것 같은 순간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런 기쁨은 잠시 뿐, '성적바꿔 치기' 사건과 금융업계를 주름잡는 대단한 집안의 딸 린판샹과 엮인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마치 줄타기를 하듯 위태롭게 버텨 가던 관계가 순식간에 붕괴되어 버린다.

 

결국 천위셴은 자신의 절제되지 않은 탐욕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끼고 싶어했던 상류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신기루에서 벗어나고, 자신과 아들에게 허용된 곳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이런 결말은 상투적이면서도 또 동시에 너무 현실적인 거라 더 할 말이 없었다. 국립타이완대 출신의 작가로 다년간의 과외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책이라 그런지 교육에 모든 것을 불사르는 타이완식 리얼리즘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한국의 교육열도 타이완 못지않게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지 않은가.

 

우샤오러가 창조한 서사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페이천이 아니었을까? 자식의 학업적 성취와 성공을 위해 무리수를 둔 엄마 때문에 공정한 경쟁은 출발점부터 무너져 버렸다. 나중에 모든 사건이 끝난 뒤에도 아들은 엄마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엄마는 시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지만 과연 계획대로 진행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초등학교 1학년은 미래를 예단하기에 너무 어리니까 말이다. 그리고 페이천의 미국 유학이라는 미래의 거대한 도전에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볼 때, 천위셴의 욕망이 여전히 살아 꿈틀거린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우샤오러 작가는 부모라면 누구나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자식의 성공, 교육에 대한 투자라는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주제를 가지고 독자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천위셴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심리 상태를 통해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추체험을 관찰할 수 있었다. 과연 내가 천위셴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지 가늠해 보는 것도 소설을 읽는 동안 느낀 재미 중에 하나였다. 과연 타이완판 <스카이 캐슬>이라는 광고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고도의 심리전과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각축을 벌이는 치열한 교육 현장에 대한 묘사들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제 더 강력한 주제를 담은 같은 작가의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를 읽을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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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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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책이 다 있나 그래. 정말 오래 전에, <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책으로 슈테판 츠바이크와 처음 만났다. 그리고 나서 오랜 시절 그의 책들을 읽어 왔다. 하지만, 다른 전작주의 작가들처럼 그렇게 강렬하게 매달려서 죽어라고 츠바이크의 책들을 읽은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기회가 닿는 대로 그의 책들을 꾸준하게 읽어왔다. 그리고 어제 중고서점에서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모두 9편의 짧은 에세이들로 구성된 이 책을 그만 사랑하게 되어 버렸다. 가히 츠바이크를 지난 세기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부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롭고 조용했던 19세기 말에 태어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세기를 살다가 간 오스트리아 출신 양심가의 저술들은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무래도 히틀러라는 제목 때문에 맨 마지막 에세이부터 읽었다. 과학과 철학의 나라 독일을 그야말로 야만국가로 만들어버린 희대의 독재자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은 그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작품에 등장했던 모양이다. 책을 불살라 버리고,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인종주의로 무장한 파시스트의 등장은 어쩌면 대공황의 위기가 휩쓸던 지난 세기 불가피한 그런 현상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더 암울한 장면은, 불행하게도 지난 세기의 그런 불행한 과거가 다시 한 번 되풀이될 것만 같은 세계사적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인류는 도대체 과거에서 배우는 게 없다는 말일까. 현자 츠바이크의 지적들이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상상이려나.

 

개인적으로 내가 이 책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글은 바로 첫머리에 배치된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이다. 그리고 보니 이 편은 나중에 수록된 <나에게 돈이란>과 어쩌면 묘하게 공명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노동을 팔아 하루를 먹고 사는 그런 존재들이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의 한 시간의 노동을 금전으로 환산해서 일용한 양식과 주거 그리고 필요한 잡다한 것들 마련하고, 삶을 영위해 간다.

 

모두가 그런 걸까? 아마 이 편에 등장하는 안톤이란 사나이는 그런 것 같지 않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잠자리와 먹거리 그리고 기타 필요한 것들을 얻어 살아간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말 일말의 걱정이나 스트레스 없이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참 부러웠다. 그도 물론 다양한 노동을 제공하고 금전적 보상을 받지만, 당장 필요한 이상은 절대 받지 않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고, 현재를 살아가는 그의 모습에 반해 버렸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아마 하늘이 무너지지 않나싶을 정도의 걱정과 불안은 아니겠지만 아마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안톤은 자신의 필요 뿐 아니라 타인의 필요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안톤에게 도움을 츠바이크 박사가 그가 필요 없는 따뜻한 외투 하나를 요구하자, 그야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물품들을 모두 내준다. 그러자 안톤은 자신에게 필요한 외투를 하나 챙기고, 나머지는 나머지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준비한다. 아니 이런 이타적인 삶을 사는 다 있다고? 아무리 20세기 이야기라지만, 아마 안톤은 철저한 반자본주의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나만의 필요를 추구한다고 해서 이기주의자로 몰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과연 안톤처럼 사적 이익 대신 이타적인 사고를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1793121일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시는가. 바로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군주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을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구름 같은 군중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그런 역사적 대사건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센강에서 한가롭게 낚시질을 즐겼다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 4년차에 민중들은 하도 많은 사건들을 겪다 보니 어느새 국왕의 처형이라는 경천동지할 사건조차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 게 아닐까.

 

당장 우리만 하더라도 지난겨울의 계엄사태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격변 속에 살아오지 않았던가. 츠바이크 작가에 의하면 우리의 가냘픈 심장은 일정한 분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할 수 없다고 분석한다. 아니 그러한 불행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라는 존재는 그런 불행의 도래를 사전에 감지하고 감당할 수 없다면 피하고 싶은 그런 감정 상태를 미리 준비하고 있는지도.

 

청년 츠바이크가 노년의 위대한 작가 로댕을 만난 일화에서 배운 교훈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에 든다. 대가는 우연히 만나게 된 청년을 무시하지 않고 환대해 주었다. 아니 나라도 너무 황송해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의 작업장에 방문한 츠바이크는 손님을 앞에 두고, 예술 창조의 무아지경에 빠져 버린 로댕의 진면모를 마주하게 된다.

 

근 한 시간도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손님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자신이 만들고 있던 예술 작품의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모습을 목격한 츠바이크는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지고 만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로댕은 청년 츠바이크에게 정중하게 사과한다. 하지만 츠바이크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웠노라고 고백한다. 인간이 자신의 목표하는 바와 목적을 상실하고, 오로지 도달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완벽을 추구하는 지고의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독서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탈출하기 위해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이나 루이스 세풀베다 작가의 <핫라인>을 읽곤 했었다. 이제 한 권 더 예의 목록에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말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 다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지만, 상대적으로 긴 여운과 생각할 거리들을 남기는 그런 책이기도 했다. 곁에 두고 오래도록 다시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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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05-10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를 모르는 사람도 읽으면 좋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그를 아는 사람 - 그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더 좋아할 책인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5-05-10 11:54   좋아요 1 | URL
너무 적절한 말씀이시라...
격렬하게 공감합니다.

바람돌이 2025-05-10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는 사랑입니다. ^^ 저 아직 이 책 안 읽었는데 빨리 읽어야겠네요.

레삭매냐 2025-05-10 21:03   좋아요 1 | URL
곁에 두고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책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