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평점 :
오래전에 존 애브넷 감독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보면서, 영화의 제목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그때는 그냥 흘려버려서일까 기억이 희미하다. 최근에 소설이 재출간된다는 소식에 영화를 다시 봤는데 그제야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미국 남부 지방의 요리이자,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된 앨라배마 휘슬스톱에 있는 카페테리아 이름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공개적으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밝힌 패니 플래그의 원작 소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짠한 감동의 도가니탕이 있는 소설이다. 영화에서는 대중성을 위해 원작 소설의 상당 부분을 각색했다고 한다. 항상 원작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영화가 상대적으로 원작 소설만큼의 감동이 2%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소설은 1980년대 중반 48세 중년의 에벌린 카우치가 요양원에 있는 자신의 시어머니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곳에서 니니 스레드굿이라는 86세의 할머니와 만나 휘슬스톱에 있던 카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성으로 사실상의 주인공은 왈가닥 이지 스레드굿과 그녀가 사랑한 루스 제이미슨 그리고 앨라배마 주 휘슬스톱이라는 작은 동네에 사는 여러 군상이 펼쳐내는 다이내믹하면서도 다층적인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춘다.
대공황 시절, 그 어렵던 시절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서 벗어나 이지를 찾아와 새 삶을 찾은 마음씨 착하고 도무지 일탈이라고는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루스는 이지와 함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라는 이름의 작은 카페를 연다. 1930년대 철도와 열차운행이 호황을 이루던 시절 카페는 휘슬스톱 마을의 사랑방으로 인기를 끈다. 게다가 요리를 맡은 십시와 그녀의 아들 빅 조지가 만들어내는 바비큐 요리는 앨라배마 주 최고라고 했던가. KKK 단을 필두로 한 인종차별이 판을 치던 시절, 이지와 루스는 흑백 인종차별을 하지 않고 카페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맛있고 따뜻한 정성이 밴 음식을 대접한다. 돈을 내지 못하는 스모키 론섬 같은 노숙자들에게도 이지와 루스는 아낌없는 사랑을 베푼다. 스모키 론섬은 그런 루스에게 아가페적 사랑을 느낀다.
영화에서는 이지와 루스가 달리는 열차에 뛰어올라 빈민들이 사는 트라우트빌에 사는 이들에게 정부 열차에서 음식을 던져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설에서는 이지가 “레일로드 빌”이라는 이름으로 의적 행세를 한 것으로 나온다. 영화와 소설의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빅 조지의 쌍둥이 아들들인 재스퍼와 아티스에 대한 부분이 영화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소설의 방대한 그런 디테일까지 영화에서 감당할 수가 없지 않았나 싶다. 루스와 이지의 아들 스텀프의 성공기에 대해서도 영화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소설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소재로 우체국에서 일하는 윔스 여사가 발행하는 마을 소식인 <윔스 통신>도 한몫한다. 자잘한 뉴스가 주를 이루는 동네소식 <윔스 통신>에는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애완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이웃의 부탁에서부터 친절했던 이웃의 부고 소식에 이르기까지 휘슬스톱 마을 사정을 아는 이들이라면 흐뭇해지는 미소가 절로 피어나는 그런 재밌는 뉴스가 실린다.
패니 플래그 작가는 대공황 시절 남부 특유의 대가족 그리고 공동체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소설이라는 무대에 올린다. 아울러 흑인과 여성 같이 소외당하는 계층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이지와 루스의 모습을 통해 조명한다. 반세기를 지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에벌린 카우치 여사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노처녀가 되기 싫어 결혼했고, 당연히 아이들을 낳아 길렀지만 정작 뚱뚱한 중년이 된 자신의 삶에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에 좌절한다. 하지만, 니니와의 진정한 소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영화에서는 에벌린이 좀 더 희화적으로 묘사되었는데, 소설에서는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커리어 우먼으로 변신해 가는 에벌린의 심리묘사가 탁월하게 그려진다. 영화에서 에벌린 역을 맡은 캐시 베이츠는 정말 안성맞춤의 캐스팅이었다. 패니 플래그는 이렇게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적절하게 독자에게 들려주면서 시대를 넘나드는 여성들의 유대감에 방점을 찍는다.
사실 500쪽이 훌쩍 넘는 두툼한 분량에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었지만, 일단 니니 스레드굿의 이야기에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니 어느새 다 읽어 버렸다. 말미에 실린 십시의 레시피를 보자니, 절로 입맛이 다셔졌다. 책의 표지에 나온 덜익은 초록색 토마토를 보며, 할 줄도 모르는 풋토마토 튀김 요리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마을 휘슬스톱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뱀다리] 9년 전에 숨넘어간 모클이 다시 부활하려나?
요즘 모클에서 미처 읽지 않은 그리고 절판된 책들을 사냥하고 있는데...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에 이어,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도 다시 나왔네. 아마 판권이 살아 있나 보다.
다음 타자는 누굴까? 아울러 새로운 친구들도 내 주면 좋겄다.
< 인터넷으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튀김을 검색해봤다.우리나라 호박전하고 비슷하지 않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