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도둑 - 스리랑카 땅별그림책 6
시빌 웨타신하 글.그림, 엄혜숙 옮김 / 보림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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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독후감을 봐주다 문득 나는 리뷰를 어떻게 쓰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용을 대충 간추려 놓은 그저 그런 리뷰를 쓰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그렇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럴 수도 있으니까. 한 아이가 <라몰의 땅>을 읽고 쓴 독후감을 읽었는데 같은 땅별그림책 시리즈인 이 책을 보자 그 생각이 났다.

  새로운 것을 처음 보면 용도를 몰라 헤매기 마련이다. 양초를 처음 본 사람들이 그것으로 국을 끓여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스리랑카에는 우산이 그런가 보다. 게다가 섬에서도 작은 마을이었으니 새로운 문물이 들어가려면 다른 곳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다. 그 마을에서는 비가 오면 바나나 잎이나 얌 감자 같은 자연물을 이용했단다.

  하루는 키리 마마가 읍내에 갔다가 생전 처음 우산(비가 오지 않는데 쓰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양산이라고 부르는 것일 게다.)을 보고는 그 모습에 반해서 우산을 사들고 집으로 온다. 마을에 도착해서 보는 사람에게 무조건 자랑을 하면 좋으련만 키리 마마는 이왕이면 대낮에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우산을 감춰둔 채로 시침을 뚝 떼고 찻집으로 들어간다. 왜 우리도 진짜 자랑하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극적 효과를 위해서 아껴두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키리 마마도 그랬을 것이다. 밤중에 우산을 쓰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뿐더러 의미가 별로 없으니까 낮까지 기다리기도 했던 것인데, 그만 우산을 잃어버리고만다. 하지만 우산이라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한다.

  하는 수 없이 다음에 읍내에 가서 또 우산을  사오다가 찻집에서 또 차를 마신다. 물론 이번에도 우산은 사라진다. 그렇게 똑같은 일이 상당히 많이 반복되지만 키리 마마는 여전히 우산을 또 사고 그 찻집에서 우산을 감춰둔 채 또 차를 마신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두어 번 하다가 포기하련만 키리 마마는 인내심도 많다. 결국 나중에는 우산 안에 종잇조각을 넣어서 범인을 잡지만 그 전에 한 행동으로 보아 성질이 급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닌 듯하다. 보통 사람 같으면 화를 내며 범인을 잡겠다고 떠들고 다녔을 테니까.

  무심코 책을 읽던 사람은 드디어 우산 도둑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장면에서 입이 떡 벌어지고 만다. 이제는 누가 도둑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알록달록한 우산이 죽 걸려 있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다. 게다가 키리 마마는 우산 도둑을 위해 하나는 남겨 두는 아량까지 베푼다. 어쩐지, 매번 우산을 잃어버리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걸 보고 이미 짐작은 했더랬다.

  우산 도둑 덕분에 한꺼번에 우산이 많아서 우산 장사를 하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것-그러니까 주인공이 돈을 벌게 된 것-보다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에 눈길이 머문다. 바로 우산 도둑이 우산을 활용하는 방법. 그것이 사람에게나 비나 태양을 피하는 것이지 다른 동물에게는 꼭 그 용도로 쓰라는 법은 없으니 우산 도둑의 활용법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귀엽기만 하다. 그래서 키리 마마도 그 모습을 보고 웃었던 것 아닐까. 중반에서 잃어버린 우산을 찾았을 때의 예상 외의 모습과 마지막 우산 도둑의 뜻밖의 모습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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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단다 I LOVE 그림책
릭 윌튼 글, 신형건 옮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 보물창고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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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가 어렸을 때 잠깐, 아주 잠깐 육아일기를 썼더랬다. 계속 이어졌으면 좋았겠지만 여러 여건상,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에 이어가질 못했다. 어느날 우연히 둘째가 그 일기를 보았던지 자기가 처음 심부름했을 때 그렇게 신기했었냐고 묻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일기에 그런 내용이 있었나보다. 크고 난 후에야 심부름이 별 것 아니지만-지금이야 거의 일상이 되었지만-처음 심부름을 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내 일손을 거들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의사소통이 된다는 의미였으니 특별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무엇이든지 '처음'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뭔지 모를 설렘과 두려움의 의미가 들어있는 듯하다. 처음 태어났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사실 그때는 감격보다는 두려움과 안도감이 더 컸던 기억이 난다. 남자들은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특히 더) 처음 눈을 마주치고 웃던 날이며 처음으로 뒤집던 날, 처음으로 한 발짝을 떼던 날 등 태어나서 일 년은 그야말로 감탄과 신비함의 연속이었다. 아, 정말이지 이제는 너무 커버려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일들이 되살아나게 하는 책이다. 맞아, 그땐 이랬지. 그런데 지금은 모든 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길 바라며 다그치고 있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새롭고 신기하며 경이로웠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이다.

  부모의 마음으로 보았을 때 더 감동적인 책이 있기 마련이다. 모름지기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는 아이를 키우면서 연령대별로 겪는 일이 무지 적절하게 표현되어 읽으며 맞아맞아를 연발했다면 이 책은 아이가 태어나서 일 년까지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사랑스러운 그림과 절제되고 부드러운 말로 일 년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물론 그 시간이 마냥 행복하고 예쁘기만한 것은 아니다. 이유도 없이 울어댈 때,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어서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할 때, 툭하면 밤에 깨서 우는 바람에 잠을 설칠 때 등 힘들 때도 많다. 그러나 가끔 웃어주거나 처음 새로운 행동을 하는 것으로 그 모든 것들이 보상받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더욱 새롭다. 책을 보고 미소짓다가 어느새 기억 저편을 헤매고 있다. 따라서 이제 막 돌을 맞이한 자녀가 있는 사람이 봐도 좋지만 아이가 크더라도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지금의 아이에게 좀 더 관대한 마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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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어디 있어요?
하오광차이 글, 알레산드라 토니 그림, 김선영 옮김 / 사파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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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책, 특히 그림책 중에는 엄마와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가 많다. 유아기 때는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일 게다. 동일한 제목의 책이 여러 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증명된 것 아닐까. 대개의 동물들도 엄마라면 제 새끼를 끔찍이 아낀다. 시골에 고양이가 있는데 새끼를 낳으면 꽤 클 때까지, 그러니까 다음 새끼를 낳을 때까지 어미가 어찌나 끼고 도는지 아니꼬울 정도다.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할까.

  엄마가 뽀뽀해 주기를 기다리다 그냥 잠이 든 메이린은 잠결에 양의 울음소리를 듣고 깬다. 알고 보니 아기 양이 엄마를 찾고 있는 중이다. 메이린이 함께 아기 양의 엄마를 찾아다니며 각 동물의 특징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아기 양이 아무에게나 엄마라며 쫓아가면 메이린이 그 동물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러면 아기 양이 자기와 다른 점을 이야기하거나 아기 양이 먼저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메이린이 그 동물의 이름과 특징을 말해주는 식이다. 토끼의 경우 다리가 네 개지만 자기 엄마보다 몸집이 훨씬 작으므로 엄마가 아니고 기린은 너무 커서 엄마가 아니라는 식이다.

  그렇게 둘은 아기 양의 엄마를 찾아 여러 동물을 만나다가 결국 아기 양을 찾고 있는 엄마를 만난다. 그런데 여기서 엄마 양이 아기 양을 찾고 있었다고 말은 하는데 그림으로 보아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엄마 양이 풀을 입에 물고 있기 때문이다. 아기를 잃어버렸고 찾아다녔다면 한가하게 풀을 먹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 것 아닐까. 풀을 뜯고 있는 양 그림이 나오길래 엄마 양이 아니라 옆집 아줌마라고 생각했다. 원래 이쯤되면 엄마 양은 열심히 아기를 찾아다니고 주변에 풀 뜯고 있는 양이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엄마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그림과 약간 과장된 듯한 동물 모습이 재미있지만 워낙 독특하고 기발한 그림책이 많아서인지 지나치게 평범해 보인다. 타이완의 유명한 작가라는데 아직 우리의 그림책 수준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자만에 찬 평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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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을 아기너구리 보림 창작 그림책
이영득 글, 정유정 그림 / 보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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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에서 너구리가 많이 나오는데 정작 너구리를 본 기억은 없다. 다만 '너구리' 하면 눈 주위의 동그란 무늬나 꼬리가 먼저 생각난다. 이 그림을 보니 너구리를 직접 보면 상당히 귀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기너구리가 아주 귀엽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기너구리는 사냥(갑자기 너구리가 고기를 잡는다는 이야기가 낯설다. 지금까지 으레 산에서 살려니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 책의 너구리는 강마을에 산다. 고로 생계수단이 산이 아닌 물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간 아빠를 기다리다 우연히 물총새를 본다. 그런데 이 물총새는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고 둘레를 콩콩 뛰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고 났는데 마침 물고기가 튀어 올랐고, 때마침 물총새가 그 고기를 잡는다. 오비이락이라고나 할까. 아기너구리가 생각하기에 물총새의 행동은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긴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누군가가 쉽게 이루면 그 뒤에 뭔가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거기서 아기너구리는 깜찍한 생각을 한다. 바로 물총새가 그린 그림을 기억해 두었다가 자기도 써 먹겠다는 것.

  그런데 얄궂게도 물총새는 그림을 몽땅 지우고 가버린다. 과연 물총새의 그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무슨 그림이었길래 금방 물고기가 튀어 올랐을까, 아기너구리는 궁금하기만 하다. 나는 물총새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더 궁금한데 아기너구리는 그보다는 그림이 더 궁금하다. 그래야 물고기를 잡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오늘은 엄마 제삿날이니 꼭 물고기가 필요하다. 헌데 알고보니 물총새의 그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림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물고기를 그린 것으로 보아 그냥 취미삼아 그림을 그렸을 뿐인가 보다. 그러기에 아기너구리가 물총새에게 요술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자 처음 듣는 얘기라며 전혀 관심도 갖지 않고 날아가 버렸겠지.

  그래도 아빠너구리는 아기너구리의 말을 믿어준다. 아기너구리가 아빠를 보자마자 물총새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 않고 '아들 덕분에'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이야기하니 말이다. 대개의 어른들이라면 괜한 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 아빠너구리는 이해심이 많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인물인가 보다. 원래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것이 공감과 인정이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여하튼 욕심부리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자연에서 얻는 너구리의 평화로운 삶이 잔하게 펼쳐진다. 게다가 아름다운 자연을 담백하게 그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 앉는다. 결국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도 매일매일이 소중한 삶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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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를 사랑한 고양이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26
레나 헤세 글.그림, 김현좌 옮김 / 봄봄출판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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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말한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것이며 오히려 떨어져 있을 때 사랑이 더 깊어진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들고양이 프레드와 회색 거위 애너벨은 아주 친한 친구다. 그러나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선 새는 날 수 있지만 고양이는 전혀 날지 못하는 대신 나무는 잘 탄다. 고양이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새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을 싫어한다. 아니, 두려워한다. 게다가 고양이는 추위를 잘 탈지언정 한 곳에서 정착해 사는 반면 거위는 따뜻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철새다. 둘의 공통점이 없어도 너무 없다.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여름동안 많은 추억을 쌓은 둘이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거위 애너벨이 가족과 함께 좀 더 따스한 곳을 찾아 떠나야 했던 것이다. 프레드는 할머니에게 돌아와서-아쉬우니까 주인을 찾아온다. 그러나 할머니와 프레드의 관계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기에 프레드가 애너벨과 보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것일 게다-따스한 난로 옆에서 겨울을 난다. 아무리 서로를 사랑한다 해도 그 사랑만 믿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애너벨의 걱정을 보면 알 수 있다. 프레드가 혹시 다른 거위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니 말이다. 사람의 시선으로 이들을 봐서인지 아니면 원래 모든 동물의 기본적인 마음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정확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전혀 다른 종류의 동물이 사랑하는 이야기, 이것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면 다양한 모습이 나올 것이다. 인종이 다르다거나 겉모습이 다르다거나 등등. 그러나 종을 떠나 그냥 순수하게 나와 다른 생명체를 사랑할 때의 마음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에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떤 메시지를 들려줄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이성으로거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기에 충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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