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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 (문고판) ㅣ 네버엔딩스토리 10
김진영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열세 살과 열네 살은 비록 한 살 차이지만 처한 현실은 천양지차라고 한다. 열세 살은 초등학교에서 가장 어른으로 대접받고, 열네 살은 중학교에서 가장 어린이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아이를 보니 그 말이 실감났다. 그래서 유독 열세 살에 대한 책과 열네 살에 대한 책이 많은가 보다. 열 살이 넘어가면 십대라고 우기며 다 큰 척 해보지만, 열네 살이 되어야 이제 진짜 어린이에서 벗어나 청소년이라는 타이틀을 건다.
그동안 어른은 완전하다고 생각하던 아이들도 이제 서서히 어른도 그저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리가 엄마의 불완전을 인정하고 엄마에게 무조건 의지하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비록 방법이 매끄럽지 않기 때문에 엄마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엄마도 조금씩 하리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면서 딸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무조건 돌봐야만 했던 대상에서 이제 서로 의지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게 바로 성장이 아닐런지.
그렇다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편안하게 성장하지 않는다. 하리만 보더라도 그동안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던가 말이다. 좋아하는 남친과 몰래 데이트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허상에 불과한 신기루였다는 것을 깨닫는다(그러나 그 감정만은 소중하게 간직한다. 자신의 감정까지 신기루는 아니었다). 또한 남에게 끌려가다 자칫하면 나쁜 길로 빠질 뻔하지만 그곳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면서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는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가장 원하는 게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다. 한창 친구에게서 모든 의미를 찾는 나이라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를 사귀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하지만 스스로 느끼기 전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하리처럼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 속에 빠져들게 된다. 다행인 것은 하리 엄마와 혜주가 같은 도벽증이라는 것을 알고 혜주를 보며 엄마를 이해하고 자신도 빠져나올 힘을 얻었다는 점이다. 독자의 욕심 같아서는 혜주도 잘 해결되었으면 싶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안 그래도 뒤에 가서는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어 정신 없는 판에 혜주일까지 해결되었다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니까.
한창 비밀이 만들어지는 나이에 다양한 비밀을 설치하고 그 사이사이에 하리가 좌절이라는 구멍으로 빠지게 되는 원인인 도벽과 거짓말을 적절히 배치해서 재미있으면서도 묘한 긴장을 느끼게 했다. 하리의 도벽은 어떻게, 누가 고쳐줄까 궁금했는데 그건 바로 하리 자신이었다. 사람은 남의 잘못을 보고 그것을 거울삼아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 하리는 비록 주목받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개선시킬 줄 아는 힘이 있는 아이였다. 많은 청소년들이 하리처럼 그런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
언젠가 큰 아이와 도벽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도둑질을 해서 나쁘다고 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 부족한 뭔가가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도 그 사실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러나 자기 반에도 도벽이 있는 아이가 있다는데 그 친구는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객관적으로, 이론상으로는 알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얘기다. 이게 어디 딸만 그럴까.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딸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감정을 가지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이런 책을 간접경험 삼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지.
참, 이 책은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재형으로 쓰여졌다. 그래서인지 마치 현재 내가 인물들을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더 객관적인 입장이 되는 듯했다. 이래저래 독특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뭔가 묵직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