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멋진 남자가 되는 법 라임 청소년 문학 7
벤 데이비스 지음, 마이크 로워리 그림, 서지연 그림 / 라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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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과 동시에 외국을 동경하곤 하는데 이런 책들을 읽어보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 물론 풀어가는 방식은 다를지 모르지만 청소년들이 겪는 고충은 비슷하니까.

 

솔직히 조와 같은 상황이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다. 어디나 게빈과 같은 학생이 있다고 하지만 괴롭히는 양상을 보면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괴로울지 짐작이 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대개의 아이들이 그런 상황이라면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공부를 못 할 텐데 조는 할 게 없어서 공부만 한다는 점이다. 즉 공부라도 잘 하니 다른 아이들에게 무시는 당하지 않는 것. 뭐, 보아하니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곳은 우리와 달라서 성적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진 않는 것 같긴 하지만 적어도 무시는 당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조가 하는 행동을 보면 좀 상황 파악을 못 하긴 한다. 뒷표지에 있는 것처럼 장점이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입바른 소리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고.

 

일부러 조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게빈과 한 집에서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의 마음은 어땠을까.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테지만 그래도 조는 슬기롭게 상황에 대처했다. 물론 좀 지나친 장난을 치긴 했어도 게빈이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는 게빈과 동등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게빈도 알고 보면-언제나 그렇지만-심성이 못 된 아이는 아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지. 그리고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조의 엄마는 아들의 상황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게빈의 아빠도 게빈이 어떤 아이인지, 몰라도 너무 모른다. 결국 어른들은 둘의 문제를 끝까지 모른 채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을 취한다. 현실에서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내지는 여기 청소년들도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설마, 스스로 해결하는 게 하나도 없지는 않겠지. 내가 우리의 상황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본 것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이겠지.

 

그나저나 이 나라는 청소년들에게 육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교육 방식에 놀랐다. 남녀가 한 조가 되어 아기 인형을 돌보는 방식이라니. 아기가 취하는 모든 행동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인형을 가지고 직접 느끼도록 한다는 방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모교육을 청소년 시기부터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는 제대로 교육하고 있었다. 외국 동화를 읽다 보면 그들의 생활방식을 아는 것과 더불어 이처럼 교육이나 문화에 대한 것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사소한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일지라도 작은 것에서 감동받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런 독자도 있다는 것을 작가는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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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9
쥘 르나르 지음, 전혜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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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초등학생용으로 된 <홍당무>를 읽으며 어떻게 이런 가족이 있을까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의구심은 청소년용으로 된 책을 읽으면서도 여전하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이것도 가족인가 싶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사실이야 안다. 그러나 르픽 부인처럼 그렇게 노골적으로 차별을 하는 엄마가 있을까 싶어 의아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엄마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안달하는 홍당무가 안쓰럽다. 굳이 그렇게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어린이에게 부모란 절대적인 존재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홍당무가 더 안쓰럽다.

 

흔히 소설은 주인공의 상황이 차차 나아지길 바라며 읽는데 홍당무에게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르픽 부인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끝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잠시 홍당무가 엄마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길래 앞으로는 홍당무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서 상황이 조금 나아지려니 기대했건만 이 조차도 거기서 끝이었다.

 

작가는 어린이들이 사실은 마냥 순진한 것이 아니라 악덕과 미덕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인격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자 홍당무를 창조했다고 하는데 그 의견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책을 덮었을 때 무언가 찜찜함이 남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소설에 비현실적인 환상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비록 어린이들이 선하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가족도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소설에서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홍당무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아버지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왕이면 조금 더 나아가 홍당무가 자신의 고민과 부당함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길 기대했으나 아버지도 자신의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작가는 당시의 가족 문제를 꼬집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없이 결혼하고 교양없는 아내가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했던 홍당무의 아버지를 통해 남자의 고뇌에만 집중한 듯하다. 여자 작가였다면 어떻게 풀어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프랑스 중산층 가정을 모델로 한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던 시절에 인간과 가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이 책이 나왔을 당시 사람들의 충격을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과 함께 읽었을 때 이 책의 가치와 의미가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홍당무가 가족들로부터 차별받는 모습에만 초첨을 맞추고 읽으면 처음에 내가 느꼈던 것처럼 그저 홍당무가 안쓰럽고 답답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뒷 부분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처럼 문학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또한 그래서 이 시리즈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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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가우디다 - 스페인의 뜨거운 영혼, 가우디와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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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 터키를 다녀오고 난 후 다음 여행 장소로 점찍은 곳이 스페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이냐고 묻는데 전혀 아니다. 우리집은 딱 네 개의 채널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몰랐다. 하긴 터키를 갈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난 그냥 순수하게 터키를 다녀왔을 뿐이고 다음은 스페인을 가고 싶을 뿐이다.

 

  스페인을 간다면 당연히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싶을 테고 보고 올 것이다. 스페인 여행에서 가우디를 빼놓을 수 없을 테니까. 가우디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오래 전 아이들 책을 통해서다. 간단하게 설명된 책이었지만 어찌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지 그 후로 절대 잊지 못하는 이름이 되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자연물을 본따 건물을 짓고 곡선을 이용해 지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보여주기 위한 건물이 아닌 사람이 살기 위한 집을 지을 때조차 곡선을 이용했다니 얼마나 기발한가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니.

 

  이 책을 통해 가우디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건축가가 본 건축가 이야기이므로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른 눈으로 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스페인이 가우디를 통해 얻는 관광수입을 보며 가우디라는 인물을 키워낸 스페인이 대단해 보였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니 가우디라는 인물이 있어서 스페인에게 큰 행운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작 시 당국은 카사 밀라가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내렸고(물론 가우디는 따르지 않았다.) 벌금을 내라고 했다지 않은가. 하긴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3년이나 공사를 강행한 가우디의 고집도 보통은 아니다. 나중에는 카사 밀라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여 시정명령을 취소했다고. 게다가 밀라 부인은 가우디가 죽은 후 실내를 로코코 양식으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원래 의뢰인의 취향과 주변 환경, 역사 등을 고려해서 건물을 짓는다는 가우디의 방식이 밀라 부인에게는 맞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밀라 부인의 사고가 지나치게 경직됐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후세인인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밀라 부인이 시대를 읽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누군가의 칼럼에서 우리네 서울의 건물들은 주변의 건축물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혼자만 잘났다고 우뚝 솟은 건물이 아니라 주변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가우디는 진정한 건축가가 아닐런지.

 

  터키를 다녀와서 그와 관련된 책을 꽤 읽었다. 다녀온 후 기억을 되살려가며 읽는 맛도 좋지만 다음에는 가기 전에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지금은 스페인에 대한 책을 열심히 수집하고 있다. 2년 후에 가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지인에게 터키에서 찍은 사진을 나는 무척 뿌듯하고 감동적인 기분으로 보여줬더니 그런다. '나는 그냥 책에서 보는 사진이랑 별반 차이가 없어.' 이 책에도 사진이 많이 나오지만 내가 그 사진을 보는 느낌이 딱 그만큼일 것이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 눈으로 보는 차이를 말해 무엇하랴. 여행은 보는 것 이상으로 그 곳의 공기와 바람과 햇살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내가 아직도 에페소의 바람과 공기를 기억하고 파르테논 신전의 따스했던 햇살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냥 유명하고 위대한 건축가라고만 알고 있던 가우디의 건축인생을 그가 지었던 건축물 순서대로 살펴보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재미있게 들려주는 책이다. 그래서 쉽게 잘 읽힌다. 물론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우디가 위대하긴 하지만 건축비 때문에 고민하고 고집불통에 부자들의 건물만 짓는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더 인간미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런데 오타가 많고 급하게 펴냈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편집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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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8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박상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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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작가나 작품배경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생 텍쥐페리야 워낙 유명한 작가이고 그 자신이 비행사였던 경험을 살려 다양한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파비앵과 생 텍쥐페리를 동일시하고 있었다. 파비앵이 결국 돌아오지 못했을 때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나서는 이것이 생 텍쥐페리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안심했던지.

 

  밤에 비행을 못한다면 어떨까를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조금 걱정을 한 적은 있겠으나 비행기가 다닌다면 당연히 언제나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어떤 일이든 개척할 때는 어려움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 출발해도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어딘가에서 밤을 거쳐야만 하는 상황이 되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분명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다큐로 생각되어지는 것은 왜인지. 얼마 전에도 비행기가 실종된 사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런지.

 

  리비에르는 어찌보면 냉혈한 같은 사람같지만 이런 사람이 있기에 우리가 조금씩 편한 삶을 누리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속으로는 정이 깊고 부학 직원을 무척 걱정하지만 겉으로는 엄격하고 오로지 일 밖에 모르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미워할 수가 없다. 웬지 모르게 정이 간다고나 할까.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리비에르에게 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비리에르의 실제 모델이며 헌정 문구에도 나와 있는 디디에 도라에게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 그리든 그에 대한 애정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린 왕자>가 아니고는 일부러 찾아 읽지 않았던 생 텍쥐베리의 다른 작품을 읽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 비록 파비앵의 실종이 안타깝고 신혼의 단꿈을 꾸기도 전에 아픔을 겪은 시몬의 상황이 눈물나게 안타깝지만 이건 소설이니까, 허구니까 괜찮다. 게다가 이게 생 텍쥐페리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안을 준다. 실제로 실종되었다가 나타났다고 했으므로. 이거 원 내가 소설을 읽은 건지 그의 자서전을 읽은 건지 헤매고 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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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가족의 조건 라임 청소년 문학 5
줄리아 도널드슨 지음, 김선희 옮김 / 라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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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첫 부분을 읽으면 불량한 청소년들이 개과천선을 하거나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라 생각될 정도로 소재가 좀 그렇다. 계획적으로 가출을 하는 레오와 손에 시커먼 메니큐어를 바르고 눈화장을 한 핀레이 이야기가 나오니 그럴 수밖에. 게다가 핀레이는 남자다. 두 이야기가 서로 다른 지점에서 펼쳐지지만 곧 하나로 만나리라는 것을 지금까지 읽었던 여러 책들을 통해 쉽게 짐작 가능하다.

 

다짜고짜 레오가 가출하는 장면부터 나와서 그렇지 사실 레오의 상황을 알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예술가 부모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던 레오가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으니 그 충격은 오죽할까 싶다. 보통 그런 상황이 되면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조차 힘들텐데 레오에게는 그보다 더 심한 걱정거리가 있어서 가출을 결심한다. 이모 집에서 얹혀 사는 것도, 사촌들이 은근히 괴롭히는 것도 힘든데 이모부의 이상한 눈빛은 특히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식의 결혼을 극구반대하다 결국 의절하고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나서게 되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가출이 되어버렸다.

 

사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그냥 가족을 찾아 헤메다 만나는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레오가 글래스고에서 만난 메리 할머니와 함께 며칠 지내는 상황을 보며 가슴 뭉클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길거리에서 만난 레오를 선뜻 집으로 데려와 이것저것 챙겨주는 할머니가 레오에게 감정이입한 독자의 입장에서 무척 고맙지만 그 뒤의 행동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할머니가 이상한 사람들-아마도 알콜중독자와 정신이상자인 듯한-과 어울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할머니도 점점 이상해진다는 점이다. 작가는 할머니의 병명을 이야기해주지 않지만 여러 상황으로 봐서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럴 때 핀레이가 도움을 많이 준다.

 

핀레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렇게 착한 학생인데 왜 학교에서는 계속 벌점을 받는지, 왜 엄마는 믿지 못하는지 의아하지만 핀레이가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엄마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만약 완전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핀레이를 관찰한다면 그야말로 불량학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툭하면 거짓말에 약속 안 지키고 숙제도 안 해가며 옷차림이 요상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핀레이의 마음을 알고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진작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했다면 사정이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레오는 할아버지와 사촌을 만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핀레이도 신뢰를 회복하게 되어 다행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 비록 메리 할머니는 병원에 가고 퇴원을 하더라도 계속 약물치료를 받겠지만 메리 할머니의 친절이 없었다면 레오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뒷표지에서 가족에 대해 색다른 질문을 던진다고 되어 있지만 글쎄 그 정도까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메리 할머니가 레오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생활했다면 이렇게도 가족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레오는 친척들과 함께 살게 되었으니 전혀 새로운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고 서로 걱정해주는 것이 사는 맛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레오와 핀레이, 메리 할머니는 제대로 잘 살고 있다고 얘기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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