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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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전에 빌린 책들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빌린 책이다. 내가 도서관을 사랑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물론 어떤 책을 빌리러 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만나게 되는 책들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나름 목적 있는 독서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그것이 책 읽는 이들의 즐거움이 아닐까.

 

아마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저자가 에코이기 때문이리라. 숱한 저자들일 책을 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뜻 집어 들지는 않는다.

 

이 세계적인 석학은 정보 과잉과 극단적 소비의 시대를 유동 사회(Liquid Society)라고 명명한다. 우리 현대인은 소비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우리는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끊임없이 사들이고, 방치하고 결국 폐기한다. 저자의 주장 대로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핸드폰은 이미 우리의 눈을, 귀를 그리고 심지어 성기까지 대신할 판이다.

 

에코는 또한 SNS와 너튜브 시대에도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자신은 트위터를 하지도 않는데, 자신을 사칭한 이들이 암약하는 공간이 바로 인터넷 공간이라는 점을 꼬집는다. 그렇다면 그를 사칭한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유명세가 아닐까? 며칠 전 들은 팟캐에서는 인별그램을 보면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이 필라테스를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필라테스와 빡센 다이어트로 만들어진 환상적 몸매는 버추얼 공간에서 자산이 된 지 오래다. 누군가의 고통이 나에게 행복이라는 생각으로 동영상을 찍어 너튜브에 올릴 생각을 하지 말고, 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대가는 말한다. 진짜 넘쳐 나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적합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에코 선생은 자신의 책에서 미친 세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 표현은 역자와 출판사의 작품일까? 그것이 좀 궁금했다. 에코 선생은 어느 인터뷰에서 당시 이탈리아 총리였던 베를루스코니가 히틀러 같다는 비유를 적당하게 만들어서실은 언론을 준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기자가 지식인의 속마음까지 넘겨짚어서 기사화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긴. 세 개나 되는 신문사들이 경쟁적으로 사실을 마음대로 왜곡하고 주작질도 마다하지 않는 언론 현실에 빗대어 본다면 그 정도는 애교지 싶지만 말이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광풍처럼 몰아닥치는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들이 많다. 에코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세계는 거의 우연으로 만들어진 세계다. 그런데 어떤 우연들이 겹친다고 해서, 누군가가 어떤 사적 이익을 편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근거 없는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맹신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음모와 비밀들은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이다. 가령, 미국의 달나라 착륙에 대해 여전히 불신하는 이들이 있는데 만약 그랬다면 당시 가장 유력한 라이벌이자 검증할 실력까지 있었던 소련이 가만 있었겠냐는 것이다. 지금은 퇴임한 어느 나라 대통령 역시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검증되지 않은 낭설들을 퍼뜨리는데 앞장섰다가 결국 선거에서 지고 초라하게 물러나지 않았던가. 자신의 본거지를 남부의 어디로 옮겨 권토중래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더 이상 정치판에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시 대가는 대가라는 생각이 에코의 글들을 접하면서 불쑥불쑥 들었다. 이제 더 이상 이 작가의 빛나는 문장들과 사유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베를루스코니 같은 B급 정치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끝으라는 말로 점잖게 그는 조언한다. 내추럴 본 관종을 자처하는 그런 인물들에게 언론이나 대중이 주는 관심 자체가 과분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도 그와 유사한 인물들이 준동하고 있는데 그들에게도 에코 선생의 처방전을 주문하고 싶다. 보수언론의 지면이고 자신이 그렇게 애착하는 SNS고 간에 뭐라고 떠들어 대건 간에, “똥싸개타령을 하던 에코의 어머니가 하셨던 대로 그냥 무시하라는 거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다. 내가 던진 일말의 관심과 비판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다.

 

모바일폰에 대항하는 책의 시대가 끝났다는 타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는 책은 꿋꿋하게 이 위기의 시절을 버티어 가고 있다. 수백년 전의 책들은 여전히 우리의 곁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80년대 초반에 등장한 플로피 디스크를 읽어낼 수 있는 컴퓨터는 이제 더 이상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정전이라도 된다면, 그 현란한 정보 검색과 숱한 기능을 자랑하는 이북을 필두로 한 전자기기들은 모두 쓸모 없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라는 게 현자의 고언이다. 우리가 신주 단지 모시듯 떠받드는 CD나 엄청냔 대용량을 자랑하는 USB도 마찬가지란 말씀. 나만 하더라도 오래 전 100메가 짜리 ZIP 디스켓이나 1기가 짜리 재즈 드라이브가 출현했을 때 얼마나 경이롭게 느꼈던가. 지금은 손톱만한 사이즈의 USB들이 그 이상의 저장 용량을 자랑한다. 앞으로 저장 매체 기술의 진보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저장된 정보의 유용성과 유효기한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는 점도 에코 선생은 예리하게 지적한다.

 

정보 과잉의 시대, 에코 선생은 인터넷을 타고 퍼지는 가짜 뉴스들에 대해서도 경계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는다. 예전에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전파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범지구적 차원의 가짜 뉴스가 횡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팩트 체크에 좀 더 신중하라는 주문도 잊지 않는다. 아니 그런데 그런 팩트 체크를 담당해야할 언론이 나사서 투박한 스타일로, 자신이 예전에 썼던 기사에도 반하는 가짜 뉴스들을 앞장서서 전파한다면? 그야말로 쉬르리얼스틱한 현재가 아닌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그런 미친 세상일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에코 선생은 우리가 숱하게 읽어대는 책들에 대해 우리가 책장을 덮자마자 잊는다는 점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었다. 나같은 책쟁이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지 모르겠다. 그렇다, 우리는 무당파의 대사부 장삼봉 앞에서 신묘한 태극권을 연마하는 장무기 같은 선수들일 뿐이다. 읽고 상상하고 잊어라. 그러다 보면 구원에 도달할 지도 모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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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 -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10
파비앵 그롤로 & 제레미 루아예 지음, 이희정 옮김, 박병권 감수 / 푸른지식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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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목에 미친을 넣었다면 아마도 부정적인 의미가 아닐까. 19세기 미국 전역을 돌며, 북미 대륙에 사는 400여종에 달하는 거의 모든 새들을 그린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존 제임스 오듀본(1785~1851). 아이티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란 그는 나폴레옹 군대의 징집을 피해 신대륙으로 망명했던 것 같다. 원래 이름은 장 자크였다고 하지. 존 제임스는 그러니까, 미국식 이름인 셈이다. 그래픽 노블에서 아내 루시는 그를 라포레라고 부른다.

 

장 자크가 신생국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곳은 새들의 천국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리라. 아직 개발에 의한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새들이 살아온 터전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곧 대대적인 서부 개척 시대를 맞이하면서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이 훼손되고 생태계가 교란되면서 그곳에 살던 동물들 역시 멸종되거나 서식지를 잃게 되었다.

 

증기 제재소에 투자했다는 장 자크는 처음부터 사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새들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사랑하는 아내 루시와 자식들마저 내팽개치고 장 자크는 자연 상태에서 살아 숨쉬는 새들을 포획하고, 그리기 위해 켄터키를 떠나 미시시피와 미주리 일대를 여행한다.

 

어디선가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판단하지 말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19세기만 하더라도 자연보호와 동식물 보존은 그야말로 꿈곁 같은 소리였나 보다. 장 자크는 자신이 목표물인 새들을 그리고 관찰하기 위해 살상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사냥은 요즘으로 치자면 자전거 타기나 탁구 혹은 인라인 스케이트 같은 여가활동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수습생인 조지프와 현지인 가이드 쇼건을 앞세운 장 자크는 미지의 세계 탐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폭풍우를 만나 귀중한 그림을 잃을 뻔 하기도 하고, 향토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면서도 평생의 꿈인 새 관찰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자신이 그린 새 그림을 더 귀중하게 여겼는 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구사하겠다는 일념 아래, 푸른 어치를 해부하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리려는 노력에 쇼건은 죽음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한 때 자신의 동지였던 알렉산더 윌슨(1766~1813)과의 경쟁 구도도 흥미롭다. 윌슨의 <미국의 조류> 때문에 박물관 관료들은 더 이상 오듀본의 책에 투자할 마음이 없었다. 그의 그림들이 예술적이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자연주의적이 아니라고 이유로 출간을 거절한다.

 

결국 자신의 두 번째 조국이었던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오듀본은 시선을 구대륙으로 옮긴다. 영국에서는 자신이 그린 화려한 색채의 그림들을 제대로 출판할 수 있게 된 오듀본은 비로소 인정받기 시작한다. 자고로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한 성경의 구절이 연상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국의 새들>(국내에서는 <북미의 새>(The Birds of America:1827~1839)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은 희귀본으로 지금은 권당 100억에 육박하는 그런 진귀한 책 대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굳이 반 고흐의 케이스를 예로 들 것도 없으리라. , 영국에서 오듀본은 어느 젊은이를 만나 자연으로 가 직접 새들을 관찰하라는 충고를 해주는데 그의 이름이 다윈이었다고 한다. 진짜 있었던 일인지 궁금하다(영문판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니, 오듀본의 영국 강연 중에 학생이었던 찰스 다윈도 참석했었다고 한다).

 

새의 관찰과 그리기에 40년 그리고 출판에 12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장 자크는 결국 아내 루시에게 돌아와 말년을 보내고, 영면에 든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장 자크처럼 꼭 그렇게 새를 총으로 쏴서 잡아야 했을까? 덫이나 올무로 잡은 다음 충분히 관찰하고 나서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안 되었을까? 한 때, 북미 대륙의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았다는 나그네 비둘기도 그런 식으로 결국 1914년에 멸종되었다. 지금은 그의 이름을 딴 자연보호협회들이 지구별의 남은 동식물들을 지키기 위해 맹렬하게 정진하고 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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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2-27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곤충채집이라고 잠자리, 매미 등을 잡아서 제출하는 방학숙제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생각해보면 이러한 교육이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닌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 것은 아닌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레삭매냐 2021-02-28 07:17   좋아요 1 | URL
저도 어려서 곤충채집한답시고
메뚜기며 잠자리며 잡으러 다니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잠시 자연에 머물다 가는 인간이
너무 자연을 훼손하며 사는 게
아닌가 싶어 반성하게 됩니다.

유부만두 2021-02-28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리의 발견> 660쪽에 ‘오더번 협회’ 이사로 레이첼 카슨이 선출되는 이야기가 나와요. ^^

레삭매냐 2021-03-01 16:43   좋아요 0 | URL
대단하십니다 - 그 두꺼운 책을 ㅋ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켈플러
였네요. 수학 쪽에서는 거의 신급
이던데 :>

레이첼 카슨의 책들도 읽어야 하는데
당장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네요.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
자크 아탈리 지음, 이재룡 옮김 / 사월의책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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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약 살만 루슈디의 <28개월 28일 밤>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영영 모르고 살았으리라. 그 책에서 만난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의 실존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자크 아탈리의 이 탁월한 소설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로 인도했다. 책을 읽다가 만나게 되는 이런 우연이야말로 책을 읽는 재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고로 프랑스 외무부와 주한프랑스대사관의 지원으로 11년 전에 만들어진 이 책은 지금 절판 상태다. 이렇게 좋은 책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쉽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책 중의 하나인 타리크 알리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이 책도 절판됐다)가 이슬람이 지배하던 안 안달루스의 종언을 증언하고 있다면, 자크 아탈리의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는 이슬람 안 안달루스 지배의 절정기를 그린다.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한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은 유대인 사상가 모세 벤 마이문과 이슬람 의사이차 철학자인 이븐 루시드, 서구에는 아베로에스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두 사람 모두 위대한 철학자 선배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신봉자라는 점을 사전에 알려주고 싶다.

 

이들이 생존해 있던 12세기, 안 안달루스는 알모아데족을 중심으로 보라산의 종교지상주의자 알 가잘리의 사상을 추종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이 지배하고 있었다. 어느 시절이고 종교적 광신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불편하게 만든다. 알모아데 제국의 수도 코르도바는 그동안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를 믿는 이들이 조상 대대로 조화를 이루고 살아온 문화와 학문 그리고 사상의 중심지였다.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된 종교적 관용은 제국을 번영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알모아데 정권의 광신자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코르도바의 이교도들과 이단들을 심판하기 시작했다. 수백 년 동안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다. 특히, 고향인 팔레스타인을 떠나 안 안달루스에 무슬림들 보다 먼저 건너와 살던 유대인들이 첫 번째 타겟이 되었다. 의학과 상업에 특화된 민족이었던 유대인들이 제국 경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유대인들은 레온-카스티야-아라곤 같은 기독교 왕국보다 그동안 관용적인 모습을 보여온 이슬람 정권에 더 호의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알모아데 정권이 종교적 광신으로 치닫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개종, 이주 혹은 사형이라는 세 가지 선택지를 앞두게 되었다.

 

모세의 외삼촌 엘리파르가 광신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그리고 외삼촌이 사형당하기 전에 십대의 영민한 조카에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정수를 전해 주면서, 모험과 12세기 매혹적인 알 안달루스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중에 드러나게 되지만,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이성과 과학적 사고로 인간과 신의 영역 그리고 우주 생성의 비밀까지 아우르려고 했던 위대한 철학자가 인류에게 남긴 책을 찾는 미션에 관한 것이다. 이 얼마나 우리 같은 책쟁이들을 유혹하는 말이던가. 세상의 모든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있는 책이라고 하는데 만나고 싶지 않은 책쟁이가 있단 말인가. 결국 코르도바의 유대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할 운명이었다.

 

엘리파르는 조카에게 몇 가지 단서들과 알렉산더와 제우스의 얼굴이 새겨진 희귀한 테트라드라크마 한 닢을 남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미션은 너무나 위험한 임무였다. 책을 찾아 나선 구도의 길에 숱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위험한 만큼 그에 따른 보상이 크기에 모세는 톨레도와 툴루즈 그리고 나르본을 거치는 긴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이븐 루시드에게 알모아데 제국의 실력자 이븐 투파일이 같은 테트라드라크마를 건네주면서 같은 책을 찾으라고 명령한다. 진리를 추구하던 철학자였던 이븐 루시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의사이자 대범한 철학자였던 이븐 루시드는 이성과 계시의 경계에서 전자에 무게중심을 둔 발언으로 언제라도 이단으로 몰려 사형대에 오를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었다. 종교지상주의자들에게 이븐 루시드는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권력자들의 비호가 없었더라면 그 역시 엘리파르처럼 화형대에 올랐을 지도 모르겠다. 기독교 종교재판 이전에, 이미 무슬림 세계에서도 화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절대적 영원에 대한 논고>를 찾아 헤매던 두 젊은이는 십여 년에 걸친 긴 여정 끝에 결국 알모아데 제국의 수도 페스에서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으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하던 보편적 진리의 신봉자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던 이들은 경쟁자로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무하마드 이븐 루시드는 이슬람 국가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광신이 아닌 이성과 과학의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의 광풍이 몰아닥치던 12세기에 그런 합리적 사고가 설 자리는 없었다. 아마 이븐 루시드를 후원하던 제국의 총리 이븐 투파일이 없었다면 이븐 루시드는 진즉에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했을 것이다.

 

무슬림 제국의 무슬림으로 살았던 이븐 루시드에 비해 어디에서고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모세 벤 마이문은 12세기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그런 인물이다. 삼촌에게 일찍이 비밀결사 후보자로 인정받을 만큼 뛰어난 지식과 비범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던 모세는 위험천만한 인간이 쓴 것에 가장 중요한 책을 찾는 여정에 나선 것은 우주와 인간 그리고 종교에 대한 진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무슬림들의 핍박에 맞서 자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무력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열혈청년 모세의 동생 다비드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로마제국에 대항해서 무력투쟁에 나섰던 마사다 요새를 언급하며 단검 던지기를 수련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훗날 홀로코스트에 무력했던 유대인 공동체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은 비밀 결사단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밀의 책을 찾는 두 주인공의 모험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것이 종교적 광신에 대항하는 이성의 대표선수들인 모세와 이븐 루시드의 현란한 대화다. 소설에서 최고의 압권은 모든 비밀의 끈을 쥐고 있는 페스의 저명한 랍비 이븐 슈샨의 두 주인공에 대한 시험이 아닐까 싶다.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해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물론 그에 뒤따를 존재론적 허무주의에 대해서는 각자의 유의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주요한 모티프로 등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처럼, <절대적 영원에 대한 논고> 역시 자크 아탈리가 만들어낸 허구의 책이다. 자그마치 소르본 대학 출신의 인문학자 자크 아탈리는 12세기 알 안달루스와 마그레브를 배경으로 위대한 예언자가 남긴 불멸의 책을 찾는다는 가설에 입각해서, 다양한 소재들을 절묘하게 배합한 불후의 드라마를 창조했다. 아니 넷플릭스는 이런 이야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서 영상으로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식인들의 갖가지 욕망이 충돌하는 가운데, 종교적 광신에 저항하는 이성과 과학의 결합이 궁극의 선에 도달한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의 말미에 등장하는 권력자 이븐 투파일과 철학자 이븐 루시드의 대화 중에 나오는 좋은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쓰인다는 문장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당연히 내가 만난 올해의 책 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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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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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의 책들을 주파하고 있는 중이다. 전작읽기가 될 진 모르겠지만... 그의 대표작이라는 <한 밤의 아이들>은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뭐랄까 주변부부터 공략하고 있다고나 할까. 일단 최근에 나온 <28개월 28일 밤>부터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지 20일 정도 되었는데, 내일이 반납이라 부지런히 읽고 리뷰를 쓴다.

 

고전 다시쓰기는 이제 하나의 현상이 된 모양이다. 루슈디는 셰헤라자데의 <천일야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자신만의 <28개월 28일 밤>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하계에 해당하는 인간계의 과학과 이성이 상계인 마계에 사는 각종 흑마족들의 비이성과 주술의 투쟁인 이계전쟁에 방점을 찍는다. 인간이 그들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흑마족들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인간계에 퍼져 있는 두니아자트의 존재론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1195년 안달루시아의 루세나에는 이븐루시드라는 과학과 이성을 신봉하는 철학자가 살고 있었다. 칼리프의 총애를 받던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봉하던 주치의이자 철학자인 이븐루시드는 당시 이베리아 반도를 휩쓸던 광신도들의 미움을 받은 결과, 주치의 자리에서 쫓겨나 루세나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의 출발이 광신에 의한 점에 주목하자.

 

그리고 그에게 찾아온 묘령의 여인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두니아. 알고 보니 그녀는 마족인 진니아, 페리스탄 출신의 번개공주였다. 두니아와 이븐루시드는 28개월 28일 동안 수많은 방사를 치르고 많은 자식들을 생산했다. 칼리프로부터 귀양살이가 풀린 이븐루시드는 두니아의 곁을 떠난다. 두니아의 자손들, 그러니까 마족의 후예들은 귓불이 없는 모습으로 두니아자트라 불리게 되었다. 참고로 이성과 과학 그리고 논리를 신봉하는 이븐루시드의 맞수로 투스에 사는 가잘리라는 철학자가 살았다고 한다. 이계전쟁의 단초를 제공하는 이가 바로 가잘리로 흑마족이자 거마 주무루드 샤를 불러낸 이가 바로 가잘리였다.

 

그로부터 800년 정도 지난 뒤, 세계의 중심 뉴욕 시티에서 이계전쟁이 시작된다. 역시 두니아자트인 정원사 제로니모 마네제스라는 독특한 인물이 등장한다. 인도 출신으로 신부의 사생아인 제로니모는 미국으로 건너와 사랑하는 아내와 부족함 없이 살았다. 그러다 아내가 장인처럼 번개를 맞아 죽었던가. 자신이 정원사로 일하던 라 인코에렌차에 억만장자의 상속녀이자 일명 철학녀로 알려진 수재 알렉산드리아 블리스 파리냐의 양해를 구해 그곳에 아내를 묻는다.

 

그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들이 무시로 등장하는데, 일단 나트라지 히어로의 창조주인 지미 카푸르를 필두로 해서 훗날 이계전쟁에서 사악한 네 명의 흑마족들을 상대로 용맹을 떨치는 테리사 사카도 빼놓을 수 없다. 소설의 어느 시점에서, 죽은 지 800년도 더 지난 투스의 가잘리가 흑마족 주무루드를 구해준 대가로 약속한 소원을 지키라고 요청한다. 그것은 인간들에게 신을 경외할 수 있도록 공포심을 심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굳이 흑마족인 주무루드는 이제는 티끌이 되어 버린 인간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지만, 원래 자신의 본업인 파괴와 살상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가잘리의 소원을 받아 들인다. , 이제 비로소 인간계와 마계 간의 이계전쟁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비행 항아리를 타고 2-300여명에 달하는 마족들이 지구별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자,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세상은 그야말로 케이오스에 빠지게 된다. 이미 그전부터 흑마족들의 농간으로 정원사 제로니모는 공중부양을 하기 시작했다지. 그전에도는 시장 로자 패스트에게 배달된 기적의 아기가 부정부패를 일삼는 이들에 대한 진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천일야화라는 스토리를 기본축으로 삼아 마블 유니버스의 히어로 영상물에나 등장할 법한 선과 악의 대결, 인간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연들이 중첩되면서 그야말로 괴사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저자 살만 루슈디는 우리가 사는 인간계가 기본적으로 과학과 이성 그리고 논리로 개화된 시기이고 주무루드 샤를 비롯한 마족들의 세계가 비이성의 세계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이계전쟁의 와중에 독자들이 깨닫게 되는 바는 그들의 세계나 인간계나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탐욕과 공포는 주술의 세계를 넘나들며 모든 이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루슈디가 대단한 작가라는 점은 그 경계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허무는 기술자라는 점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그는 철저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론 신봉론자일 지도 모르겠다.

 

주무루드 샤를 필두로 한 나머지 세 빌런 조력자들의 면모도 화려하다. 발광마 루비, 흡혈마 라임 그리고 주무루드에 버금가는 주술마 자바르다스트는 통제할 수 없는 인간들의 욕망들을 대변하는 빌런의 상징이다. 개인적으로 주무루드가 자신의 봉인을 해제한 가잘리에게도 통속적인 인간들처럼 어마어마한 재산, 큰 성기 그리고 권력으로 대변되는 욕망이야말로 인간의 상상력 없음을 증명이라고 빈정대는 장면은 인간의 오욕칠정을 그대로 저격한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페리스탄, 카프산의 주인이 된 여제 번개공주 두니아는 자신의 후손들과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동족인 네 빌런들을 해치우기 위해 본격적인 이계전쟁에 나서게 된다. 엔딩이 어떻게 끝나는 지에 대해 공개하면 아무래도 스포일러겠지? 그 부분은 패스~

 

살만 루슈디는 인간계가 과학과 논리 그리고 이성을 표방하는 곳이라는 세계관으로 출발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마족들의 탐욕을 능가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라.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들만 취사선택해서 신봉하는 모습이 어디가 이성적인가. 아니 어쩌면 우리 인간들의 본성은 마족에 더 가까워 보일 정도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수백년 전에 죽은 철학자가 마족을 불러내어 약속을 이행하라고 따지고, 웜홀을 통해 두 개의 전혀 다른 세상이 서로 적대적 전쟁을 벌인다는 설정 자체부터가 이성적이지 않나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하긴 우린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얼토당토 않은 히어로 영화에 수많은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고 있지 않은가. , 그 히어로 영화들의 원작이 만화라는 점을 깜빡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히어로 나트라지 히어로, 아니 지넨드라 카푸르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가 짚어낸 루슈디의 보다 심오해 보이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12세기 말, 안달루시아의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처럼 인간과 마족의 이종교배로 태어난 두니아자트 역시 우리 인간 세상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러니 서로 다름을 수용하고, 이성과 관용의 힘으로 조화로운 삶을 살라는 것이다. 역시나 냉소적으로 엔딩에서 이계전쟁 이후, 밤을 지배하던 꿈이 실종되었다는 가설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기술 문명이 발달할수록,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혁신적으로 창조해내겠다는 인간의 꿈은 점점 사라져 가는 모양이다. 바로 그 점을 이 노대가는 지적한 게 아닐까 싶다.

 


<28개월 28일 밤>은 할리우드에서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서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른바 꿈의 공장이라는 할리우드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하지 않은가. 아니 정교한 할리우드보다는 좀 엉성하기 하지만 발리우드 스타일이 더 나을까? 마지막으로 표지에도 등장한 1001이라는 네 자리 숫자는 소설 <28개월 28일 밤>을 상징하는 동시에 유한한 인간 존재 소멸에 대한 계시처럼 보인다.


[뱀다리1] 이계전쟁이 한창이던 가운데, 두니아가 주무루드인가를 찾는 장면에서 ZZ Top은 어디에 있지라는 장면은 가히 최고였다. 이런 식의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니, 루슈디는 천재가 분명하다.

 

[뱀다리2]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이븐루시드는 실존인물로 라틴명은 아베로에스라고 한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도 등장하는 인물로 12세기 최고의 아리스토텔레스 학자였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의 주석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을 정도라고 한다.

 

보라산 투스의 가잘리(이도 실존인물이다!)의 종교지상주의에 맞서,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주장하며 코란에도 오류가 있다는 급진적 주장을 하다가 광신자들에게 격렬한 비난을 받고, 자신의 저서가 불살라지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종교적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 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뱀다리3] 젊은 날의 이븐루시드/아베로에스가 다시 한 번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발견해서 주문장을 날렸다. 무려 프랑스 출신의 석학 자크 아탈리가 쓴 드문 소설이라고 한다. 왜 이런 책들은 죄다 절판되는지 모르겠다. 루슈디의 <28>은 이븐루시드 말년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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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20 10: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발리우드 스타일에 한표! ٩(๑′∀ ‵๑)۶•*♪*•♪.♪♪

레삭매냐 2021-02-20 16:27   좋아요 1 | URL
요즘 발리우드 영화의 퀄이
상당히 좋아져서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bookholic 2021-02-20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있는데, 레삭매냐님의 친절한 리뷰가 많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레삭매냐 2021-02-20 21:43   좋아요 1 | URL
읽는 내내 이런저런 일들이 동시다발적
으로 발생하는 바람에, 제대로 읽지 못
하고 완독에 치중한 듯 합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리뷰가 북홀릭님의
독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감사합니다.

이뿐호빵 2021-02-20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리뷰 보며 또 이 책이 읽고싶어 욕심이 생깁니다

큰일입니다!!

요즘, 읽고 싶은 욕망은 무럭무럭~~
근데 ...

여튼 챙겨 담았습니다~
언젠가는 읽겠지 그러면서 말입니다ㅋ

레삭매냐 2021-02-21 05:46   좋아요 0 | URL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입니다.

자크 아탈리가 쓴 소설,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에도 이븐
루시드/아베로에스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책을 주문했습니다.

루슈디의 신간 만큼이나 기대가 되네요.

12세기 안달루시아로의 초대를 기대해
봅니다.

물론입니다, 사두시면 언젠가는 읽게
됩니다. 반다시.

뒷북소녀 2021-02-22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뱀다리 장인이시네요. 이런 걸 어떻게 찾으셨대요?
일단 너무 판타스틱해서 제 취향은 아니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2-22 13:24   좋아요 0 | URL
후반으로 갈수록 더 흥미진진
해져야 하는데 어째 동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암튼 말미에 가서
는 좀 쉽지 않았습니다.

그냥 궁금해서 이븐루시드를 찾아 보니
아베로에스까지 도달하게 되더라구요.
 
어느 독일인 이야기 - 회상 1914~1933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이유림 옮김 / 돌베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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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중고서점에서 만난 책이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어느 독일인 이야기>. 내가 지금까지 만난 저자의 책 중(4)에 최고였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참고로 올해 만난 26권의 책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연간 베스트로 꼽아도 좋을 듯 싶다.

 

7세 소년 하프너에게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던 1차 세계대전은 하나의 놀이였다. 여름 휴가를 지내던 소년의 가족은 서둘러서 베를린으로 돌아와야 했다. 전쟁 초기, 연전연승하며 프랑스군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시절 소년과 또래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전쟁 전문가가 되었다. 피와 살이 튀는 전쟁의 실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매일 후방에 게시되는 전황보고서가 전하는 환상에 젖어 있던 독일 시민들은 4년 뒤에 전쟁에 패한 것도 아닌데 진 사실을 갑자기 강요받는다.

 

반란과 혁명으로 이어지는 대혼란기 속에서 카이저는 퇴위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다. 지리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도래했지만, 이미 다음 전쟁을 위한 불온한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었다. 15년 뒤, 합법적으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국가사회주의자 다시 말해 나치들은 이미 우파 테러조직으로 그 전신을 드러냈다. 하프너는 초반에도 언급했다시피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역사가 아닌, 비극의 시대를 체험한 한 소시민의 자격으로 자신의 시대를 증언한다. 바로 그 점이 <어느 독일인 이야기>의 귀중한 가치를 역설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후 혼란한 시기에 어쩌면 독일이야말로 붉은 혁명이 일어날 만한 가장 적합한 조건의 나라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그런 혁명을 원하지 않았고, 위정자들은 폭력을 동원해서 일체의 불온한 움직임들을 분쇄하기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 그 유명한 로자 룩셈부르크가 살해당했으며, 혁명 조직들은 우파 폭력조직의 잔혹한 테러 앞에 와해되었다.

 

그 다음에는 1923년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앞선 흥청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 투기가 난무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일개 고등학생들도 주식 시장에 뛰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왠지 최근 과열된 우리 주식시장이 연상되었다. 이십대 초반의 은행장이 등장하는 등 그야말로 기존의 가치와 질서들이 한 번에 무너지는 그런 아노미적 시대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프로이센 고위 관료인 저자의 아버지는 저자가 얌전하게 제도 교육권 아래 교육을 받은 다음, 사법시험을 치르고 판사나 변호사가 되길 희망했다. 아버지는 자유주의자로 일체의 혁명적 움직임을 혐오했다. 청년 하프너 역시 그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청년다운 패기 없이 아니면 독일 민족성을 따라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하프너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나치가 소리 없이 부상하고, 권력을 잡게 되는 과정에 대한 알레고리가 담겨 있는 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돌프 히틀러가 1923년 뮌헨의 맥주홀 폭동으로 국가권력 전복을 시도했을 때만 하더라도, 나치는 허접한 지역 조직이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나 갖은 간계로 그들이 권력을 잡고 궁극적으로 독일 민족을 패망으로 몰고 가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바로 그런 독일 제국 내부의 실상에 대한 하프너의 상세한 리포트야말로 역사적 가치를 가진 기록이다. 우선 정치가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위정자들의 무책임한 방임이 무주공산이 되어 버린 정치무대에 나치의 부상을 도왔던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이나 영국 사람들과 달리 특별한 취미 생활이 독일 사람들에게는 없었다는 점도 저자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물론 철학이나 사유 혹은 다른 예술 방면에서도 게르만 민족은 특출난 재능을 보였었다. 하지만 개인의 취미생활보다는 프리데리쿠스 이래 형성된 집단주의적 성향은 체제에 순응하는 시민들을 양성하게 되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보불전쟁의 승리로 유럽의 신흥강국의 자리에 오른 다음, 판단 착오로 영국-프랑스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패배하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지불하게 된 수모를 당하게 독일 사람들은 민족적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구라도 내재된 불만에 불만 당겨준다면 총화된 에너지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부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들 내부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흥청거리던 1920년 초반은 예상하지 못한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파산이라는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런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같은 해 10월 렌텐마르크의 등장으로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경제적 현상으로 하프너의 아버지 같이 가장 성실하게 국가와 사회에 봉사해온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대신 이번에도 막대한 빚을 내어 투기에 나선 이들만 배를 불리게 되었다. 계속되는 이런 일련의 사회적 부조리는 나치라는 괴물이 등판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독일인 특유의 근면성실함이 가장 큰 문제였다. 히틀러와 나치가 연달아 승리를 거두면서, 초반에 나치 혁명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조차 그들의 체제 선전에 넘어가 버렸다. 그들의 조직적 기만 전술과 심리전에 독일 국가 전체가 넘어가 버린 것이다. 국가의 올바른 대의에도 독일 시민들은 맹렬하게 돌진했지만, 반대로 국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에도 그들은 방향을 바꾸지 않고 레밍 떼처럼 지도자의 영도를 따랐던 게 가장 큰 실책이었다. 그것도 아주 효과적이고 성실하게 말이다. 그 결과, 히틀러 일당이 최종해결책이라는 미명 아래 유대인 절멸정책을 수행할 때조차 그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인류적인 범죄에 그야말로 무엇에 홀린 듯 기계적으로 동참했던 것이다.

 

양심적인 지식인이었던 하프너는 당연히 그런 나치에 동조할 수 없었다. 사법시험을 앞둔 사법 연수생이었던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엄정한 프로이센의 법 체제가 조용하게 붕괴되는 것을 목격한다. 히틀러가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빌미로 제국 총리에 임명되면서 1933년 봄과 여름에 유대인들을 차별하는 일련의 가공할 범죄들이 잇따라 벌어진다. 유능한 유대인 대법관을 필두로, 체제에 찬성하지 않는 이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불평불만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주위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만약 이런 일들이 대놓고 공개적으로 처리되었다면 분명 거센 반발을 유발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공포를 유포하는 방식을 이미 나치 선전기계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은밀하고 조용하게, 소곤거리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그들을 기가 막히게 이용했다. 나치 제3제국은 이런 식으로 비밀경찰(게슈타포)이 암약하는 경찰국가로 변해갔다. 물론 나치 혁명 초반 돌격대(SA)는 날것 그대로의 폭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중에 보다 세련된 방식의 친위대(SS)가 그 역할을 이어 받았다.

 

히틀러와 나치의 집권으로 위기감을 느낀 현명한 유대인들은 조국을 등지기 시작했다. 하프너의 절친이었던 프랭크 란다우가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문명국가에서 폭력이 횡행하는 야만국가로 변하기 시작한 독일 제국에 더는 남아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폭력 앞에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저항했고, 또 다른 이들은 망명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등지고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은 타국으로 떠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청년 하프너 역시 기괴한 형태로 변해가는 조국의 현실 앞에 좌절하고 정치적 망명을 꿈꾸 시작한다. 같이 스터디 모임을 하던 인물들 중에서도 나치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름대로 개화된 지식인들이 아니었던가? 히틀러 일당이 날조한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든 이들은 어떤 말로도 토론이 되지 않았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답정너라고나 할까. 한 때 점잖게 지식과 문화, 예술을 토론하고 향유하던 이들이 적대자로 변하는 과정을 하프너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스터디 모임의 몇몇 지인들은 결국 나치 부역자로 변신했다. 그나마 하프너 자신을 비밀경찰에게 고발하지 않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을 정도였다.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어느 독일인 이야기>의 수고를 망명지 영국에서 1939년경에 작성했다고 한다. 아직 전쟁이 발발하기 전으로, 여전히 서방 세계를 대표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 유화정책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외교정책이나 부분적 영토 할양으로 미치광이 독재자를 달랠 길은 없다는 점을 서방의 지도자들은 몰랐다. 하지만 하프너는 히틀러가 권력을 얻기 전부터 바이마르의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들을 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독일 민족의 명운을 걸고 도박판에 나선 독재자를 과소평가했던 게 문제가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합리적인 독일 시민들은 히틀러와 나치 일당이 헌법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과정에서 어떤 조직적 저항도 보여주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에서 이루지 못한 최종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개인의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의식이 독일 시민들 사이에 갑자기 팽배하기 시작했던 걸까?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되돌리려고 했을 적에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하프너처럼 그런 야만적 시스템 아래서 왜 그들은 자신이 모욕 받고 수치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다수의 그런 이들이 등장해서 저항에 나섰더라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굴러갔을까.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육성으로 들려주는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었다. 여전히 미스터리한 아돌프 히틀러의 부상과 권력 장악 그리고 최종 파멸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있어 하프너가 저술한 <어느 독일인 이야기>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해답을 제시해 준다. 아직 2월이지만, 올해 만난 최고의 책으로 꼽을 만한 저술이다. 책을 읽으면서 기대를 충족시키는 책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이 책이 이룬 성취는 대단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도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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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2-15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올해라야 이제 2개월 반 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26권이라굽쇼? 대단하네요.
연말이 되면 몇권을 만나시게 되나요?
암튼 홧팅입니다!^^

레삭매냐 2021-02-15 15:40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굽시니스트 선생의 만화와
이러저러한 그래픽 노블로 꼼수를
부른 덕분이지효 핫하 ~!

한참 달릴 적에는 300권도 돌파했었
는데 이제는 노쇠하야 -

일단 연초의 목표는 120권이었습니다.

scott 2021-02-15 15: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21년 매냐님 독서 이력 26권 0=260권! 홧팅!

레삭매냐 2021-02-15 15:41   좋아요 1 | URL
욕심 내지 않고 달리기로 했습니다.

일다가 꼭 연말에 가서 무리하게
되더라구요. 그게 무슨 의미라고 말이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독서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