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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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더불어 양대 고딕 소설의 하나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망겔 선생의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읽었다.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무엇보다 메리 셸리가 이 책을 쓴 게 십대소녀 시절이었다는 점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텍스트는 오래 전에 내가 좋아하던 배우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영화로 만났다.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기억하기로는 괴물(이하 크리처로 표기하겠다)이 죽인 소년이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원전을 읽어 보니 아들이 아니라 막내 동생 윌리엄이었더라. 이래서 원전을 읽어야 한다니깐 그래.

 

그리고 놀랍게도 소설의 시작은 빅토르 프랑켄슈타인(박사로 알고 있었는데 그가 박사 학위를 땄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이 아닌 북극해를 탐험하던 탐험대 대장 로버트 월턴이 사랑하는 누이 마거릿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한다. 아니 영화도 그랬었나. 어쨌든 원작을 읽지 않는다면 이런 사소한 기억의 오류들이 오리지널 텍스트를 삼켜 버릴 지도 모르겠다.

 

인적 없는 북극해에서 우연히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을 만난 탐험대 대장 월턴은 유빙을 타고 표류 중이던 그를 구조한다. 그리고 그에게 지난 수년 간 있었던 듣고도 믿지 못할 만한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한다. 요즘처럼 비디오카메라라는 기록 장치가 없던 18세기, 종이 매체에 남긴 기록은 그대로 역사가 됐다. 구술이 그런 것처럼, 문자 기록도 역시나 진위를 가릴 수 없다는 점에서 저자가 시도하는 실증 사학적 접근에 대한 신빙성을 묻고 싶어졌다. 하지만 기억하자, 이것이 문학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있을 법한 이야기 혹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문학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한 청년이다. 어려서부터 자연철학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빅토르. 비록 어머니 카롤린 보포르를 일찍 여의긴 했지만, 사촌 여동생 엘리자베트와 두 동생들인 에네스트와 윌리엄 그리고 아버지 알폰세로 이루어진 가정은 화목했다.

 

문제는 자연철학에 경도된 빅토르가 유학길에 나선 잉골슈타트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화학이라는 학문에 투신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위험한 창조라는 시험에 나선다. 출발점은 죽음을 이기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그리고 그는 전기라는 새로운 시대의 신호탄이 된 발명과 시체조각들을 소재로 삼아 조물주 이래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인간의 창조에 성공한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과학도 빅토르가 만들어낸 크리처가 본래 의도와는 다른 흉측한 외모로 만들어졌고, 끊임없이 자가발전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21세기에도 외모는 개인이 지닌 하나의 자산으로 치부되지만, 2백 년 전인 18세기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크리처를 만들어낸 빅토르 자신이 크리처를 보고 놀라 도주해 버렸다. 240cm나 되는 거구와 괴력을 자랑하는 크리처에게 이때부터 시련이 닥치기 시작했다. 크리처는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일찍이 조물주는 흙으로 자신을 닮은 피조물을 만들고 온갖 사랑을 베풀어 주었지만,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인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그런 임무를 방기해 버렸다. 그리고 그런 방기에 대한 혹독한 복수가 크리처를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1부가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의 사연을 듣는 월터의 사연 그리고 어떻게 해서 빅토르가 크리처를 창조해냈고, 그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되었는가를 그리고 있다면 2부에서는 주로 크리처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설에서 빅토르는 크리처를 악마라고 부르는데, 크리처가 처음부터 그런 악의 상징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보통의 여느 개체들처럼 사람들에게 사랑과 친절함을 받고 공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흉측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은 크리처를 보자마자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러니 크리처는 자신을 창조해낸 창조부로부터 버림받은 사회적 피해자였던 것이다.

 

어디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던 크리처는 결국 자기혐오와 분노로 이성을 잃고, 드디어 우려했던 대로 괴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로버트 월턴처럼 독학으로 언어를 배우고, 문자까지 깨우친 크리처의 지성은 대단했다. 샤모니 부근에서 휴양하던 빅토르와 조우한 크리처는 자신에게 반려자를 만들어 달라는 논지의 요청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다른 건 아무 것도 필요 없으니, 반려자만 빅토르의 기술로 만들어 준다면 남아메리카(왜 하필이면?)의 오지에 가서 조용하게 살겠다는 것이다. 그의 화려한 언변과 협박에 넘어간 빅토르는 번뇌의 시간을 거쳐 그러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래서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우리의 고딕 소설이 그런 행복한 결말로 갈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일 것이다. 자신의 건강을 우려해서 곁에서 헌신적으로 간호에 나선 절친 앙리 클레르발을 따돌리고 외딴 오크니 섬에서 크리처의 요청대로 반려자 창조에 나선 빅토르. 하지만, 그는 거의 완성의 순간에 도저히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판단한다. 계약은 크리처와의 계약이지 새로운 크리처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한 끝에 그는 새로운 피조물을 갈가리 찢어 버린다. 그러니까 계약 파기의 주인공은 바로 빅토르였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크리처는 빅토르에게 혹독한 복수를 맹세한다. 크리처의 저주는 결혼식 날, 나타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저주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 광증에 빠진 빅토르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반려자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격분한 크리처는 통제를 벗어나 광기 어린 살육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전에 이미 빅토르의 막냇동생 윌리엄을 살해하고, 프랑켄슈타인 집안의 하녀였던 유스틴 모리츠마저 교묘하게 살인범으로 몰아 처형하게 만든 크리처(대단한 지능의 소유자가 아니던가)는 그야말로 프랑켄슈타인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잃은 빅토르는 자신이 만든 크리처를 없애기 위해 그야말로 지구 끝까지 쫓겠다는 맹세하고 결국 북극해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자연과학에 경도되어 가공할 만한 시도인 인간 창조에 나선 젊은 과학도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에게는 열정과 노력만 가득했지, 자신이 만든 크리처 때문에 발생할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게 바로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우리가 항상 좋은 의도로 무슨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결과만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이래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는데 성공했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지속적인 환경오염으로 21세기 지구별은 그야말로 주화입마 상태에 빠져 버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불유예된 청구서가 우리 인류에게 돌아온 것이다. 자연 개발의 편리만 누릴 게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볼 시간이다.

 

개인적으로 메리 셸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전기와 시체조각을 이용해서 새로운 인간, 크리처를 만들어냈는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뭐랄까 기술적으로 피해 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한 미션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빅토르를 북극해에서 구조한 로버트 월턴에게도 빅토르는 그것을 알려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멋지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디테일에 대해서는 회피했구나.

 

1부와 2부에서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전개되던 창조와 복수의 서사는 마지막 3부로 가면서 속도감 있게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게 정녕 영국의 십대 소녀가 쓴 소설이 맞단 말인가? 신의 권위에 도전한 인간 정신의 추락부터 시작해서, 과학자의 창조 윤리 그리고 인간이 빚어낸 대재앙 서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넘쳐나는 고딕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힘은 역시나 대단했다.

 

망겔 선생의 책을 읽고 나서 오랜 숙제 같았던 <프랑켄슈타인>을 반나절 만에 주파했다. 다음에는 <로빈슨 크루소> 혹은 <보물섬>을 읽어 볼까나. 역시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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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21 14:4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메리 셸리가 이 책을 출판한 1818년에는 자신이 이 책의 작가임을 밝히지 못했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소설을 쓰는 자체를 돼먹지 못한 일로 알았기 때문입지요. 여자는 글을 쓸 머리가 없다고 교육받아왔거든요.
초판의 서문은 메리의 남편이자 시인인 퍼시 셸리가 썼는데, 서문에서도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싹 빼먹었답니다. 그리하여 어떤 논문에선 죽은 인간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괴물이 바로 작가인 메리 셸리를 말한다 주장하기도 했다네요.
이 논문은 메리와 이름이 같은 엄마 메리 올스턴크래프트가 여성운동가로 ˝여자는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고 남자에게 복종해야 하고, 여자의 교육은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기획되어야 한다˝는 루소와 계몽주의자들에게 엿이나 먹으라고 외쳤는데, 메리 셸리가 너무 어린 시절에 죽었으나, 엄마의 유지를 간직했다가, 괴물을 창조하는데 사용한 것이라고....

이상은 권박의 시집 <이해할 차례이다>에서 요약했습니다.

잠자냥 2021-06-21 15:0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권박 시집도 써먹을만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6-21 15:12   좋아요 3 | URL
소설에 워낙에 이러저러한 은유와 비유
들이 많다 보니, 후대에 학자연하는 이
들에게 아주 흥미진진한 멋잇감이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소+계몽주의자들의 시대적 한계가
명백하게 들어나는 구절이었습니다.

coolcat329 2021-06-21 17:0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권박 시인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엄청난 주석에서 요약하신거죠? ㅋ

잠자냥 2021-06-21 15: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메, 저도 이거 소싯적 읽은 작품인데 알라디너들이 극찬하니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삼.

레삭매냐 2021-06-21 15:14   좋아요 3 | URL
자기 전에 집어 들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날밤 깔 뻔
했습니다.

지금 드니로 주연의 영화
<프랑켄슈타인> 리뷰를 보고
있는데 소설하고는 약간의 차
이가 있게 각색했네요.

미미 2021-06-21 15: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ㅋㅋㅋㅋ역시!ㅋㅋ레삭매냐님 리뷰로 이 작품 읽게되는 분들이 많아질것 같아요. 괴물이 문학에 빠져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는 과정도 전 너무 좋았어요.<보물섬> 작년쯤 읽었는데 역시 훌륭합니다!매냐님 리뷰 기대됩니당😎

레삭매냐 2021-06-21 15:40   좋아요 4 | URL
책쟁이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읽지도 않았으면서 하도 이러저러한
말들을 하도 들어서 읽은 것으로 착
각하게 되는 책들이 종종 있는데...

저에게는 <프랑켄슈타인>이 그랬네요.

이번 완독으로 고전깨기 하나 완성했
습니다 :> 보물섬도 곧 깹니다.

새파랑 2021-06-21 15: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이미지 때문에 안읽었는데(친구의 별명이어서 ㅎㅎ 이것도 편견?) 최근에 이 책 좋다고 해서 중고로 구매했는데~ 레삭매냐님 리뷰도 완전 흥미진진 이네요. 게다가 반나절 완독이라니~!!

레삭매냐 2021-06-21 15:43   좋아요 3 | URL
네 저도 3년 전에 중고로 사둔
책이었네요.

망겔 샘의 신간 읽고 나서 바로
찾아서 읽기 시작했답니다.

책 읽기 전에 너튜브 치트키를
사용해서 프리뷰를 하고 들어
갔는데 왠지 복습하는 그런 기
분이었답니다. 강추하는 바입니다.

페넬로페 2021-06-21 16: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이란 단어를 하도 많이 들어 저도 이 책을 읽은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제가 알고 있는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로빈슨크루소와 보물섬도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21-06-21 16:02   좋아요 3 | URL
1994년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하고
출연하기도 한 <프랑켄슈타인>은
원전하고 상당히 다르더군요.

그래서 역시나 원전을 읽어야 하나
봅니다.

로빈슨 크루소랑 보물섬도 속히...
우선 책부터 수급을.

coolcat329 2021-06-21 1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까 읽는 중이시라더니 그새 글이 올라왔네요. 오~~저는 정말 이 책은 꼭 읽어야하네요. 왜냐면 이 책이랑 지킬박사랑 헷갈려서요. ㅠㅠ

레삭매냐 2021-06-21 17:54   좋아요 1 | URL
앗 그리고 보니 <지킬 박사>도
읽지 못했네요.

하여간에 읽을 책들은 넘쳐
흐르고 시간과 에너지는 참말
로 부족하네요.

그렇게혜윰 2021-06-21 18: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들도 무척 인상깊게 읽고 5학년 애들에게 읽어주고 독후감대회 했을 때 그 독후감들의 깊이에 감동한 경험이 있어요. 역시 내 아들보단 남의 아들들이 더. . . .아이들도 되게 빠져드는 책. 이거이 고전 아니겠습니꽈?

레삭매냐 2021-06-21 19:15   좋아요 1 | URL
왠지 모를 객관과 주관
사이의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듯합니다만.

그렇지요 남녀노소 지위고하
를 막론하고 모두가 빠져들게
맹그는 고전 빠워!!!

mini74 2021-06-21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었다는 착각을 했어요. 청소년 문고판? 나중에 원작 읽고 좀 놀랬어요. 내가 아는 내용과 큰 줄기는 맞지만 뭐랄까 분위기와 묘사 등. 너무 낯설었어요.

레삭매냐 2021-06-21 19:16   좋아요 0 | URL
저에게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가 그런 책이랍니다.

연전에 원전에 도전해 보겠노라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실패하고서는
저짝에 책을 치워 두었네요.

어려서 읽은 책들은 무효로 하는
것으로.

독서괭 2021-06-21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놀라운 작품인 것 같습니다. 고전으로서는 흔치 않게 재미있다는 점에서도..^^ 로빈슨크루소는 <방드르디, 태평양의끝>과 함께 읽었는데 꽤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보물섬>은 어린이책 같은 제목 때문인지 손이 안 가던데, 레삭매냐님이 리뷰 써주시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ㅎㅎ어서 읽어주세요!
 


 

알베르토 망겔의 신간 <끝내주는 괴물들>을 읽었다. 이 책은 나에게 놀랍고 정말 위험한 책이었다.

 

우리 책쟁이들 세계에 있어 거의 초절정의 고수격인 망겔 선생이 보여주는 37개의 책과 그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는 해석이 가능하구나 싶었다. 그야말로 고수의 품격이라고나 할까. 내가 읽는 피상적인 분석 혹은 해석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래서 망겔, 망겔하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서두에 선포한 후자의 경우에는 이런 이유에서다. 가지고 있는 책들이라면 모든 걸 다 때려 치우고 당장 집어서 읽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강박 때문이다. 소유하지 않은 책이라면 왠지 중고사냥에 나서야 할 것 같은 그럼 느낌적 느낌. 첫 번째 주인공인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미스터 보바리에 대한 명징한 분석을 읽고 나자, 얼마 전에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마담 보바리>가 바로 읽고 싶어졌다. 아직 중고로 풀리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자.

 

보유하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설명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에 망겔 선생은 색다른 해석을 시도한다. 닥터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괴물은 자신의 창조주에게 자신을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괴물은 순전히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는 자신의 짝과 라틴 아메리카의 모처에 숨어 들어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조용하게 살고 싶었으나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쫓기는 사냥감으로 만들어 그를 추적한다. 그렇게 극단에 몰린 존재가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올해 안으로 반드시 읽어야 한 리스트에 <프랑켄슈타인>을 올렸다.

 

<해저 2만리>의 주인공 네모 선장이라는 캐릭터도 요주의 인물이다. 오디세우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바디가 바로 네모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망겔 선생급이 아니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정보다. 내가 무슨 수로 네모의 의미가 아무도 아닌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가 자그마치 12천권의 장서를 보유한 애서가이며, 동시에 프루동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의 면모마저 가지고 있다니 그야말로 놀랄 노자가 아닌가. 한동안 쥘 베른의 소설들을 열심히 읽었던 것 같은데 <해저 2만리>를 내가 읽었던가. 아니라면 이 책 또한 목록에 올릴 만하다. 이렇게 때문에 내가 망겔의 신간을 위험한 책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읽어야 할 책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날 판이다.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에 대한 망겔 선생의 잘못된 해석도 재밌었다. 그렇지, 아무래도 한자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서구인이 한자 풀이를 제대로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책읽기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오독이라고 나는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순수하게 문학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적당한 수준의 오독 또한 독서라는 장거리 여정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동서고금을 오가는 망겔 선생의 책읽기는 중국의 기서 오승은의 <서유기>도 피해 갈 수가 없다. 그는 삼장법사 현장이나 실질적인 주인공인 원숭이 손오공이나 저팔계보다 사실 더 존재감이 없는 제자 사오정에 주목한다. 참 영어로 사오정의 이름은 샌디(Sandy)라고 한다. 우리에게 샌디는 물귀신 같은 존재로 <날아라 슈퍼보드>의 영향으로 귀가 어두워 뭐든 잘 알아듣지 못하는 캐릭터의 전형인데, 망겔 선생의 분석은 또 다르다. 먹깨비에 호색한인 저팔계가 서역으로 가는 일행의 걸림돌과 유머를 맡고 있다면, 우리의 샌디는 두 번째 제자 저팔계와 달리 매사에 균형을 잡고 이성적 추론을 해내는 책사 같은 역할이라는 분석이다. 오 놀랍군 그래. 정말 샌디가 그런 역할이라고? 진짜 알고 싶다면, 원전을 만나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망겔 선생이 소개한 책 중에 라몬 델 바예인클란의 <폭군 반데라스>가 가장 읽고 싶다. 문제는 아직 국내에 번역이 되지 않은 책이고, 앞으로도 요원하기만 한 책이라는 점이다. 라틴 아메리카 폭군을 주제로 한 책들 중에서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 제법 된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를 필두로 해서, 미겔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이건 소장하고 있지만 못 읽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르테미오 크루스의 죽음> 등등.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족장의 가을>은 중고책으로 사려고 대기 중이다. 이래서 내가 처음에 이 책이 위험하다고 말했지.


우리 책쟁이들의 독서욕을 마구 자극하는 망겔의 책,

이거 물건이다.



(결국 도서관에 가서 이 두 책을 빌려 왔음,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도 있으면 빌리려고 했으나 부키에서 나온 버전이 대여중이라 아숩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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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1-06-20 08: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출간전인가봐요?

레삭매냐 2021-06-20 09:04   좋아요 4 | URL
네 아직 시중에 풀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새파랑 2021-06-20 10: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어떤책 리스트가 들어있을지 궁금하네요. 레삭매냐님의 저런 평가면 이건 필독서군요^^

레삭매냐 2021-06-20 15:18   좋아요 2 | URL
절정의 초고수가 알려 주는 책들이니
고저 따라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미미 2021-06-20 10: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말 위험한 책이네요! 그런데도 너무 읽고 싶어집니다. 폭군 반데라스는 왜 번역이 안된건지ㅠ
어쩜 이 책이 곧 나오니 출간을 기대해 볼수도 있을 듯 합니다.😊

레삭매냐 2021-06-20 15:19   좋아요 3 | URL
특히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경우에는 정말 우리에게 소개되지
않은 그런 작가들이 많은 것 같습
니다.

부디, 젭알 플리즈, <폭군 반데라스>
는 좀 출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
다.

페넬로페 2021-06-20 11: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들어있는 37개의 작품이 뭔지 정말 궁금한데요. 저한테도 위험한 책이 될것 같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얼마전에 읽은 책이라 반가워요^^

레삭매냐 2021-06-20 15:20   좋아요 3 | URL
저는 여적도 <프랑켄슈타인>을 읽지
않고 버티고 있답니다. 그나마 <드라
큘라>는 읽었으니 양대 고딕 소설 중
하나는 뽀갠 것으로 위로 삼고 있습
니다.

올해 안으로 읽어야겠습니다.

잠자냥 2021-06-20 12: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니 사오정, 샌디라고 이름만 바꿔도 굉장히 지적인 분위기기 급물씬 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6-20 15:21   좋아요 3 | URL
그렇지요, 왠지 샌디라 하니
친근감이 마구 솟아 오르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요괴라지만 한자에 내포
된 심오한 뜻을 양국 사람들이
알 리가 있나요 그래...

초란공 2021-06-20 12: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해저2만리>분석이 혹합니다~! 출간은 환영이나 제가 돌처럼 바라보고 멀리 해야할 책이로군요!

레삭매냐 2021-06-20 15:22   좋아요 3 | URL
멀찌기 하시길 권유하는 바입니다.

행여라도 펴드는 순간, 끝장입네다.

mini74 2021-06-20 15: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오정이 항상 좋았어요 ㅎㅎ 구운몽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 ㅎㅎ 너무 궁금해요 ~

레삭매냐 2021-06-20 15:24   좋아요 3 | URL
야금야금 읽는다고 하다가 결국
거진 다 읽게 되었네요.

망겔 선생의 책이 뿜어내는 강렬
함에 그만 반해 버렸네요.

책도 더 살 판입니다. 아유 참...

syo 2021-06-20 17: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유기를 비틀어서 만든 <최유기>라는 만화 보면 사오정이 딱 그런 느낌의 캐릭터로 등장하더라구요. 근데 저는 그런 사오정의 이미지를 가진 채로 원전 서유기를 봐서 그런가 거기서는 사오정한테 별다른 느낌을 못받았다는.....

레삭매냐 2021-06-21 07:49   좋아요 0 | URL
동서양 가리지 않고 그렇게 울궈
먹는 걸 보면, 역시나 고전의 힘
이 대단하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유기라...

coolcat329 2021-06-20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레삭매냐님 글만 읽어도 넘 재밌습니다. 샌디 ㅋ 넘 귀엽네요.
근데 구운몽까지 나오고 참 혹하네요.
저도 프랑켄슈타인 올해 목표입니다.
샤를 보바리에 대한 명징한 분석도 궁금하고~
폭군을 주제로 한 책을 저도 모아보고 싶어졌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1-06-21 07:50   좋아요 1 | URL
전 어제부터 바로 <프랑켄슈타인>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대단하더군요.

순식간에 반절을 읽었습니다.

역시 원전 읽기는 필수인가 봅니다.

폭군 샷은 <족장의 가을>이 수배가
되면 한 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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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이어진 인연으로 어느 작가를 알게 됐다그리고 난 그 책을 또 다른 지인에게 선물했다재밌는 건나에게 그 책을 선물한 이가 그 사실을 잊고 있다는 점이었다역시나 무당파 조사인 장삼봉 선생 앞에서 태극권을 전수받던 장무기 생각이 떠오른다선행은 그렇게 베풀고 잊어야 하는 것이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에는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그 중에서 나는 예전에 어느 소설집에서 만났던 <현남 오빠에게>부터 다시 읽었다다시 읽어도 강현남 그놈은 나쁜 자식이더라근데 왜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마치 너튜브의 고민 상담소가 생각이 났을까한참 주가를 올리던 소문난 너튜버에게 진작에 자신의 고민을 상담했다면십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을 개스라이팅한 유사 남자친구에게 시달릴 일이 없었을 텐데상대방을 사랑한다며자기 마음대로 미래의 배우자에게 직업과 살곳을 비롯해 모든 것을 강제하다니...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런 일들이 횡행할 수도 있다는 가정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첫 번째 단편인 <매화나무 아래>를 읽는다여기서 나는 충격적인 문장을 하나 발견했다. ‘늙는 것도 병이다라는 문장이었다그렇게우리 인간은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그런 유한한 존재다아마 영맨들이라면 노()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으리라그저 아름다운 현재의 삶이 즐거울 것이다나도 그랬으니까하지만 어느덧 나이가 들어 병이 들고 자신의 건강 그리고 정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오리라아니 우리 모두는 그걸 알면서도 굳이 내색을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그런 점에서 우리 인간은 모두 위선적인 존재일 지도 모르겠다.

 

<오기>에서는 주변의 모든 걸 작품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작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그리고 보니 최근에 어느 작가는 사적인 대화를 소설로 만들었다가 진실이 드러나 뚜까 맞았다지 아마그런데 모든 게 내 입에서 튀어 나가는 순간그건 비밀의 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게 아닐까요즘 읽고 있는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새하얀 마음>에서도 나만 아는 비밀이란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있지 않던가어쩌면 클리셰일지도 모르겠지만소설에 비밀이 존재할 수 있던가아니 나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드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내가 신뢰한 사람이 어느 순간 적으로 돌아서는 게 더 무섭지 않을까.

 

아버지의 출가 아니 가출을 다룬 <가출>은 가장 유쾌하게 읽은 작품이다주로 애들이 가출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아마 수십 년 동안 가장의 무게를 이길 수가 없었던 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한다그리고 보니 이웃 일본에서도 멀쩡하게 출근한다고 집을 나선 가장이 아예 실종되어 버리기도 했다지자신을 내리 누르는 삶의 무게에 지치다 보면모든 걸 훌훌 털고 그렇게 떠날 수도 있구나 싶은 설정이 가슴을 콕콕 찍어 누른다집 나간 사람은 집 나간 사람이고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지론의 주인공 엄마는 대책 회의를 위해 모인 자식들을 위해 밥을 안치고 찬거리들을 분주하게 만들어낸다주인공의 오빠는 집 나간 아빠 걱정을 하는 척하면서 밥을 두 공기나 흡입해 버린다이 장면이 어찌나 웃기던지이런 디테일을 포착해낸 작가에게 이 자리를 빌어 경의를 표한다치매가 와서 나간 것도 아니고 자기 앞가림을 잘 하시겠지하며남은 식구들의 우애는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 간다결말이 어떻게 되더라하긴 이런 서사에 결말 따위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미스 김은 알고 있다>에서는 예전에 비정규직으로 회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척척 해내던 미스 김 역의 김헤수가 자동으로 떠올랐다드라마 제목이 아마 <직장의 신>이었지실상은 정규직 못지않은 능력에 정규직들을 능가하는 업무 능력의 소유자지만 자의로 비정규직을 원하는 미스 김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끝까지 보지 않아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작가는 역설적으로 회사라는 조직에서 가장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업무들을 처리하지만막상 그 일을 하던 이가 사라졌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게 그려낸다마치 우리가 물과 공기의 중요성에 대해 1도 생각하지 않고 살지만막상 물과 공기가 없어진다면 바로 생존의 위기라는 걸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그런 점에서 미스 김의 소소한 복수는 귀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자신의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인 오로라를 보러 가기 위해 대장정에 나서는 서사도 마음에 들었다우리네 부모님들은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해야 했기에 자신을 죽이고 그렇게 살아 오셨다하지만 신세대 노인들은 당당하게 말한다손주 새끼 보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딸이 어렵게 아이를 기르는 건 잘 알지만 또 그래도 그만큼 오로라를 보고 싶은 욕망도 강했다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손주는 다음에도 봐줄 수 있지만 오로라는 평생에 한 번 볼까말까한 것이고 그렇게 보고 싶었다면... 우린 그렇게 양자택일의 순간에 선택을 강요받는다모를 일이다 그래.

 

대미를 장식하는 건 역시나 코로나 시절 너무 일찍 찾아온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다제목부터 멋지다, <첫사랑 2020>이라니. 2020에도 첫사랑이 있구나 싶다역병의 시대에 꼬맹이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사귀자고 제안한다하지만주변의 여건이 그럴 수가 없다작은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아버지의 일감이 코로나로 없어지니 당연히 수입이 줄고그러면 학원도 마음 대로 갈 수가 없다같은 학원에 다녀야 썸 타는 친구와도 만나고 그럴 수가 있는데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다안경 위로 솟아오르는 김처럼 갑갑한 이야기들이다.

 

조남주 작가의 <우리가 쓴 것>에는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특별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그런 평범하지만 무언가 울림이 있는 이야기들을 픽업해 내는 작가의 기술이 마음에 들었다물론 한편으로는 물어 없이 고구마 한 자루를 먹고 있는 듯한 경험도 곳곳에서 했지만 말이다전반적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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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19 12: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만족할만한 고구마 군요 ㄷㄷ 저도 선물받은 걸 기억하는데 상대방은 준걸 기억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그럴때는 약간 아쉽더라구요 ㅜㅜ

레삭매냐 2021-06-19 23:23   좋아요 1 | URL
어린 나이에는 그런 것들이 다 아쉽고
그랬지만, 이제는 이해심이 깊어져서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이 되
네요.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습
니까 그래.
 
불평꾼들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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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미국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한 소설집이었다. <처녀들, 자살하다>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는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유일한 소설집 <불평꾼들>은 기대 이상으로 매혹적인 작품들로 가득했다. 작가가 30년 이상의 작가 활동을 하면서 발표한 단편들을 묶은 소설집이다.

 

<불평꾼들>은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다. 미국이고 한국이고, 참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는 한국의 방식이 있고, 미국에는 미국의 방식이 있는 법이지. 하지만, 어디에 살든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프랑스 출신 정치학자 토크빌을 인용한 <위대한 실험>에서 주인공 켄들 아저씨는 시카고에서 자신의 아버지 세대보다 더 잘 살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고 싶어, 프리랜서 작가에서 회사 공금을 횡령하는 범죄자로 거듭나게 된다.

 

물론 켄들의 단독범죄는 아니었다. 존 보이코의 회계사 피아세키가 공범이었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진 보이코에게는 푼돈인 돈을 얼마 정도 삥땅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계산에서 그들은 공모에 합의했다. 나름 대비를 했지만, 교활한 자본가는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켄들의 목줄을 조이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되는데, 과연 그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지 너무 궁금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방향을 튼다면 극단적인 흉악 범죄로도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공상의 나래를 펼쳐 보기도 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신속한 고소>도 흥미로웠다. 어산지와 폴란스키처럼 어쩌면 평생 미국 땅을 밟지 못할 처지였던 영국 출신 물리학자 매슈는 대학 신입생이라고 생각한 십대 소녀 프라크르티의 덫에 빠졌다. 물론 그에게도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인도식 중매결혼의 위기에 처한 미국 소녀 프라크르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묘한 방식으로 소녀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장면 또한 미국식 스타일의 전형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 순간, 바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삶의 아주 기본적인 룰이 연상되기도 했다.

 

각각 다른 네 명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변화무쌍한 뜰>도 흥미롭다. 실패한 결혼에 우울해 하다가, 친구네 집에서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아티초크를 따다가 삶의 활력을 찾는 친구(맬컴)도 있더라.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현지인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집주인을 은밀하게 유혹하는 여성 애니도 등장한다. 집주인 숀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짝퉁 손가락 유물로 애니와 뜨거운 밤을 기대하기도 한다. 물론, 애니의 친구 마리아의 태클로 숀의 기대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지 못하고 따뜻한 남쪽나라 플로리다에서 모텔 사업을 해보겠다는 달뜬 꿈을 꾸는 가장도 등장한다. 아마 보통의 아내였다면, 헛된 꿈을 꾸는 남자를 다그쳤을 텐데 그의 배우자는 아마 보살이었던 모양이다. 파탄으로 치닫는 결혼생활을 다시 복구해 보겠다며 무의미한 노력을 하는 커플도 등장한다. 조금 전형적이긴 하지만 결국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도달하게 된다. “나쁜 사람 찾기야말로 가장 큰 문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열 개의 단편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 건 역시 <베이스터>였다.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배우자를 찾기도 귀찮아진 40세의 토마시나가 주인공이다. 결혼은 하기 싫고, 아이는 갖고 싶어진 토마시나는 비상수단을 강구한다. 정자 기증을 받아 아이를 갖기로 한 것이다. 어 그리고 보니 얼마 전, 어느 방송인도 비슷한 방식으로 아이를 낳지 않았던가.

 

<베이스터>를 통해 전통의 가정이 해체되고 있다거나 이제는 더 이상 가족 시스템에 유효하지 않다는 식의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다양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니 좋든, 싫든 내가 아닌 타인이 추구하는 그런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토마시나의 전 남자친구였던 월리 마스라는 녀석의 깜찍한 장난질(!!!)로 토마시나의 플랜이 어긋나 버린다는 게 제프리 유제니디스 작가가 준비한 반전이다.

 

유제니디스 작가의 이번 소설집을 조남주 작가의 신간 소설집과 병행하면서 읽었는데, 과연 한국과 미국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먼 그런 문화적 상이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유제니디스의 작가의 소설집에서 느껴지는 고구마 필링이 조남주 작가의 소설집에서는 더욱 확장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30년이라는 작가 생활이 커버하는 삶의 무게와 서사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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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16 18: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빨리 읽는쟁이를 보았나!

레삭매냐 2021-06-16 19:15   좋아요 5 | URL
조남주 작가의 <우리가 쓴 것>
과 병행해서 읽느라 용 좀 썼답
니다. 허겁지겁...

mini74 2021-06-16 18: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군요. 제목이 아주 많이 끌립니다 불평꾼들 ㅎㅎㅎ

레삭매냐 2021-06-16 19:16   좋아요 4 | URL
과작으로 유명한 작가라고
하네요.

30년 동안 장편 소설 3편
을 썼다고 하던가요...

소설집은 아주 재미집니다.

미미 2021-06-16 19: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베이스터>줄거리가 영화 <메기스 플랜>이랑 비슷하네요~에단 호크도 나오는데 재밌었어요! 레삭메냐님 별5개는 바로바로 찜^^*

레삭매냐 2021-06-16 19:25   좋아요 4 | URL
안 그래도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찾아 보니 <더 스위치>라는 제목으로,
제니퍼 애니스톤 주연의 2010년 로맨
틱 코미디네요.

에단 호크 주연의 <매기스 플랜>도
궁금하네요.

새파랑 2021-06-16 19: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첨들어본 작가네요. 표지가 안땡기긴 하는데 레삭매냐님 🌟 5개는 보증이 되니 일단 담아야겠네요~! 근데 책 정말 빨리 읽으시는거 같아요. 완전 대단~!!

레삭매냐 2021-06-16 19:30   좋아요 4 | URL
그렇지요 표지는 뭐 쫌 구립니다.

다만 알맹이는 아주 흡족했습니다.

재밌는 책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빨리 읽게 되더라구요.

붕붕툐툐 2021-06-16 2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또 레삭메냐님이 재밌다 하시면 그냥 지나갈 수가 없는뎅~ㅎㅎㅎ 고구마 필링에서 빵터졌습니다~ㅎㅎㅎㅎ

레삭매냐 2021-06-18 14:43   좋아요 0 | URL
조남주 작가 소설집 리뷰를 작성해야
하는데, 하도 이 책 저 책 읽다 보니
뒤죽박죽이라 좀 정리를 한 다음에
써야지 싶습니다.

고구마 삘링, 증말...
 
여우 8
조지 손더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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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글을 배워 글을 쓴다. 하지만 녀석은 정식 교육을 배운 게 아니라 맞춤법이 엉망이다. 게다가 녀석이 배운 글은 영어다. 맞춤법이 죄다 틀린 영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려니 얼매나 어려웠을까. 조지 손더스의 <여우 8>을 읽으면서 내가 한 걱정 중의 하나다.

 

웃기는 건, 워낙 이러저러한 글들을 읽다 보니 이제 여우가 글을 배워서 쓴다고 하더라도 뭐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도 우리네가 사는 세상에 별별 일들이 다 생기다 보니 여우가 글을 배운다고 해도 뭐 그럴 수 있지 않나하는 너그러움이 자리를 잡은 걸까.

 

우선 우리의 주인공 여우 8’이라는 녀석은 인간사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보니 가축화된 동물이 손에 꼽을 정도라지. 쇼핑몰 <폭스뷰커먼스>에 들락거릴 정도라면 가축이나 혹은 반려동물로도 삼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상상을 해본다. 미국식으로 제인이나 션 뭐 그런 이름이 아닌 여우라는 명사 뒤에 숫자를 달아 인식하는 방법이 참신했다.

 

여우가 글을 배울 수 있다는 장애물을 건너뛰면 그 다음에는 자연 파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 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여우들의 삶의 터전인 멀쩡한 숲을 밀어 버리고, 새로 생긴 부지에 거대한 쇼핑몰을 짓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업자나 개발업자들에게 자연보호나 환경보존 같은 구호들은 1도 먹히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이익의 추구니 말이다. 자신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후손들 걱정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는다. 현세에서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그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관심사다.

 

조지 손더스의 시작이 어떤 특정인들에 대한 비판이라면, 다음 차례는 우리 보통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렇게 멋들어지게 만든 쇼핑몰을 드나드는 이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쇼핑의 편리함을 극대화한 쇼핑몰이라는 존재는 21세기 미국 소비문화의 상징이다. 온갖 먹거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소품 옷가게 전자제품 가게 등등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아마 멀티플렉스 극장도 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주차장은 기본이다. 그런 쇼핑몰이 들어서기 위해 자연이 얼마나 훼손이 되었는 지에 대해 내가 알게 뭐냐 그래. 그저 입안에서 살살 녹는 팝콘과 탄산음료를 흡입하면서 마블에서 만든 영화를 즐기면 그만이지. 안 그래?

 

이런 무개념한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존재가 바로 여우 8이라는 녀석이다. 녀석은 자신과 함께 인간 세계를 탐험해 보겠다고 나선 친구 여우 7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했다. 그것도 인간에게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원래 집단은 찾을 수가 없게 되어, 다른 집단으로 소속을 이전한다. 그곳에서 만난 짝꿍 여우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여우 8.

 

대가가 쓴 짧은 우화가 주는 울림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간다. 현재 우리 인류는 전대미문의 신종 전염병과 치열한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다. 무제한적인 여행과 인적 교류가 거의 중단되면서 멸종 위기에 처했던 동물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자연이 복원된다는 소식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결국 우리가 사는 지구별을 파괴하고 밑천을 드러내는 근원은 우리의 탐욕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덜 소비하고, 혀의 즐거움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작금에 누리는 삶의 질이 급격하게 달라지거나 그러는 것도 아닐진대 말이다. ‘우리의 초록빛 지구별의 지키자라는 거대한 구호로 타인의 욕망을 제어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러니 나만이라도 당장에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재활용품 활용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여우 8>은 자연의 또 다른 동반자인 여러 동물들과 더불어 사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아주 멋진 책이었다.

 

[뱀다리] 어제 바닷가 개펄에 가서 바위 밑에 숨어 있던 게들을 잡다가 어느 난폭한 녀석에게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깨물렸다. 나중에 보니 피가 철철 나더라. 꼬맹이가 그걸 보더니 대신 복수해 주겠다며 어느 녀석인지 알려 달라고 했다. 짱돌로 난폭한 게를 바수어 버리겠다며 나서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하도 아파서(정말 아팠다고!!!) 그런 생각을 잠시 안한 것도 아니었지만, 게의 평온한 일상에 개입한 건 내가 아니었던가. 대승적 차원에서 녀석을 비롯해서 잡은 게들을 모두 개펄에 풀어주고 왔다. 나에게 위해를 가했다고 해서, 내가 녀석의 삶을 터미네이션할 권리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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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13 03: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표현방식이 참신한 동화네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라면 바로 사서 같이 읽었을 것 같아요.
게에게 물린 손가락은 잘 치료하셧나요? 그 녀석 참.... 그래도 아이가 복수하겟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에고 귀여워라... 뽀뽀 백개를 날리고 싶습니다. ^^

레삭매냐 2021-06-13 08:55   좋아요 4 | URL
조지 손더스 작가의 책들이 많은데
<링컨의 바르도>는 사두기만 하고
읽을 생각은 못하고 있네요.

게에 물린 손가락보다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개펄에서 베인 발바닥이
더 심하더라구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1-06-13 10: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책도 읽으셨군요. 저는 이거 너무 동화스러울 거 같아서 패스했는데..ㅎㅎ 별 세 개! 이 의견을 접수하여 쭉 안 읽기로. ㅋㅋㅋ

레삭매냐 2021-06-14 09:18   좋아요 1 | URL
저의 별점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 굳이 고려하시지 않아
도 될 듯 합니다.

미국식 소비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 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새파랑 2021-06-13 10: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프로필사진하고 책표지가 왠지 닮은 느낌? ㅎㅎ 어제 즐거운시간을 보내신거 같네요. 상처 잘 치료하시면 좋겠네요^^

레삭매냐 2021-06-14 09:19   좋아요 1 | URL
저의 프로필 하마는 제가 예전
에 일러스트 배우던 시절에
맹근 것이라, 깊은 애착을 가지
고 있답니다.

오늘 아침에 마데카솔 발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