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단다 ㅣ I LOVE 그림책
릭 윌튼 글, 신형건 옮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 보물창고 / 2011년 11월
평점 :
둘째가 어렸을 때 잠깐, 아주 잠깐 육아일기를 썼더랬다. 계속 이어졌으면 좋았겠지만 여러 여건상,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에 이어가질 못했다. 어느날 우연히 둘째가 그 일기를 보았던지 자기가 처음 심부름했을 때 그렇게 신기했었냐고 묻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일기에 그런 내용이 있었나보다. 크고 난 후에야 심부름이 별 것 아니지만-지금이야 거의 일상이 되었지만-처음 심부름을 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내 일손을 거들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의사소통이 된다는 의미였으니 특별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무엇이든지 '처음'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뭔지 모를 설렘과 두려움의 의미가 들어있는 듯하다. 처음 태어났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사실 그때는 감격보다는 두려움과 안도감이 더 컸던 기억이 난다. 남자들은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특히 더) 처음 눈을 마주치고 웃던 날이며 처음으로 뒤집던 날, 처음으로 한 발짝을 떼던 날 등 태어나서 일 년은 그야말로 감탄과 신비함의 연속이었다. 아, 정말이지 이제는 너무 커버려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일들이 되살아나게 하는 책이다. 맞아, 그땐 이랬지. 그런데 지금은 모든 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길 바라며 다그치고 있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새롭고 신기하며 경이로웠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이다.
부모의 마음으로 보았을 때 더 감동적인 책이 있기 마련이다. 모름지기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는 아이를 키우면서 연령대별로 겪는 일이 무지 적절하게 표현되어 읽으며 맞아맞아를 연발했다면 이 책은 아이가 태어나서 일 년까지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사랑스러운 그림과 절제되고 부드러운 말로 일 년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물론 그 시간이 마냥 행복하고 예쁘기만한 것은 아니다. 이유도 없이 울어댈 때,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어서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할 때, 툭하면 밤에 깨서 우는 바람에 잠을 설칠 때 등 힘들 때도 많다. 그러나 가끔 웃어주거나 처음 새로운 행동을 하는 것으로 그 모든 것들이 보상받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더욱 새롭다. 책을 보고 미소짓다가 어느새 기억 저편을 헤매고 있다. 따라서 이제 막 돌을 맞이한 자녀가 있는 사람이 봐도 좋지만 아이가 크더라도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지금의 아이에게 좀 더 관대한 마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