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이면 한겨레신문에 실리는 <책과 생각>이라는 코너를 기다렸다.

사실 신간 정보는 램프의 요정을 거의 매일 같이 문질러 대면서 기다리는 사람이라 특별한 기대도 없지만 습관적으로 찾아보는 그런 섹션이었다.

 

그런데 오늘 들어가 보니 그 코너가 사라진다고.

그것은 마치 동네책방들이 사라져 가는 느낌이랄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동네마다 책방이 있었다. 아니 그 시절에는 온라인서점과 택배라는 시스템이 없어서 책을 사려면 무조건 책방에 가야했다.

 

그 시절에 책방에 가면 한나절은 우스웠었지. 마땅히 살 책이 없으면서도 그렇게 책방의 곳곳을 훑고 다녔다. 아마 그 습관이 남아서 지금도 헌책방에 가면 곳곳을 후비나 보다. 그리고 보니 이제는 헌책방도 그리고 동네책방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헌책방 가는 것도 이제는 큰 일이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헌책방이 없어서 멀리 안양이나 수원에까지 나가야 하는데... 안양 도토리책방에 처음 갔을 적에는 나름 갠춘했었는데. 그곳 주인장이 헌책을 인터넷 가격을 조회해 보고 매기는 통에 쫌 그렇더라. 인천 아벨서점처럼 연필로 책가격을 정해 놓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보니 아벨서점 가본 지도 오래되었구나.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항상 그렇듯이.

 

뉴욕타임즈에서는 계속해서 책 코너를 운영하는데 국내 언론에서는 책소개가 더 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나 보다. 이제는 더 이상 책코너를 운영하지 않는단다. 그러니까 우리가 점점 새로운 책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책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도 그 경로가 없어진다는 말이니. 네이버에서도 오래 전에 책 섹션을 운영하다가 애진작에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바로 접어 버렸지.

 

이제 책읽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희귀종이 되어 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지하철에서 책읽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프로젝트가 다 있다고 했지 아마. 그 시절에는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읽는 이들이 참 많았었는데. 이젠 신문도 책도 지하철 승객들의 손에서 사라져 버리고 대신, 스마트폰만 주구장창 쳐다본다. 재미진 웹툰에, 신박한 이야기들이 넘쳐흐르는 너튜브를 책이 상대하기란 역부족이다.

 

지금 당장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서 책 읽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 읽을 거리를 찾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대로 살아가겠지. 그런 게 세상이 아니었나.

 

뭐 그렇다고.

 


참 기다리고 있던 맥스 포터의 <래니>가 출간된 모양이다. 집에 가서 주문해면 내일 받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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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23 17:2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 때 모르는 게 나오면 백과사전을 찾아봤는데 ㅎㅎ 아이들은 네이버 구글 검색. 요즘 아이들은 너튜브로도 검색을 하더라고요. 활자보다 영상이 편한 세대ㅠㅠ 그렇게 세상은 변하고 흘러가지만 또 변하지 않는 것도 있지요 ㅎㅎ

레삭매냐 2021-07-23 17:55   좋아요 5 | URL
제게는 그 시절에 종이접기가 정말
난관이었죠... 책으로 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는데 - 요즘에는 아마
너튜브로 친절하게 알려 주니 그 시
절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 싶네요.

시시각각 변해가는 세상에 점점 더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1-07-23 17: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게 사라지는건 너무 아쉬운거 같아요 ㅜㅜ 그래도 어떻게든 좋아할만한 새로운게 나오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7-23 17:59   좋아요 3 | URL
사라진다는 건 아쉬움의 다른
말이 아닐까요...

새로운 책들이 그런 게 아닐까
제 맘대로 생각해 봅니다 핫하.

미미 2021-07-23 19: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짐 캐리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캐이블 가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집의 티브이가 꺼지자 어떤 사람이 책을 펼치면서 끝났던걸로 기억하는데 떠오르네요. 북플하기전에 지하철에서 책 보는 분들 발견하면 때로는 연락처라도 물어보고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너무 귀해서ㅋㅋㅋ

레삭매냐 2021-07-24 00:12   좋아요 2 | URL
바로 케이블 가이 엔딩 시퀀스
를 찾아 봤습니다. 예전에 분명
본 영화인데 1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텔리비전이 먹통이 되자 바로
끄고 침대 맡에 있던 책을 펼쳐
들고, 바로 미소를 띄는 장면이
어찌나 어색하던지요 ㅋㅋㅋ

그땐 그랬지...

stella.K 2021-07-27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를 돈벌이와 연결시키는 자체가 좀 씁쓸하네요.
그냥 공익을 목적으로 해도 좋을 텐데.
책이 원래 돈벌이가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럼에도 독서의 중요성을 알면 말임다.
조선일보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오래 전 주말이면 아예 섹션을 따로 만들어서
속으로 거의 환호하면서 봤는데. 인터넷 서점이 생기기 전에 말임다.
그러고 보면 매냐님도 디지털 보단 아날로그가 익숙한 나이신가 봅니다.ㅋ

레삭매냐 2021-07-28 08:13   좋아요 1 | URL
언제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존재
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책을 만들어 내는 출판사
부터 돈벌이에 치중하니 말이죠.
독서의 중요성과 비즈니스는 뭐랄까
다르다고나 할까요.

그렇습니다, 전 누가 봐도 아날로그
세대지요. 요즘에는 메타버스가 대세
라고 하여 공부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물론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요
ㅋㅋㅋ
 

 나는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작가에게 꽂히면 그의 책들을 주르르 사냥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나의 타겟은 독일 출신 작가,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독 뤼벡 출신 작가 페터 슈나이더다.

 

그 동네에서는 나름 끗발 좀 날리는 작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진 작가가 아닌 것 같다. 몇 권의 책들이 출간되었지만, 지금 구할 수 있는 책은 <에두아르트의 귀향>이 전부다. 나머지는 죄다 절판됐다.

 

, 이게 또 문제다. 왠지 절판된 책이라고 하면 또 손꾸락이 근질근질해진다. 아 누가 채가기 전에 당장 사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절판책 사냥꾼의 본능이 꿈틀 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나의 판단보다 손꾸락이 더 빨랐다. 여기저기서 찾아낸 사이트에서 이미 나의 손꾸락은 결제 버튼을 꾹 누르고 있었다. 역시 빠르다.

 

아마 그게 지난 주말의 일이었던 것 같은데 어제 두 권이 같이 두둥~ 하니 씨제이 택배기사님의 손에 들려 도착했다. 하던 일이 바빠 당장 뜯지 못하고 잠시 시간차를 두고 개봉했다. 언박싱의 순간은 언제나 즐겁다. 게다가 상태를 알 수 없는 헌책이라면 더더욱.

 

1번타자는 교사에서 전업작가로 전향한 68작가 페터 슈나이더의 장편 데뷔작 <렌쯔>. 자그마치 19년 전에 나온 책인데 상태가 아주 좋다. 그리고 아무도 책을 펴본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책에 세상에 나온 뒤, 타인의 손을 타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판사는 문매미. 정말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가 아닐 수 없다. 아니 이런 출판사가 다 있었나 그래. 본문만 134쪽이다. 이거 완전 한입거리구만 기래.

 

2번타자는 문지에서 나온 대산세문 97<장벽을 뛰어넘는 사람>이다. 당연히 절판된 책이다. 요건 비교적 신간으로 11년 전에 나온 책이다. 그래24에서 중고로 사들였다. 멀리 대구에서 온 책이다.

 

희한한 것은 같이 나온 대산세문 98<에두아르트의 귀향>은 여전히 구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 같이 나온 책이 하나는 절판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시중에서 팔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렌쯔>보다 더 컨디션이 좋다. 거의 쌔삥이다. 책의 컨디션에 대단히 만족한다. <에두아르트의 귀향>이 독일 통일 이후의 베를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1982년에 발표된 <장벽을 뛰어넘는 사람>은 통일 이전 독일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서로 상호보완적이라는 말이리라.

 

램프의 요정 검색기를 문지르면 페터 슈나이더의 책은 딱 네 권이 검색된다. 그 중에 세 권이 절판이다. 다른 하나는 <짝짓기>로 이건 무려 IMF 위기가 터지기 전에 나온 책이다. 이건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보통 적어도 어느 작가라도 한 세 권 정도는 읽어야 그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시바 료타로의 <신센구미 혈풍록>부터 마저 다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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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7-14 08: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절판책 사냥꾼이세요~ㅋㅋ
문매미출판사 ㅎㅎ 신선하네요.
에밀 졸라 읽으신다더니 노선을 바꾸셨나용? 😅

레삭매냐 2021-07-14 10:03   좋아요 5 | URL
지금 읽고 있는 시바 료타로의
<신센구미 혈풍록>이 너무 재밌
어서 그만 졸라는 졸라 뒤로
밀리게 되어 부렀습니다...

페터 슈나이더도 읽어야 하고
뒤죽박죽 책읽기의 전형이지요 ㅋㅋ

새파랑 2021-07-14 09: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삭매냐님 정도의 고레벨은 아니지만 한번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은 다 읽고 싶더라구요. 절판된 책을 사냥하시는 레삭매냐님은 완전 대단한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7-14 10:04   좋아요 4 | URL
저도 진짜 고렙 선수들에
비하면 허조비지만 나름
선전하고 있답니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습니다.
더 구하기 힘들기 전에
땡기는 시츄이지요.

mini74 2021-07-14 11: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펴보지 않은 것 같다 ㅎㅎㅎ 중고책의 보물같은 존재를 만나셨군요.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갈증? 이게 탄탈로스의 형벌인가요 물이 아닌 책 ? ㅎㅎㅎ

레삭매냐 2021-07-14 11:41   좋아요 2 | URL
알라딘 개미 지옥, 끝이 없습니다아 ~

넵, 중고책이라고 하는데 책이 넘어
가질 않네요. 완전 쌔삥이었습니다.

아 갈증이 가시질 않네요 :>

얄라알라북사랑 2021-07-14 11: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손꾸락˝ 부지런히 움직이셔서 겟하셨는데 ˝완전 한입거리구만˝^^

북플 친구분들의 책사랑이야 늘 넘치게 느끼지만 레삭매냐님 이번 포스팅에서도 채워지지 않을 책사랑 마구 느끼고 갑니다.

그나저나 독일어는 작가이름도 책 제목도 왜 이리 안 외워지나요?^^ 따로 몇 번 소리내어 읽어야 머릿 속에 박힐 것 같아요. 에두아르트 에두아르트 페터 페터 슈나이더

레삭매냐 2021-07-14 11:42   좋아요 2 | URL
독일어는 영어랑 비슷하면서도
또 발음이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영어로는 분명 피터인데, 자기들
은 페터라고 부르니...

전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작가와
제목이 입에 붙지 않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거친 욕망의 추구와 몰락의 서사

 

어느 순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가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어제 도서관에 책 반납 하러 가는 길에 빌렸다. 마음 같아서는 시공사에서 나온 RSC 셰익스피어 선집으로 읽고 싶었으나 내가 주로 가는 도서관에는 비치가 되어 있지 않아 올재 클래식 버전으로 읽었다.

 

서양 문학은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로 대변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문호의 위대한 작품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올재 클래식에서는 본문에 앞서 장황한 설명이 달려 있는데 모두 패스하고, 원전에 집중했다.

 

모두 5장으로 이루어진 희곡 <맥베스>는 실존했던 알바 왕국(스코틀랜드)의 막 베아드 막 핀들라크(1005~1057)라는 인물을 모델로 삼아 쓰였고, 1606년 초연되었다고 한다. <맥베스>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그린 휴먼 드라마인 동시에 대단히 정치적 작품이기도 했다. 대영제국의 기초를 닦은 엘리자베스 여왕 이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 왕으로 1603년 왕위에 오른 제임스 1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만방에 알리길 원했다.

 

신의 대리자로서 지상의 왕이라는 왕권신수설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제임스 1세는 국왕 덩컨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지만, 결국 파멸하고 마는 주인공 맥베스의 비참한 추락을 통해 자신의 왕권에 도전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임스 1세는 자신의 그런 의도를 작가인 셰익스피어가 충분히 구현했다고 믿을 걸까? 문학 작품은 수용자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게 아니었던가.

 


<맥베스>는 노르웨이와 결탁한 코더 경의 반란을 덩컨 왕의 충직한 신하들인 맥베스와 뱅코우 그리고 맥더프들의 활약으로 제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등장한 세 명의 마녀들이 맥베스와 뱅코우에게 일련의 예언을 전한다. 그것은 맥베스가 글래미스와 코더의 영주가 되고, 또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뱅코우의 후손이 왕위를 잇게 될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덩컨 왕의 사촌이었던 맥베스는 충직한 신하에서 흔들리는 역신으로 캐릭터가 전환된다. 마녀들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아마 맥베스는 왕위 찬탈의 꿈을 꾸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덩컨 왕은 충신 맥베스에게 죽은 코더 경의 영지를 하사한다. 그러자, 맥베스는 다음 예언을 기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녀들은 맥베스가 왕이 될 거라는 예언만 했지, 어떤 식으로 왕이 될 거라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랬더니만 맥베스는 자신의 아내 레이디 맥베스의 사주를 받아(?) 자신의 영지를 방문한 덩컨 왕을 시해한다. 왕의 사후, 후계자들인 맬컴과 도날베인이 도주하면서 왕위는 그대로 맥베스에게 굴러 떨어진다.

 

그렇게 왕위에 오른 맥베스에게 영광의 순간이 계속 이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최고 권력자가 된 찬탈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요소들을 제거해야 했다. 다음 목표는 바로 자신과 마녀들에게 같이 예언을 들었던 뱅코우였다. 맥베스만큼은 아니지만, 다음 왕자들을 낳을 사람으로 지목된 뱅코우를 없애야 자신의 자리가 안전할 것이라고 판단한 맥베스는 자객을 보내 뱅코우와 그의 아들인 플리언스를 제거하려고 한다.

 

덩컨 왕을 시해하면서 폭주하기 시작한 맥베스는 결국 뱅코우 암살에 성공한다. 다만, 그의 아들인 플리언스는 도주에 성공한다. 그리고 자신의 왕위 즉위를 축하하는 연회를 여는데, 그 자리에서 죽은 뱅코우의 유령을 목격한다. 나는 맥베스의 안녕을 위협하는 유령이 덩컨 왕이 아닌 뱅코우의 유령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뱅코우와 더불어 덩컨 왕의 유령도 같이 등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어느 시점에서, 덩컨 왕을 적극적으로 암살하고 왕의 자리에 오르라고 하던 레이디 맥베스야말로 이 희곡의 진짜 주인공이 아닌가 싶었는데 영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 아저씨는 세 마녀들이 진짜 주인공이라는 썰을 주장한다. 우리가 어렵게만 생각하는 철학의 본질이 비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질문과 반항이라고 규정한다. 인류 역사에서 수천 년 동안 군림해온 신분제에 대한 도전을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적대시해온 사실을 지적하면서, 국왕에 대한 시해를 부추기는 듯한 예언을 날린 마녀들이야말로 <맥베스>의 실질적인 주인공들이라는 주장이다. , 이거 흥미로운 걸 그래.

 

한편, 뱅코우 암살로 폭주하기 시작한 맥베스는 자신이 주최한 연회에 불참한 또 다른 유력한 영주 맥더프 압박에 나선다. 이에 맥더프는 이웃 잉글랜드로 망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이해가 가지 않는 점 중의 하나는 왜 맥더프는 자신의 처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지 않고, 결국 맥베스가 보낸 자객들의 손에 죽게 만들었냐는 점이다. 혹시 맥더프는 훗날 맥베스 타도의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자신의 처자들을 희생시킨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잉글랜드로 망명한 맥더프는 이미 그곳에 있던 덩컨 왕의 왕자 맬컴과 합류하고, 잉글랜드 국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시워드 경이 인솔하는 만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맥베스 토벌에 나서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처음의 상황에 중첩되는 점이 바로, 외세와 결탁한 국내의 반란세력이라는 점이다. 코더 경도 노르웨이와 결탁해서 덩컨 왕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던가. 맥베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입장에서 보면, 맬컴 일당도 역시 외세와 결탁한 반란군과 정확히 일치했다. 코더 경이 어떤 이유로 해서 반란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재하기 때문에 맬컴 일당과의 비교가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맥베스는 다시 한 번 마녀들의 예언 혹은 신탁을 듣기 위해 찾아가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이 가능한 예언들을 얻고 돌아온다. 그런데 첫 번째 예언이 맥베스의 성공에 대한 예언이었다면, 두 번째 예언들은 그의 몰락 혹은 추락과 파멸에 대한 예언이었다. 그러니까 동일한 예언이라도 어떻게 해석 하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마녀들의 첫 번째 예언이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면 국왕 시해라는 속성 해결책을 사용하지 않고도 맥베스가 이룰 수 있는 그런 예언이었다면, 두 번째 예언은 완전히 맥베스가 통제 불가능한 그런 수준의 예언이었다. 잉글랜드 용병부대가 수도 던시네인으로 향하는 있다는 첩보가 날아들고, 농성전에 돌입하는 순간 네 번째 마녀로도 볼 수 있는 레이디 맥베스가 운명한다. 그녀의 역할에 비해 너무 싱거운 엔딩이 아니었나. 극의 후반부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고, 맥베스는 결국 맥더프의 손에 죽고 만다.

 

내가 보기에 맥베스는 사촌이자 자신의 주군이었던 덩컨 왕을 시해한 것보다 자신의 전우이자 동료였던 뱅코우를 암살한 사실에 더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왕이 되고자 했지만, 정작 왕이 되어서는 권력의 단맛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영주들의 반란과 전왕의 후계자가 획책한 반란 진압에 나서야 했다. 몰락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맥베스는 전장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아야했다. 그리고 현실 세계의 군주 제임스 1세는 이런 서사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을 것이다. 아니, 아예 그가 셰익스피어에게 이런 종류를 서사를 주문하지 않았을까? 감히 왕권에 도전하는 귀족들과 의회 나부랭이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말이다.

 

진짜 오래 전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는 광채로 만났을 적에는 이런 시대적 배경에 대한 정보가 1도 없이 만나다 보니 그냥 참으로 비극적이로구나 싶었지만, 나이가 들고 그나마 깨달음을 얻은 뒤에 만난 거장의 작품은 또 다르게 다가왔다. 하긴 바로 이런 맛에 고전을 읽는 게 아닐까. 만날 때마다 새로운 나만의 해석이 가능하니 말이다. 더 나이가 들어서 만나게 되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벌써부터 궁금할 따름이다.

 

 


[뱀다리]

 

오늘이 복날이란다. 날은 드랍게 덥구나... 습하고.

맥베스는 모름지기 그 잘 드는 칼로 엄한 사람들을 잡는 살인검(殺人劍)을 할 것이 아니라, 나처럼 마늘이나 까서 중생의 호구를 구제하는 활인검(活人劍)으로 사용했어야 했다. 그게 자신의 정신건강이나 행복을 위해서도 좋았으리라. 파삼 한 뿌리 들어가지 않은 백숙은 끝내줬다. 세 마리에 만원이었는데 솥이 작아서 한 마리는 미처 넣지도 못하고 바로 냉동실로 갔다네.


[뱀다리2] 번역을 맡은 김우탁이라는 분은 1927년 생으로, 역자가 구사하는 번역은 요즘 번역투가 아니었다. 맥베스는 상감으로, 레이디 맥베스는 중전이라 표기해 주셔서 순간 이조시대인 줄.


[뱀다리3]



연식이 있는 인간이라 그런진 몰라도, 2015년작 <맥베스>보다는 보다 셰익스피어 희곡에 가까운 스타일의 오손 웰즈가 주연을 맡은 1948<맥베스>가 더 땡기네요. 이건 너무 오래 전 영화라 그런진 몰라도 구하기도 쉽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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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7-11 13:4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마이클 패스벤더 좋아하는데도 영화 맥베스보다 잠들어 패스했거든요. 맥베스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풀어주시니 책도 영화도 재도전 안할수가 없네요!
중전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7-11 13:47   좋아요 8 | URL
아아아 ㅠ ㅠ 전 맥베스 영화 너무 흥미진진진이었어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희곡 중 저의 최애에요. 요 네스뵈의 작품도 읽고 싶고요. 미미님 영화 꼭 재도전 해주세요. 마지막 그 붉은 전장씬을 꼭 즐겨주세요!

미미 2021-07-11 13:48   좋아요 6 | URL
헉! 오늘 저녁은 맥베스를 봐야겠네요👍

레삭매냐 2021-07-11 14:39   좋아요 6 | URL
[유부만두님] 일단 영화는 저도 대기
걸어 두었습니다.

너튜브 리뷰에서 본 엔딩의 맥베스와
맥더프의 혈투 씬은 가히 최고였습니다.

잠자냥 2021-07-11 14:22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맥베스 상감과 중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7-11 14:32   좋아요 6 | URL
제가 예전에 민음사 버전에서
셰익스피어 희곡 번역을 박혁거세
운운하는 걸 보고 식겁했던 기억
이 납니다...

상감과 중전은 그에 비하면 양반
이지효.

mini74 2021-07-11 15: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헉 저는 민음사걸로 갖고 있어요~ 제가 읽은 거랑 다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ㅎㅎㅎ 마늘 예쁘게 잘 까시네요. 제가 싫어하는 것, 마늘까지 멸치 응가떼기 ㅎㅎㅎ

레삭매냐 2021-07-11 15:14   좋아요 5 | URL
제가 예전에 독서모임에서 민음사
버전 한 번 씨게 디고 나서,
믿고 거르게 되었습니다.

네, 마늘 마이 묵고 사람될라꼬요.
아작도 손이 끈적끈적하고 마늘
냄시가 진동하네요.

페넬로페 2021-07-11 16: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리뷰의 제목이 이 책의 내용을 압축해주네요~~저는 셰익스피어 작품중 리어왕과 함께 최고로 뽑는 작품인데 영화로도 한 번 봐야겠어요^^
레삭매냐님의 뱀다리는 항상 재밌어요
오늘 복날이라 삼계탕을 끓여야하나 고민인데 점심에 잔치국수를 해먹어 패스할까 합니다^^

레삭매냐 2021-07-11 18:55   좋아요 4 | URL
저는 오손 웰즈의 1948년
버전을 보고 있는데 역시나
대가의 연기력은 세월을 초
월해서 대단하네요.

저의 부족한 뱀다리를 좋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희는 치킨랩-김밥 그리고
옥수수로 때웠습니다.

새파랑 2021-07-11 16: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맥베스를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란 두꺼운 책으로 읽었는데 정말 어렵게 읽은 기억이ㅜㅜ 언젠가는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레삭매냐님이 까신 마늘에서 광채가 나는거 같아요. 아까워서 못먹을거 같아요 ㅎㅎ

레삭매냐 2021-07-11 18:56   좋아요 4 | URL
원전보다 깨알 달린 주석 읽다가
그만 수렁에 빠지는 그런 느낌이
었습니다.

마늘은 아주 잘 먹었습니다. 남은
건 이번 주에 파스타 할 적에
투입한다고 하네요.

서니데이 2021-07-13 21: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맥베스 오래전에 읽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마녀 나온 건 기억이 나요.
그 마녀가 중요한 거였네요.
예전에 읽었을 때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다시 읽으면 지금은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삭매냐님,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밤 되세요.^^

레삭매냐 2021-07-17 08:55   좋아요 1 | URL
저도 굉장히 오래 전에 읽었는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더라구요.
그 시절에는 리뷰도 쓰지 않아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무더위가 이제 시작이라고 하네요
서니데이님도 더위 잘 나시길...
 
코메디의 왕 - 할인행사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니로 (Robert De Niro)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제목 : 코미디의 왕

원제 : The King Of Comedy

감독 : 마틴 스코시즈

촬영 : 프레드 슐러

음악 : 로비 로버트슨

출연 : 로버트 드 니로, 제리 루이스, 다이앤 아보트, 산드라 버나드

 

197634세의 마틴 스코시즈가 칸느 영화제에서 <택시 드라이버>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을 때 미국은 시대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참담한 패배를 기록한 베트남전이 막 끝나고 세계경찰국가로서의 헤게모니를 상실한 미국의 위상을, 월남전에서 귀환하여 택시 운전사로 일하는 한 사나이의 분노에 찬 폭력과 사랑, 사회 정의, 정치에 대한 허무와 냉소를 통해 그려낸 <택시 드라이버>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시대정신의 표현이라는 비평가들의 찬사 속에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제는 우디 앨런과 함께 뉴욕을 대표하는 미국 영화계의 거장이 된 스코시즈는 이미 20년 전에 <New York, New York>이란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을 정도로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 그 중에서도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영화들에서 오늘날 뒤틀린 미국의 자화상과 자아 정체성을 잃은 채 부유하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조명해오고 있다. 그가 연출한 영화들이 이제는 영화학도들에겐 텍스트가 된지는 이미 오래이고 사회학을 연구하는 사회학자에겐 한편의 사회학 논문으로 인용되고 있을 정도다. 코폴라가 대부 시리즈를 통해 영광으로 채색된 미국의 역사의식에 대해 메스를 들었다면 스코시즈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현대 미국이 당면한 현실을 해부하고 있는 것이다.

 

스코시즈는 1973<비열한 거리>에서 호흡을 맞춘 이래 자신의 영화적 페르소나가 된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80년대 미국영화의 최고걸작으로 꼽히는 <성난 황소>을 만들어냈다. 비록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모두 고배를 들었지만 로버트 드 니로에게 마침내 오스카 주연상을 안겨주었으며 비평가들은 아직도 이 작품을 그의 최고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스코시즈는 2년 뒤 다시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위선으로 가득찬 미국의 텔레비전 쇼비즈니스 업계를 비판한 영화를 만드는데, 이 영화가 바로 <코미디의 왕>이다.

 


루퍼트 펍킨(로버트 드 니로 분)은 뉴욕에서 제일가는 인기 절정의 코미디언 제리 랭포드(제리 루이스)를 능가하는 코미디언이 되기를 원하는 34세의 코미디언 지망생으로 '코디미의 왕'을 꿈꾼다. 그는 팬들에게 둘러싸인 제리를 위기에서 구해줌으로써 제리와 인간적 관계를 맺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제리에게 자신의 유머를 들려주려고 하지만 인사치레로 루퍼트에게 자신의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라고 말하는 제리. 이에 용기를 얻은 루퍼트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모해오던 리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내일이라도 당장 코미디언이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일은 루퍼트의 기대와는 다르게 진행된다. 인기 스타인 제리는 루퍼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테이프를 듣기는커녕 그를 문전박대한다. 마침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쇼에 출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루퍼트는 제리의 열혈팬인 마샤와 함께 그를 납치하기로 결심한다. 제리를 볼모로 TV제작자를 협박해 텔레비전 쇼에 출연한 루퍼트. “코미디의 왕이라는 소개로 시작된 그의 성공적인 코미디언 데뷔, 그리고 다음날 바로 납치, 감금죄로 루퍼트는 연방교도소에 수감된다. 2년 뒤 이제는 유명인사가 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꿈에도 바라던 나이트쇼의 호스트 자리였다.

 

오늘날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가장 원하는 직업 중의 하나인 방송인에의 꿈은 매스 미디어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화려한 카메라 플래시의 스포트라이트와 열광하는 관중들의 환호는 고대 그리스 이래 만인의 꿈이었으니까. 스코시즈는 바로 이런 화려함 뒤로 펼쳐지는 방송계의 입문을 꿈꾸는 사람들의 애환과 열혈 팬들의 굴절된 사랑 그리고 시청률만을 외쳐대는 상업주의에 물든 방송계 인사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코미디의 왕>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극단적인 자의식과 나르시시즘에 빠진 채 좌충우돌하는 루퍼트 펍킨이란 돈키호테적 인물에 대한 영화다. 그는 유행에 뒤떨어진 우스꽝스러운 옷과 구두를 신고 다른 사람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해댄다. 물론 그의 목표는 성공이다. 그러나 그는 제리의 충고대로 정상적인 방법에 의한 성공이 아니라 '일확천금'을 노리는 야심가이다.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아무도 그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 이러한 루퍼트가 지닌 사고의 결과는 극단적인 일탈행위(제리의 납치)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소원대로 나이트쇼에 출연해서 마음껏 세상 사람들을 웃긴다. 바로 이 장면에서 루퍼트의 궁극적인 목표가 자기과시욕의 현시와 자아충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해피엔딩이다. 인생의 패배자였던 그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게 된다. 나이트쇼의 호스트 자리와 사회적 명성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까지도.

 

루퍼트 펍킨에 견줄만한 또 하나의 개성적인 캐릭터로 제리 랭포드를 짝사랑하는 부유한 유대인 아가씨 마샤 역의 산드라 버나드가 있다. 오프닝 시퀀스의 프리징 프레임에서 제리의 차안에서 발버둥치는 열혈 팬이 바로 그녀다. 마샤는 루퍼트와 모의해서 제리를 납치하고는 루퍼트가 쇼에 출연하러 간 사이에 의자에 테이프로 꽁꽁 묶여 있는 제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씬은 가장 재미있는 장면 중의 하나이다. 그녀는 갖은 방법으로 제리를 유혹하지만 광기 어린 그녀의 모습에 겁에 질린 제리. 그녀는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 스코시즈의 카메라는 이런 뉴욕의 광기를 성공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플래시백은 루퍼트의 미래를 보여준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제리 랭포드가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자신의 쇼에 출연해 달라는 애원을 하고 한술 더 떠 고등학교 때 교장선생님까지 동원해서 텔레비전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보여

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진행이라는 일반적 관행을 쫓아가던 사람들은 순간 당황한다.

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신문과 잡지에 실린 짤막한 기사들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해결해준

. 이처럼 이러한 일련의 플래시백 장면들은 영화의 극적인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한 가지 더. 영화를 보면 루퍼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히치콕의 <사이코>가 연상된다. 죽은 어머니에게 절반의 자의식을 빼앗긴 노만과 온전한 자의식으로 무장한 채 나르시소즘에 빠져 있는 루퍼트와의 비교는 흥미롭다. 그리고 방안에 유명인사들의 패널을 세워놓고 틈날 때마다 자신의 코미디를 연습하는 루퍼트가 환호하는 청중들의 환청을 들으며 무대로 나아가는 장면은 나르시시즘에 도취된 인간 묘사의 극치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스코시즈는 약육강식이라는 전형적 자본주의 논리에 기반한 쇼비즈니스의 생태를 통해 날로 획일화되고 황폐해지고 있는 진실한 인간성 회복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비록 '심각한' 자기도취에 빠진 루퍼트지만 나중에 제리가 곤궁에 빠져 도움을 청할 때 옛 정(?)을 생각해서 선뜻 그를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장면(루퍼트가 데뷰전에 그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매정하게 내쫓던 제리와는 천양지차의 모습을 보여준다.)은 비정하기 짝이 없는 쇼비지니스계에 대한 스코시즈의 통렬한 일격이었다.

 

마지막으로 "코디미의 왕" 루퍼트 펍킨의 멋진 대사 한마디,

 

"평생을 멍청이로 사느니, 단 하루를 왕으로 사는 게 좋아!"

better to be a king for a night than a schmuck for a lifetime!

 

- 2007925일에 작성한 리뷰 -

 

무려 14년 전에 쓴 리뷰다. 다시 보니 그것 참 감회가 새롭다.

 

엔딩을 너튜브로 해서 찾아보니, 납치감금죄로 6년형을 받고 연방교도소에서 복역하던 루퍼트 펍킨이 29개월의 형을 살고 가석방되어 꿈에 그리던 무대에 서는 장면이다. 죄를 짓고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쩍 컴백하는 현 세태를 꼬집는 것 같기도 해서 놀라울 뿐이었다. 39년 전에 이럴 줄 어떻게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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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09 15: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앗 가물가물해요 이 영화 ㅎㅎ 80년대에 봤던 거 같기도 하고 ㅎㅎ

레삭매냐 2021-07-09 15:57   좋아요 5 | URL
스코시즈-드 니로 조합의 베스트
샷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미미 2021-07-09 15: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택시 드라이버>도 <코미디의 왕>도 명품영화! <성난 황소>와 <비열한거리> 찾아봐야겠네요ㅋㅋㅋ

레삭매냐 2021-07-09 15:58   좋아요 5 | URL
어려서는 몰랐었는데...

<택시 드라비어>는 보면 볼수록
명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stella.K 2021-07-09 16: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엇, 감독의 이런 영화가 있었군요.
저도 감독의 영화 좋아하는데...
근데 아직도 보지 않은 영화가 몇 있군요.
본 영화중엔 <특근>이 참 인상 깊었는데
워낙 오래 전에 본 영화라 가물가물하네요.

레삭매냐 2021-07-09 17:10   좋아요 3 | URL
미국 감독 중에서 제가 우디 앨런과
더불어 좋아하는 감독이었죠.
뭐 지금은 아니지만.

<특근>은 1985년 작으로 원작 제목
은 <After Hours>인가 보네요.

온갖 고생을 하는 그런 영화라고 하네요.
저도 한 번 보고 싶네요.

==========================

너튜브로 15분 짜리 리뷰를 찾아 보았는
데, 개연성 없긴 하지만 흥미로워 보이
는 영화네요. 비급 코미디인데, 칸느에서
무려 베스트 디렉터상을 받았다네요.

페넬로페 2021-07-09 17: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마틴 스코시즈와 로버트 드니로의 영화를 많이 본듯 한데 이 영화는 알지 못했어요~~
읽어야 할 책도.봐야할 영화도 많네요 ㅎㅎ
14년전에 쓰신 리뷰만큼이나 레삭매냐님은 젊으셨겠죠~~

레삭매냐 2021-07-09 21:29   좋아요 1 | URL
제가 책에 빠지기 전에는
영화에 미쳐 살았더랬죠.

요즘엔 영화를 거의 안 보고
살게 되었네요.

정말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
절 이야깁니다 넵 ㅋㅋ

붕붕툐툐 2021-07-09 19: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14년 전이라니~ 꼬꼬마 시절에도 생각이 깊으셨군요!!
인간은 왜 그다지도 타인의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하는 걸까요? 참 신기해요~ㅎㅎ

레삭매냐 2021-07-09 21:31   좋아요 1 | URL
어디선가 읽었는데 우리가 하는
SNS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이윤 추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들 열심으로
하는구나 싶기두 하구요...

꼬꼬마 시절에는 니나노하느라
ㅋㅋㅋ
 


하 이러면 안되는데...

7월달에는 에밀 졸라를 읽겠노라고 선언해 두고서는 오늘 도서관에 가서 망겔의 <밤의 도서관>을 빌려서 흠뻑 빠져들었다. 뭐 이 정도면 망며들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그나마 다행인 건 망겔의 다른 책들을 죄다 빌리진 않고, 달랑 <밤의 도서관>만 빌린 것으로 위안을 삼자.

 

어제 빗길에 쏘다니다 피곤한 탓인지 오후에 실컷 낮잠을 잤다. 아까 도서관에서도 거의 널부러져 있다시피 했었는데... 망겔의 책을 몇 장 읽다 잠이 다 번쩍 깰 정도의 각성이 왔다.

 

, 이래서 책을 읽게 되는구나 그래.

 

망겔 샘은 우리의 책쟁이들의 대선배격이다. 그가 써대는 글들은 하나 같은 주옥 같이 염통을 파고든다. 90쪽 정도 읽었나?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터론토에서 살다가 프랑스로 거주지를 옮겨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바로 헛간을 사설 도서관으로 개조하는 일이었다. 도서관을 신화의 시대까지 끌어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분류과 공간에까지 가히 전문가의 손길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어려서 만난 책들을 반세기가 지난 이천년대 초반까지 끌어 안고 있는 몹쓸 기억력에 이르기까지... 정말 버릴 게 하나 없는 그런 진수성찬이다. 내가 이래서 지난달에 만났던 <끝내주는 괴물들>이 위험하다 그랬지 아마.

 

그에 따르면 밤이라는 시간은 생각의 아우성들이 끝없이 울부짖는 그런 환희의 순간들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보니 나도 낮보다는 사위가 조용하고, 잠이 드는 그 시간을 독서의 순간으로 더 애정하는 그런 느낌이다. 그렇지, 낮에는 세상살이에 속이 시끄럽다 보니 그렇게 생각들이 아우성을 칠 겨를이 없겠지. 밤에는 다르다.

 

오래전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사라진 알렉산드리아의 전설적인 대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나 황홀하던지.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이 공간에 대한 인간의 이룰 수 없는 도전이라면,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은 시간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야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해서 손에 떨치지 못하는 독서 역시, “재탄생을 위한 의식이라는 사실에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지금 읽고 있는 에밀 졸라의 <>에서도 프랑스 대혁명 시기를 지나, 전쟁이라는 두 세대에 걸친 격변기를 지나 비로소 도래한 평화시기에 프랑스라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타락상을 문학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종래의 가내수공업에서 산업화의 물결로 이전되던 시기 역시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일찍이 에릭 홉스봄이 <혁명의 시대>에서 이중혁명 중의 하나로 꼽은 산업혁명의 바람에서 프랑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역시 혁명의 세례를 받긴 했으나 프랑스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종교로부터 탈피는 민중에게 난망한 주제가 아니었을까. 16세 고아 소녀 마리 앙젤리크는 사제복 제조장 집안인 위베르가의 수양딸이자 도제로 취업해서 곧 양부모를 실력으로 제압한다. 역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프랑스 제2제정 시대에도 실력은 반드시 생존에 필요한 자본이었다. 거기에 그녀의 열정과 광기 그리고 종교적 성실함까지 더해졌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나.

 

우리 책쟁이에에게 책을 쟁여둘 공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또 갈급하다. 나의 책방에 들어서 책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한숨이 날 뿐이다. 분류도 해야 하는데... 그게 또 노가다이지 않은가. 내친 김에 망겔 선배처럼 아무 것도 안하고 며칠씩 책 분류에 시간을 투자할 정도는 아니지만(그리고 책의 분량에서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겠지만), 조금씩 소장 책들을 정리하는 것도 시작해야지 싶다. 우리의 망선배를 따라서 말이다.

 

<밤의 도서관>을 읽을수록 무언가 바로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자극이 존재했다. 우리 책쟁이들에게 내리는 그런 죽비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이려나.


[뱀다리]



어젯밤에 서가 정리를 하다가 망센빠이의 <책을 읽는 사람들>을 발견해냈다.

이럴 수가!!! 그러니까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몰랐다는 거지. 아마 내가 처음 만난 망센빠이의 <서재를 떠나보내며>와 같이 사들인 책이 아닐까 추정된다.

 

이래서 서가 정리를 해야 하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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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7-04 20:2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온통 공감입니다!!그 무섭다는 망며듬이 에밀 졸라 선생을 이겼네요ㅎㅎ🤭

레삭매냐 2021-07-04 21:20   좋아요 5 | URL
그리하여 묻고 더블로 가기로 했습니다.

<꿈>도 읽고 망선배의 책도 같이 읽는
것으로 고고씽.

붕붕툐툐 2021-07-04 21: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망며들다...ㅋㅋㅋㅋ 저는 죽비 안 주시는 거 아녜요? 툐툐, 넌 진정한 책쟁이가 아니다! 이러시면서요.. 어흙.. 주말에 이렇게 책을 안 읽을 줄이야!ㅎㅎ 레샥메냐님 리뷰가 저의 죽비~🤗

레삭매냐 2021-07-04 21:21   좋아요 5 | URL
주말에 비가 자꾸 오니 맴이 싱숭
생숭하여 책은 잘 집지 않게 되더
라구요.

어제 인천에서 공수해온 족발에
비루를 먹고 보냈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달려 BoA요.

새파랑 2021-07-05 02: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끝내주는 괴물들>은 위험한 책이 맞는거 같네요 ^^

레삭매냐 2021-07-04 21:22   좋아요 6 | URL
아주우~ 위험한 책이었습니다.

게다가 후유증도 어마무시하구요.

페넬로페 2021-07-04 23: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망며들다
염통을 파고든다~~
이 문장으로 어찌 망겔 선생의 책을 안 읽을수 있으리오^^

레삭매냐 2021-07-05 15:18   좋아요 2 | URL
망센빠이, 쵝오입니다.

모쪼록 널리 알려져서 아직 그를
모르시는 제현들이 망며들기를
기원합니다.

그레이스 2021-07-04 21: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망겔 좋아하는데...
저는 보르헤스와 망구엘을 항상 짝으로 생각해요
그들의 만남도 그렇고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한 이력도 그렇고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독서와 생각이 깊어진 망구엘의 경험도 감동적인것 같아요
독서의 역사 서둘러 읽어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7-05 15:19   좋아요 1 | URL
네이 맞습니다.

보르헤스와 망센빠이는 뗄래야
떼어 놓을 수가 없는 그런 사이
라고 생각됩니다.

일단 지금 읽고 있는 책과 쟁여
둔 책들을 읽고 나서 <독서의 역
사> 들어가 보렵니다.

coolcat329 2021-07-05 07: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월요일 아침 시작으로 레삭매냐님 글이 참 좋습니다. 😄

레삭매냐 2021-07-05 15:19   좋아요 1 | URL
고저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겠습니다.

mini74 2021-07-05 15: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망겔 그리고 죽비. 망며듦을 위해 망겔을 읽고 책을 정리해야 하는 건가요 ㅎㅎ

레삭매냐 2021-07-05 15:20   좋아요 3 | URL
넵 그리하다 보니 예전에 사두고
미처 몰랐던 망센빠이의 책도
찾고... 역시 이 맛에 책도 읽고
또 서가 정리 및 분류작업도 하
는가 봅니다.

틈나는 대로 정리에 매진해야
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07-12 16: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망겔 선생님의 책 읽고 싶네요ㅎㅎ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