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0월에는 두 명의 작가와 만났다.

 

한 명은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독일 출신의 작가 율리 체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지난 2005년에 작고하신 캐나디언-아메리칸 작가 솔 벨로다.

 

일단 율리 체는 지금까지 12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그 중에서 국내에 소개된 네 권의 소설들을 10월에 부지런히 읽었다. 법학 박사님 출신으로 현직 법조인으로도 활동하면서, 소설가로도 자신의 본업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연상되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에 평행우주 이론을 등장시켜 소설읽기를 사랑하는 나 같은 문과 출신을 기겁하게 만들기도 하고, 카나리아 군도의 란사로테로 독자를 유혹해서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지닌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에 대한 단상을 엿보여 주기도 한다. 건강이 최고가 된 미래사회에서 병날권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통제사회와 싸우는 SF적인 스토리를 제시해 보이기도 한다.

 

내가 꼽은 율리 체 최고의 작품은 역시 란사로테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치정극이자 전문적인 잠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돋보이는 <잠수 한계 시간>이다. 사람들이 일견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나서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준 수작이다. 인간이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공기가 없는 우주에 대한 도전은 극히 어려운 반면, 상대적으로 수월한 물속으로 잠수복을 입고 웨이트 벨트를 차고 경이로운 세계로 침잠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주 조금은 숭고해 보이기도 하더라. 내가 도전에 나섰다가 실패한 잠수에 대한 주제여서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고, 또 예전 책들은 계속해서 절판/품절되는 와중에 책사냥에 나서느라 약간(?)의 고생을 한 건 안비밀이다. 하긴 쉽게 얻은 건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없기 마련이긴 하지만. 나머지 작품들도 계속해서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 타자는 솔 벨로. 순전히 제임스 설터의 위험한 책 <소설을 쓰고 싶다면> 때문에 읽게 되었다. 물론 우리 독서 모임인 달궁모임에서 솔 벨로가 기가 막히게 좋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은 바 있다. 하지만 선뜻 손에 가지 않았다. 국내에 소개된 대표작 <오기 마치의 모험>(전미도서상), <허조그> 그리고 <비의 왕 헨더슨> 역시 품절/절판의 수순이다.

 

게다가 나의 컬렉션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먼저 <비의 왕 헨더슨>을 읽기 시작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유진 H. 헨더슨은 아프리카의 돈키호테라고 부를 만하다. 보통 유대계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등장하시는 솔 벨로는 헨더슨을 비유대인으로 설정했다. 헨더슨은 2차 세계대전 최고의 격전지로 알려진 이탈리아 몬테카지노 전투에서 생존한 전쟁영웅이다. 자신을 코네티컷의 돼지치기라고 부르는 이 남자는 중년의 나이에 무언가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이끌려 친구 찰리 앨버트의 아프리카 신혼여행에 동반한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렇게 아프리카 여행 중에 만난 무패를 자랑하는 아르느위 부족의 이텔로 왕자와의 씨름 대결에서 특공대 출신의 기량으로 왕자를 두 번이나 메다꽂는 중년남자의 힘을 과시한다. 어느 인스타에서는 헨더슨 씨를 난봉꾼이라고 부르던데, 조금 공감했다. 딱 여기까지 읽고서 이번에는 <허조그> 1권이 도착해서 <허조그>에도 달려 들었다. 동시에 다른 책을 읽는 나의 엉뚱한 패기란.


아프리카를 이상향으로 삼은 돼지치기 헨더슨 씨가 우연히 만난 이텔로 왕자는 예상과 달리 영어를 사용했다. 일찍이 소아시아 미션 스쿨에 유학해서 영어를 배웠다는 왕자의 등장에 깜짝 놀랄 수밖에. 하긴 이미 탐험이 되지 않은 곳이 없었던 1950년대 말이 아니었던가. 서구인의 시선으로 재단된 제국주의적 시선이 이식된 듯한 느낌에 어리석은 독자는 화들짝 놀라 버린다.

 

아르느위 부족의 눈물 사절단에 헨더슨 씨는 식겁한다. 왜 이러는 거지? 알고 보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이자 먹거리를 제공하는 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가뭄에 들어 그런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었다. 소들에게 먹일 물의 식수원이 개구리와 올챙이들에게 오염된 것이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싶었던 거구의 헨더슨 씨가 나설 차례다. 과연 그의 등장이 재앙인지 축복인지는 나중에 밝혀질 테고.

 

미국 사회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추방당한 헨더슨 씨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열망을 좇아 미지의 세계인 아프리카로 도피한다. 아니 좀 더 고상한 표현으로 하자면 순례길이라고 할까. 광기에 사로 잡혀 기사도를 실천하기 위해 세상에 나선 라만차의 돈키호테처럼 헨더슨 씨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아프리카의 돈키호테라... 긴 창 대신 매그넘으로 무장하고, 비루먹은 로시난테 대신 찰리 앨버트에게 뜯어낸 최신형 지프를 타고 그의 산초 판자인 로밀라유와 함께 모험에 나선다.

 

결국 돈키호테의 경우처럼 헨더슨 역시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만나는 긴 여정에 오른 것이다. 미지의 세계에서 자신이 그동안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시행착오로 귀결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삶에서 트라우마로 작동하는 것들을 폭바로 날려 버리면서 그는 자신 내부의 결핍을 해소한다. 결국 우리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죽는 날까지 이어지는 성장이라는 것일까. 솔 벨로가 현대판 우화로 포장한 <비의 왕 헨더슨>은 그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다.

   


<허조그><비의 왕 헨더슨>만큼이나 좀 더 자극적이고 재밌는 느낌이다. 물론 허조그는 주인공 모지스 허조그의 이름이다. 이 양반도 중년으로 대학교수 출신 유대인이다. 소설의 소개를 보니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가깝다나. 허조그는 오쟁이진 남편으로 두 번째 이혼을 앞두고 있다. 아니 그 순간에 이미 이혼했던가. 그 사실에 괴로워 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동정을 느끼려는 순간, 이 인간 역시 이혼한 제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니 이게 뭐야! 그리고 허조그의 현실도피적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도 일단은 여기까지.


단순히 오쟁이 진 불쌍한 주인공의 고독한 일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허조그>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아내 매들린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주인공이 사방에 편지를 쓰고, 지식인으로서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그야말로 폭발한다. 한 시절, 세상의 모든 생산은 물론이고 지적 생산력까지 독점했던 미국이 가진 소프트파워가 느껴졌다. 세계대전과 대학살의 시대를 지나 인류의 지속적인 진보가 가능한가 그리고 지금도 해당되는 말이지만, 기술의 발전을 우리 인류가 수용가능한 수준인가에 대한 논의는 대단했다.

 

어느 순간, 철저한 개인사에서 공리적인 차원의 논제로 넘어가는 바탕에는 주인공 모지스 엘카너 허조그가 대학교수라는 점이 자리한다. 어느 작가라도, 이런 거대한 어젠다 세팅을 그야말로 돈에 미친 크로아티아 제철 노동자에게 맡기진 않았으리라. 당대 세계를 주도하던 미국의 학자야말로 이런 설정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입맛이 씁쓸해진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들로 해서 솔 벨로는 나에게 10월의 놀라운 재발견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의 책들을 몇 권 가지고 있다는 점이 주효했고, 바로 읽기 시작하니 만사 제쳐두고 이 책들부터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중이다. 그리고 지적 유희는 물론이고, 읽기에 재밌고 도대체 이 놈의 인간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할 지도 무척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기 때문에 책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솔 벨로의 책들은 펭클과 민음사에서 나온 책들(그나마도 다 절판됐다)이 몇 권 되지 않는다. 퓰리처상에 전미도서상 3회 수상 그리고 무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임에도 이런 푸대접을 받고 있다니... 고저 아쉬울 따름이다.



<비의 왕 헨더슨><허조그>를 차례로 읽고 난 뒤에는 대작 <오기 마치의 모험>에 도전할 차례다. 아직 <허조그> 두 번째 권과 <오기 마치> 마지막 권을 구하지 못한 것은 안비밀이다.


이번 솔 벨로 도전에 나서면서 한 가지 느낀 점. 일단 사둔 책은 언제고 읽게 된다는 간단한 진리. 그러니 언젠가 만나게 될 책들을 기대하며 오늘도 무슨 책을 사들일까 궁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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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0-29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기 마치의 모험>으로 솔 벨로우를 시작했다가, 아주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오기 마치....>가, 이거 참, 원래 그런지 아니면 (이렇게 말하면 진짜 실례지만) 반역적 번역을 했는지, 그거 읽고 벨로우는 미국 내 유대인 프리미엄을 가장 많이 받은 작가라고 단언하고 오랜 시간동안 읽지 않았다가 오늘 쓰신 <허조그>를 읽은 다음에 좋아하기 시작했습지요.
<...핸더슨>부터 읽으신 것이 어쩌면 최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레삭매냐 2020-10-29 13:19   좋아요 0 | URL
예전에 어디선가 솔 벨로가 미국
문학계의 짱이다라는 평을 듣고
부지런히 책을 모았습니다.

물론 읽지는 않구요... 글다가 설터
선생의 자극을 받아 읽기 시작했는데...

<비의 왕 헨더슨>이 신의 한수였나
봅니다. <오기 마치>는 세 권이라 ㅋㅋ
그리하야 오기 마치는 맨 끝에 읽는
것으로. <허조그>도 참 좋네요.

겨울호랑이 2020-10-29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어떤 분야나 융/복합이 대세인 듯 합니다. 덕분에 어느 분야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네요. 이를 다양한 분야를 알 수 있어 좋은 변화라 해야 할지,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느껴야 하니 안 좋은 변화라 해야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0-10-29 13:22   좋아요 1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바야흐로 융복합의 시대라고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설터 샘의 인도를 따라 그냥
어중이 독자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독서를 하는 것으로 ㅋㅋ

그런데 방대한 독서를 하시는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면 자극을 느끼곤
하지요. 다만 제 능력으로는 역부족
인지라 현실에 만족하려구요.

han22598 2020-10-31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님 덕에 알게 된 율리체..... 새해, 잠수 한계시간 두권 샀어요 ^^ 잠수한계시간이 괜찮다고 하시니 그것부터 시작해봐야겠네요. ^^

레삭매냐 2020-10-31 21:55   좋아요 0 | URL
<잠수 한계 시간> 정말 재밌습니다.

율리 체 박사님의 책이 다 그렇지만
<잠수 한계 시간>은 특히나...
 
세상 끝의 풍경
쟝 모르.존 버거 지음, 박유안 옮김 / 바람구두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주로 한 놈만 팬다. 어느 한 작가가 꽂히면 일단 그 작가의 책들부터 수집한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다. 최근에 독일 출신 작가 율리 체가 그랬다. 그나마 율리 체는 번역서가 네 권이어서 다행이지. 로맹 가리나 이언 매큐언 같은 작가들의 경우에는 책이 끝없이 나온다. 그래서 전작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존 버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고책방에서 왜 그렇게 존 버저의 책들은 만나기가 쉽지 않은지. 지난 여름에 존 버저의 이름을 보고 산 <세상 끝의 풍경>도 그랬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건 존 버저의 책이 아니라, 그의 문학적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사진가 쟝 모르의 책이 아닌가. 뭐 그래도 상관없다. 책이 인도하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정도(正道)만은 아닐 테니까.

 

사진가인 쟝 모르는 세상의 인정을 받았던 모양이다. 곳곳에서 그에게 일감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말라리아 퇴치사업을 벌이는 동부 유럽 루마니아(루마니아에도 말라리아가 발생하는지 처음 알았다)를 비롯해서 산디니스타의 초대를 받아 지배하던 니카라과의 마나과 그리고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들다는 북한에도 가본 모양이다.

 

스위스 국적인 쟝 모르는 뜨거웠던 동서냉전 시대에 비교적 자유롭게 사회주의 진영에도 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쟝 모르는 언론인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나라들이 진실을 알리는 일을 하는 사진가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모스크바에서는 기껏 촬영한 필름들을 모두 뺏기고(그 시절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초대 받아 방문한 북한에서도 공화국의 후진성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당국의 사전검열로 대부분의 사진들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나 역시 잔뜩 기대하고 북한 편을 보았지만 달랑 두 컷이 전부였지 싶다.

 

여전히 세상에 대한 제국주의적 시선을 거두지 못했던 서방 언론들은 그런 순치된 이미지들을 자신들의 신문 지상에 싣고 싶지 않았으리라. 자신들보다 못한 후진 나라들의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를 원하지 않았을까. 우리의 양심적인 사진작가인 쟝 모르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를 방문하면서 사람이 끄는 인력거인 릭샤가 주는 매력과 호사에 빠지기도 하지만, 앞에서 전력을 다해 인력거를 끄는 노동자의 등줄기에 나는 땀을 보고 자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런 쟝 모르의 인간적인 점들이 너무 좋았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사람들이 친해지기 위해서는 아무런 의미 없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도 한때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는 관찰과 아무런 의미 없이 셔터를 누르는 그런 행위가 필요하다. 물론 예전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필름이며 현상 그리고 인화에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셔터를 누를 때 초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도래한 디지털 카메라 시절에는 필름 카메라 시절만큼의 자본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이제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도 저물로 휴대폰 카메라 시절이 도래한 걸 잊었다. 쟝 모르의 책 <세상 끝의 풍경>과 만나면서 언제나 그렇지만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도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그리고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사진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우연의 작동이 더 크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내가 쟝 모르처럼 수십만 장의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제법 많은 사진을 찍다 보니 내가 의도해서 찍은 사진보다 우연히 얻어 걸린 사진들이 더 마음에 든다는 걸 알게 됐다. 나의 삶도 그렇지만, 우연도 내가 통제할 수 있게 아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사진찍기와 삶은 상당히 닮은 부분이 많구나 싶다.

 

책을 읽느라 그동안 사진찍기를 멀리 했었는데 오늘은 간만에 집에서 책사진이나 찍는데 쓰는 카메라를 집어 들고, 우연을 만나고 이미지를 포착하러 출사나 나가볼까 싶다. 나에게 이런 삶의 작은 동기를 부여해 준 쟝 모르 선생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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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10-25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깊이 있는 독서를 보면 많이 부럽습니다. 저는 진득하게 그처럼 한 작가, 한 분야를 읽지를 못합니다... ㅜㅜ 화창한 가을 날 즐거운 독서 되세요! ^^:)

레삭매냐 2020-10-25 09:16   좋아요 1 | URL
부끄럽습니다 -

오히려 제가 겨울호랑이님의 광범위한
독서력에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요.

<스페인 내전> 포스팅을 보고 나서
많은 독서의 자극을 받았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참으로.

겨울호랑이 2020-10-25 09:34   좋아요 1 | URL
에고 아닙니다... 괜히 쑥스럽습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가을날 되세요! ^^:)

비연 2020-10-25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주로 한 놈만 팬다. 어느 한 작가가 꽂히면 일단 그 작가의 책들부터 수집한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저랑 완전 같다는 것에 감동^^

번역 많이 되어 나온 작가도 고민이지만, 너무 안 나온 작가도 가끔 고민이에요. 원서를 읽으려고 했더니 영어가 아닌 경우도 있고. 그저 턱 괴고 기다려야 하니.

레삭매냐 2020-10-25 20:14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 한놈만팬다 중의 한 명인
설터 작가의 책을 읽고 있는데...

30-35권 정도의 책을 소장하라고 하네요.
하 - 공감하면서도 세상에 참 어려운 일
이지 싶네요.

너무 많아도 걱정, 너무 없어도 걱정~
이놈의 걱정하다가 가게 생겼습니다 :>

han22598 2020-10-25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찍으시는 레삭님! 멋지시네요 :)

레삭매냐 2020-10-25 20:18   좋아요 0 | URL
예전에 필카 시절에는 참 사진
열심히 찍었었는데...

디카 시절로 넘어 오면서부터는
확실히 더 사진을 찍지 않게 되
었네요.

오늘도 디카 메고 나가려고 했으나
귀찮니즘으로 결국 포기했네요 -
사진은 무엇보다 열정이 중요하다는.

근데 디카 에라에는 관리가 더...
 
토끼들의 반란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안경미 그림, 김목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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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출신의 경계인 아리엘 도르프만이 1986년에 발표한 <토끼들의 반란>을 읽었다. 제목에 등장하는 토끼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도르프만의 토끼가 피노체트 정권의 독재 아래 고사 위기에 빠진 칠레의 민주주의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제 아무리 탄압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칠레 민중의 투쟁으로 해석했다.

 

늑대 중의 늑대는 불법적인 군사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시킨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다. 칠레식 사회주의를 혐오하는 기득권층과 종교계 그리고 외세의 지원을 등에 업은 늑대들은 토끼의 존재 자체를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토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늑대들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토끼들은 늑대들이 지닌 권력을 조롱하듯, 사방에서 출몰한다. 아니 어쩌면 도르프만은 칠레 민중을 의인화한 토끼의 끈질긴 생명력에 주안점을 두고 이 성인들을 위한 우화를 쓴 게 아닐까.

 

나의 해석에 집중하다 보니 초반의 전개를 까먹어 버렸다. 늑대 두목은 토끼들의 땅을 점령하고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었다. 이건 누가 봐도, 독재자 피노체트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그리고 늑대 왕은 독재자답게 검열을 시작했고, ‘솜꼬리토끼란 녀석들의 존재를 부정했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정이야말로 독재가 지닌 역설이 아닐까.

 

원숭이 사진사가 찍는 사진마다 늑대 왕이 그렇게 부인하고 싶었던 솜꼬리토끼들이 출몰한다. 이에 왕실 고문인 늙은 회색 여우는 사진을 조작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사실의 부인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에서 진실을 호도하기 위해 가짜 뉴스 전파에 여념이 없는 끝 간 데 없이 추락하고 있는 미디어의 현실을 목격하는 것과 같은 데자뷰를 느끼기도 했다.

 

원숭이 사진사가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사진에 등장하는 토끼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늑대 왕은 높은 왕좌에 올라 토끼들에 대한 감시해 보지만, 별무소용이다. 왕실 고문인 회색 여우는 원숭이 사진사에게 사진에 나타나내는 토끼 녀석들을 용액을 사용해 지우라고 명령한다. 그런다고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도르프만은 독재자가 자행하는 폭압적인 통치라는 역경 속에서도 민주주의가 언젠가 회복될 날을 기다리고 있던 칠레 민중들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수적으로 늑대들을 압도한 토끼 군단은 늑대 왕이 앉은 왕좌를 물어뜯고, 씹고, 갉아 먹고 결국 왕과 일당을 전복시켰다. 그리고 다시 토끼들의 세상이 도래했다.

 

경계인 아리엘 도르프만은 <토끼들의 반란>에서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흉포한 늑대 왕에 대항할 아무 힘도 보이는 토끼들이 반란이 성공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낙수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처럼 민주주의를 향한 다수 칠레 민중들의 열망은 원숭이 사진사와 용액을 동원한 눈속임이나 사술로 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늑대와 토끼의 대결에서, 토끼 군단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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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가는 길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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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눈은 언제라도 눈물샘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존 버저 작가가 섬세하게 구상한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나의 감정은 그런 태세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만난 존 버저의 <결혼식 가는 길>은 그저 아름다웠다.

 

대륙을 양쪽에서 가로 지르는 황홀한 서사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타마타(tamata:그리스 정교에서 교회에 바치는 편액)를 파는 눈먼 이야기꾼으로부터 시작한다. 평생을 철도원이자 이급 신호수로 살아온 알프스 프랑스에 사는 이탈리아 이민자 장 페레로는 죽어가는 딸에게 줄 타마를 초바나코스(양치기)에게 산다. 안 아픈 곳이 없다는 딸을 위해 타마를 산 아버지. 심장이 그려져 있는 타마.

 

소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남자 주인공 지노의 신부가 될 23세 처녀 미농 페레로가 태어나기 이전의 시절로. 장의 아내 니콜은 일찌감치 자신의 삶을 살겠노라고 선포하고 그의 곁을 떠났다. 장의 곁을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 사태로 이방인 신세가 된 기술자즈데나 홀레체크가 채운다. 그리고 미농이 태어난다. 서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갈 태세를 마쳤다.

 

주인공들은 각각 세 방향에서 슬프고 기쁜 결혼식이 열릴 베네치아의 고리노로 향한다. 장 페레로는 자신의 빨간색 혼다 CBR 오토바이를 정성스레 정비해서 긴 여정에 나선다. 다른 한쪽에서는 즈데나가 브라티슬라바에서 두 번째 서방행을 감행한다. 즈데나는 딸의 결혼 선물로 지빠귀 울음소리가 나는 피리를 주려고 시민을 찾아 나선다. 모데나에 사는 미농은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전해 듣는다.

 

우리는 알고 있다. 장의 아름다운 딸이자 신부 미농이 죽어간다는 것을 말이다. 낭트의 교도소에서 탈옥한 어느 요리사와 보낸 하룻밤이 문제였다. 정말 드라마 같은 사연이 아닌가. 그리고 나서 미농은 노점상하는 청년 지노(루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미농은 자신이 HIV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자신의 삶 그리고 어쩌면 지노까지도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미농은 자책한다. 미농의 친구 마렐라는 인류에게 내려진 최악의 역병을 SIDA(프랑스어로 에이즈를 의미한다)라고 부르지 않고, 레트로바이러스 혹은 스텔라라고 부르며 그녀를 위로한다.

 

아마 스텔라가 없었더라면, 지노는 미농과의 결혼을 서두르지 않았으리라. 자신의 미래를 잘 아는 미농은 지노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하지만, 사랑에 눈먼 청년 지노는 결별이 아닌 결합을 선택한다. 베네치아의 고리노에 가서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모단과 브라티슬라바에서 장과 즈데나의 재회를 위한 로드 트립이 시작된다. (la strada)에서 그들은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네 삶은 직선적이다. 지구별에 도착한 인간들은 언젠가는 모두 죽을 운명이다. 지노에게 미농과 결혼을 말리는 페데리코의 말처럼 그게 언제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생 장 드 모리엔의 철도사고처럼, 누군가는 예상보다 이른 죽음을 그리고 또 누군가는 천수를 누릴 뿐. 존재가 소멸하는 순간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누가 알 수 있을까. 어쩌면 애써 눈 감은 채, 삶이라는 이름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페라라의 고리노 광장에서 치러지는 결혼식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결말의 곳곳에서 계시처럼 등장하는 사위어가는 미농의 마지막 순간들에 대한 묘사는 읽기내기가 쉽지 않았다. 미농과 지노의 결혼식에 준비된 농어와 장어 요리로 대변되는 삶의 최고의 순간들과 어쩌면 그렇게 대조가 되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삶의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은 본질적으로 같은 게 아닐까? 그래서 삶은 순수한 미스테리오소인지도 모르겠다.

 

유유자적하게 슬픔을 안고 도로를 달리는 장 페레로의 모습은 우리 보통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평생을 고지식한 신호수로 살아온 사람답게, 도로에 사람이 없어도 신호를 준수한다. 외롭게 오토바이에 한 대에 의지해서 먼 길을 나선 장의 모습에서는 일견 구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장은 살아남기 위해 실리콘 형제애를 내세운 해커 집단의 활동명 세례 요한을 만나기도 한다. 즈데나는 베네치아로 가는 길에 만난 대머리 아저씨 토마스를 (구원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가며 버스를 잡아둔다. , 그렇게 모두가 구원을 원하고 서로를 구원하는구나 싶다. 조금 신파스러운 맛이 없진 않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개인들의 일상이 무너진 세상에 사는 우리들에게 4반세기 전에 발표된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알 수도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로 가득한 세상의 삶이 순수한 미스테리오소라는 점 말이다.


[뱀다리] 존 버저의 <결혼식 가는 길>1999년에 해냄에서 이윤기 씨의 번역으로 <결혼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번에 나온 <결혼식 가는 길>은 재개정판인 셈이다. 출판사가 다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서비스로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닌가. 동업자 정신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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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0-23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봐야겠군요.ㅋㅋ

레삭매냐 2020-10-24 13:57   좋아요 1 | URL
간만에 만나는 존 버저의 책, 반가웠습니다.

페크(pek0501) 2020-10-23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를 존 치버로 알았다는... ㅋㅋ
204쪽이라 맘에 드네요.

레삭매냐 2020-10-24 13:57   좋아요 1 | URL
분량이 적어서 수월하게
읽었습니다.

내용은 기대이상이었구요.
추천해 드립니다.

비연 2020-10-24 0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 애정하는 작가. 소개 감사요~

레삭매냐 2020-10-24 13:58   좋아요 0 | URL
저도 팬인지라 존 버저의 책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수급이 쉽지가 않네요 다들 애정
하는 작가의 책들이라 그런지.

초딩 2020-10-31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네요~
저 결혼식 가요

레삭매냐 2020-10-31 21:56   좋아요 0 | URL
오 책 제목과 딱 떨어지는 상황이시네요 :>

코로나 시대의 웨딩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어떤 소송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율리 체 지음, 장수미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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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에도 마스크를 쓰는 모습이 뉴노멀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의 건강과 위생이 중요시되고 있다. 코로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위생에 철저하다. 수시로 손을 씻고, 마스크로 무장해서 어지간한 감기는 걸리지 않게 되었다. 물론 반대급부도 막심하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달궁 독서모임이 열리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이다.

 

요즘 흠뻑 빠진 법학박사님 율리 체가 드디어 자신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법학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바로 2009년에 발표된 5번째 소설 <어떤 소송>이다. 아예 제목에서부터 어떤 소설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고 도발한다. 우리의 주인공은 34세의 생물학자이자 허무주의자인 미아 홀. 그녀는 최근 사랑하는 동생 모리츠(27)를 잃고,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방법적대적인 책동을 자행했고, 독성 물질을 남용했다는 혐의로 기소된다. 가볍게 끝낼 만한 사건이 변호사 루츠 로젠트레터의 부추김으로 판이 커진다.

 

, 그전에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빼먹었다. 21세기 어느 시절로, 당대 최고의 가치는 바로 건강이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들은 고통을 피하고, 생존에 적합한 상태를 원한다. 이 명제를 인간에 대입해 보자면,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어떠한 종류의 고통도 원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미래사회에서 최고의 덕목은 바로 건강이다. 미아와 그녀의 동료들 혹은 적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경찰국가 비슷한 시스템을 가동시킨다. 그것을 방법주의라고 했던가.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자연주의자 미아를 옥죄는 사회는 그녀의 건강을 지나치게 염려한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압박한다고 해야 할까. 모든 사회 활동은 모니터링되고, 일체의 독성 물질 남용은 법에 저촉되는 행위로 간주된다. 미아는 독성 물질을 흡입하는 방식으로 사익을 추구하다가 경찰에 체포된다. 아니 이미 그전에 미아는 병날권(병날 권리)’을 주창하는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일원 혹은 동조자로 요주의 인물이었다.

 

당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의 현실세계에서 술이나 담배 같은 중독성 강한 기호식품(?)들이 시중에서 아무런 규제 없이 팔린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향정신성 약물들은 엄격하게 규제하면서 그에 못지않은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상품들이 즐비한 마트의 매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쨌든 무엇보다 건강을 최우선시하는 방법주의 사회는 개인에게 최선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강제한다. 그들은 개인 복리와 보편적 복리를 위한다는 슬로건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심지어 원하지 않는 행동을 강제한다. 어쩌면 이런 설정 자체부터가 넌센스인 지도 모르겠다.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소설에서 다루는 여러 가지 주제들을 담으려다 보니 나 자신도 헷갈릴 판이다. 자유 의지를 억압하는 감시사회에 대한 이슈부터 시작해서, 사회의 모든 갈등을 법으로 심판하려는 법치 만능주의 그리고 진실을 전달하는 언론의 순기능보다 선동을 일삼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문제적 인간이자 이야기 사냥꾼인 하인리히 크라머에 대한 캐릭터 분석에 이르기까지 정말 입맛 당기는 주제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달궁 독서모임책으로 다룰 만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가 미아 못지않은 자연주의자이자 젊은 쾌락주의자였던 청년 모리츠는 소개팅으로 만나려고 했던 지뷜레의 살인혐의 누명을 쓰고, 구치소에서 자살한다. 주술적 리얼리즘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이상적 애인이 미아의 삶 속에 침투하는 장면도 나온다. 모리츠의 자살 도구였던 투명한 낚싯줄은 미아가 몰래 제공했다는 점도 놀랍다.

 

미아는 명백하게 경계선에 선 중간자 같은 존재다. 중세였다면 그녀는 마녀라고 비판받았으리라. 자연과학자로 건강을 최우선시하는 방법이 지배하는 사회의 대의에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자유 의지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방법안기부에서 엄격하게 금지한 독성 물질을 즐긴다. 그런 점에서 병날권의 신봉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변호사 루츠 로젠트레터의 활약으로 모리츠가 어려서 가졌던 병력을 바탕으로 그의 무죄를 밝혀내는데 성공하면서, 미아는 모두의 지탄을 받는 마녀에서 방법의 허점을 만천하에 드러낸 영웅으로 등극한다. 하지만, 하인리히 크라머로 대변되는 기득권 세력의 반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진실을 앞에 내세우고 공공의 복리라는 대의를 위해, 개인의 복리나 안위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역설적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크라머가 이야기 사냥꾼이자 언론인으로 플레이어가 되어 선동가로 직접 판에 참가했다는 사실이다. 노련한 플레이어는 사실의 주작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오늘날의 기레기라는 악명을 뒤집어 쓴 언론의 모습과 일치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율리 체는 마땅히 선각자이자 예언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크라머가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덫에 걸린 미아는 결국 법정 최고형인 무지 동결형에 처해진다. 다시 사태는 반전되어, 감방 밖에서 그녀의 무죄를 주장하던 이들은 그녀에게 기꺼이 돌팔매를 하겠다고 신속하게 태세전환에 나선다. 방법에 도전한 위대한 순교자의 반열을 들려는 마지막 순간까지 반전이 거듭된다.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벌써 율리 체의 마지막 책이라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출판사들은 속히 그녀의 소설들을 내주기 바란다. 지난 20년 동안 12권의 책을 발표했는데, 지금까지 나온 책은 4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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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0-14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감시하는 사회라는 글을 읽으니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런 사회에서도 몰래 연애를 하는데 그것도 들통이 나서 처벌을 받게 됩니다. 꼭 북한을 보는 것 같았었죠.

레삭매냐 2020-10-14 20:09   좋아요 1 | URL
개인의 복리를 위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의 역설
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더라구요.

키스 같은 행위에 대해서도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인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배척
하는 풍조가 색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술과 담배를 독성 물질로 규정하고
남용하는 이들을 처벌하는 시스템도
참신했습니다.

han22598 2020-10-15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가님들 좀더 힘을 내주셨으면 좋겠네요 ^^나머지 8권도 빨리 번역해랏! 번역해랏!

레삭매냐 2020-10-17 22:59   좋아요 0 | URL
아마 율리 체 작가의 이름이 주기적
으로 노출이 되어야 출판사에서
그나마 움직이지 않으려나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