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 1 - 소크라테스에서 갈릴레오까지의 철학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 1
뱅상 자뷔스 지음, 니코비 그림, 양영란 옮김, 요슈타인 가아더 원작 / 김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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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도서관에서 내일 책을 반납하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라? 무슨 책을 내일까지 반납하라는 거지? 이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서도 읽지 않거나 아니 아예 무슨 책을 빌렸는지디 모르게 된 모양이다.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1>이라고 한다. 아직 펴보지도 못했는데. 그래서 부랴부랴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올해 파이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저자가 노르웨이 사람이니 아마 이 철학개관 소설, 지금은 그래픽 노블의 주인공인 십대 소녀 소피 아문센도 아마 노르웨이 사람이려니 싶다. 철학 개관서로 되게 유명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나는 책으로는 만나 보지 못했다. 이럴 때, 그래픽 노블은 치트키로 되게 유용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수수께기 철학자의 편지가 도착하는 것으로 기후변화 시위를 준비하던 소피는 세계 철학의 세계에 뛰어 들게 된다. 철학과 판타지 그리고 그래픽노블의 만남이라,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이 책에 따르면 철학의 기본 덕목은 놀라움 그러니까 경이로움을 느끼는 거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삶에 있어서 아주 간단한 질문들,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진 걸까?

 

이런 거창한 질문을 던지면 일상의 노동에 찌든 우리들은 아마 대답할 말이 없지 않을까. 한달 전 회사 회식에서 친한 동료에게 무엇 때문에 사는지,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며 산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는 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난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고. 그리고 우드카빙의 명가 모라나이프를 당근에서 나무 조각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거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삶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러지 못하는 건 아마도 그동안 우리 사회가, 우리 교육 시스템이 철저하게 암기위주의 교조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우리에게 주입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만약 교실에서 젊은 청춘들의 그런 엄청난(?) 질문들을 대하게 된다면 과연 교육자들은 어떤 대답을 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쩌면 똑 떨러지는 대답을 원하는 질문들에 대답할 수 없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해마다 그런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데, 왜 우리들에게는 소위 넉넉한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는가? 대표이사만 항상 최대 이익을 챙기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아마 이런 질문을 던졌다가는 바로 다음날 회사에서 자리가 비게 되지 않을까. 늘그막에 이런 심오한 질문들이 마구 발생하는 걸 보면 과연 그래픽노블 <소피의 세계>를 내가 제대로 읽지 않았나 하는 착각에 빠진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대단히 서설이 길었다. 철학의 출발점은 아무래도 그리스가 될 것이다. 여러 고대 철학자들이 책에 소개가 되지만 그중에서도 데모크리테스의 4원소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몇 가지 원소로 구성되었다는 가설, 대단하지 않은가. 그리고 상당히 유물론적인 접근이 아닐까 싶다.

 

이성과 감각을 통해 자신이 사는 세상에 대한 정보를 취득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질문을 동반한 사유를 하게 된다. 소피(이름부터 소피아 혹은 필로소피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역시 수수께끼 철학자와 동반한 철학 여행길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배우고 느끼면서 다음 레벨로 업그레이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가. 여성을 불완전한 남성으로 묘사한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 각성한 현대여성으로 바로 반박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바로 이거지! 결국 깨달은 사람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그런 현실을 그대로 적시한다.

 

다음 수순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등장이다. 델포이 신전에 써있던 말인 너 자신을 알라는 분수를 알거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세상만사를 모두 알 수 없다는 한계를 알라는 그리고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라는 격언이다. 그 말인즉, 결국 매사에 겸손하라는 말이 아닐까. 속된 말로 무식한 이가 용감한 법이다. 아니 한 권의 책을 읽고서 맹신적 모습을 경계하라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지금도 여전히 철 지난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와 그놈의 지긋지긋한 트리플다운 효과를 앵무새 타령하듯 주술처럼 외우는 나라와 보수 언론이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보다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사유와 그런 사유에 기반한 창조적 도약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는 판타지 회로를 돌려 보기도 한다.

 

다음 계보로 등장한 플라톤의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 철인정치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상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250쪽 가량의 분량에 자그마치 천년이 넘어가는 철학의 유구한 역사를 압축해서 다루는 저자의 패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디오게네스로 대표되는 키니코스학파(혹은 견유학파)의 안분지족하는 삶에서는 미니멀리즘의 향기를 느꼈다. 사악한 쾌락주의자로 매도된 에피쿠로스의 추종자들에 대해서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도 바울에 이어 초기 기독교의 위대한 교부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개종한 마니 교도였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됐다. 이런 내가 미처 모르고 살았던 점들도 바로 놀라운 경이의 연속이 아닌가 말이다. 이렇게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면 자각한 개인은 나처럼 무언가 더 알고 싶다는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소피 아문센처럼 개인의 성장과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는 게 바로 저자가 철학 소설을 집필하면서 의도한 무언가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 존 밴빌의 <케플러>를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품고 있던 생각들과 오래된 질문들을 격발시켰던 유사한 동인들을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에서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이거야말로 명징한 그런 메시지가 아닐까. 이제 철학을 읽을 시간이 되었다는. 그런데 아쉽게도 <소피의 세계 2권은 나와 있지 않더라. 내일 도서관에 가니 원본 <소피의 세계>를 빌려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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왬! 라스트 크리스마스
앤드류 리즐리 지음, 김희숙.윤승희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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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매니아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려서 가요를 듣지 않았다. 왜냐구? 너무 구려서. 그 시절에는 팝송만 들었다. 누군가 가요를 듣는다고 하면, 단체로 다구리를 쳤다. 그 다음에는 헤비메틀에 미쳐 살았고. 또 그 다음에는 클래식의 세계에 흠뻑 영혼을 팔아먹었다. 지금은 다시 아이돌들이 부르는 가요를 즐겨 듣는다. 요즘 아이돌과 오래 전, 팝의 공통점을 가사를 모른다는 점이다. 신기하지. 나의 어릴 적 우상이었던 조지 마이클 형은 이제 고인이 되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이건 외전으로, 언젠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거리에서 만났다. 들어 보니 내 덕분에 음악에 미친 그 친구는 음악다방을 차렸다고 했다. 아니 이럴 수가. 그 때 나는 죽어라 가요를 듣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에게 나는 배신자였다. 그에게 나의 배신을 알리지 않았다.

 

중고서점에서 <!>의 멤버였던 앤드류 리즐리의 자서전을 보는 순간, 이건 사야돼!가 절로 흘러 나왔다. <라스트 크리스마스>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영국 부시 미즈 시절, 팝스타를 꿈꾸던 두 소년이 만나 훗날 세계적 팝 듀오가 되는 <!>의 태동기가 그려진다. 요그(조지 마이클)는 그리스계 혈통으로 자신의 이름과 외모 특히 그의 골칫거리였던 곱슬머리 때문에 호남자 앤드류 리즐리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그의 절친 미스터 리즐리에 의하면, 요그는 자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범생이었던 모양이다.

 

둘은 영국 사회에서 약간이방인이었던 모양이다. 미스터 리즐리는 이집트계 그리고 요그는 그리스 혈통의 남자였다. 여튼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청소년들은 밴드를 결성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작업에 들어갔다.

 

요그와 앤드류가 청소년기를 보낸 1970년대말과 198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자 마거릿 대처가 집권한 영국은 무기력증이 휩쓸고 있었다. 세계적 불경기와 민영화 바람으로 영국에서는 대규모 실업과 파업이 일상화되었다. 그런 저간의 사정은 1982년 발표된 왬의 데뷔 싱글 <Wham Rap! (Enjoy What You Do)>의 가사에도 잘 나타난다. 일자리가 있건 없건 간에 하고 싶은 걸 즐기라고.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듣던 유행가 가사에 이런 심오한 뜻이 있을 줄이야.

 

물론 훗날 세계를 주름잡게 되는 왬이 처음부터 잘 나가는 그런 밴드는 아니었다. 처음에 앤드류와 요그가 만든 밴드 이름은 <더 이그제큐티브>였고, 숱한 멤버 체인지를 겪으면서 듀오로 이너비전과 계약하게 된다.

 

당시 음악계는 MTV의 등장으로 듣는 음악의 시대에서 보는 음악의 시대로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왬의 선배격인 듀란 듀란 그리고 스팬다우 발레를 비롯한 거의 모든 밴드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감각적이면서 멋진 그리고 자극적인 뮤직비디오를 만드는데 투자를 아까지 않았다. 왬이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초반부까지만 해도 미스터 리즐리는 곡을 만드는데 있어 요그의 친구이자 음악적 동지였다. 왬의 최고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는 <Careless Whisper>만 하더라도 공동 작사가와 작곡가로 미스터 리즐리가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가. 다른 건 몰라도 음악에 있어 욕심쟁이였던 요그(팝스타가 되기 위해 조지 마이클이라는 예명을 정했다)가 친구에 대한 호의를 베풀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명곡을 십대 후반의 청년들이 1981년에 대강의 모티프를 잡았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훗날 세계적 싱어송라이터로 발돋움하게 되는 조지 마이클이 이 곡을 만들면서 거의 완벽을 추구하는 바람에 곡의 시그니처가 된 초반의 색소폰 연주자를 11번인가 갈아 치웠다고 했던가. 지금도 절로 곡의 가사가 외워지는 <Careless Whisper>를 대학 시절 어느 맥줏집에서 같이 듣던 동기는 나이트클럽 부루스 타임에 스텝이 쩍쩍 붙는다는 말을 내게 했었지. 그저 이 곡을 노래로만 알았지, 댄스 플로어에서도 즐기는 명곡인지는 그땐 미처 몰랐다.

 

행운의 여신이 왬에게 미소를 보냈고, 1983년에 발표된 그들의 데뷔 앨범 <판타스틱>이 영국에서 대성공하면서 비로소 왬이 세계적 밴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소녀팬들의 우상이 된 두 영국 청년들의 야심은 컸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영국 시장의 성공만으로는 야심가였던 조지 마이클은 만족할 수가 없었다. 결국 팝의 본토 미국 시장을 공략해야만 했다. 한편, 유명세를 타기 위해 팀의 매니지먼트사에서는 온갖 종류의 자극적 루머를 마다하지 않았다. 미스터 리즐리가 죄인 역할을 맡았다면, 조지 마이클은 성자 역할을 맡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Club Tropicana>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로케이션 촬영지였던 이비사섬에서 조지 마이클은 앤드류에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힌다. 자신이 게이라고. 하지만 당시는 1980년대였고, 지금과 또 상황이 달랐다. 유리 멘탈(?)이었던 조지 마이클은 자신들의 음악적 성공을 위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철저하게 숨겼다. 건강하고 순수한 쾌락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이미지가 그들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팬을 속였던 걸까? 모르겠다, 지금의 기준에서 40년 전의 팝스타들의 행적에 대해 판단하는 게 옳은지 말이다.

 

어쨌든 왬이 세계 정상의 밴드로 우뚝 서게 되는 결정적 음악적 성취는 바로 두 번째 앨범이었던 <Make It Big>1984년 발표되면서였다. 전작 <판타스틱>이 치기 어린 두 청년들의 장난기 이런 그런 음악적 시도였다면, <Make It Big>이 차원이 다른 그런 음악들을 선보였다. 색소폰 전주만 들어도 짜릿해지는 <Careless Whisper>는 차치하고서라도, <Wake Me Up Befor You Go Go>를 필두로 해서 <Everything She Wants> 그리고 <Freedom>의 잇단 대흥행 그리고 전미투어까지 대성공시키면서 왬은 단순하게 영국 밴드가 아닌 그야말로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또한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가 합심해서 창조한 왬의 결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고 한다. 차트 성적에 유난히 집착하는 조지 마이클과 달리 미스터 리즐리는 순수하게 대규모 밴드와 함께 하는 투어를 온전하게 즐겼다. 하지만 솔로 아티스트로 불타는 야망을 가지고 있던 조지 마이클에게 왬은 어쩌면 하나의 굴레였을 지도 모르겠다. 밴드에서의 비중도 지나치게 조지 마이클에게 기울면서 두 친구의 불화설은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언론의 지나친 관심 덕분에 정상에 섰던 두 친구의 밴드가 결국 해체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 아니었을까.

 

심지어 둘이 합작해서 만든 <Careless Whisper>는 조지 마이클의 솔로곡으로 발표가 되었다. 미스터 리즐리가 많은 면에서 음악적으로 자신보다 출중했던 친구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들였다면 그 또한 이상하지 않았을까? 자서전에서 미스터 리즐리는 상당 부분을 그런 오해들을 해소하는데 할애한다. 어쩌면 이제 고인이 된 친구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을 지도 모르겠다.

 

결국 왬은 1986628일 웸블리에서 가진 파이널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7년에 걸친 대항해를 마무리지었다. 해체와 더불어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조지 마이클은 다음해에 솔로 데뷔 앨범 <Faith>를 발표하면서 레전드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슈퍼스타 친구의 버프를 받았지만, 미스터 리즐리의 솔로 앨범은 폭망했고 그는 영원히 음악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전에 잠시 레이서로서 활동도 했지만 그 역시 그의 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왬의 자서전 <라스트 크리스마스>에서 미스터 리즐리는 상당 부분을 청소년 시절, 왬의 태동기 그리고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진솔하게 진행한다. 왬 이후에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 그리고 2016년 크리스마스날 날아온 비보를 전하는 것으로 자서전의 대미를 마친다.

 

음악으로만 접하던 어린 시절 우상이 직접 저술한 자서전을 통해 만나는 경험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책에 나오는 노래들을 찾아 다시 듣고, 또 이런저런 감상에 젖었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영국의 평범한 청년들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팝스타가 되겠다는 자신들의 꿈에 도전하는 과정은 아름다웠다. 그들의 곡/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일자리를 찾아 집을 나가라는 부모님의 명령은 1981년 뿐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다. 이십대의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는 자신들이 처한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노래에 담았고,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그에 반응했던 게 아닐까.

 

인기 절정의 팝스타가 되었지만,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른 거대한 도전에 나선 조지 마이클의 내면세계에 대한 묘사도 마음에 들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성공을 거머쥔 청년들에게 조언을 건네줄 멘토의 존재가 부재했다는 점도 아쉽게 다가왔다. 특히 조지 마이클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터놓고 의논할 상대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거리에는 <라스트 크리스마스>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하도 들어서 절로 싱어롱을 하게 된다. 나에게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그런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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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2-23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ham 저도 알지는 못해도 많이 들었는데 와! 요그라는 이름 참 이색적이네요 그리스를 연결해서 상상해 본적도 없었는데 레삭매냐님 덕분에 좋아했던, 좋아하는 조지 마이클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네요^^

레삭매냐 2023-12-23 22:59   좋아요 0 | URL
지난 여름에 넷플릭스에서 <왬!>
다큐가 나왔다고 하는데...

저는 넷플 구독자가 아닌지라 아직
도 못봤네요 ^^ 진짜 재밌다고 하
던데 말이죠.

항상 음악만 듣다가 책으로 만나니
또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coolcat329 2024-01-10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혹시 넷플릭스 왬 다큐보셨나요?
초딩 6때 처음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조지 마이클이었어요. AFKN에서 faith 뮤직비디오 보고 세상에! 하고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ㅋㅋ
내 나이에 보면 안될 거 같은데 보고는 싶고 혼자 흠모했었네요. 어릴 때는 외모가 좀 아니었는데 데뷔하고 섹시해지면서 여성팬이 폭발적으로 늘자 본인도 당황하고 괴로워했다죠.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은 모르니 얼마나 혼자 힘들었을지.

레삭매냐 2024-01-10 12:59   좋아요 1 | URL
아 저도 독서모임에서 저희 동지분께서
넷플 <왬!> 다큐 소개를 해주셔서 보고
는 싶었으나 넷플 계정이 없는 관계로
못 봤네요.

그러니깐요, <Faith> 시절 조지 마이클
은 정말 !!! 쨩쨩쨩 ~ 저도 에프켄에서
뮤비 보고 기냥...

조지 마이클의 성정체성은 책에 보니
이미 1집 <클럽 트로피카나> 뮤비
찍을 적에 앤드류 리즐리에게 고백했
다고 하더라구요.
 
치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9
빌렘 엘스호트 지음, 금경숙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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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가운데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 책이 바로 빌렘 엘스호트의 <치즈>. 엘스호트가 1882년 생이니 19세기 사람이네.

 

소설 <치즈>의 주인공 프란스 라르만스는 종합 해양 조선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30년째 장기 근무 중인 회사원이다. 정말 징하게도 한 직장에서 오래도 해먹었구나. 그에게는 8명의 형제자매들이 있었고, 고령의 어머니는 노망이 나셔서 한 개 중대분의 감자를 깎거나 솜이불의 보풀 뭉치를 해체하시는 일로 하늘나라에 가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 앞에서 임종을 맞으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우리가 언젠가 맞게 될 운명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형님의 소개로 알게 된 독신남 변호사 판스혼베커 씨의 소개로 명망가 클럽에 들어가게 되고, 변변하지 못한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의 주선으로 어느 날 갑자기 라르만스는 사업가로 변신을 하게 된다. 명망가 클럽에서 라르만스는 해외여행도 해보지 못하고, 그네들이 나누는 레스토랑 순례기에도 끼어들지 못하는 그런 천덕꾸러기 행세를 한다. 요즘 같으면 맛집과 호화 여행지 사진들이 넘실거리는 SNS에서 소외된 중년의 전형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이 그에게 자극이 되었을까. 얼떨결에 네덜란드에 위치한 호른스트라사로부터 고지방 에담 치즈를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서 판매하는 총책을 맞게 된 라르만스. 그것은 1933년 당시 마치 로또 맞은 그런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판단한 라르만스는 당장에 다니던 조선소를 때려 치울 생각을 하지만 식구(아내)와 열두 살이나 많은 큰형님의 만류로 직장과 사업을 병행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나중에 판명되지만 잘한 결정이었다.

 

자신이 만날 회사에서 계약서를 다루었으면서도 미처 호른스트라사와의 계약서에 독소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라르만스. 자신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가진 식구 덕분에 자신에게 유리해 보이는 계약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호른스트라사에서 자그마치 20톤에 달하는 어마무시한 양의 고지방 에담 치즈가 도착하면서 라르만스의 사업도전은 위기에 처한다. 아니 이걸 어떻게 다 팔지?

 

무엇보다 지난 30년 동안 월급쟁이로 매달 통장에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의 노예였던 라르만스는 장사꾼의 기질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호른스트라사의 유통책이라는 직책과 앞으로 벌어들일 돈에 대한 유혹 때문에 49세 중년 남자의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다. 큰형님 의사 라르만스는 처음부터 동생 라르만스의 실패를 정확하게 예견했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라르만스의 실패는 예고된 재앙이었다. 어마무시한 20톤이나 되는 에담 치즈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그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유통기한이 정해진 제품을 보관하기 위한 냉장 장치가 설비된 창고가 그에게는 필요했지만 사전에 생각하지 못했다. 사무실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신이 사는 집에 마련했다. 시간이 돈이라는 걸 알면서도 중고 책상과 타자기를 사기 위해 일주일을 허비했다. 치즈를 팔기 위해서는 유통망이 필요했는데 그에 대한 준비도 전무했다. 부랴부랴 중개상 수배에 나섰지만, 책임감 있게 자신을 대신해서 치즈를 팔아줄 사람은 구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라르만스는 배수진을 친다는 의미에서 조선소를 과감하게 때려 치우려고 했으나 식구와 형님의 만류로 일단 자발적인 신경증 환자가 되어 3개월짜리 무급병가를 냈다. 아무리 신경증 환자라고 하더라도 조선소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되기에 스파이처럼 비밀리에 움직여야 했다. 세상에 이런 악조건을 업고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문제 아닐까? 재밌는 장면 중의 하나는 조선소에서 그의 존재감이었다. 헨리 사장님에게 보고하지 않고, 장기 무급병가를 처리하겠다는 제안을 들어 보니 라르만스는 조선소 사무실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게 아닌가 말이다. 요즘 세상이라면 당장에 정리해고 대상 1호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라르만스의 일탈적 치즈 사업이 실패로 귀결되고, 그는 다시 자신의 원래 직장으로 조기 복귀한다.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그런 일탈을 라르만스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최소한의 손실로 틀어막는데 성공했다.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자면 소중한 인생경험을 한 것으로 퉁치자고 할까. 원래 상태로 복귀한 라르만스는 얀과 이다 그리고 식구와 더불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그런 삶을 지속하게 되리라.

 

우리 현대인에게 만족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사기 위해 노동하고, 돈을 벌어들이고, 그 돈으로 끝없는 소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작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탈을 꿈꾼다. 누군가는 그 일탈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러지 못하겠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웠던 프란스 라르만스의 실패 이야기가 누군가를 주저앉히는 이야기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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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 - 가장 진실한 허구, 퍼렇게 빛나는 문장들
존 밴빌 지음, 이수경 옮김 / 이터널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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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을 기다렸다, <닥터 코페르니쿠스>를 만나고 나서. 존 밴빌의 혁명 3부작중에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케플러>가 드디어 출간됐다. 그리고 존 밴빌의 책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펀딩을 해서 지난 토요일에 받아서 어제 다 읽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완독을 하루 끌었다. 그만큼 재밌다는 말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 들여, 수천년 동안 점성술 혹은 미신에 가까웠던 천문학을 새로운 학문의 경지로 끌어 올린 문제적 인물이 바로 슈바벤 바일데어슈타트 출신의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였다.

 

존 밴빌은 새로운 세계관을 창시자였던 코페르니쿠스에서 출발해서 아이작 뉴턴에 이르는 근대 자연철학자 열전 가운데 중간다리 역할로 케플러를 골랐다. 전작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이것이 전기소설인지, 아니면 바로 옆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은 관찰예능인지 모를 정도의 몰입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케플러의 아버지는 허풍장이 용병이었고, 어머니 카타리나는 타고난 독설가였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박쥐 날개 같이 요즘으로 치면 마약에 가까운,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물품을 취급하던 자연치료사, 당시 말로 하자면 마녀에 가까운 그런 인물이었다. 이런 연대기적 흐름 대신, 소설은 1600년 그러니까 새로운 세기에 프라하 근처의 베나테크성으로 가족들과 함께 덴마크 출신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학자 튀코 브라헤를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당대 유수의 지식인이었던 케플러의 성공은 역설적이게도 점성술에 힘입었다. 그 어느 때보다 혹독했던 겨울의 추위와 튀르크 군단의 침공을 예언하면서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우주의 신비>보다 더 큰 관심을 모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케플러가 발견했다는 전체의 세 법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관심이 없는 분야다 보니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발견이었는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그보다 루터 교도로서 자신이 믿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가톨릭 신앙이 대세였던 그라츠와 린츠 그리고 합스부르크 군주 밑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봉사해야 했던 인간 케플러의 고뇌에 더 관심이 갔다.

 

아내 바르바라 뮐러에게 케플러는 놀랍게도 세 번째 남편이었다.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수전노 같은 이미지의 장인과 바르바라에게 협공당하는 장면은 네이트판에 등장할 법한 스토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우주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전력투구하던 위대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역시 우리네 같은 그런 일상과 싸워야 했단 말이지.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그런 풍경이 문득 살갑게 다가왔다.

 

생존과 알량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장인과 달리 케플러는 평생 종교적 신념을 지킨 인물이었다. 케플러가 루터 교도로서 정체성을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면 그의 신산한 삶에 한줄기 빛이 비추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제국의 황제였던 루돌프 2세 앞에서도 눈치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떠들던 자가 바로 케플러가 아니었던가. 동행한 브라헤가 그렇게 눈치를 주는데도 외골수였던 케플러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다. 끝까지 십진법 체계이기 때문에 모든 수가 9로 나뉜다는 황제의 화두를 설명하는 장면은 케플러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존 밴빌식 해석이 아닐 수 없다.

 

훗날 화성 전쟁으로 알려진, 화성의 공전 궤도를 알아 내기 위해 무려 70번이나 되는 엄청난 계산을 마다하지 않고 7년이란 세월을 투자한 사나이가 바로 케플러였다. 어쩌면 그에게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의 운행과 천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만한 어떤 하나의 놀이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하고 싶은 그런 놀이를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요하네스 케플러라는 문제적 인물이 가진 다양성의 본질과 인간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한 저자의 서사에 놀랄 수밖에 없다. 물론 상당 부분을 후대에 쓰인 글들을 참조했겠지만, 그것을 뼈대로 해서 지근거리에서 자신이 직접 본 것을 글로 옮긴 것 같은 전언적 서술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의붓딸 레기나와의 관계에서 특히 그런 점이 느껴졌다.

 

자신을 발탁한 튀코 브라헤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장년의 변덕스러운 브라헤 특의 오만함과 허영심에 질린 케플러는 그의 존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 역시 천문학계에서 코페르니쿠스를 계승해서 나름 빼어난 커리어를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자신이 크리스티안 롱베르나 텡나겔 같은 브라헤의 조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과음 때문에 발생한 방광염으로 사망한 브라헤가 남긴 천문관측 자료들은 결국 그의 유언에 따라 케플러가 상속받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케플러에게 브라헤가 남긴 자료들은 그야말로 노다지가 아니었을까.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루돌프력을 만드는 수고 역시 케플러의 몫이 되었다.

 

브라헤 사후, 케플러는 제국의 공식 수학자가 되었지만 군주들이 원하던 점성술사로서의 역할에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자신을 지지해주던 루돌프 2세가 강제로 퇴위되고 경쟁자 마티아스 그리고 자신과 악연으로 얽힌 페르디난트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케플러의 운명 역시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30년전쟁>이라는 대전란 가운데, 가톨릭 신앙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페르디난트 2세의 치하에서 곡예에 가까운 줄타기를 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케플러의 모습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자신에게 한푼의 유산도 상속하지 않은 아내 바르바라는 끝내 케플러의 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었다. 의붓딸 레기나 역시 27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바르바라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도 유년기를 못 넘기고 사망했다. 우주의 신비와 질서를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친 케플러에게 삶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통의 원천이기도 했다.

 

소설 후반에 아주 짧게 페르디난트 2세의 총사령관으로 전장에서 맹활약한 발렌슈타인과의 인연도 등장한다. 구두쇠 황제는 자신이 케플러에게 지급하기로 약속한 돈을 발렌슈타인에게 떠넘긴다. 케플러를 천문학자라기보다 자신의 개인 연금술사나 점성술사 정도로 받아들인 발렌슈타인은 케플러가 바라던 후원을 해주지 않았다. 전장에서 승승장구하던 발렌슈타인이 황제의 총애를 잃고 몰락해 버리면서, 케플러는 연구와 책의 인쇄를 위한 자금줄이 막혀 버렸다. 다시 한 번 황제에게 자금 출연을 호소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케플러는 16301115일 레겐스부르크에서 사망했다.

 

르네상스 부흥으로 촉발된 인문주의와 자연철학의 세례, 새로운 세계관을 상징하는 종교개혁 그리고 인쇄술의 진보에 힘입어 요하네스 케플러는 새로운 천문학의 길을 닦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식들과 부인을 차례로 잃었고, 어머니 카타리나는 마녀 재판에 회부되어 송사로 수년간 시달려야 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케플러는 신이 창조한 우주의 질서와 신비를 밝히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케플러의 인생 후반기는 역병과 기근이 끊이지 않던 30년 전쟁이라는 대전란의 시기였다는 점이다. 다사다난한 개인사, 종교적 핍박과 역경의 시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케플러의 3법칙과 훗날 뉴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행성 간의 중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는 사실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단순하게 근대 천문학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케플러가 품고 있던 다채로운 삶의 스펙트럼을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무대에 올려 독자에게 소개한 저자 존 밴빌의 의도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혁명 3부작의 마지막 주자인 아이작 뉴턴이 등장하는 <뉴턴 레터>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

 

[뱀다리] 인별그램에서 케플러에 대한 피드가 있나 해서 검색해 보니, 죄다 걸그룹 케플러에 대한 피드만 보여서 좀 실망했다. 21세기에는 천체와 행성 전문가 케플러보다 아티스트 케플러의 유명세가 더 강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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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3-12-19 0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언제 다 읽으시고 이렇게 정성들여 쓰셨나요^^ 대단하세요! 저도 받아서 표지만 구경한 상태입니다^^ 혁명 3부작의 마지막 작품도 기다려지네요!

레삭매냐 2023-12-19 08:24   좋아요 1 | URL
너무 재밌어서 손에 잡는 순간,
놓을 수가 없더라구요.
고고씽!~입니다.

언능 <뉴턴 레터>가 나왔으면
합니다.

존 밴빌은 책도 많이 썼는데 다른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에
소개된 책이 많이 없더라구요.

독서괭 2023-12-19 05: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재밌어 보이네요! 1부 코페르니쿠스도 몰랐는데 혁명3부작, 찜해갑니다~~

레삭매냐 2023-12-19 08:25   좋아요 1 | URL
아숩게도 <닥터 코페르니쿠스>는
절판돼서 이제는 구할 수가 없더라
구요. 중고서점에도 없구...
도서관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케플러> 너무 재밌었습니다.

blanca 2024-01-09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온지도 몰랐네요. 존 밴빌 <바다>는 지금도 그 강렬한 감동을 잊을 수가 없는데 케플러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별들의 흑역사 -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
권성욱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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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면 미처 출간된 지도 몰랐던 책들과 만나는 그런 즐거움이 있다. 이번 주말에도 <별들의 흑역사>라는 책을 만났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에 만났던 패전사와 비슷한 궤적의 책이 아닌가 싶더라. 실패한 전쟁에서 배우는 교훈이라고나 할까.

 

똥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 하나 있지 않은가? 그렇다 비밀 독립군이라는 말로 온갖 조롱을 받으며 기세 좋게 출발한 임팔 작전을 망친 영웅무다구치 렌야다. 태평양 전쟁 당시 남양군도과 여러 곳에서 프로 삽질러의 전형을 보여 준 숱한 일본군 똥별 장군들이 수두룩하지만 그 중에서도 무다구치의 활약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3개 사단 자그마치 10만 여명의 병력을 동원해서 인도의 임팔을 공략하고, 중국을 지원하는 연합군의 숨통을 끊어 놓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로 시작된 작전은 처음부터 성공할 수가 없는 그런 작전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보급이었고, 그 다음은 아라칸 산맥과 이라와디-살윈 강 같은 엄청난 규머의 강 같은 지형이었다. 연합군에 비해 치중 부대에서 차량이 아닌 우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던 일본군에, 무다구치는 물소의 등에 짐을 지워서 보급품을 실어 나르고 여차하면 그 물소를 잡아먹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구상을 했다. 하지만 물소가 기존의 소나 말처럼 부리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게다가 험준한 지형에서 통제를 따르지 않다가 절벽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무다구치는 1944년 전인 2년 전에 이미 비슷한 작전을 구상했다가 보급이 여의치 않을 거라는 점을 들어 작전 계획을 취소한 전력이 있었다. 하지만, 2년 뒤에는 무슨 심정의 변화가 생겼는지 임팔 작전 강행에 나서게 된다. 2년 전에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보급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던 무다구치는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현지의 풀을 먹을 것을 주문했다고 하던가. 그들이 그렇게 환호작약하던 황군정신만으로는 영국군의 중화기와 강력한 전차를 상대할 수가 없었다.

 

초전에 31사단이 코히마 점령하면서 기세를 올리기도 했지만, 영국군의 매서운 반격과 결국 18군의 발목을 잡게 된 보급 부족으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현지 사단장들의 판단으로 후퇴에 나서게 된다. 특히 31사단장 사토 고토쿠는 독단으로 철수명령을 내려 병사들을 후방으로 소개시켰다. 일본군 창설 이래, 첫 번째 항명 사건 1호로 기록된다. 극우작가 야마오카 소하치의 전선 기록에서는 무다구치와 사토와의 악연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는 둘이 구원으로 티격태격했다고 한다.

 

어쨌든 제대로 된 전략과 현지 지형에 대한 이해 그리고 충분한 보급 없이 무턱대고 전선에 뛰어 들었다가 대패한 일본 육군 최악의 무모한 시도가 바로 임팔 작전이었다. 그리고 그 연출에 있어 무다구치는 조금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었다. 물론 그 위의 상관들인 버마 방면군 사령관 가와베 마사카즈와 남방총군 대장 데라우치 히사이치도 조연으로 이른바 백골가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임팔 작전에 앞서 시행된 하호 작전에서 하나야 다다시라는 똥별이 보여준 시대착오적 전투도 주목할 만하다. 세상에 전투를 적의 보급품을 뺏어서 하는 거라는 구시대적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만주사변에서 이시하라 간지와 이타가키 세이지로의 대활약에 가려져서 그렇지, 엘리트 육군 출신으로 특무기관 소속이었던 하나야 다다시도 한몫 단단히 했었다고.

 

육군사관학교 그리고 육군대학 출신 엘리트였던 하나야 다다시는 오만에 쩔어, 자신보다 못한 경력의 인사들이라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무시했다. 상관도 안중에 없던 모양이다. 이런 일본군의 하극상이야말로 고질적 병폐였다. 심지어 군부에 비판적인 언론사에 쳐들어가 기자와 사원들을 폭행하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단장이라는 고위직 지휘관이었던 하나야 다다시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급자들을 폭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온갖 구타와 폭언 그리고 무분별한 공격 강요로 애꿎은 병사들을 희생시켰다. 심지어 작전이나 전투에 실패한 휘하 지휘관들에게 할복을 강요해서 할복 사단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일본군 3대 오물에 비교해 볼 때, 하나야 다다시는 역량과 액션에서 조금도 떨어지는 선수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눈길을 북아프리카로 돌려 보자. 어라, 그리고 보니 <패전사>에도 나오는 인물과도 겹치네. 마셜 원수에게 픽업되어 북아프리카에서 전차전의 귀신 롬멜과 상대하게 된 로이드 프레덴들의 이야기다.

 

히틀러가 유럽 대륙에서 전쟁을 일으켰을 당시만 하더라도, 전쟁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던 미국은 서둘러서 전시 징병제를 실시해서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많은 병사들이 모집되어 훈련이 필요했다. 로이드 프레렌들은 바로 이런 역할에 적합한 인사였다. 하지만 총알과 포탄이 날아드는 전장은 조건이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상대는 동부전선에서 활약한 폰 아르님과 사막의 여우 롬멜이 아니었던가.

 

적정 시찰에 적극적이었던 롬멜과 달리 프레덴들은 안락한 후방에서 모호한 지시들을 내리기 일쑤였다. 그러니 이제 막 전선에 투입된 경험이 일천한 미군 병사들이 역전의 롬멜 아프리카 군단병들을 상대할 수가 있었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마셜 장군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연합군 간의 조정과 인사권 행사라는 점에서 훌륭하게 임무를 해냈지만, 적어도 북아프리카 전선에 프레덴들을 투입한 것은 그의 치명적 실수 중의 하나였다. 시디부지드와 카세린 협곡에서 뼈아픈 일격을 당한 미군은 패전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곧바로 엘 궤타르 전투에서 독일군을 패퇴시킨다. 물론 조지 패튼이라는 맹장을 투입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 책에서 내가 얻은 최고의 수확은 장제스와 스틸웰 간의 심각한 갈등을 다룬 부분이었다. 정말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기의 만남은 중국 전선에서 대원수 장제스와 미국인 군사고문 조 비니거스틸웰의 그것이었다. 일본의 거센 공격에 밀린 중국은 미국의 군사물자 원조와 장비 그리고 미군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인종주의자이자 장제스를 경멸했던 스틸웰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스틸웰은 장제스가 신편해서 애지중지 기른 정예 병력들을 전략 예비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목표였던 버마 탈환에 집중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해전에서 미군에게 잇달아 패배하고, 제해권을 상실하면서 동남아의 전쟁 물자를 본국으로 후송하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육로로 수송하겠다는 고육책을 내기에 이른다. 광대한 중국 대륙에 발이 묶인 일본군은 각처에서 저항을 이어가는 중국군을 격파하고, 인도차이나에서 중원을 가로 지르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육로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50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해서 대륙타통작전 이른바 이치고 작전을 시행했다.

 

중일전쟁을 통털어 최대의 병력을 동원한 이치고 작전으로 일본군은 기세를 잡고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던 정저우, 쉬창 그리고 창더를 함락시켰다. 다만, 헝양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면서 간신히 한 숨 돌릴 수가 있었다. 화베이에서 팔로군을 상대하던 일본군들이 중국 중앙군을 상대하기 위해 이동해 버리는 바람에, 팔로군이 급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종전 후, 곧바로 벌어지게 되는 국공내전에서 결국 장제스군이 패하게 되는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바로 이런 위기를 대비해서 장제스가 길러둔 소중한 전략 예비대를 아무런 의미도 없는 버마 전선에 갈아 넣어 버린 것이 바로 스틸웰이었다. 오래 전, 타임라이프에서 나온 월드워2에 실린 버마 철수작전을 찍은 사진들도 결국 스틸웰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한 여론전이었단 말이지. 비록 일본군에게 난타당하긴 했지만, 미국의 동맹국의 수장이었던 장제스에 대한 예우를 갖춰야 하는 참모 격의 스틸웰이 중국의 최고 지도자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중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려고 한 점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버마 전선에서 스틸웰이 선전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장제스가 자신의 전략이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한 스틸웰은 장제스를 암살할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국부천도로 비록 대륙을 잃긴 했지만, 중일전쟁 당시 정예 관동군을 비롯한 일본의 대군을 중국 대륙을 묶어두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장제스의 신원을 위해서도 저자는 상당한 부분을 할애했다. 중국전선을 망쳐 먹은 희대의 빌런 스틸웰이 서구 언론에 선전한 대로 과연 장제스는 대륙을 상실할 정도로 무능력한 인사였을까? 아마 장제스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없었다면, 중국의 항일전은 실패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1차 국공합작을 결렬시킨 19274월의 상하이 쿠데타와 국부천도로 이어지는 국공내전 패전의 최고 책임자 역시 장제스였다. 공산군이 그랬던 것처럼, 장제스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본격적인 항일전에 나서기 전에 마오쩌둥의 홍군을 격멸해야 했다. 역사에서 이런 했다면이 무슨 소용이겠냐만.

 

한 수 잘 배우고 간다.

 

[뱀다리] 오탈자 감수에 좀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콜트 권총을 콜드로, 일본군을 본군 같은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아주 간단한 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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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2-13 0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무다구치 렌야? 를 떠올렸습니다 ㅋ 영원히 조롱받는 사람... 중일전쟁에 저런 배경이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ㅋ

레삭매냐 2023-12-13 10:03   좋아요 1 | URL
제목을 아예 똥별들의 흑역사라
고 지었으면 대박이 나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나야 다다시 장례식장에는
부하들이 아예 나타나지 않았지만...

무다구치 장례식장에는 부하들이
등장했다고 하더라구요. 빈소를
때려 부수러요.

오랫동안 서구 중심의 역사서술
을 들어 왔는데, 전쟁의 이면을
볼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12-13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잘 몰랐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배우고 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레삭매냐 2023-12-13 10:03   좋아요 1 | URL
나름 그쪽 분야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책은 재밌었습니다.

얄라알라 2023-12-23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똥별^^ 영화 보고 난지 두주 지났지만 아직도 귀에 생생 똥별

요책 연결해 읽으면 딱이겠어요

레삭매냐 2023-12-23 23:00   좋아요 0 | URL
2023년 연말을 관통하는 영화가 바로
<서울의 봄>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똥별들을 치우자고
쿠데타를 도모한 인간들이야말로 똥
별이 아니었을까요.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