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속칭 기레기라고 불리며 언론 본연 업무 대신 다른 일로 주목을 끌던 국내 유수의 언론들이 알고 보니 수출역군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놀랍군. 그렇다면 국내에서 생산된 뉴스나 기사들을 외국으로 송출하는 걸까?

 

물론 그건 아니었다. 그들의 생산물은 정도의 고품격 퀄리티를 담보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생산된 신문지들이 자그마치 해외 각국으로 수출된다는 거다. 그렇다면 과연 소비처는 어느 나라였을까? 주로 동남아 각국에서 많이 애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저 멀리 세계 인구 5위의 인구대국 파키스탄(어제 처음 알았다)과 가나에도 많이 수출된다고 한다. 으응, 가나? 그 가나 초콜렛의 나라 가나? 오래 전에 아마 가나가 골드코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렸었지.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거의 처음으로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로 기억한다. 갑자기 국뽕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국내 신문들이 동남아를 석권하고 이역만리 파키스탄과 가나까지!!!

 

근데 그 나라 사람들이 한글을 아나 보다. 한글로 인쇄된 신문이 왜 필요하지? 아니면 한글 부교재로? MBC 스트레이트는 그런 게 아니라고 나의 무지를 준엄하게 일깨운다. 그네들이 대한민국의 신문이 필요한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 이제 카메라가 빙빙 돌아간다. 동남아에서 나는 과일이 유명한 건 모두가 아실 것이다. 바로 그 과일을 포장하기 위해 엄청난 분량의 종이 포장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국내에서 모자라니, 당연 수입선을 해외로 돌려 품질 좋고 가격도 싼 한국 신문들이 대량으로 필요한 것이다. 친환경 잉크(콩기름?)로 제작되어, 인체에도 무해하고 또 기름을 잘 흡수하여 음식물 포장에도 적합하다는 게 현지인들의 증언이다. 역시 우리나라 유수의 신문에서 만든 신문들이 그런 국제사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런 빼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구나. 그 외에도 이케아 같은 매장에서도 한 번 펴보지도 않은 한국 신문들을 소품이나 기타 물건을 포장하기 위한 용도로 비치해 두고 있더라.

 

다시 카메라는 신문지를 수출하는 업체로 렌즈를 돌린다. 그곳에서 듣자하니, 컨테이너 하나당 300만 원 정도의 이익이 남는다고 한다. 잘 나가는 업체는 한 달에 천 개 정도의 컨테이너를 해외로 수출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달 장사가 30억 정도 되는 셈이다. MBC의 추산에 따르면 신문 한 부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이것저것 다해서 800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윤전소에서 바로 따온 따끈따끈한 신문들의 폐지가격은 80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신문 찍어내면 찍어낼수록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가. 도대체 왜 이런 밑지는 장사를 왜 하는 걸까. , 업자들이 국내에서 이렇게 생산된 고품질의 폐지 신문들을 해외로 수출하면서 국내에서 기존에 이 신문들을 이용해서 계란판 만들던 회사들이 가격인상으로 낭패를 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수출된 우리의 귀중한 수출품의 대부분은 중국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재활용 수입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져서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수입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웃기는 것 중의 하나는 언론들이 생산한 신문지가 국내에서 선순환이 되지 않으면서 종이값이 올라가고 그것은 다시 신문() 제작 단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는 거다. 어쨌거나 세상은 요지경이다.

 

스트레이트는 단순하게 신문지들이 해외에 수출되는 현상만을 겨냥하지는 않는다. 진짜는 밑지면서도 윤전기를 계속해서 돌리는 진짜 이유에 방점을 찍는다. 그것은 한동안 논란이 되었던 신문의 유료부수를 인증하는 ABC인지 뭔지 하는 업체로부터 인증을 받기 위한 꼼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정부의 세금 보조로 이어진다. 아니 근데 왜 언론사가 국민의 세금을 지원 받는 거지? 단지 언론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국의 정기 세무조사도 거부하지 않았나? 지원은 웰컴 앤 쌩유지만, 우리는 어떠한 규제도 거부한다? 왜냐고? 우리는 언론사니까. 할 말이 없다.

 

내 생각에 다른 이유 하나는 일등신문 백만 유료부수라는 타이틀이 아닐까 싶다. 그걸 무기로 해서, 광고주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나 하는 합리적 추정이다. 이렇게 영향력이 있으니 자연히 지면 광고의 단가를 올려 주셔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언론은 진실 보도라는 본연의 업무 대신에, 영업을 추구하는 일개 사기업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많은 비용이 드는 지면 광고는 누가 사갈까? 개인이? 그럴 리가... 물론 개인이 살 수도 있겠지만 주요 고객은 바로 대기업일 것이다.

 

기업이 광고 수주라는 명목으로 언론사를 길들이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론사도 기업인 이상, 태생적으로 이익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런데 자신에게 광고라는 달콤한 멋잇감을 던져주는 기업에 문제가 있다면, 과연 그런 기업에게 철저하게 을일 수밖에 없는 입장인 언론사가 과감하게 주인님을 물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이 경언유착이 시작되는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수년 전에, 다수 언론에 종사하는 이들이 어느 기업 사장인가에게 보낸, 충성 맹세를 하는 문자들이 공개되어 사람들의 공분을 산 적 있다. 수오지심조차 모를 댕댕이스러운 그들의 모습에서 분노보다, 왠지 밥벌이의 어려움이 떠올랐다. 다들 그렇게 해서라도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구나.

 

아침마다 회사로 배달되는 경제신문이라는 언론들은 대놓고, 수치들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입맛대로 기사를 주무르기 일쑤다. 물론 그들이 팩트를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팩트를 가지고 어떻게 요리하고 해석하는가가 문제다. 팩트를 비틀고, 꼬는 방식으로 그들은 외눈박이 독자들의 입맛에 착 달라붙는 새로운 퓨전 요리를 생산해낸다. 자신들의 생산물을 주로 소비하는 열혈애독자들과 주인님의 입맛에 맞는 그런 기사를 말이다.

 

지난주에 아버지하고 가짜 뉴스 때문에 싸웠다. 안부 전화를 드리려고 했는데, 아버지의 도발에 그만 넘어가 버렸다. 나도 해당기사를 찾아보았는데,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일개 지자체가 발주한 용역 보고서에 대한 기사를 보고 마치 정부에서 엄청난 비용(자그마치 5조원!!!)을 들여 북한을 지원한다고 (기정사실로) 해석하시는 패기에 그만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자나 깨나 불조심, 아니 가짜 뉴스를 조심해야겠다. 21세기에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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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5-17 11: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신문뒤에 이러한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니요~~
요즘 거의 종이 신문을 안보는데 왜 1년씩 무료로 제공하는지 그 이유를 알았어요^^
신문을 수출까지 한다는게 더 놀랍네요~~
문득 신문에 얽힌 옛생각도 나고~~
레삭매냐님께서 아버님과 싸운 얘기도 재밌고^^
한 편의 좋은 생활칼럼 입니다**

레삭매냐 2021-05-17 11:50   좋아요 3 | URL
언론의 영향력이 아무리 예전만
못하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주입 반복하면 그것이 사실이
되는 그런 세상입니다.

잘못된 기사는 특종이라며
대서특필하고, 정정보도는 아무
도 못볼 만한 구석탱이에 배치
하는 편집의 미학에 그만...

뉴스를 분별하는 판단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보입니다.

새파랑 2021-05-17 1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신문을 수출하는 건 첨 알았네요. 요즘 뉴스는 정말 잘 가려서 봐야할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5-17 13:20   좋아요 3 | URL
타국에서 아주 인기라고 합니다.
심지어 친환경 제품이라는 점이...

바람돌이 2021-05-17 12: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이 기사 봤어요. 한 때는 국내에서 신문 구독하면 1년 공짜로 넣어주고 자전거도 주고 한다고 집의 초인종을 눌러 댔었는데요. 요즘은 수출로 해결하네요. ㅎㅎ
모 케이블 방송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요. 북한 방송이랑 굉장히 비슷해요. 굉장히 선동적이고 격앙되어서 얘기하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 노력하는게..... 이런 방송이 약간 어르신들 감성에 좀 맞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 방송을 하루종일 오랫동안 보시면 어느새 거의 동화되어가는, 거기다 카카오톡으로 친한 지인이 그럴듯한 근거를 대며 가짜뉴스를 가져오면 뭐 ..... 저희 집 어르신들하고도 그래서 자주 부딪히는지라 레삭매냐님 상황이 남일 안같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1-05-17 13:23   좋아요 3 | URL
저의 dodge 기술의 패배입니다.

저희 동네 E마트 앞에 가면 지금도
자전거 주신다고 하더라구요.
아 자전거 타고 잡다 ㅋㅋ

개인적으로 가짜뉴스가 불량식품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먹을 땐 아주 좋
으니깐요. 부작용은...

미미 2021-05-17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어나는 광고가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신문,방송 결국 언론매체들이 광고 때문에 대기업에 발목 잡혀서 공정한 뉴스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눈치보기에 연연하니 악순환입니다. 과일,가구 포장이라니....

레삭매냐 2021-05-17 14:07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구독자를 늘려 신문의 독립
을 이루어야 하는데 광고와 협찬 그리
고 요상한 돈벌이(뭔 기사 등재 조건
으로 기업에 비용 청구하는 사례 등등)
에 그렇게 치중하는지...

과일 및 다양한 품목의 포장재로 아주
유용하다고 하네요.
 















 

어제 주문한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트의 소설집이 오늘 도착했다.

섬과 달 출판사의 세 번째 책인가. 1번은 대만족이었고, 2번은 1번만 못해서 지금 읽다 말았다.

 

요즘 독서 슬럼프인지 이 책 저 책 시작만 하고 끝내질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는 다 읽어야 하는데.

 

이름부터 마음에 든다. 팬케이크라니...

오래전 줄창 먹어대던 아이홉의 팬케이크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그 땐 진짜 자주 가곤 했었지. 두툼한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뿌려 먹으면 정말... 그땐 그랬지.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는 26살에 요절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는 1952년 생이고, 1979년에 죽었다고 한다. 그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책으로 만나 봐야지 싶다.

 

이번 소설집에는 모두 12편의 소설들이 담겨져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로 읽기에 돌입한다. 렛츠기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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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남에게 주기만 하던 남자,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인별그램 이웃이자 달궁 두목님께서 이 작가의 라스트 네님 팬케이크가 본명이냐고 물으셨다. 위키피디아를 돌려 보니, 본명은 브리스 덱스터 팬케이크가 맞다. 오 놀랍군.

 

서문을 제임스 앨런 맥퍼슨 교수가 맡았다.

그분도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브리스 디제이가 살아 생전에 친분이 있었던 관계로 책의 서문을 썼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브리스 디제이의 문학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첫 단편은 브리스 디제이가 제임스 앨런 맥퍼슨에게 선물했다는 그 귀한 <삼엽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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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5-16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홉이라면...제가 아는 그 아이홉 맞습니까? ㅋㅋㅋㅋ 따뜻한 팬케이에 시럽 쳐부터 먹는 맛이란 ㅎㅎㅎ 음하.
팬케이크님의 책도 아이홉의 팬케이크처럼 치명적일까요?

레삭매냐 2021-05-16 18:15   좋아요 0 | URL
책의 표지에 힐빌리 헤밍웨이
라고 되어 있네요...

넵, 아이홉은 말씀하신 고
아이홉이 맞습니다.

미쿡인 친구가 인별그램에 댓글
을 달아 주었는데 애팔래치아
사투리를 번역본에서는 어케 다
루었는지 궁금해 하네요.

잠자냥 2021-05-17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냐 님께 땡스투 갔삼.

레삭매냐 2021-05-17 11:00   좋아요 0 | URL
매우 쌩유~합네다.
 


2021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의 쇼트리스트가 발표되었다. 그 정보는 인별그램을 통해 알게 됐다. 여튼 정보 하나는 빠르다.

 

롱리스트 12권 중에서 절반이 떨어져 나가고 이제 6권이 남은 모양이다. 이 중에서 한 권이 대망의 수상작이 될 전망이다.

 

국내에 소개된 작가는 아르헨티나 소설가 마리아나 엔리케스와 프랑스 소설가 에리크 뷔야르 뿐이다. 후자는 그나마 공쿠르상 수상빨로 국내에 소개된 것 같다. 국내에는 두 권의 책이 소개되었는데 그 책들은 모두 읽었다. 서사가 너무 짧고 아예 모르는 부분들이 아니라 좀 아쉬운 느낌이었다. <콩키스타도르><콩고>도 읽고 싶다. 이번에 노미네이션이 된 작품은 2019년에 발표된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이다.

 

 

영어로 된 번역서를 찾아보니 달랑 80쪽이다. 왜 너튜브 리뷰어들이 책이 짧아서 아쉽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종교개혁 당시 천상에서의 평등이 아닌 현세에서의 평등을 주장한 토마스 뮌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리뷰를 한 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열린책들은 이 책의 분량도 적은데 신속하게 번역해서 내야 하는 게 아닐까?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기존에 나온 책의 저자 소개에 책 제목이 나온 걸 보면 아마도 판권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데 말이다.

 

 

쇼트리스트에 오른 6권의 책 중에서 나의 우선 픽은 프랑스 작가 다비드 디옵이 2018년 발표한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영어제목 At Night All Blood Is Black)>. 디옵은 196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세네갈에서 자랐다고 한다. 보통의 경우, 반대가 아니었던가. 그의 책 중에서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된 책이기도 하다. 디옵은 대학에서 예술과 언어 부서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전문 분야는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17세기 아프리카 연구라고 한다.

 


 

불어를 할 줄 알면, 저자가 출연한 프랑스 대담 프로그램을 좀 들어 보겠는데 아쉽다. 좀 들어 보니 어느 외계어 같다는 생각만 든다. 놀라운 건, 프랑스에 저자가 직접 출연해서 자신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예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닌가. 과거에 있었다면 나의 무지의 소산이고.

 

 

1914년 그레이트 워라고 불린 1차 세계대전에 230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와 영국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 병사들이 참전했다. 그 중에서도 세네갈 출신 병사들은 유럽 전선에서 프랑스로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빌헴름 카이저의 독일군과 맞서 싸웠다. 히틀러 시대에 만연한 인종주의 정도는 아니었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프랑스 식민지 병사들을 두고 라인 강의 검은 공포라는 말로 선전을 해댔다. 나중에 참전하게 되는 미국도 40만 명 정도의 흑인 병사들을 동원했는데, 비슷한 시기 미국 남부에서는 짐 크로우 법으로 수많은 흑인들이 차별당하고, 인종주의자들에게 희생되고 있었다.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굉장히 어두운 색채의 전쟁 소설이다. 주인공이자 화자는 알파 엔디아예(발음은 내 마음대로 정해봤다, 나중에 번역이 되면 달라질 수도 쿨럭). 소설은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서 내던져진 알파의 내적 고백으로 시작한다. 형제 이상이었던 전우 마뎀바 디옵이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내장이 튀어 나와 죽어 간다. 마뎀바는 알파에게 세 번이나 자신의 고통을 끝내 달라고 간청한다. 더 이상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마뎀바는 알파에게 자신의 목을 그어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마치 번제물로 받쳐진 희생양처럼 말이다. 전장에서 자신은 인간이 아니었노라고, 알파는 고백한다.

 

알파의 후회가 이어진다. 마뎀바가 처음 부탁했을 때 그의 청을 들어주었어야 했다고. 나의 브라더가 산 채로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던 늙고 외로운 사자처럼 죽게 만들지 말고, 그의 고통을 자신이 끝냈어야 했다고. 이보다 더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을까. 친구의 시신을 소중하게 자신의 코트와 셔츠로 단단하게 감싼 알파는 참호로 되돌아간다. 죽어가는 친구의 마지막 요청을 들어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마뎀바에게 용서를 구하며.

 

참호에서 병사들의 두목인 아르망 대위는 독일놈들이 검은 아프리카의 쇼콜라 병사들을 야만적인 니그로, 식인종 그리고 줄루로 생각하고 두려워한다고 사기를 북돋는다. 그가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백인 프랑스 병사들 역시 쇼콜라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르망은 또 쇼콜라들에게 사기를 친다. 프랑스가 그들을 존경한다고. 훗날 식민지를 모두 잃은 프랑스는 세계대전에서 한때 그들의 조국이었던 프랑스를 위해 싸운 알제리 출신 병사들에게 연금 지급을 거부했다.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허위와 위선은 그렇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소설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그렇게 친구를 잃은 알파는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복수심에 불타 폭주하기 시작한다. 독일군 진지로 넘어가 마체테로 적군을 죽이고 그들의 손을 잘라 오는 패기를 보여준다. 그런 그에게 동료 병사들은 그야말로 용감무쌍하다며 칭송하지만,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알파의 영혼을 살인이 계속될수록 피폐해져 갈 뿐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나라 세네갈이 아니라, 자국을 수탈하고 억압하는 식민 모국 프랑스의 용병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그들이 그레이트 워라고 불리는 유럽 대륙에서의 패권 경쟁이 평생 자신의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던 알파와 마뎀바 같은 시골 청년들에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동료들은 그를 영웅이라고 칭송하지만, 알파가 네 번째 손을 가져오자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동료 쇼콜라 병사들은 전쟁의 광기에 물든 알파를 디몬 혹은 소서러라고 부른다.

 

영어 번역서로 160쪽 정도 되는 다비드 디옵의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첫 소설인 <1889, l'Attraction universelle>2012년에 발표됐다.

 

다음에는 에리크 뷔야르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에 대해 디비 보자.

 

 

오늘의 점심 메뉴, 존슨네 고기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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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5-14 10:2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멋진 소식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세상엔 작가와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고 많아서... 장수해야해요;;;; (홍삼을 마시며)

레삭매냐 2021-05-14 11:38   좋아요 3 | URL
도무지 스토리텔링의 세계는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
나기 위해서라도 부디 장수만세!!!

잠자냥 2021-05-14 1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정보 빠르셔~ ㅎㅎ

레삭매냐 2021-05-14 11:39   좋아요 3 | URL
인별그램을 겟하고
여기저기서 퍼온 정보로
다가 구성해 봤습니다.

아마존 킨들 맛보기로 소설
서두를 본 것은 안 비밀입네다.

미미 2021-05-14 10: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핫한 뉴스를 실어다 주셨습니다.ㅋㅋ👍<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빨리 번역되면 좋겠네요!!!전쟁때 귀,코...저런 기념물?들 많이 챙겼다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도 한몫했을것 같아요. 으..

레삭매냐 2021-05-14 11:40   좋아요 3 | URL
급한 마음에, 아마존에서 제공
하는 맛보기를 조금 읽었는데
정말...

해외 너튜버들이 작년에 읽은
최고의 책 중의 하나로 꼽는
이유가 있었네요 기래.

페넬로페 2021-05-14 11: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신선하고 핫한 뉴스~~
감사합니다^^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
넘 기대되는 작품이예요

레삭매냐 2021-05-14 13:37   좋아요 3 | URL
이 책이 얼렁 번역이 돼서
출간되었으면 바램입니다.

분량도 적으니 속히 -

새파랑 2021-05-14 13: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정보력이네요. 전 항상 정보만 얻어가는데 ㅎㅎ 저기에 있는 작가는 아무도 모른다는데 반성합니다 ㅜ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05-14 13:38   좋아요 4 | URL
저도 에리크 뷔야르 외에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작가들이랍
니다.

아,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들어는
보았군요.

세계문학은 정말 파고들수록 대단
하다는 느낌입니다.

바람돌이 2021-05-14 14: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고급정보를 알려주시다니요. 레삭매냐님 항상 감사!!!
저는 맨부커상 수상작들은 거의 다 좋더라구요. 올해도 설레면서 기다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5-14 16:14   좋아요 1 | URL
올해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이 어느 작가에게 돌아가게
될 지 궁금합니다.

다음달 6월 21일 발표네요.

coolcat329 2021-05-14 15: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님 이런 정보 늘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1-05-14 16:15   좋아요 2 | URL
부족한 정보가 도움이 되셨
다니 다행입니다.

mini74 2021-05-14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디비보자. 너무 좋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1-05-15 08:23   좋아요 0 | URL
에리크 뷔야르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
위해서 토마스 뮌처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잘 디비~보도록 하겠습니다.

붕붕툐툐 2021-05-14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정보력 갑!!
지금 번역이 안 된 작품이라도 상 받으면 바로 번역되어 나오겠죠?
올해도 완전 기대!! 행복한 기다림 주셔서 감사해용~ 언제 상 받는지는 몰랐어요~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5-15 08:25   좋아요 1 | URL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상 받은 작품은 아니지만 마이클
온다치의 <워라잇>이 여적 뭉개
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분량이 적어서 번역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외전인 인터내셔널은 봄이고,
본상은 가을에 발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니 분주한 하루였다. 지금은 SealCrazy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듣고 있다. 기타 사운드가 정말 죽인다.

 

어제는 퇴근하고 집 근처의 타잔목물공방으로 젓가락을 만들러 갔었다. 달궁 오프라인 모임이 스탑된 이래, 이런 모임은 아마 처음이지 싶다. 그것은 하나의 자극이자, 즐거움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녀석들을 만들고 싶다규!!!)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그렇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그런 존재인가 보다.

 

처음으로 도전한 나의 젓가락 깎기는 나의 예상처럼 그렇게 멋들어지게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난 만족했다. 명상음악을 들으며, 나무를 깎는 동안 그야말로 무념무상이었다. 그러다 나무를 너무 많이 깎아 낭패를 보기도 했다. 우드카빙의 단점 중의 하나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거였다. 우리가 인생에서 하는 어떤 결정들처럼 말이다. 좀 거창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서 우드카빙은 우리네 인생의... 뭐 알아서 해석하시라.

 

타잔목물공방의 두목님은 두 시간을 예상하셨지만, 두 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다네. 집에 와서는 주차 자리가 없어서 고생했다. C'est la vie.

 

간만에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전리품으로 얻어온 보성녹차 막걸리는 참 맛있었다. 아 배불르다. 이제 자야지 아디오스.



이 두 권의 책들은 어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냥해 온 녀석들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우루과이의 양심 에두

아르도 갈레아노 작가는 지난 2015년에 천국

으로 가셨다고 한다. 미처 몰랐다,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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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2 06: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젓가락 우드카빙 재미있을거 같아요. 그곳에서 인생의 배움을 느끼시기 까지~! (알라딘 우주점은 사냥터죠. 완전 좋음^^)

레삭매냐 2021-05-12 10:19   좋아요 3 | URL
젓가락 깎기는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더라구요.

젓가락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하셨는데 말이죠 ㅋㅋ

어제 업어온 녀석들은 컨디션이
상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영 꽝
이었습니다 에잉~ 퀄리티 판정
을 우짜 하는 것인지.

바람돌이 2021-05-12 09: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렇게 공을 들여서 젓가락을 만들면 그걸로는 절대 밥도 못먹고 반찬도 못먹고 그냥 장식용으로 둬야 할 거 같은데요. ^^ 나무를 깎아서 모양을 만들어 내는 과정 재밌을 듯하네요. 거의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를듯요. ^^

레삭매냐 2021-05-12 09:42   좋아요 3 | URL
제가 한 젓가락 셋트가 다른
동지들의 그것 중에서 가장
후졌다는 건 안 비밀입네다.

두목님의 말쌈 대로 나무탓
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나중에 라면 먹을 때 잘
이용하는 것으로 ㅋㅋㅋ

미미 2021-05-12 09: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젓가락 모양이 좋은데요?^^ (써보기만 한 사람) 문진도 보이는데 깎다 만 듯한 느낌이 묘하게 눈에 들어옵니다.ㅋㅋ

레삭매냐 2021-05-12 09:52   좋아요 3 | URL
우왓, 네모진 모양의 무엇인가가
문진이었군요. 기록을 위해 기계적
으로 셔터를 누르다 보니 피사체가
뭔지도 몰랐네요 ㅋㅋㅋ

대충 깎은 것 같은데 엣지가 솟구쳐
오르는 것 같습니다. 저 정도는 저도
할 수... 쿨럭.

blanca 2021-05-12 10: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헉, 젓가락이라니. 근사합니다. ^^ <시간의 목소리>는 소설인가요?

레삭매냐 2021-05-12 10:13   좋아요 3 | URL
젓가락 우습게 봤다가 어제
된통 고생했답니다.

칼 다루기가 정말 조심스러
라구요. 아이들은 1/3 정도
가 다쳤다고 하더군요.

<시간의 목소리>는 333개
의 짧은 이야기를 담은 에세
이집입니다.

페넬로페 2021-05-12 11: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무를 깎아 뭔가를 만든다는게 쉽지 않을것 같은데~~
젓가락을 매끈하게 잘 만드신것 같아요^^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을 차단하고 사는것 같아 아쉬워요**

레삭매냐 2021-05-12 13:54   좋아요 1 | URL
저의 첫 시도는 무지 허접했답니다.

갈수록 균형감 있게 깎는 데 그만
실패했습니다. 삐뚤빼뚤 ㅋㅋㅋ
결 따라 깎기,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피엔스들은 고저 모여서 털고
그래야 제 맛이지효. 저희 달궁 두목
님께서 저의 저세상 드립이 그리우시
답니다.

coolcat329 2021-05-12 12: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다음 도전 작품은 무엇인가요? 요리도구들 만들면 음식할때마다 뿌듯할거같아요.

레삭매냐 2021-05-12 13:59   좋아요 1 | URL
일단 도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클라스 참가비가 7만원빵이었습니다.
디자인도 마음 대로 할 수가 있구요.

저는 찻잔을 추천했습니다. 숟가락
만들기가 생각보다 재밌다고 하시네요.

후보작으로는 버터 나이프도 뒤집개
도 있었습니다.

mini74 2021-05-12 14: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젓가락은 도저히 못 쓸거 같아요 아까워서. ㅎ 저는 가끔 심난할땐 연필을 깎습니다. 그럼 아침에 아이가 짜증냈지요. 누가 연필 이렇게 못생기게 깎았냐고 ㅎㅎㅎ

레삭매냐 2021-05-12 15:41   좋아요 1 | URL
전 균일하게 깎는 건 아닌가봐요...
연필은 스테들러 연필깎기로 깎는
답니다. 균일하게 깎기에는 아무래
도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이 ㅋㅋㅋ

조그만 메모수첩 2021-05-12 14: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같은 💩 손은 생각도 못할 큰 일입니다 ㅠ 북플 통해서 매냐님 작품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라요~ 젓가락 너무 예쁩니다 👏

레삭매냐 2021-05-13 09:12   좋아요 0 | URL
원타임 이벤트라 계속해서 유지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평일에
시간 내기도 쉽지가 않네요.

부끄러운 조각 좋게 봐주셔서 감
사합니다.
 


 

어제 그전에 보다만 영화 <화이트 타이거>를 마저 봤다.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엔딩타이틀을 보니 a film by 어쩌구 하는 걸 보면서 이게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구나 싶었다. 그래서 타이틀도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로 정정했다.

 

여기는 다시 델리다. 오늘 아침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스러운 샘의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읽었는데, 배우는 게 많다. 소설가가 될 걸 아니지만, 소설 소비자로서 무언가 영업 비밀을 하나 깨우친 느낌이랄까. 영화의 화자 발람 할와이에게 드디어 위기가 닥친다.

 

핑키 마담의 벌쓰데이에 술에 잔뜩 취한 마담이 마하라자 분장을 한 발람 대신 굳이 운전을 하겠다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달을 낸 것이다. 여러분, 절대 음주운전은 하지 마시라! 새벽 두시 경에 노상에 있던 어린아이를 친 것이다. 소위 미국에서 교육받았다는(심지어 핑키 마담은 박사님이시다!) 이들이 정당한 사고 수습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꼼수를 쓴다. 그러니까 뺑소니를 친 것이다. 물론 충성스러운 하인 발람은 앰뷸런스나 경찰을 부르자는 주인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사고 수습에 나선다.

 

뭐 거기까지는 좋다. 소식을 들은 고향 락사만다르의 황새 아저씨와 장남 무케시/몽구스가 델리로 상경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그동안 막대하던 발람에게 친근 모드를 시전한다. 굳이 발람이 끊었다는 맛있는 빤까지 제공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자술서를 하나 들이미는데, 그건 바로 뺑소니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조작된 자술서였다. 락사만다르의 가족들에게는 모두 말을 잘해 놓았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등등 변호사를 동반한 황새 패밀리의 회유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마스터들에게 그렇게 헌신적으로 충성을 다했는데, 자신은 이제 교통사고를 저지른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갇히고, 전과자가 될 판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 막바지로 몰린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발람 할와이의 고뇌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더 어처구니없는 건, 예의 교통사고가 소리 소문 없이 무마되자 동생이라고 부르며 그렇게 친근하게 굴던 마스터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다시 차가운 주인 모드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이런 마스터들의 행위에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황새 아저씨의 이율배반적 행동에 진저리가 난 핑키 마담은 개판(shit)이라고 외치며 시아버지와 아주버님과 대판 싸운다. 그리고 자고 있는 발람을 깨워 뉴욕으로 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 좋은 NRI(Non-resident Indians) 아쇽은 발람을 구타한다. 이거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드는구만 그래. 한 번 마스터는 마스터일 뿐이다. 아무리 포장을 한다고 해도, 마스터의 DNA는 바뀌지 않는다는 거다.

 

결국 발람은 힌디 무비의 전형적이라는 어떤 서사를 완성하고, 미스터 아쇽이 노래 부르던 뱅갈로르로 가서 시작한 사업이 대성공을 거둔다.

 

영화 <화이트 타이거>에는 현대 인도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대부분의 인도 문학이 다루는 카스트 제도는 오히려 심각한 빈부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오죽했으면 발람이 수탉장(the rooster coop)이 인도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말을 했을까. 법률적으로는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고질적 카스트 제도에 의한 차별은 인도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요소이다. 그렇다고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위 카스트에서 순순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리가 없겠지.

 

대놓고 농민들을 착취하는 지주 계급에 돈을 요구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무자비하게 정치 헌금의 상납을 요구하는 이가 위대한 사회주의자의 수하라는 점이 역설적일 뿐이다. 잘못 베팅했다가 낭패를 본 아쇽 일가가 위대한 사회주의자 양반을 만나 100만 루피 제공의사를 전달했더니만, 네 배로 뻥튀기해서 내놓으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런 정치권에서 작금의 최악으로 치닫는 코로나 사태의 해결을 바라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들은 코로나 사태를 해결할 의지나 능력이 1도 없다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

 

황새로 대표되는 지주 계급은 하인들의 가족들을 볼모로 삼아 수탉장을 공고하게 만든다. 집안의 어르신이자 절대반지를 휘두르는 쿠숨은 발람에게 색시를 보내, 닭장에 가둘 생각만 한다. 미스터 아쇽은 발람의 대체(replacement) 운전사를 찾기 시작한다. 자신들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발람이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델리에서 그를 시골쥐라고 부르는 하숙집 아저씨(으응?)는 해고는 죽음보다 무서우며, 종착지는 판잣집이나 노숙자 신세라는 말에 발람은 대오각성하기에 이른다.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그를 괴롭히는 가운데 시장에서 만난 걸인 할머니는 집요하게 발람에게 적선을 요구한다. 우와,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뛸 일이다. 내 문제도 감당이 안 되는데, 거지까지!!! 막판에 몰린 발람은 그야말로 버럭쟁이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도 못했던 일을 결행에 나서게 되는 거지.

 

발람은 자신이 뭔 짓을 했을 때의 후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원래 락사만다르에서 보내온 조카 다람을 두고 혼자 튀려고 했으나, 그의 불쌍한 운명 때문인지 어쩐지 다람을 데리고 뱅갈로르로 튄다. 쿠숨 할머니의 편지 한 장을 들고 달랑 상경한 다람에게 다짜고짜 손찌검을 하는 못난 삼촌. 에라이! 그는 뱅갈로르에서 북부 인도의 어느 마을에서 일가족 17명이 몰살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이미 결행 이전의 판타지로 처리된 영상으로 시청자는 잘 알고 있다. 지주들이 파견한 청부업자들은 일가족을 소총까지 동원해서 처리한다. 너무 잔인한 장면들을 무음으로 처리해서 희화화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영화는 소설의 풍부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발람 역을 맡은 아르다시 구라브는 고뇌하는 영혼을 지닌 청년 역을 충실하게 완수했다. 그의 프로필을 뒤져 보니 거의 인도판 아이돌급의 스타였다. 소설에서 발람이 쇠파이프를 시멘트 덩어리에 내리치며 울분을 토로하던 장면이 있었나? 비굴하게 마스터들의 비위를 맞춰 가며 요리사, 발마사지사 그리고 운전사를 오가며 결국에는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하게 되는 팔색조 같은 연기를 펼친다. 미스터 아쇽 역의 라지쿠마르 라오 역시 NRI 지식인이면서도 결국에는 미국에서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조국에 남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게 결국 자신의 파국을 가져 오긴 했지만. 핑키 마담 역의 프리앙카 초프라는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건지. NYC 출신 박사님답게 거의 네이티브 뺨치는 실력의 영어를 구사한다. 결국 다 때려치우고 미국으로 야반도주하는 장면으로 영화에서 아웃.

 

영화 <화이트 타이거>에는 발리우드 영화의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이 1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도 놀랍지 않은가. 모든 발리우드 영화의 공식 같은 흥겨운 노래와 춤이 등장하지 않는다니 말이다. 영화를 딱 절반으로 갈라 전반부가 빛의 인도를 다뤘다면, 나머지 절반은 어둠의 인도를 그리고 있다. 소설도 만족이었지만, 넷플릭스 영화도 상당한 수작이었다.

 

됐고, 아라빈드 아디가의 다른 책들이 어서 우리나라에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바로 사들일 텐데. 그리고 좀 더 심각한 차원에서 인도 사회를 그린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 같은 작품들도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너무 방대해서 그게 과연 가능할 진 모르겠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영화가 하는 일이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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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5-07 12: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밤 3분의 2까지 봤어요. 책 속의 문장들 그대로 많이 나오더라구요. 이 영화 추천할수 있는 점이 발리우드 영화 특징인 그 춤과 노래가 안나오는거죠! ㅎㅎ

이 책 읽고 미스트리의 <적절한균형>을 집어들기까진 했는데 , 너무 무거워서 다시 꽂아두었네요. 😅


레삭매냐 2021-05-07 13:08   좋아요 6 | URL
인도 관련 독서가 일천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만난 인도를 다룬
책 중에서 단연 로힌턴 미스트리
의 <적절한 균형>이 최고라고
말씀드리겄습니다.

버겁긴 하지만 완독하시고 나면
정말 뿌듯하시리라고 믿슙니다.

저도 어젯밤에 <화이트 타이거>
좀만 보고 자려다가 결국 엔딩
까지 달리게 되었더라는.

새파랑 2021-05-07 12: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세는 인도 ㅎㅎ 재미있을거 같아요 ㅋ 저도 책으로 먼저 읽고 영화를 찾아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5-07 13:09   좋아요 4 | URL
인도 출신 작가들의 영어 쓰기
능력이 출중하야, 세계화에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한 것
같습니다.

인도 작가들이 좀 더 많이 소개
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램입니다.

얄라알라북사랑 2021-05-07 15: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발리우드 영화를 제대로 본 건 없지만, 춤과 노래 화려한 의상을 빼고는 상상할 수 없던데 <화이트 타이거>는 보다 사회비판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인가요?
˝수탉장(the rooster coop)이 인도 최고의 발명품˝ 읽고도 바로 감이 오지는 않았어요. 실리콘벨리에서 대체육으로 주가를 올리는 분이 인도의 닭장을 보고 깨달으을 얻었다고 했던 에피소드는 얼핏 떠오르지만 그런 의미는 아닌듯^^;; 저도 더 찾으며 덕분에 공부해보아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5-07 15:55   좋아요 2 | URL
dark side of India
라고나 할까요?

발리우드가 춤과 노래로 인도의 비참한
현실을 감추었다면, <화이트 타이거>
는 날것 그대로의 인도를 생생하게 전
달합니다.

아, 주인공 발람이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바지를 내리고 길똥을 시전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웃기면서도 참 슬프더라는.

‘수탉장‘은 영화나 책을 보시면 바로
아실 수 있답니다. 더 디테일하게 까면
스포일러로 욕을 먹을 수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