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바와 사자 세트 - 전2권 야쿠바와 사자
티에리 드되 글.그림, 염미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마녀 위니>를 읽다 보면 거무칙칙했던 위니의 집이 화사한 색깔로 바뀌는 걸 보며 어린이들이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절로 알게 된다. 그렇다면 흑백 그림책은 어떨까. 글도 없고 흑백인 셜리 휴즈의 <높이 더 높이>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림의 색과 호불호가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어린이보다는 어른이 흑백 그림책을 좋아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흑백 그림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한동안 흑백 그림책을 만나지 못하다가 <야쿠바와 사자>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온통 검은 한 면에 글이 있다. 검은 배경에 얹혀 있는 글이 아니라 오로지 글을 위해 존재하는 검은 면. 아주 잠깐, 잉크가 걱정될 정도로 까맣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축제가 열리는 마을의 모습은 경건하다. 문득, 만약 색상이 화려한 그림이었다면 엄숙하고 경건한 이 축제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선이 굵고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남자들의 모습, 숲을 마주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 부족은 혼자 사자와 맞서는 용기를 보여야만 전사가 될 수 있단다. 흔히 그렇듯, 주인공 소년 야쿠바는 무척 용감해 보인다. 야쿠바에게 이런 종류의 과제는 식은 죽 먹기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짐작하듯이 어떤 시련이 닥칠 것이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두 권이나 있겠지.

 

  그렇다. 정작 사자를 맞닥뜨렸지만 그 사자는 이미 싸우고 왔기 때문에 지쳐서 야쿠바는 쉽게 사자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사자의 깊은 눈동자는 소년에게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야쿠바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말을 건다.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책에서는 사자의 생각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야쿠바의 마음임을 알 수 있다. 어차피 마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야쿠바가 용맹한 사자와 힘겹게 싸웠는지, 다친 사자와 쉽게 싸워 이겼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야쿠바에게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야쿠바는 선택을 해야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뛰어난 남자로 인정받는 대신 비겁하다는 자기 안의 목소리를 안고 살아가느냐, 스스로 고귀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라고 여기지만 무리 안에서 무능력한 남자로 살아가느냐 그것이 문제다. 그런데 야쿠바는 그다지 망설이지 않는다.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망설임 없이' 마을로 향한다.

 

  비록 야쿠바는 스스로 떳떳하고 뿌듯할지라도 마을에서의 위치는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아니, 야쿠바도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할 뿐이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전사가 된 친구들과 달리 야쿠바는 가축을 지키는 일을 맡는다. 그야말로 하찮은 일을. 그리고 1권에서는 이렇게 끝난다.

 

"마을의 가축을 습격해 오던 사자들의 발걸음이 끊긴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이 한 문장의 의미를 야쿠바 마을 사람들은 몰라도 독자들은 안다. 그렇다면 2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당연히 사자와 연관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2권에서 드디어 사자의 이름이 나온다. 키부에. 사자 무리의 우두머리인 키부에는 자신들의 무리를 위해서 사냥을 해야만 한다. 문제는 전에 없던 가뭄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다는 것, 그래서 야쿠바의 마을로 내려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키부에를 망설이게 한다. 여기서는 키부에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냥 있으면 무리를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대장이 되는 것이고 마을로 내려가면 야쿠바와의 신뢰를 깨트리는 것이다. 과연 키부에의 선택은 무엇일까.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신뢰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데 우리는 너무 남을 의식하고 사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보통의 우리들 같은 마음이었다면 결코 야쿠바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쿠바는 진정 용기 있는 소년이다. 마찬가지로 키부에는 한 번 보여준 신뢰를 절대 깨트리지 않고 위기를 잘 극복한 현명한 사자였다. 야쿠바의 말처럼 둘은 친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반드시 두 권을 함께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2권 마지막 장을 읽을 때의 그 뭉클함을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번을 읽어도 같은 뭉클함이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해 줄 때 끝까지 읽으면 엄청 감동적이라는 밑밥을 깐다. 그리고 반납할 때 반드시 어땠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대개 감동적이었다거나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내가 느끼는 것처럼 안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야쿠바와 키부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책을 펼쳤는데 덮을 때 이런 기분을 느끼면 그 날은 하루 종일 행복하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행복함이 아직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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