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연휴 동안,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순응주의자>를 읽고 싶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명절 전에 책을 내는 센스를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책은 이번 주말에나 올 판이다. 기다릴 수가 없어 미리보기를 좀 보았고 결국 책이 나온지 19년 만인 1970년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연출하고 누벨 바그 영화의 단골 배우였던 장-루이 트랭티냥 주연의 영화 <순응주의자>부터 먼저 보게 됐다.

 

아쉽게도 원작 소설이 주는 아우라 또는 오리지널리티는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 점이 참 아쉽다.

    


원작소설에서는 아마 100쪽 정도에 해당하는 프롤로그에서 우리의 주인공 마르첼로 클레리치 박사의 유년 시절을 그린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과감하게 그 부분을 드러냈다. 영화의 시작은 파리로 위장(?) 신혼여행을 떠난 34세의 공무원이자 고전문학 박사인 마르첼로 부부가 머무는 호텔 도르세에 전화가 한 통 걸려오는 장면이다.

 

마르첼로 역을 맡은 장-루이 트랭티냥의 표정에서는 영화 내내 웃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주인공은 참으로 진중한 그런 캐릭터였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구속복을 입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고, 오래전 뮌헨의 맥줏집에서 만난 또라이 한 명을 추억한다. 그는 지금 독일의 최고 권력자 히틀러였다. 부군을 정신병원에 보낸 마르첼로의 어머니는 수시로 애인을 갈아 치우는 모르핀 중독자다.

 

그리고 자신이 파시스트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마르첼로는 시각장애자이자 역시 파시스트였던 이탈로 몬타나리 동지(영화에서는 카메나라라고 부르는데 파시스트들 사이에서 동지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의 추천으로 파시스트 무솔리니 정권에 협력하는 길을 택한다. 그는 비밀요원으로 채용되어 자신의 스승이었던 루카 콰드리 교수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세상의 지배자가 파시스트들이었던 시절의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 왠지 구속복을 입고 미쳐 버린 마르첼로 아버지의 모습에서 무기력한 당시 지식인들의 모습이 연상됐다.

 

마르첼로의 나이는 소설에서는 30세라고 그리고 영화에서는 34세로 되어 있다. 30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면 대단한 실력이 아닐 수 없다. 유년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리노라는 미남자와의 모종의 관계는 성인이 된 지금의 마르첼로를 계속해서 괴롭힌다. 그리고 피스톨로 그를 죽였다는 자책감까지 안고서 말이다. 책을 읽어 보지 않아 영화에 보이지 않는 그런 디테일은 알 수가 없다.

 

콰드리 교수는 파리로 망명해서 반파시스트 운동의 선봉에 서 있던 지식인이었다. 마르첼로는 망가니엘로라는 특이한 이름의 요원과 접촉해서 파리로 가서 임무를 실행할 계획은 세운다. 그리고 매력적인 약혼녀 줄리아와의 결혼을 앞둔 마르첼로는 신혼여행지를 파리로 정하고 완벽한 위장을 하는데 성공한다.

    


(이것은 진정 영화에서나 가능한, 보여 주기

위한 완벽한 키스 시퀀스가 아니던가!

아마 요즘 이런 장면을 연출한다면 손발이

오그라 들지 않을까 싶다.

50년 전이라 가능했던 장면이 아닐까 싶다.)


마르첼로는 비록 무신론자였지만 미래의 아내 줄리아의 간청으로 결혼 전 신부님을 찾아가 리노를 자신이 죽였다는 고해성사를 한다. 고해소에 들어가 있던 신부는 집요하게 리노와의 관계를 캐묻는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을까?

 

파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신부 줄리아는 자신이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신랑에게 고백한다. 어쩌면 마르첼로에게 고해성사를 하도록 유도한 것은 자신의 비밀도 밝히기 위한 그런 사전 단계가 아니었을까. 상대는 집안의 오랜 친구이자 결혼식의 증인이기도 했던 늙다리 변호사였다고 한다. 6년 동안 관계를 지속했고, 역겨웠다는 줄리아의 고백이 이어진다. 영화 초반에 마르첼로의 장모님에게 마르첼로의 아버지가 매독에 걸려 뇌질환을 앓고 있고, 그 병이 자식인 마르첼로에게까지 유전될 거라는 익명의 투서가 도착하는데, 줄리아는 그 투서를 보낸 이가 자신의 옛 애인일 거라는 사실도 말해준다.

 

파리에 도착한 마르첼로는 망가니엘로와 짝을 이루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기 시작한다. , 그전에 잠시 들른 곳에서 얼굴이 긴 흉터가 있는 매력적인 여성을 만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가 자신의 사부였던 콰드리 교수의 젊은 아내 안나가 아니었던가. 영화는 마치 장르물 같은 미스터리를 구사하면서 동시에 파시스트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장면들을 아주 빠른 속도로 잡아낸다. 서로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아마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알아서 연관지으라는 그런 주문이었을까. 소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핍진성 차원에서 알베르토 모라비아 작가는 과연 어떤 식으로 연결 고리들을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결국 원작을 봐야 한다는 말이겠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영화 최고의 장면들은 바로 파시스트 지성을 대표하는 젊은 마르첼로와 고전 철학의 대가이자 어긋난 시대정신에 경도된 파시스트들을 준엄하게 꾸짖는 루카 콰드리 교수의 대화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 유명한 플라톤의 동굴에 비친 그림자 전설을 화두로 꺼내면서 두 지성은 치열한 토론 배틀에 나선다. 칼이나 총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마르첼로와 콰드리 교수 간의 대화는 소설/영화가 말하고 싶은 주제들을 압축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굴의 원시인들이 본 그림자는 과연 오리지널리티의 그것을 담보하고 있었던가? 그 시대의 숱한 파시스트들 역시 문제의 본질이나 핵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그 아우라가 비추는 그림자에 홀려 궁극적으로 자신의 신세를 망친 게 아닐까 싶다. 그림자는 자연히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광 앞에서 스러지기 마련이 아니었던가. 히틀러나 무솔리니로 대변되는 파시스트 인사들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아마 그동안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부분에 대한 수정 대신 그릇된 확증편향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이 진리라고 믿어왔던 이데올로기를 단숨에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으리라.

 

어쨌든 루카 콰드리와 발레리나 선생 안나는 마르첼로의 정체를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파리에 남아 있느라는 마르첼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남편과 함께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길에 매복해 있던 네 명의 비밀요원들에 의해 콰드리 교수는 수차례 칼에 찔려 죽고, 그것을 보고 도주하던 안나 역시 그들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사랑하는 딸 마르타의 아빠가 된 마르첼로. 그는 라디오에서 이탈리아 국왕에 의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권력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추락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이탈로 몬타나리를 만나러 나선다. 거리에는 몰락한 파시스트 권력자 무솔리니 동상의 머리를 끌고 산탄젤로 성 앞을 행진하는 시위대의 모습이 보인다. 이탈로 동지를 만난 마르첼로는 재빨리 그의 가슴팍에서 파시스트 당원임을 상징하는 배지를 잡아 뜯는다. 파시스트가 되는 이유는 두려움이나 돈 때문이라고 영화 어디에 나왔던 것 같은데, 마르첼로는 두려움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파시스트가 되길 거부하지 않았나 싶다. 역설이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한 사도 베드로처럼 자신이 믿고 따랐던 동지이자 친구 이탈로 몬타나리를 파시스트라며 배신하는 마르첼로. 그는 자신을 오래전 유혹했던 노년의 리노를 거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놀라움에 휩싸인다. 자신은 총으로 리노를 쏴 죽였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 왔는데 그는 멀쩡하게 살아남아 예전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거리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에서는 정상의 삶을 추구하는 주변의 모든 것이 비정상인 젊은 파시스트의 고뇌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는데,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그런 주인공 마르첼로 클레리치의 개인적 고뇌보다는 루카 콰드리 교수를 쫓는 첩보요원으로서의 활동에 좀 더 비중을 두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연출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줄리아와 안나라는 두 명의 더블 팜므 파탈을 배치해서 퇴폐적 관능미를 유감 없이 보여주었다. 전자가 백치미 넘치는 그런 여성상을 그렸다면, 후자는 독립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파리의 어느 댄스홀에서 줄리아와 안나가 춤추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백미였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결말과 소설의 결말은 상당히 다른 것 같은데 이제 영화를 다 봤으니 이제 원작소설을 읽으면서 비교해 보면 될 것 같다. 원래 내 계획은 소설을 먼저 읽고 나서 영화를 보는 거였는데, 명절 배송에 발목이 잡혀 먼저 영화부터 보게 됐다. 아마 나의 소설 읽기는 영화의 복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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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9-21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콧님이 님의 마음에 불을 화~악 질러버렸나 보군요.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내시고 계실지 알 것도 같습니다.ㅋㅋ
영화도 꽤 인상적일 것 같군요. 저도 기회되면 함 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9-21 17:37   좋아요 1 | URL
저는 <경멸>을 읽고 나서 바로
모라비아 작가의 팬이 되어 버린...

그래서 절판된 작가의 책들도
바로 사냥에 나서서 <권태>도
수배해서 읽기 시작은 했는데 못
다 읽었네요 :>

문지에서 이번에 대산총서로 나온
다는 소식에 바로 주문장을 날렸
으나, 아쉽게도 명절 수급에는 실
패했네요 ㅋㅋ

영화 보신 분들은 적극 추천해
주시더라구요.

cyrus 2021-09-21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라비아의 소설 <권태>도 영화화된 작품이죠. 영화가 청소년 관람 불가였는데, 고등학생 시절에 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에 한 걸 봤어요. 하도 오래 돼서 영화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아요.. ^^;;

레삭매냐 2021-09-21 17:38   좋아요 0 | URL
오호라 <권태>도 영화가 있군요.
미처 몰랐네요.

인스타에서 모라비아 작가의 <권태>
를 득템하기 위해 중고서점으로 달려
갔노라는 말에 저도 중고로 수배했답
니다.

일단 영화부터 한 번 알아봐야겠네요.
 


요즘 채집활동에 열심이다.

아마 난 예전에 원시인이었다면 적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주에는 수원 만석공원으로 새뱅이 사냥을 갔었다.

작은 수로에 새뱅이라는 민물새우 녀석들이 살고 있는데, 참 신기했다.

 

그짝 동네에서는 친구들 사이에 연락망이 잘 되어 있는지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 새뱅이 사냥을 하는 걸 보고는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갑자기 아이들이 많아졌다.

 



원래는 그냥 흐르는 물에 발이나 담그고 물놀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가만 있을 수 있을소냐. 마침 가지고 있던 채집통과 잠자리채를 이용해서 새뱅이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일단 그렇게 담아서 피티병에 담아서 물고기(아마도 밀어?)를 관찰하고 있었는데 저짝에서 불법단속 조끼를 입은 두 명의 아자씨들이 등장해서 아이들을 수로에서 다 쫓아냈다. 무섭기도 하여라. 우리는 잡아서 관찰한 다음에 다시 자연으로 방생하는데, 그렇지 않고 데려가는 사람들도 있는가 보더라.

 

아니나 다를까 니가 뭔데 가라마라냐며 옥신각신하는 모습도 보이고... 다투는 이들은 심각하겠지만 멀리서 보니 또 팝콘각이었다. 여튼 불법단속 아재들의 파워로 그 많던 아이들이 모두 내쫓기고 수로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그렇게 단속 아재들이 두 번인가 다시 돌아온 다음에는 마음 놓고 다시 새뱅에 사냥에 나섰다. 새뱅이가 도심에 그렇게 많이 살고 있다니 그야말로 놀랄 노자였다.

 


_어제 만난 올챙이 녀석, 9월 중순에 올챙이라니! 너 너무 늦은 거 아니냐?_


오늘은 동네 다슬기 사냥에 나섰다. 그것도 가장 뜨거운 시간에. 내가 미쳤지 미쳤어. 가는 길에 대야를 하나 주워서 그 안에 다슬기 녀석들을 체포해 넣었다. 대야가 처음에는 참 지저분했었는데 대야 안에 수북히 쌓인 다슬기 녀석들이 슬러지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오호라 -

 

실컷 구경한 다음에 체포한 다슬기 녀석들은 죄다 풀어주었다. 구경 잘 했다.

 

그럼 다음에는 집에 복귀하는 길에 산을 타면서 도로리와 밤을 줍기 시작했다. 밤은 이미 철이 지났는지 사람들이 죄다 훑어 갔다. 도로리는 쬐간하게 주워왔다. 내가 아무리 산에 사는 다람쥐가 먹어야 한다고 해도 듣지 않는 1인이 있어서... 어디서 보니 싹을 틔워 화분에 심는 이도 있던데. 나도 한 번 따라해 볼까 생각 중이다.

 

참 아까 점심 먹고 나서는 나팔꽃 씨앗도 아마 데려왔지. 어디에 두었더라. 예전에 얻어온 고무나무는 생각처럼 쑥쑥 자라지 않던데. 아마도 나의 미숙한 실력 때문이겠지 뭐.




_요건 어제 왕송호수 커피트레인 앞에서 찍은 해바라기 사진_



_들개미취를 코스모스라 벅벅 우기는 1인과 아옹다옹. 역시 가을에는 코스모스지._



_이건 이름을 모르는 꽃인데, 아주 화려하고 이뻐서 한 컷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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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1-09-19 18: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도토리 너무 반질반질 하게 예쁩니다^^!
고향 떠나 있으니 도토리를 못본지 몇년 된 것 같아요… 도토리 줍기도 새뱅이 사냥도 나팔꽃씨앗 채집도 잘하시는걸보니 진짜 능력자 같으세요!

레삭매냐 2021-09-19 20:37   좋아요 3 | URL
능력자는 아이고 기냥 -

도토리는 한 번 싹을 틔어서
심어 보려구요 :>

나팔꽃씨는 어디에 두었는지
못 찾고 있네요 ㅠ

청아 2021-09-19 18: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싸움구경할때 누군가 팝콘 팔면 정말 웃길거 같아요ㅎㅎ

레삭매냐 2021-09-19 20:38   좋아요 2 | URL
저도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답니다.

그런데 막상 쌈하는 내용을 보면
별 것 아니더라구요.

새파랑 2021-09-19 1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에냐님 책에 이어 이제는 도토리까지~!!

레삭매냐 2021-09-19 20:39   좋아요 3 | URL
반질반질 도토리 멋지지요.

밤은 누구 먼저 다 털어 갔더
라구요 세상에나. 역시나 선
빵이 무섭습니다.

막시무스 2021-09-19 19: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번 추석연휴는 순수 자연주의 하셨네요!ㅎ 가을 하늘 아래 해바라기꽃이 너무 인상적입니다!ㅎ

레삭매냐 2021-09-19 20:39   좋아요 4 | URL
어젯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달이
정말 환하더라구요 ^^

막시무스님도 즐거운 명절되세요 ~

해바라기 사진은 간만이라 그런지
더 반갑네요.

그레이스 2021-09-19 2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상사화 아닌가요?
모양은 그렇게 보이는데...
아니면 석산

레삭매냐 2021-09-20 09:46   좋아요 2 | URL
알려 주신 대로 검색해
보니 석산이 아닌가 추정
되네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bookholic 2021-09-20 09: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토리를 볼 때마다 누가 맨처음 도토리를 도토리묵으로 해먹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ㅎ

레삭매냐 2021-09-20 09:47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

도대체 누가 도로리묵을 해
묵을 생각을 하였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요런 신기한 내용들과 그 기
원을 모아 책으로 내도 재밌
지 않을까 싶네요.

mini74 2021-09-20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바라기 사진 참 좋아요. 씨까먹음 맛있는데 ㅎㅎ 어릴 적 동네 남자애들이 싸운다그러면 쭈쭈바 물고 구경했던 기억이 ㅎㅎ 근데 그애들도 말만 실컨하고 딱히 싸우진 않았던 기억이 나요.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

레삭매냐 2021-09-21 09:30   좋아요 1 | URL
그렇죠, 해바라기 씨 볶은 게
전 참 맛있더라구요. 자꾸만
먹게 되는 중독성이 있더라구요.

하드각이네요... 원래 입으로만
하는 쌈이 더 재밌는 것 같아요.

메리 추석입니다.

chika 2021-09-21 0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
마지막 사진 꽃은, 꽃무릇이라 알고있습니다. 우리집 마당에도 해마다 피네요 ^^

레삭매냐 2021-09-21 09:32   좋아요 2 | URL
꽃무릇인가 봅니다 :>

이명으로 석산에 붉노랑상사화
도 있네요.

마당에 매년 핀다고 하니 부럽
삽니다. 감사합니다, 치카님.
 
책이 입은 옷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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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에 나름 독서 슬럼프에 빠져 도서관에 들른 김에 이런 저런 책들을 빌렸다. 그 중에 하나가 줌파 라히리의 <책이 입은 옷>이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얇다는 것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9일이나 걸렸다. 아마 첫 번째 장만 읽다가 말아서겠지.

 

그런데 계속해서 기시감이 든다. 블로그를 뒤져 보니 역시나 4년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적이 있다. 이래서 기록이 필요한 모양이다.

 

솔직히 말해서 줌파 라히리와 나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책 읽고 나서 리뷰 쓰지 않은 경우가 드문데 그녀의 <저지대>를 다 읽고 나서 리뷰를 남기지 못했다.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을 읽고 나니 너무 현저한 차이 때문이었는지도.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저자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정체성 타령으로 <책이 입은 옷>을 시작한다. 내가 알기로 첫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는 자신의 실질적인 모국어라고 할 수 있는 영어 대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고 들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야 영어든 이탈리아어든 다 번역이라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도서관에서 소장을 위해 책의 표지를 벗겨 책에 대한 정보를 박탈해 버린다는 분석을 듣고는 공감하기도 했다. 그렇지. 서점의 매대나 인터넷에서는 내가 읽고자 하는 책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은 그 책들을 만나봐야 알 수가 있지.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책의 표지는 작가의 의중보다는 출판사의 결정을 따르는가 보다.

 

표지 때문에 어떤 작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책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하는 경우를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제임스 설터의 책들이 그렇다. 마음산책에서 나온 그의 책들 대부분은 어떤 화가의 그림을 책표지로 삼았는데 나는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에 비닐로 포장을 해서 책을 읽던 시절이라면, <사냥꾼들> 표지는 아마 펭귄에서 나온 멋진 공중전 사진을 복사해서 대체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젠 다 귀찮아져서 그냥 읽는다.

 

저자는 책을 홍보하는 띠지나 각종 수상 정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인데, 역설적이게도 아마 저자가 가장 큰 수혜를 받지 않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책에라도 첫 책으로 무려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점을 선전하지 않는 책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저자는 정말 그걸 모르고 순진하게 그런 글을 쓴 걸까. 입맛이 자꾸만 쓰다.

 

저자는 자기 책의 표지를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적어도 자신의 책을 읽어는 보았기를 바란다고도 한다. 그런데 출판은 이제 산업이 되지 않았던가. 여전히 백년 전,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가 동생이 쓴 책의 표지를 그려 주던 시대의 고루한 작업 방식을 고집하시는 건 아니겠지. 책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표지가 얼마나 작가에게 중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자신이 직접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어 책의 표지를 만들지 않는 이상 완벽한 표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돌고 돌아 결국 작가는 자신의 책으로 말할 따름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점에는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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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13 18: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헉 별 1개라니 잘 안맞았나보네요. 저는 이 책은 안읽어봤는데 ㅎㅎ 그래도 별 1개주셨는데 리뷰를 남기시는 레삭매냐님 대단합니다~!!

레삭매냐 2021-09-13 18:42   좋아요 4 | URL
이 책은 사실 그냥 자신의 일기
장 정도에 적을 만한 그런 내용
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국어 놔두고 왜 이탈리아어
를 고집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1-09-13 18: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자신의 책으로 말할 뿐이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런 책은 작가에 대한 실망으로 남을때가 많았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줄 때 왜 겉표지를 빼서 대여해주는지 ㅡ물론 이유가 있겠지만ㅡ저도 그것이 불만입니다. 책표지의 느낌도 중요한데 그것이 아쉽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9-13 18:43   좋아요 4 | URL
너무 실망해서리...

무언가 할 말들이 이것
저것 많았는데, 다 이자
뿌렀습니다.

그냥 독서 슬럼프 탈출
에 도움을 준 책으로...

아무래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서일 거라고 추측해
봅니다. 애써 만든 표지를
제거해 버리는 시츄라니요.

scott 2021-09-13 18: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적으로 격하게 동감 .🖐 ^^

레삭매냐 2021-09-13 18:44   좋아요 3 | URL
4년 전에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읽다 보니 참... 그렇네요.

mini74 2021-09-13 18: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표지에 정보가 많지요. 그리고 예쁘기도 하고요. 맨숭맨숭한 책을 빌리면 뭔가 아쉬워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1-09-13 18:45   좋아요 4 | URL
제가 예전에는 산 책들 모두
에 하나하나 비닐로 싸곤 했답니다.

무슨 열정이었는지요. 그 책들은
아직도 쌩쌩하네요.

글다가 에라 이게 무슨 짓이냐 하고
다 때려치워 버렸지요.

멋진 책 표지의 책들은 다른 버전으
로 갖고 있어도 사고 싶습니다.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리커버
가 그랬지요.

coolcat329 2021-09-13 19: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설터 저도 동감이에요. 저 그 표지들 다 싫더라구요. 근데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거 같아요. ㅎㅎ

레삭매냐 2021-09-13 20:30   좋아요 1 | URL
저는 그 출판사에서 표지갈이
할 때까지 깔거임 ㅋㅋㅋ

기회가 생기는 대로 말이죠!

표지 때문에 책 읽고 싶은 생각
이 1도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두 설터샘이니 읽습니다
주야장천.

scott 2021-09-13 20:46   좋아요 1 | URL
쿨켓님 말씀에 동감 합니다
수년전에 이 출판사가 블로그 만들며 대대적으로 SNS홍보 하기 시작할때 새책 출간 작가 만남과 편집자들 만남 이벵에 당첨 되어서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 오신 다른 분들도 표지 전부 싫어 하더 군요
줌파 라히리-제임스 설터! 모두 ㅎㅎ

이 출판 관계자들은 예술성에 무척 충만 되어 있어서 신중하게 고르고(전문가들에게 추천 받았다고 하는데)
정작 돈을 주고 사서 보는 독자들이 싫어 한다는 걸 이해 못했던 당시 상황 ㅎㅎㅎ


syo 2021-09-13 20:58   좋아요 2 | URL
억 ㅋㅋㅋㅋ 저는 설터 그 표지들 되게 좋았는데..... ☺

붕붕툐툐 2021-09-13 20: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줌파 라히리 의문의 1패군요! 저지대 읽으려고 빌려놨는데, 리뷰를 못쓰셨군요! 사람들은 다 달라서 이 세상에 이리 다양한 책들이 있나봐요!! 다채로운 세상이 새삼 재미나게 느껴졌어요😊

레삭매냐 2021-09-13 21:32   좋아요 2 | URL
다양성이야말로 인간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학교 교육에서는 예
의 다양성을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책으로 고런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라로 2021-09-13 21: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줌파 라히리 책 2권 읽었는데 좋았어요. 그런데 <저지대>는 안 읽었고요. <축복받은 집>도 아주 좋았고, <그저 좋은 사람>도 그렇고요. 그런데,,, 줌파 라히리 넘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 되었어요. ^^;; 이탈리아 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저도 들었는데 이 책이 이탈리아어로 나와서 영어로 번역되어 한글로 번역이 된 걸까요?? 말씀처럼 어느 언어에서 번역 되었든 차이를 못 느끼겠지만요.^^;;

레삭매냐 2021-09-16 13:12   좋아요 0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줌파 라히리
작가의 데뷔작이 최고라고 생
각합니다.

그 후에는 천 모 작가의 길을
따르는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네 제목이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는 걸 보니 이탈리아어로
쓴 책인가 봅니다.

서니데이 2021-09-17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오늘부터 추석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명절과 좋은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1-09-18 07: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명절 되세요.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4년 만에 다시 줄리언 반스의 <소음의 시대>를 읽었다. 그 때와 비슷한 경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새로운 깨달음도 있었다고나 할까.

 

사실 난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이하 디디로 부르겠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 그냥 한 번 인터넷으로 그의 음악들을 검색해 본 적은 있다. 아마 나와 현대 음악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은 아예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모르는 노래는 안 좋아하게 된다는 그런 편견 탓일까.

 

피아니스트 출신 디디 쇼스티(이건 미국에서 그를 부르던 별칭이라고 한다)25세 정도에 일약 소비에트 로씨야의 촉망 받는 작곡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1936년 그가 이제 막 아버지가 되었던 시절에 위기가 찾아온다. 위대한 지도자 대원수 스탈린 동지가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친견하시고, 순식간의 그의 사회적 명망은 곤두박질치게 된다.

 

바로 권력층의 통제를 받는 언론은 그의 음악을 음악이 아닌 혼돈으로 그리고 디디 쇼스티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면서 이제 막이 오른 대숙청의 시기에 언제 상트레닌부르크의 악명 높은 빅 하우스로 끌려갈지 모를 그런 신세가 된 것이다. 그의 후원자였던 붉은 나폴레옹 투하쳅스키 대원수도 독재자의 눈밖에 나 뒤통수에 총알이 박히지 않았던가. 스탈린 대원수가 지배하던 시절의 로씨야는 그런 시절이었노라고 마치 줄리언 반스 선생은 자신이 직접 목격하기라도 한 듯이 그런 서사를 이어나간다.

 

그저 음악 밖에 모르고 시대의 소음에 애써 눈감고 있던 디디 쇼스티에게 첫 번째 위기가 그렇게 닥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다 말고, 문을 두드리는 NKVD 소속 요원들에게 잠옷차림으로 끌려갔다. 몇몇은 영원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디디 쇼스티는 정갈하게 가방을 싸고, 옷도 잘 차려 입고 심문 중에 피울 담배도 세 갑 정도 준비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밤마다 층계참에 나가 자신을 잡으러 올 요원들을 불안과 초조 가운데 기다렸다. 하지만 권력층은 그를 잊어 버렸는지 그의 불안을 누그러뜨릴 연락은 오지 않았다. , 빅 하우스에 출두하기로 한 월요일 시간에 맞춰 자신의 심문관을 찾으러 갔지만 일정이 없다는 말과 자신의 심문관마저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에 디디 쇼스티는 자신의 가방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12년의 시간이 흘러 1948년이 되었다. 나치 독일과 맞서 싸운 위대한 조국 해방 전쟁에서 로씨야는 대원수의 영도 아래 승리했다. 물론 지도자의 전쟁 초기 잇단 전략적 오판으로 수많은 로씨야의 병사들과 인민들이 죽은 사실은 애써 외면되었다. 사회주의 로씨야를 대변하는 위대한 작곡가에게 조국 해방 전쟁은 구원과도 같았던 모양이다. 그는 당에서 제공하는 차량과 운전사, 별장, 오선지 그리고 부족하지 않은 식량으로 보통의 인민들과 다른 차원의 전쟁을 치렀던 모양이다.

 

디디 쇼스티의 다음 무대는 미국이었다. 로씨야 인민 예술을 대표하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자본주의 천국 미국의 경제 수도 뉴욕을 방문했다. 그가 어디서 약을 하나 사기만 해도, 곧바로 자본가들은 디디 쇼스티가 약을 산 곳이라는 문구를 약국에 내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제일 존경하는 망명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의 대면을 꿈꾸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모욕과 수치 뿐이었다. 사실 서방의 예술가들은 위대한 작곡가가 독재자에게 저항하다가 당할 순교를 기대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디디에게는 지켜야할 가족들이 있었고, 죽는 것보다 체제와 적당한 타협을 하고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는 걸 그들이 몰라주는 것이 원통하지 않았을까 싶다는 게 줄리언 반스의 생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 리뷰의 제목을 쇼스타코비치를 위한 변명이라고 지었는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디디 쇼스티의 시선을 빌어 서구에서 사회주의에 동조하지만, 그 당시까지 존재했던 어떤 예술가보다 풍족한 경제적 자유와 명성을 누린 피카소에게 겁쟁이와 쓰레기라는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과연 디디 쇼스티가 피카소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뉴욕 음악계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을 능가하는 독재자로 군림하던 토스카니니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내가 토스카니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정격연주와 암보의 대가라는 점 정도 밖에 없는데, 그야말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노예 취급했다는 지적에서는 그에 대한 오만정이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그것도 단편적인 해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디디 쇼스티는 서방행에서도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매 순간이 권력층과의 대결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았던 쇼스티에게 고난의 시간들이었다. 쇼스티에게 준비되어 있던 마지막 최악의 시기는 1960년에 찾아온다. 그 시절에는 이미 독재자도 죽은 지 7년이나 되어, 숙청의 시기에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던 이들이 복권되던 시절이 아니었나. 스탈린의 뒤를 이어 제1서기장이 된 흐루시초프(소설에서는 흐루쇼프라고 하지만 난 이렇게 표기하련다)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나치 독일의 전쟁기계에게 결정적 승리를 거둔 전쟁영웅이기도 했다.

 

스탈린이 상대적으로 세련된 방식으로 디디 쇼스티를 대했다면, 음악에 대해는 아는 게 1도 없었던 옥수숫대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시초프의 하수인이었던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포스펠로프는 거칠게 위대한 작곡가를 밀어 붙였다. 서기장의 명령으로 디디 쇼스티에게 로씨야 연방 작곡가 조합 의장직을 맡겨 버렸다. 우리의 불쌍한 디디 쇼스티에는 자신을 벌레라고 부르면서까지 의장직을 맡지 못하겠다고 저항했지만, 권력층의 강요에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 시절에도 가입하지 않았던 당에 가입하고, 정치 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너무 오래 살아서 이런 비극을 당하게 되었다는 자조적인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디디 쇼스티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1975년까지 살면서 네 번째 윤년인 1972년에도 살아 있었다. 과연 그 해에는 아무런 일도 없이 넘어갔는지 그 점이 궁금했다.

 

줄리언 반스 작가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라는 실존 인물이 겪어야 했던 수난기와 자신의 생각들을 엮어 <시대의 소음>이라는 작품을 완성시켰다. 디디 쇼스티의 내면 세계까지 아우르는 작가의 접근 방식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후대의 소설가가 사실과는 다른 문학적변용을 했는지 누가 판단할 것인가.

 

4년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소설의 초반 스탈린과 그의 하수인들과 벌이는 치밀한 생존 게임과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서사의 힘이 떨어진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대의 소음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숙명에 대한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청년 시절의 디디 쇼스티보다 중년 그리고 노년 시절의 쇼스티에게는 지켜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일 수도. 그리고 과연 예술이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어디선가 예술은 창조자와 향유자의 것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적어도 클래식 음악은 점점 더 향유자들로부터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작금의 대중음악 씬도 마찬가지로 점점 더 향유자들은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창조자 역시 아티스트인지 립싱크 퍼포먼서인지 좀 더 명확한 구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자꾸만 자신의 신세를 칵테일 속의 새우에 비유하던 문장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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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9-12 12: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디디? 어디서 들어본 이름? 했더니 고도를 기다리면에서 봤던 ㅎㅎ디디. 실존인물이군요. 옥수숫대 흐루시초프 ㅎㅎ 디즈니랜드를 그렇게 가고싶어했다지요. 너무 재미있겠어요. 전 이분책은 미술관련 책 하나만 읽어봤어요. 시대의 소음 ! 찜 *^^* 합니다.

유부만두 2021-09-12 12:48   좋아요 6 | URL
황정은 소설에도 디디 나와요.

mini74 2021-09-12 12:54   좋아요 4 | URL
오! 맞네요 *^^*

레삭매냐 2021-09-12 18:45   좋아요 1 | URL
여기서 ‘디디‘는 제 마음
대로 부른 별칭이랍니다.

로씨야 사람들은 하도 이 이름
저 이름으로 불러서요 ㅋㅋ

황정은의 디디, 책만 자알 소장
하고 있답니다.

새파랑 2021-09-12 12:3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이게 소설인지 평전인지 모호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던거 같아요. 재독하셨다니 저도 한번 재독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

레삭매냐 2021-09-12 18:46   좋아요 2 | URL
처음에는 좀 버겁게 만났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만나니 기시감
과 동시에 그전에 미처 몰랐
던 점들이 보이는 느낌이랄
까요.

분량도 부담이 없으니 재독
추천해 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9-12 13: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이 소설이 어려울 것 같아요.
실제 인물을 소설에 그려 넣는다는 것이 쉬울것 같지 않은데 이 작가는 쇼스타코비치를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해요~~
읽어 보겠습니다.
매번 거북이처럼, 천천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레삭매냐 2021-09-12 18:47   좋아요 2 | URL
거북스 ~ 좋습니다.
어쩌면 책은 그렇게 거북스처럼
읽는 게 맞는 지도 모르겠네요.

첫 번째 읽을 적에는 조금 버거
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부에서 2부를 거쳐 3부로 갈수록
느낌이 쎄~해지는 그런 추세였습
니다.

봄밤 2021-09-12 15:4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 좋아하는데, 시대의 소음은 너무 기대하고 읽어서인지 정말 실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말씀하신대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뒤로 갈수록 부족하다는 느낌이었고, 실존인물을 그대로 따와서 소설을 썼다는 점에서 그 어떤 감상이나 생각도 전개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느낌이었어요. 좋은 책이지만 더 잘 쓰일 수 있을 것 같아 너무나 아쉬웠던 소설.. 그래도 레삭매냐님 글 읽고 나니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드네요.

레삭매냐 2021-09-12 18:50   좋아요 2 | URL
저는 이언 매큐언 작가 전작을 하고
있는데, 어째 읽을 수록 자꾸만 실망
하게 되더라구요.

전 줄리언 반스 작가 팬도 아니면서
그의 책은 나오는 대로 꾸역꾸역 그
렇게 읽게 되네요. 하도 읽어서 이제
는 팬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그것 참.

저만 그런 게 아니었나 봅니다.
끄트머리가 쩜, 흐지부지되지 않았나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감히.

독서괭 2021-09-12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악과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깊이 읽기 쉽지 않은 작품인 것 같네요. 전 줄리언반스 책 세권-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읽었는데 뒤에 두권이 특히 좋았어요. 이 책은 좀 어려울 것 같아서 뒤로 미뤄둬야 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9-13 11:06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음악적 지식
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대해 문
외한이랍니다.

역사도 배경지식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36-1937년 소련의 대숙청 기간에
대한 사실 정도만 알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점심은 회사 인근에 새로 생긴 버거집을 찾았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은 끝이 없구나.

 

작은 테이블 네 개 정도가 있었는데, 세 개가 차 있더라.

 

주방에서 두 분이서 밀려 드는 주문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조리를 키오스크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해서 15분에서 20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내 주문서에 찍힌 시간은 121...

이거 오래 걸려도 너무 오래 걸린다. 결국 내가 주문한 버거를 받은 시간은 1230.

29분이 걸린 셈이다.

 

보통 밥을 후딱 먹고 나서 커피 한 잔 정도 마시는데 오늘은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버거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점심 시간에 스피드업이 좀 필요한 것 같다. 전화 주문도 받으시는지.

미리 시켜 놓고 와서 먹어야 할 듯.


아! 좋았던 점 중의 하나는 음료수 리필

스탠드가 있어서 마음 껏 마실 수가 있었다.


버거가 맛있었으니 많이 기다렸어도 그것으로 OK !!!

 

오늘 새벽부터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4년 만에 다시 읽고 있는데, 재밌다.

그 때는 아마 허겁지겁 그렇게 읽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

 

국가대원수의 위용이 전 러시아를 호령하던 시절, 독재자의 눈 밖에 난 소심한 신경증 환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디디 쇼스타코비치가 NKVD(내무인민위원회)에서 언제 자신을 잡으러 올지 몰라 정갈하게 여행가방을 싸고 옷까지 다 갖춰 입고 엘리베이터 옆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장면은 정말 서글펐다. 이런 씨퀀스를 영화로 만든다면 어떻게 영상화가 될지 궁금하다.

 

단박에 100쪽을 읽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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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9-09 17: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라지사이즈급의 콜라가 빠져있는게 살짝 아쉽습니다!ㅎ 즐건 저녁시간되십시요!

레삭매냐 2021-09-09 17:45   좋아요 4 | URL
컵은 스몰이지만 무한 리필이라
양껏 마셨답니다 냐하 ~

오늘 저녁은 부대찌개라고 하네요.

막시무스 2021-09-09 17:46   좋아요 4 | URL
부럽부럽!ㅎㅎ

새파랑 2021-09-09 17: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대의 소음! 재미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ㅇㅅ 재독이시라니 역시~!! 사진을 보니 오늘 저녁 메뉴가 고민되네요 💡 💭

레삭매냐 2021-09-09 17:46   좋아요 3 | URL
역사의 빈 공간을 파고 드는
줄리언 반스 작가의 실력이
대단합니다.

끼니 걱정은 공통인가 봅니다.

mini74 2021-09-09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분 미술 관련 책으로 먼저 접했어요. 소설가로도 유명하신 분이군요. 재독이시라니~ 급 궁금해집니다. 햄버거 ㅠㅠ 맛있겠어요. ㅎㅎ

레삭매냐 2021-09-09 17:58   좋아요 3 | URL
30분 기둘려서 꼴랑 5분만에 꿀꺼덕 !

동료들은 일부러 배를 고프게 만들어
서 더 맛나게 하려는 작전이라는 의
견을 제시했답니다 ㅋㅋ

<시대의 소음> 다시 만나니 더 재밌
더라는.

붕붕툐툐 2021-09-09 18: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배우신 분은 버거도 뜯으시는군요! 저도 수제버거 완전 좋아하는데.. 허허허허~ 퇴근길 배고파서 책은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먹는 얘기에만 신이 납니다~ 하하!!.
그리고 100쪽을 단번에 읽으시다니! 슬럼프 탈출 축하드립니다!ㅎㅎㅎ

단발머리 2021-09-09 20:58   좋아요 2 | URL
저도 수제버거 완전 좋아하는 1인이며 하여 저도 29분 기다릴 수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0쪽보다 부러운 수제버거여!

레삭매냐 2021-09-10 13:21   좋아요 0 | URL
네, 4년 만에 다시 만나는
<시대의 소음> 재미지네요.

햄바그는 참 맛났습니다.

다만 제작 시간이 넘 -

오거서 2021-09-09 1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박에 100쪽! 대박!

오거서 2021-09-09 19:44   좋아요 2 | URL
속독하시나 봅니다. 부러움 & 감탄 ^^

레삭매냐 2021-09-10 13:2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예전에 한 번 읽은
책이라 그런지 술술 읽히는
것 같습니다.

속독은 아니구요 ^^

syo 2021-09-09 2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
뭔가 용기를 주는 단어인데요? 아싸 🐷

레삭매냐 2021-09-10 13:22   좋아요 0 | URL
되짚어 보니 새로운 음식이라기
보다 새로운 식당이라고나 할까요?

갠춘한 것 같더라구요. 가오리 ~

서니데이 2021-09-11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햄버거 세트 사진으로 보는데도 맛있을 것 같아요.
맛있다면 일찍 가서 기다릴 수 있을 사진입니다.
레삭매냐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