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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입은 옷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2주 전에 나름 독서 슬럼프에 빠져 도서관에 들른 김에 이런 저런 책들을 빌렸다. 그 중에 하나가 줌파 라히리의 <책이 입은 옷>이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얇다는 것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9일이나 걸렸다. 아마 첫 번째 장만 읽다가 말아서겠지.
그런데 계속해서 기시감이 든다. 블로그를 뒤져 보니 역시나 4년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적이 있다. 이래서 기록이 필요한 모양이다.
솔직히 말해서 줌파 라히리와 나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책 읽고 나서 리뷰 쓰지 않은 경우가 드문데 그녀의 <저지대>를 다 읽고 나서 리뷰를 남기지 못했다.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을 읽고 나니 너무 현저한 차이 때문이었는지도.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저자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정체성 타령으로 <책이 입은 옷>을 시작한다. 내가 알기로 첫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는 자신의 실질적인 모국어라고 할 수 있는 영어 대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고 들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야 영어든 이탈리아어든 다 번역이라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도서관에서 소장을 위해 책의 표지를 벗겨 책에 대한 정보를 박탈해 버린다는 분석을 듣고는 공감하기도 했다. 그렇지. 서점의 매대나 인터넷에서는 내가 읽고자 하는 책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은 그 책들을 만나봐야 알 수가 있지.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책의 표지는 작가의 의중보다는 출판사의 결정을 따르는가 보다.
표지 때문에 어떤 작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책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하는 경우를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제임스 설터의 책들이 그렇다. 마음산책에서 나온 그의 책들 대부분은 어떤 화가의 그림을 책표지로 삼았는데 나는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에 비닐로 포장을 해서 책을 읽던 시절이라면, <사냥꾼들> 표지는 아마 펭귄에서 나온 멋진 공중전 사진을 복사해서 대체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젠 다 귀찮아져서 그냥 읽는다.
저자는 책을 홍보하는 띠지나 각종 수상 정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인데, 역설적이게도 아마 저자가 가장 큰 수혜를 받지 않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책에라도 첫 책으로 무려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점을 선전하지 않는 책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저자는 정말 그걸 모르고 순진하게 그런 글을 쓴 걸까. 입맛이 자꾸만 쓰다.
저자는 자기 책의 표지를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적어도 자신의 책을 읽어는 보았기를 바란다고도 한다. 그런데 출판은 이제 산업이 되지 않았던가. 여전히 백년 전,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가 동생이 쓴 책의 표지를 그려 주던 시대의 고루한 작업 방식을 고집하시는 건 아니겠지. 책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표지가 얼마나 작가에게 중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자신이 직접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어 책의 표지를 만들지 않는 이상 완벽한 표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돌고 돌아 결국 작가는 자신의 책으로 말할 따름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점에는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