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 한계 시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8
율리 체 지음, 남정애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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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이라는 학문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법에 대해 문외한인 일개 독서가가 생각하는 법학의 존재 이유는 아마도 죄에 대한 규정과 그에 대한 처벌을 정하는 아카데믹한 여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우리의 법학 박사님이자 법조인인 독일의 율리 체 작가께서는 <잠수 한계 시간>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인 법학에 대한 썰을 유감 없이 펼쳐 보여주신다. 그리고 아울러 내가 실패했던 잠수의 세계에 대해서도. 그러니 감사할 따름이다.

 

<새해>로 율리 체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희한하게도 <형사 실프><잠수 한계 시간>의 순서로 읽게 되었다. 어떻게든 읽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니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다만, <새해>에도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카나리아 섬의 란사로테가 다시 등장해서 독일 사람들에게 카나리아 제도가 얼마나 선호하는 관광지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게 하나의 수확이었다고나 할까.

 

제목에도 잠수가 나오듯이 소설 <잠수 한계 시간>은 잠수 강사 스벤 피들러의 관점에서 돌아가는 이야기다. 또 삼천포지만, 뤽 베송 감독의 <그랑 부르>에 나오는 한없이 푸르른 바닷속이 그리고 경쟁에 나섰다가 스러진 엔조의 모습이 바로 떠올랐다. 영화 <그랑 부르>가 바다, 잠수, 우정, 경쟁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소설 <잠수 한계 시간>은 다른 궤적으로 내달린다.

 

출발은 베를린에서 날아온 두 커플이 독일을 떠나 14년 째 라호라 섬에서 다이버로 활동하는 스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배우가 되는데 성공했지만, 연타석 히트를 날리지 못해 배우 생활의 위기를 맞은 금발의 매력녀 욜라 그리고 그의 띠동갑내기 남자친구 테오. 그 둘은 스벤에게 2주간 24시간 자신들에게 잠수를 도와주고, 돌봐 주는 조건으로 14,000유로라는 거금을 제시한다. 호모 컨슈머티쿠스인 현대인에게 돈은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 스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수는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었다.

 

이쯤에서 스벤의 과거를 되짚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는 한 때 촉망받는 법학도였으나, 결국 그놈의 몽테스키외라는 프랑스 출신의 기묘한 철자법을 가진 철학자 때문에 우리 법학 박사님과는 달리 법학도의 궤도에서 이탈해 버렸다. 대신 공병대 잠수부로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독일을 떠나 아프리카 해변의 카나리아 군도의 어느 작은 섬에 연착륙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안톄라는 나이 어린 연인이 있다. 물론 이 둘의 관계는 매력녀 욜라의 등장으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소설은 스벤의 이야기와 챕터 말미마다 등장하는 욜라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둘의 진술이 아주 상이하다. 처음부터 왠지 스벤과 욜라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어느 순간 그 둘이 바로 사랑에 빠져 버려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전개라고나 할까. 욜라의 남자친구 테오(42)는 그녀가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감 잡았지만 그것이 뭔지는 아직 모른다. 욜라와 테오의 도착적으로 보이는 관계는 우리의 스벤을 온통 혼돈 속으로 밀어 넣는다. 테오는 스벤을 한심한 놈이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자신의 애인을 유혹하라고 했던가. 자신이 잠수하기 싫다고 한 날, 스벤은 욜라의 은밀한 유혹에 빠져 선을 넘을 뻔한 위기에 봉착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서사는 분열하기 시작한다. 스벤은 자신이 욜라의 유혹을 패스했다고 진술하지만, 욜라의 일기에는 다른 기록이 적혀 있다. 이번에는 영화 <라쇼몽>이 떠오른다. 과거에 발생한 진실은 하나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이들의 입장과 시선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를 겨냥한 서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탁월한 내러티브가 일품이다.

 

그런데 왜 스벤은 물 속의 세상을 좋아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우주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과 부합하지 싶다. 우주에 공기가 없듯이, 물속에도 공기가 없다. 그런 결핍된 요소들로 구성된 세계에 도전하는 이들만의 욕망에 율리 체 작가는 방점을 찍는다. 그걸 결핍의 유혹이라고 해야 할까? 물속에서는 육지와 같은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테오와 욜라의 안전을 전적으로 책임진 스벤은 하나의 절대자 같은 존재다. 그리고 그들은 물속에서 서로 상호간에 준비된 신호 체계로 의사소통에 나선다.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해야 한다. 육지에 사는 우리들은 대부분 언어라는 시스템으로 치환된 청각 신호에 무신경하다. 말 한 마디 잘못 들었다고 해서 당장 위험에 빠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테오와 욜라는 빈번하게 스벤이 잠수에 앞서 엄격하게 세운 게임의 규칙을 무시한다. 그들에게 스벤이라는 존재는 돈을 주고 산 피고용인일 뿐이다. 그들은 스벤과 안톄가 절실하게 필요한 자본의 힘으로 그들을 구속한다. 하긴 그렇게 따지자면, 자본의 노예가 된 건 스벤들 뿐만이 아니지. 시간이 갈수록 테오와 욜라들은 안톄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다. 동시에 스벤도 위기의 남자가 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자본의 결핍은 스벤이 고객들에게 강력하게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제 독자가 기다리던 파국의 도래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종결 지점에 가서 되짚어 보니, 스벤이 초반에 태국으로 전 재산을 팔고 떠난다는 글귀가 생각난다. 독일에서 실패한 법학도에게 라호라는 세상의 끝이자, 도피처였다. 그에게 독일이라는 현재진행형의 전쟁을 끌고 온 이들은 바로 테오와 욜라였다. 일단 그들의 스벤의 세계에 침투하자, 스벤이 꿈꾸던 일상은 차례로 파괴되기 시작한다. 스벤의 관심사는 지상이 아니라 오직 바닷속의 일일 뿐이었다.

 

지상에서 스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다. 잠수한 뒤의 정리나 카사 라야의 정리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것도 그동안 모두 안톄의 도움으로 유지해 왔으나, 그녀가 리카르도와의 관계를 이유로 스벤의 곁을 떠나면서 모두 스벤의 몫이 되었다. 물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침착하고 유능한 남자가 다른 세계에서는 맥을 못추는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자신이 물속에 만든 질서 속에서는 그렇게 편안하고 여유 넘치며, 어떤 문제라도 해결해낼 자신이 있는 사람이 스벤이 아니었던가.

 

어쨌든 욜라가 치밀하게 계획한 파국은 막판에 순전히 스벤의 이타적 선의로 방향전환을 하면서 모두를 구원한다. 익사할 뻔한 테오도, 모든 계획의 주모자였던 욜라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인죄로 기소될 뻔한 스벤까지도. 오래전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에 버금가는 파국을 기대했던 건 무리였을까.

 

모든 잠수부들에게 해당된다는 정언명령인 올바르게 행동하라는 메시지가 고루하기는 하지만, 설계된 파국을 막고 연루된 이들에게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을 제공하는 하나의 예언처럼 작동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율리 체 작가의 두 번째 만남을 통과했다. 책이 나온 지 6년 만에 읽게 된 점이 아쉬울 다름이다. 아니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지도. 바로 <어떤 소송>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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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0-11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예 체를 거덜내시는군요. ㅋㅋㅋㅋ
저도 체의 광팬입니다. 매냐님처럼 훑지는 않지만 눈에 띄었다하면 이름만 가지고도 주저없이 선택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레삭매냐 2020-10-11 21:32   좋아요 0 | URL
그저 폴스태프님처럼 먼저 가신
분들의 길을 뒤쫓는 것 뿐이지요.

저도 믿고 읽는 작가 중의 하나로
꼽아야지 싶습니다.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8
율리 체 지음, 이재금.이준서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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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때, 율리 체의 <새해>를 지인에게 추천해 주었다. 나도 읽지 않은 책이기에 추천하고 나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이 작가가 완전 내 스타일의 그런 작가가 아니던가. 독일 사람들은 모두 스페인령의 카나리아 제도 란사로테 섬으로 휴가를 가는 모양이지를 <새해>를 읽다 말고 만난 <잠수 한계 시간>에서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율리 체 작가의 책 수집에 나섰다. 물론 그 순간까지도 다 읽은 책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항상 어느 작가에 빠지게 되면 일단 그 작가의 책들부터 모으는 요상한 습성이 있다.

 

비교적 신간인 <새해> 말고는 모두 모클 시리즈로 나왔는데, 이제 수명을 다한 모클의 운명처럼 그동안 나온 책들 역시 품절과 절판의 운명으로 치닫고 있었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율리 체의 책들을 모았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컬렉션은 3일 전, 도토리 책방에서 득템한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제 새로운 율리 체 작가의 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그녀의 책을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을 것 같다.

 

<새해>에서는 왠지 나의 비밀스러운 내적인 감상들과 만나는 그런 추체험을 하기도 했다. 뭐랄까 나의 약점을 잡힌 듯한 그런 느낌? <잠수 한계 시간>은 매혹적이고 오래전에 실패한 패다이 자격증 실패의 쓰라린 추억을 되살리는 통에 잠시 접어 두었다. 그리고 나서 제바스티안과 오스카 두 천재 물리학자들의 치열한 삶의 배틀을 다룬 <형사 실프>에 도달했다. 이 책은 지난 3일에 걸쳐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한 끝에 다 읽는데 성공했다. 내가 처음으로 다 읽은 율리 체 작가의 책으로 기록될 지어다.

 

예나 지금이나 시간의 본질을 다룬다는 그리고 우리네 삶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양자 물리학의 세계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도 그리고 이해가 가능하지도 않는다는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기에 내가 이 책에서 법학 박사님이 다루는 썰들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 점에서 소설을 1/3 정도나 읽어야 비로소 등장하게 되는 주인공 형사 실프 아저씨의 미친 존재감에 그저 격한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노라고 이 자리를 빌어 공감한다. 실프 아저씨는 자신의 아들 리암의 실종 신고를 했으나, 곧바로 아들에게 아무런 위해가 없었다는 제바스티안을 찾아가 사건의 본질이 아닌 시간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내던진다. 그리고 그는 어쩌면 살인범일 수도 있는 유력한 용의자에게 깊은 존경심을 표하기 시작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에게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가 현재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은 곧바로 과거로 치환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과거의 1초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이미 지나간 과거를 현재로 퉁치는 그런 오류의 신봉자라고 해야 할까.

 

나 같은 범인(凡人)은 도저히 바젤의 천재 물리학자 오스카 씨가 구사하는 양자 물리학의 이론적인 세계에는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오스카가 자신의 연인인지 친구인지 헷갈리는 천재-엘리트의 자리에서 지상으로 강림해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아내 마이케와 아들 리암과 보통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제바스티안을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평행 우주로 되돌리려고 하는 노력이 문제라는 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율리 체 작가가 구사하는 내러티브 구조는 어느 순간 나에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도대체 우리가 궁금해 하는 시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이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고나 할까. 나머지들은 그저 소설의 외양을 갖추기 위한 부수적인 요소들일 뿐이라는 생강이 들었다. 하나의 구색 맞추기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유괴된 아들을 되찾기 위한 스릴러물로서 <형사 실프>에 던지는 질문들이 하나같이 실종되어 버렸다. 도대체 누가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바스티안과 마이케의 아들 리암을 캠프에 데려다 주었는가.

 

작가가 교묘하게 배치한 의료계 스캔들 역시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후반에 가서야 알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율리 체 작가의성공한 교란작전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프라이부크르에서 벌어진 의료계 스캔들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다벨링의 살해 사건은 그저 우연이 일치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보면 유물론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류의 존재부터 몇 번이나 되는 자승의 우연이 반복되어야 실존이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천재들의 세계에서 보통 사람의 층위로 내려오길 원하는 제바스티안이 지닌 창조에 대한 생각에 수긍이 간다. 도서관에서 그의 논문을 읽고, 요즘으로 치면 너튜브에서 동영상으로 제바스티안의 생각에 동조하게 된 실프 형사(독일어로 그의 이름은 갈대를 의미한다고 한다)의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밸런스라고 해야 할까? 두 명의 물리학자들이 세상의 비밀을 품은 공간과 시간의 본질에 대해 치열한 정신세계의 배틀을 벌인다면, 누군가는 피지컬한 허드렛일도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 스승 격인 실프 형사와 오로지 수사만 들입다 파는 제자 리타 스쿠라의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후자를 갈음한다.

 

실프 형사가 양자 물리학 그리고 시간의 본질에 대해 설명과 나름의 리서치를 했음에도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 역시 <형사 실프>에서 잘난 율리 체 작가가 구사하는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서술을 다 이해했노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서사도 마찬가지. 다만, 현재라는 시간이 원칙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아이디어 하나는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두고두고 써먹어야지. 그리고 소설의 곳곳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법학 박사님이 창조해낸 문장들의 광휘에 그만 반해 버렸다. 법조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이렇게 멋진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서 두 잘난 인간들의 자의식이 강렬하게 맞부딪혔던 예의 여러 차원의 평행 우주의 존재가 가능하다는 걸 입증하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율리 체 작가의 세 권의 책들 <어떤 소송>, <새해> 그리고 <잠수 한계 시간>을 마저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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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10-10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수 한계 시간 잼있게 봤었어요 :-)

레삭매냐 2020-10-10 21:59   좋아요 1 | URL
요 책 보기 전에 제법 읽었는데 정말
재밌더군요...

조금씩 아껴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율리 체 작가의 다른 책들도 계속해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니데이 2020-10-11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좋은데 내용도 재미있다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0-10-11 07:36   좋아요 1 | URL
법학 박사님이 쓴 양자 물리학을
다룬 스릴러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이라고 생각
합니다. 감사합니다.

moonnight 2020-10-11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었을 때 충격받았던 기억 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지인들에게 선물도 많이 했는데 별로 안 좋아하더군요.ㅎㅎ;;;;;; 어제 책장 둘러보다가 아, 다시 읽어야겠다 생각했는데 레삭매냐님 글에서 딱 마주하니 너무나 반갑네요. 율리 체 작가의 다른 책은 못 읽었는데 덕분에 찾을 생각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레삭매냐 2020-10-11 09:55   좋아요 1 | URL
책에 대한 취향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책
추천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좋다고 해서 다른 이들도
좋아한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

지금 율리 체 작가의 다른 책인
<잠수 한계 시간> 만나고 있는데
너무 재밌네요 ~

coolcat329 2020-10-11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이 <새해> 리뷰 쓰신거 읽고 적어뒀는데 레삭님 글 읽고 <잠수...>도 관심이 가네요. 근데 평행우주는 제목부터 부담이 가네요.😰

레삭매냐 2020-10-11 13:23   좋아요 1 | URL
지난 추석 때 <새해> 읽는답시고 도전
했다가 그 책 역시 너무 재밌어서, 잠시
미루어 두고 율리 체 작가의 다른 책들
수집에 나섰답니다.

일단 어느 작가에 꽂히면 일단 책부터
사고 보자, 이 주의거든요.

일단 가지고 있던 <새해> 말고 3권을
더 구했는데, 다 만족스럽네요.

평행 우주에 대해서는 적당하게 퉁치
시면 될 듯 합니다, 저처럼요 ㅋㅋ

coolcat329 2020-10-11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님은 맘에 드시면 전작 읽기하시는거 알아요 😆
저는 전작은 커녕 안 읽은 책들이 너무 많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0-10-11 18:12   좋아요 1 | URL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만,
어느 작가를 알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작가의 책은 3권 정도는 읽어야
비로소 그 작가의 스타일이나 기법
이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만.

감사합니다. <잠수 한계 시간> 주파
했네요.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0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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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시오 키로가 작가의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에서 다루고 있는 세 가지 주제들을 아우르는 그런 제목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언젠가 해피 엔딩이라는 짧은 에세이를 쓴 적이 있었는데 영어 단어 'end'에는 죽음이라는 뜻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그리고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우루과이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는 자신의 소설집에서 사랑과 죽음이 빚어내는 광기에 대한 초현실적 르포로 전달해 준다.

 

키로가 집안 삼대에 걸친 죽음의 연대기에 대해서는 후기에서 잘 다루고 있으니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 소설의 주인공들 역시 삶의 종착역인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라틴 아메리카의 녹색 지옥이 제공하는 타나토스적인 유혹은 소설 곳곳에 포진해 있다. 날것 그대로인 대자연이자 매혹적인 공간으로서 녹색 지옥을 소재로 삼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루이스 세풀베다 이전에 그들의 선배격인 오라시오 키로가가 존재했다는 점도 내게는 대단히 흥미롭다. 우리가 모르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지경을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키로가 작가가 소설집에서 그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왠지 광기의 동의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이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비이성적인 요소들은 광기로 연결되고, 예의 광기가 카이로스(특별한 시간)와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되면 결국 크로노스(죽음 혹은 소멸)에 이르게 된다는 그런 설정이라고나 할까.

 

레콩키스타 이래, 신대륙 정복에 나선 에스파냐 이달고들의 후예인 이민자들은 원주민들과 달리 녹색 지옥의 두려움을 알지 못했다. 아기레나 코르테스 같은 무법자들이 그랬다면 이해하겠지만, 수세기가 지나서도 무모한 도전이 계속되는 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결혼을 앞두고 색다른 경험을 해보겠다고 나섰던 객기 넘치던 청년은 어이없게도 코렉시온 개미떼의 습격을 받아 백골이 되었다. 훗날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하나의 특질이 된 주술적 리얼리즘의 원형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정글 전설의 문학적 재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녹색 지옥의 특징 중의 하나인 벌목장의 현실을 겨냥한 <멘수들>도 수작으로 꼽고 싶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의 허파라는 아마존 밀림이 경작지 확장과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지난 수십 년간 파괴되어 온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현재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기후 위기의 도래를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녹색 지옥에 침투한 서구 자본주의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무진장한 산림자원을 그저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지금처럼 고도의 기계문명이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목재를 베고 실어 나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직종이 바로 멘수, 나무를 베고 임가공하는 계약직 노동자들이었다. 자본가들은 솜씨 좋은 멘수들에게 처음에 목돈을 안겨 주었다. 그러면,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던 멘수들은 그 돈으로 흥청망청하며 유흥에 그 돈을 탕진했다. 그런 방식으로 멘수들은 관리인들에게 종속되어 갔다. 빚쟁이가 되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멘수들이 관리인들의 감시에서 벗어나 목숨을 걸고 탈출이라도 하게 되면, 윈체스터 소총으로 무장한 현장 감독들은 인부들을 동원해서 바로 인간 사냥에 나섰다. 녹색 지옥을 소중한 현금으로 바꿔줄 귀중한 자산이 도망치는 걸 그들은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동료를 정글에서 말라리아로 잃고 탈출했지만 결국 다시 벌목장으로 돌아가게 되는 멘수의 모습에서는 키로가 작가가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의 리얼리즘에도 비범한 안목을 가졌구나 싶었다.

 

니퍼 더 도그(Nipper the dog)가 그려진 축음기를 얻기 위해 강에서 나무를 건져 올리는 이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파라나 강변의 베테랑 칸디유는 서구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는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에 홀렸다. 축음기를 손에 넣기 위해 칸디유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홍수에 떠내려 오는 나무들을 건져 올린다. 이것은 사랑이 유발한 광기와는 다른 차원의 광기다. 칸디유와 거래에 나선 영국인은 고급 목재인 자단나무를 요구한다. 물욕에 대해 칸디유가 보이는 광기는 소중한 자단 원목을 지키겠다고 홍수에 도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이의 그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구에서 이식된 폭스테리어가 라틴 아메리카의 야구아이(강아지)가 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일단 대지를 달구는 타는 듯한 더위와 가뭄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과 짐승들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이놈의 야구아이는 다른 사냥개들처럼 뛰어난 사냥 솜씨도 발휘하지 않고 그저 취미로 도마뱀붙이 정도나 잡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에게는 유익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극심한 가뭄으로 만디오카며 옥수수마저 모두 말라 죽게 되자, 비굴하게 야구아이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생존에 올인한다. 야구아이는 설익은 옥수수를 훑고, 이웃의 닭장을 기웃거리며 빠르게 살아남는 법을 습득한다. 이 지점은 왠지 우루과이 민중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지식인 키로가 스타일의 헌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자신의 소중한 암탉을 털린 주인들은 소총으로 응징에 나서고, 야구아이라는 존재의 소멸로 귀결된다.

 

소설집의 여기저기서 보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기술은 결국 모두가 덧없는 환영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시간이 갖는 소멸성은 한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감정까지 모두 휘발시켜 버리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준다. 녹색 지옥의 대자연이 빚어내는 형용할 수 없는 광기의 실체는 낯선 유혹인 동시에, 파멸의 전주곡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때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설정도 등장해서 서사를 곱씹게도 만든다. 처음 만난 작가가 차린 성찬에 감탄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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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10-09 0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어보는 작가-_- 레삭매냐님 덕분에 알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0-10-09 21:17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작가
인데, 정말 세상은 넓고 우리가 모르
는 작가들은 천지삐까리인가 봅니다.
 

 


연휴를 앞두고 퇴근하여 꺼벅꺼벅 졸던 차에 108일 오후 8시에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노벨문학상 발표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사실 노벨문학상 즈음해서 수상 가능성이 있다는 작가의 책들을 미리 사제껴 두어야 하나 어쩌나 아주 살짝 고민도 했더랬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 정도는 읽어 주어야 한다는 허영심 때문이라고 해두자. 며칠 전에 작년에 발표된 페터 한트케의 <돈 후안>인가 하는 책을 펴들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내팽개쳐 버렸다. 노벨상 받은 작가의 책이라고 해서 모두 재밌는 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그것도 아니면 업무 때문에 피로해서 글발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나 할까.

 

엊그제이던가, 투자하는 마음으로 헌책방에 가서 절판되었다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를 사서 처음의 몇 페이지를 읽다 말았다. 독서광인 주인공 여자가 등장하는 흥미로운 그런 책이었는데...

 

어쨌든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10월초는 모든 국내출판사들이 각각 로또 한 장씩을 쥐고 자기네와 계약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를 고대해 마지않는 그런 시즌이란다. 밥 딜런 때도 그랬지만 그리고 더 오래 전에 무슨 스웨덴 작가가 상을 받았을 때처럼 이번에도 출판사들은 보기 좋게 물을 먹었다. 올해 수상자는 미국 출신의 시인 루이즈 글릭이라고 한다.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해 왔지만(물론 시는 읽지 않는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국내에 출간된 책도 하나 없더라. 그러니 공평하게 배부된 로또는 모두 꽝인 셈이다.

 

그동안 가장 흥행이 잘된 노벨문학상 작가는 오르한 파묵이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아마 가즈오 이시구로도 좀 재미를 보지 않았나 어쨌나. 나의 원픽이었던 페루의 MB라고 불리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샘도 생각보다 그렇게 노벨문학상 빨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 노벨문학상의 여진이 모두 가시고 나니 요사샘은 계속해서 신간을 발표했지만 그의 신간들은 아예 출간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철저하게 시장에서 외면당했기 때문일까.

 

온라인 서점에서는 재빠르게 루이즈 글릭의 시가 수록된 책들을 랜선 매대에 올렸는데 참으로 초라하구나. 왠지 업자들이 허탈해 하는 그런 심정이 느껴진달까. 올해는 틀렸으니 다시 내년을 겨냥한 로또를 한 장씩 돌려 보자.

 

여담으로 예전에 앨리스 먼로가 노벨문학상 받았다는 소식 듣고서는 동네 중고서점에 달려가 저자의 책을 사들인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책을 여직도 읽지 않았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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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09 0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랜선 매대에 올려진 그녀의 시가 과연 얼마나 살아남아 있을까요? 시는 자고로 한국인이 쓴 시가 최고인것 같은데 ㅎㅎㅎ

레삭매냐 2020-10-09 21:13   좋아요 0 | URL
소설은 몰라도 시는 정말 그 나라
언어가 아니면 다른 언어로 번역
되어 얼마나 시가 품은 감성이 전달
될 지...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페크(pek0501) 2020-10-09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맨 끝줄... 저와 비슷하십니다.

레삭매냐 2020-10-09 21:14   좋아요 0 | URL
해마다 반복되는 패턴이라고나
할까요.

우와 노벨상 받았단다, 책을 사
야지. 그리고는 안 읽게 되네요.

그나마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
의 책은 재미나 있어서 많이
읽었네요.

coolcat329 2020-10-09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발표 듣고 출판사 생각이 젤 먼저 났네요. ㅎㅎ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레삭매냐 2020-10-09 21:15   좋아요 0 | URL
노벨문학상 특수를 땡겨야 하는데
세상에 국내에 나온 책이 1도 없다니 -

가히 멘탈이 날아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발표 직후 혹은 한두달 안에 쇼부를
쳐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지 모르겠
네요.
 
오다 노부나가 7 - 혼노 사의 변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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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다 노부나가>의 후반부는 마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복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선 5권 미카타가라하 전투가 그랬고, 6권 나가시노 전투가 그랬다. 마지막인 7<혼사 사의 변>도 마찬가지였다.

 

우다이진 노부나가는 쿄토 상경 작전 이래, 천하의 공적이 되었다. 처음에는 혼간 사 세력과 결탁한 쇼군, 아사쿠라-아사이 연합군 그리고 카이의 타케다 신겐으로 이루어진 반 노부나가 연합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방이 적이었다. 우군은 오로지 미카와와 토토우미 그리고 스루가를 영지로 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뿐.

 

<오다 노부나가> 마지막 권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무려 세 번이나 배신을 감행한 마츠나가 히사이데가 자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동쪽에서 자신을 위협하던 우에스기 겐신을 막고, 사이고쿠의 패자 모리 정벌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면서 오다 노부나가의 운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정에서 우다이진 벼슬도 제수 받아 명실상부한 천하인이 되었다.

 

우다이진의 운빨은 정말 대단했다. 미카타가하라에서 도쿠가와 군에게 괴멸적 타격을 가한 신겐이 죽으면서 위기를 벗어나는데 성공했고, 그의 사후에는 그렇게 대결을 피하려고 했던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과의 대결에서도 결국 겐신이 병사하면서 천하포무의 꿈을 이룰 수가 있었다.

 

다만 시대의 혁명가이자 풍운아였던 우다이진은 내부 단속에 결국 실패한 영용한 군주였다. 외부의 적에 대해 용서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성공에 일조한 가신들에게까지 가혹했던 것은 결국 그의 운명을 끝장낸 패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오와리 이래 후다이였던 하야시 사도노카미를 숙청하고 모반한 아라키 무라시게 일족에 대한 처참한 주벌은 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칸파쿠 히데츠구 일족 처형을 연상시키는 그런 무시무시한 오판이었다.

 

하마마츠의 사돈 도쿠가와 가문에도 사단이 났는데, 그것은 바로 시나노의 타케다 카츠요리와 내통한 이에야스의 정실 츠키야마 부인과 그의 아들 노부야스 문제였다. 우다이진의 장녀 토쿠히메가 전한 오카자키 내전의 스캔들과 이에야스 가신들의 실수로 장차 천하를 다스릴 패자로서 우다이진은 사위에게 할복을 명령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정실 부인과 적장자에 대한 구명을 호소할 수도 있었으나, 당시 자신보다 기령과 무력에서 앞선 상전 격인 동맹자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우다이진에게 운명의 해가 된 덴쇼 10(1582)의 출발은 산뜻했다. 나가시노 전투에서 처참한 패전을 겪긴 했지만 여전히 카이와 시나노의 패자로 군림하던 타케다 카츠요리의 실정으로 다수의 가신들이 이탈한다는 첩보를 접수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미카타가하라의 최종 복수전에 나선다. 수대를 거쳐온 미나모토 씨 명문 출신의 카츠요리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당하고, 멸문하는 장면도 이미 읽었기에 기시감으로 넘어가련다.

 

우다이진의 진짜 문제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사천왕 중의 한 명인 아케치 미츠히데에 대한 처우였다. 원래 아사쿠라 가문에 출사하던 아케치 미츠히데의 백부는 바로 오노/노히메의 아버지였던 미노의 살무사 사이토 도산이었다. 도산 역시 미츠히데의 역량을 높게 평가했었다. 물론 그것은 사위 우다이진 노부나가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다. 오다 군단에 합류한 아케치 미츠히데는 축성의 달인으로 우다이진 노부나가의 거성인 아즈치 성을 건축했으며, 무장으로서도 숱한 전공을 세워 단바와 오미의 54만 석의 영지를 받은 오다 가문 중신 중의 중신이었다.

 

위기를 극복한 우다이진 노부나가는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바로 이런 사나이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대머리라고 부르며 자신의 측근들인 코쇼들 앞에서 망신 주기를 거듭한다. 십대인 모리 란마루를 시켜 대신 폭행하는 장면에서는 기가 찰 지경이었다. 게다가 카츠요리 정벌 후에 미츠히데 자신의 결정적 말실수까지 겹치면서 미츠히데는 자신이 결국 우다이진에게 팽당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 잡히게 된다.

 

결국 모든 책임은 자신의 중신이 모반할 생각을 품게 한 우다이진 노부나가에게 돌려야할 것 같다. 교토를 방문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접대역을 맡겼다가 자신의 의중을 읽지 못한 미츠히데에게 다시 한 번 벼락 같은 호통을 친 우다이진. 한 때 천하를 품을 만한 기량을 가졌던 무장에게 그런 모욕을 가하고도, 아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빗추의 다가마츠 성에서 사이고쿠의 모리 군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하시바 히데요시 휘하에 들어가 싸우라는 명령에 결국 아케치 미츠히데는 병력을 동원해서 혼노 사에 머물고 있던 우다이진 노부나가를 습격한다.

 

할복을 거부하고 혼노 사에서 끝까지 싸우던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의 어느 지점에서 이시야마 혼간 사가 있던 오카사에 거성을 쌓고, 사이고쿠의 모리 가문을 치고 그 다음에 칸토 오다와라의 호죠 가문을 정벌하는 유언 같이 남긴 말 우다이진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대로 따랐다는 점이다. 그는 과연 자신의 죽은 뒤까지도 예언할 수 있는 그런 능력자였단 말일까.

 

오다 노부나가가 생전에 타령하던 아츠모리처럼 그는 인생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풍운아의 삶을 혼노 사에서 마무리지었다. 평소 관습과 전통을 우습게 알고,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하려던 그의 천하포무 꿈은 그렇게 스러져 갔다. 고수처럼 전장에서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그의 전략 전술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시바타 카츠이에나 하시바 히데요시 같이 야심만만한 가신들을 부리고, 동맹자이자 라이벌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내로라하는 무장들을 다루는 솜씨 역시 대단했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새로 쌓은 아즈치 성을 킨키의 새로운 중심지로 삼아 쿄토의 국왕을 근왕이라는 미명 아래 통제하면서 각지를 제압하려는 시도도 인상적이었다. 일찍이 교역의 중요성을 깨달아 통행의 제한을 풀고 물산의 유통을 장려한 것처럼 아즈치 성 일대를 일체의 세가 없는 자유도시로 만들어 사카이 버금가는 상업 요충지로 만드는 경세의 달인이기도 했다. 난세의 어둠을 걷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과연 천하인 다운 모습이었다. 다만, 오와리의 난폭자라는 킷포시 시절의 별명처럼 너무 많은 피를 흘린 게 문제였다. 덕분에 후세에도 그에 대해 무력만 앞세우는 무자비한 폭군이라는 세간의 평이 남게 된 게 아닐까.

 

이런 우다이진 노부나가의 실패를 옆에서 조용히 관찰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의 포용과 평화의 정신으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성공했다. 결국 천하제패에 실패한 군주가 주는 교훈이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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