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단상(44) 우정은 (情)이오’라는 글을 올렸다. 그 글을 올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나와 우리 친구들을 술꾼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겠다 싶었다.

 

 

그저 한 친구가 멀리서 온 친구들 셋을 대접하느라 우리를 끌고 여기저기 맛있는 음식점을 다녔을 뿐인데... 평소에 해 보지 않던 음주를 곁들였을 뿐인데... 반가움에 주고받는 술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냥 술이 있는 가을날의 낭만에 취하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리 말이 많으냐, 라고 물으신다면 술꾼이라는 오해는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답하겠다. 그럼 당신이 술꾼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증명해 보겠다.

 

 

첫째, 진정한 술꾼은 안주보다 술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술보다 안주를 더 좋아한다. (평소엔 먹성이 좋은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안주는 맛이 있다.)

 

둘째, 진정한 술꾼은 술을 자주 마시는데, 나는 일 년에 한두 번쯤 마신다. (이것, 우리 친구들도 들어오는 블로그라서 거짓말 못한다.)

 

셋째, 진정한 술꾼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술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책을 꼽겠다. (이건 이 블로그로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넷째, 이게 제일 중요한데, 내가 장(腸)이 약하다. 술을 마시면 며칠 동안 설사로 고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자리를 피하는 편이다. 피할 수 없으면 적게 마신다. (소주로 말하면 세 잔까지는 마셔도 된다. 참고로, 그까짓 설사, 라고 하시는 분을 위한 부연 설명 들어간다. 설사하면 살이 빠지는 것 같아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내가 제일 싫어 하는 게 살이 빠지는 것이다. 이건 마른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듯.)

 

 

(아, 유치하다. ㅋㅋ 뭐 이런 구차한 설명을 늘어놓다니. 나의 친구 ㅎㄹ이가 하하하 웃겠다. 그리고 한마디 할 것 같다. “술꾼으로 오해 좀 받으면 어때? 재밌잖아. 하하하.” 또는 “그래 나 술꾼이다, 어쩔래?, 좀 이렇게 살아라. 하하하.” 나도 이 친구처럼 소심하지 않게 살고 싶다. 나의 이상형 친구다. 그런데 그를 닮는 것, 쉽지 않다. 나중에 그 친구의 옆집으로 가서 살아야겠다. 그를 닮기 위해서.)

 

 

 

 

글샘 님이 댓글에서 내게 추천한 책이 있다. 세이쇼나곤 저, <마쿠라노소시>라는 책이다. 처음엔 180쪽밖에 되지 않아 얇은 책이라 좋아했는데, 다 읽고 나선 그 점이 오히려 아쉬웠다. 더 읽고 싶어서다. 그만큼 이 책이 좋았다.

 

 

이 책에 있는 해설에 따르면 이 책은 ‘일본 수필문학의 효시로 대표적인 고전문학 작품’이다. 수필을 감상하듯, 시를 감상하듯 읽었는데, 어느 부분에선 그윽한 정취를 맛보았고, 어느 부분에선 폭소를 터뜨렸다. 인상 깊게 읽었으므로 기억해 두고 싶어서 이 페이퍼를 쓴다. (아, 그리고 내가 술보다 문학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쓴다.)

 

 

내가 좋았던 구절들을 뽑아 나열했고, 나도 따라 써 보았다.

 

 

1.

설렘―가슴 두근거리는 것

(53쪽) 참새 새끼를 기르는 것. 어린아이가 뛰어노는 곳 앞을 지나가는 것. 고급 향을 태우며 혼자 누워 있는 것. (…) 신분이 높은 남자가 내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시종에게 뭔가 묻는 것. (…) 약속한 남자를 기다리는 밤은 빗소리나 바람 소리에도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 세이쇼나곤

 

 

설렘―가슴 두근거리는 것

무심코 창밖을 보았을 때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풍경이 보이는 것.

어느 찻집에서 시집을 읽다가 빗소리가 들려 창밖을 보는 것.

주문한 책 몇 권을 배달해 주는 사람이 누른 초인종 소리를 듣는 것.

기대하고 기다렸던 책의 첫 장을 펼치는 것.

반신욕을 하기 위해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는 것.

모처럼 식구들이 집을 비워 나만의 일박이일의 시간이 생기는 것.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책 한 권 옆에 끼고 산책하다가 숙소로 들어가는 것. (이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상상만으로 설렌다.) - pek0501

 

 

 

 

2.

밉살스러움―얄미운 것

(46쪽~47쪽) 다른 사람 몰래 오는 사람을 알아보고 눈치 없이 짖는 개도 얄밉다. 또 남의 눈에 띄면 안 되는 곳에서 코를 골며 자는 사람이나, 몰래 찾아오는데 높은 에보시를 쓰고 와서 남의 눈을 피한답시고 허둥지둥 들어오다가 물건에 부딪혀서 소리를 내는 사람도 얄밉다. (…) 삐걱거리는 우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도대체 귀머거리인지 화가 치민다. 주인이 타고 있으면 그 차 주인까지도 미워진다. 또 얘기할 때 잘난 척 앞질러가는 사람이나 얘기 중간에 말참견하는 사람은 어른이든 애든 다 보기 싫다. 가끔 오는 애들을 귀여워하며 좋아하는 것을 줘서 보냈더니, 그것에 맛을 들여 계속 찾아와서 마치 자기네 집인 것처럼 함부로 드나들며 물건을 어지르는 것도 정말 밉다. - 세이쇼나곤

 

 

밉살스러움―얄미운 것

누군가를 험담해서 난처하게 만드는 사람.

누군가를 무시하는 말투로 말하는 사람.

누군가가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

거짓말을 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

모른 척하며 남의 약점을 건드리는 사람.

모든 이성이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

남이 말할 땐 딴생각을 하다가 자신이 말할 땐 신이 나서 말하는 사람. - pek0501

 

 

 

 

3.

부조화―어울리지 않는 것

(79쪽~80쪽) 천한 것들 지붕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것. 게다가 달까지 환하게 비치면 정말이지 달빛이 아깝기만 하다. 달 밝은 밤 지붕 없는 우차. 또 거기에 누런 황소까지 매달고 있으면 최악이다. 나이 든 여자가 임신해서 산만한 배를 안고 돌아다니는 것도 꼴불견이다. 젊은 남편 얻는 것만 해도 가관인데, 그 남편이 다른 여자네 집에 가서 자기 집에 안 온다고 화내는 것은 참으로 볼 만하다. (…) 애인인 여방의 방에 살짝 들어가 고상하게 향 피워놓은 휘장 위에 흰색 하카마를 벗어서 제멋대로 걸쳐놓은 것이 눈에 띄기라도 하면 정말이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이다. - 세이쇼나곤

 

 

부조화―어울리지 않는 것

얼굴은 미남인데 심하게 사투리를 쓰는 남자.

교양 있게 생긴 얼굴로 크게 소리 내며 껌을 씹는 여자.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해진 옷을 입고 있는 집주인.

짬뽕에 반찬으로 김치를 먹는 사람.

여행지에서 (커피 잔이 없어) 밥그릇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 - pek0501

 

 

 

 

4.

있기 어려운 일―흔치 않은 것

(100쪽) 장인한테 칭찬을 받는 사위나 시어머니한테 귀염받는 며느리. 또 털 잘 뽑히는 족집게. 주인 험담 안 하는 시종. 전혀 결점이 없는 사람도 흔지 않다. (…) 남녀관계뿐만 아니라 여자끼리라도 변치 말자고 굳게 약속한 사람이 끝까지 사이가 좋은 경우도 드문 일이다. - 세이쇼나곤

 

 

있기 어려운 일―흔치 않은 것

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건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이 상상해 보시길...

 

 

 

 

 

.................................

(쓰고 나니 평범하다, 평범해. 평범함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래서 4번은 여러분을 위해 남겨 두기로 한다.)

 

 

 

 

 

 

..................................

글샘 님의 안목 높은 추천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좋은 책을 읽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추천해 주실 분은 이 책처럼 얇은 책으로 해 주세요. (이것, 두꺼웠으면 사 보지 않았을지 몰라요. 결국 얇아서 아쉬웠지만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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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11-09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ㄱㅅ 는 욕설로 쓰인다는 걸 아시나요? ^^
뭐, 이걸 익명으로 해주실 거 까지야~
책이 딱 pek님 취향일 거 같더라구요. ㅋ~ 다행이네요. 취향에 맞으셔서~

페크pek0501 2012-11-09 17:00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신중해서요. 아니 소심해서요.ㅋㅋ 싫어하시는 분이 있더라고요.
ㄱㅅ이 욕설로 쓰인다는 건 몰라고요.
어쨌든 님은 그냥 밝혀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ㄱㅅ을 님의 닉네임으로 수정했사옵니다. 감사 두 번 드리옵니다.
좋은 가을 보내시길...^^

카스피 2012-11-09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1년에 한번 거나하게 술을 먹을수도 있지 뭘 그리 소섬하게 그러세용.저도 1년 내내 술 한방울 입에 안되고 있다가 한 두달전인가 친구들하고 기네스 흑맥주에 양주 말아서 시원하게 마신 기억이 나는데요^^

페크pek0501 2012-11-12 12:12   좋아요 0 | URL
반가운 카스피 님, 요 앞의 페이퍼 단상(44)을 읽으신 분들이 보면 마치 제가 술꾼처럼 보일 것 같아, 자주 마시지 않고 일 년에 한두 번 마신다, 라고 새로 쓴 것이랍니다. 일년에 한두 번이 괜찮은 게 아니라 으음~~ 한 달에 한두 번은 마셔도 되지 않을까요?ㅋ
그런데 알라디너들 중에는 애주가가 꽤 있을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엔 아마 자주 못 마실 거예요. 그러면 블로거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없거든요. 이곳 사람들은 술보다 블로그가 더 좋아, 하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또 뵈요.

순오기 2012-11-10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가슴 두근거리는 거 찌찌뽕이오!
님이 못해 본 설렘~ 이번에 제주도 가서 꼭 해볼테야요!!
그리고
진정한 술꾼은 pek님이 아니라 순오기란 말이오.ㅋㅋㅋ

페크pek0501 2012-11-12 12:13   좋아요 0 | URL
저도 찌찌뽕... ㅋㅋ
순오기 님, 제주도에 가서 꼭 해 보세요. 필히 여행가방 안에 책을 넣어야 폼이 나는 여행자의 모습이 되는 거죠.
진정한 술꾼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순오기 님이 좋아요, 저는.


노이에자이트 2012-11-1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이쇼나곤은 무라사키 시키부와 아는 사이군요.먼 옛날 사람들의 수필이나 일기가 그대로 남아있으니 참 다행입니다.저렇게 좋은 글을 후손에게 남겼으니...

페크pek0501 2012-11-12 12:14   좋아요 0 | URL
님의 오랜만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러니까‘보존’이란 것도 참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님도 이런 글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래서 더욱 반갑습니다. ㅋ

파란놀 2012-11-10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사를 하면 장에 있는 찌꺼기도 여러모로 잘 나와요.
이른바 장청소라고 할까요.

관장을 한다면 더 좋지만,
가끔 설사를 하면
장에 쌓인 것이 밖으로 나와서
배가 홀쭉해지니까요
굳이 싫어하지는 않으셔도 돼요.

페크pek0501 2012-11-12 12:19   좋아요 0 | URL
하하하, 된장 님의 말씀이 맞아요. 설사를 가끔 하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최근 3.5키로나 체중이 빠져서 무슨 병이 있나, 하고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했답니다. 다행히 병은 없대요. 여기서 더 '설사’를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설사주의보를 스스로 내리고 살아요. ㅋㅋ
여름에도 설사할까 봐 냉장고의 물을 못 마셔요. 설사 멎는 약을 복용한 적도 있지만 그 약이 나쁘다고 해서 잘 안 먹어요.
일단 살이 빠지니까 인물이 죽어요.(이것 웃겼나요? 사실인데...ㅋ)
전 한 번 빠지면 다시 회복되지 않는 특이체질이라서 더 안 빠지려고 노력중이어요.
 

 

 

그저께 대전에서 대학동창의 모임이 있었다. 네 명이 만나는 모임이다. 서울에서 같은 대학을 다녔음에도 현재 한 친구는 대전에서 살고, 한 친구는 부산에서 살고, 한 친구와 나만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한 번 모이려면 여간 성의가 필요한 게 아니다. (나만 해도 그날 오전 10시까지 서울고속터미널에 나가야 했다.) 나와 한 친구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가고, 한 친구는 부산에서 대전으로 와야 하는 것이다. 대전이 중간 지점이므로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서로 사는 거리가 멀어서 일 년에 두세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만남이라 일단 우리는 만나면 크게 웃으며 껴안는 버릇이 있다. 만난 반가움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마음이 급하다. 당일 코스의 만남이어서 시간이 많지 않은데 할 말은 많은 까닭이다.

 

 

우리 만남에 술이 빠질 수 없다. 막걸리로 시작해서 소주로 그리고 입가심으로 맥주 한 잔씩을 마시는 것으로 끝이 난다. 안주로는 숯불에 굽는 소고기로 시작해서 장어구이로 그리고 입가심으로 골뱅이 무침으로 끝이 난다. (절대 술꾼들은 아니다.)

 

 

첫 술은 야외에서 마셨는데, 음식점의 앞마당에 식탁과 의자가 있고 숯불이 있고 게다가 호수가 있고 고운 빛깔의 단풍잎들이 있고, 호수에 비친 단풍잎들이 있어서 무지 죽였는데(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날따라 비가 오기도 했고 햇살이 반짝거리기도 하여 여러 얼굴의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환성을 지를 만큼 아름다웠다. (실제로 우리는 가을 풍경에 반해 환성을 질렀다.) 가는 음식점마다 서로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하는 것도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이다.

 

 

우리는 건배를 할 때 좀 특이하게 한다. 건배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이것이 술이오?

아니요.

그럼 뭐요?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댄다.)

....................

 

 

 

마지막 술을 마시기 위해 친구가 아는 호프 집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우리가 주문하지도 않은 안주가 나왔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골뱅이 무침과 계란탕이었는데, 그것들을 다 먹을 무렵에 무료 서비스의 안주라면서 김치찌개가 나온 거였다.

 

 

우리가 물었고, 그(호프 집의 주인)가 답했다.

 

 

....................

이것이 김치찌개요?

아니요.

그럼 뭐요?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댔다.)

....................

 

 

 

또,

 

“나는 정 주고 떠난 사람이 제일 미워.”라고 말하는 한 친구의 말에 다 같이 깔깔깔 웃어 댔다.

 

 

술을 마시기 전에, 친구가 대전에서 옷가게를 해서 거길 들러서 옷을 팔아 주기도 했다. 나는 두꺼운 울 카디건(가디건이 아니라고 함.)을 구입했다. 더 비싼 옷인데 깎아서 12만 원이라고 한다. 싱글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너도 골라, 내가 사 줄게.”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4만 원짜리의 바지를 골랐다.

 

 

그런데 술을 마시다가 그 친구가 갑자기 내가 사 준 바지를 가방에서 꺼내며 하는 말이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원래는 이렇게 말해야 했다.

 

 

....................

그 친구 : 이것이 바지요?

우리 셋 : 아니요.

그 친구 : 그럼 뭐요?

우리 셋 :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대기.)

....................

 

 

 

이렇게 말해야 내가 그 친구에게 준 것이 단지 바지가 아니라 ‘정’이다, 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다음과 같이 변형하여 말해서 우리 모두 박장대소했다.

 

 

....................

그 친구 : 이것이 바지요?

우리 셋 : 아니요.

그 친구 : 그럼 치마요?

(깔깔깔. 모두가 박장대소함. 얼마나 웃었던지 눈물이 다 나왔다.ㅋ)

....................

 

 

 

앞으로 친구에게 점심으로 갈비탕을 사 줄 때에도 이런 말을 주고받아야겠다.

 

 

....................

친구 : 이것이 갈비탕이오?

나 : 아니요.

친구 : 그럼 뭐요?

나 : 정이오.

(그리고 깔깔깔 웃어 대기.)

....................

 

 

 

 

 

 

 

 

 

 

 

 

 

 

 

 

 

 

 

 

칼릴 지브란의 책을 언제부터 구입하려고 했는데 미루다가 지난달에 드디어 구입했다. 이런 글이 있다.

 

 

 

 

 

우정을 나눌 때에는 영혼을 깊이 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은 두지 마십시오.

(…)

시간을 적당히 때우기 위해 친구를 찾는다면 그 친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언제나 시간을 활기차게 보내기 위해 친구를 찾으십시오.

친구는 그대들의 공허함을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그대들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우정의 따스함 속에 웃음이 깃들도록 하십시오.

마음은 하찮은 이슬 한 방울에서도 아침을 발견하고 생기를 되찾기 때문입니다.

-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 65쪽~66쪽.

 

 

 

그날 우리는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우정의 따스함 속에 웃음이 깃들도록 했고, 마음은 하찮은 이슬 한 방울에서도 아침을 발견하고 생기를 되찾았다.

 

 

 

 

 

그대들 가운데 어떤 이는 즐거움이 전부인 것처럼 추구하다가 비판을 받고 질책을 받습니다.

허나 나는 이들을 비판하거나 질책하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즐거움을 추구하도록 이들을 격려하겠습니다.

이들이 즐거움을 찾더라도 즐거움 하나만을 얻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은 일곱 자매를 두었는데, 그중 가장 어린 자매도 즐거움보다는 아름답습니다.

정녕 그대들은 듣지 못했습니까.

뿌리를 캐다가 땅속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이야기를.

-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 78쪽.

 

 

 

 

어느 책에서 읽은 것 같다. 좋은 인생을 사는 비결은 ‘주위에 좋은 사람들만 배치하기’라고. 내 주위에 좋은 친구들을 배치해 놨더니, 많이 웃게 만들어 건강에 좋은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날을 보냈다. 웃음으로써 즐거움을 주고받은 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날에 주고받은 것이 어찌 즐거움뿐이랴.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즐거움을 찾더라도 즐거움 하나만을 얻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추신.

 

 

페크의 서재에 여러분이 쓰신 댓글이 정녕 댓글이란 말이오?

아니요.

그럼 뭐란 말이오?

그건 情이오.

 

(여러분이 깔깔깔 웃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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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11-0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는 두개의 신체에 깃든 한개의 영혼이라는 금언도 있습니다. 제가 우정에 대해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의 존경 없이는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죠.

페크pek0501 2012-11-07 16:55   좋아요 0 | URL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댓글이 아니라 정으로 접수합니다. ㅋㅋ
좋은 하루 되세염.

파란놀 2012-11-0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돈을 내겠다 한다면...
저라면
"나는 돈을 안 내겠소~" 할까 싶어요~

페크pek0501 2012-11-07 22:22   좋아요 0 | URL
그것도 좋지요. 우린 돈 내기 싫어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 줍니다.
고맙습니다. 님은 가을 풍경 속에서 사시겠네요. ^^

oren 2012-11-0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댓글입니까? / 아니오.
그럼 정(情)이오? / 아니오.
그럼 무엇이오? / 그렇게 말랑말랑한 게 아니요. '웃음'에 대해서조차 '철학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논문으로부터의 '인용'이오.ㅋㅋ

* * *

웃음의 기원

웃음의 기원에 대하여 여기서 논하는 것이 본론의 진행에 방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웃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떤 개념과 그것에 의해 어떤 관계 속에서 실재하는 객관과의 모습을 갑자기 알아차렸을 때에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웃음도 이 모순의 표현에 불과하다. 이 모순은 흔히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실재적 객관들이 '하나의' 개념에 의해 사고되고, 그 개념의 동일성이 이들 객관에 옮겨지는데, 그 다음에 그 밖의 점들에 있어서는 이 객관들과 개념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개념이 오직 일면만으로 이들 객관과 상응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中에서

웃음의 팽창력

웃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웃음을 유발하는 밑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익살꾼의 찌푸린 얼굴, 재치있는 말솜씨, 보드빌(vaudeville:가벼운 오락용 희극)의 착각, 하이코미디 장면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떤 증류법(蒸溜法)을 사용하면 저렇게 종류가 잡다한 산물(産物)에 독한 향기를 감돌게 하는, 언제나 같은 그 엑기스를 채취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훌륭한 사상가들이 이 사소한 문제에 몰두해 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언제나 그 노력을 비웃듯이 빠져나가고 비껴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철학적 사색에 던져진 비위에 거슬리는 도전이라고나 할까.
- 앙리 베르크손,『웃음』 中에서

페크pek0501 2012-11-07 22:23   좋아요 0 | URL
재밌는 댓글을 쓰셨는데요.ㅋㅋ 감사합니다.

oren 2012-11-0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핑커의 책에서 읽었던 '우스운 이야기' 하나만 덧붙일께요.
* * *
웃음, 목메임, 헐떡거림, 아우성

전 세계 대부분의 위트는 알공킨 원탁모임보다는《애니멀 하우스》에 더 가깝다. 샤농은 야노마뫼족의 가계조사를 시작할 때, 저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그들의 터부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샤농은 피조사자들에게 저명한 개인의 이름과 그 친척들의 이름을 귀에다 속삭이라고 요청했고, 그 때문에 어색한 과정을 몇 번씩 반복한 후에야 이름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이름이 거론된 사람이 샤농을 노려보고 구경꾼들이 킥킥대고 웃으면 샤농은 안심하고 그의 진짜 이름을 기록했다. 몇 달에 걸쳐 정성스럽게 가계를 정리한 후 이웃 부락을 방문하던 중에 샤농은 자랑삼아 그곳 추장 부인의 이름을 불쑥 꺼냈다.

순간 싸늘한 침묵이 흘렀고 잠시 후 온 마을이 걷잡을 수 없는 웃음, 목메임, 헐떡거림, 아우성에 빠졌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비사시테리의 추장이 "털 많은 성기'와 결혼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뿐 아니라 나는 추장을 '기다란 음경'으로, 그의 형제를 '독수리 똥'으로, 그의 한 아들을 '병신 같은 놈'으로, 그의 딸을 '방귀 냄새'로 부르고 있었다. 다섯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가계조사를 한 결과가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관자놀이에 피가 솟구쳤다.

페크pek0501 2012-11-07 22:24   좋아요 0 | URL
정말 웃게 만드는 글이군요. 덕분에 하하하 웃습니다. ^^

프레이야 2012-11-0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유쾌한 페이퍼 읽다가 정 한 줄 드려요.
이건 댓글이 아니라 정!!!

그리고 예언자,에서 인용하신 우정에 대한 글이 팍 안깁니다.
저 책 저도 주문했는데 좀 전에 받았어요.
여고시절 사서 처음 보고 상당한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지요.
검정표지였는데 그 책은 어디로 갔는지...

페크pek0501 2012-11-07 22:25   좋아요 0 | URL

저도 정 한 줄의 답글 드려요. 좋은 가을날 보내세요, 프레이야 님.^^

앞으로도 유쾌한 글을 쓰고 싶은데, 이런 글감이 날마다 생기는 게
아니라서요. ㅋㅋ

글샘 2012-11-0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오'가 아니오.
아니요...라고 써야 맞소.
이 댓글도 초코파이 정일까요? ㅋ

페크pek0501 2012-11-07 22:27   좋아요 0 | URL
아, 글샘 님이 교정 보신 거면 이젠 안심해도 되는 것인가요?
님의 말씀 대로 고쳤어요.ㅋㅋ

이 글을 올리고 나서 맞춤법을 찾아보고 수정해야지, 했는데 잊어 버렸어요.
다른 데를 수정하느라고요.
우정은 정이오, 인지, 우정은 정이요, 인지...
이것이 술이오? 인지, 이것은 술이요? 인지... 헷갈렸는데
그래도 아니오, 하나밖에 안 틀렸네요. 키득키득키득~~~
이젠 확실히 알았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공부해 두었어요. 감사~~~

다크아이즈 2012-11-07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고 웃다가 배꼽 날려버렸습니다.
페크님만이 쓸 수 있는 글이옵니다.
남들 다 정을 남길 때, 저는 너무 웃다 댓글만 살짝 남기고 사라집니다.^^


페크pek0501 2012-11-07 22:37   좋아요 0 | URL
혹시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우리를 술꾼이라고 할까, 걱정이 되옵니다.
저로 말하면 제 별명이 집순이인데(집에만 있는다고 해서) 집순이에서 술꾼으로 변경되는 게 아닐까요?
제가 참 오랜만에 외출다운 외출을 했는데, 그 외출에 대해 남편과 아이가 반가워하더군요. 집에만 있지 말라면서요.
팜므느와르 님, 반가웠습니다. 님 같은 분이 있어 더 좋은 가을날입니다.

순오기 2012-11-10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게 읽었는데, 비로그인으로 읽어서 댓글이 늦었습니다.
늦은 댓글도 정이오!ㅋㅋㅋ

페크pek0501 2012-11-12 12:21   좋아요 0 | URL
당연히 늦은 댓글도 정이죠. 저 접수했어요.

늦은 답글도 정이오, 라는 정 한 줄 드리옵니다. 받으십시오. ㅋㅋ

마태우스 2012-12-1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힝, 순오기님 사흘쯤 늦은 건 늦은 것도 아니어요. 한달 늦은 저도 있는데요 뭐.
정말 멋지게 사시네요. 역시 제 추측이 맞았어요.^^
님과 님을 이해하는 친구분들이 있어서 좋으시겠다...

페크pek0501 2012-12-15 22:53   좋아요 0 | URL
어머낫!!! 이렇게 늦게 갑자기 나타나시면 어떡합니까.
그러면 제가 너무 반갑잖아요. 호호~~

마태우스 2012-12-1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참참 뒤늦게 마이페이퍼 상타신 거 축하드려요

페크pek0501 2012-12-15 22:53   좋아요 0 | URL
감사함.^^
 

 

 

아, 참 신중하셨군요. ㅋㅋ 신중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말씀에도 감사드립니다. 이것 괜히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진심인 것 아시죠? (아시리라 믿어요.)

 

 

 

 

 

"사랑하는 연인관계에서 '더'와 '덜'을 따진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구요." - ㅇ님의 댓글 중에서.

 

 

 

 

 

이것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일부 사람들만이 상대를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그래서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사랑에는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가 있다고.

 

 

자, 예를 들어 볼게요. 오래 전 어느 소설에서 읽은 것이랍니다. 제목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찾질 못하겠어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왜곡할 수 있음.)

 

 

사랑하는 사이의 두 연인이 동거하면서(적어도 자기네들은 사랑한다고 믿고 있어요.) 부엌일을 서로가 맡지 않으려고 해요. 하기 싫다는 것이죠. 어느 날 서로 상대가 부엌일을 맡아야 한다며 설득력 있는 말을 골라 하면서 크게 싸워요. 각자가, 자신은 바빠서 부엌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서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긴 한데, 그중 한 사람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덜 바쁜데, 그 덜 바쁜 사람이 자신이 ‘덜 바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질 않아요. “나도 바쁘다.”라고 주장할 뿐이에요. 그러면서 서로 “당신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해.”라고 말해요.

 

 

이게 말이 되나요? 사랑한다면 아무리 하기 싫은 부엌일일지라도 참고 해야죠. 잘하지 못하는 부엌일일지라도 배워서라도 해야죠. 그러므로 사랑한다면 덜 바쁜 사람이 ‘당신을 위해서라면’ 부엌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하고, 더 바쁜 사람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부엌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해요. 상대가 그러길 원하니까요. 사랑이란 상대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어째서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거예요.

 

 

님이 댓글을 쓴 그 문제의 페이퍼에서 제가 마광수 저, <마광수 인생론 - 멘토를 읽다>의 글을 인용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헌신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이기심의 또다른 가면일 뿐이다.(47쪽)

 

 

이것 맞다고 봐요. 상대를 사랑하면 상대를 위해 밥상을 차릴 수 있어야 하는데, 상대를 사랑하면 상대가 자신의 밥상을 차리길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다 그런 건 아니겠죠.) 결국 상대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게 되어 버리는 거죠. (부엌일을 하기 싫어 하는 나 자신에게 그런 일을 시킬 순 없어, 라는 뜻이 될 수 있으니까요.)

 

 

부모 자식 간으로 예를 들어 볼게요.

 

 

부모가 자식에게 일류 대학에 가길 원해서 학업의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일 가능성이 있어요. 그것은 결국 일류 대학에 들어간 자식을 갖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 되거든요. 자식이 아무리 공부하기 싫어 해도, 자식의 그런 괴로움 따위는 무시하고 무조건 공부해서 일류 대학에 들어가길 강요하는 부모라면, 생각해 볼 만해요. 자식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부모일지 몰라요.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이런 말이 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헌신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이기심의 또다른 가면일 뿐이다.(47쪽)

 

 

저도 님의 댓글(위의 네모 박스 안의 글)에 동의합니다. 다만 그런 페이퍼를 쓴 것은 재미 삼아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를 나눠 보고 싶었답니다. 그런 관계의 구조가 우리 인간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속성 같아서요. (예를 들면, 일방적으로 자기 자신이 상대에게 더 많이 전화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있어요. 또 만나기로 한 장소에 상대가 늦게 나타나면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말 사랑한다면 그런 자존심 따위는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죠.)

 

 

좋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님의 먼댓글을 잘 읽었어요. 인쇄하여 꼼꼼히 더 읽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에구, 사람들이 별로 관심 갖지 않을 글(그 페이퍼)을 괜히 썼나, 싶었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을 만나, 글 쓴 보람을 느낍니다. 이 <싱거운 후기>를 급하게 썼는데요, 내일이나 모레에 다시 손질할 부분을 찾아 수정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어서 그냥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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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from Value Investing 2012-11-07 12:38 
    페크님께서 두번씩이나 인용해주신 부분(‘헌신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이기심의 또다른 가면일 뿐이다)에 대해서는 쉽게 긍정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진지하게 반박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너무 급작스럽게 범주를 넓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타적 사랑이나 숭고한 인류애 등을 생각해 보면 '진정한 사랑'이란 결국 '타인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데까지 승화시키느냐 그
 
 
페크pek0501 2012-11-0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쓴 페이퍼인데, 지금 수정했어요.
밑줄을 친 부분을 넣은 게 수정이랍니다.^^

방문자님들께,
좋은 하루 되세요~~~.

oren 2012-11-0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께서 수정하신 부분까지 포함해서 잘 읽었습니다. ㅎㅎ
페크님의 글을 읽으니 제 머리속에 떠오르는 여러 '책 속 구절들'이 있어서 부득이 또다른 먼댓글을 (페크님의 인용글에서 일부 차용한 제목으로) 달아봅니다. 오늘은 바깥날씨가 한결 따스해진 것 같죠? 그런만큼 더욱더 좋은 하루 되시길 빌어요~

페크pek0501 2012-11-07 22:52   좋아요 0 | URL
예, 요즘 참 좋은 계절이에요.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오렌 님과 같은 좋은 이웃이 있어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먼댓글도 받아보고~~~
님 덕분에 공부 많이 됩니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그 관계만이 갖는 비밀스런 구조라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에 접근해 보고 싶어 ‘연인 관계에서 누가 더 사랑하는 자일까’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 글에서 썼듯이 연인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므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플라톤의 <향연>에 이어 이번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흥미롭게 정독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 대한 분석과 해석으로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 자체도 경이로운데, 저자의 통찰력은 더 경이로웠습니다.

 

 

 

연애엔 반드시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랑만 갖고선 안 된다는 것이죠. 첫사랑이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가 ‘기술의 부족’입니다. 결국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연애에도 친구 관계에도 결혼 생활에도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기술을 공부해야 합니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것도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부모답지 못한, 철없는 젊은 부모가 많다고 하는데, 자녀 양육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옳지 못한 태도로 키우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랑만 갖고선 안 된다는 것이죠.

 

 

 

연애 역시 사랑만 갖고선 안 돼요. 상대를 제대로 알고 자신을 제대로 알고 연애의 특성을 알고 자신의 위치(또는 좌표)를 알아야 해요. 더 좋은 연애를 하기 위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 필요합니다. 연애에 밀당(밀고 당기기)이 필요한 것도 그것으로 인한 인간의 심리가 연애(두 사람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해(또는 연애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타인의 마음을 다치게 해요. 타인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됩니다. 자신은 의도하지 않더라도요.

 

 

 

이런 예가 있습니다. 어떤 여자 대학생이 한 남자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매일 집 앞에서 기다리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심지어 학교의 강의 시간표까지 베껴 가지고 다닐 정도로 집착하여, 여자가 도망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랑만 갖고선 안 된다는 것. 인간에 대한, 연애에 대한 이해력(통찰력)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어느 책에서 읽은 글을 소개하며 끝맺습니다.

 

 

 

 

무릇 천지만물을 살피는 데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고, 사람을 보는 데에는 정보다 묘한 것이 없으며, 정을 살피는 데는 남녀 간의 정을 살핌보다 진실한 것이 없다.

 

18세기 문인 이옥의 말이다.

 

 

고미숙 저,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에서.

 

 

 

 

 

 

 

 

 

 

 

 

 

 

 

 

 

 

 

 

 

 

 

 

 

 

 

 

 

 

 

 

 

 

 

 

 

 

 

<추가>

 

 

이 글이 생각나서 추가합니다.

 

 

....................

타인을 향한 비난은, 많은 경우 비난하고 있는 사람 자신의 콤플렉스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비난하는 사람의 불행한 심리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비난하는 사람이 오히려 애처롭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도 이렇게 하십시오.

“너 어떻게 그렇게 서운한 소리를 하니?”

이것이 아닌,

“네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좀 서운한 마음이 든다.”

즉, 말할 대 상대를 향해 비난하는 투로 하지 말고,

나의 상태만 묘사하십시오.

이것이 좋은 대화법입니다.

....................혜민 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77쪽~78쪽.

 

 

 

“너 어떻게 그렇게 서운한 소리를 하니?”“네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좀 서운한 마음이 든다.”의 차이를 우리는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기술’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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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0-27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이 후기 페이퍼도 참 좋아요.
호모에로스, 사두고 아직 안 읽었어요. 향연을 정독하셨군요. 어렵다고만 들었는데
전 아직... 지금 담아갑니다. 이렇게 독서에 채찍이 되니 고맙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기술'은 저도 좋아하는 책입니다.
어떤 관계에서든 사랑하는 '방법'이 필요한 것이지요. 저도 잘 못하지만 방법을 잘 몰라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좌표를 잘 설정하고 잘 안다는 것,
이게 중요한 기본이라는 점에 절대 공감해요.^^
고즈넉한 토요일 해거름, 벌써 창밖이 꽤 어두워요.^^

페크pek0501 2012-10-27 18:10   좋아요 0 | URL
오래 전, <향연>을 읽고 충격을 받았답니다.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면서요.
최근에 읽은 <사랑의 단상>도 마찬가지예요. 경이로워요. 에리히 프롬의 저서는 원래 애독합니다.

이 페이퍼의 끝에 추가로 글을 넣은 것도 읽어 주세요. 혜민 스님의 글인데, 한참을 들여다보게 만든 글이라서 함께 올렸답니다.
고맙습니다. ~~ 오늘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감상하며 걸었답니다.
이 빗소리를 아직도 글로 표현할 수가 없네, 하면서요. ^^

프레이야 2012-10-27 18:34   좋아요 0 | URL
혜민스님의 말씀, 덧붙여 끄덕끄덕해요.
머리론 알지만 실천이 늘 어렵지요. 늘 의식하고 주의해 삼가는 게 관건. 오늘도 많은말을 했지만 말을잘 한건지 그저 헛소리나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방식으로 헛나가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인간관계의 근본은 정, 정을 헤아리며 잘 살아야겠어요. 좋은페이퍼 감사^^ 댓글 오자수정했더니 시간 달라졌어요.ㅎㅎ

페크pek0501 2012-10-30 00:21   좋아요 0 | URL
반가운 프레이야 님...
"오늘도 많은말을 했지만 말을잘 한건지 " - 저도 이런 생각에 말을 적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말이 많아지면 실수도 많아지지 않을까 해서요. 으음~~ 그러다가 생각이 너무 깊으면 삶도 피곤해진다, 뭐 그러면서 대충 살자, 그래요. ㅋㅋ

글샘 2012-10-27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읽는 중인데요~ ^^
10대부터 70대까지 공통의 관심사가 사랑이라지요.
김영민의 '사랑, 그 환상의 물매'도 사랑의 단상과 연관지어 읽어볼 만 하더군요.

페크pek0501 2012-10-30 00:28   좋아요 0 | URL
아, 글샘 님도 <사랑의 단상>을?
처음에 저는 이것 사 보지 않으려고(읽을 게 쌓여서)리뷰만 읽고 말려고 남이 쓴 리뷰를 열심히 찾아 보다가 결국 사게 되었어요. 어떤 글에 반했기 때문이에요.
사랑보다는‘인간 심리'에 더 관심이 가요. 그런데 인간 심리를 가장 잘 꿰뚫을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사랑인 듯해요.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집중할 수 있는 것이어서 새로운 정신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집중함으로써 생각이 깊어진다고 할까요. 그래서 생각이 깊어진 연인들의 심리를 읽으면 ‘인간’이 보이죠. 그래서 사랑에 관한 책은 흥미로워요.
고맙습니다. ^^

파란놀 2012-10-2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난도 칭찬도 모두 '듣는 이'한테 하는 말이 아닌 '말하는 이' 스스로한테 하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런저런 말을 들을 때면 '말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 수 있어요.

"아나스타시아" 읽어 보셨나요? 얼마 앞서 7권이 번역되었는데, 3권 책이름이 <사랑의 공간>이에요. 한번 즐겁게 여러 차례 읽어 보셔요. 러시아 타이가 숲에서 살아가는 아나스타시아는 당신 말을 담은 이 책을 읽을 적에 '숲으로 가서 새와 벌레 노랫소리를 듣고 햇살과 바람을 느끼면서 읽으'라고 했답니다.

페크pek0501 2012-10-30 00:30   좋아요 0 | URL
님의 댓글을 읽으니 이 글이 생각나네요. (어느 폴더에 제가 써서 저장한 글이에요.)

“얘야, 너도 어른이 되어 보면 세상에 화가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하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내게 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자신이 밉기 때문이지. 바로 그렇게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 위기철 저, <아홉살 인생>에서.

잊고 있었어요. 명심하겠습니다.

추천하신 책은 관심 갖고 검색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10-2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랑 바르트나 에리히 프롬을 애독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혜민 스님 같은 이의 책을 대수롭지 않은 베스트셀러 나부랑이라고 무시할 이도 있을텐데, 페크 님은 그런 편견없이 골고루 다루는 글이라서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12-10-30 00:3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베스트셀러라서 관심이 가서 읽었는데, 사유 깊은 글이 많았어요.
특히 제 마음에 위안이 되는 글이 많아서 반복해 읽었답니다.
저는 대중서를 좋아해요.ㅋㅋ 그리고 되도록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읽으려고
노력한답니다.
 

 

 

 

 

대부분의 연인들은 서로 사랑하니까 만난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만남은 지속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둘의 사랑의 크기가 똑같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두 사람은 상대보다 더 사랑하는 쪽이 되거나 덜 사랑하는 쪽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더 사랑하는 자일까?

 

 

알랭 드 보통 저, <우리는 사랑일까>와 롤랑 바르트 저, <사랑의 단상>을 읽고 나니 그 답이 보였다.

 

 

 

 

 

1. 노력하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연인 관계에서 둘 중 누가 더 사랑하는 자일까. 이를 알기 위해 ‘두 사람 중 누가 더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면 된다.

 

 

<우리는 사랑일까>에 이런 글이 있다.

 

 

....................

(전화 통화로) 대화가 펼쳐지는 어느 지점에서, 앨리스(여자)는 자신이 가지 않으면 에릭(남자)은 자기 집에서 나오지 않으리라는 감을 잡았을 것이다. 저녁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그 남자의 욕망은 아주 작고, 분명히 그녀의 욕망보다 약했다. 그 남자는 혼자 있는 것마저 감수할 테지만, 그녀는 쉽게 그러지 못했다. - 그래서 노력하는 일은 그녀의 몫으로 떨어졌다.

....................<우리는 사랑일까>, 371쪽.

 

 

 

 

연인들이 바라는 것 중 하나가, 둘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상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는지 모른다.

 

 

“나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상대보다 더 노력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상대보다 더 사랑하는 자이다.

 

 

 

 

 

2. 기다리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두 연인 중에서 누구에게 권력이 있을까. 당연하게도 덜 사랑하는 자에게 권력이 있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사랑을 더 받는 자에게 권력이 있다.

 

 

....................

스탕달은, 애인 사이에서는 언제나 한쪽이 상대방을 더 사랑하며, 그래서 두 사람 관계의 권력이 인지되기 마련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우리는 사랑일까>, 172쪽.

 

 

 

 

연인 관계에서의 권력은 ‘기다림’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주로 기다리고 있는 쪽보다 기다리게 하는 쪽에 권력이 있다.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썼다.

 

 

....................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한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 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 기다리게 하는 것, 그것은 모든 권력의 변함없는 특권이요, “인류의 오래된 소일거리이다.”

....................<사랑의 단상> 67쪽~68쪽.

 

 

 

 

기다리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과도 같은 것. 기다리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알랭 드 보통 저, <우리는 사랑일까>

롤랑 바르트 저, <사랑의 단상>

 

 

 

 

 

 

 

 

 

 

 

 

 

 

3. 연인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연인들은 서로 상대를 얼마나 알까. 몇 년 연애를 했다고 해서 친숙한 사이라고 해서 과연 상대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친구와 연인을 비교한다면 친구보다 연인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

앨리스는 사랑하는 남자(에릭)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그 남자의 행동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에릭은 처음 만난 날과 똑같이 복잡해 보였다. 그 첫 만남에서 그녀는 그 남자를 ‘안’ 줄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주장할 수 없었다. (…) 그리고 예상할 수 없고, 끊임없이 질문과 해석이 뒤따르는 불안정 상태에 힘이 빠졌다.

....................<우리는 사랑일까>, 149쪽

 

 

 

 

앨리스처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연인이 어느 날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연인인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롤랑 바르트가 한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

“아무리 해도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은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라는 뜻이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해독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 역시 당신을 해독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의 단상>, 196쪽.

 

 

 

 

누구에 대해 의문을 품고 골똘하게 생각하는 건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상대를 사랑할수록 상대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아질 것이고, 상대가 자신을 사랑할 거라는 믿음이 약할수록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연인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4. 피곤하다는 말을 듣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함께 있을 때 상대로부터 “당신을 만나면 한순간에 나의 모든 피로가 풀려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싶은 게 연인일 것이다. 반대로 상대로부터 듣고 싶지 않은 말 중 하나가 이 말일 것이다.

 

 

“오늘 좀 피곤해요.”

 

 

피곤하다는 상대의 말을 들은 연인은 마음속으로 “어떻게 나를 만나면서 피곤함을 느낄 수 있지?”하는 생각을 하며 울적해질지 모른다.

 

 

....................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앨리스, 지금은 밤 1시 30분이에요.”

“그래서요?”

“이런 토론을 시작할 때가 아니라는 거죠. 왜 매사를 복잡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모르겠어요. 뭘 알고 싶은데요? 내가 왜 청혼하지 않는지?”

에릭은 반대편으로 돌아눕고 베개에 머리를 고쳐 뉘었다.

“사랑을 나누면서 당신은 날 똑바로 보지 않아요.”

“앨리스, 부탁이에요. 이런 얘기는 내일 하면 안 되겠어요? 지금 피곤해요.”

....................<우리는 사랑일까>, 256쪽~257쪽.

 

 

 

 

상대가 피곤하다고 말하면 잔인하게 들리는 게 사랑하는 자의 마음이다.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음을 전달하는 말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이미지를 변질시키러 오는 것은 모두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의 피로를 두려워한다. 피로란 경쟁 대상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것이다. 어떻게 피로에 대항해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나와 그 사람을 연결하는 이 유일한 끈인 피로를, 사랑에 지친 그가 ‘내게 주기 위해’ 조각조각 자르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내 앞에 놓인 이 피로의 꾸러미를 어쩌란 말인가?

....................<사랑의 단상>, 167쪽.

 

 

 

 

상대의 피로와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는 연인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피곤하다(피로하다)는 말을 듣는 자가 더 사랑하는 자이다

 

 

 

 

 

 

 

 

**********************

마광수 저, <마광수 인생론 - 멘토를 읽다>에서 저자는 말한다.

 

 

“청춘시절에 연애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평생토록 ‘비퉁그러진 성격’을 갖고서 살아가게 된다.”(41쪽)고. “‘숫총각, 숫처녀 박멸 운동’을 벌여야만 그때 비로소 자유로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41쪽)고. 그리고 연인 관계에서의 ‘정신적 사랑’이란 ‘육체적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육체적 쾌락’을 강조한다. 육체적 쾌락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장(場)인 이 생태계에서 원칙적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46쪽)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헌신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속을 벗겨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헌신적 사랑은 이기심의 또다른 가면일 뿐이다.(47쪽)

 

남녀가 서로 사랑하며 연애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하늘의 축복’이 아니다. 연애는 언제나 피 튀기는 ‘심리전(心理戰)’의 양상을 띠고 있다.(49쪽)

 

연애는 그 사람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지만, 한없는 ‘줄다리기’의 연속이라서 동시에 극심한 피로감도 안겨 준다.(51쪽)

....................<마광수 인생론 - 멘토를 읽다>

 

 

 

 

 

 

 

 

 

 

 

 

 

 

 

 

 

 

 

 

 

<우리는 사랑일까>와 <사랑의 단상>를 읽으면서 연애는 ‘피 튀기는 심리전’이고 극심한 피로감을 안겨 준다는 <마광수 인생론 - 멘토를 읽다>의 글에 공감하였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은 연애를 삼갈 일이다.) 연애가 ‘피 튀기는 심리전’이 되고 극심한 피로감을 안겨 주게 되는 이유는, 사랑이란 감정이 유동적이기 때문이고 상황에 따라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로 나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연인 관계에서뿐 아니라 부부나 친구 사이에서도 더 사랑하는 자와 덜 사랑하는 자로 나뉜다.)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사랑을 더 하는 쪽과 사랑을 덜 하는 쪽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을까. 우리는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기 바라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을 것이다. 설령 질투로 인해 고통이 따른다고 해도.

 

 

혹시 어떤 관계에서 자신이 더 사랑하는 쪽에 있다고 해서 울적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예를 들면, 한 여자를 몇 년 동안 짝사랑을 하던 한 남자가 드디어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두 사람이 사랑을 하는 자와 사랑을 받는 자로 나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여자보다 그 남자를 부러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여자보다 그 남자가 더 행복해 보일 것이므로.

 

 

달콤한 행복은 사랑을 받는 데에 있지 않고 사랑을 하는 데에 있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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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리상태들의 강도에 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2-11-06 00:38 
    <더>와 <덜>의 구별사람들은 보통 감각, 감정, 열정, 노력과 같은 의식의 상태들이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어느 한 감각이 같은 성질을 가진 다른 감각보다 두 배, 세 배, 네 배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음을 확언한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정신물리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정신물리학의 반대자들조차 다른 감각보다 더 강한 감각, 다른 노력보다 더 큰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리하여 순전히
 
 
파란놀 2012-10-27 0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을 그으면서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을 나눌 만한가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책으로 내는 사람이 있고... 또 읽는 사람이 있으니 ^^;;;

사랑할 뿐인 삶일 테니까요.
스스로 즐겁게 누리는 사랑스러운 삶일 테니까요.

페크pek0501 2012-10-27 16:58   좋아요 0 | URL
된장 님, 반갑습니다. 님 덕분에 무플을 면했네요. 감사드립니다.
님에 대한 답글은 제가 올린 글 <싱거운 후기>로 대신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프레이야 2012-10-2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늘 이렇게 몇 권의 내용을 비교분석해가며 읽고 생각정리하고 쓰시고,
놀라워요. 참 좋습니다.^^
저 위의 두 권은 저도 좋아하는 책이에요.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사랑을 더 하는 쪽과 사랑을 덜 하는 쪽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을까. 우리는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기 바라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을 것이다. 설령 질투로 인해 고통이 따른다고 해도.-

특히 이 부분에 공감해요.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피곤하고 힘든일이란 점도요. 그만큼의 감정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이니.
더 사랑하는 자가 약자,라는 대사 영화 '음란서생'에서도 나왔지요.^^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왕비를 지극히 사랑하여 질투하고 집착하는 왕이 하는 말...

여긴 하루종일 비가 내려요. 추적추적... 몇 개씩 달려있는 나뭇잎이 다 젖었어요.
전둥번개도 치고 아까 대낮부터도 하늘이 어둡네요.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자요^^

페크pek0501 2012-10-27 18:02   좋아요 0 | URL
아, 프레이야 님, 고맙습니다. 저에게 힘을 주시네요.
으음~~ 점점 자신이 없어져서 글 쓰면서 힘이 빠지고 그래요.

몇 권의 책 내용을 비교분석했다는 평은 과분하고요, 그냥 읽다 보니 두 권의 책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배열해 본 것입니다. ㅋㅋ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프레이야 님을 보면서(올려진 글의 제목의 목록을 보면서) 아, 부럽다, 했어요.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저, 졌어요. ^^

다크아이즈 2012-10-28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이며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찍이 토마스 만이 토니오 크뢰거에서 가르쳐 준 이 단상을 연애중이거나 치열한 연애를 거쳐온 사람들에게 말해봐도 공감 못 얻는 이 분위기를 어찌할까요? 피폐한 상처만 남을 뿐인데도 사랑은 주는 거기 때문에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릇된 학습 위안 같은 거가 아닐까 생각해봤답니다.

더 사랑하는 자들이 연애의 이런 기본 심리(아닌 정직한 상식!)를 알고 덤비면 덜 상처받을 수도 있을까 해서 저는 아들이 대학생 되면 이런 책을 마구 선물할까 합니다. 기질 상 이백오십프로 사랑에 지고도 그게 사랑이라 문밖에 서성일 부류 같아서요. 하기야 암만 알고 덤벼도 지 맘대로 안 되는 게 사랑이니 별 도움이야 되겠습니까.


페크pek0501 2012-10-30 00: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를 읽고 인상 깊어서 리뷰를 쓴 적이 있어요.

저는 연애 심리를 잘 나타내어 준 책으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꼽습니다. 이 책을 보고 연애 심리를 좀 알게 되었어요. 하긴 안다고 해도 실전에선 아마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니 젊은이들에게 읽으라고 해도 큰 효과는 없을 듯해요. 차라리 나이가 들어서 그 책을 읽어 봐야 좀 알게 된다고 할까요.
사랑도 결혼도 어렵습니다. 그런 어려운 관문을 잘 통과할런지, 저도 우리 애들을 보면 걱정될 때가 있어요. 마음 다치는 일이 생길까 봐, 말이죠.ㅋㅋ

"사랑에 지고도 그게 사랑이라 문밖에 서성일 부류 같아서요."- 이 문장 참 맘에 드네요. ^^
긴 댓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oren 2012-11-06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페크님의 이 글을 보자말자 참으로 '도발적인' 제목의 글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었답니다. 아무튼 쉽게 답글을 달 수조차 없게 만드는 그런 인상을 잠시 받았었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두 연인이 언제나 서로를 향해 '더'나 '덜'에 대해서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울 수도 있고 그래서 언제나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누가 더 사랑하는 것일까를 글로 표현한다는 건 하여튼 여간 어려운 글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부터 들었거든요.

사랑하는 연인관계에서 '더'와 '덜'을 따진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구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된장님'의 댓글에 적극 공감을 느끼게도 되더군요.

아무튼 뒤늦게 제가 긴 댓글을 달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심리상태들의 '더'와 '덜'에 대한 한 탁월한 철학자의 통찰을 (페크님의 글에 기대어) 정리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 먼댓글로 쓴다는 것도 아울러 말씀드릴께요.

덧) 10월 마지막주에 '가을산행' 때 '필례약수터'를 막 지나자말자 '더덜'이라는 제목의 팬션 같은 집을 발견했는데, 그 집 주인이 더도 덜도 말고 '더덜'과 같은 그런 집을 상상하고 이름을 달았다면 정말 대단한 이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관련글 http://blog.aladin.co.kr/oren/5940503)

페크pek0501 2012-11-06 19: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의 댓글에 대한 답글은 오늘 올린 <싱거운 후기>로 대신하겠습니다. 쓰다 보니 길어져서요.

추신.
먼댓글을 받으니 영광스럽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