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집지킴이야! - 집지킴이 우리 문화 그림책 16
최미란 글.그림 / 사계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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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미란 작가의 그림은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이 책 역시 처음 제목이 나오기 전까지 세 장면에 걸쳐 이야기가 펼쳐진 다음 비로소 제목을 만날 수 있다. 대개 겉표지를 넘기면 속지가 나오고 바로 제목이 나오는데 그곳에 이야기를 넣기도 하고 그냥 본문과 연관된 무늬의 간지를 넣는데 이 책은 그 사이에 이야기가 꽤 많이 있기 때문에 거길 읽지 않으면 갑자기 이게 뭔 소린가 할 만하다. 처음엔 제목이 없다는 것도 잊은 채 무심코 읽다가 제목을 마주치기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심심해서 어쩔 줄 모르는 잡귀 세 마리(딱히 동물이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람은 아니니 마리라고 하자.)가 하얀 종이에 덩그마니 놓여 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가 뛰어오며 막둥이네 집에 잔치가 열렸다며 신나게 그 집으로 가려고 한다. 자신들은 잡귀라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며.

 

  아직도 초가집이 대부분인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 멀리 보인다. 뒷동산은 낮아 보여도 꽤 깊은지 검은빛을 띠고 있다. 쓸고 닦고 하는 집을 찾아 보니 오른쪽 마지막 집이 눈에 들어온다. 옳지, 이 집이구나. 다음 장을 넘기니 그 집이 줌인 되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길에는 막둥이네 집에 오는 듯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러니까 오늘은 막둥이 첫번째 생일, 즉 돌이다. 지금이야 집에서 하지 않고 뷔페에서 하지만 예전에는 모두 이렇게 집에서 잔치를 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잡귀들을 어떡하나. 원래 잡귀가 집에 들어오면 식구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집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데.

 

  그럼 이제부터 잡귀를 쫓는 지킴이들을 만나볼 차례다. 먼저 대문을 지키는 문전신이 막아 보지만 약삭빠른 잡귀들은 용케 피해서 집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잡귀가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곳마다 그곳을 지키는 신들이 나와서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보여준다. 지금이야 외양간이 있는 것도 아니요, 장독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화장실이 따로 떨어져 있지도 않으니 이 책의 모습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것은 오직 책에서만 본 모습인 아이들도 꽤 있을 것이다. 사실 아직 이처럼 살고 있는 집도 꽤 있을 텐데 말이다.

 

  요즘 아이들 중 우리나라에 어떤 신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껏해봐야 삼신 할미나 <똥떡>이라는 책 덕분에 알게 된 측간신 정도가 아닐까 싶다. 거기서 조금 더 아는 이라면 조왕신이나 성주신을 알 수 있을 테고.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신들이 많은데 주거 형태가 바뀌고 갑자기 삶의 방식이 현대화 되는 바람에 그동안 이어져 오던 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사라졌다. 거기에는 그것을 이어주지 못한 지금 3,40대 부모인 우리의 잘못이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때는 미신이라고 치부하던 것들인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전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많은 신이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자,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래야 지금까지 이어져오던 전통이 사라지지 않고 후대로 전해질 것이다. 그렇게 의무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이 책을 보면 재미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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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극이 사라진 날 평화그림책 4
야오홍 지음, 전수정 옮김 / 사계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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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한 번 읽으면 웬만큼은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림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꼼꼼하게 보는 편이다. 그러면서 아, 이런 느낌의 책이구나를 마음속에 새기곤 한다. 그런데 내 기억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학교에서 이 책의 원화 전시회를 하기 위해 다른 학교에서 보내온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도와줘서 이젤 스무 개를 쉽게 설치했다. 그러자 이제 어떤 내용인지 설명을 해달란다. 뭐, 읽었던 책이니까 그거야 쉽지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어느 강에서 경극 배우가 매일 연습하는 장면을 소년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보다가 어느 날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전쟁이 나서 떠난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강가에서 기다렸지만 그 배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배우가 경극에 초대해서 소년은 구경을 갔다 온 후 그 배우를 만나지 못했다는 내용이라며 설명을 해주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 날 각 액자 아래에 글을 일일이 써서 붙여 놓았다. 그랬더니 한 선생님이 "글을 함께 읽으니 그림만 볼 때보다 내용이 확 와닿네요." 한다. 한 번 읽었는데 어쩜 그렇게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그래서 자세히 다시 보고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액자에 붙이는 글을 쓰느라 다시 한번 읽었으나 누군가에게 내용을 제대로 전달할 자신이 없다.

 

  여하튼 경극 배우가 소년의 집에 머물게 되면서 배우가 준 초대권으로 처음 경극을 본 감동을 들려준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나 그 배우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그 사이에 경극의 화려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이야기를 전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경극 배우와 전쟁의 연관성이 약한데 마치 제목부터 전쟁 때문에 경극 배우가 어찌 되었다거나 경극이 아예 공연되지 못했던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둘의 관계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는데 제목에서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혼란스러워서 정리가 안 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경극 배우가 전쟁의 홍보 수단으로 경극을 이용하려는 것에 찬성하지 않고 아예 떠나버렸으니까. 그러나 이 부분은 나중에서야 기억에 자리잡았기에 그런 오해를 했다.

 

  이 책은 한중일이 공동 기획한 평화그림책의 하나다. 중국과 우리는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을 갖고 있다.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화 했고 중국은 일부 땅이긴 하지만 침략을 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중국 이야기가 쉽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일본 작가의 그림책은 어떨까.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며 평화를 이야기할까 자못 궁금하다. 아니,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을 어떤 식으로 바라볼까 궁금하다. 우리 작가와 중국 작가가 쓴 평화그림책이 나왔으니 이제는 일본 작가의 책이 나올 차례가 아닐런지.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로 물꼬를 틀지 기대된다. 2차 세계대전으로 자신들이 핵폭발의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만은 아니길 빈다. 피해를 입긴 했어도 적어도 그게 먼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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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날 - 오늘의 일기 보림 창작 그림책
송언 글, 김동수 그림 / 보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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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코 책장을 넘기니 그림일기가 나온다. 딱 세 줄의 글과 함께 제목이 있다. '내 이름은 구동준'과 '내 이름은 김지윤'. 아, 두 명의 일기가 한 면씩 나오는 구성이구나. 그러면서 천천히 읽어나간다. 입학 통지서를 받고 식구들이 어느새 입학을 할 나이가 되었느냐며  기특해 하는 장면. 아이가 처음 입학할 때는 특히나 긴장되고 걱정이 앞섰던 때가 떠오른다. 여전히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노는 동준이. 딱지치기, 구슬치기, 공차기를 했단다. 아직도 구슬치기를 하는 아이들이 있구나. 한때 구슬과 딱지가 유행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지윤이는 병원 가서 홍역 예방주사를 맞는다. 시력 검사도 하고. 맞아, 홍역 예방주사 확인서가 꼭 있어야 했지. 첫 아이 때는 학교 가기 전에 시력 검사를 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시력 검사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밖은 추운 겨울 날과 설날을 지내고 예비 소집일이다. 학교 선생님을 처음 봤는데 무섭단다. '입학실 날엔 코 닦을 손수건을 꼭 달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읽다가 퍼뜩 정신이 든다. 앗, 요즘엔 코 닦을 손수건 달고 다니지 않는데, 뭔가 이상하다.

 

  그제야 그림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오른쪽 그림은 요즘의 학교가 맞는데 왼쪽 그림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아, 이제야 그림이 제대로 들어온다. 통장 아저씨가 통지서를 전해주는 그림에는 연탄을 실은 리어카가 지나가고, 오른쪽 그림에는 아파트가 있어 경비실 아저씨가 입학 통지서를 갖다 준다. 여기서부터 오해가 생겼던 것이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집이 있으니 왼쪽 그림에서 연탄을 보고도 그냥 넘겼던 듯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영화 포스터가 지금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고 보니 왼쪽은 지금의 아이들 기준으로 보자면 옛날 입학하기 전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전형적인 오늘날 여자 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다리가 있는 텔레비전이 보이기 시작하고 한 방에서 엄마는 바느질하고 형은 공부하고 한쪽에서는 실뜨기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지금도 이렇게 사는 집이 있기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나 자세히 보니 그 옛날의 증거들이 속속 눈에 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다리 달린 텔레비전이나 원기소, 오래된 잡지가.

 

  오늘날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유치원을 졸업하지만 그 옛날에는 유치원이라는 과정이 없어서 마냥 놀기만 했었지. 간혹 공부에 관심 있는 부모들은 학교에 가기 전에 간단한 한글과 숫자 공부를 시키곤 했으나 그마저도 안 하는 집도 있었다. 그래도 동준이네는 형이 있어서인지 한글도 가르쳐주고 사과를 깎아서 숫자도 알려준다. 드디어 가방을 사는 장면. 왼쪽 그림을 보니 현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연히 들어온다. 지금은 영화 세트장이나 시골 재래시장에나서 볼 수 있는 가게 모습이다. 반대로 오른쪽은 여자 아이답게 온통 분홍색으로 치장된 방에 역시나 분홍색 가방이 놓여있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입학날이다. 이제 한쪽은 옛날 모습이고 다른 한쪽은 현재 모습이라는 걸 알기에 차이를 알 수 있다. 추운 날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치르던 모습과 6학년들의 손을 잡고 실내에서 치르는 오늘날 입학식의 모습이.

 

  다른 반은 예쁜 여자 선생님인데 자기네 반 선생님은 할아버지라 싫다고 투덜대던 지윤이가 그래도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줘서 괜찮다고 한다. 나 또한 나이가 많아도 그림책의 가치를 아는 괜찮은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준이의 꿈은 선생님이란다. 뭐, 그 시절 대부분 아이들의 꿈이 선생님이었으니까 특이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지윤이도  선생님한테 칭찬을 들었단다. 짝꿍도 칭찬을 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 보다 잘한 점을 찾아내서 칭찬하는 좋은 구동준 선생님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왼쪽에서 펼쳐지던 이야기가 이 시점에서 오른쪽과 절묘하게 만난다. 마치 다른 시대에 같은 사건을 겪는 평행이론처럼. 지금까지 잔잔하게 읽혔던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이 갑자기 커다란 이야기가 되어 나타났다. 단순히 두 시대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는 책 그 이상의 재미와 감동이 밀려왔다. '참 좋은 구동준 선생님.'이라는 단 한 문장에 말이다. 전혀 다른 것을 설명하지 않지만 이 한 문장에 모든 의미가 들어있고 구성을 이렇게 잡은 이유가 한번에 이해된다. 한 문장의 힘이 이렇게 클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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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 몽골 땅별그림책 7
바아승수릉 벌러르마 지음, 어트겅체첵 담딘수렌 옮김 / 보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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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둘째 아이 친구가 생각난다. 다섯 살 때 이곳에 와서 열두 살 때 다시 몽골로 돌아갔다. 당시 둘째와 함께 책 읽고 간단하게 글쓰는 수업을 했는데 이 책이 그 때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우리는 몽골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그 친구는 자기네 나라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서 읽히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을 텐데. 

  얼마전에 다큐멘터리로 보았던 몽골인들의 생활모습이 떠오른다. 드넓은 초원을 무대로 유목생활을 하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여서 부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고될까 싶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도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 볼이 빨갛고 손이 텄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행복의 기준이 모두 다르고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우리네 기준으로 그들의 삶이 고달플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젊은 사람들은 울란바토르로 떠난다고 하니 그들의 생활이 결코 녹록치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여하튼 이곳에 있는 내가 보기에 몽골인들의 유목생활은 참 자유로워 보인다. 질루는 첫 번째 집인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두 번째 집인 요람에서 잠깐 머문 다음 세 번째 집인 게르에서 많은 시간을 지내지만 네 번째 집인 지구에서 쑥쑥 자랄 것이라며 자연과 하나되는 생활을 이야기한다. 

  질루가 태어나서 돌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몽골인들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다. 계절마다 이동하는 모습이며 설날의 모습, 돌을 맞이했을 때의 모습으로 미루어 몽골인들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같은 동양이라 그런지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다. 몽골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림에 나오는 엄마의 모습이 몽골인들의 전통적인 의상인지 아니면 그 중에도 특수한 계층에 속하는지를 알 수 없어 좀 답답하긴 하지만 그들의 생활모습을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특히 추운 겨울에 새끼 양을 밖에서 키울 수 없어 게르 안에 데려다 놓고 우유(양젖이겠지만 편의상 이렇게 불러야겠다.)를 주는 모습이 독특하다. 아마 이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것은 자연에서 얻었겠지. 이렇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주어진 자연을 이용하며 사는 몽골인들의 모습이 잘 나타난 책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전통 관련 그림책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느꼈던 다른 문화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때로는 안타까움을 그들도 느끼겠지. 이렇게 그림책이 타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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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 대소동 자연그림책 보물창고 7
조너선 에메트 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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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학교에 하와이에서 오신 원어민 선생님이 계셨다. 한번은 단풍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는 낙엽이니 단풍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니 이해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낙엽이 지지 않는다는 상상을 하는 게 더 힘드니 서로 같은 입장일 것이다. 

  가을이면 너도나도 단풍 구경을 가느라 난리다. 나무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단풍 든 산의 모습의 예쁜 건 사실이다.

  청설모 쭈르는 아마도 가을을 처음 맞이하나 보다. 떡갈나무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면서 그 나무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가을이 되어 서서히 변하는 나무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니 말이다. 나무는 어느 순간부터 물을 빨아들이지 않고 나뭇잎을 떼어낼 준비를 하는데 그것을 쭈르가 눈치채고 깜짝 놀란다. 그래도 쭈르는 떡갈나무에 관심이 많긴 했나 보다. 안 그랬으면 나무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을 테니까.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걸 보며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쭈르가 동생 쪼르와 함께 나뭇잎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려고 애쓰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서 쭈르의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결국 엄마의 설명을 듣고 나무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쭈르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신나게 논다. 나뭇잎은 해가 졌다가 다시 뜨는 것처럼 잠시 떠나 있을 뿐이라는 엄마의 말과 마침 노을의 빛깔이 나뭇잎 색과 같은 것을 확인한 쭈르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해한다. 둘의 설명이 묘하게 어울리는 게 나도 갑자기 공감이 확 된다. 그 어떤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가며 하는 설명보다 와 닿는 설명이라고나 할까. 앞의 내용은 특별할 것 없는 평이한 느낌이었는데 마지막 한 장의 이야기로 인해 가을과 노을의 아름다움이 마음속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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