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알려 줄게 라임 청소년 문학 13
케이트 메스너 지음, 이보미 옮김 / 라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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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지를 받았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당황해하는 꿈, 누구나 한 번쯤 꿔봤을 것이다. 또한 정답을 알려주는 연필이 있으면 하는 희망을 누구나 가져봤을 것이다. 시험이란 우리에게 그토록 중압감을 주는 현실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래서일까. 어린이책 중에서도 그런 소재를 다루는 이야기가 간혹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외국 동화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책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더니 그 말이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책을 읽어갈수록 소재는 비슷하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기도 하다. 어디 풀어가는 방식 뿐인가. 그들이 중점을 두는 방향이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것이 바로 문화차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에이바는 시험만 보려고 하면 앞이 캄캄해져서 공부한 것의 반도 풀어내지 못하는 아이다. 어찌보면 매사에 걱정이 너무 많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연히 보잘 것 없고 너무 평범한 연필이 사실은 마법 연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동화에서 그런 연필은 전적으로 시험을 볼 때만 사용되고 알아서 정답을 결정하기에 결국 그것으로 시험을 잘 봐서 처음엔 기분이 좋지만 차츰 불안해하는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그 연필은 문제를 써야만 답을 알려주는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문제를 쓴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알려 준다. 일종의 영혼이 알려준다고 할까. 나중에 보면 왜 그런 식으로 답을 알려주는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우리 동화와 다른 점은 여기부터다. 에이바는 그것을 시험 볼 때는 쓰지 않고 다른 질문에 더 많이 사용한다는 점. 에이바의 친구 소피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언제 할인하는지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애는 누구인지 등을 묻는 것이다. 여기 아이들은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우리처럼 크지 않기 때문에 굳이 마법 연필을 그처럼 양심을 속이는데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주제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법 연필은 요양원에 계신 외할아버지를 비롯하여 그곳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비밀을 알아내어 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쯤되면 우리와 접근 방식이 달라도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법 연필을 통해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에이바는 엄마를 건강 검진을 받게 하기 위해 평소라면 절대 하지 못할 모험 캠프에서 모든 과정을 완료한다. 아주 작은 것까지 사서 걱정을 하는 에이바가 모험 코스를 전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처음에는 엄마를 위해서였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힘든 일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마법 연필의 정체를 알고 아쉽지만 그것을 원래 있던 자리로, 아니 원래 함께 있어야 할 사람에게로 보내는 용기 또한 아름답다. 어린 나이에, 그것도 모든 것이 걱정투성이인 에이바가 외할아버지를 의연하게 떠나보내는 모습은 또 얼마나 의젓하던지. 앞으로도 걱정을 사서하는 성격은 변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무엇이 소중한지, 어떻게 헤쳐나가는 것이 현명한지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또 그렇게 성장하는 것일 테고.

 

처음에는 마법 연필로 인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양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했다. 으레, 우리 동화가 그랬으니까.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결론 또한 그랬다. 어린 독자들은 에이바를 따라가다 보면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배려하는 것을 보았으며 때로는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잔잔하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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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6-05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소재지만 사회분위기와 생각의 차이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것같네요. 이런걸 문화차이라 하는거겠죠?
오늘 덕분에 책을 두권이나 장바구니에 넣어요

봄햇살 2015-08-17 10:57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문화차이가 이런 거구나를 느꼈지요. 우리나라는 드라마에도 출생의 비밀이 꼭 들어가잖아요. 그게 있어야 이야기가 전개되고...
 
50 대 50 라임 청소년 문학 11
S. L. 파월 지음, 홍지연 옮김 / 라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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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일이 있으며 옳은 선택이란 과연 무엇인지, 혹은 옳다고 단정할 근거가 무엇인지 애매한 경우가 있다. 일례로 고기를 좋아하는 나는 채식주의자를 존경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특별한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사람에게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생각없고 야만적인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내 기준에서 보자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채식주의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일 뿐이다.

 

한때 한창 이슈가 되었던 동물 실험도 나로서는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화초를 기르다 보면 가지가 너무 위로 자라기 때문에 제대로 균형이 안 잡혀서 예쁘질 않아 화원에 물어보면 가지치기를 해 줘야 한단다. 그래서 큰 맘 먹고 가지치기를 하려다 문득 깨닫는다. 과연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가지를 마음대로 잘라도 될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한 것을 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이처럼 식물에 대해서도 배려(?)를 하면서 동물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다. 그것으로 인해 과학과 의학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것은 다분이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것이 또한 내 한계라는 것도 잘 안다.

 

이 책은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길버트가 사춘기라서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고, 그래서 사사건건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길버트의 부모는 지나치게 자식을 온실 속에서만 키우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이 나라도 그렇구나라며. 어느 나라나 부모 자식간의 갈등은 비슷한 모양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방향은 좀 다르게 나아간다. 길버트가 순전히 반항으로 시내에 나갔다가 환경보호론자인 주드 형을 만나면서 길버트의 반항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길버트가 주드 형을 만났을 때는 공원에 있는 나무를 못 베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 다음에는 동물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자 한단다. 실험실에서 고통받으며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동물들을 다음 목표로 하고 마침 길의 아버지가 그 실험실 연구원이었던 것이다. 길이 처음에는 주드 형을 돕는 일이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일이자 자신도 어떤 큰 일을 해낸다는 뿌듯함에 적극 협조하지만 마침 부모님에게 자신이 태어나게 된 경위를 듣고는 갈등한다.

 

소설은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 가든 옳고 그른 방향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작가가 지지하는 방향은 정해져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는 있지만 보편적인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길버트는 처음에 동물이 학대받으며 실험에 이용되고 있다는 주드의 이야기를 듣고 그 현장을 고발하고자 적극 가담하지만 직접 그 현장을 본 후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주드가 그 동물들을 풀어주려고 한다니까 자기 아버지가 실험하는 동물은 빼돌리려고 한다. 주드의 말대로 자기 한테 적용할 때와 남에게 적용할 때가 달랐던 것이다. 물론 주드의 말이 곧 작가의 말이기는 하지만 작가가 여기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고 생각한다. 주드의 편도, 길버트의 편도 들지 않음으로써 딜레마 상황을 잘 빠져 나갔지만 다른 실험용 동물은 사라진 반면 아버지의 쥐만 남도록 하면서 길버트의 생각을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즉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내가 하는 건 괜찮고 남은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길버트의 행동들이 분명 잘못된 것이고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셋은 그냥 덮고 만다.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해결책일까. 잘못을 해도 아버지가 그늘이 되어주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듯해서 영 불편했다. 길버트의 온갖 반항과 동물에 대한 일시적인 감정은 단지 가족의 화합을 위한 도구였던가. 뭐,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하지만 그것이 길버트의 변화를 이야기 하기에는 부족했다. 작가가 좀 더 소신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작가는 사회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기 위해 제목도 이렇게 지은 것이겠지만 책이란 그 당시의 사회를 담고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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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칠드런 - 2014 제8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6
장은선 지음 / 비룡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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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이야기지만 결코 미래가 아닌 과거의 이야기. 그러나 상황 설정으로 보나 과학의 발달 정도를 보면 분명 미래다. 단, 미래의 선택받지 못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라는 점. 그렇다면 과거, 그러니까 현재 중년 세대들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그들의 생활은 미래의 선택받지 못한 잉여들의 생활이나 마찬가지로 비참했다고 볼 수 있다. 이유없이 맞아야했고 이유가 있으면 더욱 맞아야 했으며, 아직 어른(그래야 비로소 인간으로 대우받는다.)이 아닌 청소년이라고 불리는 시기에 겪어야 했던 온갖 부당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그것을 결코 '과거'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멀지 않은 미래일 뿐.

 

문도새벽이 어느 사립고등학교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새벽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대우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시간적 배경이 멀지 않은 미래로 설정되었지만 이 고등학교 울타리 안에서만큼은 과거와 지나치게 흡사하다. 다만 새벽의 입을 통해 간간이 들려주는 등록아동들의 삶으로 미루어 밖은 과학이 발전한 미래가 맞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이미 인간의 수명을 통제하게 되면서 죽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인구를 강하게 통제하고 아이를 키우려면 엄청난 세금을 물어야 한단다. 즉 돈 있는 사람만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법을 어기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지라 그렇게 몰래 키우다 들켜서 수용시설로 오게 된 아이들을 헤이하이즈라고 부른다지. 문도새벽의 부모님은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졸지에 이런 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사람의 수명까지 통제하게 되는 미래에서도 불의의 사고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좋은 유전자만 골라서 물려받았기 때문에 시험에서 간단히 1등을 할 수 있는 새벽과 달리 이오는 정말 열심히 해서 일등을 한다. 새벽이 학교에 갔을 때 유일하게 호의적이었던 이오는 마음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가진 자의 여유 때문이었다는 것을 새벽은 나중에야 안다. 일등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성인으로 나갈 자격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생성된 자신감이 아니라 결과에 의해, 타의에 의해 얻어진 자신감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사실을 이오를 통해 보여준다. 새벽이 별다른 노력도 없이 1등을 하자 너무 쉽게 무너져버리는 이오를 통해서.

 

새벽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말도 안 되는 감옥같은 학교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밖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그들의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일지 의문스럽다. 이미 사회는 가진 자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선택받지 못한 이삼류 시민들에게는 오로지 1등만 제대로 된 성인 자격이 주어지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분명 새벽과 그 친구들이 비인간적이고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고치기 위해 애쓰고 결국 그렇게 될 것을 암시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미래가 결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청소년들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새벽의 앞날은 적어도 지금보다 나아질 수도 있겠다. 세상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으니까. 물론 잠시 후퇴하기도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어쨌든 좋은 방향으로 나아지는 것은 틀림없다.

 

새벽과 그 친구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비인간적이고 비열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가도 문득 그것이 지금 중년 세대들이 거쳤던 삶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온다. 아차, 그들이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었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윽박지르고 억압해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금 청소년들은 적어도 그때 보다는 아주 조금 나아졌으리라 믿고 싶다. 아직도 오로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기는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 않을까. 아니, 그럴 것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 본다. 부디 지금의 청소년들은 이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기를, 부모 세대가 들려줬던 이야기라고 여기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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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아이들 라임 청소년 문학 8
다마리스 코프멜 지음, 김일형 옮김 / 라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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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등장인물 중 누구를 비난할 수도 없고 이야기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회피할 수도 없으니까. 피해자는 있는데 특정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것. 그래서 사람들은 간혹 '너희들이 인생을 열심히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으로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이고 그런 사회를 만든 것은 그런 말을 하는 어른이니까.

 

마르시우도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고아원에 맡겨졌고 거기서도 노력을 하든 하지 않든 힘든 생활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이를 낳고 책임도 지지 않는 마르시우의 엄마도 문제지만 그런 상황이 될 때까지 사회에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고아원에서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다. 단지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거리의 아이들보다는 너희들이 낫다고 착각하는 어른들이 있는 한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작가가 거리의 아이들을 소재로 글을 쓰기 위해 직접 상파울루에 찾아갔다가 그곳의 참상을 목격한 뒤 브라질에서 10년 간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여겨도 될 것이다. 어쩌면 작가 소개를 먼저 읽고 책을 읽었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나서 그 나라 고위 관리자들 혹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고 정치가 안정되었다면 적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것 아닌가. 하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보면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마르시우는 비록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지만 의지가 곧고 굳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떻게든 괜찮은 사회인으로 자리잡으리라 기대한다.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거리의 아이가 되었을 때도 범죄가 될 만한 일에는 손도 대지 않는 걸 보며 계속 그러길 간절히 바랐었다. 그런 상황에서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텐데 마르시우는 그래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조차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걸 보니 소설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자립해서 어느 정도 기반도 닦고 인정도 받았는데 가구공장에서 저녁마다 클럽에 가서 술 먹고 불성실해지는 걸 보며 마르시우가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특별히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초심을 잃은 것 같아서. 그토록 어려운 상황도 잘 이겼는데 왜 이제 정신을 못 차리느냐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파울루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가진 돈을 몽땅 잃어버리고 다시 예전처럼 거리의 아이가 될 뻔한다. 하지만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마르시우라면 충분히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거리의 아이들이 되어 부랑자가 된 동생들도 제대로 된 길로 이끌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뜨듯이 동생들은 내일 다시 찾아가서 진심으로 설득하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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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과수원을 지키는 소년 라임 청소년 문학 9
윌리엄 서트클리프 지음, 이혜인 옮김 / 라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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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뱅크시의 작품을 살펴보다 발견한 분리장벽 그림. 낡은 장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마치 장벽 구멍으로 바다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장벽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채 공사장 울타리 정도로 생각하고 멋지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그것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 암담한 현실로 돌아온다.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 그래도 꿈쩍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며 기가 막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책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조금 위안이 되고 약간의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다만 그들에 의해 씌어진 책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이 쓴 책이라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말이다. 흔히 피해자의 눈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많아도 가해자의 눈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가해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피해자의 모습이라 인상적이었다.

 

  팔레스타인인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조슈아는 엄마와 함께 팔레스타인 사람을 극도록 경멸하는 리브 아저씨를 따라 이스라엘 정착촌인 아마리아스에서 살게 된다. 한창 사춘기이기도 하지만 뭔가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인지 조슈아는 리브 아저씨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비록 조슈아 아버지가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죽었지만 아버지의 평소 행동을 보면 개인의 신념과는 무관한,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총을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에서는 절대로 군복 입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리브 아저씨는 정반대의 사람이니 조슈아가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사실 나중에는 결국 화해하고 함께 살게 되지 않을까 짐작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조슈아는 우연히 땅굴을 발견해서 이웃 마을이자 원수와 같은 나라인 팔레스타인으로 넘어가지만 위기에 처한 조슈아를 구해준 팔레스타인 소녀를 직접 보고 나서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수도 없이 들었던 말, 분리 장벽 저편에는 우리를 내쫓고 죽이려고 하는 원수가 산다는 그 말이 과연 사실일까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변화의 시작은 작은 의심이 아닐런지. 자신을 도와준 릴라 가족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마리아스에 있는 릴라네 올리브 과수원을 잘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철저히 세뇌된 새아버지 같은 사람들은 절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조슈아를 도와주다 크게 다친 릴라 아버지를 위해 결국 팔레스타인으로 몰래 들어갔다 나오다가 척추에 손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가 되고 만다.

 

  과연 조슈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곳에 얼마나 될까. 어느 곳이나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있겠지만, 공격 받을 팔레스타인 땅을 구경하기 위해 언덕에 올라가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리브 아저씨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꼬인 매듭을 풀 날이 올런지 모르겠지만 조슈아와 같은 사람이 차츰 늘어가기를 기대한다. 그들 내부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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