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자 펠레 레인보우 북클럽 10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 지음, 정해영 옮김, 최창훈 그림 / 을파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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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만 보면 어른책 뿐만 아니라 어린이 책에서도 영미권 이외의 문학은 그다지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프랑스나 독일 문학은 접할 기회가 좀 있었지만 이 처럼 덴마크를 배경으로 하는 책들은 거의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주인공은 스웨덴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일을 하러 떠난 경우이므로 범위는 더 좁아진다.  

영화로도 나왔다지만 그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이 책을 접했다. 대상이 청소년 이상이라지만 일단 두께가 상당해서 은근히 걱정을 했다. 뭐, 항상 읽고 나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고 느끼는 것은 항상 똑같지만 말이다. 시간에 쫓기는 상태에서 마음도 불편한 채로 읽어서인지, 아니면 묘사가 거의 없이 상황만 따라가는 현대적 경향의 책을 주로 읽어서인지 처음에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스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주변의 토지를 조금씩 사들여 거대한 농장을 이룬 스톤 농장에서 일하게 된 어린 펠레는 비록 어머니가 없고 가난하지만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아버지 라세 덕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 주변의 대개의 사람들이 노동을 하며 싸움을 일삼는 것을 보며 생활하기 때문에 나쁜 길로 빠지려면 얼마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펠레는 그 길로 살짝 들어섰다가도 다시 빠져나온다. 그리고 어느 것이 옳은 길인지 스스로 판단하는 힘도 갖게 된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도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체득하고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표정도 읽으려고 노력한다. 거기에는 물론 아버지의 사랑과 믿음이 바탕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농장에 들어가서 고된 노동을 했던 펠레가 어느덧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찾아나설 만큼이 되자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기로 한다. 그렇게 펠레는 어딘가로 가기 위해 스톤 농장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사실 마지막이 가까워져도 정복자 펠레라고 이름 붙일 만한 어떤 일을 하지 않아서 참 의아했는데 뒤에 있는 작품해설을 보고야 알았다. 전부 4부로 된 작품이라니 이제 서두가 끝났을 뿐이다. 막심 고리키가 이 소설을 가리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했다는데 아마도 당시의 사회상을 잘 표현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단순히 묘사만 한 것이 아니라 약간은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원래 이런 책은 마지막 권까지 쌓아 놓고 읽어야 하는데 아쉽다. 나머지는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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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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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것이 청소년 책에서는 만나기 힘든 판타지였다는 것을. 마침 지난 해 어린이 청소년 책의 출판경향을 분석한 글을 읽었는데 거기서 지적한 것 중 하나가 어린이 책에는 판타지가 많은데 청소년 책에서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외국의 책은 판타지도 상당히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 책 중에는 정말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이 책을 읽었다. 그것도 판타지적인 요소가 상당히 들어가 있는 청소년 책을 말이다. 아, 이제 조금씩 청소년 책도 판타지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것일까. 모처럼 한 권 읽었다고 확대해석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겠지. 

이 책의 주인공이 처한 현실은 어디를 보나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든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더듬는 주인공 본인의 문제 뿐만 아니라 새어머니의 냉대와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태도를 보며 그래도 언젠가는 바뀌겠지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대개의 어린이 책에서는 그렇게 되니까.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낭만적인 세계를 꿈꾸는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비록 위저드 베이커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실이 아닌 세계라고 하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가감하지 않은 현실 그 자체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현실일지라도 솔직히 과연 이것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부모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꽤 있었다. 현실은 아름다운 일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이에게 그러한 현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커다란 오해를 끌어안고 집에서 도망쳐 나온 주인공은 매일 빵을 사 먹었던 빵집으로 가고 그곳에서 오븐 속의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되며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계를 비춘다. 하지만 이곳은 세상과 완전히 담을 쌓은 세계가 아니라는 여러 정황들 때문에 판타지 세계라고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도 없다. 어떻게든 현실세계와 연결이 되어 있고 때로는 현실이 되기 때문에 정말 판타지 세계가 맞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오븐 속의 세계에서는 새로 변하지만(물론 공간이 원인이 아니라 시간이 원인이지만) 빵집 계단대에서는 사람으로 변해있는 것을 보면 분명 판타지 세계가 맞다.  

주인공이 학교도 안 가고 그 곳에서 잠시 생활하는 동안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맞춤형 빵과 쿠키를 포장하는 일을 맡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참 많은 일을 겪는다. 또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의 힘을 기르기도 하고 세상과 마주서는 연습을 조금씩 한다. 그리고 결국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아주 귀한 선물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바로 타임 리와인더. 딱 한 번만 원하는 시간으로 되돌려 준다는, 누구든지 한 번쯤 꿈 꿔봤을 법한 그런 기계다. 그리고 상황은 두 가지로 나뉜다. 주인공이 타임 리와인더를 본인이 돌리고 싶어하는 시간대(즉 배 선생을 새엄마로 받아들이지 않는 때.)로 돌아갔을 경우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주했을 때의 경우다. 후자의 경우 비록 어려운 시간은 거쳤지만 견뎌냈다.  

그리고 작가는 마법사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만약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있다고 해도 과연 지금의 상황과 다른 선택을 할 자신이 있는가하고 말이다. 어차피 시간을 되돌렸다면 그 이후의 기억을 지우는 것일텐데, 그렇다면 동일한 선택을 했을 때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시간을 되돌린 의미가 없지 않은가. 나도 가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적이 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적이 종종 있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줄어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현재를 열심히 살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전에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더 먼 어떤 곳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현재가 마음에 안 들었고, 그래서 과거를 바꾼다면 현재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를 꿈꾸었던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현실을 회피하기만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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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위버 -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
잭 보웬 지음, 박이문.하정임 옮김 / 다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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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철학이라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철학이 굉장히 중요하며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살다가 드디어 내 안으로 돌리기 시작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무조건 다른 철학자가 연구해 놓은 이론이니 방법을 외우는 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하다가 그게 아님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허탈하던지. 

아이에게는 내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아서 철학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면 아이가 묻는다. 철학이 도대체 뭐냐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솔직히 뭐라고 이야기해 줘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살아가는 것, 주변의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얼버무린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아이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럴 때 이 책을 준다면 명쾌한 해답이 될 것 같다. 철학이란 고차원적인 것을 고민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만이 향유하는 것도 아닌,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생각하는 것의 일부라는 것을 이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다. 삶을 좀 더 깊고 풍요롭게 해 주는 철학의 묘미를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곳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깊이 생각하는 이안을 보면 그동안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하는 회의와 함께 이안의 부모처럼 항상 토론하고 내재적인 가치를 이끌어낼 줄 아는 그런 부모가 과연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면 그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감탄한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갈 생각을 했을까. 아, 그래서 '소설로 읽는다'는 표현을 했구나. 이렇게 책을 덮는 순간까지 꿈과 현실의 중간에서 방황하며 철학적 사고를 하게 된다. 두께에 놀라 과연 딸이 이 책을 집어들까 걱정되긴 하지만 꼭 한 번에 다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닌 만큼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보도록 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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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5
샬럿 브론테 지음, 이혜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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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중학생 때 읽었다. 그리고 이제 딸이 중학생이 되었는데 다시 읽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며 주인공 이름까지 잊지 않을 정도였는데 앞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 세월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제인과 로체스터의 사랑이 아련하게 기억에 남아있었고 둘의 그런 사랑을 마냥 동경하기도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런데 지금은 자꾸 분석을 해가며 읽으려고 한다. 흔히 조건이 그다지 좋지 않은 주인공 여자가 멋지고 부자인 남자를 만나서 사랑한다는 그런 종류의 연애소설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우연이 참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둥 현재의 기준으로 책을 읽으려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대적인 것을 감안하고 봐야 하는 것이듯 이 책도 그렇다. 19세기라는 시대를 생각해가며 읽어야 한다. 여자들은 화려하게 치장하고 파티에 가서 춤추고 수다 떨다가 조건이 맞는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인생의 최대 목표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제인은 그런 수동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 아마 로체스터도 그런 제인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어려서 고아가 된 후 외숙모 집에서 구박을 받아가며 지낸 어린 시절의 상처도 있었고 자선사업가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 버티던 시절도 있었으니 그런 모든 것들이 제인에게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경험으로 작용했다. 물론 로우드 학교에서 헬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남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린 시절의 상처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제인은 그 힘을 발판으로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개척해 나갈 수 있었다. 제인이 그토록 구박받고 힘들게 지내던 어린 시절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딸에게 어땠냐고 물어봤더니 재미있는데 왜 제인이 로체스터를 떠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물론 거기에 '그 당시는' 이라는 단서를 붙여가면서. 아마도 지금 삶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딸도 알고 있다.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여성의 지위가 어땠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알고 있는 것과 공감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 책의 뒷부분에 나와있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유용하다. 현재의 사고 방식과 너무 달라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론적으로나마 알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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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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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중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인 <나그네의 선물>이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한참 전에 모임에서 그 책을 이야기하자 한 명이 마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야기랑 비슷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 그 때는 그 이야기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 비슷하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작품을 직접 읽어보니 무엇이 비슷한지 금방 이해가 갔다. 이렇듯 고전은 단순히 과거에 씌어진 작품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물론 그 작가가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는지는 모른다.) 이어내려오는 것인가 보다.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집에서 표제작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이 온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이 기억력. 그런데 희안한 것은 읽으면 그제서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는 점이다. 그러니 다시 읽어도 완전히 새로 읽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혀 생소한 이야기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어쨌든 읽었던 작품도 있고 처음 읽는 작품도 있는 이 단편집을 읽으며 현재를 생각했다. 솔직히 예전에 톨스토이의 생가 사진을 보고, 또 그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읽고 선입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 부유하니까 아무 걱정없이 글을 쓸 수 있었겠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책상에만 앉아서 노동자를 이야기하고 현실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있는 단편들을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현재를 대입하며 읽었다. 이 글이 씌어진 것이 언제인데. 그렇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때로는 비유적으로 때로는 직설적으로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속도가 빨라지고 한숨이 나온다. 특히 <지옥의 붕괴와 부흥>이라는 이야기는 어쩜 현재와 그리도 똑같은지. 그 글을 읽는 순간에는 현재의 작가가 현재의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톨스토이의 이야기에 공통으로 흐르고 있는 기독교적인 사상이 그 이야기에서는 상당히 비판적으로 다뤄진다. 물론 사상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간이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아주 신랄하게, 그리고 정확하게(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비판한다. 

솔직히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종교적이라서 처음엔 그다지 빨려들지 않지만 조금만 읽다 보면 톨스토이의 작품이 왜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지 이해가 될 정도다. 특히 그가 말로만 민중을 외치지 않고 실천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기에 더 그럴 것이다. 비록 현실의 벽에 막혀서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치 성화를 보는 듯한 그림은 몇 점 안 되지만 정성이 느껴진다. 적어도 삽화라고 대충 그리지 않은 것이 느껴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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