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 이야기 사계절 1318 문고 16
크리스티앙 그르니에 지음, 김주열 옮김 / 사계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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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을 줄 때 간혹 곤혹스러운 경우가 있다. 내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그게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으며 실제로 다른 사람은 좋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별 갯수가 너무 많아 보인다. 다섯 개 중 세 개를 주는 것보다 네 개중 세 개를 주는 게 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별 다섯 개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드는 책을 만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책처럼. 

오래 전부터 제목을 들어왔기에 너무 익숙한 책인데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왔다(솔직히 전에는 표지만 바꿔서 내는 개정판을 마뜩잖아했는데 이 책을 보고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런 개정판은 얼마든지, 아니 꼭 나와야 한다고). 그래서 마치 이제 막 나온 책을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지금까지 읽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잔이 우연히, 정말 우연히 피아노 독주회에 갔다가 클래식의 세계에 빠지는 이야기만 있다면, 이처럼 재미있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있고 가족의 사랑과 신뢰, 그리고 남자 친구와의 풋풋한 사랑이 있다. 그렇다고 남자 친구와의 사랑이 우리가 생각하듯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의 사랑과는 또 다르다. 아마도 남자 친구가 알고 보니 굉장한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다는 설정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으나 그 보다는 잔이 기억 속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아빠의 자취를 따라가는데 피에르가 상당한 도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아 그리워하던 잔에게 그보다 더 소중한 소리를 남겼다는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름답다. 또, 그동안 잔의 가족에게 아빠에 대한 추억은 묻어두어야만 하는 고통이었지만 피에르의 도움으로 이제 드러내놓고 그리워해도 되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이게 모두 피에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들이다. 

이 책은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두 사람이 각자 자기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이 잔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서술하는 책이라면 다른 책인 <내 여자친구 이야기>는 피에르가 잔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하나의 사건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니 서로 다른 시각으로 보여지고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거기에 크게 얽매이지는 않게 된다. 잔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사실 남자 친구 이야기보다 잔의 가족사에 더 눈길이 갔다. 저자가 애초부터 밝혔듯이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인물 중 일부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나머지는 실존인물이다. 즉 저자가 클래식 음악에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저자는 잔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런 여타의 주변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 보다는 두 청소년의 진솔하면서도 열정적인 삶이 더 다가왔다. 이제부터 청소년이나 책을 좋아할만한 사람에게 줄 선물은 무조건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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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7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옥용 옮김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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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도 먼 변신. 카프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고 실존주의 작품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던 작품이다. 특별히 문학작품과 친해질 계기가 있지도 않았으니 어렵다고 하는 작품은 애초부터 나와 인연이 없겠거니 했다. 그런데 우연히 그 기회가 왔다. 아니, 내가 선택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읽어보랴 하는 심정으로.  

그런데 역시 쉽지 않다. 만약 이것을 청소년 시기에 읽었더라면 과연 어느 정도 이해했을까 싶을 정도로. 딸도 읽더니 어렵단다. 그 말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읽고 나서 잔상이 많이 남는다. 딸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랬다. 특히 그레고리가 처한 상황이나 심경의 변화가 읽을 때보다 읽고 나서 다시 곱씹을 때 더 와닿는다. 

굳이 카프카의 성격이 어땠고 그가 실존주의의 선구자라는 것을 모르더라도 여타의 작품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잃어버린 채 오로지 일만 하는 인간, 목적도 없고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아니 행복을 이루겠다는 희망을 잃어버린 듯하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아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단순히 비판적이라는 말로 모자란다. 오죽하면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벌레로 변신했다는 극단적인 설정을 하면서까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을까.  

가족의 변화 또한 의미심장하다. 처음에는 마치 그레고리가 없으면 가족이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만(그레고리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레고리가 빠짐으로써 다른 가족이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에 그레고리는 다시 인간으로 변하고자 하는 꿈도 포기하고 벌레로나마 살아가는 삶도 포기했을 것이다. 그는 단순히 도구로 취급되었던 것일까. 

여하튼 이 책에서는 <변신>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들이 들어있다. 다른 단편에서는 유머가 느껴지기도 한다. 유쾌하고 통쾌한 유머라기 보다 약간 씁쓰레한 유머라고나 할까. 카프카를 제대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작은 문고본이라 들고 다니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가격이 착하다. 안 그래도 모든 것이 오르는 판국인데(월급만 빼고) 내리는 것도 있으니 반갑다. 아, 나도 이제 카프카의 작품을 읽었다. 드디어!

 

 


책을 읽고 간단하게 해볼 수 있는 독후활동지다. 마지막에 실존주의에 대해 알아보고 거기에 해당하는 작가와 철학자를 알아보아도 좋겠다. 특히 우리나라 문학가도 알아보면 나중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면 실존주의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은 여기서도 통한다. 아니, 백문이불여일독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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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0
김진영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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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과 열네 살은 비록 한 살 차이지만 처한 현실은 천양지차라고 한다. 열세 살은 초등학교에서 가장 어른으로 대접받고, 열네 살은 중학교에서 가장 어린이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아이를 보니 그 말이 실감났다. 그래서 유독 열세 살에 대한 책과 열네 살에 대한 책이 많은가 보다. 열 살이 넘어가면 십대라고 우기며 다 큰 척 해보지만, 열네 살이 되어야 이제 진짜 어린이에서 벗어나 청소년이라는 타이틀을 건다.  

그동안 어른은 완전하다고 생각하던 아이들도 이제 서서히 어른도 그저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리가 엄마의 불완전을 인정하고 엄마에게 무조건 의지하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비록 방법이 매끄럽지 않기 때문에 엄마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엄마도 조금씩 하리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면서 딸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무조건 돌봐야만 했던 대상에서 이제 서로 의지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게 바로 성장이 아닐런지. 

그렇다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편안하게 성장하지 않는다. 하리만 보더라도 그동안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던가 말이다. 좋아하는 남친과 몰래 데이트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허상에 불과한 신기루였다는 것을 깨닫는다(그러나 그 감정만은 소중하게 간직한다. 자신의 감정까지 신기루는 아니었다). 또한 남에게 끌려가다 자칫하면 나쁜 길로 빠질 뻔하지만 그곳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면서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는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가장 원하는 게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다. 한창 친구에게서 모든 의미를 찾는 나이라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를 사귀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하지만 스스로 느끼기 전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하리처럼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 속에 빠져들게 된다. 다행인 것은 하리 엄마와 혜주가 같은 도벽증이라는 것을 알고 혜주를 보며 엄마를 이해하고 자신도 빠져나올 힘을 얻었다는 점이다. 독자의 욕심 같아서는 혜주도 잘 해결되었으면 싶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안 그래도 뒤에 가서는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어 정신 없는 판에 혜주일까지 해결되었다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니까. 

한창 비밀이 만들어지는 나이에 다양한 비밀을 설치하고 그 사이사이에 하리가 좌절이라는 구멍으로 빠지게 되는 원인인 도벽과 거짓말을 적절히 배치해서 재미있으면서도 묘한 긴장을 느끼게 했다. 하리의 도벽은 어떻게, 누가 고쳐줄까 궁금했는데 그건 바로 하리 자신이었다. 사람은 남의 잘못을 보고 그것을 거울삼아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 하리는 비록 주목받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개선시킬 줄 아는 힘이 있는 아이였다. 많은 청소년들이 하리처럼 그런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 

언젠가 큰 아이와 도벽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도둑질을 해서 나쁘다고 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 부족한 뭔가가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도 그 사실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러나 자기 반에도 도벽이 있는 아이가 있다는데 그 친구는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객관적으로, 이론상으로는 알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얘기다. 이게 어디 딸만 그럴까.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딸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감정을 가지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이런 책을 간접경험 삼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지.  

참, 이 책은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재형으로 쓰여졌다. 그래서인지 마치 현재 내가 인물들을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더 객관적인 입장이 되는 듯했다. 이래저래 독특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뭔가 묵직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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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규환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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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시리즈의 책을 꾸준히 보고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다. 이미 청소년 시절에 읽었어야 할 책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기에 지금 만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읽는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고전의 맛을 알겠다. 아, 이래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꾸준히 읽히는구나, 이래서 고전이라 부르는거구나를 느낀다. 때로는 이걸 읽지 않았으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싶은 책도 있다(내 경우 <돈키호테>가 그랬다). 읽지 않으면 그 책이 얼마나 가치 있는 책인 줄 어찌 알겠나. 그러니 이런 생각은 책을 읽은 후에만 가능하다. 이렇듯 내가 직접 느꼈기에 딸에게도 자꾸 권한다. 그러나 내가 당시 이런 책을 힘들어했듯이 딸도 어려워한다. 그래도 가끔 하나씩 빼서 읽는 것을 보며 다행이다 싶다. 

이 책도 제목을 대면 자동으로 작가가 튀어나오는 책 중 하나다. 그런데 내가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던가. 사실 처음엔 조금 읽은 줄 알았다. 그러다 포기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걸 보니 안 읽었나 보다.  

러시아 상트페레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지금도 그 거리가 보존되어 '라스콜리니코프 거리'라고 불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간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뒷부분에 나와 있는 '제대로 읽기' 코너에 실려있다. 그러니까 나 같은 문학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제격인 셈이다. 물론 딸도 이 부분이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단다. 한편으로 작품은 누군가가 설명해주고 해석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말도 일리는 있으나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공식이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즉 나는 이 부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내게는 아주 유용한 정보였다. 

농노제가 폐지되어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와 궁핍하게 사는 모습은 솔직히 제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그 나라의 풍습과 생활방식을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우울증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 당시에 우울증이란 말이 있었던가. 아무튼 자신의 신념대로 살인을 저질렀다지만 그게 꼭 옳은 방법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만약 그가 리자베타를 죽이지 않았다면 이처럼 풍부한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선한 리자베타를 그 자리에 둠으로써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이론을 회의하게 만들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과 심리전을 벌이며 나누는 대화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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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도둑 우리문고 21
제리 스피넬리 지음, 김선희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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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으면 마음이 참 안 좋다. 딱히 미운 등장인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게다가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은 전쟁을 그리는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넘어 무력감마저 느끼게 한다. 아이들이 우리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냐고 물어보면 전쟁은 그렇게 간단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하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전쟁을 겪고 있으니까. 게다가 전쟁 당사국의 의지보다 다른 것(근현대의 전쟁을 보면 이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이 더 큰 영향을 주니까.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 유대인과 장애인 및 거리의 부랑자는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어 학살이 자행되던 시기를 어느 꼬마의 시선에서 보여주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은 건지 아니면 부모가 모두 죽었는지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조차 모른 채 살고 있다. 그것도 고아원에서도 아니고 거리에서. 그러니 배워야 할 기본적인 것조차 배우지 못한 채 눈치로 상황을 파악한다. 대개 이런 이야기는 적어도 주인공의 이름은 지어주는데 여기서는 그 마저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깨닫는데 시간이 덜 걸린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을 저절로 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저절로' 아는 것은 없다. 모두 누군가가 가르쳐준 것이다. 그런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버려져서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이 혼자 살게 된다면 그 아이의 이름은 누가 지어줄까. 정말 아무도 없다. 그러니 남들이 '도둑이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게 자신의 이름인 줄 알았을 게다. 이 얼마나 섬뜩한 설정인가.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유리가 주인공의 이름을 지어주고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들려주자 그제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 듯 기뻐한다. 그렇게 유리에게 미샤라는 이름을 선물로 받고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배워간다. 그러나 어린 미샤마저도 유대인이라면 무조건 안 좋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어떻게? 그게 바로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 속에서 배우는 선입견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그렇게 믿어버리는 선입견. 어떤 것이 잘못되면 무조건 유대인을 의심하고 그러다 진짜로 믿어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집단. 그러나 난 여기서 왜 유대인에게 무조건 너그러운 마음을 못 갖는 걸까. 그건 아마도 당시의 상황은 분명 유대인이 아무 잘못없이 오로지 나치의 잘못이었다지만 그보다는 지금 그들의 행태를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일 게다. 자신들이 이유 없이 고통을 당해보았으면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고통을 주면 안 되는데. 마치 호된 시집살이를 산 며느리가 나중에 똑같은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과 비슷하다. 그게 바로 '환경탓'이라는 것일까. 

여하튼 미샤는 정말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노인이 되어 손녀를 통해 간신히 정상적인 삶을 느낀다. 만약 미샤가 전쟁이 끝난 후에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 정도로 많은 일을 겪었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정말 마지막에서야 '정상'을 경험한다-우울한 미샤의 삶을 함께하는 동안 나도 우울해졌다. 그러나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게 더 우울하게 만들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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