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들 페이지터너스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빛소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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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등장하는 빅토르 바통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다.

아마 바통 씨가 꿈꾸던 미래의 부유한 모습이 아닐까.)


빅토르 바통은 몽상가를 꿈꾸지만 그의 실체는 망상가에 가깝다. 첫 번째 세계대전에서 왼손에 영구적 장애를 입은 바통 씨는 오늘도 거리에서 친구를 찾는다. 그는 기본적으로 외롭다. 아니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외로운 존재가 아닌가. 친구가 있다면, 바통 씨가 새로운 친구를 찾을 리가 없겠지. 그는 왜 친구가 없을까.

 

세계대전이 끝나고, 살기가 팍팍한 프랑스 파리에서 상이 용사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1924년 프랑스 출신 에마뉘엘 보브는 자신의 첫 소설 <나의 친구들>을 발표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그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은 바통 씨는 비롯 가난뱅이지만, 겸손하고 예의를 차리는 그런 친구다. 문제는 가끔 망상에 젖어 선을 때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 그의 성정은 치명적 결과를 가져 오지만 말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우유 가게 아가씨에게 고백공격을 했다가 보기 좋게 차였다. 아무래도 이 친구, 금사빠인 것 같다. 모든 정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그런 경향이 있다.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거라구?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면서도, 종종 선을 넘는다. 바로 그게 문제다. 그리고 상대방의 선의를 자신이 결정하고, 관계를 시작해 버린다. 가만 살펴 보니, 인간 관계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미션이 아닌가. 특히나 나이가 들어서 그러니까 세상의 단맛 쓴맛을 다 보고 난 뒤에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기란 더더욱 어려운 법.

 

그렇다면 애타게 자신의 속을 드러낼 만한 친구를 찾는 바통 씨의 문제는 무엇일까? 친국에 대한 격언이 너무 많아 하나하나 다 말할 필요는 없겠지. 바통 씨의 감정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궁핍한 사정을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상대방이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나? 그들이 바통 씨에게 원하는 건, 50프랑을 빌리거나 혹은 하룻밤의 즐거움 정도다. 아니 더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거리에서 그가 만난 이들은 하나 같이 그에게 무언가 금전적인 부분을 요구한다. 이 소심한 남자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 앙리 비야르 같이 정체가 수상한 사람의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지질 않나. 아까 내가 뭐랬어, 바통 씨는 금사빠라고. , 이 사람 좀 이상한데 그래.

 

자신에게 양복을 살 돈과 일자리를 제공한 라카즈 씨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기차역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박애정신의 발로로 라카즈 씨는 바통 씨에게 돈도 주고 또 일자리도 주었다. 아니 그랬더니만, 사리판단하지 못하는 바통 씨는 그의 어린 딸에게 금사빠 정신을 발동해서 추파를 던졌다가 그만 낭패를 당한다. 아니 도대체 어쩌자구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거지? 아 너무 감정이 이입된 것 같다.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그리고 평소의 바통 씨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놀랄 만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단 말인가. 자신을 가난뱅이 상태에서 빼낼 구조선을 그렇게 걷어찼단 말이지. 한 숨이 절로 나온다.

 

에마뉘엘 보브 작가는 디테일의 강자답게 아주 세세한 부분을 포착해낸다. 타인의 손톱 정리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 아 당시 파리 사람들은 그런 점들을 중요하게 생각했구나. 아울러 어느 개인의 입성에 대해서도 포인트를 두고 있다는 점을 보브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바통 씨에게 그런 면면을 투영해서, 목욕재개하고 라카즈 씨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안개 낀 파리 거리가 마치 사진 현상을 하는 밝아지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 착오로 일을 망쳐 버리는 바통 씨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너무 성급하게 관계를 진도를 빼거나, 좀 쉽게 싫증내는 것도 그렇다. 인간관계란, 전력질주하는 그런 단거리 경주가 아닌 페이스를 조절해 가며 뛰는 장거리 마라톤에 가까운 게 아닌가. 아주 뜨겁지도 그렇다고 미지근하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인연을 이어가는 기술을 바통 씨는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하긴 그런 것들이 누가 알려준다고 해서, 배우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일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인물로 낙인 찍힌 바통 씨는 결국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몽루주의 아파트에서 퇴거명령을 받고 쫓겨나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자신을 쫓아낸 걸 후회하게 될 거라는 망상에 젖는 바통 씨. 당장 먹고 살기에도 바쁜 이들이, 그런 자신을 기억할 리가 있을까. 엔딩까지 씁쓸하지만, 바통 씨는 그래도 자신의 처지에 대한 명징한 해석으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나의 친구들>은 너무 외로운 나머지 친구 찾기 나선 바통 씨로 대변되는 우리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다. 무슨 거창한 시대정신에 대해 토론할 그런 친구가 아닌, 어제 먹은 짬뽕 맛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주변에 있는가라고 바통 씨는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관계 속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또 그렇게 상처도 받고 반대로 위로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의 본질이 아니던가. 외로운 금사빠 바통 씨에게 한 잔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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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26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것 같습니다.
21세기 뉴욕 타임즈 선정 책에 들어 있는 것 같은데요.

레삭매냐 2024-11-26 13:27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
저는 재밌게 읽었답니다.

그냥 바통 씨가 불쌍하더라구요.
전쟁에서 영구 장애를 얻게 된
불쌍한 상이용사의 절절한 외
로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한밤의 도박 페이지터너스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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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7월의 마지막 날에 산 책을 11월이 돼서야 다 읽다니. 사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소설은 7월의 마지막 날과 어제 그리고 오늘 3일 동안 다 읽은 셈이다. 분량도 적고 또 노름/도박을 소재로 한 책이라 금방 다 읽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마 읽다 말고 다른 책 읽느라 그랬겠지.

 

오스트리아 빈 출신 의사이자 작가인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한밤의 도박>이 오늘 풀어볼 책이다. 이 짧은 소설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도박 빚 때문에 불명예 전역한 친구 오토 본 보그너가 공금 횡령으로 위기에 처했다며,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빌리(빌헬름) 캐스다를 찾아온다. 빌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100굴덴 정도인데, 보그너는 1,000굴덴이 필요하다며 빌리의 부유한 외삼촌 로베르트 빌람 씨에게 돈을 융통해 볼 것을 부탁한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로베르트 빌람은 빌리의 외삼촌으로 한 때 빌리를 돌봐 주고 적으나마 용돈도 주고 그랬던 사이이지만 최근 들어 소원해져 버렸다. 그러니까 보그너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말이다. 대신, 빌리는 무언가 한 가지 꼼수를 발견했다. 카페 쇼프라는 곳에서 일요일 오후마다 작은 노름판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빌리는 자기가 가진 돈을 가지고 그곳에 가서 요행수를 바라고 돈을 따서 보그너를 돕겠다는 복안을 도출해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벌써 제목에서부터 무언가 불행한 엔딩의 전조가 느껴지지 않은가.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빌리는 카페 쇼프의 작은 노름판에 참가하고, 노름판에서 돈을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다가 결국 사단을 내고 만다. 물론 빌리가 적당하게 돈을 따서 노름판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운명의 여신은 빌리의 편에 서지 않았다. 바덴 역에서 빈으로 가는 기차를 놓친 게 큰 패착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 때마다 카페 쇼프로 돌아온 빌리는 노름판이 끝나는 230분경까지 광기에 휩싸여 슈나벨 영사에게 무려 11,000굴덴이라는 거금의 빚을 지게 된다.

 

물론 아르투어 슈니츨러 작가는 냉정하게 제3의 입장에 서서 조금씩 나락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빌리 캐스다 소위의 심리 변화를 시시각각 독자에게 전달한다. 나도 고스톱을 좋아하지만, 절대 큰돈으로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물러설 때를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카지노/도박판에 오래 머물수록 돈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돈을 잃었다면 손절할 수도 또 반대로 어느 정도 돈을 땄다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블랙잭 테이블 같은 노름판에서 광기에 물들어 영혼과 자본을 털어 넣는 이들을 관찰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지.

 

도박으로 신세를 망친 보그너를 구하기 위해 노름판에 뛰어 들었다가 정말 패가망신하게 된 빌리의 운명이 비참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슈나벨 영사는 빈털터리가 된 캐스다 소위를 빈의 병영으로 데려다 주면서, 노름빚 상환 기한인 24시간에서 좀 더 연장해 주는 아량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이상은 절대 안된다고 못을 박는다. 노름빚이 기한 내에 상환되지 않으면 캐스다 소위의 연대장에게 알리겠다는 협박도 잊지 않는다.

 

자 이제 벼랑 끝에 몰린 빌리 캐스다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순식간에 한 개인의 운명이 전도유망한 청년 장교에서 거액의 노름빚을 진 도박쟁이 신세로 추락하게 될 수도 있다는 비극적 가능성을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능수능란하게 도출해낸다. 그래도 로베르트 빌람 외삼촌이라는 믿을 구석이 있던 빌리는 그르 찾아가 보지만, 레오폴디네라는 여성을 만나 전재산을 탕진해 버렸다는 말에 의기소침하는 빌리. 그런데 그 레오폴디네는 예전부터 그가 알고 있던 여성이 아니던가.

 

오래전에는 매춘부였지만, 이제는 외삼촌의 자금을 바탕으로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옛 연인 아니 외숙모 레오폴디네를 찾아가 거의 구걸하다시피 자금을 빌려달라고 사정하는 빌리. 궁색한 처지에 몰린 빌리를 희망고문하던 레오폴디네는 사실 빌리에게 구원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구원의 가능성이 닫혀 버린 빌리는 결국 소지하고 있던 권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물론 작가는 엔딩에 젊은 청년 장교의 죽음을 더욱 비극으로 만들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이런 역설적 장치야말로 소설 <한밤의 도박>이 품은 씁쓸한 현실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의사로 경력을 출발했지만, 작가 활동을 더 많이 했던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한밤의 도박>에서 주인공 빌리 캐스다 소위의 수시로 변하는 심리를 독자에게 충실하게 전달한다. 노름판에서 돈을 많이 딸 때는 부유한 육군 장교의 모습을 그리며 행복해 하다가,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당장 닥칠 비극을 감당하지 못하는 비참한 청년의 모습을 연출한다. 장황한 심리 묘사 대신, 급변하는 청년의 감정을 임상에서 체득한 전문가답게 유려하게 그려낸다.

 

빌리 캐스다가 전문 도박꾼이었다면 오히려 그의 비참한 최후를 동정하지 않았겠지만, 동료 보그너를 위해 노름판에 나섰다가 그만 패가망신했기에 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동료 빔머 중위가 나서서 판돈을 올리고 계속해서 노름빚을 지는 걸 제지했지만, 도파민 과다로 이성을 잃은 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예정된 파국이 다가왔다. 아마 빔머 중위의 제지를 빌리가 받아 들였다면, 소설 자체가 구성되지 않았겠지. 그렇게 예정된 비극은 굴러갔다.

 

이 책을 샀던 지난여름을 회상해 보니,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다른 책들을 만나 보겠다고 <엘제 양> 그래픽 버전을 먼저 읽지 않았나. 왠지 매력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다른 책들도 만나보고 싶어졌다. 집에 쌓아 놓은 책탑을 좀 허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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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25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 놓고 안 읽은 책이 산더미입니다. 부지런한 셈인데 자책을 하시다니요. ㅠ 슈니츨러 별로란 평이 많던데 이 작품은 안 그런가 봅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그림 좋습니다!

레삭매냐 2024-11-25 14:56   좋아요 2 | URL
스레드에서 소장한 책이 특정량
을 넘어가면 부동산 문제가 된
다고 하던데... 어제 책탑을 쌓다가
멘탈이 살짝-

이 악물고 책탑 정리에 들어가야
지 싶습니다.

아직 다른 슈니츨러의 책들을 만
나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한밤의
도박>은 재밌었습니다.

이미지는 AI가 맹글어 주었는데
신기하더라구요.

stella.K 2024-11-25 19:31   좋아요 1 | URL
헉, 스레드에서 소장한 책이 특정량
을 넘어가면 부동산 문제가 된다굽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와, AI가요? 제법인데요?
전 아직 AI이 써 본 적이 없네요.
어떻게 쓰는 거죠? ㅋ

레삭매냐 2024-11-26 08:06   좋아요 1 | URL
책이 많아지면 그 만큼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
이 아닐까요 :>

레오나르도라는 녀석
을 사용하는데, 키워드
를 넣으면 이렇게 알아
서 이미지를 만들어준
답니다.
 
고행의 순례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1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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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도서관에 2권이 있다고 해서 먼저 빌려 보려고 했는데, 내 차례가 도통 오지 않는다. 그래서 과감하게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10<고행의 순례자>를 사서 읽었다. 이 이미지는 AI가 만들어 주었는데, 십자군 전사 출신이라 좀 더 우락부락한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거의 교황 수준이 아닌가 싶다.

 

1편이 1137년 그리고 10권은 4년 후인 1141년경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리즈 가운데, 이 책을 고른 이유 중의 하나가 성녀 위니프리드에 대한 연작 같은 성격을 띠고 있어서다. 캐드펠 수사와 몇몇 사람만 아는 것처럼, 슈루즈베리 수도원으로 이장된 성녀의 관에는 다른 이의 시신이 들어 있다. 그래도 많은 신자들이 그 실체를 모른 채, 기적와 이사를 바라는 마음에 오늘도 성녀를 기념하고 순례의 길을 나선다.

 

어쩌면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신앙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위한 포석을 준비한 지도 모르겠다. 중세에 성인들의 유골이 가지는 의미는 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1편에서 로버트 부수도원장이 직접 나서서 슈루즈베리 수도원에 신도들과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성유골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던가.

 

<고행의 순례자> 초반에 당시 잉글랜드의 복잡한 정치상황이 소개된다. 노르망디의 윌리엄공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의 역사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사실 이 부분은 좀 따분했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 중세사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의욕도 없고 좀 읽기가 버거웠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 진중한 독서에 대한 나의 열정이 이렇게 식어 버렸단 말인가. 귀차니즘이 폭발한 모양이다.

 

어쨌든 왕위 계승권이 놓고 모드 황후와 스티븐 왕/마틸다 왕비가 내전에 가까운 정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헨리 주교의 지원을 받은 모드 황후가 권력을 장악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고 양측의 협상을 위해 협의회에서 모드 황후를 공공연하게 반대했던 마틸다 왕비 편의 크리스천이라는 성직자를 자객이 습격했고, 그를 보호하기 사투를 벌이던 황후 측 로랑스 당제의 가신 라이날드 보사르가 죽고 말았다. 엘리스 피터스는 12세기 혼란스러웠던 잉글랜드의 정치 상황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위니프리드 속편을 개시한다.

 

나는 이번 <고행의 순례자>편에서 전반적인 스토리보다는 저자가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가에 중점을 두면서 책을 읽었다. 전직 십자군 전사 출신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가 종교계를 대표한다면, 그의 동지로 등장하는 행정 장관 휴 베링어는 지역 책임자로 캐드펠과 합을 맞춘다. 지역 책임자로 휴야말로, 공권력이 필요할 경우 캐드펠 수사를 지원할 수 있는 적임자다.

 

성녀 위니프리드 축일을 앞두고, 기적과 이사를 염원하는 이들이 각처에서 몰려들면서 이야기는 굴러 가기 시작한다. 흐륀 같이 장애가 있는 십대 소년에게 성녀 위니프리드의 기적은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아니던가. 또 목에 십자가를 두르고, 상처투성이 맨발로 고행에 나선 키아란 그리고 그를 옆에서 조력하는 매슈 같은 청년들도 등장한다. 물론, 시미언 포어 같이 순례자들을 상대로 한탕을 노리던 부랑배들도 빠질 수 없다.

 

순례자를 상대로 한 절도사건이 벌어지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시미언 패거리의 소행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순례길의 인연으로 흐륀의 누이인 멜랑에흘은 키아란의 조력자 매슈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둘 사이를 눈치 챈 키아란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흐륀의 기적으로 슈루즈베리 수도원이 혼란에 빠진 사이에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멜랑에흘의 눈에 띄게 된다.

 

한편, 황후 로랑스 당제의 가신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는 뤼크 메버렐이라는 청년을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슈루즈베리에 도착한다. 뤼크 메버렐은 기사 보사르 사건과 관련된 인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위니프리드 순례길에 나섰다는 정보를 듣고 출동한 모양이다. 그전 시리즈를 읽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캐드펠 수사와 메시르 올리비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소설에 다양한 캐릭터들을 투입시키고 또 동시에 복잡한 잉글랜드 국내 정치 상황까지 다뤄야 하는 어려운 미션을 엘리스 피터스 작가는 멋지게 해결해냈다. 1편에서는 캐드펠 수사가 전면에 나서 문제 해결에 나섰다면, 주인공이 이제 노년에 접어든 만큼 주변 인물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면서 이야기를 몰고 간다. 물론 나중에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뤼크 메버렐을 추격하기 위해 수도원장의 재가를 받아 직접 말을 타고 달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주 바람직하게 여러 문제들을 해결한 캐드펠 수사들 앞에, 런던에서 상대방을 포용할 줄 모르던 모드 황후가 시민들의 쿠데타로 실권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메시르 올리비에가 스티븐 왕의 편에 서 있던 휴 베링어를 설득했던 것처럼, 이제는 입장이 역전된 올리비에를 휴가 설득하지만 강단 있는 기사 올리비에는 그의 제안을 마다하고 말에 올라 자신의 주군에게 충성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리고 엔딩에서는 캐드펠 수사의 놀라운 비밀이 밝혀진다.

 

기적적으로 장애가 나은 흐륀의 에피소드도 인상적이다. 작가는 마냥 소설적 재미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중세를 지배한 기독교 신앙의 어떤 본질에도 심오한 질문을 던지지 않나 싶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우리가 이성에 기초해서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캐드펠 수사의 성심 어린 치료와 마사지가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했을 수도 있지만, 단기간에 그런 목발을 짚던 소년이 스스로 걷게 된다는 기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설정이야말로 소설을 다채롭게 만드는 그런 요소 중의 하나다.

 

소설의 중반은 좀 지루한 맛이 없었지만, 엔딩으로 갈수록 서사는 힘을 얻고 그리고 작가가 준비한 엔딩의 결정타가 터지면서 역시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10편이나 되는 장편 시리즈가 되다보면 매너리즘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는 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엘리스 피터스는 시리즈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이런 기발한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해 두지 않았나 싶다. 역시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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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4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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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만나보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1946년 프랑스 출신 작가 보리스 비앙이 미국 스타일의 하드보일드 스릴러 작품을 번역한 것으로 위장해서, 버논 설리반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예전에 라스 폰 트리에가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서 <도그빌>이라는 걸작을 만들어낸 것처럼, 보리스 비앙도 마찬가지였다. 작품은 너무 강렬하고 분량도 짧아서 단숨에 읽을 줄 알았지만, 며칠 시간이 걸렸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흑인 피를 1/8 정도 보유한 얼핏 보기에는 백인과 구분이 되지 않는 주인공 리 앤더슨의 증오 어린 복수극이다. 보통 스릴러하면 연상되는 내적 갈등 따위가 발붙일 틈은 없다. 리는 백인 소녀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동생을 위해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쳐있다.

 

불특정 피해자를 고르기 위해 리는 자신을 아는 이들이 하나도 없는 벅텀이라는 작은 마을 서점관리인으로 취업한다. 철저하게 자신의 의도를 감춘 채, 마을 소녀들과 일탈을 즐기는 리. 어떤 면에서 리는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선 그는 절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기타로 블루스 음악을 연주하고, 춤까지 잘추는 리는 소녀들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그런 가운데 부잣집 도련님인 덱스터를 알게 되고, 그를 매개로 리는 훨씬 더 부유한 진과 루 애스퀴스 자매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그의 타겟이 나이 어린 여성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왜 리는 자신의 동생을 죽인 남자들을 목표로 삼지 않았을까? 그가 동생의 진혼을 위한 진정한 복수를 원했다면, 원인 제공자들을 공격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왜 그들을 대신해서 진과 루 자매가 희생되어야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어떻게 되는 좋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리의 최후에 전혀 동정이 가지 않았다.

 

소설 전개에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은 일절 배제하고, 오로지 복수라는 일념 아래 움직이는 리의 기계적인 모습과 순진하게도 리의 매력에 빠져 수렁에 빠져드는 진의 모습이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진의 그런 모습에 잠시 리의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의 복수심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생 루의 통통 튀는 매력에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언니 진과 달리, 리의 위험성을 알게 된 루는 그에게 총탄을 날리기도 한다. 그녀들이 마냥 사이코패스의 희생양은 아니었고, 저항의 일면을 보여주는 그런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저간에는 미국 사회의 고질병인 뿌리 깊은 인종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리 앤더슨이 이런 무모한 행동에 나서게 되는 발단이 자기 동생의 억울한 죽음 때문이 아니던가. 동생의 가해자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았던가? 무려 1940년대다. 중범죄를 저지르고서도 백인 가해자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리는 삐뚤어진 복수심에 불타, 애꿎은 루와 진을 희생시켰다.

 

리가 신앙심 깊은 자신의 형처럼 신에 귀의했다면, 해피엔딩이 되었을까. 아마 그러지 않았으리라. 억울하게 죽어간 동생에 대한 죄책감이 계속해서 리를 괴롭히지 않았을까. 엔딩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 중인 리를 잡기 위해 추격에 나선 두 백인 경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존 사회 질서를 허물고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짐승을 잡아 특진하기 위해 그들은 규정 따위는 모두 무시해 버리고 사방에 총질을 해댄다.

 

강력한 하드보일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리가 탄 뷰익의 정면 유리를 부순 장면이 책의 표지였다는 걸 리뷰를 쓰다가 알게 됐다. , 그랬군. 리의 최후는 장렬했고, 백인들은 이미 죽은 리의 시신 훼손도 마다하지 않는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인종주의에서 비롯된 복수의 힘이 보여주는 가공할 분노가 소설의 전반을 아우른다. 무려 78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강렬함을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가 있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읽게 되면 또 어떤 감정으로 만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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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만화 병자호란 상.하 세트 - 전2권 만화 병자호란
정재홍 지음, 한명기 원작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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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한명기 작가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읽었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뒤에 만화로 다시 만나게 됐다. 파란만장한 17세기 중원의 왕조교체기의 기로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야했던 과거는 21세기 한반도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다. 과거에는 비극이었고, 지금은 어떤지 아직 판정이 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더더욱 주목이 된다고 해야 할까.

 

6년 전에 나온 만화의 존재는 아예 모르고 있다가, 오늘 도서관에 들렀다가 알게 됐다. 어제 우연히 너튜브 역사채널 그리고 진주박물관 채널을 통해 병자호란에 대해 다시 한 번 복습(?)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아주 좋은 예습이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 조선 왕조 3대 찌질한 군주로 선조-인조-고종을 꼽는데, 그중에서도 최고는 인조가 아닌가 싶다. 임진왜란으로 파천-몽진을 클리어한 선조의 손자 능양군은 숙부 광해군을 몰아내는 반정을 성공시켜 임금이 되었다. 철저하게 서인으로 구성된 인조 정권은 재조지은의 나라 명나라에게도 정권 초기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이괄의 난으로 대표되는 것처럼 반정 공신 사이의 알력도 다스리지 못했다. 인조는 세 번이나 파천하는 무능의 화신 같은 군주라고 판단된다.

 

건주여진 출신의 누르하치가 칠대한을 슬로건으로 걸고, 1615년 팔기군을 창설해서 1618년부터 상국 명나라를 상대로 요동 공략에 나선다.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명나라의 압도적인 국력 앞에 만주족의 후금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에 막대한 군자금과 인력들을 소모시킨 명나라에게 후금의 침공은 결정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당시 만력제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멸망할 뻔한 국난을 극복하는데 성공한 조선은 당연히 명나라를 아버지의 나라로 여기고 달자의 나라 후금을 오랑캐로 철저하게 멸시했다. 그러지 않아도 성리학적 질서에 입각한 조선의 사대부 지식인들에게 후금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금수 같은 그런 존재였다.

 

후금도 이런 사정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주적은 조선이 아닌 명나라였기에 우선 요동을 집어삼키고 산해관을 돌파하는데 집중했다. 명나라 조정의 요청과 강압으로 광해군의 조선은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1619년 사르후 전투에 조선 정예 조총수들을 투입했다. 사실 아무리 명나라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지만, 실리주의자 광해군은 자국의 정예병들이 멀리 만주 땅에서 아무런 의미 없이 죽어나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결국 요동의 정예군들이 투입된 사르후 전투를 필두로 한 전투에서 명의 사로군들이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전쟁의 주도권은 후금에 넘어가게 된다.

 

반세기에 가까운 만력제 연간에 곪을 대로 곪은 명나라는 이미 승승장구하는 후금의 철기병들을 막을 능력이 없었다. 그나마 명나라의 마지막 영웅 원숭환이 영원성 전투에서 홍이포로 누르하치에게 중상을 입히고, 결국 죽게 만들면서 시간을 버는데 성공했다. 4대 버일러 출신의 홍타이지가 누르하치의 후계자가 되어 보다 적극적으로 중원 공략에 나서게 된다.

 

이런 중원의 사정을 외면한 채,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던 인조 정권의 운명은 훗날 대청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는 홍타이지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이미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9년 전인 1627년 정묘호란 당시 홍타이지는 다른 버일러 출신의 아민을 파견해서 조선에 뜨거운 맛을 보여주었다. 후금의 요청은 간단했다. 명과의 관계를 끊고, 자신들과 무역 거래를 하고, 형제 관계를 맺자는 것이었다. 홍타이지는 거국적 관점에서 명나라와의 전면전을 위해 후방을 안전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조는 두 번째 파천을 하면서, 강화도로 피신해서 장기전을 두려워하던 후금으로부터 화친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런 안일한 정책을 훗날 병자호란 당시에도 써먹으려고 하다가 아주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백성에게 인심을 잃은 인조정권은 임진왜란 당시처럼, 사방에서 근왕군이 일어나 조정 보위에 나서지 않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지 않았을까. 해마다 계속되는 기근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휼하고, 외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권이 무슨 민심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더 큰 화근은 숭명배청 사상에 젖은 다수 척화파들이 조정을 주무르게 되면서, 결국 홍타이지 군대의 두 번째 침공인 병자호란은 피할 수 없는 상수가 되어 버렸다. 다시 생각해 봐도 아무런 대책이나 실력도 없이, 무조건 후금/청나라를 달자(오랑캐)의 나라로 규정하고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사신의 목을 베자는 주장이 가당키나 했단 말인가. 정작 청나라의 침공이 시작되고 나서, 주전과 화전 주장를 거듭하다가 파천과 몽진 타이밍을 놓치고 남한산성으로 꼴사납게 도주했다가 삼전도의 치욕을 겪게 되지 않았던가.

 

어제 너튜브에서 본 1636년 청나라의 특수 기동작전에 대한 분석은 그동안 병자호란에 대한 생각의 틀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명나라를 상대하고 있던 청나라 군대는 조선을 상대로 장기전을 펼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무조건 최단기간 내에 조선을 굴복시켜야만 했다. 그들은 이미 조선 조정의 대전략을 알고 있었다. 외적의 침입이 시작되면, 특히 수군에 약한 청나라를 상대로, 인조 정권은 강화도로 몽진해서 장기전 모드에 돌입할 거라는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삼남의 근왕군이 집결해서 청군을 상대하게 될 거라는 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홍타이지는 조산의 사정을 잘 아는 호부승정 마푸타를 지휘관으로 삼아 300명의 특수 기동대를 조직해서 선발대로 압록강을 건너게 했다. 청군은 평안도와 황해도의 조선군 수비대가 산성 위주의 방어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많은 시간과 병력이 소모되는 공성전을 피하고 무조건 한성으로 내달렸다. 강건하고, 잘 먹지 않아도 장거리 기마 운용이 가능한 만주마를 동원해서 하루에 90KM를 주파하는 신속 기동전으로 단 6일 만에 마푸타의 선발대는 한성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이른바 충격과 공포 전술이 아니던가. 홍타이지가 이끄는 3만의 청군 본대도 남하하면서 조선군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 버렸다. 300기의 바야라라고 불리는 만주 철기 최정예부대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이미 그들은 누르하치 시절, 요동 공략전에서 단 20기로 수십배에 달하는 명군을 격파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신속한 청군의 기동전 앞에, 조선 조정은 강화도로 도주하자는 계획을 실기하고 결국 남한산성에서 농성전을 기획했다가 파국에 자처하게 됐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오로지 요행수만 바라고 남한산성에 들어갔던 인조 정권은 46일 간의 농성 끝에 결국 홍타이지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한 겨울 산성 수비에 나선 병사들을 입힐 피복이 없어 거적을 뒤집어쓰고 병사들은 보초를 서야 했다. 군량미 비축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임금 이하 모든 장병들이 굶으면서 적을 상대해야 했다. 명나라와의 전투에서 얻은 교훈에서 배운 청군은 성능 좋은 홍이포로 남한산성에 정확한 포격을 개시했다.

 

전장의 상황이 이럴진대, 주전을 주장하는 대신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던 강화도마저 청군의 수중에 들어간 것도 모르고 결사항전을 앵무새처럼 주장했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나라를 망국으로 인도한 무리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들이 가진 화이관이라는 맹목적 세계관에서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선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조반정의 공신이었던 주화파 최명길은 최명길 대로 국가와 조정 그리고 군주를 위해 최선의 방책을 도모했고 또 반대편에 서 있던 예조판서 김상헌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 국난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척화파들은 청군이 화친에 반대한 인사들을 선발해서 자신의 진영에 보내라고 했을 때, 자신들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자청해서 적진으로 향했다. 이른바 척화 삼학사인 홍익한, 윤집 그리고 오달제들은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조선 사대부들의 기개를 보여 주었다. 이들이야말로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한 인조 같은 무능한 군주에 비하면 조선 선비의 귀감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결국 대전쟁을 초래한 위정자들은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구차하게 정권과 목숨을 유지하는데 성공했지만, 청군에게 약탈당하고 심지어 인신이 구속되어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의 신세는 너무 비참했다. 군주인 인조를 대신해서 청나라의 수도 심양에 인질이 되어 끌려갔던 소현세자와 강빈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찌질이 군주 인조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소설 <남한산성>은 아주 오래 전에 읽었다. 역사평설 <병자호란>10년 전에 읽었다. 그렇다면 이제 영화로 만들어진 <남한산성>을 볼 차례인가. 역사는 희비극으로 반복된다고 들었는데, 다시 한 번 격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우리의 현 위치는 어디인가 그리고 우리의 방향성은 어떤 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388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주국가로서 생존은 쉽지 않은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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