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과 만나게 되는 수백 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로.

또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도서관에 갔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헌책방에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어.

중고책 주문을 하기 위해 무료배송 금액을 채우려고.

 

제임스 볼드윈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아직 그의 책은 읽어본 게 없다.

지금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두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희망도서 신청을 했다고 해서 모든 책들을 다 만나게 되는 건

아니더라.

얼마 전에 빌린 <마스 룸>도 채 못다 읽고 어제 반납했다.

 

비슷한 시기에 제임스 볼드윈의 에세이집이 나온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오늘 중고책 주문할 적에 주문했어야 하는데. 항상 이런 식이지.


<단지 흑인이라서다른 이유는 없다>

이 책은 순전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 만난 사람 좋아 보이는 이 사진 때문에

읽게 될 것이다다른 이유는 없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8-03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04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20-08-04 1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레삭매냐님께서 읽게 될 것이라 하셔서 따라 읽을 예정입니다. 다른 이유는 (필요) 없고 ^^;;;

레삭매냐 2020-08-04 11:38   좋아요 1 | URL
저는 일단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습니다.

분량이 그닥 많지 않아서 금세
읽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도서관에서 수급이 좀 늦어서
느긋하게 읽어 보려고 합니다.

종이연필 2020-08-09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같은 시국에 읽으면 적절한 책같습니다!

레삭매냐 2020-08-09 07:31   좋아요 1 | URL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어제부터 <빌 스트리트>를 읽기 시작했답니다.

흡입력이 대단하네요. BLM의 시조새 같은
작가로 보이네요.
 














지난달부터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기 시작했다.

시작은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사게 된 1권 때문이었다. 이건 마치 오래 전, 김용 선생의 무협지를 읽는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전에 앞서 자그마치 17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들여 쓴 저자 야마오카 소하치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아주 어려서 전사에 관심이 있어서 종군기자 출신이라는 어느 저자의 <태평양전쟁> 5권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작가가 바로 야마오카 소하치였다. 아무리 좋게 이야기해도 그는 일본의 극우정치에 동조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태평양전쟁은 미국의 강압적인 태도로 개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고, 전쟁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 각처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그놈의 황군 타령은 정말 지긋지긋했다. 그가 찬양해 마지않았던 일본 제국의 황군은 우리에게는 원수같은 존재였다.

 

그런 작가가 전후 변신해서 평화의 시대에 대한 염원이 담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사실을 유념에 두고 책읽기에 나섰다. 역시 씁쓰름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센고쿠 시대라는 100여년에 걸친 난세를 평정하고 에도 바쿠후를 연 천하인바로 그 사람이다. 소하치 작가는 그의 탄생에 앞서 오와리의 오다 가문과 스가루의 이마가와 가문 사이에 껴서 생존을 도모하던 비참한 운명의 마츠다이라 가문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32권에 달하는 대작을 시작한다.

 

훗날 이에야스가 되는 타케치요의 조부 기요야스는 센고쿠 시대를 주름잡은 오다 가문과 전쟁을 벌이던 중, 20대의 포로가 되어 죽음을 맞는다. 어린 나이에 마츠다이라 가문의 가독을 상속받은 이에야스의 아버지 히로타다는 난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그릇이었다. 형제들끼리 분쟁은 물론이고,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도대체 분별이 가지 않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시절이었다. 조부 기요야스는 카리야성의 미즈노로부터 아이를 다섯이나 낳은 케요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는 기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히로타다의 아내가 되는 오다이(이에야스의 생모)는 바로 그런 케요인과 미즈노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막장 드라마 쯤 되지 않을까 싶다. 이웃의 오와리와 스루가 사이에 낀 미카와국의 오카자키의 운명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지 않으면 일족의 운명을 담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마츠다이라 가문은 이마가와 편에 섰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와리 침공의 최선봉에 서야 하는 그런 운명이었다. 동시에 떠오르는 태양 같은 오다 가문의 침공을 온 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히로타다는 성주로서 부족한 자질 때문에 가신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그런 심약한 인물이었다. 차라이 아버지 기요야스 같은 기개라도 있어야 했는데 그조차도 부족했다. 처음에는 원수의 딸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맞이한 정실 오다이와 이혼을 압박하는 이마가와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자신의 적자 다케치요를 낳은 오다이와 결국 이혼한다.

 


그동안 훗날 전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영걸 오다 가문의 적장자 킷포시(훗날 노부나가)도 등장해서 오다이와 다케치요와의 기묘한 인연도 등장하고, 오다 가에 빼앗긴 오카자키의 거성 안죠 성 공격에 나선 히로타다를 대신해서 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혼다 헤이하치로의 스토리도 비장하게 명멸한다. 나고야의 멍청이라 불렸던 킷포시는 어려서부터 일절의 관습이나 전통 따위는 거부하고 오로지 실질과 전광석화 같은 판단력 그리고 도무지 어린 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어린 호랑이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물론 주인공이 다케치요기에 킷포시에 대한 이야기들은 맛보기 양념 정도로만 등장한다. 아마 작가가 오다 노부나가를 다룬 다른 작품에서는 좀 더 심도 있게 그리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다케치요가 3살이 되던 해, 어머니 오다이가 아버지 히로타다와 이혼하게 되고 또 6살이 되던 해에는 슨푸의 인질로 가게 되는 결정이 내려지면서 미래의 천하인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잔불 신세가 된다. 이미 오다이의 오카자키행에서 이미 기습의 실력을 보여 주었던 오다 가가 미래의 오카자키 영주 다케치요의 슨푸 행을 막기 위해 납치해서 오와리의 인질이 되기도 한다. 적군의 인질로 언제 죽을지 모를 운명의 다케치요를 지키기 위해 이제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된 오다이와 할머니 케요인이 나서서 구명에 나서는 장면들은 아마도 작가의 상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하게 짜인 구성이었다.

 

다케치요 호송에 나선 오카자키의 가신(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은 주군의 놀이친구이자 시종으로 나선 가신들의 자제들에게 다케치요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살아서 오카자키 땅을 밟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주군의 호송에 실패한 그는 현장에서 장렬하게 자결하면서 오카자키 사나이의 기백을 적에게 보여준다.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곳곳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듯이 마츠다이라 일족의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일족의 철석같은 단결이라는 점을 저자는 고집스럽게 기술한다.

 

혼다 헤이하치로의 경우처럼, 할아버지는 주군을 대신해서 전장에서 전사했고, 아버지 혼다 역시 안죠 성 공격에 나섰다가 고슴도치처럼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오카자키의 수많은 무사들이 남편과 형제 그리고 자식들을 전장이 이슬로 잃어 가면서도 언젠가 가문을 부흥할 수 있을 거라는 신념으로 히로타다 사후, 이마가와 가문의 성주 대리가 오카자키를 실제로 지배하는 동안의 수모를 견뎌냈다.

 

결국 안죠 성 공략에 성공한 오카자키-이마가와 연합군은 오다 노부히데의 서장자를 포로로 잡아 다케치요와 인질 교환하는데 성공한다. 다케치요 12년 인질 생활의 두 번째 서막은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지배하는 슨푸 성으로 무대를 이동한다.

 

킷포시가 오다 노부히데의 뒤를 이어 오와리의 가독이 되어 가는 과정, 다케치요가 이마가와의 조카 사위가 되어 가는 과정 등 정치 군사 뿐만 아니라, 센고쿠 시대를 주름 잡은 인물들의 애정 문제에 대해서도 소하치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오다에게 히라테 마사히데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면, 다케치요에게는 역설적으로 자신을 인질로 잡은 이마가와 가문의 총대장 타이겐 셋사이 선사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 소하치 작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전란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연 인물로 그리고 싶지 않았나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훗날 신군으로 추앙되는 영웅의 유년 시절을 전형적인 온갖 환난을 극복하고 난세를 이겨낸 영웅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시대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일 뿐인데 말이다. 나의 라이벌이 강할 때에는 그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 자신과 상대가 되지 않는 무력을 가진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강성할 때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신종을 맹세하지 않았던가. 그러다 권력에 미세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면, 배신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을 주군으로 믿고 따르는 오카자키 백성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셋사이 선사가 임종하면서 내린 숙제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처자를 버릴 수 있다고 강변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오다가 훗날 자신의 맏아들 부부에게 자결을 명했을 때도 인내와 굴종을 대망을 위한다는 이유로 감내하지 않았던가. 소설에서 내내 강조되던 신의나 무사도 같은 허망한 이데올로기를 가장 신랄하게 짓밟은 주인공이 어쩌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는 점도 소설이 짚어내는 역설일 지도 모르겠다.

 

십대 소년에 불과한 다케치요의 애정 전선 이야기도 신박하게 다가온다. 아무리 훗날 천하인으로 모두가 혀를 내두를 만한 배포를 자랑하는 오카자키의 어린 성주라고 하더라도 당시 절대 권력을 지닌 이마가와 요시모토 앞에서 방약한 태도를 보이는 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의 가신들이나 스승들은 그에게 무엇을 가르쳤단 말인가. 어쩌면 이런 에피소드 모두가 영웅은 어려서부터 비범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느닷없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사랑한다고 고백한 카메히메 그리고 츠루히메(훗날 자신의 아내가 되는 세나히메)와 차례로 애정을 나누질 않나. 어려서부터 천하를 집어 삼킬 만한 배포를 가진 그런 인물이었단 말인가. 천하인이라면 보통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그런 큰 짐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처럼, 어머니 오다이와 할머니 케요인의 기원 그리고 오카자키의 모든 사람의 희생을 담보한 미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밑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쨌든 소하치 작가는 문단의 축복이니 어쩌구 하는 찬사를 받은 작가처럼, 독자의 감성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기술 하나는 끝내준다. 아무래도 여러 신문에 연재된 소설이라 그런진 몰라도 다음 회를 기대하는 만드는 그런 재주가 있다고나 할까. 센고쿠 시대라는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이 허용되는 그런 시대적 상황, 가문의 영속이라는 그들이 말하는 대의를 위해 배신과 음모, 충성, 헛된 애정 관계 그야말로 인간사에 적용되는 모든 것들을 품은 이야기가 어찌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있을까.

 

3권의 말미에 등장한 바늘장수 코자루 하시바(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와 만나게 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비범한 인물은 역시 자신 만큼이나 비범한 인물을 바로 알아 보는 모양이다. 드디어 오다 가문과 이마가와 가문의 흥망이 걸린 오케하자마 전투 격돌을 그린 4권에 진입했다. 앞으로도 28권이 남았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20-08-02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대망>으로 번역된 판본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섬세한 인물 묘사와 무사도가 인상적인 작품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수시로 이름을 바꾸는, 심지어는 성(姓)까지도 바꾸는 통에 인물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제일 어렸웠던 것 같아요, 레삭매냐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

레삭매냐 2020-08-02 13:47   좋아요 2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주인공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우만
해도,

마츠다이라 다케치요,
마츠다이라 모토노부,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3권 읽었는데 이름이 세번 바뀌었네요.

아명으로부터 출발해서 이름이 서너
차례 바뀌는 건 기본이더군요.
뭐 책은 재미있으니...

stella.K 2020-08-02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저도 초등학교 땐가 아버지가 대망 세트 들여놓으셨던 기억 납니다.
한 20권 됐던 것 같은데...
저는 감히 못 읽을 것 같아 쳐다보지도 않았고 후에 <후대망>인가?
그건 이 대망과는 상관없는 기업 기업 소설이었던 것 같은데
그거 2권까지 읽은 기억 나네요.
그냥 대망이든 후대망이든 있을 때 못 읽은 게 아쉽네요.
이사 올 때 버리고 온지라...
그렇게 이름을 많이 바꾸다니 저 같으면 빡쳤을 것 같습니다.ㅋㅋ

레삭매냐 2020-08-02 22:00   좋아요 1 | URL
예의 20권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어느 출판사의 불법출판물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정해 봅니다.

저작권법이 다 무어냐는 식의 배짱
에 기가 찰 지경이지요.
왜 아직도 도서관에 불법출판물을
소장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
군요.

개인적으로 소하치 작가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성하고 고사
를 끼워 맞추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coolcat329 2020-08-02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버지도 대망을 들여놓으셨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물론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요. ☺

레삭매냐 2020-08-02 22:10   좋아요 0 | URL
저도 아주 오랫 동안 무관심하다가
영어의 몸이 되신 분께서 일독하신
말에 불끈하야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책은 댑따 재밌네요.

그냥 2020-08-08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뭐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하셨나 싶어 혼자 감탄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읽었던 사람으로 한동안 읽다보면,
어느싯점에서 나가 떨어지는 구간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그랬거던요. ㅎ ㅎ 앞으로도 읽으신 부분 정리 좀 해주세요.

레삭매냐 2020-08-09 07:36   좋아요 0 | URL
말씀해 주신 대로 아무래도 원체
방대한 분량이다 보니 내쳐 달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에 다른 책들도
계속 만나고 있어서요.

일단 9권 1부까지 목표로 삼고
그 다음에는 되는 대로 가는 것으로.

응원 버프 받아 계속 달려 보겠습니다.
 



진리는 과연 존재하는가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나는 <장미의 이름>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엉망으로 쌓인 책탑을 헐어 <장미의 이름>을 상권을 찾아냈다. 하권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도대체 상권은 어디에 있었는지.

 

이 무더운 날씨에 나의 지적 허영과 독서의 재미까지 모조리 잡아준 그런 책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아쉽게도 책은 아직 다 읽지 못했고, 대신 작년에 나온 8부작 미니시리즈는 이틀 동안 다 봤다. 1986년에 나온 영화도 봤는데 영화가 책의 풍부한 설정을 잡아내지 못해 개인적으로 졸작으로 평가한다. 역시 원전만한 게 없더라.

 

하지만 이번 미니시리즈는 일단 시간 제약이 없기 때문에 아주 방대한 스케일로 소설의 디테일을 잘 잡아냈다. 다만 원작에는 없는 각색된 부분들이 상당 부분 추가된 점이 원작과 다른 점이라고나 할까.

 

일단 소설 <장미의 이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멜크 수도원 출신의 아드소라는 수도사가 남긴 수기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미겔 세르반테스 이래 작가들이 애용하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이건 내가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 남긴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다시 들려주는 거랍니다. 클래식한 시작이다.

 

때는 132711월말, 북부 이탈리아 모처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이 공간적 배경이다. 이 수도원의 자랑은 방대한 양의 책들을 품은 장서관이다. 원래 요새였다고 했던가.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인 영국사람 배스커빌의 윌리엄 그리고 멜크 수도원 수련사 아드소가 등장한다. 윌리엄은 당시 아비뇽에 유수된 교황 요한 22세와 치열한 세속권 투쟁을 벌이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트비히 4세의 밀사로 수도원에 파견된다.

 

루터의 종교개혁을 한 세기 앞둔 당시, 교권의 타락상은 이루다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드라마에서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출신 수도사가 논쟁 가운데 교황이 만든 입에 담을 수 없는 죄들에 대한 속죄비용으로 그들의 일탈과 타락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당대의 사제들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한 번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다.

 

교황과 교황의 대리인으로 나오는 희대의 악당 베르나르 기(실존인물이다)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다는 장면으로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수도사들이 그리스도의 청빈 사상을 내세우는 것을 비웃는다. 당대 최고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 선생은 어쩌면 중세 기독교가 지배하던 시절에도 물질주의가 만연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걸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만큼 중요한 게 또 없다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연상된다. 자본 중심주의라는 도그마만 유지한다면, 현대극으로 옮겨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설정이다.

 

수도원에서 전권을 행사하는 수도원장 아보 역시 타락한 사제의 전형이다. 그는 지하묘지에서 발견한 성모 마리아상에 자신이 몰래 취득한 온갖 보석으로 치장하며 자신만의 법열에 빠져든다. 나중에 밝혀지는 이야기지만, 원래 귀부인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주장에 빠져 모든 재산을 가난뱅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했던가. 그렇게 부유한 어머니와 재산을 모두 잃은 아보는 자신만의 방식(어쩌면 물질주의 페티시즘일 지도 모르겠다)으로 욕정을 채운다.

 

이제 곧 황제가 지지하는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순전히 교황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다)과 교황파 사제들이 격돌한 대논쟁을 앞두고, 수도원에서 일단의 살인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기 시작한다. 종교적 갈등에 살인사건까지. 하지만 아보 수도원장은 문제의 근원인 장서관의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한 채, 윌리엄에게 사건해결을 의뢰한다. 아니 손발 다 묶어 두고 무슨 사건을 해결하란 말인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던 채식사 아델모는 투신한 것으로 보이고, 문서 사자실의 동료 베난티오 역시 돼지피를 젓던 항아리에 익사한 채 발견된다.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알리나르모인가 하는 이탈리아 수도사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나팔 소리의 계시대로 수도사들이 죽어나간다는 요사스러운 계시를 주절댄다. 그러니까 윌리엄과 아드소는 온갖 요설과 음모 그리고 비밀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가운데 중차대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소설과 드라마가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는 장면은 20여 년 전에 피렌체에서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돌치노와 마르게리타의 딸 안나가 부모의 복수를 위해 잔혹한 이단 심판관 베르나르 기를 추적하는 것과 소설에서는 그렇게 비중 다뤄지지 않은 아드소가 사랑에 빠진 처녀의 역할이다.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식료계 담당 수도사 레미지오와 그의 수하 살바토레 역시 돌치노파로 신분을 감춘 채, 수도원에서 조용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윌리엄과 그의 라이벌 베르나르 기의 등장으로 정체가 발각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단전문가 베르나르 기가 현장에 있었으니 그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난 게 아니었을까.

 

흥미진진한 이야기만큼이나 캐릭터들 사이에서의 갈등 구조도 에코 선생은 역시나 대가다운 솜씨로 풀어나간다. 한 때 뛰어난 조사관으로 명성을 날린 로저 베이컨을 스승으로 모신 배스커빌 사람 윌리엄은 자연과학을 마술로 여기던 당대의 참 지식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셜록 홈즈 뺨치는 지식과 추리력으로 미궁에 빠진 연쇄살인의 단서들을 추적한다. 그의 조수로 등장하는 십대소년 아드소는 왓슨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가끔 그가 무심결에 던진 말들이 자신의 마스터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이단을 깊숙하게 연구하다 보니 어느새 이단이 아닌가 할 정도로 박식한 지식을 자랑하는 프란체스코 수도사 윌리엄은 13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상징된다. 게다가 소설은 우리 책쟁이들이 환장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결국 어떤 물체에 집착하는 수도사들 간에 벌어지는 애욕과 질시 그리고 살인까지도 마다하지 않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 <아프리카의 끝(Finis Africae)>라는 장서관의 비밀 공간에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지 않는가 말이다.

 

어둠의 시기라는 중세 시대 지식의 보고이자 지식 전수의 장이었던 수도원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윌리엄은 수도원의 장서관이야말로 기독교 세계의 보물 같은 그런 장소라고 격찬해 마지않는다. 평생을 신에게 서원한 수도사들은 문서 사자실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한다. 아델모 같은 채식사들은 한껏 능력을 뽐내면서 글이 필사된 양피지를 아름답게 채식한다. 베난티오 같은 그리스어 번역가들은 아랍 세계를 거쳐 유럽으로 전수된 고전 그리스 문헌들을 다시 당시 공용어였던 라틴어로 번역한다. 도서관 사서인 말라키아는 물론이고 그의 조수인 베렝가리오 그리고 베노 같은 수도사들 모두 금지된 책, 그러니까 금서의 존재를 아는 순간 모두 달려들어 책에 대한 자신의 욕정을 채우려고 시도한다. 어쩌면 수도원장과 수도원의 진짜 실력자였던 눈먼 호르헤 수도사는 그런 금지의 유혹으로 수하의 수도사들을 통제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그들의 시도는 당시 교황을 필두로 한 교권 기득권 세력이 사랑, 정의 그리고 평화라는 이름으로 민중을 지배하려고 했던 것과 병치된다. 그들은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주장하는 초기 기독교 시절 그리스도의 청빈에 대한 주장을 두려워했다. 도대체 교회가 왜 물질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리스도가 금화 한 닢이라도 수중에 가지고 있었던가? 자신들의 세속적 욕망을 채우고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그들은 정통 교리마저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했다. 그리고 돌치노파처럼 위험한 주장을 하는 이들을 모두 이단으로 몰아 화형대의 말뚝에 세웠다. 그들이 보인 광기는 현대에도 반대파를 정치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씌우는 프레임 전쟁과 닮아 있다. 항상 그렇지만 역사는 희극으로 한 번 그리고 다시 비극으로 한 번 반복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상황이 이러니 아비뇽의 교황 요한 22세에게 프란체스코 수도회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트비히 4세는 적의 적은 나의 편이라는 속설대로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지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전장에서 철검으로 맞부딪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드라마의 첫 장면이 바로 그런 전투 씬이 아니었던가. 소설에서는 에코 선생이 진입장벽을 높이기 위해 당대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의도적으로 빼먹으신 것 같은데, 드라마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런 부분들을 잘 짚어준 것 같다. 물론 원작에서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은 설정도 다수 있었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보다는 훨씬 낫다는 느낌이다. 주인공 윌리엄 역할은 존 터투로 보다는 션 커네리가 낫지 않나 싶다. 아드소 배역은 크리스천 슬레이터보다는 다미안 하둥이 더 멋지더라.

 

수도원에 물자를 공급하는 대다수 농민들이 하루 벌어먹고 사는 가난함이라는 적과 맞서 싸웠다면, 문서 사자실의 수도사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진리, 다시 말하자면 장미의 이름이나 장미의 향기를 흠향하기 위해 대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임무에 전념했다. 베르나르 기 같은 기득권층의 수호자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일절의 다른 해석도 용인하지 않았고, 검과 고문 그리고 화형대의 횃불로 생각이 다른 이들을 정죄했다.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이렇게 서로 다른 층위의 사람들이 복닥거리며 사는 세상에 과연 하나님이 편하게 임재하실 공간이 있는가에 대한 윌리엄의 질문은 그야말로 화두처럼 다가왔다.

 



소설에 비해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드라마는 <장미의 이름>의 확장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 다뤄지긴 했지만, 시각적으로나 내러티브상 좀 더 흥미를 줄만한 소재들을 찾아 극대화하는데 주력한 느낌이다. 돌치노와 마르게리타의 딸 안나의 등장, 바라지네 사람 레미지오가 돌치노파에 합류해서 활동하는 장면, 귀족의 개 노릇을 하던 살바토레(<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가 연상됐다) 등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신에게 서원한 수도사들이 모여 지내는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이란 소재는 대단한 픽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아델모와 베난티오가 죽었을 때만 해도 일대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욕망의 구덩이였던 수도원의 비밀과 비리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하는 호기심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드라마에서는 잘 잡아냈던 것 같다. 신의 섭리가 담긴 책들을 필사해서 후대에 보존하는 성스러운 장소에서 지상의 그 어떤 곳보다도 속되고 타락한 곳으로 드러나게 되는 설정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욕망의 대상이 된 책이 존재하고 있다는 전개에 그만 압도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책 읽는 속도가 빨랐으나, 결국 드라마가 주는 시각적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드라마부터 먼저 보게 되었다. 책은 처음의 속도에 비해 느린 속도로 읽고 있다. 뭐에 쫓기는 것도 아니니 천천히 읽는 것으로.

 


댓글(5)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7-22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2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2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eehyun 2020-07-22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가 좋았다는데 저는 놓쳤네요.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어요. 지식을 독차지 하려는 기득권의 욕망이 끔찍했지요. 말의 왜곡이 이렇게 생겨난 것인가 했지요.
여름에 읽기 좋겠네요.

레삭매냐 2020-07-22 13:09   좋아요 0 | URL
제가 책과 드라마를 병행해서 보다 보니
드라마가 원전을 좀 비틀지 않았나 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쥐꼬리만한 기득권을 고집하다가 결국
에는 모두 다 놓치게 된다는 역사의 교
훈을 배우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요즘은 성석제 선생의 <이 인간이 정말>을 읽고 있다.

선생의 소설을 읽으면서 예전에 느꼈던 감정이 스물스물 피어 오르는 것도 느낄 수가 있었고, 정말 지대 뽑아 올려 주셨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힘도 느낄 수가 있었다. 특히 지금 읽고 있는 <유희>편에서는.

 

모두 8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인데 이제 절반 가량을 읽은 모양이다.

 

장마 소식으로 계획했던 외출이 취소되면서 대대적인 청소에 들어갔다.

일단 책방에 들어찬 책들에 대한 정리를 시도했다. 그리고 장렬하게 실패해 버렸다.

꼬맹이가 책놀이를 하는 줄 알고, 책으로 나를 포위하는 바람에... 그렇다 핑계다.

 

어찌 됐든 책 한 줄을 없애서 통로를 조금 확보했다.

어제 정리를 시도하면서 느낀 점은 참 사두기만 하고 안 읽은 책들이 많구나 하다는 점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그래.

 

나의 책읽기 패턴을 분석해 본다. 이러저러한 통로를 통해 해당의 책의 존재를 알게 된다. 제법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정이다.

그런 다음,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새책으로 혹은 중고서적으로 책을 구입한다. 요즘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 바로 마지막이다. 도서관은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더 이상 자유롭게 이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참 그지 같다.

 

새책을 사들이는 건 정말 그동안 사두고 안 읽은 책 때문에 점점 양심의 가책이 쌓여 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니 집에 그렇게 안 읽은 책들이 넘쳐 흐르는데 또 새책을 사겠다고? 양심이 없는 거니 너는? 에라-

 

일단 2020년 앞으로 남은 반년 동안에는 집에 싸둔 책 읽기 집중하도록 하자.

우리가 읽을 책이 없어서 못 읽는 건 아니잖니. 그리고 읽은 책들 중에서 소장각인 책들은 상자에 싸서 잘 보관하기. 단점은 필요할 때 바로 바로 찾을 수가 없다는 점. 그렇다면 라벨링을 해두기라도 해야 한다는 걸까? 그것도 다 귀찮은 일이로다.

 

, 읽다만 책들에게도 관심을... 최근에 시작해서 시마이 하지 못한 책들도 끝내도록 하자.

그나저나 <스팍스의 앵무새>는 어디로 간 걸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ongsil 2020-07-06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고로 책이란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읽는것이져~ 흠음!! ㅋ
저두 보니 책장에 중간중간 사두고 안읽은 책들이..ㅋ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하면서 그래두 책장파먹기 열심히 한터라 제법 읽었네여~^^ 그래두 또 시간 날 때마다 온라인서점을 기웃기웃거린다는..ㅋ
저는 유일한 사치 은근 즐기고 살아여~^^

레삭매냐 2020-07-06 17:53   좋아요 0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 안에 있는
책덜이 좀 치워졌는가 싶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더라는...

저도 예의 사치를 즐기고 산답니다 냐하~
 


 

올해 상반기에는 모두 75권의 책을 읽었다.

그 중에서 38권은 예전에 사둔 책들을 조졌다. 그리고 보니 요즘 새책은 거의 사지 않는다. 책방과 그 중앙에 쌓인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적잖은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다고 해서 이미 올라간 책탑이 쉬이 허물어지지는 않을 것.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만난 대학동창 녀석에 책보따리를 한아름 안겨 주었다.

나에게는 필요없는 책이지만 그 녀석에게는 필요한 책이길 바라면서. 또 조금은 아깝다고 생각하는 책들도 앵겨 주었다. 책은 그렇게 보내는 거지. 미련 없더라.

술은 진탕 얻어 마셨으니 그 정도 쯤이야. 고마워 친구야.

 


1. 알리바이 - 안드레 애시먼


대표작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데(이 책도 결국 읽었다) 나는 작가의 소소한 추억들이 담긴, 그의 작품 세계의 연원을 알 수 있는 이 책이 더 좋았다. 처음으로 만난 책이어서 그럴까. 그리고 보니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콜 미 유어 바이 네임>을 읽다 말다를 반복하면서 두 책을 읽은 기억이다.

 

종로의 헌책방에서 저렴하게 데려온 녀석이라 더 애정이 가는 지도 모르겠다. 요즘 헌책값이 헌책값이 아니더라. , 내친 김에 원서로 <하바드 스퀘어>도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 여적도 못받고 있다. 이걸 순전히 코로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어째야 하나, 다시 보내 달라고 해야 하나.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난감하다.

 


2. 더 리더 - 베른하르트 슐링크


정말 오래 전에 사둔 책이었는데 마침내 읽었다.

어쩌면 2020년은 예전에 사두었지만 미처 읽지 못했던 책들의 가치를 느끼게 되는 그런 해가 아닌가 어쩐가 싶다.

 

내용도 기가 막혔고, 독일의 청산되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청산할 수 없는 그런 아픈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먹먹하게 다가왔다. 그것 참. 영화로도 있다고 하는데, 아마 나는 영화는 찾아서 굳이 볼 필요가 있나 싶다. 소설보다 나은 영화를 아직 만나 보지 못해서 그런가 싶다.

 


3.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 팀 오브라이언


오랫동안 내가 찾아 헤매던 책이 마침내 새로운 번역으로 재출간되었다.

그리고 보니 도서관에서 한 번 빌리긴 했지만, 몇 장 읽다 말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칼럼에서 우리나라 전쟁문학이 실종되었다고 하던데, 팀 오브라이언 작가가 직접 체험한 비엣남 전쟁에 대한 썰은 날것 그대로의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래서 더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팀 오브라이언 작가의 다른 책도 곧 번역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신생출판사의 순항을 기대해 본다.

 


(이번에 만난 책은 문동판이나, 책을 꺼내기가 귀찮아 기존의 열린책들 사진으로.)


4.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끼 선생


문동 도끼 선생 한 달 읽기 챌린지로 마침내 완독에 성공한 책이다.

5년 전에 열린책들 버전으로 도전했다가 개박살이 났었다. 사실 지금도 다시 읽으면서 다 소화해 내지 못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걸 내가 다 이해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안되는 것은 안되는 채로, 또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희망으로 넘긴다.

 

장장 세 권에 걸친 대작을 생각(?)보다 수월하게 마치고 나니 자신감이 붙어서 도끼 선생의 또다른 걸작 <죄와 벌>도 재독에 나섰다. 1권은 문동판으로 읽었는데, 두 번째 권은 사실 돈주고 사서 보기가 좀 그래서 걍 소장하고 있던 열린책들 버전으로 읽었다. 치트키인 셈인가. 역시 고전은 다시 읽어야 하는가 보다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내친 김에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등반에도 나서긴 했는데 잠시 멈추고 있는 중이다.

 

챌린지 완독 선물이 어제 도착했는데 보기에 좋더라. 소소한 선물들, 다만 챌린지를 너무 일찌감치 끝내는 바람에 쫌 그랬다. 싱거운 맛이랄까.

 


5. 화이트 타이거 - 아라빈드 아디가


무려 2008년 부커상에 빛나는 작품이다.

6월의 끝자락에 읽었는데, 곧이어 읽은 <빌랄의 거짓말>과 더불어 쌍둥이 같은 작품이라고 부르고 싶더라. 전자는 현대의 인도의 진실을 그리고 후자는 73년 전 인도와 파키스탄 분리 독립 즈음을 다루고 있다.

 

아라빈드 아디가의 소설은 블랙유머로 넘쳐 흐른다. 21세기에도 수천년 된 계급제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지주 계급에 시달려야 한다는 엄혹한 현실에 그만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아니 그 지주계급은 이제 자본가계급으로 변신했던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인간 카멜레온 같은 문제적 인간 발람 할와이의 인생유전이 기가 막히다. 국내 출판사들은 속히 아라빈드 아디가의 다른 작품을 출간할지어다.

 

[번외편]



1.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들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 사태로 소중한 작가 한 분이 우리의 곁을 떠나 별이 되셨다.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동안 수집한 그의 책들을 꾸역꾸역 다시 읽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책들마다 분량이 적어서 재독하는데 부담이 없었다. 게다가 마지막 소설까지 출간돼서 화룡점점을 찍었다. 아디오스 미스터 세풀베다.

 


2.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 게리 폴 나브한


위대한 종자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의 생애에 대한 르포르타쥬다. 바빌로프의 후예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나치 독일군의 치열한 레닌그라드 공격으로부터 소중한 씨앗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산화했다. 바빌로프는 스탈린에게 숙청당했다.

 

전 세계를 누비며 소중한 씨앗들을 수집하고 연구한 바빌로프의 행적을 쫓는 게리 폴 나브한의 여정 역시 대단했다. 이런 책들은 정말 널리 알려서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싶더라.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잠자냥 2020-07-04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이트 타이거>를 담아갑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0-07-04 22:37   좋아요 0 | URL
갠춘한 작가인 것 같은데
후속작의 번역이 되지 않아
국내에서 인기가 힘을 못
얻고 있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단발머리 2020-07-04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류의 페이퍼에요. 2020년 상반기 엑기스 페이퍼죠.
저는 <화이트 타이거>랑 <알리바이>요. 안드레 애시먼,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끌리지 않는 작가였는데, 레삭매냐님 1번이니까 읽어볼까 합니다.

레삭매냐 2020-07-04 22:38   좋아요 0 | URL
엑기스라니... 과찬이십니다.
그냥 다들 하시는 것 같아
저도 숟가락을 얹어 보았습니다.

저도 안드레 애시먼이 땡기지
않아 한동안 의도적으로 멀리
했었는데, 읽어 보니 그것 참...
팬이 되어 버리고 말았네요.

그놈의 <하바드 스퀘어> 때문에
억울하네요 증맬루.

stella.K 2020-07-04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 형제들 문동으로 읽으면 읽을 수 있을까요?
정말 열린책과 차이가 많이 날까요?
챌린지 선물 궁금하네요.
치트키. 종종 듣던 말인데 그 정확한 뜻을 저는 아직도 모르고 있네요.ㅎ;;

레삭매냐 2020-07-04 22:45   좋아요 1 | URL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일단 열린책들에서는 특유의 꼬끼뜨
표기로 사뿐하게 외래어 표기를 무시
하지요.

제가 5년 전에 카라마조프에 도전
했다가 망한 책도 바로 열린책들
버전이었답니다. 자간은 또 왜 이렇게
좁은지 증맬루다가.

문동 버전이 훨씬 더 산뜻하다고 감히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진도가 더 잘
나간다고나 할까요 -

챌린지 프레젠또는 완독증서, 도끼샘
뱃지, 책갈피 등등이랍니다 :>

치트키는 무언가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얍삽한 꼼수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북깨비 2020-07-05 0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끼또... 😅 그러고 보니 오래전 창비의 일본문학서적 한 권을 리뷰만 읽고 샀다가 꼬끼또 번역을 보고 다 읽지 못한 기억이 나네요. 꼬끼또와 코키토의 차이는 여전히 극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레삭매냐 2020-07-05 10:24   좋아요 1 | URL
앗~ 그리고 보니 외래어 표기를
가비얍게 무시하는 지존이 하나
더 있었군요 ㅋㅋ

책을 읽을 때마다 거슬리는데
정말 답이 없네요.

겨울호랑이 2020-07-05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삭매냐님처럼 정기 결산을 해야하는데, 하루 읽고 정리하기에도 힘이 부치네요.ㅜㅜ 좋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0-07-05 15: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탄력 받아서 책 정리에 나섰다가
꼬맹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아
책탑에 갇혀 버리는 바람에 그만
나가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죽도 밥도 되지 않은...
소장할 필요가 없는 책들은 누굴
주거나 기증하고 그것도 안되면
버리거나 해야 하는데, 하나도 쉬
운 게 없네요.

페넬로페 2020-07-06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덕분에
여지껏 알지 못한 작가를
많이 알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요즘 루이스 세플베다의 작품을
몇 권 구입했어요**

레삭매냐 2020-07-06 11:40   좋아요 0 | URL
루이스 세풀베다 작가는 정말
사랑입니다.

이런 멋진 작가님이 코로나로
세상을 뜨셨다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2020-07-23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3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3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20-09-18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꽉차게 읽으시고 베푸시는 나눔의 모습도 훈훈합니다!!! 쌓인 책보니 독서욕이 성큼 다가옵니다 가을과 함께^^

레삭매냐 2020-09-18 14:02   좋아요 1 | URL
읽을 책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데,
그놈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매달려
여름이 지나가 버렸네요 :>

이산(diaspora) 문학과 이번 가을을 함
께 해볼까 합니다.

coolcat329 2020-09-18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님 도쿠가와 읽으시느라 요즘 조용하셔서 궁금했는데 이렇게 책장도 공개하시고 결산까지 잘 봤습니다~😊

지상의 모든음식과 화이트 타이거 읽고 싶네요, 리더는 아주 예전에 읽었지만 읽었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라 다시 읽고 싶네요.

레삭매냐 2020-09-18 17:47   좋아요 0 | URL
ㅋㅋㅋ 결산과 책장 공개는 두 달전
의 타이밍이라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다음부터
달려 들었답니다. 이제 세 권 남았
답니다 :>

<리더>는 생각 외로 재밌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