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풀어쓴 성경 - 원문의 음성을 오늘날의 목소리로 살려낸 번역과 메시지 풀어쓴 성경
강산 지음 / 감은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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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학과 성경 관련 서적들을 읽고 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그동안 소설과 역사책들을 주로 읽어 왔는데 이 분야에는 도전한 적이 없어서 마치 신세계가 열린 듯한 느낌이다. 우선 아예 모르는 분야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선 접근성이 좋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모르고 있거나 미진했던 부분들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의식이 생긴다고나 할까. 어쨌든 새로운 영역을 만나 좋다는 이야기다.

 

4월초에 도서관에 갔다가 가벼운 기독교 관련 서적을 빌리는 김에 신약 가운데 하나인 <사도행전>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사도행전, 풀어쓴 성경>을 빌렸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 반납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책을 펼치게 됐다. 아니 근데 이건 진짜 쌩 <사도행전>이었다. 교회 사역도 하는 강산 저자가 헬라어 원전과 기타 자료들을 섭렵해 가면서 새로운 번역을 시도했다는 거다. 기존의 성경들은 헬라어 지명과 인명들을 이상하게 바뀌어놔서 도무지 알 수가 없게 만들어 놨다. 일단 그런 점에서 합격점을 주고 싶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로 알려져 있다. 원래 이 책은 공관복음 중의 하나인 <누가복음>과 한 권의 책이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행적을 다룬 역사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선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죽은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새로운 사도로 맛디아를 제비뽑기로 선출한다. 그리고 사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앞서 세 번이나 배신했던 과거를 가진 베드로의 변신이 눈부시다. 나중에 바리새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말하는 것처럼, 갈릴래아 출신 어부 베드로가 성전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설교하는 장면은 배움 없는 이가 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간 순교 이후, 첫 순교자는 초대교회 7명의 사역자 가운데 한 명으로 임명된 스테판이었다. 그가 순교하던 곳에 사도행전의 후반부를 책임지게 될 사울(사도 바울)이 있었다. 타르수스 출신 바리새파 유대인이었던 사울은 태생부터 로마 시민권자였고, 유력한 유대지도자 가말리엘의 제자이기도 했다. 젊은 지식인이었던 사울은 기존의 유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서는 그런 인물이었다. 크리스천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사울은 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극적인 회심의 장면을 보여준다. 바리새파 지식인 사울이 그 누구보다 앞장 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 바울로 변신한다.

 

그 앞에서 초대 교회에 있던 헬라인(이방인) 신자들과 유대계 신자들의 갈등에 대해서도 사도행전은 언급하고 있다. 훗날,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두 집단은 격렬하게 충돌하게 된다.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기독교는 사도들을 중심으로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복음전파를 시작한다. 특히 사마리아에서 필립은 왕성한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가세해서 사마리이 선교에 나서기도 했다. 사도들의 기적과 이사를 곁에서 본 마술사 시몬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이들의 선교 활동 가운데, 마가복음의 저자로 알려진 마가 요한과 만나 같이 선교를 하다가, 갈등하고 결별하는 과정도 볼 수가 있었다. 얼마 전에 마가 요한을 주인공으로 한 <알렉산드리아의 사자>란 책도 알게 되었는데,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행전에는 몇몇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우선 초반 유대인 선교에서 이방인 선교로 전환하게 된 지점 그리고 바울이 성령님의 인도로 아시아가 아닌 서방의 마케도니아로 선교의 방향을 틀게 된 지점들이다. 이 두 가지 지점은 유럽 세계가 기독교화 그리고 기독교가 단지 유대 지방을 넘어선 세계종교화로 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1차 전도여행 가운데 킬리키아 지역의 뤼스트라 지역에서 걷지 못하던 이를 걷게 만든 이적을 바울과 그의 동역자 바나바가 보여주자, 사람들은 그들을 헤르메스와 제우스로 부르기도 했다. 선교에 있어,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 이런 기적과 이사야말로 가장 확실하면서 빠른 선교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한편, 이방인 선교 가운데 가장 문제로 대두된 것이 바로 유대인만들의 고유 의식이었던 할례였다. 유대계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도 반드시 할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서방의 우상숭배 문제와 제례 의식에 사용된 부정한 고기 섭취에 대한 문제가 핵심 논쟁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초대 인사들은 예루살렘 공의회(A.D. 48-50)를 개최해서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로 결정하고, 이방인 선교의 핵심이었던 바울과 바나바도 참석하기에 이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이자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던 야고보는 이 자리에서, 새로 기독교도가 된 이방인들의 할례를 면해주는 대신, 우상숭배의 금지와 제례에 사용된 고기의 섭취를 삼갈 것 그리고 음행들을 멀리할 것을 결의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이방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됐다. 유대인의 민족적 정체성이나 토라에서 규정한 율법을 따르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의회의 판단이었다. 이것은 초기 예수 운동에 날개를 달아 주는 획기적 결정이었다.

 

바울의 전도여행 파트너는 계속해서 바뀌었다. 1차 전도여행에서는 바나바가 동행했고, 2차 전도여행에서는 실라와 티모테가 함께 했다. 바울 선교의 가장 큰 적은 각처에 자리잡은 바리새파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바울 일행을 공격했고 물리적 위해를 가하기도 했다. 바울과 동역자들에게 매질과 투옥은 일상이었다. 어디서는 돌을 맞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사명을 붙들고 그들은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들을 반기지 않는 곳들에 대한 방문을 이어갔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은 먼저 그의 주장이 당시 그리스와 소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제국의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혁명적 사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바울을 로마 법정에 고소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두려움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기존 유대 율법으로 만들어진 그들만의 종교, 사회적 질서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를 들어 바울을 산헤드린과 로마 법정에 세웠지만,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바울은 기독교 변증의 과정을 피력하면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보였다. 카이사리아의 총독 펠릭스는 단지 종교적 신념의 차이였다며 바울이 죄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로마시민권자로 로마 황제의 최고 법정에 항소한 바울은 카이사리아에 투옥되어 있는 동안, 골로새서, 빌립보서, 에베소서와 빌레몬서 같은 각지의 기독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들을 작성했다. 나중에 몰타와 시칠리아를 거쳐 로마에 가서는 가택연금을 당해 있었다. 그동안에도 다양한 인사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다.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네로 황제 시대에 로마대화재 사건 이후, 서기 64년에 체포되어 64/65년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 그와 함께 선교 여행을 함께 하면서 기록한 누가가 기록한 '사도들의 행전'을 다시 읽으니, 그간에 알고 있는 부분들을 다시 확인하고 보정하는 그런 계기가 된 것 같다. 초기 기독교 발전에 있어 중요한 부분들ㄹ을 원전으로 만났으니 이제 다음 차례는 당시 기독교 복음의 전파 중심인물인 바울에 대한 책도 만나봐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절판된다고 해서 얼마 전에 부랴부랴 마련해 둔 파울라 프레드릭슨의 <바울, 이교도의 사도>가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뱀다리] 성경의 기록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편집'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여러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강산 저자도 아마 예외는 아닌 듯 싶다. '공간 이동'이라는 해석에 대해 이해는 되지만, 헬라어 원문과도 많은 차이가 나지 않나. '성육신'이란 표현도 마찬가지고. 21세기도 이런 성경에 대한 '편집'이 시도되는데, 성경이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1세기 경에는 얼마나 많은 편집이 들어갔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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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5대 제국 - 통通박사 조병호의
조병호 지음 / 통독원(땅에쓰신글씨)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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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추천으로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최근 성경과 신학 관련 책들을 섭렵하고 있는데, 뭐랄까 아주 시기적절한 그런 타이밍에 만난 책이라고나 할까.

 

유대민족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 시대부터 저자가 5대 제국의 반열에 올리지는 않은 애굽, 이집트와의 불가분의 관계가 소개된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 바로의 꿈 해몽으로 일약 총리대신의 자리에 올랐다. 저자는 이집트식 농업이 당대 최첨단 산업이었다고 기술한다. 물론 어떤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가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7년 대풍년에 이은 7년 대흉년으로 거의 굶어 죽게된 가나안 요셉의 형제들이 자신을 찾아와 구원을 얻는다.

 

70명의 가족으로 출발한 히브리인들은 4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무려 120만 명에 달하는 대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히브리 민족 해방 전사로도 볼 수 있는 모세가 등장해서, 야훼의 말씀에 따라 요셉의 바로와는 다른 바로(파라오)의 억압 아래 놓인 히브리 사람들을 구해낸다. 히브인들을 착취해서 공짜 노동력을 쓰던 바로는 홍해작전으로 정예 병사들을 잃고 제국 건설에 실패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집트를 5대 제국의 반열에 올려놓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유대민족이 40년에 걸친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율법공부에 매진했고 그 결과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나 연구 결과가 있었던가. 이런 직관적이거나 거의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는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첫 번째 제국이 바로 앗수르, 혹은 앗시리아로 알려진 국가다. 유대인들에게 앗수르는 그야말로 원수 같은 존재였다. 유대인들이 사는 팔레스타인은 예나 지금이나 지정학적 요충지다. 중근동을 제패하기 위해 강력한 앗수르 제국은 반드시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래 둘로 나뉜 북이스라엘-남유다를 제압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서쪽으로는 이집트를 그리고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야훼의 명령을 받은 선지자 요나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로 가지 않았다가 물고기 뱃속에 갇히는 낭패를 당한다. 요나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원수 같은 앗수르 사람들을 구원하라는 야훼의 말을 수용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뒤,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은 자그마치 185,000명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남유다 예루살렘 공략에 나선다. 아하스왕의 뒤를 이어 13대 남유다의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저자가 지적한 대로, 어쩌다 한 번씩 등장하는 그나마 괜찮은 왕 가운데 하나였다. 풍전등화 같았던 남유다 왕국의 운명은 여호와의 개입으로 단번에 역전되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산헤립의 18만 대군이 모두 죽어 버린 것이다. 강경일변도로 제국 경영에 나섰던 앗수르는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망해 버렸다.

 

저자는 헤로도토스가 저술한 <역사>에 산헤립의 남유다 침공과 불가사의한 침공군 전멸에 대한 기록으로 해당 사건을 기정사실화한다. 그런데 과연 헤로도토스의 다른 기술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나는 궁금하다. 취사선택한 부분만 맹신하는 거라면, 그런 태도 역시 지양해야할 것이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뒤, 광범위한 통혼정책을 펴서 유대민족을 정체성을 일거에 파괴해 버렸다. 그 결과, 남유다에서는 형제국가였던 북이스라엘을 사마리아라고 부르면서 멸시하기 시작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나서 150년 정도 지나, 남유다 역시 신흥 제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해 버렸다. 분열 왕정 시대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등장해서 활약했는데, 그건 그만큼 양국의 지도자들이 여호와가 보기시에 다양한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이세벨 시절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그리고 히스기야 시절에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맹활약을 펼쳤다.

 

바벨론의 네부갓네살왕은 세 차례에 걸쳐 다수의 유대인 포로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1차 포로시절에 대표적인 인물로 그 유명한 다니엘이 있다. 다니엘은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의 멸망을 넘어 바사(페르시아) 시절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의 조상 요셉처럼, 역시 제국의 최고권력자인 왕의 꿈 해몽에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다니엘서에서는 미래에 등장할 여러 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한 예언이 담겨 있다. 바벨론 제국은 앗수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태도로 피지배민족들을 대했다.

 

유대민족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70년의 바벨론 유수를 보내고 바사 고레스왕 시절에 비로소 포로귀환이 시작된다. 페르시아 고레스-아하수에로왕들은 이방신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전능한 여호와의 능력에도 공감했던 모양이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으로 70년간 포로생활하던 유대인들이 속속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동방을 제패했던 오리엔트를 대표하는 페르시아 제국 역시 서방(옥시덴트)에서 떠오르던 강자였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공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부왕 필리포스의 후원 아래,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로 성장한 알렉산드로스는 명목으로는 예전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에 대한 복수라고 하면서 4만 명의 용병들을 동원했다.

 

전광석화 같은 공격으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이수스 전투와 가우가멜라 전투 등으로 패퇴시키고 마침내 페르시아 전역을 점령하는데 성공한 알렉산드로스는 비록 요절하지만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접목시킨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 시대를 열게 된다. 그리고 헬라 제국의 뒤를 이어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게 되는 로마 제국의 시대가 도래한다.

 

구약 말라기에서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400년간의 공백기가 존재한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기존의 헬라 제국이 네 개의 왕국으로 분열되고, 그 중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관장하던 셀레우코스 왕조 시절 문제적 군주 안티오코스 4세 시절에 강압적 헬레니즘 문화 전파에 반발한 유대인들의 마카베오 혁명이 성공하고, 잠시 동안 하스움 왕조가 지속되기도 했다. 이 부분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처음 접해보는 거라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사실 유대 지방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고대 오리엔트 제국사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낸다는 미션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 내용들을 다루려다 보니, 깊이에 있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내 생각은 성경과 고대 유대에 대해 초보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에게 어울리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경을 자주 읽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의 재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사역자 출신 작가가 성경을 근간으로 해서 고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여담으로 많은 부분에서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와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가 인용되었는데, 원전으로 한 번 만나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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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4-1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경은 흔히 유대인 고유의 역사와 종교관을 가진 책으로 오해를 많이들 하고 있는데 고대 오리엔트 국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경속 창세기 신화는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인 ‘에누마 엘리쉬와 노아의 대홍수는 길가메쉬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그리고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동태복수법은 함무라비 법전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언약은 종주-부용국 조약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하지요.
성경의 잠언의 일부는 이집트의 ‘아메네모페의 지혜와 문구 자체가 거의 일치할 정도로 유사핟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대 유대인이ㅡ 성경은 주변 대제국의 문화적 자산을 공유하되, 그 속에 유대들만의 고유한 신학적 가치(유일신 신앙, 윤리적 유일신론)를 담아 재해석한 창작물이라고 보심 될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6-04-17 13:35   좋아요 0 | URL
유사 이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격언
을 고려해 보자면 이해가 가는 지적
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나먼 섬들의 지도 -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5개의 섬들
유디트 샬란스키 지음, 권상희 옮김 / 눌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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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교차가 큰 어느 주말 나는 도서관에 들러서 희망도서를 대출하고, 지난달에 빌려서 읽다말고 반납한 유디트 샬란스키의 <머나먼 섬들의 지도>를 빌려다 다 읽었다. 나는 구간을 빌려서 읽었는데 이 책에는 모두 50개의 섬들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과연 동독 출신 작가 유디트 샬란스키는 과연 이 섬들 가운데 몇 군데나 직접 방문했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런데 간 적 없고, 아무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들이라는 책 표지의 문구를 고려해 볼 때 작가는 지도상에서 그리고 문헌과 기록으로만 그 섬들을 방문한 게 아닌가 하는 사유를 해봤다. 요즘처럼 너튜브가 발전한 세상이라면 세상에 안가본 적 없는 곳들을 탐험하는 인간 고유의 욕망이 담긴 콘텐츠를 참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문득 책에 소개된 50개의 섬 가운데 한 곳을 검색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게을러서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어려서 지리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지금은 작고하신 큰아버지가 어디선가 구해다 주신 <아틀라스>라는 지도책을 정말 소중하게 애지중지하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엄격한 검열이 존재하던 시절이라, 북한의 인공기가 매직으로 죽죽 그어져 있었지.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구판에는 오대양에 존재하는 모두 50개의 섬들이 소개되었는데 개정판에서는 5개의 섬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관내 도서관에는 재개정판 책이 없어서 그 섬들은 만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익숙한 섬들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전유럽을 석권했던 풍운아 나폴레옹이 대서양의 외딴섬인 세인트헬레나라는 섬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미 그전에 유배되었던 엘바섬에서 탈출한 이력 때문인지, 이번에는 무려 일개 연대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 세인트헬레나에서 6년을 보내고 나서 죽었다. 문득 어디선가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에서 비소 중독으로 서서히 죽음을 맞았다는 음모설을 읽은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에서 죽은 뒤, 19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조국 프랑스로 돌아오게 된다. 그 뒤 그는 앵발리드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오래 전부터 태평양전쟁 같은 전쟁사에 관심이 있다 보니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과 일본군이 격렬하게 맞붙은 장소였던 이오지마도 빠트릴 수는 없을 것 같다. 1945223, 6명의 미군 해병대원들이 일본군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오지마섬의 수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장면을 전쟁사진사가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 이 사진은 연출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세계 전쟁 사진 중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하고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오지마는 미군이 일본 본토 공습을 위한 불침항공모함으로 절실하게 필요한 전략적 가치 때문에라도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반드시 확보해야만 했다. 일본군의 발악적인 저항은 수리바치산에 성조기를 꽂고도 한달이나 지속됐다.

 

최근 미군의 이란 공격과 관련되어 다시 한 번 관심을 끈 섬이 바로 디에고가르시아다. 영국령인 디에고가르시아의 해공군 기지 사용 문제로 미국과 영국이 출동했다. 영국은 모리셔스를 독립시켜 주는 대가로 디에고가르시아가 포함된 차고스 제도를 영유하게 되었는데, 그 지역에 군기지를 설치하면서 그곳에 살던 500가구의 원주민들을 강제로 추방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세계의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영국이 배후에 있다는 점, 오래전 종식된 식민지배의 유산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유디트 샬란스키 작가가 소개하는 다양한 형태의 세계 각처에 흩어진 섬들에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세계 곳곳에 자신들이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통제할 수가 없는 그런 모양이다. 알려지지 않은 섬에 자신이 처음 상륙하겠다는 욕망을 가진 모험가들의 이야기는 대항해시대 이래 작가들의 매력적인 소재가 아닐까 싶다. 토막지식으로 툴레(thule)가 로마인들이 망하는 세상의 끄트머리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자동차 위에 매달고 다니는 그 툴레가 맞는 거지.

 

코스타리카령이라는 코코섬에서 보물을 찾는답시고 무려 19년을 보낸 독일 출신 아우구스트 기슬러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어디선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보물섬에서 보물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코코섬의 곳곳을 파헤친 의지와 집념의 사나이 기슬러의 무모한 도전을 어떻게 봐야할까. 가끔 그런 엉뚱해 보이는 도전들이 의외의 결과를 도출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번 경우에서만큼은 포르투나가 그에게 미소를 보내지 않았나 보다.

 

고립된 섬에 외래종의 도입은 낙원을 지옥으로 바꾸는 하나의 재앙일 수도 있다. 언젠가 너튜브에서 본 영상에서는 어느 섬에 살지 않던 토끼를 풀어 놓았다가 섬의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는 내용을 볼 수가 있었다. 굴파기를 좋아하는 토끼들 때문에 섬의 지반이 약해지고, 섭생이 가능한 풀들을 다 뜯어 먹는 바람에 섬이 황폐해져 버렸다고. 결국 섬의 생태계를 원상복귀 시키기 위해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들었다고 한다.

 

고래잡이가 완전히 금지된 줄 알았는데, 포경이 지구의 어디선가에서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남극 근처의 디셉션섬에서 잡혀온 고래가 해체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를 보자니 그저 서글퍼질 따름이었다. 고래기름을 얻기 위해 땔감으로 사용된 게 펭귄의 사체라는 사실에서는 망연자실해졌다. 인간 탐욕의 끝이 어딘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남극 대륙 근처의 로리섬에서 최후를 맞은 탐험대원 앨런 조지 램지의 장례식에서 스코틀랜드 대원 모두와 몇 마리의 아델리펭귄이 경례를 했다는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유디트 샬란스키가 작가였다는 점을 나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공간은 태생적으로 외로운 곳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시에 축복이자 자연의 실험장이라는 작가의 지적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그런 섬이라는 곳이 낙원일 수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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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22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래사냥(포경)은 현재 국제적으로 엄격히 제한되고 있으나,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상업적 혹은 전통적 목적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현재 전 세계적으로 상업적 포경을 공식적으로 유지하는 나라는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이고 (일본은 IWC탈퇴,노르웨이는 이의제기),북미 원주민, 그린란드, 덴마크령 페로 제도 등에서는 조상 전래의 전통과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포경이 IWC의 허가 아래 일부 허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은 고래 사냥이 불법인데 특히 일본의 경우 2024년에는 기존 밍크고래, 보리고래 등에 더해 참고래(멸종위기종)까지 포획 대상에 추가하며 대형 포경선 ‘간게이 마루‘를 출항시키는 등 포경 활동을 확대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지요.

레삭매냐 2026-03-22 15:25   좋아요 0 | URL
포경이 세계적으로 금지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니
참 그렇네요.

2026-03-29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6-04-02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에 아틀라스 지도책이 유명하긴 했는데, 본 적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도와 문헌만 찾아보아도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정리가 잘 된 책들이 많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직접 가보고 알아보는 것도 좋은 점이 있지만, 여러가지로 한계가 있으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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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다시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을 읽었다.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전에 <암스테르담>으로 이언 매큐언과 처음 만났다. 그리고 9년 전에 두 번째로 만나서 리뷰를 남겼다. 그리고 병오년 3월의 연휴에 지난달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린 <암스테르담>다시읽었다.

 

때는 1996, 레스토랑 평론가이자, 사진작가 그리고 정원사였던 46세의 몰리 레인이 죽었다. 그녀의 장례식에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첫 남자는 성공한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클라이브 린리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저지>의 편집국장 버넌 핼리데이다. 그 둘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몰리 레인과 연인이자 친구로 오랜 세월을 같이 보내온 사이다.

 

몰리의 남편 조지 레인은 그녀의 외도를 알면서도 용인해 왔던가. 그의 입장에서 아내의 불륜 상대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불쾌하지 않았을까나. 그 둘이 전부가 아니었다. 3의 남자이자 최근까지도 불륜관계를 가져온 영국 내각의 외무부장관 줄리언 가머니도 등장했다. 그전에 16세의 몰리를 만난 비트 제네레이션의 시인 하트 풀먼도 있었던가. 그들 사이에서 왠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진짜 큰 사건은 조지 레인이 기자 출신 편집국장 버넌에게 전화해서 몰리가 남긴 아주 깜짝 놀랄 만한 사진이 있다고 제보하면서부터 이야기는 힘차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기자출신 답게 동물적인 감각으로 버넌은 조지 레인이 보여준 세 장의 사진이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저지>의 구세주가 될 거라는 점을 직감한다. 그건 바로 어쩌면 미래 영국 국가의 최고지도자 총리가 될 지도 모를 가머니의 비행을 폭로하는 사진들이었다.

 

한편, 젊어서 상속받은 유산으로 호시절을 보낸 클라이브는 노년에 대한 걱정으로 안락사를 계획한다. 그리고 버넌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부탁할 계획이다. 그리고 교향곡 작곡에 전념하던 클라이브는 자신의 사고틀 속에서 음악적 영감을 포착하기 위해 번잡한 런던을 떠나 등산으로 기분전환을 위해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향한다. 그전에 버넌은 자신이 구한 가머니의 사진에 대해 어려울 때마다 자신을 도와준 클라이브에게 털어 놓는다. 하지만 이 멜로디의 대가는 마치 다가올 버넌의 미래를 예시라도 하듯 그의 시도를 말린다.

 

언론사에 포진한 고루한 문법주의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 마침내 편집국장의 자리에 오른 버넌은 가머니를 끝장내 버릴 복장도착자로서 드레스 입은 그의 사진을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그게 벌써 30년 전, 판매부수 증가와 수익창출에 눈이 먼 언론에 대한 이언 매큐언식 매서운 비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도 이미 언론은 대중의 알 권리라는 미명 아래, 이런 식으로 자극적인 기사 작성을 치열하게 내부적으로 고민했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진 공표를 앞두고, 버넌은 파렴치하고 위선적인 숙적의 부고 기사까지 점검하는 치밀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버넌 할리데이의 거의 성공할 뻔 했던 이런 시도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투사에 의해 저지당했다. 의사 출신 가머니의 아내였던 로즈의 정면승부로 단박에 뒤집혀 버렸다. 경매에서 낙찰 받은 가머니의 사진을 신문에 공개하기 전에, 로즈는 언론사를 불러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로즈의 영민한 대처로, 미스터 가머니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버넌 핼리데이는 추잡한 스캔들에 매달린 파렴치한 언론인으로 벼룩이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고 회사에서 권고사직이라는 형태로 해고되고 말았다.

 

이언 매큐언은 마치 한 편의 심포니를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처럼 숨 막히게 전개되는 서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몰리-클라이브-버넌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막역한 사이가 되었는지에 대한 과거의 조명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관계에 이질적인 요소였던 줄리언 가머니를 정상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버넌의 시도 그리고 사고를 소리로 변환시키기 위해 전념하는 클라이브의 창작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어그러지는지에 대한 과정들이 그야말로 폭풍처럼 몰아치고, 격랑 끝에 전도되어 추락에 도달해 버리는 저자의 연출이 대단했다. 내가 이런 이언 매큐언의 작법에 반해서 그의 모든 작품들을 읽게 되어 버렸던가.

 

소설 <암스테르담>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클라이브 린리와 버넌 핼리데이는 결국 자기 파멸해 버리고 만다. 자신의 모든 걸 태워서 창조한 교향곡은 클라이브가 보기에도 표절에 불과했다. 결정적으로 순수한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그의 작업은 방해받았다. 심지어 친구 버넌의 고발로 경찰서 조사까지 받지 않았던가. 진작 마감을 넘기고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에서 리허설을 앞둔 상황에서 억지로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낸다는 건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었으리라. 그런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몰리와의 재회였다.

 

아내 로즈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줄리언 가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대중의 비난으로부터는 벗어났을지 몰라도 사실상 정치가로서 그의 운명은 더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게임의 승리자는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몰리의 남편인 조지 레인이었다. 이언 매큐언이 엔딩에 이런 강력한 한방을 준비해 두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차라리 그전에 읽은 것들을 모두 잊어 버려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문득 한 책을 세 번 이상 읽은 게 몇 번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소설 <암스테르담>에서 노골적인 플롯의 전개 대신, 마치 이야기가 스스로 굴러가듯 그렇게 무심하게 배치한 이언 매큐언의 기법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걸작은 다시 읽어도 또 그렇게 재밌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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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3-03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이시군요^^
저는 두번 읽었어요.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혹시 익숙해진 것들이 있어서 다른 생각을 할지 모르겠네요 ^^

레삭매냐 2026-03-03 10:33   좋아요 1 | URL
처음에 <암스테르담> 읽었을 적에는
어리버리했던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좀 더 진중하게 그리고 어제
는 뭐랄까 여유있게 접근했다고나 할
까요.

넷플 같은 OTT 에서 영화/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그렇게혜윰 2026-03-04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번세번 읽어도 좋은 책인가요? 다음 독서모임에 추천해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6-03-05 12:56   좋아요 0 | URL
저는 재밌게 읽었는데, 책이
상대적인 것이라 다른 분들도
좋아하실지는...

물론 다른 의견이 도출되는 게
또 독서모임의 묘미긴 하지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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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건 아무래도 운명이지 않을까 싶다. 무려 18년 전에 읽은 다니엘 글라타우어 작가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그 때 밀레니엄 감성으로 에미 로트너와 레오 라이케가 빚어내는 이메일 사랑을 읽었다면, 지금은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나이가 들고 보니 사람들간의 관계는 아무래도 운명적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만남의 계기로부터 시작해서 내가 평생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과 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항상 나의 예상을 벗어나기 마련이니 말이다. 다니엘 글라타우어 작가는 에미와 레오의 관계를 잘못된 이메일 수신으로부터 시작한다.

 

잡지 구독 취소를 여주인공이자 웹디자이너 에미 로트너가 엉뚱한 이메일 주소로 보내면서 판타스틱한 이메일 사랑이 시작된다. 수신자는 언리심릭학자라는 레오 라이케.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실시간도 아닌, 시간차를 두고 마치 핑퐁 게임을 하는 것처럼 진행되는 이메일 주고받기는 독자에게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직접 대면으로 만난 사이가 아니다 보니, 어느 일방이 답신을 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끊어질 수 있는 아주 위태로운 관계였다. 물론 에미와 레오가 계속해서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그런 위기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또 관계의 묘미란 게 그런 게 아니겠는가.

 

나는 단박에 에미 로트너가 타고난 냉소주의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1, 2번 식으로 번호를 매겨 가며 쪼아대는 품새에서 그런 점들을 느낄 수가 있었다. 레오가 구사하는 독일식 유머도 딱히 호감이 가진 않았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사건들, 레오의 전여친 마를레네의 등장, 어머니의 죽음 같은 사건들이 차례로 등장하고, 갈등이 빚어지고 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에미와 레오는 가상현실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결국 둘은 손님들로 북적이는 후버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다. 하지만, 소설의 어디선가 지인들이 말해준 것처럼 에미와 레오가 현실 세계에서 만나는 순간 그들이 빚어내는 서사는 바로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레오는 식별놀이라는 미명 아래 여동생 아드리네를 동원해서 세 명의 에미 후보들을 선발하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나는 어느 지점에서 레오를 요즘 말로 하면 영포티가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하기도 했다. 무시로 들어오는 에미의 공격을 능란하게 받아치는 재치가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와인이나 위스키에 취해 취중진담을 하는 장면에서는 그런 연애의 실수들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다를 게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전에는 보통 전화가 매개체였었는데, 이 책에서는 이메일로 진화했다는 점 정도를 변별점으로 들 수 있을까. 하긴 요즘에는 전화-이메일을 뛰어 넘은 메신저라는 아주 효과적이면서 치명적인 대체 수단이 개발되긴 했지만 말이지.

 

에미와 레오는 결국 음성메시지라는 방법을 동원해서 서로의 실체에 다가서는 방식을 택했던가. 18년 전에는 마침 오디오 레코딩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메시지를 녹음해서 파일로 만들어서 보내는 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조차 유치해 보이게 되었지만. 어떻게 보면 서간체 소설로도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만 그 방식이 편지가 아닌 이메일이라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일방적인 방식이었다는 느낌이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메일 역시 즉답을 받으면 좋겠지만, 드라마 <글로리>에서 하도영이 말했다시피 무응답도 응답의 한 표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뛰겠지만.

 

에미와 레오 간의 소위 밀당은 에미의 남편 베른하르트가 둘 사이의 오간 이메일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그동안은 판타지에 가까웠다면, 베른하르트라는 변수이자 메기가 느닷없이 등장해, 레오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메일로 전달하면서 조금 당혹스럽게 리얼리티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있던 에미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 그전에 에미가 자신의 멋쟁이 친구 미아를 레오에게 소개시켜 주는 장면도 있었지. 에미는 왜 자신이 직접 레오를 만나지 않고 대리인으로 미아를 선택해서 레오와의 만남을 주선했을까. 아마 에미는 레오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거라고 예상하고 그런 시도를 한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레오는 에미가 던진 제안을 덥썩 물었고, 레오는 에미의 예상과는 달리 미아와 썸을 타기도 했다. 문제는 레오와 미아는 에미가 설정한 대로, 썸 이상의 선을 넘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에미가 설정한 거라면, 정말 대단한 연애의 고수가 아닐까.

 

어쨌든 그 수많은 고민과 오해의 시간을 뛰어 넘어 에미와 레오는 결국 만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그 둘은 과연 만났을까? 적절한 순간에 소설을 끝맺는 다니엘 글라타우어 작가는 마치 후속작 <일곱번째 파도>를 예상하고 이런 결말을 예비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18년 전에도 너무 재밌게 봐서 당연히 후속작인 <일곱번째 파도>도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리뷰 기록을 찾아보니 아무래도 그 책은 읽지 않은 것 같다. 그건 1년이라는 출간의 시간차 공격 때문이었을까? 이제라도 구해서 읽어봐야지 싶어졌다.

 

처음 읽을 적에는 내가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그렇게 공감하지 않았나 싶다. 에미와 레오의 감정들이 충돌할 때는 같이 공조하면서 흥분하기도 했고, 둘이 온라인 와인 데이트를 할 때는 그 정취에 취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덤덤할 따름이다. 그냥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관조가 섞인 무심한 감정이 들 뿐. 그래도 여전히 에미와 레오의 티키타카는 재밌고 유쾌했다. 물론 한줌의 씁쓸함도 빠질 수는 없겠지. 그렇게 내 삶에 스쳐 지나간 다양한 인연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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