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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 테니스 엘보 등의 병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그래서 2년에 한 번씩 건강 검진을 받을 때면 또 다른 병이 생길까 봐 긴장하곤 한다. 몇 년 전 건강 검진의 결과지를 우편물로 받았는데 정밀 검사가 필요하니 재검사를 받으라는 게 하나 있었다. 유방암 검사였다. 유방암은 전 세계 여성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이라 겁이 났다. 마음을 졸이며 대학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괜찮다는 진단 결과를 전해 듣고서야 안도했다. 그때 큰 병에 걸리더라도 버틸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닮고 싶은 인물 유형 중 첫 번째는 병이 생기더라도 그 병을 이겨내고 의연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마치 환자였던 적이 없는 것처럼 근심 없는 듯 밝은 얼굴로 사는 사람이다. 시련을 겪고도 겉으로 티 내지 않고 산다는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책을 통해서 닮고 싶은 인물을 만난 적이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란 소설에 나오는 맹인을 보고 그의 정신 자세를 닮고 싶었다. 그 맹인은 상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집에 방문한다. 그는 아내의 오랜 친구다. 방문자가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방문자와 '나'를 인사를 시키고 '나'는 초면인 맹인과 악수를 한다. "어쩐지 전에 이미 본 사람 같구먼"하며 방문자는 '나'에게 쩌렁쩌렁하게 말한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면서 '나'를 이미 본 사람 같다고 농담을 할 줄 아는 유머인이다. 시각 장애인인 데다가 상처까지 했기에 그의 낙천성이 퍽 인상적인 대목이다. 이런 이는 어떠한 고난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의연한 자세로 돌아올 것만 같다.
불행의 나락 속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갖는 이를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제로도 존재하니까. 가수 이동우가 그렇다. 그는 1993년 SBS 2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고 남자 개그맨들로 결성한 가수 그룹인 틴틴파이브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2004년 병원에서 '망막 색소 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2010년 실명 판정을 받았지만 재즈 가수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였고, '철인 삼종 경기'에 출전해 도전 정신을 보여 주기도 했다.
만약 보통 사람이 어느 날 사고를 당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을지 모른다. 눈이 보이지 않아 뭘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터이니 가족에게 짜증을 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운명을 탓하고 삶을 비관하여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앞서 말한 두 사람은 정신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이런 보통 사람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힘들고,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한 꿈이 되어 버렸으며, 물가는 인상되고 있다.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고, 식생활의 변화로 각종 암과 당뇨병의 발생이 늘고 있다. 이외에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폭염, 폭우, 태풍 등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교통사고를 비롯해 매일 일어나는 사고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어려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갑자기 불행에 빠질 가능성이 예전에 비해 높아졌다. 누구는 경제 문제나 질병으로, 누구는 자연재해나 교통사고로 불행에 빠질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될 때까지 그런 척하면 그렇게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행동이 결과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행복하지 않아도 웃으면 실제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짜 웃음이라도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은 의학계에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소설 속 맹인과 가수 이동우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의연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의연하게 행동하면서 더 의연해졌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내가 앞으로 난관에 부닥쳤을 때 의연한 척 행동하면 실제로 의연하게 견딜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갖게 한다. 지금같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그들을 정신적 롤모델로 삼는다면 위안도 되고 힘도 얻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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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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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21020010003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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