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이다 1 - 빨간 수염 사나이 하멜 일공일삼 85
김남중 지음, 강전희 그림 / 비룡소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는 바다다. 책을 본 순간 작가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역시나, 작가 소개를 보니 선상에서 뭔가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나도 여행을 정말 좋아하고 많이 다니려고 하는 편이지만, 과연 여행을 하고 나면 내게 무엇이 남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일반인에게는 추억으로 남는 여행이 작가에게는 작품으로 남으니 하는 얘기다.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를 여행하다가 이 책을 쓰기로 했다니 작가란 고달픈 직업이기도 하지만 생각한 것을 이룰 수 있는 뿌듯한 직업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하멜에 대해 <하멜 표류기>를 쓴 네덜란드인으로만 알고 있을 뿐 거기서 더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유럽의 여러 나라가 서로 새로운 대륙을 찾는다며 각축을 벌이던 시기에 일어난 일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화에 대한 비판적인시각을 갖고 본 적은 있어도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생활했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맨날 뒷북만 치고 있으니 일반인의 수준을 못 넘나 보다.

 

  하멜이 표류하다 제주도에 발을 디딘 후 한양과 강진에서 살았지만 흉년 때문에 다시 여수, 순천, 남원으로 흩어져 살게 되는데 그 중 하멜 일행이 해풍이네 마을에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한다. 당시 마을에 외국인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신기하면서도 두려웠을 것이다. 해풍이도 그런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의 소년이었으나 아버지가 바다에 나갔다 돌아오지 않고 배를 사면서 진 빚 때문에 누나가 팔려가다시피 시집을 가게 되는 상황에 이르자 큰 결심을 한다. 백성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배고프고 힘들던 시절이었으니 해풍이네도 마찬가지다.

 

  비록 해풍이는 하멜 일행이 탈출하는 배에 몰래 숨어들어 일본으로 가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하긴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책이 이제부터가 시작임을 말해준다. 처음에 읽을 때는 해풍이가 하멜에게 돌맹이를 집어 던지고 누나인 해순이가 작은 대수를 좋아하게 되는 부분이 한참 뒤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훑어 보니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 불과했다. 처음 읽을 때는 초반부터 워낙 긴박한 상황이 펼쳐져서 중반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외국으로 나가는 일이 공적인 업무 외에는 절대 불가능했던 시절에 일본으로 갔으니 해풍이의 운명도 참 기구하다. 물론 본인의 의지였다고는 하지만 그처럼 힘들고 위험한 줄 알았다면 애초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민초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으니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해풍이는 일본으로 건나가 다행히 가는 곳마다 좋은 사람을 만나 무사히 일본에서도 하멜을 따라 네덜란드로 떠난다. 이것은 2권에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도예촌에서 만난 박 노인과 연수는 같은 조선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기무라 같은 사람까지도 해풍이에게 큰 도움을 주고 보살펴 주는 걸 보면 주인공은 역시 어딜 가든 혼자가 아니라는 평범한 원칙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분명 두 권이 전부인데도 마지막에 해풍이가 아버지가 있을지도 모르는 바타비아나 홀란드로 떠나는 이후의 이야기가 3권에서 펼쳐질 것만 같다. 문득 홀란드 때문에 벌어졌던 딸과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독일에 있는 딸이 수학여행을 폴란드로 간다기에 좀 멀리 가나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네덜란드였다. 친구들이 홀란드라고 했는데 그걸 폴란드로 알아들었다나. 이 책이 진작 나와서 딸이 읽었다면 바로 알아들었을 텐데.

 

  '김남중의 첫 해양 동화'라는 타이틀이 걸려 있던데 굳이 그렇게까지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바다를 항해하고 외국에서 모험을 하는 동화는 (내가 아직 못 읽었을 수도 있지만)처음 만났다. 그만큼 새로운 소재와 굵은 필치로 모험을 그려내는 덕분에 다양한 동화를 만날 수 있어 반갑다. 사실 초반에 만났던 <주먹곰>(처음에는 다른 제목이었으나 개정되면서 이렇게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을 읽고 작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드러나서 다소 거부감이 일었는데 그 후에 만난 작품은 모두 재미있었고 '역시 김남중'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동화판에서 남자 작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의 역할모델을 할 만한 남자 주인공이 많지 않은 환경에서 만나는 소중한 작가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여자 작가가 남자 주인공을 그리는 것과 남자 작가가 남자 주인공을 그리는 것은 차이가 있을 테니까. 물론 근거 없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까만 기와 마음이 자라는 나무 36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오원쉬엔의 <빨간 기와>가 중학생들의 좌충우돌 성장기였다면 이 책 <까만 기와>는 그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벌이는 소소한 일상을 그리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니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에 살았던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 중 하나가 강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배를 타고 이웃집에 가는 장면이나 강물 사이에서 자라는 갈대를 베는 장면 등은 도무지 연상이 되지 않아 내 멋대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한층 성숙해지고 어떤 일을 할 때도 행동이 먼저 앞섰던 빨간 기와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이제는 사리분별을 따질 줄 아는 까만 기와에서의 생활은 특별한 게 없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한때는 유마디 중고등학교를 만들고 학교를 이끌었지만 학교나 돌보는 일꾼으로 강등된 왕루안과, 기세등등한 왕치한 교장 선생님의 처지가 순식간에 완전히 뒤바뀌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해도 그런 식으로 처지가 바뀔 수 있는 것인지. 그 상황이라면 대개의 사람들은 치사해서라도 거기에 있지 못할 텐데 왕치한이 잘 지내는 걸 보면서 그게 바로 문화 차이가 아닌가 싶었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회주의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빨간 기와>에서 분명 린빙은 고등학교를 들어가지 못했는데 어떻게 까만 기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의아했었는데 책을 읽자마자 의문이 풀렸다. 그러한 의문을 품을 것을 생각한 작가의 배려라고나 할까. 여하튼 권력구도가 바뀌면서 린빙은 운이 좋게도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한때는 권력자였던 아버지의 위세를 등에 업고 친구들을 깔보았던 자오이량의 몰락을 보며 인생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기도 하고, 그런 친구를 보며 속으로 고소해 할법도 하지만 되려 친구를 돕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는 린빙과 마수이칭, 셰바이싼, 야오싼촨을 보며 어찌 보면 사람의 기본 속성은 선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어떤 커다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라면 유마디진 고등학교에 다닌 아이들은 모두 훌륭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줬겠지만 여기서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등장한다. 중간에 죄책감 때문에 학교를 옮기는 야오싼촨과의 이별 장면은, 참으로 썰렁하다. 그러나 정말 슬프다. 남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것일까. 작가 또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릿하고 아련하다.

 

  특별한 결론이 나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아니지만 삶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되는 책이다. 사실 전편격인 <빨간 기와>를 읽으면서는 요즘의 청소년 소설과 달리 밋밋하고 특별한 주제도 없는 것 같아 불만이었는데 이제는 이런 소설도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소설이 은근히 중독성이 있나 보다. 문득문득 이 소설의 장면이 기억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변신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6
프란츠 카프카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 다닐 때 국어를 참 어려워했다. 우선 왜 정답처럼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남이 해석해 놓은 것 그대로 받아들이기 싫어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아예 글을 쪼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어쨌든 국어를 못했고 국어가 어려웠다. 그런데 요즘처럼 책을 읽는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고 청소년기에 책을 안 읽은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기억하기로는 책을 읽으면 독서록을 쓰곤 했던 기억이 있는데(그것도 자발적으로!), 그렇다면 책을 수동적으로 읽은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여하튼 지금처럼 다양한 분야의 책과 고전을 열심히 읽었다면 국어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물론 책이라는 것을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도구로 삼아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이가 청소년이 된 지금 내가 이렇게 고전을 열심히 읽지는 않을 테니까.

 

  카프카의 <변신>은 전에도 읽었으나 나머지 단편들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지인이 카뮈의 <이방인>을 읽으며 어렵다고 하던데 카프카의 단편에 비하면 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문학도인 내겐 카프카의 작품들이 난해했다. 뒷부분의 해설에 나오는 것처럼 혹시 그레고르가 나중에 극적인 방법으로 다시 변신하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심지어 그레고르가 죽자 온 가족이 홀가분하게 나들이를 떠나는 장면은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다른 구성원에게 도움이 될 때만 가족이라면 그것인 진정한 가족일까. 그런데 그레고르는 다른 가족에게 그런 존재나 다름 없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때는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자 무관심해지고 급기야 없어져야 한다고 여기니 말이다. 카프카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의 인간성 상실을 이런 식으로 그리고 있다고 하는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언제나 유효한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례로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할 때는 대우받지만 그 역할에서 물러났을 때 홀대받는 가장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인격적으로 존중받기보다는 경제력이 있느냐 없느냐로 평가받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레고르의 아버지도 좋은 예가 되겠다. 아들이 돈을 벌어 올 때는 힘없고 무기력한 가장이었지만 그레고르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후부터 오히려 생기가 돌고 가족도 그레고르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씁쓸하지만 카프카가 지적한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안타까운 현실만 확인했다.

 

  다섯 편의 단편 중 그나마 <변신>은 안타깝고 가슴 아픈 결말이긴 하지만 비교적 쉬운 작품에 속한다. <시골 의사>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경우 마치 앞이나 뒤에 어떤 이야기가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중간 부분만 덜렁 보여줄 때의 그런 모호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공부 잘하는 모범샘보다는 말썽만 부리는 학생이 더 기억에 남는 선생님처럼 말이다. 카프카는 참 불친절한 작가다. 시골 의사가 왜 그랬는지, 당시 상황이 어떤지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없이 그저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판결>은 또 어떻고. 페테르부르크에 친구가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갈피를 못 잡겠다. 이야기할 게 분명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참으로 매정하게 끝내버린다. 작가란 그 시대의 모습을, 문제를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카프카는 거기에 충실한 작가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로 나이든다는 것 - 민담, 전설, 신화로 들려주는 나이듦의 여섯 가지 여정
앤 G. 토머스 지음, 박은영 옮김 / 열대림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간접체험 혹은 치유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문득 가슴으로 느꼈었다. 솔직히 그 전까지만 해도 책이 좋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깨달음'의 기쁨을 맛본 뒤로는 전적으로, 진심으로 독서의 기능을 믿는 것에서 더 나아가 찬양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물론 아주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똑같은 책을 여럿이 읽더라도 그것이 주는 느낌이나 영향은 다르다는 점이다. '적시에(right time)'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도 어찌보면 나에게 적시에 찾아온 책이 아닌가 싶다. 전반적인 내용이 적시라기 보다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의미의 적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내가 나이 든 여자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가족, 즉 원가족의 영향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성격이 다시 이해가 안 가기 시작했고, 혹시 나에게도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예전에 소그룹으로 의사소통 수업을 받으며 내면의 심리가 의미하는 바와 원가족의 영향이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변하면서 사람의 생각이나 상황도 변하는데 나는 예전에 듣고 느꼈던 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나 표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친 김에 심리학에 대한 다른 책도 찾아 읽어보았고 지금은 남편에 대해서도 다시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으니 하나의 계기가 된 책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신화나 전설, 민담(즉 옛이야기)을 통해 그 안에서 여자의 말이나 행동을 읽어내며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잘 풀어주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옛이야기는 대부분 잘 모르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상징하는 바를 조목조목 설명해주는 글을 읽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꼭 이렇게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꽤 있지만 어차피 모든 이야기는 해석하기 나름일 테니 저자의 해석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주는 내담자의 이야기가 더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몇 년 전에 엄마가 나에게 당신의 삶에 대해 한탄하셨던 적이 있다. 당시는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그렇게 한탄할 필요가 없는 일을 가지고 괜히 그러신다고 생각해서 엄마의 마음을 읽어드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엄마가 왜 그러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철이 덜 들었던 것도 그렇게 생각한 이유였을 테고. 지금은 나이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깨닫지만 당시만 해도 무엇을 하든 '나이'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엄마가 그때 참 힘드셨겠구나 싶다. 힘들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중년 후반에 와 있는데 남은 것은 하나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고 '나'를 위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을 때의 허탈감과 허무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던 것과 엄마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던 게 참 죄송하다. 이제 깨달았으니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워낙 무뚝뚝한 딸이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다.

 

  역자와 이야기하던 도중 지금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자기를 돌아보고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이야기하시던데, 정말 그렇다. 이런 책을 통해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과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책이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적 환경이 이루어졌으나 그 분들은 이미 그것을 누릴 여건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도 종종 그러신다. 젊었을 때 생각하기로는 나이 들면 책이나 실컷 보며 여유있게 살려고 했는데 책을 조금만 보면 머리가 아파서 읽을 수가 없다고(그래서 드라마를 엄청 보시는 건가). 이런 책을 읽고 더 확장해서 다양한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독서로 치유가 가능할 텐데,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나보다는 엄마에게 더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 손자 손녀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할 나이는 아니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간 기와 마음이 자라는 나무 35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부모님이 소위 '내가 어렸을 때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무척 싫어했다.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추억 정도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했지만 비교하면서 지금을 평가하고자 하는 이야기라면 처음부터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이들한테 어렸을 때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지나칠 정도로. 그리고 남편이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렸을 때는 말이야'로 이야기를 시작할라치면 조목조목 따지곤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이 책이 마치 어른이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가가 겪었던,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러나 작가는 마치 나의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작가의 말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에만 기대는 작가는 아니라고 말한다. 과거라는 지하자원을 현재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면서. 그런데 왜 나는 작가가 어린 시절의 추억에 기대어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걸까.

 

  이 책은 문화혁명의 격변기에 중학생이었던 남자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담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아동청소년문학은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읽히고자 하는 목적이므로. 그래서 대개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우리의 성장소설을 읽다가 이처럼 몇 년간의 생활을 주루륵 훑는, 특별한 사건이랄 것은 없지만 분명 인물들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읽으려니 마음은 편안했으나 심심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황선미 작가의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이 생각난다. 상당히 자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그동안 날카롭게 문제를 끄집어내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황선미 작가의 여타의 작품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모르긴 해도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묻어두고는 배길 수가 없나 보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더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혹시?

 

  린빙이 문화혁명 당시 중학생이었다면 그나마 부모님이 상당히 깨인 분이 틀림없다. 하긴 린빙의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니 공부는 해야한다고 생각했겠지. 학교를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서, 혹은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 학교에 보내지 않은 부모가 많았던 상황이 우리의 5,60년대와 비슷하다. 린빙은 학교가 멀어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추억이 쌓였을 것이다. 게다가 유마디 중고등학교를 다닌다는 것 자체로 식자의 상징이자 우러음의 대상이었으니 그들의 어깨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겠지.

 

  처음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게 된 마수이칭과 셰바이싼, 류한린과의 생활이 소소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린빙이 자신의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현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담담히 서술할 뿐이다. 특히 마수이칭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아이다. 자신의 분노를 죄없는 할아버지에게 풀며 지내는 모습은 아슬아슬하다. 혹시 저러다 무슨 사고라도 치는 게 아닌가 해서 말이다. 우리 작가의 책이었다면 분명 사고치고 여차저차하면서 뉘우치던가 새사람이 되는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마수이창은 끝까지 인간적이다. 아니, 현실에서 마주칠 수 있는 전형적인 청소년의 모습이다. 어쩌면 이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려 다녔던 문화혁명 당시의 상황도 잠시 보여준다. 어찌보면 유마디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타도의 대상이 될 수 있을텐데 아직 생각의 깊이가 얕은 학생들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당시 지식인으로 보이기만 하면 고초를 겪었다던데 유마디 중학교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마 소설 속에서 만나는 이러한 사건이나 문화가 책을 읽는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만으로도 이런 책의 존재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