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위대한 해적 알이알이 명작그림책 42
다비드 칼리 글, 마우리치오 A. C. 콰렐로 그림, 박우숙 옮김 / 현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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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튼튼한 산 같기만 했던 아빠가 어느 순간 내가 돌봐드려야 할 만큼 쇠약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식의 마음은 슬프기도 하고 감사하고 죄스런 마음일 것이다. 그런 순간순간을 느낄 때 철 드는 것이라고 말하겠지.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 한 가지는 고등학생 때인지 대학생 때인지로 기억되는 어느 추운 겨울날 약속이 있어 버스타러 가는데 아버지는 경운기를 끌고 나무하러 가는 모습이다. 엄마와 동생과 나는 따스한 방에서 뒹굴고 있다가 약속이 있어 나가던 차였다. 시골의 겨울은 농한기라고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시절이라 아버지는 겨울에도 쉬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낮잠 한번 주무시지 않고 그렇게 일을 했을까. 아니 쉬고 싶다거나 하기 싫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을까. 아버지의 숙명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자식에게 하는 것도 그렇다. 이래서 내리 사랑이라는 것일까. 그 겨울에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철이 조금 들었던 듯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부모로만 보다가 그때 처음으로 개인으로서 아버지를 생각했다고나 할까.

 

이 책 <우리 아빠는 위대한 해적>도 내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궤적을 따른다. 이 책의 주인공은 훨씬 어린 나이에 철이 들었다는 점만 다르다. 주인공의 아빠는 일하러 멀리 떠났다가 여름에만 2주 정도 머문다. 아빠는 집에 오면 주인공에게 갖가지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적으로서 했던 모험 이야기를. 그 이야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그러다 아홉 살 여름에 아빠는 오지 않고 전보가 도착한다. 엄마는 말 없이 주인공을 데리고 아빠에게 간다. 해적인 아빠를 보러 가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기차를 타고.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만난 아빠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아빠가 아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날'이기도 하다.

 

해적으로 모험을 한 줄 알았던 아빠가 사실은 타국의 광산에서 석탄 캐는 일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동안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고. 주인공은 아빠를 사랑하긴 하지만 거짓말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지하실에서 아빠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바다로 나가고 싶어했으나 돈을 벌기 위해 광산으로 가야만 했던, 그래서 자신의 꿈은 이야기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광산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고 후 처음으로 간 광산에서 진정으로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그동안 아빠가 들려주었던 모험 이야기에 등장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이 있는 바다가 아니었을 뿐 광산은 그들의 희망호였고 동료를 집어삼킨 바다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제야 인정한다. 아빠는 해적이 아닌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아빠에 대한 시선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책이다. 거짓말 했다고 따지지 않지만 이해하지 못해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에 대한 오해가 풀렸을 때 사랑과 감동이 더 배가되었을 것이다. 이때 사랑은 주인공의 아빠에 대한 감정이요, 감동은 주인공이 아빠를 이해하는 깊이에 대한 것이다. 독자는 어느 순간 주인공이 되었다가 다시 빠져나와 독자가 되는 두 가지 경험을 한 셈이다.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나 <적>에서 만났던 다비드 칼리는 유쾌하게 비판하는 작가라는 인상이었던 데 반해 이 책은 인생의 깊이와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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