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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할아버지 1
네코마키 지음, 오경화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5월
평점 :
러셀 뱅크스의 <거리의 법칙>을 빌리러 도서관으로 출동했다. 평일 오전의 도서관은 한산했다. 연세 드신 분들이 책상에 앉아서 신문을 보시고 계셨다. 나도 지난주에는 도서관에서 보수언론의 사설을 읽었지. 요즘은 모든 기사를 온라인으로 소비하다 보니 진짜 신문은 집에서 거울 닦을 때만 사용하게 된다. 콩으로 만든 인쇄잉크로 찍은 어느 신문은 품질이 정말 좋더라. 화장실 세면대 거울 닦는데 아주 유용하다. 세면대 얼룩이 뽀득뽀득 잘 닦인다.
843 분류 코드로 가서 <거리의 법칙>을 찾다가 우연히 네코마키 작가의 <고양이와 할아버지>라는 만화책과 조우했다. 이런 게 도서관의 참맛이 아닌가 말이다. 권수 제한으로 다 빌릴 수 없었고, <거리의 법칙>과 <고양이와 할아버지> 두 권을 빌려서 집으로 향한다. 룰루랄라~
2년 전에 요시에 상과 사별하고 외롭게 일본의 어느 섬마을 사는 은퇴한 교사 다이키치 씨가 이 만화의 주인공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얼핏 보기에 게으르고 귀차니즘의 정수 같아 보이는 고양이 타마(사부로)가 다이 씨의 보살핌을 받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작고하신 요시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홀로 남게 될 남편 다이 씨를 타마 녀석에게 부탁했다고. 확실히 네코마키 작가는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방법을 잘 아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모든 썰들을 왕창 풀어 헤치지는 않는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아주 조금씩 그렇게 50년짜리 이야기 보따리를 슬슬 풀어주신다.
다이 씨의 이웃에는 고양이라면 질색하는 어릴 적 시절 동무 이와오 할아버지가 산다. 다이 씨가 입시 준비를 해서 교사가 되었다면, 이와오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아버지의 배를 탄 평생 뱃사람이다. 지금도 배를 띄우고 바다에서 숱한 물고기를 기력 좋게 낚아 올리신다. 그런 그의 주변에 동네 고양이들이 득시글거리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다이 씨와 오랜친구 이와오 씨가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물고기 회를 떠서 사이좋게 마루에 걸터 앉아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누는 장면은 참 보기 좋더라. 그리고 어느새 주변에서 슬슬 모여드는 냥이들. 할배들만 먹지 말고 자신들에게도 좀 나눠 주라는 눈길 레이저빔을 내쏜다. 이와오 씨가 주섬주섬 물고기들을 잘라서 아기 냥이를 비롯한 고양이 친구들에게 인심 좋게 한턱 쏜다.
요시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홀로 남은 다이 씨의 주변을 고양이 타마가 지킨다. 장성한 아들은 대처에 나가 살림을 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아버지를 대도시 자신이 사는 곳으로 모시고자 하지만, 우리의 다이 씨는 단박에 거절한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이웃에서 농사지은 완두콩으로 조촐하게 밥도 짓고, 컵청주도 즐기고 그야말로 미니멀한 삶을 즐긴다.
문제는 나이든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뜬다는 점이다. 직접 농사지은 무를 공급해 주던 삿짱도 하늘나라로 떠나고.. 지금 1편에 나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2편에 나오는 이야기인지 좀 헷갈리지만 어쨌든 다이 씨도 큰일(?)을 치를 뻔한다. 매일 같이 들리는 우체국 아저씨의 도움으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한다. 만화는 이런 방식으로 우리네 인간이 삶이 마주하게 되는 생로병사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요시에 할머니와 만남도 아마 다른 고양이 녀석이 이어주었던가? 묘생 10년차의 타마도 아기 고양이 시절, 할머니가 구해줘서 다이 씨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소심한 남자 다이 씨가 요시에 씨에게 청혼하는 방식도 참 예스럽더라.
심장이상으로 쓰러져서도 자신 이상으로 타마를 걱정하는 다이 씨의 모습에서 과연 타마가 그에게는 반려묘 이상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에서 이런 잔잔한 이야기들을 퍼올리는 네코마키 작가의 실력에 감탄했다. 해가 마루에 든 날 좋은 날, 다이 씨와 타마가 같이 마루에서 낮잠을 즐기는 시퀀스는 과연 명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쇼와 시절, 마을에서 차출된 젊은이들이 남양군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마을의 댕댕이들이 희생양이 되어 끌려가는 장면도 애처롭더라. 무지막지한 권력을 행사하며 아무 의미 없는 전쟁을 계속하던 일본 군부와 정치 시스템을 비난하는 대신, 애꿎은 댕댕이들이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지. 섬마을 특유의 고립감과 미신적 발로가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 추락한 미군 비행사의 금발머리를 연상시키던(귀신?) 신원미상의 인물이 록밴드 가수를 꿈꾸던 동네 청년이었던가 어쨌나.
올해 9월까지 9권이 번역 출간된 <고양이와 할아버지> 시리즈를 검색해 보니 2016년부터 1년 주기로 한 권씩 나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75세 다이 씨가 85세 정도 된 모양이다. 아니 그렇다면 타마가 20살 정도 되었단 말인가? 할아버지의 무병장수도 그리고 냥이 타마의 활약도 앞으로 계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