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아이들 라임 청소년 문학 8
다마리스 코프멜 지음, 김일형 옮김 / 라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등장인물 중 누구를 비난할 수도 없고 이야기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회피할 수도 없으니까. 피해자는 있는데 특정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것. 그래서 사람들은 간혹 '너희들이 인생을 열심히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으로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이고 그런 사회를 만든 것은 그런 말을 하는 어른이니까.

 

마르시우도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고아원에 맡겨졌고 거기서도 노력을 하든 하지 않든 힘든 생활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이를 낳고 책임도 지지 않는 마르시우의 엄마도 문제지만 그런 상황이 될 때까지 사회에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고아원에서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다. 단지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거리의 아이들보다는 너희들이 낫다고 착각하는 어른들이 있는 한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작가가 거리의 아이들을 소재로 글을 쓰기 위해 직접 상파울루에 찾아갔다가 그곳의 참상을 목격한 뒤 브라질에서 10년 간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여겨도 될 것이다. 어쩌면 작가 소개를 먼저 읽고 책을 읽었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나서 그 나라 고위 관리자들 혹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고 정치가 안정되었다면 적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것 아닌가. 하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보면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마르시우는 비록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지만 의지가 곧고 굳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떻게든 괜찮은 사회인으로 자리잡으리라 기대한다.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거리의 아이가 되었을 때도 범죄가 될 만한 일에는 손도 대지 않는 걸 보며 계속 그러길 간절히 바랐었다. 그런 상황에서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텐데 마르시우는 그래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조차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걸 보니 소설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자립해서 어느 정도 기반도 닦고 인정도 받았는데 가구공장에서 저녁마다 클럽에 가서 술 먹고 불성실해지는 걸 보며 마르시우가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특별히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초심을 잃은 것 같아서. 그토록 어려운 상황도 잘 이겼는데 왜 이제 정신을 못 차리느냐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파울루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가진 돈을 몽땅 잃어버리고 다시 예전처럼 거리의 아이가 될 뻔한다. 하지만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마르시우라면 충분히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거리의 아이들이 되어 부랑자가 된 동생들도 제대로 된 길로 이끌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뜨듯이 동생들은 내일 다시 찾아가서 진심으로 설득하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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